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불타는 금요일과 토요일N 지꺼진장

기사입력 2016-11-04 10:15 기사수정 2016-11-04 10:15

제주 지역 농민들의 직거래 장터

아름다운 섬 제주. 최근 이곳은 플리마켓(Flea Market), 즉 벼룩시장의 성지가 된 듯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장(場)이 ‘섰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비누, 방향제, 액세서리 등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10월호에 이어 농산물과 사람들의 웃음이 함께하는 도시장터를 제주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투박해 보이지만 주민들의 정이 물씬 넘치는, ‘플리마켓’보다는 ‘도시장터’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지꺼진장’에서 지꺼지게(?) 놀아봤다.

▲아라올레 지꺼진장(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아라올레 지꺼진장(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제주시 아라동 휴게 음식점인 아라올레 앞마당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제주 지역 농산물과 특산품, 착한 먹거리가 함께하는 ‘지꺼진장’이 선다. 지꺼진장은 제주 방언으로 즐겁다는 의미의 ‘지꺼지다’와 시장의 ‘장(場)’을 조합해 만든 ‘즐거운 시장’이라는 의미의 신조어다. 작년 5월부터 문을 연 지꺼진장은 최근 인기에 힘입어 금요일 저녁에만 운영하던 것을 토요일까지 연장 운영하고 있다. ‘지꺼진장’은 10월호에 소개한 마르쉐@의 생각을 빌려와 만든 장터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매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는 것과 제주 농민들이 주축이 돼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의 물꼬를 텄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플리마켓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수·공예품과 아기자기한 수제품 등도 구색을 갖추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취재차 방문했던 9월 말의 지꺼진장은 예년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다. 만 1년 넘은 지꺼진장, 그 사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목 좋은 곳에 플리마켓이 연이어 생겼다. 게다가 제주시가 지꺼진장을 비롯한 플리마켓의 식·음료 판매 금지조치를 내렸다. 먹거리가 중심이던 지꺼진장이 한산해진 결정적인 이유다. 문근식(文根植·49) 아라올레 지꺼진장 공동대표는 제주시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숨고르기 중이라고.

“규모가 커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지꺼진장은 지금 일종의 과도기입니다. 마르쉐@의 경우 올해로 4년차 되는 도시장터잖아요. 물론 처음에는 이벤트도 하면서 총력을 기울이는 게 맞아요. 작년에 그랬죠. 이제는 이벤트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장으로 인식이 되는 시기를 거쳐야 합니다.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하듯 뛸 수는 없죠. 훗날 다 남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주시의 결정에 대해서도 문 대표는 비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시장이 꾸준해지기 위해서는 법 테두리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와 관련한 조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상황을 감성적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텐데 기다리고 잘 진행해야죠.”

제주 농민들이 중심인 시장

대부분 이런 시장은 유기농이라든지 친환경 농산물을 내세운다. 지꺼진장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것이면 된다.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화학비료를 써서 농사지은 농산물이 가치가 없을까요? 친환경으로만 축소시키면 편향되기 마련입니다. 친환경 농민들만 가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관행으로 농사짓는 농부도 소비자들을 만나면서 점차 친환경 쪽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설명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숨고르기라지만 매주 금요일, 토요일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제주의 정기를 듬뿍 담은 지꺼진장이 열린다. 갓 담고, 갓 따온 제주의 농산물과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꼭 찾아가 보시라.

▲멘도롱 또, 예쁜 제주 말이 담긴 조명등
단쑨제작실의 김명훈씨는 3D 프린터로 만든 조명을 가지고 지꺼진장 판매자로 처음 참여했다. 지꺼진장은 토속적인 분위기가 나서 좋단다. 최근 서울에서 제주로 온 김명훈씨는 3D 프린터만 있으면 지역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제주 정착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멘도롱 또, 예쁜 제주 말이 담긴 조명등 단쑨제작실의 김명훈씨는 3D 프린터로 만든 조명을 가지고 지꺼진장 판매자로 처음 참여했다. 지꺼진장은 토속적인 분위기가 나서 좋단다. 최근 서울에서 제주로 온 김명훈씨는 3D 프린터만 있으면 지역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제주 정착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오징어, 아니 준치 들어보셨어요?
준치를 말리는 작업장은 고산 차귀도에 있다. 그곳에 가면 할머니들이 노상에서 판매도 하고 해풍에 바로 말리기도 한다. 생긴 건 흔히 볼 수 있는 오징어 같지만 분명히 준치가 맞다. 오징어와 한치의 중간이라 준치다. 오징어보다 살점이 두툼한데 살짝 꾸덕꾸덕하게 반건조시켜서 판다.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오징어, 아니 준치 들어보셨어요? 준치를 말리는 작업장은 고산 차귀도에 있다. 그곳에 가면 할머니들이 노상에서 판매도 하고 해풍에 바로 말리기도 한다. 생긴 건 흔히 볼 수 있는 오징어 같지만 분명히 준치가 맞다. 오징어와 한치의 중간이라 준치다. 오징어보다 살점이 두툼한데 살짝 꾸덕꾸덕하게 반건조시켜서 판다.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지꺼진장의 또 다른 주인장, 화덕피자 파는 ‘볍씨학교 아이들’
작년 지꺼진장이 열리면서부터 화덕피자를 판매하고 있는 대안학교 볍씨학교 아이들. 지꺼진장 운영진들은 피자를 팔아보겠다는 아이들을 배려해 장마당이 서는 한쪽에 화덕을 만들어 선물했다. 작년에 고사리피자, 김치피자 340여 개를 팔아 졸업여행 공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볍씨학교는 원래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대안학교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이어 9학년까지 교과과정이 운영된다. 9학년에 제주로 와 다양한 직업 경험을 하면서 마지막 1년을 보낸다.(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지꺼진장의 또 다른 주인장, 화덕피자 파는 ‘볍씨학교 아이들’ 작년 지꺼진장이 열리면서부터 화덕피자를 판매하고 있는 대안학교 볍씨학교 아이들. 지꺼진장 운영진들은 피자를 팔아보겠다는 아이들을 배려해 장마당이 서는 한쪽에 화덕을 만들어 선물했다. 작년에 고사리피자, 김치피자 340여 개를 팔아 졸업여행 공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볍씨학교는 원래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대안학교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이어 9학년까지 교과과정이 운영된다. 9학년에 제주로 와 다양한 직업 경험을 하면서 마지막 1년을 보낸다.(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지꺼진장에서 만난 볍씨학교 졸업생 박진희·권소정 양

볍씨학교는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와 활동 속에서 공부하고 느끼는 대안학교다. 지꺼진장에 갔을 때 아이들 열댓 명이 모여 피자를 만드는 모습이 생소했지만 지금은 이 아이들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지꺼진장 진행 전반에서 이 어린 아이들이 신나게 관여하고 참여한다. 작년부터 제주에서 생활한 박진희(16), 권소정(16) 양과 여러 명의 졸업생들이 제주를 떠나지 않고 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잠시 얘기를 나눠봤다.

▲박진희·권소정 양(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박진희·권소정 양(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Q. 볍씨학교는 어떤 학교인가요?

박진희 대안학교입니다. 볍씨학교는 자율이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선생님이 같이 배우고 서로 알려주기도 해요. 지금은 학교라는 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고 또 좋다고 생각해요. 제주 오기 전까지는 잘 몰랐어요.

권소정 이 학교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곳이에요. 이 세상 보통학교의 아이들은 부모님, 선생님 손에서 곱게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딱! 하고 사회로 나가잖아요. 저희는 그게 아니고 그전부터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사회에 나가는 연습을 해요.

Q. 다른 제도권 아이들처럼 보호받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박진희 그런데 언젠가는 보호를 안 받고 살아가야 하잖아요. 언제까지 우리가 어린애일 수는 없어요. 그리고 언제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건지 그것도 의문이에요.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뭔가가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어느 선에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 와서 살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왜 지금부터 그렇게 사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사실은 많아요. 어차피 또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저는 말해요. 힘들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이곳에서는 내가 볍씨학교 학생이 아니라 나 박진희로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도 해요. 사람들이 잘한다, 예쁘다 하니까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도 있더라고요.

권소정 결국 또 다른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언젠가는 이 사회의 구조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벽을 깨고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미리 깨보면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될 거 같아요.

Q. 굳이 빨리 성숙해질 필요가 있을까요?

권소정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저희 학교에서는 ‘세상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가르쳐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하죠. 또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노력하면서 사는 거 같아요.

Q.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박진희지금까지는 생각이 없어요. 대학에 가서 또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도 볍씨학교도 안 다니고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요. 다양한 것을 배우고 싶어요. 지금은 액세서리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7학년 때 현장 탐방을 해서 인턴십으로 배워봤는데 재밌더라고요. 학부모님 중에도 가르치는 분이 있고요. 그리고 여행을 하고 싶어요. 마을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서 더 배우고 싶어요. 요즘 많이 생기는 마을 공동체에 찾아가보고 싶어요. 아직은 스스로 제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는 부족해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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