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무심한 상태에 빠져 모든 결정을 우연에 맡길 때가 있다. 관성에 젖어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며 사는 삶이 잠시 한걸음 멈춰서 바라보면 그 또한 스트레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치밀한 계획보다 우연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번에 선택한 영화 가 그런 경우이다.
평소 영
활발한 성격인 필자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장비를 늘어놓고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미학을 즐겨야만 하는 낚시는 필자의 성질에 맞지 않았다.
정적인 우리 남편은 취미가 식물 가꾸기와 낚시이다.
한창 젊었을 때 남편이 낚시를 즐기니 어쩔 수 없이 몇 번 낚시터 동행을 하기도 했다.
낚시터는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있어 꼭 물고기를 잡는 목적이
예전 마당 넓은 친정집에는 책이 많았다. 어머니는 유난히 책 읽는 걸 밝혀서 사랑방 한쪽 면에 책장을 세우고 벽면 가득 책을 채웠다. 그 당시 우스갯소리로 졸부들이 집안을 번쩍거리는 모양의 전집을 한 번 꺼내 읽지도 않으면서 과시하듯 진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말 책을 좋아해서 사들였고 그래서 지금도 누구와 이야기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지식을
2003년이니 스포츠 댄스를 배운지 10년쯤 되었을 무렵이다. 당시만 해도 댄스에 대한 이미지도 아직 개선되지 않았었고, 스포츠댄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스포츠 댄스를 가르친다 하여 등록했으나 배우다 보니 스포츠 댄스가 아닌 포크댄스였다. 지터벅 같은 사교댄스를 가르치기도 했다. 3년쯤 지나자 그 강사 밑에서는 더 배
머지않아 추석이 다가옵니다. 설날이나 추석은 우리민족의 최고의 명절입니다.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차례를 지내고 동기간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행복입니다. 명절날은 객지에 나가있는 친구들도 몰려드니 온 동네가 들썩들썩 합니다. 가고 싶은 고향에 가기위한 열차표 예매를 새벽부터 나가서 기다려서 구입한 추억도 갖고 있습니다. 자가용 시대가 도래
읽고 싶어 사는 책은 정리하기 쉽다. 소장하거나 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를 편하게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원하지 않아도 배달되는 많은 책이 문제다. 더구나 이름까지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오는 책들은 버리기도 송구스럽다. 미안한 마음에 잃을려 해도 읽기가 만만치 않다. 흔들리는 차 속에서는 눈을 버리기 쉽다고 해서 책상에서 읽으려니 시간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안방 한쪽에 ‘생각의 의자’라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자매끼리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왜 화가 났는지, 울어야 했는지 억울한 얘기도 들어주었지만, 이기적인 마음도 내려놓게 다독이며 두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
필자는 더는 책을 모아 애지중지 보관하지 않는다. 책의 편리한 이용을 위하여 디지털화하였다. 책은 기증하여 후세대에 공헌하기도 한다.
◇이사 때마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책
젊은 시절 지금처럼 이삿짐센터가 있지도 않았고, 실어 나를 짐도 많지 않았다. 휴일을 잡아 친구끼리 품앗이 이사가 당시의 풍속이었다. 가까운 곳은 손수레로, 먼 곳은 삼륜차에 짐과 사람
‘낮잠 예찬’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게으름뱅이들의 화려한 변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폴레옹, 피카소, 에디슨, 처칠, 루스벨트 등 유명 인사들이 ‘낮잠꾸러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 지도자를 이끄는 원동력 ‘낮잠’
수많은 낮잠 예찬론자 중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윈스턴 처칠(Winston
테레사 수녀의 통신에 따르면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 덧없고 허무한 게 삶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렇지 않던가? 부평초처럼 떠돌다 허둥지둥 저승에 입문하기 십상인 게 삶이다. 그저 따개비처럼 견고하게 들러붙은 타성의 노예로 간신히 살다가 파장을 보기 쉽다. 어이하나? 저마다 나름의 대책과 궁리가 있을 터인데, 백발의 사진가 이종원씨(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