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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유예한다면 그게 무슨 인생?
- 무슨 일을 하건, 그 분야의 최고가 돼라! 자주 듣는 얘기다. ‘최고’에겐 갈채가 쏟아진다. 다들 ‘최고’가 되기 위해 질주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영혼을 파는 결탁마저 불사한다. 삶의 눈먼 과속은 대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욕망이라는 총구에서 발사된 열정의 탄환. 이 위험한 물질은 과녁을 맞히고도 좌절한다. ‘최고’가 되고서도 감옥에 끌려가는 사람조차 있지 않던가. 그런데 말이다. 자전거 세계여행가 차백성은 권장한다. “꿈을 좇아 최고가 돼라!”고. 그가 말하는 최고란 뭘까. 자전거 여행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자전거로 세계 여행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 점점 늘고 있다. 주로 청년층이 즐긴다. 차백성도 청년이다. 그의 나이는 68세.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애늙은이도 있지 않던가. 가슴에 시퍼런 청년이 살아 있으면 청년이다. 정열과 패기로, 차백성은 청년 열차에 올라탔다. 그는 프로다. ‘전업 자전거 세계여행가’로 통한다. 직업적으로 자전거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가 유일할 거다. 그의 여행엔 협찬이 붙는단다. 여행서 집필과 강의도 어언 직업화됐다. 자전거로 지구를 누비는 사람이라 근육질의 터프가이를 예상했다. 그러나 마주앉고 보니 아니다. 그저 평범한 외양이다. 맑은 표정으로 보자면 학자풍이다. 여기저기 관절이 결릴 시절이지만 몸짓이 곧고 민첩하다. 육체에도 정신에도 강골이 들어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인생의 황혼에 무슨 수로 청년의 새아침을 열었겠나. 그는 바야흐로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요즘 최상의 행복을 느끼며 산다. 골든 에이지! 바로 지금이 그렇다. 나에겐 하루도 거르지 않는 세 가지 일과가 있다. 운동, 독서, 글쓰기가 그렇다. 이 셋은 새로운 여행에 나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자 일상을 맘껏 즐기는 방식이다.” 나이 들며 사람들은 흔히 습관에 안주한다. 나이 타령이나 하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한다. 당신처럼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즐긴다는 건 상상으로나 가능할 뿐이다. “늙었다고 자조할수록 퇴보한다. 늙음 안에는 경륜이나 지혜 등 좋은 가치들이 들어 있지 않던가. 역사를 보더라도 60세 이후에 위업을 남긴 사람이 많지 않던가. 나는 늙음이라는 걸 경쟁력으로 생각하며 산다. 이 나이에도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는 건, 그 경쟁력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자동차 여행은 어떤가? 굳이 자전거만을 수단으로 고수하는 이유는?” “어릴 적에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나 그의 자전거 여행에 동경심을 품었다. 그때 꿈이 생긴 것이지. 나, 어른이 되면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할래! 그랬던 소년기의 꿈을 뒤늦게 이룬 셈이다. 김찬삼 선생이야말로 내 인생의 위대한 멘토다.” 김찬삼(1926~2003)은 ‘여행의 신’으로 불렸다. 비(非)문명, 오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여행 원칙을 끝까지 관철한 인물이다.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이른 작고도 어린 나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 염세주의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선친은 우주처럼 큰 존재였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며 어린 내게 인생은 유한하다는 걸 일찍부터 경험하게 했다. 덕분에 좀 조숙하지 않았을까. 이미 발아한 여행에의 꿈이 아버지를 잃은 뒤로 한층 영글었던 것이다. 내게 꿈이라는 게 없었다면 평생을 방황으로 허비하고 말았겠지.” 날마다 100km씩 달렸다 삶이 부끄러운 건, 꿈을 잃었을 때다. 꿈의 관리에 능란하지 못한 채, 꿈을 배반하고 엉뚱한 행로를 헤맸다는 자각이 찾아들 때다. 차백성에게도 그 자각의 순간이 찾아왔더란다. 2000년,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참을 수 없는 삶의 진부함에 소스라쳤던 것 같다. 살아온 날들 전체에 회의를 느꼈다는 게 아닌가. 어라, 나 지금 뭐하는 짓이지? 나여! 이건 나의 삶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자가 심문을 했던 모양이다. 대우건설 임원이었던 그는 마침내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수면 아래에 매장된 꿈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렸다. 그렇게 자전거 세계여행의 시동이 걸렸다. 첫 여행은 미국 서부 해안 종주. 3000km에 달하는 대장정이었다. “시애틀에서부터 샌디에이고까지, 태평양을 끼고 이어지는 ‘하이웨이 원’을 달렸다. 하루 평균 100km씩, 한 달에 걸쳐 완주했다.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는 감개무량했지. 나도 드디어 자전거 여행가 대열에 올라섰다는 만족감이 컸다. 오래된 꿈을 비로소 이루기 시작했다는 쾌감은 더 컸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체력을 다져 떠났겠지? 하루 100km를 날마다 달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물론 준비기간이 있었다. 미국 종주를 하기 이전에도 자전거를 자주 탔다. 나는 매번 엄청난 준비를 하고 떠난다. ‘고생한 그대여, 다 놓고 훌쩍 떠나라!’ 그런 식의 구호를 불신한다. 준비가 충실하지 않은 여행엔 폐단이 많아서다.” 숙식은 어떻게 해결했나? “불가피한 경우엔 모텔에 투숙했지만, 거의 캠핑을 했다. 자전거엔 7개쯤의 가방을 매단다.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챙기다 보면 꽤 무거워진다. 30kg 이상 된다. 나의 모든 해외여행이 그런 식이다.” 하룻밤만으로도 온몸이 쑤시는 게 캠핑일 수 있다. 말 못할 불편이 많았겠다. 캠핑을 기본으로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점 때문이다. 하나는 캠핑장을 통해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한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또 하나는 경비 세이브! 불편? 별안간 설사 날 때가 가장 난감하다. 화장실을 찾기 어렵더라고.” 칼을 두 자루나 들고 덤비는 강도도 만나게 되는 게 자유여행이다. 사고는 겪지 않았나? “내겐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미리 면밀히 예방하는 것이지. 유럽 여행의 경우엔 집시들을 특히 조심한다. 순식간에 자전거를 훔쳐가기 때문에 자전거를 항상 몸에 붙이고 다닌다. 캠핑할 때도 자전거를 분해해 텐트 안에서 끌어안고 잔다. 미국에선 송아지만 한 개가 공격을 해서 죽는 줄 알았다. 용케 모면했다. 미국 개들이 다들 훈련됐다는 게 퍼뜩 생각나 외쳤다. 싯 다운!(sit down) 그러자 대번에 주저앉던걸. 하하핫. 여행엔 기지가 필요하다.” 가벼운 사고는 여행의 풍미를 더해준다. 일테면, 길을 잃을 경우,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길이란 결국 어디로든 이어지니까. 그러나 차백성에게 길을 잃는 식의 얼간이 짓은 용납되지 않는다. 사고율 제로! 노련한 여행자의 기록이 혁혁하다. 자전거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근사한 물건에 속한다. 자동차가 지구덩이를 까맣게 뒤덮은 이 시대까지 사멸하지 않은 그 생명력이라니. 이른바 적정기술의 산물이다. 이 주목할 만한 철 구조물에 인간의 숨결과 피를 부여하는 게 차백성이다. 페달을 밟는 그의 거친 숨결에 자전거도 격동하겠지. 그의 몸통에 흐르는 피가 핸들을 거쳐 바퀴까지 설레어 번질 테지. 사물과 인간의 동체대비, 그 사랑과 안심이 여행을 지속하게 할 것이다. 꿈 없는 욕망의 질주는 방황에 불과 그런데, 고독하지 않을까? 그는 늘 혼자 떠나고 혼자 돌아온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페달만 밟는 날도 많다는 게 아닌가. ‘나 홀로 여행’을 수칙으로 삼은 사람에게선 독특한 취향 이상의 자기폐칩이랄까, 뭔가 집요한 나르시시즘이 느껴진다. 외바퀴 자전거처럼 고독하지 않을까? 고행을 자행하나? “고독. 사실 그게 가장 힘겹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 자체가 고독과의 동행이지 아니한가? 당신 역시 곁에 와이프가 있더라도 외로울 게 아닌가? 고독이란 사귈 만한 벗일 뿐, 나쁜 게 아니다. 자전거 여행은 고독과 동행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편차 없이 닮은 것 같다. 인생의 축소판이자, 인생을 관조하게 하는 전망대, 그게 자전거 세계여행이지. 그러고 보면 이건 구도 내지는 탐구여행이겠네.” 차백성은 책벌레에 가깝다. 여행 중에도 자주 책을 읽는다지. 그게 고독을 녹여 친구로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인 모양이다. 여권처럼 항상 들고 다니는 책도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 애호가이기도 하다. 일부러 지중해 크레타 섬을 찾아 카잔차키스의 묘를 참배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는 카잔차키스의 비명(碑銘)으로, 차백성의 가슴에도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것 같다. 자전거는 느리다. 느려서 더 잘 보이고, 더 많이 보인다. 모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세상 풍경이 잽싼 발길을 멈추고 천천히 흘러간다. 풍경은 물론 삶의 풍속까지. 세계 각국을 섭렵하는 중에 본 최고의 비경은 어디였나?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의 피오르드였다. 만년설 빙하가 흘러내려 형성된 협곡이다. 숨이 멎는 듯한 경이를 느꼈다. 그런데 비경보다 감동적인 건 사람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사람의 비경을 만나기 위해서다.” 미움이 쌓이는 게 인간사이지만, 늘 그리운 건 사람이다. 봄날의 여행처럼 따뜻한 존재. 누구나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한번은 인가 없는 오지의 어둠 속에서 곤경에 처했다가 어떤 남자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진정 비범한 인간애로 나를 도왔다. 눈물겨워 감사의 뜻을 전할 수밖에.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의표를 찔렀다. ‘나에게 고마워할 것 없다. 다음에 너도 남을 도우면 되지 않니?’ 그 한마디는, 이후 내 삶의 푯대가 되었지.” 부인에게 헌신적일 거 같다. 그런데 어쩌자고 20년째 ‘홀로 여행’만 하지? “아내에겐 동의를 미리 구했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 존중하기. 이는 현명한 부부애이지 않을까? 나는 오랫동안 꿈을 잃은 채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으나 그건 일종의 방황이었다. 비관적으로 산 세월이었지. 쉰 살에 이르러서야 잠에서 깨어나 유예했던 꿈을 실현했다. 그러자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하더군.” 별 꿈 없는 보편적 인생도 얼마든지 어엿할 수 있다. 꿈으로 말하자면, 인생 자체가 한바탕의 꿈이지 않을까? “꿈이 없는 건 강아지나 시체일 뿐이다. 모든 살아 있는 사람에겐 다 꿈이 있다. 잊었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따름이겠지. 꿈을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이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꿈으로 삼아 도전하라는 얘기다. 도전했다면 최고가 되어야겠지. 그게 가장 좋은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꿈 없는 욕망의 질주는 방황에 불과하다는 얘기이겠지. 꿈이라는 산소통이 빠져나간 삶은 자아를 질식시킨다는 얘기일 테고. “자전거 여행의 꿈을 이루자 삶의 시공간이 확장되었다. 한결 농밀한 삶이 가능해졌지. 그게 왜냐면, 가령 한자리에서 90년을 산 사람의 삶과 90년을 여행하며 산 사람의 그것은, 질적으로 너무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비단 여행만이 아니라 뭐든 꿈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다.” 차백성은 자전거 세계여행만을 꿈으로 삼진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도 뿌리 깊은 것이었단다. 굴레를 벗어나고픈 그의 유목적 개성이 문예 욕망으로 번진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세 권의 여행기를 낸 작가로 변신했다. ‘아메리카 로드’, ‘재팬 로드’, ‘유럽 로드’. 셋 모두 인문학적 내공과 글맛으로 버무려진 가작이다. 이제 그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좀이 쑤셔 못 견딘다. 그보다 더 그를 달구는 건 물론 여행 충동이지만.
- 2019-10-0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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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에서 취업 성공의 기회를 잡아라
- 새로운 시작과 활력있는 인생을 준비중인 신중년 5060세대들에게 꿈과 노력의 동반자가 되고자 ‘2019 신중년 인생3모작박람회’가 9월 17일 aT센터 제1전시장에서 열린다.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노사발전재단이 주관하는 ‘2019 신중년 인생3모작박람회’는 (재)취업, 전직 지원, 창업, 귀농, 사회공헌활동 등 신중년 인생3모작 관련 컨설팅과 잡매칭을 통해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기업은 능력있는 신중년 인재를 채용할 수 있게 된다. 50세 이상 부터 60세 까지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신중년 5060의 인생 3모작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박람회는 구인 중인 기업 담당자가 직접 현장에 나와 면접과 상담을 진행한다. 현장에서 구인 철자를 이뤄지기 때문에 취업을 원하는 참여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미리 준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참가기업은 120개사이며 신중년 구직자, 퇴직(예정)자들 외에 일반인들도 참여를 한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구직자들의 면접 편의성을 위해 직종별로 채용 부스를 운영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고용정책홍보관에서는 신중년 대상 고용 지원 서비스 제도 및 정책을 소개하고, 인3모작 지원관, 인생3모작 멘토관, 생애경력설계관, 취업매칭관, 컨설팅관 등에서는 전직이나 (재)취업을 실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관별 전문 컨설턴트를 통한 상담 위주의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노사발전재단 컨설팅관에서 커리어 컨설턴트와의 1대1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인생3모작 특강관에서는 최일구 아나운서외 권혁채, 김영준, 정희선 등 행복한 인생의 내공강사(내경험을 공유하는 강사) 명사 특강이 준비되어 있다. 구직자들의 면접 스킬로 면접복장과 구두 컨설팅, 이력서 사진 촬영, 컬러이미지 컨설팅, 스트레스 검사를 받아볼 수 있고, 건강을 측정할 수 있는 ‘건강상담’ 노후자금설계 및 관리법을 상담하는 ‘재무상담’ 등이 모두 무료로 진행한다. 인생3모작 박람회 홈페이지 (https://5060job.career.co.kr/)를 통해 참여 신청이 가능하다.
- 2019-09-1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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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윷판에 두 번째 인생을 던졌습니다”
- 평범한 세일즈맨의 일생이었다. 그저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무난한 삶을 원하는 이 시대의 가장.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또 하루를 지내다 보니 어느덧 베이비붐 세대라는 꼬리표와 함께 인생 후반전에 대한 적잖은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지금까지 숨죽이고 조용히 살았으면 됐다 싶어 너른 멍석 위에 윷가락 시원하게 던지듯 직장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 전반전 인생이 무채색이었다면 후반전은 돌고 도는 윷판 속에 수만 가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윷놀이연구소의 조광휘(趙光彙·56) 소장을 만났다. 용산구 효창원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주택가 한 모퉁이에 윷놀이 연구소가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벽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긴 윷판이 부착돼 있고 박스와 작은 선반마다 윷놀이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집이랑 가까워서 이곳에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월세도 싸고요.” 한복을 입고 반갑게 많이 하는 조광휘 소장은 찾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시원한 물과 커피를 내놓았다. 그저 명절이 되면 누군가 어디선가 꺼내 달력 뒤를 펴서 도, 개, 걸, 윷, 모 윷판을 매직펜으로 그려놓고는 동전 혹은 바둑알 색으로 편을 나누어 윳놀이를 한다. 언제부터 윷판 그리는 것을 기억해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들 잘도 그린다. 윷판 위에 말을 올리고 놓는 것도 수준급. 다들 알고 있는 이 윷놀이에 무슨 매력이 어떤 새로운 점이 있어 윷놀이 연구소까지 열었는지 궁금했다. “저는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인 1963년생입니다. 부산 출신으로 KB국민은행에서 27년 6개월 동안 일하다가 2017년 희망퇴직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을 윷과 함께 맞이했습니다.” 그가 회자될 때 불리는 직함은 바로 우리나라 1호 윷놀이전문강사(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 전문강사 양성과정 인증). 30년 가까이 고객 응대하던 친절한 행원이 한판 흥겨운 윷놀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알리는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뭘 좀 준비하고 회사 밖을 나왔어야 하는데 사실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입행할 때 130명이 들어갔는데 현재 29명이 남아 일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좀 많으면 빨리 퇴직하더군요. 그리고 지점장까지 오른 사람들도 회사생활을 마감하고요. 지점장이 안 된 사람들은 오래 근무를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받아오던 임금의 반을 받으며 정년까지 일하는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든가 아니면 퇴직을 하는 거죠. 팀원 내에 계속 남아 있는 동기들은 여러 가지 사연 때문에 근무를 선택한 거죠. 저는 지점장은 아니고 팀원으로 퇴직했습니다. 굳이 진급 못한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상급자에게 잘하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웃음)” 은행의 지점에서 일한다는 것은 영업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가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로 정년까지 근무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은 아련하기만 했다. 어제까지 선배 대우 잘해주던 후배도 임금피크제로 보직이 변경된 선배에게 색안경 끼고 행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저렇게까지 이곳에서 일해야 할까?’ 하는 의문과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희망퇴직도 기간에 대한 보상이 있거든요. 특별 퇴직금이 있었어요. 제 인생을 생각해보니까 60세에 은퇴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못할 거 같았어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하고 은행을 나왔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별생각 없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한 우물과도 같은 직장을 박차고 나왔으니 솔직한 마음으로 앞이 캄캄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땄던 자격증은 금융기관이 아니면 써먹을 곳이 없었다. 새 삶을 살려면 옛것을 버려야 했다. 지금까지 했던 것 말고 무엇을 하고 싶었고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었다.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잖아요.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보고 시험도 보러 다녔습니다. 백세시대이다 보니 제가 노노(老老)케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쪽 일을 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하더라고요. 자격증의 필요함을 느꼈다면 현직에 있을 때 땄겠지만 그때는 조직에 충성하기도 바빴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되어 시간이 많아졌다지만 자기계발하는 친구가 주변에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스트레스 많은 직종이기도 하죠. 돈을 다루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요. 지금은 비대면이 많지만 저는 온전하게 대면하는 은행원의 삶이었죠. 아무 대책 없이 인생 2막을 생각한 것이 후회스럽긴 합니다.” 은행 생활에서 윷놀이를 발견하다 윷놀이에 대한 관심은 은행원 시절부터 있었다고 했다. 조직에 있을 때 서무파트 담당을 많이 하다 보니 야유회나 체육 행사 계획을 도맡게 됐다. “1박 2일 혹은 당일 코스로 계획을 짤 때마다 윷놀이를 포함했습니다. 소통 놀이로요. 은행에 팀이 4개였는데 토너먼트로 윷놀이를 하면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놓았는데 사람들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퇴직 후 보통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하는 활동 중 하나는 실질적인 구직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부에서 인가한 단체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공덕동에 있는 노사발전재단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금융전문강사 양성과정이 있었어요. 처음 1주 과정을 마치고 나니 저더러 5분 스피치를 준비하라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스피치를 준비할 때 재무관리, 은퇴설계, 노후관리 등을 대부분 고르더라고요. 저는 금융강사가 되어보겠다는 절박함이 없었고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간 거였어요. 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윷놀이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은행에 다닐 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마이크 잡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50세 넘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남들 앞에서 뭔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바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금융전문강사 강습을 받고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신경써보지 않았던 것을 배웠어요. 윷놀이로 5분 스피치를 했더니 잘했대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 뒤 심화과정 있다고 해서 들었는데 이번에는 15분 스피치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윷놀이가 주제였다. 반응이 또 좋았다. “15분 스피치 마치고 나서 며칠 후에 노사발전재단 강원센터에서 2시간 강의를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2017년 1월에 퇴직했는데 그해 8월 윷놀이로 첫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짧은 기간에 강사로 서게 됐습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제가 강사로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윷판에 우리 역사와 삶을 담다 처음에는 어떻게 두 시간 동안 강의할까 걱정했는데 나중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말을 놓는 윷판에는 29개의 밭이 있습니다. 꺾어지는 곳은 모퉁이 밭이라고 해요. 윷판은 하늘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북두칠성이기도 하고, 땅위의 밭이기도 합니다. 윷판을 골똘히 보면서 그 안에 스토리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인터넷 검색으로 동서남북을 잡아 배치해서 윷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근대사와도 접목했는데 그게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였어요. 그분들 일대기의 키워드를 윷판에 담았어요.” 윷판은 세상의 이치와 역사, 지도, 절기를 적절히 담아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였다. “첫 강의에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강의를 하니까 두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습니다. 스토리를 담은 윷판을 제작해 윷놀이 세트로 17개나 출시했죠.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데 교육기관에서 관심을 가지고 구매하시더라고요. 오늘도 주문받아서 납품해야 해요. 기자님 가시면요.(웃음)” 윷놀이연구소의 든든한 조력자는 바로 노사발전재단에서 함께 금융전문강사 과정을 들었던 동기들이라고 했다. 과정을 모두 이수한 13명 중 10명이 윷놀이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와 같이 의견을 나눈다고 했다. “노인대학처럼 인원이 많은 곳에 가면 200에서 300명 정도 되니까 혼자 가서는 감당을 못해요. 연구원 분들이 같이 가서 윷놀이 심판도 하고, 진행도 하십니다.” 물론 강사비가 발생하면 함께 나눈다. 앞으로 윷놀이 관련 강사 자격증도 만들 생각이다. “SNS에 윷놀이 전문 강사라고 띄워놓았는데 딴지거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 보니 제가 1호가 맞나봐요.(웃음) 인터넷을 쭉 훑어봤는데 예전에도 윷놀이가 너무 좋은 전통놀이니까 판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분이 좀 있었나봐요.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니 중도에 그만두셨더라고요.” 윷놀이판을 벌여놓았으니 할 일이 많기도 많다. 우리 전통놀이라고는 하지만 윷놀이에 관련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다. “구한말이던 1895년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 교수가 한국, 중국, 일본의 놀이를 정리해서 쓴 ‘한국의 놀이(Korean Game)’에 보면 ‘한국의 윷놀이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아직까지도 이를 반박하는 논문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윷놀이가 인도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인도에도 윷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동물 뼈로도 많이 하고요. 윷놀이는 원래 조개로 했는데 고동으로도 할 수 있어요. 제대로만 정리하면 윷으로 대단한 발견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윷을 제대로 만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하는 조광휘 소장. “몰라요. 윷에 미쳤습니다. 하루가 정말 즐겁게 갑니다. 일단 윷놀이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옛날에도 우리와 함께했고 먼 미래에도 남아 있을 거예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합니다. 며칠 전에 윷 문화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민속박물관에 갔다가 천문도에 대해 강연하는 80대 강사를 봤습니다. 솔직히 내용보다도 나이 들어서 강의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나도 저렇게 가야겠다. 그때 딱 영감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것을 안 본다. 윷놀이만 보자. 은퇴하고 오십 훌쩍 넘어 발견한 제 인생 최고의 아이템이 바로 윷입니다.”
- 2019-09-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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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성 난청 환자를 위한 대화 요령은?
- 9월 9일 '귀의 날'을 맞아, 중장년이 겪을 수 있는 노인성 난청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강우석 교수의 도움말을 담아봤다. 노인성 난청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발생하는 청력 손실이다. 60세 이상 3명 중 1명이 이러한 증상을 겪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75세 이상은 40~50%). 노화로 청력이 감소하면 일상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당혹스러워하거나,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시 경고음 등을 듣지 못해 위험에 노출될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노인성 난청과 연관된 청력손실은 보통 고음역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가령 근처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전화벨 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진다. 반면 길거리에서 트럭이 울리면서 지나가는 등의 저음역 소리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노인성 난청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웅엉거리거나 얼버무리는 것 같다. △말의 받침음인 자음소리를 떨어진 곳에서 듣고 말하기 힘들다. △대화를 알아듣기 힘들어지며, 주변에 소음이 있을 때 그렇다. △음정이 높은 여자 목소리보다 남자 목소리가 알아듣기 편하다. △특정한 소리가 불쾌감을 일으키고 지나치게 시끄럽게 들린다. △이명(귀에서 울리는 소리, 우르릉거리는 소리, 쉿쉿하는 소리 등)이 생길 수 있다. 주로 유모세포(내이의 감각수용체)의 손실, 노화, 건강상태, 약물복용 등에 의해 나타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귀로의 혈류공급에 변화가 생겨서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심장병, 고혈압, 당뇨에 기인하는 혈관 상태, 또는 기타 순환기계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청력 손실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의 감염, 심장 상태나 중풍, 머리 부상, 종양이나 약품들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노인성 난청 환자를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일부 환자에게 보청기가 추천된다. 보조적인 청각기구들은 몇몇 상황에서 듣는 능력을 더 향상시킨다. 특히 구화(시각적 단서를 이용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는 것)를 연습하면 대화 시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노인성 난청 환자를 위한 대화 요령 ➊ 친구와 가족들에게 본인의 난청에 대해 이야기하자. 본인이 듣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상대방이 도움을 줄 수 있다. ➋ 친구와 가족들에게 말할 때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할 것을 요구하자. 대화 중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본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➌ 더 크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요구하자. ➍ 평상시의 빠르기로 이야기하고 음성을 과장하지 않도록 부탁하자. ➎ 음식을 씹고 있는 중이나 손으로 입을 가리는 상황에서는 대화를 피하자. ➏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면 말을 더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다시 이야기하자. ➐ 필요하지 않다면 되도록 TV나 라디오는 끄고 대화하자. ➑ 청력을 방해하는 잡음들을 인식해야 한다. 식당에서는 주방이나 스피커 근처에 자리를 잡지 않도록 하자. 배경 소음은 듣기를 더 어렵게 한다.
- 2019-09-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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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난다
- 내 인생의 전환점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내 나이 50세 되던 해의 일이다. 그때까지 사내 회의 자료나 외부 강의용 PPT 자료는 직원들이 다 만들어줬다. 문서를 만들거나 심지어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직원들이 대신 해줬다. 프리핸드로 건축 기본 스케치를 해서 넘겨주면 직원들이 캐드로 말끔하게 도면을 그려냈다. 사실 건축 기본 콘셉트를 구상하고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초기 단계에서 삼각자를 이용하거나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면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전개에 방해가 된다. 그런 습관 때문에 나는 컴퓨터와 오래도록 친하지 못했다. 그날도 외부 강의를 준비하면서 여느 때처럼 디자인 부서 여직원에게 강의 교안을 부탁했다. ‘아름다움의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한 강의 슬라이드에 오드리 헵번 사진을 넣고 싶었다. 머리에 보자기를 멋지게 둘러쓴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 강의 자료에 넣어 달라고 했더니 “사진을 캡처해서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간단할 텐데요!”라며 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이메일도 주고받지 못하는데 캡처는 또 뭔 말인지. 여직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후 나는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듯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 책상에서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커먼 컴퓨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홀로 서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컴맹 탈출이었다. 내 아이들을 가르쳤던 컴퓨터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 기초부터 배우기로 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먼저 말했다. 한글 문서를 만들고 싶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싶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싶고, 강의용 PPT 자료를 만들고 싶고, 원하는 사진을 자유롭게 캡처해서 편집하고 싶고, 포토샵과 엑셀도 어느 정도 하고 싶다며 꽤 많은 걸 요구했다. 그리고 몇 개월 개인지도를 받았고 놀랍게도 이 모든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내친김에 실행 가능한 목표를 매년 한 가지씩 정하고 퇴직 목표 나이 60세까지 10년 동안 10가지를 이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전문강사자격 과정을 수료했다. 머지않아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러시와 함께 평생학습에 대한 수요가 많을 것이니 그때 필요할 전문 강사의 기본 소양 등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강사자격 과정에 참여하기 전에 컴퓨터의 기본을 배워둔 것이 주효해 이 과정을 수석으로 마쳤다. 원고를 쓰고 사진을 편집하면서 컴퓨터 사용 능력도 한층 향상되었다. ‘무지개 공감’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나는 ‘나의 건축인생 이야기’를 썼다. ‘시니어 비즈니스 스쿨’은 실버산업 분야의 교수, 요양원 등의 시설 운영자, 실버용품개발 디자이너가 함께 저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시니어의 주거 문제를 다뤘다. 책을 같이 내니 출판비용 부담도 줄었고 멤버들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블로그에 틈틈이 글을 올리면서 신문이나 문예지에서 공모전을 하면 응모했다. 금융위기와 관련한 수기를 모은 책 ‘희망편지’와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을 모아 펴낸 책 ‘내가 만난 추기경’은 그때 채택된 작품들이다. 블로그를 운영한 지 10년이 지난 2017년, 저장해놓은 포스트를 보니 1700개가 넘었다. 10년 동안 이틀에 한 편꼴로 포스팅을 한 셈이다. 그렇게 모아둔 글 몇 편을 다듬어 계간 ‘문학의 강’ 수필 부문에 응모를 해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수필가 등단도 이뤄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상담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심리학 공부도 시작했다. 시동을 건 김에 심리상담사, 미술심리상담사, 노인상담사, 자살예방지도사, 결혼상담사, 이혼상담사 자격증까지 땄다. 상담사 공부는 내 문제와 직면하게 해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반대로 미대에 가지 못했다. 그 한이 수십 년 동안 맺혀 있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석고 데생부터 시작해 기초를 배웠다. 늘 도전해보고 싶었던 목조각도 배웠다. 기타 치는 시니어를 꿈꾸며 중고등학생들이 다니는 기타 학원도 다녔다. 그렇게 10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59세가 되던 해인 2017년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30대 초반에 건축사를 취득해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도제생활까지 합하면 35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당시에는 건설 경기가 호황이어서 30대를 화려하게 보냈다. 그러나 날벼락 같았던 IMF로 40대가 저당잡혔고 그 뒤 10년은 빚 청산하는 데 바쳤다. 그래도 2007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 부서 여직원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현역을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미련 없이 자유인이 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1년 동안은 상당히 불안했다. IMF 때 겪었던 공황장애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10년을 준비했는데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은 사람들과의 교류였다. 그 판단은 옳았다. 만남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관계를 확장시켜줬다. 놀라운 사실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들이 실타래 풀려나가듯 하나씩 해결되었다. 지금은 현역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다. 준비해둔 대로 여러 기관에서 시니어 대상으로 주거 관련 강의를 한다. 우리의 주거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풀이한 글을 모아 ‘모두의 집’도 출간했다. 몇 군데 언론사와 기관에 글도 기고하고 있다. 답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듣기 봉사’도 한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나를 찾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다녀야 하니 현역일 때보다 더 바쁘다. 언제까지 왕성하게 활동할지 알 수 없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살아가야 할 미래가 가끔은 두렵다. 그러나 지나온 날들처럼 미래에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안전망이 되어줄 것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난다.
- 2019-08-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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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한 노후를 위해 생활연극에 발 들였습니다
- 예술계에서 정중헌(74)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은 현재까지도 대기자(大記者)로 불린다. 지금도 꾸준히 기사를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미술, 방송 분야 전문기자로 언론계와 문화계에 깊숙이 몸담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다가 60세되던 해인 2006년에 퇴사를 하고, 2007년에 서울예대 부총장으로 지냈습니다. 그때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공연예술합동과정에 지원했습니다. 시간을 쪼개어 쓰며 ‘1970년대 한국 영화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힘겹게(?) 받았지요. 2013년에는 부총장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인생에서 두 번째 은퇴를 했습니다. ” 66세 현역 은퇴. 자신의 노후만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은퇴하고 얼마 후 대학로의 한 극단과 함께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연극 축제입니다. 그때 경험이 한국생활연극협회를 만드는 큰 계기가 됐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토론하다 보니 생활문화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그리고 생활문화란 생활인이 전문가처럼 할 수는 없어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라고 개념을 세웠다. 마침 생활연극과 관련해 인터넷을 찾으면서 공부하다보니 2014년에 이미 지역문화 진흥법이 발효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활문화’란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라고 2조 2항에 명시돼 있었다.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 함께 다녀왔던 극단과 합심해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서 연극계에 입성했다. 한국생활연극협회를 만들고 쉼 없이 공연하고 시니어들을 위한 축제를 기획해온 정중헌 이사장은 큰 소망이 하나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생활연극인이 참여하는 ‘대한민국생활연극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문 연극인들의 제일 큰 행사인 ‘대한민국연극제’처럼요. 서울연극협회가 주관하는 ‘서울시민연극제’가 있기는 합니다. 저는 연극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인접 예술도 같이하는 놀이 형식의 축제를 했으면 합니다. 작게라도 1회 행사를 할까도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힘겹게 생활연극협회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알려왔으니 ‘대한민국생활연극제’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싶어요. 그런데 전국 규모의 문화 축제를 작은 단체가 여는 것은 무리입니다. 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시니어의 멋진 인생을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 2019-08-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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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연령,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법일까
- 은퇴한 시니어들의 화두는 뭐라해도 ‘일’이다. 300만 원 이상의 연금 수급자들도 돈을 떠나 ‘일’하고 싶어 한다. 재취업, 인생 2모작 등 현역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시니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니어들 사이에서는 노후 불안과 함께 65세 정년연장에 대한 얘기들이 뜨겁게 오가고 있다. 일하는 시니어가 많은 상황에서, 현재의 정년이 60세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는 일은 일견 단순해 보여도 쉬이 풀기 힘든 무수한 문제들이 따른다. 대체 정년연장으로 어떤 변화들이 발생할 것인지 짚어봤다. 정년연장 논의 가속화에 팔 걷어붙인 정부 정년은 누구에게나 오게 된다. 현재 시니어의 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소위 ‘불이 붙은’ 이슈는 바로 ‘정년연장’일 것이다. 기존의 60세를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정년연장 화두는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본격적인 포문이 열렸다. 육체 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60세로 산정한 원심을 깨고 65세로 늘려야 한다며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어서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정년연장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에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정년연장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밝히고 6월 초에는 TV에 출연해 정부에서 현재 해당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음을 알리는 등 거듭해서 정년연장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6월 말에 발표된 60세 이상 고령자의 재고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정부 시책은 이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정년 60세,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나라의 고령자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남성은 72세, 여성은 72.2세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2016년 기준이기에 2019년인 현재에는 더 높아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OECD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이대다. 그런데 한국고용정보원 추산에 따르면,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은 49.1세에 불과하다. 이는 첫 퇴직을 하는 평균 나이가 49.1세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완전히 일에서 물러나는 72세까지 22년이라는 긴 시간을 재취업 혹은 계약직, 자영업의 세계에서 일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다 지난 5월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2%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60세 정년이라는 현재의 기준은 은퇴 시점을 앞당기는 주요한 원인이면서 현실성 없는 기준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실에 맞게 정년도 5년 늘려서 65세로 간단하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간단한 해법 뒤에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역학 작용들로 인한 갈등들이 시한폭탄처럼 숨겨져 있다. 올해 769만 명으로 집계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0년 813만 명, 2024년 995만 명 등으로 늘어 2025년이면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청년 일자리와의 상충 100세 시대라는 명칭에 맞게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막대한 수의 베이비부머가 매년 80만 명이 은퇴하기 시작하는 근간에, 60세 정년이라는 기준은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보다 현실적인 나이인 65세로 올리는 일의 발목을 잡는 문제는 바로 청년실업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국내외의 문제들이 중첩되어 경제 침체와 함께 높은 청년실업률이 이어지며 사회적 갈등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정년연장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일자리를 시니어들이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다. 정년연장의 실현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 등 소위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일자리’이며 수년간의 고시 공부를 해서라도 들어가려는 곳이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나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OECD는 일찍이 1990년대에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조기퇴직의 활성화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세대 간 비교우위에 따른 고용분리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 전쟁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채택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양 세대 고용을 늘리는 정책 방향을 권고하고 있다. 이제 정부 입장을 보자. 현행 60세 정년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예산 정책을 위협하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행 60세 정년 기준은 대부분의 복지 우대 대상 나이를 65세로 묶어두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즉 60세 정년을 유지하면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의 기준 연령을 낮추게 돼서 대상자 수가 늘어나게 되고 복지 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복지혜택을 받지 않아도 되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시니어가 늘어나는 현재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겹치면 복지 지출의 단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년연장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정년연장 정책은 연령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얽혀 있는 문제들이 서로의 급소를 죄고 있는 듯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 다음은 기업의 입장을 살펴보자. 국내 기업들 다수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 체계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이 이뤄지면, 65세까지 늘어난 시간에 따라 연공급에 맞추는 기업의 인건비 지출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60~65세 인구 내에서 정년연장을 보장받으며 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의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무조건적인 정년연장이 임금 지출 상승 및 전체 국민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반발부터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정년연장과 함께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60세 이상 직장인의 업무량을 점차적으로 줄여 65세에 은퇴 준비를 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절감과 함께 청년층의 고용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임금피크제가 정착되기 위해선 시니어 당사자들 전반의 이해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관련된 갈등들이 이곳저곳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도 함께 검토해봐야 정년연장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국민연금이다. 현행 60세 정년을 계속 유지하면 소위 ‘소득 크레바스’라고 불리는 소득 단절시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기존 6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시점이 2013년부터 5년마다 한 살씩 상향조정돼 2033년에는 65세로 늘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 60세 정년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33년에는 최대 5년 동안 국민연금을 받지 못해 금전적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인구가 상당수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65세로 정년연장을 할 경우 국민연금 차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지금까지 본 사례들처럼,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일을 하면서도 연금을 받는 사람들로 인해 소득격차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연금공단 입장에서도 연금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성격의 지출이 발생함으로써 재정 부담과 함께 제도의 본질이 훼손되는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물론 2033년이 되면 65세로 수급 시점이 올라가니 65세 정년과 맞춰지겠지만, 그때까지 10여 년가량은 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정년연장은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도 검토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선진국들의 대처 정년연장 문제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제도가 갖춰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동인구 감소를 겪는 선진국의 사회 변화 추이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은 1980년대에 이미 정년 개념을 없앴다.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나이에 따라 차별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은 이보다 늦은 2011년에 대부분의 직업에서 정년제를 없앴다. 단 영국은 고령자가 직무 역량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적인 일자리들에서는 아직 정년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65세 정년을 적용하고 있는데 곧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대표적 장수 국가인 일본은 70세까지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정년연장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순서로 보고 발생할 문제를 해소하는 쪽에 집중해 대처하고 있다. 불가피한 득과 실,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지금까지 열거된 것들만으로도 정년연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개인과 국가, 기관, 조직의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정년연장의 적용이 이뤄지면 각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잃고 얻는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결과를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로써 정년연장 이슈를 공론화해, 철저히 사회통합적인 가치 기준에서 조정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 2019-08-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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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볶고 사랑을 담아 배달합니다” 반찬배달 서비스 ‘야미야미’ 조리장 이재경 씨
- “언니, 거기에 간장 좀 더 넣어야겠다.” “언니, 일단 양파 먼저 넣고 볶아.” ‘동생’의 지시에 ‘언니’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다른 주방의 모습과는 뭔가 달라 보인다. 주방 경력이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지만 중심에 선 조리장의 한마디 지시에 모두 집중한다. 만들어내는 것은 간단한 반찬이지만, 이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주방에 서 있다. 서대문시니어클럽 반찬배달 서비스 ‘야미야미’의 조리장 이재경(李載敬·63) 씨는 “만들수록 신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야미야미’는 서대문구 노인일자리 지원기관인 서대문시니어클럽이 지난해 10월 서울시의 ‘어르신 일자리 시범사업’에 응모해 선정된 ‘신규 시장형 일자리 사업’이다. 쉽게 설명하면 중장년이 중심이 되어 반찬을 만들고 배달하는 서비스다. 서울시의 예산이 사업 시작을 위한 마중물이 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매출은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를 유지, 확대하는 데 사용된다. 서대문시니어클럽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은 ‘야미야미’ 외에도 또 있다. 이동식스팀세차 서비스인 ‘취익취익’과 시니어빨래방 ‘뽀송뽀송’이다. 모두 집 앞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야미야미’의 반찬 판매는 올해 1월부터 시작됐는데 반응이 좋다. ‘서대문시니어클럽’의 카카오플러스친구를 통해 한 달 단위로 주문을 받고 있으며, 주문하는 가정이 200곳 가까이 돼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정도. 판매 가격은 반찬 두 가지가 들어간 한 세트가 5000원이다. 일반인 대상 판매뿐만 아니라 지역 민관 복지협력 조직 등의 기금을 받아 저소득 어르신이나 장애인 가정에도 반찬을 전달하고 있다. 이 반찬들은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 내에 꾸며진 조리실에서 만드는데, 조리장 이재경 씨와 5명씩 교대로 출근하는 조리원 11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몰래 양념 넣는 언니들 고집에 당황 좋은 뜻으로 신나게 시작한 일. 출발도 기분 좋았을 것 같은데, 이 조리장은 의외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한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그냥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 차례 했어요. 모두 주부라서 주방 경력은 많지만 식당 경험은 없다 보니 서툰 부분이 많았어요. 맛만큼이나 눈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한데 재료를 다듬는 방식이나 크기가 다들 제각각이어서 힘들었죠. 다들 본인 방식대로 조리를 하려는 고집도 강했고요. 심지어는 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몰래 양념을 넣는 일도 있었어요.(웃음) 처음 6개월 정도는 소리를 하도 질러서 목이 늘 쉬어 있었죠.” 게다가 현재 근무자 중 이 씨의 나이가 가장 어리다. 초창기에 겪었을 어려움이 짐작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절 인정해주고 믿어줘서 업무의 틀이 잡혀나가고 있어요. 서로 많이 친해졌고 제 요청대로 잘 따라줘요. 언니들도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며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이 씨가 조리장으로 선발된 것은 요리 경력 때문. 백화점 일식당에서 상자형 일식 도시락에 들어가는 한식 반찬 만드는 일을 10년 넘게 한 것이 참작되었다. “원래 요리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안 했죠. 어릴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집안 대소사에 필요한 음식을 도맡아 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어요. 집들이 때 남편 직장 동료를 대접하거나 지인들을 초대하는 정도였죠. 음식 장사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리를 좋아하면서도 젊을 때는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2000년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엔 심심풀이 삼아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는데, 한 번에 덜컥 합격하면서 제대로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후 입사한 식당에서 강산이 한 번 바뀔 세월만큼 일했다. 요리를 즐기는 성격이 빛을 발한 셈이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그만두었을 때 이제 다시는 식당하고의 인연은 없을 줄 알았어요. 60세까지만 일을 하자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다 보니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여가를 즐기기 위해 여행도 다니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즐겁지 않았어요. 결국 누워서 TV만 보게 되고, 점점 무기력해지더군요. 어느 날 박차고 일어나 집을 나섰는데 그때 알게 된 곳이 서대문시니어클럽이었어요. 말 그대로 죽지 않으려고 나왔죠.(웃음) 지금은 ‘야미야미’에서의 생활이 삶의 윤활유가 됐어요. 업무도 자리 잡히고 주변 평도 좋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죠.” 이 씨를 포함한 이들이 받는 시급은 서울시 생활 임금을 기준으로 한 1만148원이다. 예전 식당에서 일할 때 임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 씨는 설명한다. ‘노후의 일’ 나를 위해서 필요해 “매일 반찬 두 가지가 들어가는 작은 상자를 300개씩 만들어요. 조리하는 반찬은 모두 6가지이고요. 12시에 출근해서 배송 나가시는 분들이 오는 4시까지 다 만들어내려면 쉴 틈이 없어요. 월요일에 해야 할 일 생각에 일요일 밤에는 잠을 설치곤 했죠. 재료는 빠짐없이 준비했는지, 조리 순서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구상이 끝나야 안심이 되니까요.” 메뉴는 서대문시니어클럽 사회복지사가 정하면 이 씨의 의견을 더해 조정하는 방식이다. 고객 중 상당수가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이 인기가 높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찬은 배송원들이 차량이나 오토바이, 도보 등의 방식으로 가정에 배달한다. “가끔 함께 일하시는 분들을 통해 맛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거나 레시피를 알고 싶어 할 때 가장 즐거워요. 집에서 혼자 음식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잖아요. 특히 일하는 여성들은 더욱 그렇고. 야미야미가 그런 분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 씨는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서만 있겠다는 중장년의 생각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움직여야 살아요. 활동량이 있어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야미야미’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예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야미야미 사업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도 밝혔다. 사업이 커지면 중장년이 일할 기회도 그만큼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신명이 나네요. 제가 만든 반찬에 흡족해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도 도울 수 있으니까요. 야미야미는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이지만 열심히 하면 2호점, 3호점도 탄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야미야미가 늘어난다면 중장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자리도 더 생겨날 테고요.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 2019-08-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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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노인’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가 말하는 노후의 삶
-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 책 ‘탈출노인(脱出老人)’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처해있는 상황 등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이 책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필리핀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일본의 노인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는 논픽션 작가로 태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삶을 주로 다뤄왔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돼 후지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제일교포 영화인으로 잘 알려진 최영일 감독이 참여했다.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은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60세에서 65세 사이의 직장이 없는 평범한 은퇴자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이외의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라고 발표한 것. 연금에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령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해외로 이주한 일본의 노인들을 다룬 책 ‘탈출노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높은 생활비로 악명높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낮은 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탈출구로 해외 생활을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고령자의 해외이주 "만만치 않아" 이 책의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필리핀으로 이주한 고령자의 삶을 통해 바라본 행복론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제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유행한 필리핀 술집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주를 선택했던 것은 따뜻한 기후와 낮은 물가로 대변되는 살기 좋은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만족해하고 있었죠. 그리고 일본의 북쪽 지방에서 추위를 피해 오거나 치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죠.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을 걱정해 이주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일본 남성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급격히 꺼지면서 일본인의 해외여행 역시 함께 감소했고, 동시에 해외여행을 대체하는, 필리핀 여성을 고용한 ‘필리핀 술집(フィリピンパブ)’이 전국적으로 성행하게 된다. 이 유행이 가장 왕성했던 2004년에는 공연 등의 목적으로 입국을 허가하는 흥행(興行) 비자로 일본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이 8만 명에 달했다. 이런 술집은 젊은 여성이 부족한 지방에서도 성행했고, 자연스레 수많은 국제결혼으로 이어졌다. 연금에 의존한 생활, 희망 줄어 그렇다면 필리핀은 일본인에게 이상적인 노후 주거지였을까? 그는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일부는 저렴한 가격으로 매일 골프를 즐기고, 친구들과 느긋하게 술을 마시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언어에 대한 장벽과 문화적인 격차, 생활시설의 부족 등을 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죠.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로 인한 문제, 생활비 부족 등도 그들이 힘들어하는 주요 문제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본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필리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해외이주만이 노후 생활의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책을 쓴 목적도 해외의 삶을 권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고령화 사회입니다. 일부는 연금만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죠. 특히 일본 정부의 ‘2000만 엔 노후 자금 필요’ 발표 이후에 이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해외이주 역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후에 중요한 것은 '가족'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노후를 위한 이상적인 삶의 터전은 무엇일까? 그는 중요한 요소로 ‘가족’을 꼽았다. “대부분 노후 준비의 요소로 돈을 꼽을 텐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죠. 가족 간의 유대가 긴밀하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죠. 고령화된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의 유대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고령자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만약 가족과 함께였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노인을 위한 생활시설이나 요양시설의 문제점 중 하나도 그들이 느끼는 쓸쓸함을 어쩌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결국, 노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입니다.”
- 2019-07-3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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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에도 일자리 가져야 한다
-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해서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단어 ‘소쏠행’을 더 좋아한다.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세상인 데다 ‘소소하지만 쏠쏠한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이들은 물론 은퇴를 앞둔 이들도 이 같은 소쏠행을 미리부터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연금 300만 원을 받고 있는 공무원 출신 은퇴자는 동네 초등학교 보안관(학교지킴이)으로 근무한다. 주로 밤에 학교를 지키면서 월 100만 원 남짓 받는다. 6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손녀가 다니는 학교를 지킨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다. 게다가 그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 보안관이라고 친구들에게 으스대기까지 한다는 이야기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단다. 말 그대로 소쏠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문상을 가면 고인의 연세가 대부분 80대 중후반이고 90대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최빈사망연령, 즉 한 해 사망자 중 가장 빈도가 많은 나이가 1999년 82세에서 2017년 88세로 높아졌다. 최빈사망연령이 90세쯤 되면 주변에 100세 안팎의 어르신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서 ‘100세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989년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상향조정한 이후 30년 만에 다시 5년을 연장한 것이다.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이란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나이’로 사고 등으로 사망하거나 영구적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잣대다. 대법원은 가동연한을 상향조정한 이유로 사회경제 구조 및 생활여건의 급속한 향상과 발전을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기대수명의 연장과 높은 실질은퇴연령,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 상향, 국민소득 증가 등을 제시했다. 기대수명은 1989년 남자 67세, 여자 75.3세에서 2017년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10년 이상씩 높아졌다. 주된 직장을 물러난 다음에도 소득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있는 나이를 따지는 실질은퇴연령(effective retirement age)에서 우리나라는 남자 72세, 여자 72.2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여기에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올라가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도 1989년 6516달러에서 2017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오래 사는 것은 물론 실제로도 일자리 현장을 떠나지 않는 등 여러 정황으로 판단컨대 가동연한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쏠행’ 일에서 찾자 몇 년 전 은퇴 3년 차인 선배가 필자를 찾아왔다. 은퇴연구소장이니 고민을 좀 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은퇴한 후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취미와 스포츠를 마음껏 해보겠다고 2년여를 보내고 나니 갑자기 허망해지면서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은퇴 후 먹고살기가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아직은 젊은데 뭔가 작아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은퇴자가 한둘이 아니다. 60세가 정년이라지만 주된 직장을 그만두는 나이는 55세 전후로 더 빠르다. 그렇다면 은퇴 후 100세가 되려면 40~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90세, 100세 된 이들이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그 많은 세월을 허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OECD에서 나온 한 보고서의 제목은 ‘길어진 수명, 길어진 은퇴(Longer life, longer retirement)’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기간도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은퇴 후 그 긴 시간을 하릴없이 놀 수만은 없는 일이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는 지나간 유행가 가사일 뿐이다. 좀 더 일해도 충분히 건강하게 잘 놀다 갈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휴대폰을 여러 차례 돌렸다. 구청 민원센터와 CCTV 관제실, 공항 택시 단속반, 버스와 택시 위법행위 단속반, 산림보호원 등 청장년들의 일자리와 부딪치지 않는 일자리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은퇴한 친구들이었다. 급여 수준이 월 30여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대까지라고 서슴없이 말해준다. 너무 자세하게 말하면 우리 일자리의 경쟁률이 높아져서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이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소소해 보여도 내가 발로 뛰어서 얻는 행복이 쏠쏠하면 바로 소쏠행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가 물어다주는 행복은 없다. 소득을 얻는 일에 얽매이기 싫다면 자원봉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소쏠행은 마음에 달려 있지 소득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긍정이 긍정 에너지를 만드는 선순환 고리를 소소한 일자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쏠쏠하면서도 큰 행복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소쏠행의 문을 찾아 두드리자. 슬기로운 은퇴 생활을 시작하자.
- 2019-07-26 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