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90명의 남성 합창자로 이뤄진 국내 최대의 남성 합창단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체 이마에스트리. 그 이마에스트리의 창립자이자 음악감독이 바로 지휘자 양재무(61)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트렌토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귀국,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 가수로 활약했던 그는 작금의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이마에스트리를 이끌고 특별한 공연을 했다. 지난 5월 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코로나19 극복 희망 콘서트’가 그것이다. 엄중한 시국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던 공연이었다. 그를 만나 음악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나오는 와중에 코로나19의 완화를 기원하는 공연들이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방역 선도국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시대의 공연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롤 모델을 시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해 열린 코로나19 극복 희망 콘서트 또한 그러한 기획의 일환이었다. 대한간호협회, 대한의사협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의료진과 가족들을 무료로 초청해 열린 이날 공연에는 배우 양희경의 사회로 양재무 감독이 이끄는 남성 합창단 이마에스트리(I MAESTRI)의 바리톤 고성현,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 등이 무대에 올랐다.
코로나19 극복 희망 콘서트, 공연계의 롤 모델 기대
“코로나19 극복 희망 콘서트는 생활 방역으로 넘어가면서 가능해진 공연이죠. 그동안 사람을 모으기 어려워 큰 공연장에서도 취소된 공연이 많았어요. 지방의 많은 문화회관, 극장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죠.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통해 예술의전당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는 게 있었죠.”
예술가다운 굵고도 시원시원한 인상의 양재무 감독은 코로나19 극복 희망 콘서트에서 60명의 합창자들을 동원해 편곡한 오페라 가곡들과 강산에의 ‘명태’, 양희은의 ‘상록수’ 등을 들려줬다. 이마에스트리의 총 멤버는 90명. 이 정도 규모의 남성 합창단은 전 세계에서 이마에스트리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 개개의 면모도 오페라 주역 가수를 맡을 정도의 국내 최정상급 성악가들이다. 그래서 이름에 마에스트리가 붙었다. 이마에스트리는 ‘장인들’을 뜻하는 용어로 이탈리아어 ‘마에스트로’(maestro)의 복수형이다. ‘마에스트로들이 모였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의 음악으로 통하게 하고 싶다
지금 케이팝(K-POP)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의 대처 성공 덕분에 국격도 올라간 상태. 이마에스트리의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프로페셔널함과 독보적인 규모를 보면, 클래식에서도 한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케이팝 덕분에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네임 밸류가 높아졌어요. 덕분에 저희 밸류도 함께 상승하는 중이죠. 그리고 코로나도 그래요. 유학을 갔다 온 이탈리아에서도 제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예요. 시장이 편지로 마스크와 진단 키트를 요청하더군요. 그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어요. 예술의 본토인 유럽에서도 그런 영향이 있을 정도니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에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도 좋은 콘텐츠로 유럽에 접근하면 좋을 것 같고요.”
6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마에스트리가 창단 15주년을 맞이했다. 긴 시간 동안 이 독특한 단체를 지휘해 온 그에게 소회를 물어봤다.
“모여서 뭔가 하다 보면 좋은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협회는 아니지만 연주회를 같이 해보자는 취지로 모였죠. 창단 멤버는 45명이었는데 사실 이렇게 많이 모이기가 힘들어요. 우선 어려운 점은 모두가 개성이 강한 분들이라는 데 있죠. 부딪치는 부분들 튜닝하고 서로 양보하고 연주의 솔로 부분을 누가 맡느냐도 많이 생각해야 했어요. 두 번째로는 경제적 어려움이에요. 연습실도 없이 개인이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하다 보니 그런 어려움이 하나하나 해결되더라고요. 워낙 없는 콘텐츠였기에, 저희가 럭키했던 거 같아요.”
적극적인 편곡이 감동을 만든다
성량이 풍부한 오페라 가수들이 남성 4부 합창을 한다는 건 언뜻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그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합창단이라고 소개했다. 이마에스트리처럼 대규모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음악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양 감독이 편곡을 맡았다. 그런데 그렇게 대규모 남성 합창곡으로 편곡된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하자 그 자체가 차이이자 이마에스트리의 특징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청산에 살리라’는 굉장히 좋은 곡인데, 간주의 역할이 약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차르트, 베르디 등이 사용했던 테크닉을 넣어서 편곡을 가했죠. 또 ‘비목’ 같은 경우는 이름 없는 전사자이지만 살아 있을 때는 용맹한 군인이었으리라 생각해서 ‘전선을 간다’라는 곡에서 남자 휘파람 소리를 전주에 넣어 편곡을 했어요. 어렸을 때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보며 휘파람으로 부르는 군인들의 노래가 가슴에 와 닿았는데 그게 모티프였죠. 그렇게 편곡된 ‘비목’을 들려주니 군대 갔다 온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게 되고, 아련함과 용맹함을 함께 아우르는 버라이어티한 결과가 나오더군요.”
그는 이마에스트리의 공연에 대한 대중의 만족도가 200%는 된다며 자부심을 느끼는 듯 말했다. 여러 나라에서 공연해본 결과 어느 나라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가 감동하는 걸 확인해서다.
슈베르트가 섰던 무대에서 ‘마왕’을 연주하다
“다녀온 해외는 열서너 곳 정도. 연주는 스물세 번 정도 했죠. 그때마다 매우 많은 걸 전달하고 왔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인의 연주력이 그렇습니다. 빈에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세계 최초로 남성 4부 앙상블로 노래한 적이 있어요. 빈은 음악적 프라이드가 높아서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하는 게 걱정됐었죠. 그런데 어차피 넘어야 할 강이라면 넘어가자는 판단으로 하게 됐어요.”
‘마왕’은 시벨리우스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게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던 양 감독은 남성 4부 합창으로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한다. 그리고 편곡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헨델의 ‘메시아’도 성경 구성 그대로 하지 않고 헨델이 생각했던 오라토리오 구성에 맞도록 내용을 재구성했거든요. 그래서 ‘메시아’를 보면 내용이 구약과 신약을 왔다 갔다 해요. 저도 ‘마왕’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재배치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편곡을 했죠.”
결과는 성공이었다. 새롭게 편곡된 ‘마왕’에 빈의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10여 분간 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우리의 노래, 세계에 소개하고파
양 감독은 1960년생, 올해 예순한 살이다.
“수염 깎으려고 거울 보면 가끔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그런데 나와서 일하며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전혀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음악가들은 연습에도 자기연마에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려 있어야 해요.”
그의 열린 생각은 철저하게 개방적이란 점에 있다. 이마에스트리 멤버들 또한 전 세계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들이라 다양한 언어와 장르가 소화 가능해 레퍼토리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한다.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는 노사연의 ‘만남’, 조용필의 ‘친구여’ 등이에요. 그리고 ‘꿈’. 조용필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는지…. ‘꿈’을 L.A.에서 연주했는데 ‘우리도 꿈을 갖고 왔다. 여러분도 꿈을 갖고 L.A.에 왔을 텐데 참 어렵다. 행운이 있길 바란다’라고 말하니 L.A. 교민들이 울었어요. 그들을 보며 우리도 울었죠. 조용필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그분 노래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세계화하고 싶어서예요.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면 세계어로 번역되거나 가곡화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는 이탈리아 가곡 악보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좋은 가곡들을 공유하자는 차원에서였다.
“성악가는 누구나 봅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제가 출판한 악보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경제적으론 하나도 도움이 안 되지만.(웃음) 그런데 어쩌면 저는 이렇게 돈을 못 벌까요?(웃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지금까지 부족하지는 않았어요. 흡족하진 않은데 모자라서 빚을 지거나 하진 않았으니까요.”
모두가 감동할 수 있는 공연 위해 도전
양 감독은 자신을 돌아볼 때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음악적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마왕’을 기획한 것처럼 모두가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데 자신의 강점이 있다는 그의 진단이야말로 계속해서 ‘큰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베토벤이 8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9번을 작곡할 때까지 11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죠. 그렇게 만들어진 9번 교향곡의 궁극적 메시지는 인류가 하나가 되어 환희를 부르라는 것이었죠. 그 메시지야말로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그런 걸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언젠가는 통일이 될 텐데 무엇으로 우리의 감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역시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싶죠.”
그는 야외에서 공연하다 보면 우리나라 관객이 아직 감상의 문화, 보기만 하는 문화에 갇혀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걸 다 같이 합창하는, 함께 노래하는 문화로 만들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감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코로나 극복 음악회를 전국 단위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 성과를 통해 세계 무대로 나갈 수도 있고요.”
평화를 위한 판문점에서의 연주, 중국과 도쿄에서의 연주, 평양에서의 음악회를 꿈꾸는 그의 비전은 아직 할 과제가 많아 보였다. 그는 그 꿈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할 계획이다.
“쉬어야 창의가 솟는다는 말에는 동의 못하겠어요. 머리가 안 좋으면 손발이 고생한다는데 제가 그 경우거든요.(웃음) 쉬면 안 되는 타입이에요.”
이렇게 늘 유쾌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인 그이기에 나이 듦이 걱정스럽기보다 기대가 된다.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죽음을 다룬 대표적인 낭만적 비극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탈리아 북부지방에 있는 ‘베로나 Verona’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아디제 Adige’ 강이 유유히 흐르는 이곳은 로마 시대 유적뿐만 아니라 중세 이후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주황색 지붕의 아름다운 도시다. 특히, 소설 속 ‘줄리엣의 집’을 구경하기 위해 매년 수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관광을 온다.
평화로운 아디제 강변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거리,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든 눈물겹게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에 반했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골목을 걸을 때면 평온과 안도감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평화와 따스함이 오래 지속할 것으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시들이 공통으로 지닌 카리스마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가 베로나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만 이탈리아 전체의 절반이 넘는 1만 2050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2020.04.19. 기준)
베로나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여분 정도 거리에 있는 ‘베르가모 Bergamo’라는 공업 중심 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식으로 세련된 도시인 ‘치타 바싸 Citta Bassa’(아랫마을)와 오래된 고전적 도시인 ‘치타 알타 Citta alta’(윗마을)가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치타 알타의 경우 오래된 성채와 함께 마을 전체가 잘 보존되어 있는 북부지방 예술의 도시다.
하지만 이곳 역시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코로나19’피해가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지역 신문 14면 중 10면이 부고 기사일 정도다.
내 기억 속의 베로나와 베르가모가 아프다. 하루빨리 2020년의 잔인한 봄이 갔으면 좋겠다. 사랑의 도시로, 영원한 사랑의 은유 장소로 어서 회복되길 희망한다.
베로나의 성문 격인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 Porta Nuova Verona’를 지나면 베로나에서 가장 큰 ‘브라 광장 Piazza Bra’이 나타난다. 광장의 끝에는 로마 시대(AD 1세기 경)에, 지어진 ‘베로나 아레나 Arena DI Verona’가 있다. 3층으로 이루어진 3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이다.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 큰 규모로 잘 보존되어 있다.
해마다 이 경기장에서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베르디, 푸치니 등의 오페라 작품을 공연 한다. 이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서 멀리 독일에서도 관객들이 온다. 2020년에도 ‘나부코 Nacco’ ‘아이다 Aida’ ‘투란도트 Turandot’ 등의 오페라 공연 계획이 잡혀있다.
한여름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아리아의 소리를 만나고 싶다. 아레나에서 울려 나오는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기억 속 베로나와 베르가모의 슬픔이 치유될 것만 같다.
가족과 함께하는 싱그러운 5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공연) 나빌레라
일정 5월 1~12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강상준, 이찬동, 진선규, 최정수 등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다음(Daum)’ 웹툰 연재 순위·독자 평점 1위에 오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발레를 소재로 청년과 노인의 교감과 성장을 그려낸 이 작품은 ‘세대 간 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축제) 제45회 보성다향대축제
일정 5월 2~6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보성차밭 일원)
보성다향대축제는 영화 및 CF 촬영지로 유명한 보성차밭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사진촬영대회, 녹차요정 퍼포먼스, 녹차 스탬프 투어, 화관 상상 무도회 등의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이외 녹차비누·녹차향초 만들기, 한지공예 등 다채로운 체험도 할 수 있다. 잔디공원에는 관광객이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린티 쉼터’도 마련돼 있다.
(콘서트) 2019 조수미 콘서트 ‘Mother Dear’
일정 5월 8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늘 재미있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성악가 조수미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인다. ‘맘마미아’, 이탈리아의 어머니 노래, 한국의 창작가곡 등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들을 중심으로 따뜻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겸 기타리스트인 ‘페데리코 파치오티’도 함께한다.
(오페라) 오페라가 들리는 48시간 이탈리아 여행
일정 5월 12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소프라노 홍혜란, 테너 최원휘, 해설 김문경
휴양의 도시이자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 위주로 구성되며 해설자 김문경이 음악 중심의 이탈리아 5개 지역 명소를 소개하며 숨은 이야기도 들려줄 예정이다. 따스한 봄, 낭만적인 음악 여행을 떠나보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일정 5월 17일~7월 14일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 삼성전자홀) 출연 김소현, 김우형 등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주인공 ‘안나’를 통해 보편적인 삶의 가치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실제 스케이트장 같은 무대 연출, 원작 공연에 출연한 러시아 스케이터도 참여해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페라) 가족과 함께하는 금난새의 오페라 이야기
일정 5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금난새, 김순영, 김성현, 유동직 등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를 ‘콘서트오페라’로 특별 구성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와 의상 없이 콘서트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금난새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줄거리를 따라 작품 속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아리아의 선율에 빠져보자.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지만, 한낮엔 매우 따스한 봄기운이 도는 요즘. 화창한 일요일 오후, 멋진 오페라 한 편을 감상하러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매우 즐겁다.
공연은 언제든 기분을 좋게 만든다. 뮤지컬도 좋고 오페라도 멋지다. 뮤지컬은 화려하고 경쾌한 무대가 기대되지만, 오페라는 어쩐지 클래식하고 웅장해 조금은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전에도 몇 편 감상한 적이 있어 친근한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 본 작품은 ‘가면무도회’다.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맞아 2018 제9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품으로 총 4회 중 마지막 날 공연을 관람했다.
‘가면무도회’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어쩜 인생은 이렇게도 바른길로만 가지 못하고 애틋하게 얽히고설키는 건지, 애절한 내용에 가슴이 아팠다.
‘가면무도회’는 3막으로 인터미션을 포함해 170분 동안 펼쳐졌는데 배우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감동이 매우 컸다. 평소 노래를 좋아해 자주 부르지만 서너 곡만 해도 숨이 가쁘고 힘이 드는데, 긴 시간을 쉬지도 않고 열창하며 연기하는 성악가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
좌석이 무대 정면에서 일곱째 줄인 VIP석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어로 진행되어 자막을 봐야만 했는데 너무 높은 천장에 자막판이 있어 내용 보랴 무대 연기 보랴, 공연을 감상하기에 조금 힘들었다. 자막에 눈길이 자연스럽게 가도록 배려했던 다른 오리지널 공연과 비교해 너무 높은 곳에 설치한 자막판은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라 생각한다.
‘가면무도회’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 주제이다. 하필이면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보스턴의 총독 리카르도는 그가 가장 신임하는 비서관이자 친구인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를 남몰래 사랑하게 되면서 고뇌에 빠진다.
리카르도는 백성을 현혹하고 있는 흑인 여자 점쟁이 올리카를 처형해야 한다는 판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종 오스카의 변호를 확인하기 위해 어부로 변장하고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아멜리아가 리카르도 자신을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고백하는 말을 엿듣게 되고 자신 또한 가슴속에 간직했던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한다.
한편 점쟁이 올리카는 리카르도에게 지금부터 처음 악수하는 사람에게 살해당할 거라고 예언하고 그때 마침 뒤늦게 도착한 레나토가 총독을 음해하려는 음모로부터 무사함을 기뻐하는 악수를 청한다.
충성을 맹세한 레나토였기에 그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레나토는 결국 총독과 아내와의 관계를 알게 되고 배신감에 복수를 결심한다.
리카르도는 레나토를 진급시켜 아멜리아와 함께 고향으로 떠나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알 리 없어 마지막 가면무도회에서 레나토는 예정대로 그를 찌르고 만다. 죽음의 앞에서 리카르도는 아멜리아의 결백을 증명하며 동시에 레나토를 용서한다고 말함으로써 백성에 대한 총독으로서의 마지막 사랑을 베풀며 숨을 거둔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연주되는 곡과 노래로 안타까움이 고조되며 마음이 아팠다. 왜 인생은 엇나간 사랑을 하게 해서 이런 비극을 초래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극적인 사랑이 있어야 밋밋하지 않은 재미있는 인생 이야기도 전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에 마음 졸이며 감상한 비극 오페라 ‘가면무도회’였다.
모델!
시니어들에게 차별화된 자부심을 심어주는 명칭이 아닐까?
'나 이렇게 멋지다!'
패션쇼를 할 때 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으로 빛난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모델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로망이다. 요즘은 남성들도 많은 관심이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은퇴 후 재정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를 강력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없을까?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2012년 퇴직하면서 무엇을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놀까 고민했다. 필자가 하고 싶은 것은 패션모델과 패션디자이너, 왈츠와 탱고 배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이었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곳은 서울이었다. 필자가 사는 평택은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울로 가자! 그래서 집을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는 곳은 강남시니어플라자와 서초문화원이었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영어회화, 수필 쓰기, 시 낭송하기, 문화해설사, 왈츠 과목을 수강했다. 모델 워킹 수업은 서초문화원에 없어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받기로 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 프로그램 중에서 상한가를 친 것은 단연 '모델 워킹'이다. 이 과목은 늘 대기자들로 넘친다. 나는 초창기부터 수강해 벌써 3년이 지났다. 모델 워킹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바른 자세로 1시간 동안 워킹을 한다. 몸도 좋아지고 마음이 즐거워져 힐링도 된다. 이른바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훌륭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2018년부터는 강남구민만 강남시니어플라자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의 강력한 니즈가 있는 곳에서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자가 없다. 누가 과연 이 블루오션을 선점할 것인가? 결실은 재빨리 트렌드를 읽어내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상암에서 영등포 비콤 벗들과 송년 행사가 있던 날 언주역에 있는 삼정호텔로 갔다. 코리아시니어 모델 학원 김소영 원장님 초대로 패션쇼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모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기 때문에 세련됨이나 기품이 떨어지는 옷들이 간혹 눈에 띄어 아쉬웠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모두 통과! 사진에 담지 않았다. 4기 수료식과 패션쇼를 마친 후에는 '시니어 롤 모델'에 관련한 짧은 강의도 있었다.
뷔페로 마련된 식사시간에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성악가들의 공연이 있었다. 먼저 바리톤의 우렁찬 목소리로 비제의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소프라노 차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에 나오는 너무도 아름다운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곱게 흘러나왔다. 이어진 순서인 테너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이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화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아름다운 이중창 '투나잇 투나잇'을 테너와 소프라노 둘이서 불렀다.
"이번에 부를 곡은 뭘까요?"
테너가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축배의 노래요."
필자가 대답했다.
그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셨지요?"
당연한 것 아닌가?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 노래로 그 곡을 뛰어넘는 곡은 없으니까 말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젊음의 환희가 가득한 아름답고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다.
바로 이거다!
품격 높은 현역 성악가들을 초빙한 것은 감각 있는 원장님의 '신의 한 수'였다. 참석자들의 즐거운 저녁 만찬 시간이 단번에 럭셔리한 분위기가 되었다. 레퍼토리가 너무도 잘 알려진 곡들이라서 신선함은 떨어졌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 마니아인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행사였다. 새삼 김소영 원장님의 기획력에 깊은 신뢰가 간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머지않아 멋지고 아름다운 그녀의 꿈이 큰 결실을 맺을 것이다.
‘나부코’라는 오페라 제목을 보고 ‘나비부인’과 같은 일본 여인 이름인 줄만 알았다.
‘베르디’의 작품인 오페라 ‘나부코’는 기원전 6세기의 예루살렘과 바빌론이 무대로 바빌론 왕의 이름이었다.
구약성서 ‘나부코도노소르’왕의 비극을 오페라로 표현한, 베르디의 오페라 중 유일한 성서 오페라라고 한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 누구라도 ‘노예들의 합창’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처연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어서 듣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이다.
오페라 ‘나부코’의 3막에서 들을 수 있다.
‘노예들의 합창’은 바빌론의 포로가 된 히브리인들이 강제노동을 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부르는 합창으로 히브리인들의 슬픔과 희망이 담겨 있는 곡이다.
높다란 신전을 표현했으므로 무대 전면 천정까지 전체가 오페라 무대였다.
그리고 바빌론의 왕 ‘나부코’를 연기한 사람은 유명한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여서 관객 모두는 더 기대하는 듯 보였다.
이야기는 성서에 나오는 영웅 바빌론 왕을 각색해서 베르디가 작곡했다.
베르디는 당시 아내가 죽고 전작인 오페라 ‘하루만의 왕’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낙심했던 때였다고 한다.
후에 결혼하게 되는 ‘조세피나’와 스칼라극장 지배인의 격려에 힘입어 만들어진 이 작품은 1842년 스칼라극장에서 초연 후 큰 성공을 거두었고 3막에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유대인에게 잡혀있는 딸 ‘페네나‘를 구하려고 ‘나부코’왕이 이끄는 바빌로니아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보호해 달라는 노래를 한다.
유대인의 대제사장은 ‘나부코’의 딸 ‘페네나’를 인질로 잡고 있어 평화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전쟁에 앞장 선 이는 ‘페네나’의 언니 ‘아비가일레‘이다.
‘아비가일레’는 유대왕의 조카인 ‘이스마엘’을 좋아하지만, 이전에 바빌론에서 ‘페네나’가 ‘이스마엘’을 구해준 일이 있어 둘은 이미 사랑하는 사이이고 ‘페네나’는 개종해서 ‘이스마엘’과 같은 신을 섬기게 되었다.
‘아비가일레’는 노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전쟁에 앞장섰지만, 그러나 문서에 기록된 대로 자신은 정식 자녀가 아니라서 언니이지만 ‘페네나’가 왕위계승자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바빌로니아 사제들의 후원으로 권력을 잡은 ‘아비가일레’는 유대교로 개종한 ‘페네나’와 ‘이스마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데 ’페네나‘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는 걸 안 ’아버지 ‘나부코’왕은 유대의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후 군사를 일으켜 ‘페네나’를 구출하고 우상을 파괴하며 유대인들을 해방시킨다.
반역했던 ‘이스마일레’는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며 자신도 사랑받고 싶었던 딸이라 고백하고 ‘페네나’와 ‘이스마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알린다.
유대인을 해방시킨 ‘나부코’는 왕 중 왕이라며 찬양받는다는 드라마이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플라시도 도밍고’의 노래는 가슴을 울렸다.
신께 기도하는 장면에서 그 큰 몸으로 바닥에 엎드린 채 노래하며 연기하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영화 속 오페라에서 배우들이 노래할 때마다 영화관 안에서도 실제 오페라인 것처럼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냈다.
실제로 보는 오페라 못지않게 즐거웠던 영화로 보는 오페라였다.
필자는 합창을 좋아한다. 현대백화점 합창단 출신이다.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사람이 여자 38명에 남자 2명이었는데 남자 한 명이 안 나오는 바람에 결국 청일점이었다. 여성들 소리에 알토로 겨우 끼어들어 연습을 하자니 여러 모로 죽을 맛이었다. 6개월 연습 후 경연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후 그만 두었다. 그러나 합창의 매력을 배웠다. 인간의 여러 목소리를 동시에 맞춰서 부르면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엄청난 감동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그동안 열심히 클래식 음악회에 다니면서 익숙해진 곡들이다. 합창만 모은 공연을 봤으면 했던 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공연이었다. ‘환희의 송가와 오페라 합창 명곡(Ode to Joy & Opera Chorus)’ 공연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표를 구하기가 어려웠으나 겨우 3층 맨 뒷자리를 얻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층에 버금가는 급경사였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다 들어오니 좋긴 한데 역시 무대와 너무 멀어 합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합창은 남녀 각각 30여명으로 구성된 마에스타 오페라 합창단과 역시 30여명으로 구성된 송파소년소녀합창단이 맡았다.
무대가 특이하게 빈야드 방식으로 꾸며졌다. 평면이 아니라 포도밭처럼 원형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눈길을 끌었다. 평면보다 시각적으로 구성미도 있고 편안하게 보였다.
프로그램 1부는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입장 행진곡’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병사들의 합창’,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 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널 향한 기쁨의 소리’,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집시 아이들의 합창’,‘투우사의 노래’, 베르디의 오페라 일트라바트레에 나오는 ‘대장간의 합창’,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허밍 코러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40분에 걸쳐 펼쳐졌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4악장’,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가 40분 동안 이어졌다.
이 중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다. 이탈리아에서 제 2의 국가로 불리는 노래인데 베르디의 장례식 때 무려 8천 명의 합창단이 불러 유명하다. 8천 명의 합창은 대단했을 것이다. 남성 합창단의 웅대한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4악장’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유럽 연합의 공식 상징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모처럼 좋은 기회였는데 무대가 너무 뒷자리라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내심 곡마다 다른 합창단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마에스타 오패라 합창단이 소화했다.
카르멘에 나오는 곡들은 월드컵 수변 무대, 롯데 콘서트 오페라 갈라 쇼에 이어 세 번째라서 아주 익숙해졌다.
수만 가지의 수를 내다보고 절대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사는 알파고형 인간을 만났다. 계획적이면서도 일정하다. 돌다리는 두드려볼 생각 없이 잘 닦여진 길을 선택해왔다는 사람. 수학이나 과학자를 만나러 갔더라면 대충 짐작이라도 했을 텐데. 그의 직업은 음악 칼럼니스트다.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 무지크바움 대표이자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劉亨鐘·56)을 만났다. 인생역전 드라마만 재밌다는 편견은 접으시고, 유형종 대표의 기막힌 인생설계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라.
클래식 놀이터 주인장 유형종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놀이터(?) 무지크바움의 주인장인 유형종 대표. 그는 클래식 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예술을 강의하는 강연자로서 삶을 살아간다. 압구정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무지크바움에서는 요일마다 오페라, 클래식, 발레 감상 동호회 모임을 비롯해 음악과 관련한 각종 강연이 이뤄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찾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늘 유형종 대표와 눈을 맞추고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직업 특성 때문일까? 유형종 대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활발할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만나서 한다는 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좀 폐쇄적이죠. 그런데 여기는 클래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좋아요. 욕심 같은 거 별로 없어요. 그저 저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데 그 원천이 음악? 클래식인 거죠.”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택하다
유형종 대표는 주로 오페라와 발레 등 서양 예술의 결정체와도 같은 분야를 전문으로 글을 쓴다. 역사적으로 사교계와도 친밀한 예술이 오페라와 발레 아닌가. 그런데 그가 클래식 음악에 눈뜬 이유가 기가 막히게 남다르다.
“제가 남들 하는 걸 안 해요(웃음). 가령 카카오톡도 안 합니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 영어공부한다며 팝송을 듣더라고요. 저는 그때 팝송이랑 대중가요 대신 클래식 음악만 듣겠다고 결정했죠.”
마침 집에는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클래식 음반들이 여러 장 있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지휘한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e‵me)과 베르디의 아이다(Aida)였다.
“그거 말고 몇 장 더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토스카니니’라고 적혀진 음반들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게 제 인생 첫 음반인 거죠. 중학교 들어가서 오페라 음반을 사기 시작하면서 ‘내 취미는 음악이야!’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집 안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유형종 대표는 다행히 네 살 터울의 동생과 죽이 잘 맞았다.
“동생이 동아일보 유윤종 기자입니다. 음악이나 문화 쪽으로 저보다 유명할걸요? 둘이 집에서 뭐했냐면 클래식 음악 모음집 15곡을 쭉 듣고 난 다음에 점수를 매겨요. 그러고는 둘이 합산해서 종합 1위를 뽑는 거죠. 그리고 한 달 있다가 또 해요. 순위가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게 우리 형제의 놀이였습니다.”
클래식 음악만큼 발레의 매력에도 빠져버렸다. 1984년 빈 국립 발레단(오스트리아)과 내한한 러시아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의 춤사위를 보는 순간 마치 신이 춤추는 것 같았다. 남자가 무슨 발레냐고 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팝송이 싫어요. 뮤지컬도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와 발레를 감상하고 이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사는 게 재밌습니다.”
내 인생의 원동력은 확률과 통계
클래식을 듣고 오페라를 감상하는 취미는 끝이 없었다. 잠시나마 꿈꿨던 음악대 진학을 접고 상경대를 선택했다.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저는 체력도 약하고 성공할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죠. 나는 튼튼하지 않으니 애호가로 사는 게 더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는 삐져서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웃음).”
음대 포기의 이유에 맏이라는 가정 안에서 위치도 작용했다. 역사학도 좋았지만 맏이면 당연히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상경대 진학을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도전 한 번 안 해보고 너무 빨리 포기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저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수를 좋아했죠. 경영학에도 회계학이 있는데 그것도 재밌었고요. 회사에서도 기획 재무 쪽 일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미적분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확률과 통계는 아주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 모든 생활 전반이 확률 통계적 사고로 돌아갑니다. 성악을 선택하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유형종 대표는 음악대학에서 음악사 수업 외에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화성악 청강을 해봤다. 그런데 음대생의 영역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고 한다.
“음대생이 전공하는 영역은 음악 애호가로서 확률과 통계적으로 좇아갈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저는 예술가 기질은 없어요.”
무모한 짓은 안 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유형종 대표. 굉장히 좋아 보여도 무엇을 희생해야 한다면 하지 않았다. 목적지향, 확률통계. 이런 것을 고려해서 원칙을 세우고 의사결정하는 것이 습관화됐다고 말한다.
“대신 재미가 없죠.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냉소적이라더군요.”
취미가 인생의 큰 그림이 되다
경영학과에 들어간 뒤 공부보다는 음악감상 동아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는 클래식을 듣는 음악감상 동아리의 규모가 꽤 컸습니다. 지금과 비교도 안 됩니다. 동아리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했기 때문에 DJ 활동을 의무적으로 했어요. 감상실에서 트는 곡목을 칠판에다 적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물론 감상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절반이 숙면에 들기는 했지만 감상실 운영으로 동아리를 유지했다. 가을에 열리는 교내 합창대회는 음악감상에 방해돼 싫었다.
“합창 시즌만 끝나면 속속 커플들이 탄생했어요. 헤어지면 커플이 동시에 탈퇴를 하니까 동아리 모습이 말이 아니었죠. 연애금지령도 있었는데 저는 철저히 그 법칙을 따랐습니다(웃음).”
대단한 모험을 즐기지 않고 확률과 통계를 바탕으로 살아왔다는 유형종 대표. 그는 대학생활 이후에도 나름 순탄했다고 말한다. 1987년 첫 직장인 대우증권에 입사해 2006년 한국신용보증보험의 임원으로 2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는 영락없는 금융인의 모습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칼럼니스트로서의 이중생활도 멋지게 즐겼다.
“졸업 후에 동호회 후배들이 창립기념일 문집을 만들 때 저에게 의뢰하기에 글을 쓰게 됐고, 1995년부터 잡지에 정식으로 음악 칼럼을 쓰기 시작했어요. 음악감상 동아리 후배인 의 기자가 저를 칼럼니스트로 추천했어요. 그때부터 음악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얻게 됐습니다.”
금융업계에서 대리, 과장으로 승진하는 동안 업무와 야근으로 음악회는 꿈도 못 꿨다. 대신 음반을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매달 밀려오는 잡지사 음악 칼럼을 쓰는 작업도 일상의 큰 업무(?)였다.
“금융회사는 아침 8시가 되면 일을 시작해요. 저는 6시 반에 출근을 했어요. 부서장님이 저더러 부지런하다고 칭찬하셨는데 오해죠. 저는 글을 쓰기 위해 회사에 빨리 간 것이잖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월간지에 기고를 하고 짬짬이 공연 프로그램 글도 썼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제가 하는 다른 일에 대해 사장님이 알게 되셨어요.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요. 임원이 그런 일 하는 것을 몰라서 언짢으셨을 겁니다.”
진짜 인생의 문을 열다
유형종 대표는 2003년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느꼈다. 회사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딱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었다.
“회사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확률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다른 회사로 가느냐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즐거움을 희생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해설가로 살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었지만 좀 더 밀도 있는 공부를 하며 강의자료를 준비했다. 연재하던 글을 모아 은퇴 시기에 맞춰 단행본 출간을 계획했다. 결국 2006년 9월 은퇴, 12월 1권과 2권(시공사) 출간. 꽤 멋진 은퇴 작전이 성공했다. 20년 남짓의 넥타이 삶을 청산하고 난 유형종 대표는 무지크바움에서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칼럼을 쓰고 외부 강의를 하면서 여전히 음악에 파묻혀 살고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일곱인 유형종 대표는 스스로 2년 전까지가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음악 칼럼니스트라고는 하지만 글 써서 먹고살겠어요(웃음)? 제 공간인 무지크바움에서 동호회나 강좌를 열고 외부 강의도 다니고요. 그런데 제 나이가 이제 기업체 특강 강사로는 좀 많아요. 왜냐하면 기업체 사장이 저랑 나이가 같거나 어리거든요. 물론 저도 이제 돈을 열심히, 많이 벌 생각은 없어요. 생업은 55세까지 충분히 했다고 봐요.”
이런 날을 생각해서 20년 직장생활을 했다. 먹고사는 데 당장 큰 문제는 없다. 벌어놓은 돈도 있으니 즐기면서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
“마음은 천국이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니까. 대신 제가 일정을 짜놓고 많은 일들을 정해야 하니까 좀 바쁘죠. 마음은 천국, 몸은 지옥? 앞으로도 10년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10년은 골골거리면서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웃음).”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최근 귀찮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슈베르트에 관한 글을 쓰게 됐다고. 예술서 100권, 문학서 100권, 사상서 100권 총 300권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 한 대형 출판사에서 유형종 대표에게 제안을 해왔다. 아직 정해진 바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제부터 자료조사를 새로 해야죠. 그런데 사실 쓰겠다고 한 이유가 딴 게 아닙니다. 제 동생도 쓰기로 했더군요. 괜찮은 필자를 출판사에서 저자로 섭외했던데 내가 안 쓰면 소외될 거 같아서 할 수 없이 쓰는 거거든요(웃음).”
그래도 적잖은 사명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보았다.
“불명예는 막아야죠(웃음). 적어도 대한민국 예술 필자 100명 중에 끼지 못한다는 소리는 들으면 안 되잖아요. 불타오를 정도는 아니고 약오름?”
말은 이렇게 해도 어떤 주제로 쓸지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 너무 어렵게 않게 슈베르트에 대해 사람들이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책을 쓰게 될 것 같단다.
유형종 대표는 어떤 것을 평가하고 논하는 평론가의 삶을 구하지 않는다고.
“칼럼니스트로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은 갖되 너무 깊숙이 관여하지는 않아요. 관객으로서 내 시선을 내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 공연장 사장 할래? 그러면 전 아마 안 할 거예요. 사람 임명하고 관리하는 거 하기 싫어요. 육체는 힘들지만 영혼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싶어요.”
인터뷰하는 동안 그가 20년 금융 전문가에서 음악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는 원래부터 직장생활 20년 하고 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니 지금이 제1인생이죠. 제1의 인생을 위해 기반을 마련하고 돈을 번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처음부터 그의 시작은 음악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느낌이다. 평생 제1의 인생을 위해 살아온 집념과 고집이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기대해본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모두 빙 둘러앉아서 수건돌리기 놀이와 ‘어, 조, 목 놀이’도 했다. 어, 조, 목 놀이는 리더가 종이방망이를 들고 다니다가 한 사람을 지목한 후 어, 조, 목을 몇 번 되뇌다가 ‘어’ 하면 제한된 시간 안에 재빨리 물고기 이름을 대야 하며 ‘조’ 하면 새 이름을, ‘목’ 하면 나무 이름을 대야 한다.
3초 안에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종이방망이로 한 대씩 얻어맞았는데 엉겁결에 ‘조’ 하면 “새!” 하거나 '목’ 하면 “나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당황한 가운데 터져 나오는 틀린 대답이 하도 우렁차서 우스웠던 것이다.
찹쌀떡먹기 놀이를 할 때는 출발 신호와 함께 일제히 뛰어가 뒷짐을 진 후 쟁반 위 밀가루 속에 감춰진 찹쌀떡을 입으로 찾아서 하나씩 물고 오느라 얼굴이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되어서 우스꽝스런 모습들이 됐다. 그래도 좋다고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웃으며 서로의 옷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주곤 했다.
보는 사람이 안타까워했던 것은 과자따먹기 놀이였다. 뒷짐을 지고 입으로 과자를 따먹는 놀이였는데 따먹을 만하면 줄을 올리고 입이 과자에 닿을 만하면 줄을 올려 모두의 애를 태웠던 것이다.
'선생님 앞에서 어떻게 입을 벌려….'
필자 성격으로는 찹쌀떡먹기나 과자따먹기는 절대로 못할 놀이였다. 선생님들은 자꾸 “너도 해봐” 하시는데 필자는 “싫어요, 저는 못해요” 하며 구경만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라면 하는 거지 ‘못해요’가 가당키나 했던 일인가. 그러나 야학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일을 강제로 시키지 않았다. 체육에는 소질도 취미도 없는 필자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런 필자가 좋아하는 놀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보물찾기였다. 사각으로 접힌 조그마한 종이쪽지는 소나무 가지 틈 사이에 꽂혀 있기도 했고 나무껍질 속 또는 바위틈에 숨겨져 있기도 했다. 그 속에 적혀 있는 상품 이름이 무엇인가는 둘째 문제였다. 풀숲이나 바위틈에 뱀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보물찾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종이쪽지를 찾아다니는 내내 기대감으로 가슴이 ‘쿵광쿵광’ 뛰었고 긴장감으로 숨이 막혀올 정도로 스릴이 있었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놀이는 달리기였는데 선생님들은 1등을 한 사람에게는 으뜸상, 그다음은 버금상, 그다음은 더 잘함상, 심지어 꼴등한 사람에게까지 애씀상을 주셨다. 모든 아이들에게 빠짐없이 상을 주시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소풍을 갔다 온 뒤 얼마 동안은 노트를 따로 살 필요가 없었다.
노래부르기 대회를 할 때면 모두들 신이 났다. 특히 선생님들은 다들 노래를 잘 부르셔서 전문 성악가들이 울고 갈 지경이었다. 레퍼토리가 ‘돌아오라 소렌토로’, ‘산타 루치아’, ‘보리수’ 등 이탈리아나 독일 가곡 등이었는데, 한 단계 더 높은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 푸치니의 ‘별은 빛나건만’ 등을 폭포수같이 쏟아내시기도 했다.
팝송과 가요는 처음 얼마간은 굉장히 당기지만 어느 새에 싫증이 나곤 했는데 가곡이나 정통 클래식은 언제 들어도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들에게 늘 가곡을 부르도록 지도해주시고 정통 클래식을 감상하는 요령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발성법이 두성법이 아니고 목에서 나는 소리이면 유행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며 지적을 해주시곤 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고 기억력이 왕성한 10대에 보고 들은 것들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이후 클래식 음악은 책과 영화와 함께 필자의 가장 좋은 친구가 돼주었다.
‘어쩜 저렇게 잘 부르실까.’ 특히 필자가 좋아하는 B선생님이 노래를 부르실 때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쳐다보곤 했다. 선생님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필자 눈에는 다른 사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선생님만 보였다. 노래를 부를 때 그 선생님을 보면 더 멋있어 보였고 그야말로 꿈속의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당신이 날 살릴 수 없으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요.”
죽어가는 비올레타가 그토록 간절히 그리던 알프레도의 품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된 유럽 오페라가 주세페 베르디의 라고 한다. 1948년 명동의 시공관에서 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었다. 뒤마의 소설 '동백꽃 연인'(La Dame aux Camelias) 이 원작인데 베네치아에서는 1853년 3월 6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 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초연되기 95년 전이다.
한국초연 오페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한국에서 가장 많이 올려진 오페라, 여성성악가가 가장 부르고 싶어 하는 오페라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18~9세기 중엽으로 원 제목은 이며 는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애칭이다.
그녀는 한 달의 25일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꽃을 들고 사교계나 극장에 귀부인처럼 화려하게 나타난다. 이는 그녀가 몸을 판 대가였다. 이런 그녀에게 양가의 순수한 청년 알프레도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는 그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정열적인 사랑에서 참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파리 교외의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 3개월이 그들에게 허락된 사랑의 전부였다. 그녀는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간곡한 부탁으로 알프레도와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다시 파리로 떠난다. 사랑하는 알프레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정을 내리지만 이를 오해한 알프레도는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복수심에 불타 방랑의 길을 떠난다. 뒤늦게 아버지에게서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만나러 달려오지만 이미 그녀는 폐병이 심해져서 더 살기 힘들 것이라는 주치의의 말을 들은 후였다.
그를 만날 수 없어 차라리 죽기를 기다렸던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만나자 더 살 이유가 생겼다며 잠시 희망을 갖는다. 알프레도는 변함없는 사랑을 보이고, 같이 행복한 시간을 갖자며 청혼한다.
“당신이 날 살릴 수 없으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요.”
이 말을 들으며 알프레도는 이제야 만나게 된 자신을 원망하며 오열한다. 애통하는 알프레도의 가슴에서 그녀는 숨을 거둔다.
이 소설은 파리의 고급 창녀이며 미모로 당시 이름을 떨쳤던 마리 뒤프레시를 모델로 소설화했다고 한다.
비올레타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거짓사랑을 놀이삼아 고급 창녀로 살던 그녀에게 진실한 사랑이라니. 그러나 그녀는 막상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 앞에선 너무 쉽게 무너졌다.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첫사랑을 시작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던졌다.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모두가 진실한 사랑에 견주기엔 무가치했기 때문인가. 사랑에 빠질 때면 그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이 되는 것인가 보다.
봄의 정서와 딱 맞는 오페라여서인지 주옥같은 아리아와 비올레타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봄이면 언제나 새롭게 느껴진다.
뭔가를 늘 계산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맹목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기 쉽지 않다. 별로 내세울 것 없어도 가문이나 재산이나 학벌이나 가족이나 따지고 계산할 것이 많다. 그래서 열정적인 사랑의 갈망을 이런 대리 만족을 통해 털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절절한 사랑의 느낌, 애절한 보고픔에 괴로워하는 연인, 사랑하므로 증오하는 애증 등이 전달되어 필자에게도 4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