글 박원식 소설가
항구에 닻을 내린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러자고 배를 만든 게 아니다. 항해에 나선 배라야 배답다. 거친 파랑을 헤치고, 멀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배는 인생을 닮았다. 모험이나 도발이 없는 삶이란 수족관처럼 진부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았던 이기순(52)씨가 남편 이병철(57)씨의 손을 잡아끌어 시골로 들어간 건 모험적
백수는 옛말로는 한량, 지금 용어로는 프리랜서가 아닐까. 백수는 여유있게 산다. 경제적으로 반드시 풍부하지 않지만 정신적 자유를 만끽하고 산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 퇴계 이황, 이덕무, 이익, 김시습, 김삿갓 등이 대표적인 백수가 아닐까. 백수가 되는 동기와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통적인 기질은 구속받고 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리라. 연암 박지원
불현듯 헤이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여럿이 어울려 스치듯 지나쳤는데 그때는 아직 건물들이 제대로 들어차지 않았을 때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간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여러 번 듣게 되어 다시 한 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움츠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합정역 1번 출구에서 2200번 버스가 파주까지 가는데 헤이리를 경유한다. 편도 2,500
아들이 뉴욕 변두리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지 10년 되었다. 이 동네는 단독주택 주거지로 중산층 마을이다. 1950년대에 조성되었으며 그 시절에는 두 블록만 건너가면 맑은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는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이었다. 지금 그 개울은 오버브룩이라는 이름으로 흔적만 남기고 있다
이웃들은 새집을 지어 입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아들딸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에 자리 잡은 쇠꼴마을. 소 먹이를 주던 곳이라는 뜻을 가진 쇠꼴마을은 김교화씨가 수년간 공을 들인 복합체험농장. 원래 목재사업을 크게 하던 김씨는 사업을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둘째 아들과 고향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고향인 이곳에 조금씩 땅을 마련한 지는 꽤 오래됐어요. 몸이 불편한 여동생을 위해 1979년에 땅을 사서 소를 몇
50대 후반까지도 인생을 헛되이 살아왔음을 이제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송나라 때 학자인 주신중(朱新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생계(生計).
둘째 병마나 부정으로부터 몸을 보전하기 위한 신계(身計).
셋째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기 위한 가계(家計).
넷째 멋지고 보람 있게 늙기
성탄절 낮의 종로 3가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잔잔한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울려퍼지는 전철역에는 구세군 냄비소리가 요란했다. 필자는 북적이는 인파를 비집고 부지런히 약속 장소로 향했다. 종로 3가 전철역 1번 출구 앞에서 아내와 만나 꼬불꼬불한 먹자골목으로 들어가 안쪽에 위치한 보쌈집으로 갔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벌써 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
“산에 들어가 살아야지.” 중년이라면 한 번쯤 무심코 내뱉어봤음직한 말이다. 산속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보면 멋진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새벽의 신선한 찬 공기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 통나무집 식탁 위에 차려진 신선한 음식.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현장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귀산촌은 냉정한 현실이라고. 영화
“치과의사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세요?”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이 그를 보고 던진 첫 질문이었다. 장영준(張永俊·58) 회장은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을 대표해 나간 자리에서 받은 그 질문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조 장관이 아니라 누구라도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이다. 바이애슬론이라는 비인기 동계스포츠를 대표하는 자리에 치과의사라니. 더군다나 지금은 평창 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주를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다. 필자도 30대에 경주를 가봤다. 잘 보존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각종 유물과 시가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왕릉은 신기함을 넘어 필자를 무아지경으로 몰고 갔다.
시니어가 되고 나서도 1년에 한 번쯤은 찾아가고 있지만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경주에서 지진이 난 후에 찾아간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