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첫날은 쥐가 날 것처럼 다리가 저렸습니다. 계속 서 있어야 하거든요. 안 해봤던 일이라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더라고요.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것조차 못하면 앞으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죠. 4일째 되니 아픈 곳이 없어지고 진즉 일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일하는 순간순간 최상의 기쁨을 느낍니다.” 30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 CGV 인턴십으로 근무하는 김기영(61) 씨는 일을 시작한 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나이에 일? 큰 기대 없이 구직
김기영 씨와의 대화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보이지만 차근차근한 말씨로 달라진 삶에 대해 풀어내는 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땅속에서 오래도록 씨앗으로 있다가 싹을 틔워 한 뼘 정도 자란 나무가 그려졌다.
노사발전재단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이진아 컨설턴트가 그녀를 처음 상담했을 때 취업에 대한 의지는 있어 보였지만 자신감이 떨어져 보였다고 한다. 이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일자리희망센터를 방문한 김 씨, 그것이 그녀 인생에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을까?
“작년 말 남편이 정년퇴직을 해 집에서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보통 문화센터, 구청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수강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졌어요. 이래저래 답답했습니다. 수십 년을 일하다 이제야 쉬게 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할 수는 없어 답답함을 참고 있을 수밖에요. 어느 날 친구가 동구 새로일하기센터에 구직 등록을 하면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더라고요. 사실 못 미더웠지만 신청을 했어요. 돌파구가 필요했거든요.”
호텔 룸메이트 교육에 관심이 있었지만 침대보 하나 가는 것도 힘들어하는 자신을 볼 때 포기가 답이었다. 경력도 없지, 체력은 약하지, 그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의심이 계속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구직 등록을 한 지 두 달 만에 CGV 시니어 인턴십 활동을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두 줄짜리 이력서 들고 노사발전재단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방문
CGV 시니어 인턴십 관련 핸들링은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진행했다. 김기영 씨는 이력서를 가지고 방문했다. 결혼 전에 5년간 은행에서 근무했던 경력과 문화센터에서 컴맹 탈출 교육을 받다 흥미를 느껴 땄던 컴퓨터 자격증 내용을 적은 두 줄짜리 이력서였다.
첫 상담을 했던 이진아 컨설턴트는 이력서 내용을 보충하고 자기소개서를 꼭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기소개서에 고용주가 원하는 바를 충족할 수 있는 경험과 의지를 꼭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코칭 포인트였다.
“극장에서의 근무는 서비스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기영 씨가 짧은 기간이지만 은행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기본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봤어요. 고객 응대 서비스를 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조언했지요.”
이진아 컨설턴트는 긴 경력 단절로 인해 재취업에 대해 불안해하는 김 씨에게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자신감을 되찾도록 계속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그러자 점점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면접 스킬을 코칭받고 CGV 면접에 응한 그녀는 결국 최종 합격통지를 받았다.
CGV 극장에서 일하며 기분 좋은 에너지 흡수
출근해서 하는 일은 입장 티켓 확인, 고객 퇴장 후의 간단한 청소다. 하루 5시간 일하고 30분의 휴식시간이 있다. 출근 첫날에는 내내 서 있었던 탓에 다리가 아파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날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조태임 컨설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힘들긴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 4일째부터는 아픈 것이 사라졌다. 그 후로는 만족도 최상이다. 취업 후에도 일자리희망센터의 관리는 지속되었다.
“근무를 시작한 후 조태임 컨설턴트가 2~3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해서 힘들지는 않은지, 어려운 점은 없는데 꼼꼼하게 묻고 관리해주고 있어요. 덕분에 취업을 하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 큰데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힘까지 불어넣어주니 더할 수 없이 감사해요.”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젊은이들한테 ‘노인네들 데리고 일하니 힘들지요?’라고 물으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며 기꺼이 가르쳐줘요.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어떤 일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100세 시대라는데, 70세까지는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찾고자 하면 일자리 정보는 많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할 일은 널려 있다. 오랫동안 경력이 단절된 사람이라도 자신처럼 딱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식물을 좋아하니 조경 관련 자격증을 따서 연관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오늘은 오후 근무가 있는 날이라며 출근을 서두르는 그녀는 일에 대해 100% 만족한다고 했다. 근무 9개월 5일의 인턴십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김 씨에게 CGV 인턴십은 삶의 질과 방향을 바꿔놓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 낸 작은 용기가 불러일으킨 나비 효과다. 조금씩 도전해서 앞으로 한 걸음씩 더 내디뎌갈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노사발전재단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는 취업상담, 교육, 일자리 연결의 세 가지 업무를 진행한다. 취업상담을 통해 예전에 하던 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파악해 가능한 훈련과 교육정보를 알려주고 워크넷에 구직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생애경력설계, 전직지원서비스, 일일직업체험(타일시공, 드론 촬영 등)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개인의 직업 역량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김기영 씨처럼 구직 단계에 방문하면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스킬 등 구직활동에 필요한 실용정보를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취업 후의 관리까지 진행한다.
노사발전재단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확장 이전했다. 노사발전재단은 14일(목)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김종철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 황세영 울산광역시 시의회의장 등 내외빈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이전 개소식을 개최했다.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 근로자종합복지회관 2층에 자리 잡은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울산지역 40세 이상 중장년을 대상으로 생애경력설계프로그램과 전직스쿨, 구인구직서비스, 재취업 교육 등 중장년층에 특화된 고용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인생 2․3모작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단계별․유형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생 후반기 계획 수립 및 경력관리․능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신중년 인생 3모작 패키지 서비스를 무료로 지원한다.
노사발전재단 이정식 사무총장은 “울산센터가 울산의 중심지인 삼산동으로 확장 이전함으로써 고객들의 접근성 및 편리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라며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한 울산 중장년층이 계속 우리 사회의 중요 구성원으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노사발전재단은 울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비롯한 전국 12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및 금융특화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울산지역에서 다양한 전직지원서비스를 받기 희망하는 중장년 구직자와 기업은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또는 울산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이름에 불꽃 섭(燮) 자가 있어 한화에 계시냐는 시답잖은 농담에 그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웃음이 만들어낸 얼굴의 깊은 주름이 마치 거대한 지문처럼 보인다. 역동적인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경제성장을 두 손으로 이뤄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지문 말이다. 군인이 연상될 정도로 흐트러짐 없는 체구와 자세에서는 자부심도 느껴진다. 플랜트 오퍼레이터 손성섭(孫成燮·63) 씨를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플랜트 오퍼레이터란 직종은 일반인에게 생소할 수 있다. 플랜트는 생산시설이나 공장을 통칭하는 단어로, 플랜트 오퍼레이터는 이곳에서 제품 생산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종 장비를 작동시키고, 생산 과정에서 온도나 압력 등 공정의 상태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을 한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충남 서산의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위치한 한화토탈로, 15개 단위공장으로 구성된 석유화학·에너지 생산기지다. 지난해 매출이 9조 원이 넘는 거대 시설. 우리 주변에서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의 원료인 합성수지나 화성제품, 에너지 제품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만난 손 씨는 평생을 석유화학제품 공장에서 일해온 장인이자, 이제 입사 한 달 남짓 된 신입사원이라는 상반된 두 개의 명찰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13년 말 대한유화주식회사에서 정년퇴직 후 두 번의 단기계약 직장을 거쳐 지난 10월 1일 계약직으로 입사해 현역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현재 직급은 과장이다.
38년간 석유화학 공장에서 땀흘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우체국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직장을 찾다가 1980년 한이석유주식회사(S-OIL의 전신)에 입사한 것이 석유화학 공장과의 인연이 됐어요. 그리고 1990년에 대한유화주식회사로 이직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근무했죠.”
사실 정년퇴직 후 현역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 평생을 현장에서 땀흘리며 살았으니 퇴직 후에는 좀 유유자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그래서 노사발전재단 울산센터를 통해 컨설팅도 받았다.
“컨설턴트와 상담한 것이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많은 조언도 듣고요. 퇴직 후 소개로 포스코엔지니어링 제안을 받아 1년 정도 태국 마타풋에 있는 플랜트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계약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었지만 고생한 것 빼고는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태국인 현장 직원들과 짧은 영어로 소통해야 했지만 지내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죠. 헤어질 땐 서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어요. 우리 기술로 지은 공장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
플랜트 오퍼레이터가 어떤 일인지 묻자 그는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현장을 수시로 순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육체적으로 아주 고된 일은 아닙니다. 다만 공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온도와 압력은 정상 범위인지 가스가 새지는 않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특히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고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나뿐만 아니라 동료도 다치고 회사에도 큰 손해를 입히게 되니까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몸보다 장비를 우선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정년을 맞이한 것은 큰 행운이자 축복이죠.”
나이와 경험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젊은 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떨까? 서로 서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그는 전혀 문제없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젊은 직원들의 업무 태도가 정말 열성적이에요. 내가 젊었을 때 이들처럼 공부한 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지식 습득에도 열심이고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말을 보태기보다는 직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려고 노력해요. 특히 언행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내가 먼저 존칭을 써야 상대에게 대우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렇게 현장의 젊은 근로자들을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아들의 존재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아들도 현재 S-OIL 공장에서 플랜트 오퍼레이터로 근무 중이다. 비록 회사는 다르지만, 대를 이어 석유화학산업에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아들이 입사시험을 통과해 합격통보를 받은 날이 태어나 가장 기뻤던 날 중 하나일 겁니다. 하늘을 날 것같이 기뻤어요.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선배로서 안전이나 업무, 조직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게 저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가 됐어요.”
은퇴 후에도 주변 도울 수 있어야
최근 그의 즐거움이 또 하나 늘었다. 바로 국궁(國弓)이다. 2012년 정년퇴직을 준비하면서 취미를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게 좋겠다 생각하고 찾다가 발견했다. 145m 떨어진 과녁에 활을 날리는 과정도 즐겁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정신수양과 심신단련이 더 매력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짧은 경력이지만 실력이 좋아 지난해에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15시 15중’(15발 모두 과녁에 명중하는 것)을 두 번이나 해 2개 전국대회에서 각각 2등과 3등 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정년 후에도 바쁘게 현역생활을 이어나가는 그에게 이상적인 은퇴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을 첫 번째 덕목으로 꼽았다.
“퇴직 3년 전부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직장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도 아직은 미정이에요. 여전히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도 3가지 목표는 있어요. 건강과 은퇴 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 그리고 남을 돕고 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워요. 오랜 경력을 통해 쌓아온 지식을 썩히지 않고 능력을 발현하며 살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은퇴자들에게도 가능하면 쉬지 말고 일하면서 살라고 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