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광(64) 씨는 50대 중반부터 7년째 아파트 기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의료장비 무역회사에서 기술사업부 엔지니어로 오래 일했다. 전기·기계 등 다방면으로 능숙해야 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경력을 인정받아 기전기사로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 역시 선임인 전기안전관리자를 목표로 하면서 전기산업기사나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다. 이에 앞서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
정 씨는 “경력이 없는 사람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사실 기능사 자격증만 있으면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현실을 짚었다.
정진광 씨는 격일제로 근무하면서 자격증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야간에 혼자 동영상을 보면서 약 5개월간 독학했다고. 그는 “전부 다 암기 과목인데 자꾸 까먹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학 문제는 정말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기시험은 평소에 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진광 씨는 아파트 기전기사로 취업하기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경쟁률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이라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KT전화국에 다니다가 정년퇴직한 사람도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파트 기전기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수전 설비, 배수 설비 등은 물론 정전이 났을 때 발전기 수리, CCTV 및 인터폰 민원도 해결해야 한다.
“한마디로 아파트 기사는 맥가이버가 되어야 해요. 거기다 관리소 안에 있을 때는 입주민 민원 전화를 받고 처리하는 일도 하죠. 야간에 특히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층간 소음, 담배 냄새 등 사소한 민원이 많아요. 경비나 아파트 소장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으니 덜하겠지만 저희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마음의 수양이 덜 된 사람은 버티기 힘들어요. 주민들과 싸우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정진광 씨는 아파트 기전기사는 중장년이 하기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추천했다. 노동력이 강하게 요구되는 직업이 아니면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얘기했다.
“저는 현재 반장으로 월 300만 원 가까이 받고 있어요. 주 40시간 일하고, 격일제로 일해서 결국 한 달에 보름 근무하는 건데 300만 원 버는 것이면 적은 돈이 아니죠. 퇴직금, 연차도 다 있고, 공휴일에 쉬는 것도 장점이에요.”
그렇다면 전기와 관련된 전공자가 아니거나 경력이 없다면 기사 일을 하기 어려울까. 이에 대해 그는 “문과를 나와도 손재주가 있고 습득력이 빠른 사람들이 있다. 현장에서 부딪혀보고 자신한테 맞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70대 진입을 앞둔 정진광 씨는 현재 고민이 많다. 선임이 되면 70대까지 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전문 분야를 전기 쪽으로 살릴지 기계 쪽으로 살릴지 고심하고 있다. 정 씨는 최근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 수첩을 받았다. 900세대 아파트에서 근무 중인 정진광 씨는 내년부터 선임 자격을 갖는다.
“이 아파트에서 5년 동안은 선임으로 과장급 대우를 받는 거예요. 5년이 지나면 저도 70대인데 그 사이 전기기사나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자격증을 따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아파트 소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체온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체온이 1도 낮아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떨어진다고 한다. 암세포는 35도에서 가장 증식을 활발하게 한다고 한다. 결론은 체열을 통상적인 정상온도 36도보다 높은 37도가량 유지해야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체온면역설이다.
요즘 신문과 방송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 의사 사이토 마사시가 쓴 란 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0년 출간 이래 일본에서 80만권이나 팔렸다고 한다. 사이토 마사시는 일본인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양내과 전문의다. 그는 이 책에서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떨어지고 반대로 1도 올라가면 500~600퍼센트 올라간다고 강조한다.
이론적 토대는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도루박사가 제시했다. 일본 니가타대 의대에서 면역학을 가르치는 그는 체온저하가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이것 때문에 백혈구 가운데 림프구가 감소하면서 면역이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2004년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저서 을 통해서다.
우리나라에선 한의학을 중심으로 체온면역이론이 중시되고 있다. 2015년 12월 14일자 한 신문에 따르면 메르스 유행 시 환자들의 체온이 신기하게도 36.5도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의사의 고백이 나온다. 처음에는 체온계 고장을 의심했지만 체온계는 정상이었고 환자들의 체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폐암을 앓다 완치된 환자의 사례도 나온다. 진단 시 체온이 35.8도였지만 수술과 생활습관으로 완치되어 11년째인 요즘 37도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스나 폐암이 체온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체온과 면역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정말 체온이 떨어지면 질병에 걸리고 체온을 높이면 건강에 도움을 줄까? 나는 체온면역설이 몇 가지 관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들이 말하는 체온의 정의가 모호하다.
알다시피 체온의 종류는 다양하다. 구강체온, 직장체온, 피부체온까지 측정 부위에 따라 다르다. 생리학 교과서를 보면 직장체온은 대단히 안정적이다. 나체로 건조한 공기에 노출될 때 11.7도에서 54.5도까지 0.6도 안팎으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구강과 직장에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극심한 추위에선 35.6도까지 떨어지고 극렬하게 운동할 땐 40도까지 오를 수 있다. 피부체온은 가장 변동 폭이 크다. 보통 적외선 카메라로 측정하는데 외계온도에 따라 10도 이상 춤을 춘다. 추운 겨울에 재면 내려가고 더운 여름에 재면 올라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피부체온이 대개 구강과 직장보다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피부체온은 실온에서 잴 때 보통 33도이며 구강체온은 36도, 직장체온은 37도를 보인다.
기사에 말하는 메르스 환자의 체온을 어떤 방식으로 쟀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동일한 환경에서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기사에선 누가 몇 명을 대상으로 어떻게 측정했는지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피부체온이라면 당연히 낮게 나올 수 밖에 없다.
둘째 면역의 정의가 모호하다.
면역은 대단히 어려운 주제다. 아직까지 면역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 백혈구 숫자나 아드레날린 수치 등 몇 가지 작은 지표 하나를 갖고 면역이 올라갔다 혹은 내려갔다 단정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면역이 무엇을 말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이토 마사시의 책을 구석구석 읽어보았지만 어디에도 면역이 어떤 방법으로 측정한 것인지 설명이 없다. 대단히 단순하게 서술되어 있다. 14페이지에 “체온이 1도만 내려가도 면역력은 30퍼센트나 떨어진다”라고 나와 있다. 앞뒤 아무런 설명이 없다. 왜 20퍼센트도 아니고 40퍼센트도 아니고 하필 30퍼센트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15페이지엔 “반대로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은 무려 500~600퍼센트 올라간다”고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 설명이 없다. 숫자에 대한 설명은 물론 왜 그러한지 기전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나의 말이 곧 진리니까 그대로 믿으라는 것처럼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보 도루 박사의 책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그는 백혈구 안에 림프구와 과립구 숫자의 비율로 설명했다. 체온이 내려가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림프구의 비율이 줄고 그래서 면역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면역=림프구 비율’로 바라보는 단순함에 놀랐지만 그래도 약간이라도 그럴 듯한 설명을 해준 게 어딘가 싶다. 마찬가지로 그의 책 어디에서도 30퍼센트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다.
셋째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경우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백번 옳아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이 떨어진다고 해도 체온저하가 정말 면역저하의 원인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통계적 연관성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원래 질병이 있거나 몸이 안 좋으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다. 체온저하는 몸이 안 좋거나 질병이 있어서 나타난 하나의 결과일 뿐인데 겉으로 보기에 몸이 좋지 않게 된 혹은 면역이 떨어진 원인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내놓는 대책이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운동해서 근육을 키우라고 말한다. 여기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 면역을 포함한 우리 건강에 도움될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과정이 틀렸다. 엉뚱하게 체온을 끌어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체온은 대뇌 깊숙이 위치한 시상하부가 관장한다.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게 정상이다.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인간은 항온동물임을 기억해야한다. 체온은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둘다 바람직하지 않다.
서적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국내언론의 보도도 문제가 많다. 메르스 환자가 체온이 낮았다는 기사는 어이가 없다. 어떤 연구기관에서 어떤 방법으로 몇 명을 대상으로 측정했더니 결과가 어떠했다는 기본적인 팩트도 나와 있지 않다. 그냥 ‘익명의 누가 그러더라’라고만 기술하고 있다.
폐암 환자 완치사례에 대한 기사도 단지 한 사람의 케이스만으로 전체 폐암으로 일반화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암세포가 35도에서 가장 잘 자란다는 이야기도 금시초문이다. 전 세계 유력 학술잡지의 논문들을 모조리 뒤져도 그런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해도 시험관 실험에서의 결과일 뿐이다. 암환자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몸에서 35도란 체온은 추운 환경에 오래 노출되어 저체온증이 시작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
체온면역설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본 건강서적의 무분별한 수용이 불러온 해프닝의 하나다. 사람들은 운동하고 금연하라는 뻔한 이야기에 식상하다. 그러다보니 이색적인 주장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가끔 이를 부추기는 전문가들이 있다. 박사나 의사, 대학교수 가운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근거주의에 입각해야 하며 근거가 없다면 의학적 개연성에서만이라도 보편타당하게 납득되는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언론도 건강 관련 보도에서 흥미 위주에서 벗어나 신중하고 객관적일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고건 전 총리께서 명지대 총장을 맡고 계시던 1996년 5월 어느 날 총장실에서 당시 공과대학장을 맡고 있던 필자에게 다음 날 12시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홀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가보니 Y사범 등 바둑계 인사 몇 분과 처음 보는 정부 고위관료 몇 분 등이 모여 대학에 바둑학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나온 분들은 바둑계 인사 외에도 거의 다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어서 이야기는 대개 긍정적으로 흘러갔지만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났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 대학에서 나온 사람은 총장과 필자뿐 아닌가? 그래서 총장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죠?”라고 여쭈었더니 “임 학장이 알아서 해”라는 한 말씀뿐이었다.
필자는 바둑을 무척 좋아했고 기력도 아마 5단 정도로서 학교 내에서는 최상위권이었지만 과연 바둑학과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날 모임 이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물어 보았으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전 세계에 보급을 시작하여 명실상부한 종주국으로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된 태권도 생각이 났다. 사실 바둑은 중국에서는 이미 두뇌스포츠로 체육부에서 관리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언젠가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해야겠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바둑은 일본을 완전히 제압했고 중국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해 우리가 최강국이었으므로 앞으로 유능한 바둑지도자를 많이 양성하여 전 세계에 파견함으로써 바둑도 우리나라가 종주국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바둑학과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기획실장과 협의하여 대학 정원조정 신청 때 바둑학과 신설을 요청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교육부에서 온 공문에는 무슨 과 몇 명이 아니라 정원 증원 야간 40명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이것을 논의하던 교무위원회에서는 바둑학과는 어차피 예체능대학이 있는 용인캠퍼스에 두어야 하는데 야간으로 하면 누가 지원이나 하겠느냐며 물 건너간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원조정 신청에는 경기지도학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과라면 야간도 관계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예체능대학장에게 바둑학과가 설립되면 어차피 예체능대학 소속일 수밖에 없으니 야간정원 40명을 전부 예체능대학에서 가져가고 주간정원 20명만 양보해서 바둑학과를 설립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교무위원들은 적극 찬동했으나 예체능대학장은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교무위원회에서 예체능대학장이 동의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설립될 수 있었다.
그러자 총장께서 학사학위 이상의 프로기사 중에서 교수요원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필자는 바둑학과 설립 추진과정에서 당시 한국기원 사무국장을 맡고 계셨던 정동식 사범을 여러 번 만났다.
정 사범은 학사학위 소지자이고 수학교사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1975년부터 동아일보 관전기를 맡아 20여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필해 왔으며 수년간을 한국기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바둑계 전반에 걸쳐 폭 넓은 기반을 가지고 있어 필자는 정 사범이야말로 바둑학과 교수요원으로 적임자 중의 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정 사범에게 교수로 올 것을 제안했으나 정 사범은 교수자리가 탐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기원 사무국장도 매우 중요한 자리라면서 발령권자가 자기를 내보내지 않는데 먼저 떠날 수는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러면서 기전(棋戰) 성적도 비교적 양호하고 학사학위도 있으며 이론에도 매우 밝아 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정수현 8단(당시)을 추천하였다.
한국기원에 교수요원을 추천해 주도록 공문을 보냈으나 막상 회신에는 정 8단은 빠진 채 다른 학사 프로기사인 S 사범과 H 사범을 추천해왔다. 그래서 정 국장에게 문의해 보니 정 8단에게 연락을 했지만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의 이력서를 총장께 보여 드렸으나 영 마음에 안 드셨는지 “임 학장, 더 나은 사람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정수현 8단이 적임자로 생각되나 본인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또다시 필자보고 알아서 해 보라셨다. 그래서 정 8단을 만나, 교수란 하고 싶다고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몇 년씩 고생해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교수가 되지 못해 줄 서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서, 기전만 해도 그렇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적을 좀 내고 있는 것은 알지만 아직도 이창호 9단이 굳건히 버티고 있고 이세돌 초단(당시) 같은 소년강자도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 벽을 얼마나 넘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생겼고 당신은 프로기사 중에서 교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니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당신은 기전에서 성적을 내기보다는 바둑학과를 잘 키우는 것이 당신을 위해서도 바둑계를 위해서도 더욱 큰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설득을 했다.
그리고 이 제안을 수락한다 해도 대학도 당신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해서 적어도 한두 학기는 겸임교수로 발령을 내고 조율해볼 시간을 가져야 할 터이니 그동안 충분히 겪어보고 생각을 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8단은 시간을 좀 달라고 하더니 해 보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이렇게 해서 교수라는 별명을 가졌던 정수현 9단(1997년 승단)이 진짜 교수가 되어 학과장을 맡게 됨으로써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순조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