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의 전기영화 ‘마이클’에 대한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평단은 냉담하지만 관객들은 열광한다. 영화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말하긴 어려워도, 마이클 잭슨이라는 시대의 기호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기에 충분했다는 뜻이다.

누구나 마이클 잭슨과의 추억 하나쯤 있다
5월 13일 개봉한 영화 ‘마이클’은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제작진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만남’이라는 슬로건만 봐도 기대되는 작품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2018년 개봉 당시 무려 990만 관객을 동원했다. 싱어롱 상영회를 할 정도로 당대를 추억하는 팬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번 주인공은 마이클 잭슨이다. 1980년대 ‘스릴러(Thriller)’ 앨범이 나왔던 시절을 기억하는 중장년 팬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렐 수밖에 없다. 쉬는 시간만 되면 모두가 뒷걸음질 치던 ‘문워크’ 유행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아닌가.
영화에도 등장하듯 1983년 ‘빌리 진(Billie Jean)’ 뮤직비디오는 흑인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음악 케이블 채널 MTV의 흑백 장벽을 넘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은 문워크 퍼포먼스로 전설이 된 모타운 25주년 무대에서 ‘빌리 진’ 퍼포먼스를 공개했다. 이 퍼포먼스는 미래에 K-팝 아티스트가 될 꿈나무들이 반드시 마스터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그해 12월 존 랜디스 감독이 연출한 14분짜리 ‘스릴러’ 뮤직비디오는 데이트하다 좀비처럼 변한 마이클 잭슨과 마을 사람들의 집단 공격으로부터 도망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개 당시로서는 쇼킹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뮤직비디오는 대부분 가수의 공연 실황을 녹화해 홍보하는 차원에 머물렀지만, ‘스릴러’는 스토리와 캐릭터, 영화적 미장센이 결합된 한 편의 단편영화였기 때문이다.
브레이킹 특유의 꺾기 춤이 집단 군무로 이어지는 이 뮤직비디오를 당시 학생들은 VHS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돌려보며 따라 했다. 생각해보면 춤꾼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부산행’ 같은 K-좀비의 탄생은 ‘스릴러’ 뮤직비디오가 그 발화점이 되지 않았을까. 그때 춤꾼들이 현재 세계적인 한국 비보이들을 탄생시켰고, 그것이 K-좀비의 퍼포먼스로도 이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이전 잭슨 파이브 시절의 어린 마이클 잭슨이 불렀던 ‘아일 비 데어(I’ll Be There)’ 같은 소년미 넘치는 노래나, 성장해 솔로로 냈던 ‘오프 더 월(Off the Wall)’ 앨범의 ‘돈 스톱 틸 유 겟 이너프(Don’t Stop Til You Get Enough)’ 같은 명곡은 물론이고, 이후에 나온 ‘배드(Bad)’, ‘댄저러스(Dangerous)’ 같은 곡까지 성공해 마이클 잭슨은 1980~90년대를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마이클’이라는 전기영화는 기획만으로도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누구나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쯤 있을 정도니.

영화 ‘마이클’을 향한 엇갈린 반응
영화는 북미 개봉 첫날 395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은 극장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관객 평가인 팝콘 지수는 97%에 달했지만, 로튼 토마토 평론가 호평 지수는 38%에 그쳤다. 한국에서의 흥행도 애초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6월 1일 기준 관객은 139만 명에 머물렀다.
평단의 혹평이 쏟아진 건, 2024년의 주요 촬영분을 전면 삭제하고 3막 전체를 수정해 2025년 대대적인 재촬영이 이뤄지면서 생긴 완성도의 흠집 때문이다. 애초에는 아동 성적 학대 혐의 관련 내용이 있었지만, 이 사안을 다룰 수 없다는 법적 합의 조항을 뒤늦게 발견하면서 내용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마이클은 대중의 환호와 열광을 받는 팝의 황제인 동시에 그만한 무게의 지탄을 받던 인물이다. 영화는 그가 겪는 내적 갈등과 그 안에서 나온 음악에 관한 서사를 담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갈등 요소들을 모두 잘라내면서 ‘마이클’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아티스트라는 앙상한 서사에 머물렀다. 영화가 당대의 마이클 잭슨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이른바 ‘주크박스 무비’ 같다는 평가를 받은 건 그래서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마이클의 주크박스 무비 같은, 노래와 퍼포먼스의 재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노래와 퍼포먼스가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다소 앙상한 서사를 채우고도 남았다. 특히 한국인에게 각별한 마이클 잭슨과의 일화들까지 떠올리며.

두 차례 내한 공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마이클 잭슨은 한국에서 두 차례 공연을 한 바 있다. 1996년 10월에 열린 ‘히스토리 월드투어(History World Tour)’가 그 첫 번째고, 1999년 평화 자선공연으로 열렸던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 두 번째다. 당시 월드투어를 통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던 마이클 잭슨에게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국은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마이클 잭슨은 1992년 월드투어부터 한국 공연을 시도했다. 하지만 1993년 LA 흑인 폭동 사건으로 공연은 무산됐다. 이 사건으로 흑인과 한인 사회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문민정부 출범 초기에 고통 분담이라는 국가적 기조 아래 그의 공연은 허가되지 않았다.
1996년 공연이 성사됐지만, 당시 보수적인 시민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그의 내한 공연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3년 불거진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혐의와 경제적 위화감 조성이 이유였다. 공연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공연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 종사자들과 관객들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선사했다. 조명과 폭죽은 물론이고 대형 철제 다리와 탱크 등을 동원한 무대 연출로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공연을 보여준 것이다. 이 공연은 훗날 K-팝 아티스트들의 공연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후에도 마이클 잭슨과 한국은 외교적 연대와 평화라는 키워드로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됐다. 한 리조트의 어린이 동산 투자 문제로 한국을 방문했던 마이클 잭슨은 평소 존경심을 품고 있던 당시 야당 유력 대선후보 김대중 총재를 만났다. 그 만남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마이클 잭슨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이런 인연을 계기로 1999년 6월 25일 그는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 투 맨 같은 팝의 전설들과 함께 두 번째 내한 공연 무대에 섰다. 공연 일자를 굳이 6월 25일로 잡은 것에 일부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그 공연이 반전의 의미를 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런 여론은 불식됐다.
공교롭게도 마이클 잭슨은 2009년 6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신을 통해 “우리는 세계적인 영웅을 잃었다. 또한 한국의 통일에 부단한 관심을 갖고 성원해준 사랑스러운 벗을 잃어 개인적으로도 큰 슬픔을 느낀다”며 애도를 표했고,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뒤인 8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거했다.

마이클 잭슨에서 BTS로 이어지는 유전자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보다 마이클 잭슨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K-팝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마이클 잭슨이 창안한 MTV 시대의 ‘보는 음악’을 가장 치밀하게 시스템화한 결과가 현재의 K-팝이기 때문이다. 이 한국적 시스템화의 중심에는 K-팝의 기틀을 마련한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존재한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중 MTV와 마이클 잭슨의 등장을 보며 새로운 음악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감했다. 특히 마이클 잭슨의 완벽한 퍼포먼스와 ‘스릴러’ 뮤직비디오는 K-팝의 칼군무와 영상 스토리텔링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또한 K-팝 아이돌들이 신곡을 낼 때마다 넣는 시그니처 춤동작은 사실상 마이클 잭슨의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빌리 진’ 무대에서 선보였던 발차기 퍼포먼스 같은 동작은 K-팝 아이돌들이 자주 오마주해서 활용하곤 했다. 대표적인 게 BTS가 2020년 영어 싱글로 낸 ‘다이너마이트(Dynamite)’ 안무와 뮤직비디오다. 이 곡은 마이클 잭슨을 향한 헌사를 담아 후반부 댄스 브레이크에서는 발차기, 크로치 그랩(골반을 쓰는 안무), 제자리 스핀, 문워크를 연상시키는 스텝들을 오마주했다.
마이클 잭슨에서 BTS로 이어지는 유전자는 2023년 넬슨 조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스릴러 40’을 통해 공식화됐다. 마이클 잭슨 전성기 시절의 안무 클립과 BTS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화면 분할해 그 연계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를 통해 BTS는 마이클 잭슨의 유산을 이어받은 공식적인 전승자가 됐다.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마이클 잭슨. 그가 탄생시킨 키드들이 K-팝이라는 글로벌 음악산업을 시스템화했고, K-팝을 통해 마이클 잭슨의 춤과 음악은 21세기에도 살아 숨 쉬게 됐다. 그리고 그 토양에서 탄생한 BTS 같은 K-팝 아티스트들은 영원한 문워크로 부활해 무중력의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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