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8일 난 평생 잊을 수 없다. 이유는 40년간 몸담아 온 직장을 하루 아침에 쫓겨나다시피 잃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교육계에 퍼진 정년 단축이 내게 먼저 닥친 것이다. 그렇다고 난 미리 준비한 계획은 전연 없었다. 만 61살 일손을 놓기에는 빠른 나이다. 당장 내일부터 할일이 없다. 가진 기능이나 특기도 없고 남과 같이 기운이 세거나 막노동을 할 정도의 힘도 없다. 또 바둑이나 장기, 화투 등 오락도 취미도 없고 내놀만한 운동기능도 전연 없다. 오직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샛님같은 아주 여린 봄꽃같은 난 모든 일에 쓸모가 없었다.
퇴직 후 생활은 기상하여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전철을 타고 종점에 도착해 값싼 점심과 목욕이 전부며 할 일이 없이 멍하니 약장사 구경만 종일토록 관람하며 흘러간 유행가에 젖어 마실 줄 모르는 막걸리 한 두잔에 취하거나 해져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길 몇달째 참다참다 폭발한 아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살바에는 다 죽자고” 짜증을 낸다. 이러길 수차례 어느날 울분과 흥분을 참지 못한채 길거리를 방황하는 난 가슴이 답답하여 길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지나가는 고등학생의 신고로 119가 몇분만에 도착하여 난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평생 처음타본 응급 앰뷸런스에 계속 말을 시키는 간호원 구급대원의 봉사에 처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수분 후에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기본 검사와 링겔 등 응급처치를 받고 병실 구석 후미진 코너 침대에 눕혀졌다. 사방을 살펴보니 별별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방 목숨을 거둘 것 같은 나이든 할머니, 뼈만 앙상하여 마치 해골같은 머리가 흰 할아버지, 한쪽 발이 없는 중년의 남자, 울다지쳐 버린 갖난애, 거기다가 지독한 소독약 냄새. 어느것 하나 빠짐없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온전한 것이 없었다. 아비규환 속 분위기에 젖기도 전에 난 담당 간호원에게 이제 멀쩡하니 퇴원하겠다고 말하니 반기는 기색을 하며 뒤늦게 찾아온 아내가 퇴원 수속을 해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 시원한 내방에 누워 명상에 잠겼다. 병원에서 본 환자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내 나이 61세, 방황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기는 너무 젊은 나이임을 실감했다. 뭔가 해봐야하고 한번 죽이되든 밥이되든 시도해 보고 후회해도 늦지않을 것 같아, 난 큰 결심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벼룩시장’, ‘교차로’ 등 길가에 비치된 정보지를 봤다. 내게 맞는 일감은 없었다. 4호선 전철을 타고 오늘은 머리도 식힐 겸 친구와 만나 울분을 풀 셈으로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친구와 어울려 동물원을 걷는데 눈에 뜨인 광고판에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동물해설사’ 양성기사가 확 눈에 들어왔다. 난 친구에게 컨디션이 안좋아 먼저 간다는 핑계로 일찍 돌아와 동물원에 확인 전화를 했다.
나는 동물해설사이자 한 마리의 영리한 원숭이
“여보셔요. 거기 서울동물원 기획과죠. 동물해설사를 뽑는다는데, 나이 제한은 없나요?”
“어떤 서류를 갖추어야 하나요?”
난 급한 마음에 여러 가지 궁금한 문제를 애원하다시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다양한 서류를 갖추어 인터넷 접수를 했다. 다행히 서류전형엔 합격했다. 그뒤는 몇 주간 강습이었다. 강의 내용은 수많은 동물과 멸종위기의 동물 종보전, 자연생태계 복원, 인간의 탐욕으로 남획을 막고 인간과 공존하는 법 등 다양한 전문적인 교육이었다. 교육이 끝나면 필기시험과 면접 실연을 통해 실제 동물 앞에서 뭇관중이 보는 가운데 동물해설을 하며 최종선발을 거쳐 43명을 뽑는데 난 당당히 합격했다. 난 기뻐 날뛰면서 방안을 빙돌며 괴성을 질렀다. 아내가 놀라 날 쳐다보았다.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 같았다.
이렇게 환희의 순간을 만끽한채 동물원의 출근은 계속되었다. 동물원의 일과는 날 새로운 변신을 꾀하게 했다. 이유는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그날 체험학습을 올 아동 수 대로 당근, 배추잎(케일), 사료 등을 손질하는 것인데 당근은 하나하나 씻어 크기가 알맞게 자른 뒤 바구니에 준비하며 물기를 닦는 것이다. 그리고 코스별로 해설을 하며 체험교육을 시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최고의 광대처럼 재미있고 교육적인 산 교육이어야 인기가 있어 환영받는다. 즉 해설 방법 및 내용은 이러하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셔요. 저는 동물해설사 xxx입니다. 제 별명은 영리한 원숭이구요. 오늘은 여러분을 남미 페루에서 많이 사는 기니피그 먹이주기, 다음엔 말, 나귀 다른 점 관찰, 다음에 사막에 사는 미어캣은 무엇을 즐겨먹나요? 여러분이 만약 이 침에 쏘인다면 생명이 위험하지만 이 동물은 즐겨먹는 전갈을 맛있게 먹지요. 다음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토끼 먹이주기, 꼭 장갑을 끼고 먹이를 줘야해요 하며, 케일잎과 배추잎을 잡는 법을 알려주고 다음엔 원숭이, 그리고 염소, 양 등의 특징을 설명하고 먹이를 주면 돼요. 먹이를 던지거나 동물을 귀찮게 하면 안돼요.”
머리를 흔들며 재롱을 떨고 나이 많은 노인답지 않게 귀여운 표정, 손짓으로 윙크를 날리며 분위기를 잡고 해설이 끝나면 지도일지를 깨알만한 글씨로 가득 채운 뒤 일과를 반성하고 정리한 뒤 귀가하는 것인데 이 생활이 어찌나 즐거운지 나의 즐거운 변신은 대만족이며 거기다가 듬직한 해설사 월급을 받는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하듯이 건강챙기고 시간보내고 급료 받는 나이든 늙은이로는 최대한 대우며, 피복, 모자, 소지품, 간행물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 최고의 나날을 보낸다. 정말 교직에 버금가는 변신이다. 나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변신을 준비하고 실천했다.
실패의 나날에서 난 성공의 열쇠를 찾았다
-모형항공(글라이더, 고무동력 입상 및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동물원 해설이 없는 쉬는 날의 무료함을 달래고 내 취미생활 건강을 위해 고심하던 어느날 난 수원 제 10 전투비행단 블랙이글 축하비행과 공군참모총장배 스페이스 첼린져 모형항공기 대회를 참관했다. 아주 멋진 행사며 이 늙은 나이에도 나도 참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다. 내 자신도 할 것 같아서 서울과학사를 찾아가 모형항공기 셋트를 구입했다. 설명서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만들었다. 밤을 새우면서 거의 완벽하게 조립하여 인근학교 운동장에서 시험 비행을 해봤다. 처음 만든 모형비행기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날고 체공 시간은 1분대였다. 몇 번을 날려봐도 아주 잘 날라서 기분이 아주 좋았고 자신이 생겼다. 이렇게 몇 번을 연습했다.
그리고 예선대회 즉 경기, 인천 예선대회가 수원 제 10 전투비행단에서 있었는데 그 대회에 참가했다. 내 차례가 되어 공군 보조원이 50m 후방에서 글라이더를 날려 주는데 왠지 몹시 서툴러서 믿음이 가지 않아 몇 번을 뒤돌아 보면서 뛰는데 글라이더가 영 상승을 하지 않고 왼쪽으로 “휙” 곤두박질하며 앞날개가 활주로 바닥에 부딪쳐 두동강이로 갈라져 1차 비행은 0점이었다. 난 당황해서 날개 조각을 회수하고 2차 비행 순서만 기다리고 있는데 남은 한 대 글라이더도 날개가 튼튼하지 못해 날개 중앙에 금이 가있었다. 급히 강력 접착제를 바르고 순서를 기다렸다.
두 번째 마지막 시합에서는 옛학교 과학주임이 와서 보조역할로 글라이더를 뒤에서 잡아주어 사수, 조수, 보조가 맞아 멋지게 바람을 가르며 높은 창공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앞날개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망가진 채 공중에서 빠른 속력으로 활주로에 꼴아 박았다. 더 이상 기회도 없고 글라이더도 없어 퍽 아쉬웠지만 난 대강 비행기 잔해를 끈으로 묶어 보루지 박스에 쳐넣고 승용차편으로 귀가했다. 1년간 공들인 노력이 허사였고 그 공역과 재료비 등이 너무 아까워 눈엔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무참하게 실패한 나는 집에 돌아와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노트에 기록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실패의 원인분석
◎ 모형 항공기가 튼튼하지 못해 쉽게 부서졌다.
→ 다른 참가자들은 낚싯대 카본으로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 재료 문제
◎ 견인자(사수)와 보조자(조수)의 싸인이 전연 안 맞음
→ 혼자만의 힘으로는 글라이더를 띄울 수 없음. 보조자 대동해야 함. : 보조자 양성
◎ 바람의 강약에 맞는 견인 연구
→ 견인 기술 부족. 연습이 필요함.
또 실패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또 재료 및 여러 가지 계측장비 등을 준비해야 함을 알았다. 또 기록이 좋은 모형항공기는 스마트폰에 사진을 찍어 살펴봤다.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한국 최고의 장인에게 사사 받았다. 그러니까 한국 모형항공의 대부 격인 경복궁 옆 동학과학 심xx 사장의 50년 이상의 노하우를 하나씩 익혀가며 모형항공기 킷트 공장제품을 이용하지 않고 수제품을 하나씩 만들었다. 즉 앞날개, 동체 수평, 수직꼬리날개 종이는 외제를 사서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음해에 대한 준비를 하나씩 진행했다. 제작 기술도 늘고 요령이 생겨 견인방법도 바람의 세기를 큰 연을 만들어 날리면서 익혔고 이탈 및 체공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 두 번 다시 실패는 없다는 나의 각오는 연습으로 더욱 자신을 얻어갔다.
실패 후 1년이 지나 난 또 제 10 전투비행단 활주로에 시합을 위해 섰다. 조수는 우리집 차남이다. 평소에 같이 호흡하며 연습을 한 터라 손발이 “착착” 맞았다. 내 차례가 되어 계측하는 심사위원 대위의 신호가 떨어졌다. 난 무수히 연습을 한 터라 자신있게 센바람을 줄의 길이와 느슷함과 당김의 조화를 섞어 요리조리 걷다 뛰다하며 글라이더를 마치 살아있는 황새처럼 어루고 달래며 하늘 높이 띄우며, 그러니까 상승기류를 찾아 마치 강태공의 잉어낚시인양 뛰면서 글라이더 상태를 보며 살펴시 이탈시켰다. 많은 참가자와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며 “무한대∞”를 연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난 일반부에서 3분(1차), 2차 3분 도합 6분으로 1위, 금상을 받았다. 60이 훨씬 넘은 노인이 상을 받는다고 축하박수가 유난히 컸다. 이렇게 예선은 작년의 패배를 설욕하고 회심의 미소를 먹음은 채 기쁜 마음으로 본선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는 9월이라 시간적 여유도 있지만 난 마음을 다시 잡고 제작 및 견인을 더욱 열심히 했다. 글라이더는 완전히 터득했다.
새파란 멍이 온 몸에 퍼져 기력이 쇠약해도 고무동력기는 내려야 했다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본선, 공군참모총장대회, 고무동력기 이야기. 더 강하게 변신한 나의 모습
글라이더는 전국을 제패하고 몇 년간 노력 끝에 제 1인자로 자리메김 다. 이제는 고무동력부문이다. 처음부터 이 영역에는 값비싼 외국제품 및 부속으로 무장한 전국의 과학사의 문하생들이 주름잡고 있어 난공불락이었다. 거기다가 최신장비, 풍향풍속 계측기, 강력한 드릴로 신축성이 뛰어난 고무줄을 사용하는 그들을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끈기와 변신의 귀재인 나는 하나씩 착착 계획을 진행했다. 그러니까 외제 고무동력기의 설계도를 수소문 끝에 구입하여 하나하나씩 내 기술로 개조했다. 고무동력기 동체, 외제는 값비싼 두랄루민·티타늄 등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난 이점을 가벼운 플라스틱을 말아 가늘게 쪼갠 대나무 껍질을 이용하여 트러스 공법으로 동체를 만들었는데 단단함은 물론 가볍기가 기본동체의 1/3 무게도 안되었다. 대성공이었다. 또 프로펠라의 크기가 기성품은 작기에 대추나무로 세밀하게 깎았고 고무줄은 미제를 구입했다. 또 프로펠라를 돌려 고무줄을 감는데 조수가 꼭 있어야 하는 번거러움을 덜기위해 혼자서도 고무줄을 감을 수 있는 장치를 발명했다. 즉 강력드릴에 강철고리를 부착시킨 뒤 프로펠라 걸이를 세워있는 기둥이나 나무에 감고 프로펠라를 회전시켜 감는 방법인데 어른이 잡아주는 힘보다 서너배 많이 감고 아주 편했다. 이렇게 만전을 기한 나의 변신 기술은 공군참모총장배 본선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가슴쓰린 추억이었다. 그러니까 본선대회 1차 시기에서 연병장의 축구 꼴대에 고무줄 감기와 드릴을 이용해 두서너배 많이 감은 고무동력기를 날렸는데 연병장 주위 아주 높은 반절쯤 죽어가는 소나무에 걸려 프로펠라는 허공을 향해 “빙빙”돌면서 ‘퍼덕’ 거렸다. 급히 달려가 행사 보조위원에게 내려 줄 것을 이야기했다. 보조요원은 철제 사다리를 펴서 준비한 장대로 내리려고 애썼지만 고무동력기에 닿지 않고 위험하다는 핑계로 포기하라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난 보조원의 만류도 뿌리치고 사다리를 올라 소나무에 다람쥐처럼 올라가 장대에 갈쿠리를 달아서 힘껏 끌어당겼다.
하지만 고무줄이 가지에 감겨 풀리지 않아 한참만에 겨우 비행기를 내려서 떨어트리고 사다리가 걸쳐진 나무둥지를 디디는 순간 사다리가 넘어가 함께 떨어져 풀숲에 내동댕이쳐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회수한 비행기를 손보고 날개를 바로잡고 고무줄을 바꿔 꿰어 다시 드릴로 감아 마지막 2차시기에 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차시기 비행 체공 기록은 만점 3분 무한대였다.
내가 속한 조에서는 1등인데 다른 조의 기록이 궁금해서 각조의 기록을 조마다 쫓아 다니며 살펴봤다. 만점은 없는 것 같았다. 이윽고 전체 시합이 끝나고 시상식만 남았는데 난 기록이 좋아 늦게까지 대기했다. 몇 시간 뒤 시상식이 열렸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일반부는 마지막이었다. “일반부 고무동력 금상, xxx” 내 이름이 호명됐다. 별이 4개이신 공군참모총장님이 직접 금메달을 목에 걸어 주시며 빙그레 웃으시며 “노익장을 과시하니 보기 좋습니다”하시며 부상과 상장을 주셨다. 그리고 기념촬영. 난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전국을 제패한 벅찬 변신이었다.
영광뒤에 따른 무서운 변화에 난 몇 달을 고생하며 치료에 온 정신을 쏟았다
-고무동력기를 내릴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아픈 이야기 (낙상사고 후유증에 헤멤)
하지만 시상식이 끝나고 귀가하는 승용차 안에서 엉덩이와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엉치뼈 그 다음엔 허리, 다음엔 목 등 차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했다. 난 천안 휴게소에서 내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팬티를 내리고 아랫도리를 살펴봤다. 멍 비슷하게 푸르슴한 색이 하체에 내려앉았다. 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차를 타고 귀가했다. 금메달을 딴 기분이 가시지 않았기에 약간의 통증은 견딜만했다.
하루가 지났다. 통증은 온몸에 퍼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온몸을 살핀 뒤, 멍을 보고 주사와 처방전을 간호원에게 시키며 한달 가량 쉬면, 멍이 가실거니 걱정 말라며 진료를 마쳤다. 약국에서 복용약을 받아서 복용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온몸에 번진 시퍼런 멍, 거기다가 성기며 고환까지 자주빛 멍이 소변을 볼 때마다 공포가 더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난 아내 몰래 한방병원을 방문했다. 한의사가 내 온몸을 보는 순간 혀를 차며 “빨리 왔어야지요. 이지경이 될 때까지 참고 있어요. 피가 굳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데”하며 날 나무랬다. 그리고 온몸에 수없이 많은 침과 뜸을 뜨고 1시간 쯤 후엔 부항을 뜬다며 엉덩이 부분을 내리고 부항을 수십차례 색이 진한 부분마다 검붉은 피를 뽑았다. 참 신기하고 시원했다. 이러길 하루 건너 두달 치료 끝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난 처음으로 한의학에 경이를 표했다.
멍이 가시자 마자 나의 변신은 계속되었다. 각종 모형항공대회와 더 나아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여 대표자격을 땄다. 그러니까 모형항공의 귀재로 변신한 나는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는 경기도 과학연구원 위촉 강사로 뽑혀 모형항공 지도를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드론이 대세라 막이 내렸지만 퍽 아쉽다. 그렇지만 난 드론에 도전하기엔 너무 손놀림이 늦어 포기했다. 내가 할 일이 아니기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며 다져지는 나의 글쓰기 실력은 마침내 빛을 보았다
-백일장에 도전한 나의 이야기
나는 모형항공기 기능 섭렵을 끝내고 또 다른 변신을 꾀하던 어느 날 문득 백일장대회 현수막을 지나가던 길에서 눈여겨봤다. 또 변신의 기회를 잡으려고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다. 먼저 서울 ‘교보문고’를 방문해서 백일장 입상문집을 사서 탐독했다. 그리고 입상작품의 특징과 글의 짜임, 쓰는 요령을 습득 뒤 나도 백일장대회에 참가했다. 내 딴에는 정성껏 바른 글씨와 내용을 그럴싸하게 써서 제출했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상자 발표가 있는데 내 이름은 없고 정성을 쏟은 보람도 없이 낙방이었다. 영문을 몰랐다. 떨어진 이유를.
돌아오는 전철에서 난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반문해봤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그 뒤 계속 백일장대회에서 낙방을 연거푸 서너차례한 뒤 난 그 어떤 1% 부족한 내 자신을 찾았다. 그러니까 난 겉만 번지르한 실속 없고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감동이 없는 허황된 글을 쓴 것이다.
내 결점을 찾은 뒤 백일장 대회를 기다린 어느 날 대전 동구에서 ‘우암송시열’ 백일장이 있었다. KTX를 타고 원거리 대회를 참가했다. 전국에서 수많은 문사가 참여한 전통 있는 대회라 난 기가 팍 죽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글제가 발표됐다. 주제는 ‘어머니’였다. 난 어머니와 같이 산 50년을 눈물을 흘리면서 회상하는 글을 써내려갔다. 내 어머니는 70여리가 넘는 먼길을 걸어서 쌀을 머리에 이고 자취하는 전주의 언덕빼기 집까지 부식을 마련하여 난 배고픔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어려운 시절에. 그리고 내가 교사로 발령을 받아 전등불도 안 들어오는 산간 벽지 오지 학교에 부임했을 때 삼시세끼를 따뜻한 밥을 해주시며 허름한 관사에서 동고동락하시며 내 뒷배를 후원하셨는데 끝내는 영화를 못 누리신 채 돌아가셨는데 눈물겨운 사연을 하나하나씩 깨알같은 글씨로 써냈다.
그뒤 서너 시간 뒤에 입상자 명단이 벽에 붙고 호명이 되었다. “수필부 금상, xxx 나오셔요” 처음으로 받은 상 그것도 장원이었다. 돌아오는 KTX열차가 왜 그리 느린지 난 처음으로 느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영광은 서울 한강 ‘구상백일장’, 고양 ‘어르신 백일장’, 수원 ‘정조대왕승모백일장’, 평택 ‘사랑사랑백일장’ 등 무수한 영광을 안은 채 난 제 2의 변신을 계속했다. 늙은 나이에 그 기쁨은 날 흥분케 했고 생에 대한 그 어떤 자신이 생기는 나날이었다. 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변신을 꾀하고 싶어 도전을 계속했다.
젊은이와 경쟁에서 스피드를 요하는 시합은 무리인가
-KBS1 ‘우리말 겨루기’에서 변신은 요원한 길인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TV의 ‘우리말 겨루기’는 날 들뜨게 한다. 그러니까 방영되는 월요일에는 모든 약속과 내 생활은 비상이다. 몇 년째 노트와 동영상을 캠코더를 찍어보고 여기에 수반되는 문제집, 국어사전, 속담, 사자성어, 크로스워드 책. 필요한 서적은 모두 구입해서 보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도 모두 구입하여 보고 준비는 매일 밥 먹듯이 한다. 하지만 달인을 향한 내 꿈은 한 발자국도 진전이 없다. 석두일까? 자책도 해봤다. 치매증상이 있나? 치매 검사도 했지만 치매는 아니었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 인터넷에 뜨면 내 마음은 왠지 급해진다. 그러니까 예심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KBS홀에서 수많은 경쟁자와 한판 겨루기를 한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지필고사 20문제를 크로스워드, 십자말 칸을 인쇄한 용지와 대형 스크린을 비추면서 두 번 읽어주고 단 20분만에 답안지를 회수하여 30분쯤 채점이 완료되면 참가자의 10% 정도 합격자를 불러 2차 면접 및 실기 그리고 방송에 하자가 없고 유모어, 또는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재미있고 재치있는 참가자를 선별하는 테스트 과정이다. 난 예심에는 언제나 수월하게 통과하며 본방에 출연까지는 항상 무난하게 뽑힌다.
그 이유는 다 까닭이 있다. 40년간 교직에서 다져진 말솜씨, 동물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익힌 유모어, 평소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가곡 레파토리가 있다. 예전 유럽 현지 이탈리아에서 외국 여행객 이탈리아 가곡 부르기에서 상을 탄 저력이 있기에 말이다. 예심을 합격한 나는 마지막 단계 면접에서 뜻밖에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는 면접심사위원의 청에 망설이다 정색을 하며 무대에서 그 당시 뜨는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했다. 면접대기자와 심사위원 전원이 앵콜을 연호했다. 난 주저하지 않고 ‘슈벨트의 세레나데’를 더 열정적으로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들 “늙은이가 웬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르지”하며 혀를 찼다.
며칠 후 인터넷에 합격자의 이름이 떴다. xxx 상위에 랭크된 내 이름 석자. 본방송 출연을 연락받고 밤새워 깨알같은 국어사전 글자를 돋보기도 쓰지않고 보던 어느 날 더 이상 눈이 침침하고 흐려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했다. 보름 후엔 글씨가 똑똑하게 보였다. 그런 어느 날 ‘우리말 겨루기’ 녹화가 있으니 10시까지 KBS 녹화장이 있는 본관으로 오라는 연락을 담당 PD에게 받고 새옷을 입고 이발을 하고 달려갔다. 내가 제일 먼저 온 것이다. 이윽고 출연자 전원이 당도하여 분장실에서 마치 장가가는 새신랑마냥 아주 정성이 담긴 분장을 받았다. 기분이 황홀했다.
한 시간 뒤 녹화방송으로 ‘우리말 겨루기’가 엄지인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첫 단계부터 중간까지는 최상위 점수로 정상이었다. 우승이 눈앞에 보이며 젊은이들도 별것 아니구나 하며 자신이 생겼다. 마악 누름단추 벨을 누르며 우승을 확정짓고 싶은 감정이 앞섰다. 지나친 과욕이었다. 기다리면 결승단계에 진출하는데 감점이 시작됐다. 오답이 연속된 나의 경거망동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끝났다. 멋진 변신, 변태는 지나친 욕심과 만용 때문에 끝났다.
하지만 한 번 출연한 사람은 2년을 기다리기에 매미는 땅속에서 수년을 기다리는데 난 다시 변신의 칼을 간다. 2년간 그리고 화려한 날개를 펴며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그날의 변신을 꿈꾸며 오늘도 내 길을 간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나의 변신은 계속될 것이며, 이 길을 기꺼이 간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높게 보인다. 이제 내 나이 80.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가며 끝없는 변신을 꾀하며 더 행복한 나날을 영위해야 하지 않을까? 무한한 변신. 이제 무엇을 찾아 또 화려한 변신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변신은 날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 만병통치약인가 보다. 나의 변신은 오늘도 계속된다.
•수상소감 - 우수상 미니자서전 은정남
“죽는 순간 숨이 멎는 순간까지 도전하고파”
응모하신 사람 중에서 나이가 좀 많습니다. 팔순이니까요. 그래서 저의 하찮은 글을 건져 올려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용기를 주신 선생님들과 캐나다에 이민을 간 아들한테 축하 인사 받았는데 정말 뿌듯합니다.
큰 용기와 힘을 얻었어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 이제 세상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쓰고 또 갈고 닦아야겠죠. 죽는 순간까지 숨이 멎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해보고 싶어 공모전에 출품하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노인들이 많잖아요. 노인들은 지하철 공짜로 타며 놀러 다니고 또는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이제 그런 걸 탈피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 해봤는데 이번에 글을 한 번 써봤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 신석정 시인이 저희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글을 좀 잘 쓰려고 나름대로 좋은 책 많이 읽고 또 문학 활동을 꾸준히 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항상 친구들이나 동호회 회원들에게 카톡으로 공유했어요. 그러면 그분들이 모니터링해 주면 수정하며 첨삭하면서 배웠습니다. 학창 시절 백일장에 장원은 떼놓은 당상일 정도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자신감 가지고 소설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동물해설사, 모형항공기, 우리말 나들이 도전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나 사건을 소재로 삼아서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어 행복합니다. 일감이 있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번에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준비한 주최 측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쓸 만한 어른들과 아까운 시니어들이 많거든요. 사실 어르신들은 좋은 자원과 자산을 갖고 있고 재능과 경험이 다양한데 쓸모없이 이렇게 소멸해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번 공모전이 뜻 깊은 일을 하고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시니어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보다 더 저를 믿어준 가족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사망자가 신생아보다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4명,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치다. 2030년까지 ‘일하는 인구’가 315만 명 줄어든다. 정부에서 다각도로 대책을 추진하지만 결과는 헛방이다. 인구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해서라고 지적하는 전영수 한양대 교수를 만나, 다양한 사회현상이 왜 인구 변화에 영향을 받는지 혜안을 들어봤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한국의 모든 이슈가 인구로 투영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문제는 산업을 비롯해 우리나라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인구 변화가 만드는 미래는 무차별적이고 뉴노멀이다. 시니어들도 기존의 틀을 모두 버리고, 인구 변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대응해야 한다.”
시니어들은 상대적으로 인구문제는 자신과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액티브 시니어라면 이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전영수(49)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인구문제가 시니어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최근 부동산 급등세도 인구 변화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고 전망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결혼 인구가 줄어 아파트 같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최근 몇 년 동안 2배 이상 오르며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이유로 최근 1, 2인 가구가 크게 늘어난 요인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전 교수는 조금 다르게 설명했다.
팔아야 할 60대가 주택 사면서 부동산 상승 초래
전 교수는 “생애주기가설은 평균수명이 60세이던 시절에 나왔다. 이때는 50세가 넘으면 자산을 이전하고 정리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새로운 투자보다는 자산을 절제하며 관리했고, 위험자산을 사지 않았다. 부동산도 위험자산이기 때문이다. 보통 부동산은 50대에 정점을 찍고 60대부터 정리했다. 이렇게 해서 60대는 전형적인 중고주택 판매자로 공급을 주도했다”라며 생애주기가설이 적용되던 시절에는 60대가 부동산 공급자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생애주기가설(Life cycle hyphothesis)은 현재 소비가 현재 소득뿐만 아니라 평생소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가설이다. 이에 따르면 지금 소득과 모아둔 재산이 적은 20~30대일지라도 나중에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소비한다. 반면 모아둔 재산이 많은 50~60대는 앞으로 들어올 소득이 줄어들 것을 대비해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소비한다.
이어 그는 “그런데 이 생애주기가설이 인구 변화로 완전히 무너졌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주택을 파는 주체가 되었던 60대와 70대가 더 남은 인생을 위해 임대나 투자용으로, 또 거주용으로 주택을 사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통계로도 최근 60세 이상의 아파트 구매자 수 비중은 늘고 20~30대는 준 것으로 확인됐다. 60세 이상 액티브 시니어들이 길어진 미래를 위해 위험자산인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것이다. 중고주택 공급자였던 이들이 수요자로 바뀌었다. 보통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면 가격은 상승한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늦게 젊은 층도 추격 매수에 나섰다. 나중에 천천히 주택을 구매해도 될 사람들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을 하며 주택을 구매했다.
전영수 교수는 “공급이 제한적이라는 특성과 교체 수요도 있었다. 재건축·재개발 문제도, 미스매칭도 있었다”며 “저금리 상황까지 겹치면서 집값을 올릴 다양한 변수가 한꺼번에 몰려 부동산 급등세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인구정책, 완전히 새 판 짜야”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처음 인구가 감소했다. 이에 인구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정부는 올해 초 3기 인구정책 TF를 구성해 관련 주요 과제와 추진 계획을 조금씩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활동 인구를 확대하고자 고령자와 여성, 외국인을 활용하는 인구정책을 준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인구정책에 시니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교수는 “인구문제를 이대로 두면 연금이 줄어 시니어들에게 노후 위기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금 체계는 경제활동 인구가 기존과 같은 수준으로 공급되는 걸 전제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줄면 사회보장 체계가 약해진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저부담고급여에서 고부담저급여로 개혁해야 하고, 건강보험에서 자기부담률도 높아진다. 장기요양보험 수혜 혜택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인구문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전 교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한다”며 “확실한 리더십을 갖고 자원 배분의 의지와 권한을 가진 컨트롤타워가 나와야 한다. 17개 부처의 이해와 전문성, 경험을 잘 섞어 중복되거나 누수·낭비되지 않도록 하며,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만 위원회 수준으로는 역부족인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제대로 확인된 정부는 거의 없었다”며 “정부가 진정성 있는 의지가 있는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 결국 의지를 가진 최고의사결정권자, 청와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1, 2기 인구정책 TF처럼 해서는 달라질 게 없다는 의견이다.
정부의 경제활동 인구 확대 정책에 대해 그는 “경제인구 확보는 출산장려정책을 통해 끊임없이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인식과 환경도 바꿔야 해 매우 어렵다. 효과를 얻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고령자와 여성, 외국인 활용은 좋은 방안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령자 정년 연장,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
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나타나고 있는 인구문제 해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가 저출산 해소, 둘째가 로봇 활용, 셋째가 고령자 정년 연장, 넷째가 외국인 이민제 도입, 다섯째가 전업주부의 경제활동 인구 전환이다.
이 중 저출산 해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하고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 정책이다. 로봇 활용은 전통적인 일자리를 줄일 수 있어 양날의 검으로 논란이 많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고령자와 외국인, 여성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이 중에서도 고령자 정년 연장은 현 상황에서 그나마 효과적이면서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연금 전문가들은 30년 이상 국민연금을 납부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고령 인구가 매년 85만 명씩 20년 동안 등장하면서 국민연금이 빠르게 고갈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를 막으려면 국민연금 납부액을 높이거나 수급액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보험료를 높이면 납부 대상자들이 반발하고, 수급액을 낮추면 고령자들이 반발한다. 이에 고령자들이 더 오래 직장생활을 하며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고, 그만큼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제시된다.
전 교수는 “정년을 65세까지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걸로도 부족하다. 선진국은 67세에서 70세, 정년을 폐지한 나라도 적지 않다”며 “정년을 연장한 만큼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2~5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년 연장이 쉽지는 않다. 청년 세대는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전 교수는 “고령자 일자리와 청년 세대 일자리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라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의지를 갖고 제대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소득 크레바스’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소득 크레바스는 직장에서 은퇴하고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으로, 최근 5060세대의 화두다. 올해 금융권에서 30대와 40대 조기 은퇴가 현실화되고 있다. 40대에 은퇴하면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까지 소득 없는 기간이 20년이 넘어 큰 문제다. 정년 연장을 서두르지 않으면 앞으로 조기 은퇴가 전 직종으로 확산되면서 소득 크레바스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할 가능성이 높다.
전영수 교수는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국제학대학원 교수 및 사회혁신융합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사회적경제위원회) 전문위원, 기재부 협동조합정책심의회 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언론매체에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반발로 인해 공론화가 무산됐던 ‘고용연장’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가 정년 이후에도 재고용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정년을 늘리는 고용연장 공론화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2월부터 고용연장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관련 연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 1월 조직개편을 통해 고령사회연구팀을 신설했다. 고령사회연구팀은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에 대비해 고령자 고용 정책 현황을 분석하는 업무를 맡는다.
고령사회연구팀은 첫 사업으로 ‘고령자 고용촉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를 선정했다. 2월부터 시작된 해당 연구는 고령자 고용정책 수립 지원을 목표로 연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연구팀은 특히 고용연장 공론화를 위한 준비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가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연구팀 사업계획서에는 ‘고용연장의 원활한 사회적 논의를 위한 주요 전제조건과 환경 분석’, ‘고용연장의 주요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를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연구 결과 도출’ 등이 과제로 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까지 진행한 선행연구 분석 목록에도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의 고령자 ‘계속 고용’ 사례가 포함됐다.
정부는 이전에도 고용연장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했다. 그런데 고용연장은 기업의 이해관계와 청년실업 문제에 따라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고용연장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했을 때도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목소리가 커 공론화가 무산됐다.
이러한 파장을 의식한 정부는 고용연장이 의무적인 정년을 제시하는 ‘정년연장’과 달리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노동계와 중장년층의 표심을 의식해 고용연장 공론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인구 절벽이 현실화되면서 고용연장 카드도 대안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동시에 생산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메울 수단으로 고용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제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발표가 연말에 예정된 것을 고려하면 고용연장에 대한 공론화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과 노사 간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고용정보원의 연구와 공론화 귀추가 주목된다.
고령화가 급속화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복지는 늘어가는 가운데, 재원을 부담할 생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특히 미래 세대 인구가 급감하면서 현재 시니어들의 자녀 세대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 15~64세 생산연령 인구는 3575만 명이었다. 생산연령인구는 2016년 3631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다.
15년 후 유소년 인구가 전부 생산연령인구에 편입돼도 50~64세 인구인 1213만3000명이 고령인구로 편입돼 생산연령인구가 대폭 줄어든다. 지난해 0~14세 인구는 617만6000명으로 생산연령인구가 600만 명가량 줄어드는 셈이다. 이는 지금 부산시 인구의 2배 규모다.
지난해 617만 명이었던 유소년 인구는 5년 전인 2015년보다 74만 명, 10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하면 161만 명이나 감소했다. 2015년 유소년 인구는 691만 명, 2010년 유소년 인구는 778만 명이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고령인구는 지난해 821만 명으로 657만 명이었던 2015년보다 164만 명 늘었고, 542만 명이었던 2010년과 비교하면 279만 명 증가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겹치다보니 노년부양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노년부양비는 2000년 10.2, 2010년엔 15,6, 지난해에는 23.0으로 올라갔다. 노년부양비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에 대한 고령인구 비율을 뜻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생산연령인구 4.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노령화지수가 132.9를 기록하면서 2019년 122.7이었던 것과 비교해 10.1 높아졌다. 노령화지수는 유소년인구 100명에 대한 고령인구비다. 전국적으로 14세 이하 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약 133명 있는 셈이다. 특별⋅광역시와 도 단위 지자체 17개 중 14개에서 노령화지수가 100이상이었다. 229개 시군구 중에서는 196개에서 노령화지수가 100이상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고령화 신호들 외에 대학 신입생 정원미달처럼 다양한 인구절벽의 징후를 감지한 전문가들은 우려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의 충격이 임금 체계, 정년 문제, 연금 등 사회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이들이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항목은 연금이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연금 수급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노년부양비는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연금 유지를 위해 보험료율 20%를 적용해야 하지만 9%만 거둬들이고 있어 보이지 않게 연금 부채가 쌓이고 있다는 의견이다. 윤 회장은 “지금은 연금기금 적립금이 880조 원을 넘어 체감하지 못하지만 36년 후인 2057년에는 마이너스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까지는 문제없이 연금을 수령할 수 있지만 지금 40대 이하 세대는 연금 절벽으로 노후 파탄에 몰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노인 부양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서 노인 세대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40대 이하 세대가 노후 위기에 처하는 것은 고령인구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국가 현안으로 삼아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라며 “사회 시스템의 여러 부문을 손봐야 한다. 예컨대 임금 체계에서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성과 직무급제로 바꿔 장기적으로 정년을 없애야 하며, 이를 위해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금체계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밖에도 경제활력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노동시장 규제⋅개혁 등 자녀 세대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퇴직을 앞둔 57대 A씨는 인생2막을 준비하기 위해 고민이 많다. 이제 막 취업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자녀들은 아직 안정적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벌써 ‘정년퇴직’이 다가오고 있어 알 수 없는 걱정과 압박감에 어깨가 무겁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막상 은퇴 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거리고 마음도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A씨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 뒤에도 일을 하고 싶은 시니어에게 자격증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년이나 노인이라는 나이 문제를 넘어서며 일할 수 있는 좋은 비법이다. 자격증 취득이 재취업과 노후대비, 자기계발에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또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관련 자격증을 따면 탄탄한 미래를 준비하는 데도 도움된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변화를 통해 완전한 변신을 꾀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
인생 100세 시대를 고려하면 앞으로 40년 넘게 더 살아야 한다. 오래 이어질 인생2막을 다채롭게 꾸려가고 싶은 시니어들을 위해 알짜배기 자격증 4개를 소개한다.
①자녀를 키워봤다면 누구나!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는 출산한 산모와 신생아 가정을 직접 방문해 이들의 건강을 살피고 산후 관리를 돕는다. 출산 전후 산모의 안정과 빠른 회복을 위해 산모에게 유방 마사지, 복부 마사지, 찜질, 산후 체조, 건강식을 제공한다. 또 목욕과 배꼽 소독, 청결, 아기 마사지 같이 신생아 위생과 건강관리를 돕는다. 이 밖에 큰 아이가 있으면 등하교 관리와 식사, 장보기, 빨래, 청소 같은 가사도 전담한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가 되려면 보건복지부나 시·군·구청 홈페이지에서 정부가 지정한 교육기관을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지역 내 여성인력개발센터, 돌봄사회서비스센터 같은 해당 교육기관에서 이론 24시간과 실습 36시간 교육을 받는 2주 과정을 밟아야 한다.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간호사 같은 자격증을 소지해 경력을 인정받으면 이론 12시간과 실습 28시간으로 교육 기간이 1주 과정으로 줄어든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나 교육기관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곳이 있으니 시험 유무도 확인해야 한다. 수강료는 신규 과정 20만 원, 경력자 과정 15만 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교육비 50%를 감면받는다. 수료 뒤 바우처 제공 기관에 취업해 400시간 이상 근무한 재직자는 수강료 50%를 환급받는다.
교육 수료 뒤 군청과 구청 같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바우처 제공 기관에서 ‘바우처 산모관리사’로 취업할 수 있다. 근무는 주 5일, 하루 8시간이 기본으로 단축형(1주), 표준형(2주), 연장형(4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보수는 단축형 33만3750원, 표준형 66만7500원, 연장형 133만5000원이다.
근무할 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산후조리를 했던 방식이나 자녀 양육 방식을 고집하면 안 된다. 복장 제한도 있다. 면 소재 옷만 입어야 하고 액세서리는 금물이다. 향수도 피해야 한다.
취업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라도 교육 수료 뒤 1년이 지나면 반드시 연 8시간 이상 보수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은 직무와 서비스, 직업 비전, 현장 갈등과 문제 해결, 스트레스 관리 같은 직무와 직접 연관 있는 내용이다. 또 산모로부터 불만을 2번 이상 접수받은 건강관리사는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②공동주택 지킴이 주택관리사
주택관리사는 공인중개사 못지않게 조명되며 정년이 없어 은퇴 뒤 노후대비로 인기 높은 자격증 시험 중 하나다. 주로 아파트와 공공시설, 상가 같은 대규모 공동 주택의 각종 시설과 환경을 유지 관리한다. 또 공동시설 유지와 보수, 관련된 각종 회계 업무인 공과금 납부 대행, 관리비 징수 같은 업무를 담당한다.
주택관리사(보) 시험은 1년에 1회, 1차와 2차로 나뉘어 진행된다. 구체적인 일정은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서 일정과 시험과목을 미리 확인하고 준비하면 된다. 서울시평생학습터, 아산시평생학습관, 천안시평생학습센터, 인천시민교육센터, 경기도평생학습관처럼 전국 지자체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3~5년 이상 근무 경력을 쌓으면 주택관리사로 활동할 수 있다. 주택관리사로 되려면 500세대 미만의 공동주택 관리소장으로 근무 경력이 3년 이상 또는 공동주택관리기구 직원(경비원, 청소원, 소독원은 제외함) 또는 주택관리업자 직원으로 주택관리업무 종사 경력 5년 이상과 같은 경력을 충족해야 한다.
③ 식물과 함께하는 삶, 조경기능사
조경기능사는 식물이나 토목, 물, 조형물 등을 통해 생활공간을 꾸미고 자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에 대해 현장을 조사해 조경에 대한 기본 구상과 계획을 세우고, 부분적으로 실시 설계를 이해하고 있는지, 현장 여건을 고려한 시공으로 조경 결과물을 도출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가 주요 평가 지표다.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본다. 조경 기초 설계부터 정원 설계, 잔디 식재 공사, 실내 조경 공사 같이 포괄적인 내용을 알아야 한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이다. 실기 시험은 3시간 30분 안에 주어진 조경 작업(도면작업·수목감별·조경실무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도면 작업은 평면도와 단면도를 모두 완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완성하지 못하면 실격이다. 수목감별 평가 방법은 주어진 수목 사진을 보고 수목명을 맞혀야 한다. 조경 실무 작업은 주로 조경수목 식재, 포장(벽돌쌓기), 잔디 파종 같은 수행 능력을 평가한다.
조경기능사는 법적 우대사항보다 민간에서 활용도가 높은 자격증이다. 주로 건설회사 조경부서와 조경엔지니어링회사, 조경컨설팅회사, 조경설계용역업체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도 조경 식자재전문공사업체와 조경관리업체, 조경시설물 설치전문공사업체, 학교·아파트 단지 관리부서, 정원수·온실 재배업체로 진출할 수 있다.
실제 조경시공업계에 따르면 50~60대 중장년층에서 조경기능사 취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시공업계 관계자는 “조경기능공이 예전엔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란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장비가 발달해서 덜 힘들다”며 “오히려 식물과 함께하면서 은퇴 뒤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일로 바뀌어 가는 중이라 60대 중반까지도 현장에서 조경기능인으로 활약하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④웰빙시대, 우리 먹거리 안전하게! 농산물품질관리사
농산물품질관리사는 산지 생산자조직에 소속돼 농산물 품질 관리, 상품과 브랜드 개발, 물류 효율화, 판촉과 바이어 관리 같이 농산물품질을 종합적으로 조정하고 관리하는 전문가다. 주로 농산물 등급을 판정하고 농산물 출하 시기를 조절하며, 품질관리기술에 대해 자문한다. 또 농산물 품질 향상과 유통 효율화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한다.
자격증 응시에 경력이나 학력, 성별 제한이 없다. 평소 농업에 관심이 있거나 귀농을 생각해볼 법한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자격증이다.
농산물품질관리사 시험은 1차 시험과 2차 시험이 있다. 1차 시험은 객관식으로, 100점 만점에 모든 과목 40점 이상, 전체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한다. 실기시험은 단답형과 서술형으로 시행되며,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이면 합격한다. 자세한 시험 과목과 일정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농산물을 취급하는 대형 유통업체, 공공기관, 지역농협, 농산물품질관리원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농산물을 취급하는 공공기관과 농협에 취업하면 인사 고과와 수당, 승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농산물품질관리사는 농업직 9급 국가공무원 채용에서 3% 가산점을 받는다.
60세 A씨는 지난해 남양주에 카페를 차렸다. 대기업에서 다니던 A씨는 5년 전 정년퇴직했다. 내후년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월 70만 원 남짓이라 아쉬웠다. 더 여유로운 노후를 위해 창업했으나 적자만 보고 있다. 적자가 누적되자 A씨는 결국 카페를 폐업했다.
어떻게든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A씨는 절치부심해서 올해 다시 창업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부의 창업지원프로그램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A씨는 '예비창업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을 발굴해 도전하고 있다. 아직 창업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A씨의 창업 아이템은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A씨처럼 은퇴 후 창업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벤처부의 ‘2019년 연간 및 12월 신설법인 동향’에 따르면 2019년 만들어진 신설법인은 총 10만8874개로, 2018년보다 6.7% 늘어났다. 2018년 같은 기간 대비 연령대별 증가율이 가장 높은 건 60세 이상이었다. 증가율은 13.8%로 전체 평균인 6.7%보다 2배 이상 높았다. 40대와 50대는 증가율이 높지 않지만 창업자 수가 가장 많았다. 40대와 50대가 각각 약 3만7000건, 2만8000건이었다.
문제는 시니어 창업 대부분이 서비스업으로 몰린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설립된 신설법인 절반 이상이 서비스업이었다. 게다가 2009년 이후로는 서비스업 창업자 수가 꾸준히 늘었다. 게다가 서비스업 창업자 대부분이 도소매, 음식·숙박업, 시설관리서비스업에 집중돼 있었다.
서비스업에 많은 창업자가 몰리는 이유는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다. 특히 소매업과 음식업은 창업을 많이 하는 만큼 폐업도 많다. 국세청이 국세통계연보에서 자영업자 실태를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소매업에서 영세사업자 폐업률은 19.1%였다. 음식업에서는 영세사업자가 20.1%였다. 소매업과 음식업 모두 창업자 5명 중 1명꼴로 폐업하는 셈이다.
특히 시니어들의 사업 실패는 재기할 기회 없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창업하기 전에 사업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 아이디어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실현할 전략과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점은 개인이 이 모든 것을 혼자 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혼자의 능력으로 창업 계획을 세운다면 사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양한 창업교육 프로그램이나 전문가의 컨설팅 프로그램을 통해 내실 있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청년에만 한정된 창업지원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최근에는 시니어들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창업을 앞둔 시니어들이라면 아래의 창업지원 프로그램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창업에듀 온라인강좌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창업에듀는 온라인 강좌다. 창업단계별로 강좌를 들을 수 있고 최신 트렌드 정보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예비창업, 창업초기, 창업성장, 재창업 단계로 나뉜다. 기술이 있는 창업자거나 예비 창업자라면 창업에듀 사이트에 회원가입 후 연중 수시로 수업을 들으면 된다.
◆멘토링플랫폼
멘토링플랫폼은 예비창업자의 아이디어를 전문가 멘토링을 통해 구체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함께 운영한다.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는 ‘아이디어마루’를 통해 멘토링을 신청하고 우수 아이디어로 선별되면 집중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실전 창업교육
실전 창업교육은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모델 정립과 사업계획서의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창업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라면 상반기, 하반기 중 한 번만 지원할 수 있다. 지원을 통해 선발되면 아이디어 개발 후 비즈니스모델 세우고 린 스타트업 교육을 통해 사업을 구체화하게 된다. 린 스타트업은 창업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는 방법을 말한다. 완전한 제품을 출시하느라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기보다 시장의 평가를 빠르게 수집해 문제를 보완하고 역량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전 과정은 약 75시간이며 린스타트업 과정은 멘토링 방식으로 이뤄진다. 케이스타트업(K-Startup)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중장년 기술창업센터
중장년 기술창업센터는 풍부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 성공률이 높은 40대 이상 시니어 창업자를 위한 맞춤형 창업보육공간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며 창업한 지 3년 이내인 창업자에게 입주공간과 멘토링,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현재 전국에 총 27개 센터가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창업자 이 외에도 시니어 창업멘토, 기술강사, 투자자 등도 센터에 입주해 창업자들의 생산적인 생태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 케이스타트업 홈페이지에서 수시로 신청할 수 있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
신사업창업사관학교는 새로운 창업 아이디어를 지닌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육생들이 창업 전에 연습 삼아 자신의 아이템을 시험할 수 있는 ‘점포경험체험’을 운영한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경기, 대전 등 6개 지역에 점포체험장 19곳을 운영한다. 교육 수료 시 창업비용 최대 2천만 원을 지원한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운영한다.
◆예비창업패키지
예비창업패키지는 창업진흥원이 7개월 동안 예비 창업자의 사업 시제품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실제로 창업하기 전 사업하려는 창업 아이템을 제작하고, 주위의 반응을 시험할 수 있다. 1530명을 지원하며, 선정된 창업자에게는 평균 5100만 원이 지원된다. 주로 만 39세 이하 청년창업이 지원이 집중됐지만 지난해부터 중장년까지 확대됐다.
20대가 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영감과 동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덕양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폐교 위기 학교를 혁신학교의 대명사로 변화시킨 이준원(65) 교장을 만나 참스승으로서의 삶과 교육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지난해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는 공교육 혁신 모델 사례로 덕양중학교의 일대기를 다뤘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덕양중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폐교 요청을 받았던 학교다. 폐교 위기의 학교가 8년 만에 어떻게 공교육 혁신 모델로 우뚝 선 것일까? 그 변화의 열쇠는 이준원 교장이 쥐고 있었다. 그가 2020년 정년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8년의 세월 동안 덕양중학교에는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처음 그가 부임했을 때 덕양중학교는 어떤 상태였을까?
“제가 교장으로 왔을 때 덕양중학교는 매년 교육청으로부터 폐교 압박을 받을 만큼 다 쓰러져가는 학교였습니다. 교육장님이 오셔서 학생 수를 늘려야 한다고 당부하고 가셨죠. 제가 부임하던 해 인근 초등학교 6학년이 12명이었는데, 이마저도 확실치 않았어요. 4명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기에 실질적인 중학교 입학 인원이 8명이었죠. 당장 중3 아이들이 졸업하면 전교생이 100명 이하로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했어요. 그래서 학생을 유치하려고 학군 외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를 만나 저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설득했죠. 발품을 판 덕분에 그해 40명 정도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왜 덕양중학교였을까? 교장 공모제란 절차로 부임했는데, 굳이 폐교 위기인 학교의 교장이 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임 시절부터 교직을 마칠 때까지 어려운 학교만 골라 다녔어요. 겉으로만 봐서는 잘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요. 학생들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아픈 친구들이 많았죠. 가정 형편이 어렵다거나 부모님이 이혼했다거나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교사로서 지도하고 보듬고 싶었어요. 좋은 학군에서 자라 학원에서 미리 선행학습을 한 덕분에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스스로 ‘그런 친구들에게 교사로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을 쉽사리 하지 못했거든요.”
실패한 교사의 고백
오랜 세월 교직에 있었던 그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학교는 학원이 아니죠.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학교는 함께 어울려 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답게 존중받고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손을 잡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둡고 깜깜한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 앞을 밝게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평교사 시절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40대 이전에는 실패한 교사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가면을 쓰고 살았죠. 동료한테 인정받는 선생님, 잘 가르치는 선생님, 친절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얼굴 표정과 내면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죠. 마음의 병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분노나 스트레스를 억누르기만 했어요. 어디 가서 내색도 잘 안 하고 그렇게 다녔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축적된 화가 폭발했어요. 그 화는 고스란히 학생과 아내에게 돌아갔어요. 이렇게 제가 불안정하다 보니 아내와 이혼 위기까지 갔고,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졌어요.”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마흔 살을 앞두고 큰 결심을 한다. 치유 상담을 받아보기로 한 것.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한 선택은 그의 앞길을 바꾸는 교두보가 됐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치유상담연구원으로 달려갔어요. 내면 치유를 통해 저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죠. 내면 치유란 것이 특별한 게 아니에요. 그냥 다 같이 모여 각자의 상처를 꺼내놓으면서 서로를 보듬는 일이에요. 저 역시 이제껏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분노, 슬픔을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고 털어내는 일을 그때 했어요. 그 이후론 제 삶이 변했어요.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학생들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갈등도 눈 녹듯이 사라졌죠. 그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거예요. 이후 삶의 방향이 이때 결정되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덕양중학교를 택하고, 그 학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환대
그가 고백했듯이 한때 가면을 쓴 채 가식적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그는 내면 치유 이후 놀랍게 변했다. 그의 변화는 앞서 소개한 EBS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졸업식 날 졸업장을 받으러 단상 위에 올라오는 학생들은 이준원 교장 앞에서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정년 퇴임식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울면서 그를 떠나보냈다. 그 울음의 원인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그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모두의 속눈썹을 촉촉하게 했다. 그들은 왜 그리도 아쉬워했을까? 그들에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재임 시절 누군가를 만날 때 교장이란 지위를 앞세우지 않았어요. 학교 내의 직원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어요. 당연히 차별하지 않았고요. 모두 그 마음을 알아주셨던 것 같아요. 8년 동안 덕양중학교에 있었는데, 사실 4년쯤 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 했죠. 가기로 해놓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교장실에 학부모님들이 찾아오시더군요. 가끔 그렇게 스스럼없이 찾아오시곤 해서, 그날도 어김없이 재밌게 대화를 나눴죠. 그런데 끝에 다들 ‘다른 데 안 가시죠?’라고 말씀하시더군요.(웃음) 부족한 저를 붙잡아주시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 운 좋게 중임이 가능해지면서 한 번 더 열심히 하게 됐죠.”
실제로 그는 학교 내 구성원에게 세심하게 다가갔다. 얼마나 세심한지 교무실에서 일하는 행정실무사의 생일도 챙길 정도였다. 특히 그는 매일 등교 시간에 교문으로 나가서 아이들을 맞았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을 열었다. 8년 내내.
“아이들이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그 순간까지 모두 교육의 연장선이에요. 아이들은 환경과 사람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받죠. 제가 모두를 따뜻하게 대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제가 만약 배식하는 아주머니를 함부로 대하면, 아주머니도 배식하면서 아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모두를 정성스럽고 따뜻하게 대했어요.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과 하이파이브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죠.”
하지만 하이파이브만으로는 아이들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을 터. 그만의 소통법이 궁금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환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죠. 그들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경청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려고 노력했고요.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 친구에게 가장 큰 상처였더군요. 그 이후 어긋나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주먹 좀 쓰고 다니던 친구였어요. 할머니와 살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웠죠. 영하 10℃ 날씨에도 롱 패딩을 못 사서 매일 얇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어요. 자존심은 세서 롱 패딩 입고 다니는 애들 보고 이불을 덮고 다닌다며 깔보더군요. 어느 추운 겨울날 교문 앞에서 그를 만나 ‘춥지?’ 하면서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줬어요. 날카로웠던 평소의 눈빛이 봄눈처럼 사라지고, 오히려 ‘교장 선생님은요?’ 하고 따뜻하게 묻더군요. 관심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켜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진심으로 다가가기
그의 환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와 학부모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매주 목요일 ‘이슬비 사랑 학부모 교실’을 통해 학부모와 소통했다.
“혁신학교가 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었어요. 일종의 집단지성이 만들어졌죠. 교사들의 단점 대신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어요. 단점을 찍어서 고치려고 하면 잠깐 바뀌는 척만 할 뿐이에요. 진심으로 변화시키려면 그 사람의 장점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게 모두의 장점이 뭉쳐서 하나의 집단지성을 만들어내는 일을 교장을 하면서 많이 경험했어요. 학부모 모임에서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아픔에 대해 경청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정은 또 다른 학교나 다름없어요.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아이의 표정이 아침부터 밝지 않거든요. 놀라운 건 모임을 통해 학부모의 상처나 아픔에 대해 서로 듣고 공감하는 시간만 가졌을 뿐인데, 이후 그 모임에 참가한 학부모의 아이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어요.”
그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가정은 또 다른 학교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춘기 손주를 둔 시니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손주와 같이 사는 그에게 한번 물어봤다.
“잔소리 대신 전폭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하되 깜짝 놀라게 반응하는 게 좋아요. 잘했을 때는 ‘진짜 잘했어!’라는 말과 함께 기쁜 표정으로 맞이해주면 좋아해요. 그들이 가진 본연의 감정을 직시하고 공감해주면 돼요. 아이들은 스스로 존중받을 때 말문을 열어요. 그래서 다짜고짜 다그치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언어, 표정, 눈빛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해요.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줄수록 아이들은 달라져요.”
끝으로 그가 생각하는 참스승의 모습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따뜻한 환대를 맛본 사람은 그것을 잊지 못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진심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아본 아이들은 커서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줄 아는 어른이 되는 법이죠. 이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면으로부터 큰 변화가 있어야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늘 아이들의 상처에 귀 기울이며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것이 참스승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요. Turn your scars into stars.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속담이에요. 상처를 희망의 별로 바꾸는 일.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서, 그것을 큰 밑거름으로 만들어주는 일. 참스승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앞으론 제가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순회강연을 할 예정이에요. 제 얘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폐교 위기의 학교를 정상화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8년의 교장 생활은 보람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고충도 있었다. 용인에서 고양까지의 긴 출근 거리로 인해 8년 내내 주말부부를 감수해야 했다. 교육 현장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믿고 따라왔던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있었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가 학교에 있었던 8년 사이 학생 수는 늘어났고, 학습 부진아를 찾아볼 수 없는 학교로 성장했다. 그가 연단에 서면 떠드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그를 존경하고 존중했다.
졸업식에서 이준원 교장을 보고 눈물 흘리던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처음에는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를 만나고 나서 다큐멘터리의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됐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은 진심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진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도 별처럼 빛나는 진심을 품고 미래 세대를 위한 강연을 하고 있을 그를 응원하며 마친다.
2019년 감정평가사 시험에서 최고령 합격자가 탄생했다. 최기성 감정평가사(67)로, 합격 당시 나이는 65세였다. 그는 그해 11월 삼일감정평가법인에 입사했다. 실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으로 오래 일했던 그. 직무상 대통령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미소조차 잘 짓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감정평가사로서 현장에 나가 감정평가를 하고, 영업을 하고, 연신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인다. 2년 차에 접어든 새내기 감정평가사를 만났다.
최기성 감정평가사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7시였다. 그때도 삼일감정평가법인 사무실에는 여전히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여러 감정평가사들의 책상 사이로 그의 자리와 뒷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한창 업무 중이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기자를 만나러 오는 와중에도 동료 평가사와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바빠 보였다. 주변의 다른 직원들은 언뜻 보아도 그보다 한참은 어린 듯했다. 그 속에서도 그는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에게서 나이에 따른 이질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새내기가 되다
그는 감정평가사 실무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수습 생활을 갓 마치고 인터뷰 날부터 사인 권한이 생겼다. 그날 처음으로 평가서에 자신의 사인을 했다. 보람이 남다른 하루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 일을 마저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 자정께에 퇴근했단다. 요즘 일이 많아졌다고. 의뢰받은 일을 기한에 맞추어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많을 때는 이처럼 야근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시에 퇴근한다. 한 달에 야근하는 횟수는 절반 정도. 인터뷰 날에는 강북구 우이동과 수유동에 있는 현장 두 곳에 다녀왔단다. 그야말로 한창 현역이자 전성기를 살고 있는 이의 모습, 갓 수습 딱지를 뗀 새내기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는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희를 목전에 둔 터라 체력에 무리는 없을까 싶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받쳐주는 편이라,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부진 그의 체격을 보니 마음은 물론 몸에도 견고하게 쌓인 내공이 보였다.
오히려 그는 감정평가사로 일하며 ‘워라밸’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주말도 없이 일했다.
“대통령이 오더를 내리면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서 원장님한테 보고하고, 원장님은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일했죠. 남북 행사 있으면 통일부랑 같이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유일한 틈이 토요일 오전 일찍 골프 한 번 치는 거예요. 그렇게 스트레스 풀고 들어와서 일하고, 일요일도 일하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고 휴가나 여가는 생각도 못 했죠. 지금은 일이 있으면 며칠 밤을 새서라도 기한에 맞춰 납품해야 하지만, 일 없으면 정시에 퇴근하고 굉장히 자유로워요. 주말에도 쉬고.”
그는 성공적인 공직 생활을 했다. 198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가정보원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1급 관리관에 해당하는 실장까지 오르고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표로 참여하는 등 요직을 거쳤다. 퇴직 후에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주식회사, 국가 안보 관련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원의 이사직을 역임했다.
전 직장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된 그에게 고충을 물으니, 첫째로 꼽은 게 오피스 프로그램이었다.
“엑셀이나 워드를 전에는 다루지 않았어요. 여기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평가서를 만드는 게 기본이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고유 프로그램들이 있으니까 익히는 데 되게 힘들었어요. 공직 시절에는 만들어진 보고서를 검토하고 사인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제가 직접 다 작성하죠. 모르면 선배들한테 물어가며 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워드 엄청 잘해요. 회사 결정되고 나서 유튜브 보면서 연습하긴 했는데, 실무는 또 다르더라고요. 직접 부딪히고 시행착오 거치면서 하나씩 발전해나갔죠. 거기서 오는 성취욕도 있었고요. 지금은 웬만한 건 다 합니다.”
오랜 공직 경험이 주는 장점도 있다. 온갖 일을 다 겪었으니 웬만한 일엔 떨지도 않고 담담하다. 사회 초년생보다는 사람 대하는 기술도 노련하고, 평생 일하면서 보고서와 씨름했기 때문에 평가서를 보는 눈도 깊다. 단지 워드 프로그램 같은 고유한 틀에 익숙해지기까지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사람 관계다. 젊은 직원들과는 다르게 탄탄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회사에서도 그런 인맥을 활용하길 기대한다. 그렇기에 그의 경력을 감안해 고문 직함을 주었다.
“우리처럼 나이 들어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인맥이 제일 큰 장점이에요. 회사에서 장년층 직원을 뽑는 것은 일도 일이지만 영업적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일을 따오기도 하면서 제 역할을 해내는 거죠. 그래도 쉽지는 않습니다. 옛날하고 다른 측면이 있어요. 부탁하기도 쉽지 않고요. 불공평한 레이스라고 할까, 그런 걸 요즘은 다들 싫어하니까요. 저 자신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하죠. 사회 친구들이 은행 같은 곳들 소개해줘서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상태예요.”
그는 공직에 있을 때 오직 국가를 위해서 일했다. 국가 안보와 국익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지금 있는 곳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그는 두 조직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에 대해 평가하기 때문에 객관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해요.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준 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국가 경제하고도 연관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담보 평가만 해도 이해관계인이 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과 금융기관이죠. 우리가 평가를 잘못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으면 그 영향이 개인뿐 아니라 은행에도 미치고, 그게 국가 경제에까지 영향을 줘요. 과대평가를 하면 경제 질서를 흔들 수 있거든요. 그만큼 공공성이 가미된 일이에요.”
그가 몸담고 있는 삼일감정평가법인 역시 공정성을 지키며 신뢰받는 곳이다. 철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부실한 감정평가를 미연에 방지한다.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15개 공시전문평가법인 중 하나로, 부동산 감정평가뿐만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기업 가치평가, 무형자산 평가, 공적 평가 등에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종합 부동산 서비스 회사다.
나를 바꾸는 시간
그는 ‘슈퍼 갑’으로 수십 년을 살다 이제는 ‘슈퍼 을’이 되었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머리 숙여본 적 없어요. 대통령이 와도 고개만 까딱하는 문화였어요. 아쉬운 게 없었어요. 남한테 부탁할 이유도 없었고요. 그런데 여기는 수주를 해야 되잖아요. 젊은 사람들한테 고개 숙이고 들어가서 영업도 해야 하고. 완전히 을이에요.”
어깨 힘을 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내도 항상 “당신은 슈퍼 을이니 그런 자세로 대처해라”고 조언한단다.
“그 물을 빼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상처받기도 하고. 저도 나이가 있는데, 제가 존대를 했는데 상대가 얕보면 기분이 나빴죠. 마음 삭여가면서 일해서 지금은 많이 순화됐어요.”
체질과 습관을 바꾸고, 냉대에 마음 아프던 시간을 감내하면서 사는 그를 보며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는 지난 공직 생활만으로도 경제적인 노후 대책은 이미 완비했다. 이 일을 생계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충까지 참아가면서 하는 이유는 뭘까?
“제가 퇴직할 땐 골프 치고, 등산 가고, 그런 생활을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그런데 아내가 이 일에 도전해보라고 권했어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남은 인생이 수십 년인데 아무 일도 없이 그렇게 사는 게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옛날보다 평균 수명이 늘었잖아요.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80~90세는 거뜬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단언한다. 일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사회생활인데 내 위치에 맞게 스스로 행동을 조절해야죠. 제가 고위직 출신이라고 어깨에 힘주면 밖에서 누가 알아주나요? 내가 숙여줘야 저쪽도 마음을 열죠. 그래서 지금은 아내 말 잘 들었다 싶어요. 아침에 가방 들고 출근하는 행복이 말도 못 해요. 남들은 다 오늘 뭐하지 하는데, 저는 맡겨진 일 하면서 활기차게 살잖아요. 사회적인 고충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병아리가 어미닭이 되기까지의 과정 중 하나니까 전혀 개의치 않아요. 감정평가사는 변호사나 변리사와 맞먹는 전문직이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고, 지금이라도 내 사무소를 개업할 수 있어요. 최고의 직업이죠.”
그는 인생을 통틀어 고시에 두 번 합격했다. 행정고시와 감정평가사 시험. 두 시험 공부할 때를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가 기억력이다.
“행시 준비할 때는 젊은 시절이라 머리가 좋았죠. 한데 지금은 기억력이 안 따라줘요. 공부하고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서 답을 못 쓰겠더라고요. 애 많이 먹었죠.”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고시촌에서 명운을 건 심정으로 전력투구하며 공부했다. 반면 감정평가사 준비는 달랐다.
“친구들과의 골프, 자전거 라이딩, 저녁 약속을 다 마다하기엔 삶이 너무 황폐해지는 듯했어요. 먹고살 게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틈틈이 공부하다 보니 준비 시간이 길어졌죠.”
6년이라는 긴 수험 생활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패혈증에 걸려 8개월을 투병하기도 했다.
“아내가 후회를 많이 하더라고요. 가만있던 사람 괜히 들쑤셔서 고생시켰다고요. 공부 좀 잘할 줄 알고 해보라 그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던 거죠. 게다가 패혈증까지 걸렸으니까요. 치사율이 50%인 질병이에요. 낫고 나니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기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생각은 한 적 없었다.
“만약 내가 죽거든 공부하던 책 같이 넣어서 태워달라고 했어요. 중간에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한이 돼요. 또 포기한다고 달리 할 것도 없었고요. 끝까지 가기로 맘먹었지요. 그러니까 결국 결실을 맺었죠. 포기를 안 하면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제 철학이에요.”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
함께 일하는 평가사들은 모두 그보다 한참 연배가 낮다. 나이가 많아도 40~50대. 함께 입사한 동기는 36세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노하우가 있을까?
“마음을 열어놓아야 돼요. 나이 들수록 아집이 생겨요. 몸에 밴 습관이 있어서요. 항상 오픈 마인드로, 낮은 자세로.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다가와요. 내가 나이 들었다고, 왕년에 어땠다고 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있으면 아무도 접근 안 하죠. 그럼 저만 손해예요. 외롭고. 그래서 항상 젊은 사람들 말을 많이 경청해요. 또 저는 말 안 놓고 깍듯이 대해요. 그리고 선배들한테 많이 의존해요.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면 다들 친절하게 잘 알려주세요. 이따금 실수하면 대신 잡아내서 고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항상 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러죠.”
그는 슬하에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은 20대, 아들은 30대로 한창 직장 생활 중이다. 자신들과 다름없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보며 무척 좋아한단다.
“공부할 땐 둘이 의견이 달랐어요. 아들은 제가 혹시 공부하다 잘못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만하길 바랐고요, 딸은 ‘아빠, 공부 안 하면 뭐하실 거예요. 계속하세요’ 했어요. 요즘은 둘 다 너무 좋아해요. 대화도 잘 통하고요. 저도 젊은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사니까 딸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요. 딸이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 얘기해주니까 도움 많이 받죠.”
그에게 자극받아 함께 도전한 친구도 있다. 그보다 여덟 살 어린 행시 동기가 자신도 도전해도 되겠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흔쾌히 하라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저는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어요. 이 친구한테는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도와줬죠. 친구는 작년에 합격해서 지금 법인에 다니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그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새 삶을 찾아 나선 이가 많다. 그에게 도전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더 길어질 거예요.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는데, 퇴직하고 나면 앞으로 그만큼이 또 남는 거예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거죠.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든, 취미를 발전시키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죠.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도전해야 해요. 그래서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기자를 바깥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는 매너가 좋았다. 연신 미소를 띠며 일상적인 대화와 소소한 칭찬을 건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가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떤 노고가 있었을지 가늠되어 새삼 특별하게 와 닿았다. 우여곡절도 겪었고 고충도 있지만 새 직업을 갖게 된 기쁨, 아침에 출근해 일할 곳이 있다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그. 2년 차 새내기 최기성 감정평가사의 앞날을 응원한다.
청년의 취업과 실업은 사회적 문제로 늘 언급된다. 하지만 출생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면 고령자 취업과 실업 문제를 마냥 두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은퇴가 노동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령화가 우리보다 빨리 진행된 해외에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해외의 중장년 취업 지원 제도를 살펴보자.
참고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난해 일본은 법 개정을 통해서 정년을 70세로 연장했다. 종업원들이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의 노력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올해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실제로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점 ‘노지마’(Nojima)는 근로자의 고용계약 상한 시기를 65세에서 80세로 연장했다. 65세가 된 근로자의 건강 상태와 근무 태도 등을 고려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예정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정년 연장을 통해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숙련된 노동자를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정년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정년이 연장되는 원인은 고령화 때문이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실제로 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대부분의 중위연령은 40세 이상이며,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 등은 50세에 육박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고령화가 진행된 상태다.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중위연령이 56.4세로 급격히 상승하여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고령화를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출산율 하락을 겪고 있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도 인구 고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느 국가도 고령화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고용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지난 10년간 OECD 평균적으로 55~64세 고령자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가별로 편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헝가리, 네덜란드의 경우 18%P 이상 증가했다. 반면에 아이슬란드의 경우 소폭 감소했으나 평균 80% 이상을 유지하며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종합하면 은퇴 이후에도 중장년의 취업은 세계적으로 활발한 상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은퇴자의 역량을 활용한 취업 프로그램이 민간 부문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각 나라에서는 중장년을 위해 어떤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까? 고령화 정책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다양한 일과 학습의 연계, 미국
미국은 중장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일과 학습의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지역사회 고용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일로써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이를 위해서는 이제껏 쌓은 역량을 발휘하여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삶의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다양한 학습 기회를 준다.
중장년의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창업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앙코르 이니셔티브’(Encore Initiative)을 운영한다. 50세 이상 예비 창업자를 위해 온라인 수업, 워크숍, 업무 관련 네트워킹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 특히 중장년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설한다. 예를 들어 50세 이상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경제 및 마케팅 지식, 자영업 상식과 관련된 교육을 한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는 교육 수준이 높은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 성과로 발생한 새로운 일자리는 삶의 의욕을 고취하고,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 활동 인구의 빈자리를 채워준다”고 말했다.
앞서 본 예와 같이 취업이나 창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역량을 발달시키거나 삶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교육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백투워크 50플러스(Back to Work 50+)와 로드 스칼라(Road Scholar)다. 전자는 새로운 역량 개발에 해당하고, 후자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백투워크 50플러스는 미국의 5곳의 전문대학에서 진행되며, 중장년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워크숍, 개별 코칭 세션, 컴퓨터 교육, 노후 재정 관리 등을 가르친다. 로드 스칼라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여행 프로그램이다. 야외 모험 활동, 테마 여행, 세대 간 프로그램, 여성 특화 프로그램 등 40여 가지 유형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매년 10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니어의 학습 욕구를 교실이 아닌 여행을 통해 구현하는 사업 모델이다. 김 교수는 “로드 스칼라는 일반 여행에 학문적 깊이가 더해진 프로그램이다”라고 설명했다.
경험과 기술을 활용한, 일본
‘노인들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세계적으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한국어판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일본이 28.4%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이탈리아(23.3%), 포르투갈(22.8%), 핀란드(22.6%)가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5.8%로 44위를 기록했다. 고령자의 비율만큼 고령자의 노동 시장 참여율도 높았다. 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노동 시장 참여율은 약 25%다. OECD 평균이 약 15%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이렇게 참여율이 높은 이유는 경제적·사회적 참여 욕구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63.6%의 고령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노동 시장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중장년은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70세 이상도 건강 문제가 없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70% 이상이었다.
일본은 앞으로도 고령화가 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들을 경제 활동의 주축으로 보고 있다. 고령자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민간과 지역 복지기관들이 연계해 다양한 취업과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고령 노동자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지 않게끔 보조하는 정책을 계속 확대할 전망이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것이 바로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과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쌓아온 조정 능력, 협상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종합관리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 재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도쿄일자리센터에서 주관하며, 대기업 및 중견기업 등에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쌓은 55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직무 유형은 7가지 직종(경영, 인사노무, 재무경리, 해외영업, IT시스템 관련, 기술관리)으로 구분된다. 취직에 성공한 시니어 중 시니어의 전문성이 직종에 합치된 경우는 약 70%이며, 비전문 영역으로 취직된 경우는 30%다.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의 보수는 근무 시간, 주간 근무 일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주 5일 기준으로 25만 엔(약 264만 원)에서 30만 엔(약 317만 원) 사이다.
한편 민간 영역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이다. 도쿄에 소재한 민간 주식회사 ‘퀼리티오브라이프’(Quality of Life)가 2006년 11월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대기업 전문 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에 경영 자문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조언자로서 경영지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50세 이상을 ‘생애 프로페셔널’로 임명한다. 이들은 고문 또는 어드바이저로서 기업의 여러 경영 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맡는다.
생애 프로페셔널은 2가지 효과가 있다. 일단 시니어 전문가의 경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근무 형태로 고문 소개 서비스를 활용하면 주 1회 등 은퇴 후 유연한 방식의 근무가 가능하다. 시니어 비즈니스 관계자는 “은퇴 후 역량을 보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시니어는 기업이 탐내는 인재가 될 수 있다. 국가와 더불어 기업이 상호 보완적으로 일자리 지원에 참여하면 시니어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해외의 민간에서 적용하고 있는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제도와 기관을 살펴보자.
해외의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제도 및 기관
시니어 네트워크
50세 이상 실직한 고령자로 구성된 비영리 사회혁신 조직이자, 덴마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네트워크 단체다. 실직한 고령 근로자가 네트워킹을 통해 노동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로 지역 내 잡센터(Job Center)와 협력하여 구직을 원하는 실직 고령자와 구인처를 연계하는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리스타트 프로그램
50세 이상의 구직자 중 6개월 이상 실업수당을 수령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고용주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고용 보조금 정책이다. 일주일에 최소 30시간 이상 일하는 중장년 근로자 1인 고용에 2년 동안 최대 1만 달러의 급여를 보조하는데, 최초 6개월과 12개월에 각 3000달러, 그리고 18개월과 24개월에 각 2000달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제3기 인생대학
전일제 고용에 속하지 않는 고령층의 학습 고취를 위해 만들어진 전국 단위 학습 조직이다. 고령층 인구가 자신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관심사를 나누기 위한 연결망이다. 시험이나 과제 등은 없다. 대신 정규 수업과 스터디 그룹을 통해 흥미가 있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 및 지식을 공유한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일반 직장의 상무(이사 포함)급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생 연륜으로는 지천명이라 이르는 나이이지만, 새내기 리더로서는 아직 경험하고 알아야 할 게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리더들이 겪을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슬기로운 해결책을 모색해봤다.
도움말 김성남 리더십 컨설턴트(‘아직 꼰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자)
“공정하게 했는데도, 매년 인사평가를 하면 결과를 수긍하지 않는 직원이 생겨요”
↳ 이미 결과가 나온 뒤 대처하기보다는 평소 관리가 필요한 문제다.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직원들이 자신의 인사 평가에 수긍하지 않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목표 수립이 잘못됐을 때다. 가령 직원의 의견이나 역량과 무관하게 상사가 임의로 목표를 정하거나, 지나치게 과도한 목표를 주거나, 애매한 목표를 설정해 후에 오해의 소지를 만드는 경우 등이다. 둘째, 피드백을 제때 하지 않아서다. 인사평가 결과 피드백도 필수이지만, 평소 적시에 하는 피드백도 중요하다. 인사평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실수나 업무 결과가 나왔다면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짧게라도 피드백한다. 이런 과정을 지나치면 직원이 자신의 과오는 쉬이 잊고, 좋은 성과 위주로만 기억하게 돼 인사평가 결과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효과적인 피드백을 위한 노하우
제때 자주 피드백하기: 인사고과 등 연 1회의 평가 때만 피드백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프로젝트 주기나 업무량 등을 고려해 적절한 피드백 타이밍을 잡는다.
피드백 미팅은 간소하게: 피드백이 길어지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반감을 갖게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90년대생의 67%가 적절한 피드백 시간을 5분 이내라 답했다.
데이터에 기반해 구체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더 노력해라’ 식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납득할 만한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목표도 함께 제시하기: 목표 없는 피드백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목표와 피드백을 함께 전달했을 때 업무 수행 향상 노력이 60% 증대된다.
사람과 행동 구분하기: 직원의 인격이나 가치관, 성향 등에 대한 언급과 비난은 삼가고 업무 관련 행동과 역량에 한정해 피드백한다.
잘한 것도 언급하기: 긍정 행동에 대해 칭찬을 먼저 해주면 피드백의 부정성이 완화된다. 그렇다고 억지로 잘한 점을 지어내 말할 필요는 없다.
미래지향적인 대화하기: 피드백의 근원적인 문제는 과거지향성에 있다. 문제에 대한 지적과 반성은 짧게 하고, 개선 방법을 제안한다.
“나이 많은 시니어 인턴을 뽑게 됐어요.조직원들과 잘 지낼까요?”
↳ 시니어 인턴의 경우 개인 역량이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직무 설계가 필수다. 상대적으로 난이도와 강도는 낮지만 경륜과 판단력이 필요한 일들을 주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교적 연장자에 대한 존중을 잘 하는 편이어서 갈등을 빚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적합하지 않은 직무와 역할로 인한 문제가 당사자와 다른 조직원의 불편을 초래하고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어른에 대한 공경 차원이 아닌, 시니어 직원 역시 회사의 인사정책에 따라 공평하게 대우하고, 결과 중심의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
“회식도 하고 사생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코로나도 우려되고 다들 거부하는 분위기네요”
↳ 직원들이 회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그 방식이 싫거나, 유대감 형성을 위한 자리에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경우다. 이런 회식은 오히려 역효과만 생긴다. 방식의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편안하고 유연한 회식 문화를 만들지 의견을 도모해도 좋겠다. 특히 요즘처럼 거리두기 상황에서는 ‘랜선 회식’이 유행이다. 줌이나 구글 미트 등에 접속한 뒤, 각자 원하는 음식을 배달해 식사를 하며 대화하는 형태다. 이때 식사비용은 회사나 리더가 지불한다. ‘괜찮을까?’ 싶겠지만 의외로 즐길 만하다는 반응. 이러한 회식 자리에서도 친밀감을 표한다고 사적인 부분을 자주 언급하는 건 좋지 않다. 업무 이외 대화가 하고 싶다면 가벼운 관심사 소재 정도가 적당하다.
조직원이 느끼는 간섭과 관심의 차이
•관심은 상대를 이해하는 행동이고, 간섭은 상대를 평가하는 행동이다.
•관심은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고, 간섭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관심은 듣는 사람의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간섭은 자아존중감을 낮춘다.
•관심이 없어지면 외로움을 느끼고, 간섭이 없어지면 해방을 느낀다.
•관심을 보이면 대화가 이어지고, 간섭을 하면 대화가 끊어진다.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죠? 리더도 때론 지치나봅니다”
↳ 리더가 지치고 힘들 정도로 업무가 많다는 건 혼자 일을 너무 많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적절히 업무를 나누고 위임해야 한다. 사실 리더의 위치 정도에 올랐다면 일의 의미를 못 찾거나 회의감이 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마음이 계속 든다면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 지금 일을 계속 해도 좋은지 등을 고민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심리·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현재 일의 의미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리더의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어떤 준비가 필요하죠?”
↳ 정년퇴직처럼 그 끝을 알면 계획적으로 준비할 수 있지만, 부득이하게 자리를 내려놓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어느 시점부터는 언제라도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중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징둥닷컴에서는 임원이 되고 3년 안에 자신의 후계자를 완벽히 육성해야 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일수록 그 규모에 따라 리더 인력도 많아져야 하기에,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세운 방침이란다. 그러니 임원급이라면 3명 정도, 팀장급이라면 1~2명 정도의 후계자를 미리 발탁해 업무 코칭 등을 선행하면서 이후의 삶을 준비하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