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3

“정원은 인생 2막의 스승”

입력 2026-07-13 06:00

[북인북] ‘꽃을 보다, 마음을 듣다’ 김현호 작가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도 함께 즐겨보세요.

(정원의) 이 의자는 우리 부부가 하루의 태반을 보내는 자리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우리는 의자를 들고 정원을 떠돈다. 여름에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복숭아나무 아래로 찾아들고, 햇볕이 따스한 늦가을에는 정원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봄의 장미 노발리스가 보랏빛 꽃을 피우면 그 곁으로, 초여름의 아마릴리스가 화려한 얼굴을 내밀면 그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꽃을 보다, 마음을 듣다’, 14~16p

은퇴 후 삶은 또 다른 시작이다. 김현호 작가는 38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가 정원을 돌보고 상담학을 공부하며 살고 있다. 흙·나무·꽃의 자연과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라는 토양 역시 가꾸어간다.

▲김현호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김현호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경기도 양평의 한적한 마을. 김현호 작가의 전원주택 대문을 열면 푸른 잔디와 형형색색의 꽃·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이 펼쳐진다. 992㎡(약 300평) 규모의 이곳은 처음부터 정원은 아니었다. 여느 은퇴 후 귀촌한 사람들처럼 채소를 기르던 텃밭이었다. 하지만 2년여 전 전원생활에 지친 아내가 도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돼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부부가 잔디를 심고 꽃을 가꿔 지금에 이르렀다.

김 작가의 삶을 바꾼 또 다른 존재는 상담학이다. 그는 상담대학원에 진학해 청소년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정원과 상담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듯 꽃과 나무를 들여다보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체로키 산딸나무의 강인한 생명력, 불두화의 비움, 잔디의 겸손함, 부추의 꼿꼿함은 삶의 지혜를 일러줬다.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배운 그는 결국 ‘나’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

‘꽃을 보다, 마음을 듣다’는 그렇게 쌓인 기록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에는 정원에서 길어 올린 사색을, 2부에는 꽃들이 건네는 삶의 가르침을, 3부에는 정원을 통해 더욱 깊어진 인간관계를 담았다.

결국 이 책은 노년의 성찰을 담은 생활 에세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나의 정원은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에 김 작가는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원을 찾아 가꾸어가기를 권한다.

▲김현호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현호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은퇴 후 양평에 삶의 터를 잡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귀촌은 늘 마음 한편에 있었습니다. 은퇴와 함께 자유로운 몸이 되자 잠재돼 있던 전원생활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된 거죠. 특별한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왔어요. 지금 집에 정착한 지는 8년 됐고, 그전에도 10년 정도 양평에서 주말 주택 생활을 했습니다. 전원생활의 준비기간이 꽤 길었던 셈이지요. 정원을 가꾼 지는 2년 정도 됐네요.

정원에서의 일상은 어떤 즐거움을 안겨주나요?

정원의 모든 일이 즐겁습니다. 어떤 꽃과 나무를 심을지 고민하고, 화원을 찾아다니고, 묘목을 심고 돌보는 과정 자체가 행복입니다.

매일 아침 정원 속 꽃과 나무들이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실제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웃음) 꽃과 나무가 잘 자라는지 살펴보다 보면 제 마음도 함께 따뜻해진답니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안타깝고, 꽃을 잘 피운 녀석은 대견하죠.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생명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애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잡초를 뽑을 때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노동의 즐거움도 느끼고, 운동도 되고 일석삼조 아니겠어요.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 같은 식물’은 무엇인가요?

제각각의 나무와 꽃이 주는 의미와 감동이 다르니 어느 것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네요.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가장 신경을 썼고 애를 태웠던 체로키 산딸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 겨우내 거의 동사했던 나무가 다른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떨어뜨릴 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어요. 봄이 다 지나서야 눈에 보일락말락 한 점 같은 새순을 내고, 그게 자라나는 과정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지켜보면서 생명이라는 게 정말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여름철 꽃이 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여름이 되면 장미를 비롯해 많은 꽃이 시들기 시작합니다. 시든 꽃은 바로바로 잘라줘야 해요. ‘데드 헤딩’이라고 하지요. 보기 좋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식물이 씨앗을 맺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새로운 꽃을 피우는 데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시든 꽃을 잘라내는 일 자체는 힘들지 않은데 마음은 조금 착잡해집니다. 사람도 시들면 빨리 사라져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저는 지는 모습이 멋진 꽃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정원과 상담, 무엇이 닮았을까요?

은퇴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체계적으로 알고 싶었지요. 상담학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를 알아야 타인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원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꽃과 나무를 가꿀 때는 그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배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물과 비료를 많이 준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소통과 이해, 애씀과 돌봄, 그리고 기다림. 이런 게 정원을 가꾸는 일이나 사람을 이해하는 일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으로 인해 부부 사이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전원생활 이전과 이후의 삶은 확실하게 바뀌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정원을 가꾸며 일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죠. 꽃과 나무 얘기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갑니다. 무엇보다 정원을 가꾸면서 제가 많이 편안해지고 너그러워졌어요. 예전에는 상대의 말이 길어지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묻곤 했는데, 이제는 끝까지 듣습니다. 아내도 대화가 좋아졌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일까요. 출판된 후 읽어보니 첫 번째 ‘두 의자’ 파트 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어요. ‘우리 부부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정원을 떠도는 노마드(유목민)’이라는 말이 지금 우리의 삶을 잘 표현했다고 봅니다.

과거의 영광이 그리운 순간은 없나요?

지나온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는 부분이 왜 없겠어요. 그러나 그걸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책에 그런 내용이 없는 이유는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과거의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를 하는 데도 지면이 부족했으니까요.

40여 년 언론인으로 살다가 이제 전원에서 정원을 가꾸고 상담을 공부하면서 책도 내고 하니, 지금의 삶이 얼마나 새롭고 신나겠습니까. 과거는 현재의 나를 풍요롭게 만드는 토양이지만, 내가 돌아가거나 머물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와 정원 가꾸기에 전념하는 동안에는 내가 의식해야 할 외부의 시선이라는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대신 정원의 꽃과 나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게 곧 나 자신과의 대화임을 깨닫는다. 나와의 대화가 깊어질수록 삶의 철학과 태도가 변하게 마련이다. 정원은 나에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때로 신비로운 공간으로 다가온다. 분명 내가 정원을 가꾸는 데도 가만히 보면 정원이 나를 가꾸고 있다. 그래서인가. 나의 수많은 직책 중 정원사*에 가장 애착이 간다.

*작가는 은퇴 후 기사, 비서, 집사, 정원사라는 새로운 직책이 생겼다고 말한다.

- 꽃을 보다, 마음을 듣다’, 211p

누구나 정원을 가꿀 수 있을까요?

정원의 핵심 의미는 아름다움과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의 크기나 식물의 종류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요.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 속 꽃 한 송이에서 아름다움과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면 그게 곧 그 사람의 정원 아닐까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정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베란다의 정원을 잘 가꾸다가 때가 오면 전원에다 펼쳐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저처럼요. 하하.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책 속 글은 정원에 앉아 있다가, 지하철에서 이동하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쓴 거예요. 누구를 가르치려는 것도, 전원생활을 추천하는 것도 아닌 그냥 제 생각의 기록이죠.

정원을 가꾸면서 감정이 풍부해지고, 나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짜 행복해지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만은 꼭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이미지=이은숙 기자)
(이미지=이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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