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오늘도 젊음을 향해 질주하는 정찬(53)에게 썩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연예계 대표 라이더’로 통하는 그는 바이크 라이딩뿐만 아니라 스킨스쿠버 다이빙, 사격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이것이 젊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마음속에서 꽃핀 철학이 몸과 마음 모두 단단한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찬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작품 운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이 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기가 묘하게 맞물렸다. 간간이 작품 활동을 했지만 주요 배역을 연기한 것은 2019년 KBS 2TV 일일드라마 ‘왼손잡이 아내’가 마지막이다. 일이 없는 괴로움과 상실감은 너무나 컸다. 과거 ‘한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불리며 청춘스타로 인기를 끈 시절도 있었으니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열심히 다잡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선물처럼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달 첫 방송된 KBS 2TV 일일드라마 ‘피도 눈물도 없이’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활동 기지개를 편 그는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운 좋게도 데뷔 이후 계속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한 해에 세 작품을 한 적도 있었죠. 그래서 지난 고비의 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염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끙끙거리면서 배앓이를 하는 그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아픔이라는 고비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픔의 감정에 휩싸이고 우울해집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다른 탈출구를 찾고, 공부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찾은 마음이 건강해지는 답은 감정 기복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모든 것은 나한테서 시작되거든요. 지금 죽을 것 같은 상황도 결국 내 판단일 뿐이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가지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정찬은 다양한 아웃도어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이것이 건강하게 천천히 늙어가는 ‘슬로 에이징’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취미 생활이나 운동을 하다 보면 감정의 기복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그의 유별난 취미 생활이 알려진 것은 2018년 국내 최초 실탄 예능 ‘방탄조끼단’을 통해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다. 알고 보니 그의 밀덕 역사는 길었다. 1995년부터 BB건(BB탄 총)으로 즐기는 레저 스포츠인 에어소프트 게임을 즐겼다고.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아웃도어 취미 생활도 ‘질주’
“드라마 데뷔작인 1995년 MBC ‘TV 시티’에서 스턴트맨 영태 역을 맡았어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안 배웠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촬영을 위해 배우게 된 거죠. 그런데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2002년에는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취득해서 계속 활동했어요. 저에게 수업을 받은 연예인 제자도 몇 명 있습니다. 저는 바다라는 존재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 휴지기 때도 다이빙 여행을 다녔는데요. 덕분에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찬의 대표적인 취미는 바이크 라이딩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오토바이 업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인 수준이다. 정찬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OB찬_일기’를 통해 라이더로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바이 리뷰를 하거나 오토바이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재밌게 전해준다. 여기에 더해 이번 달에는 유튜브 채널 ‘임볼든’에서 그가 MC를 맡은 라이더 관련 토크쇼 콘텐츠‘정찬의 술레바퀴’가 공개된다.
“바이크 라이딩 취미는 30대 중반부터 갖게 됐어요. 이제는 대중들도 취미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존중해주고 좋게 봐주신다고 느낍니다. 물론 위험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바이크를 탈 때는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해야 합니다. 크게 한 번 사고를 당한 적이 있지만, 안전 장비를 하고 있었던 덕에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죠.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는 스쿠터 한 대를 갖고 있는데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거나, 병원에 갈 때 아이들을 스쿠터 뒤에 태우죠. 아이들 스스로 스쿠터 탈 때는 헬멧을 꼭 써야 하고, 반소매 옷은 안 된다는 걸 알고 딱 준비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줄 때도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어요. 아이들이 안전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취미 생활과 그의 작품 속 캐릭터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도회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실장·사장 등 고위 엘리트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방영 중인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YJ그룹 회장 윤이철 역을 맡고 있다. 액션 연기를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는 언젠가 한풀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작품 속에서 제복을 입어본 적이 아예 없습니다.(웃음) 당연히 액션물도 좋고, 장르물에도 출연하고 싶어요. 업계에서는 제가 소비된 이미지가 있으니, 계속 그 이미지로 저를 불러주신다고 생각해요. 이번 ‘피도 눈물도 없이’도 회장님 역할이니까 그동안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티스트이고 허당스러운 캐릭터라는 거예요. 작가님께서 ‘젊었을 때 반짝이던 미남 배우가 와서 철없이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캐스팅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작품 출연에 신나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악역 전문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 ‘퀸’, ‘오만과 편견’ 등에서 악역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이제 중년으로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은 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도 50대에 액션 영화에 도전했고, 60세가 넘어서 전성기를 맞았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늦깎이 아빠의 버킷리스트
정찬은 또 하나의 슬로 에이징 방법으로 ‘늦은 육아’를 꼽았다. 42세에 아빠가 됐다는 그는 “첫딸은 열 살이고 둘째인 아들은 아홉 살이다. 친구들의 자녀는 벌써 성인이다”라면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인지 젊게 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2015년 이혼한 정찬은 올해 8년 차 ‘싱글대디’다. 방송과 SNS에서 보이는 아버지로서 그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싱글대디로서 부족한 부분은 많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이죠. 친구들이 아빠가 되면서 많이 변했다고 그래요. 저 스스로도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평소에 저는 아이들하고 장난도 잘 치지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분명하게 짚어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감정이란 괴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싱글대디에 대해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정찬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한 적도 있겠지만, 내색을 많이 안 한 것 같다. 주말마다 엄마를 자주 만나고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혼 생각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취미를 즐기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일상이 행복하다. 연애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육아가 또 다르고 힘들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그때 일이고,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정찬. 최근에는 드론 강사 자격증, 무인 헬리콥터 교관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가 남았다. 첫 번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 두 번째는 손자·손녀를 품에 안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우선적으로 소화해야 할 역할을 ‘배우’와 ‘아빠’라고 꼽은 사람답다.
“당장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상한 이력도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손자·손녀를 안아보는 게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적령기가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결혼을 늦게 하겠죠.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고요. 더욱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 낳을 가능성도 있죠. 제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지만, 아프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오토바이 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정찬은 인생 모토를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은 제2의 탄생이다’라고 표현했다. 잘 늙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도 거론된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법이다. 이를 몸소 입증한 정찬은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40~60대는 자신에 대해 심오하게 사색하고 고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사람들과 다툴 때 ‘내가 왜 그럴까’라고 원인을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나를 사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죠. 죽음이라는 제2의 탄생이 다가올 때까지 한 발짝씩 계속 걸어갈 겁니다.”
얼핏 글쓰기는 문턱이 낮아 보인다.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도, 대단한 조건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막상 책상에 앉아보면 다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초보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노후를 바꾸는 글쓰기·책쓰기,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안내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두 명의 길라잡이를 만났다.
글쓰기 편
2011년 10월, 조부의 친일 사실을 고백한 글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일제강점기 고위 관료 경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할아버지를 대신해 친손자는 “민족과 역사 앞에 사죄”했고, 곧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주인공 윤석윤 씨를 12년이 지나 마주했다.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를 냈던 중년의 글쓰기 교실 수강생은 어느덧 시니어 글쓰기 강사가 되어 있었다.
윤석윤 강사는 12년 전 집을 나선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처음 수강한 글쓰기 교실에서 내준 첫 과제가 가족을 주제로 에세이 쓰기였습니다. 할아버지를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내 나이 쉰다섯에요. 그렇게 쓴 글이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글쓰기가 막연하게 느껴지면, 저처럼 해보길 권합니다. 근처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 가세요. 가서 글쓰기를 배우세요.”
그는 돈을 지불하고 배우는 길이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글 쓰고 받는 피드백 하나, 그리고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자하면 달라집니다. ‘제대로 배우겠다’는 마음이 강해지죠. 결석하지도 않아요. 숙제도 다 제출합니다. 그게 돈을 지불하고 지불하지 않고의 차이예요.”
학교에는 교훈, 가정에는 가훈이 있듯, 윤석윤 강사의 강의에는 강훈이 있다. ‘숙제는 내는 것’이다. 그만큼 숙제를 강조하는 그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좋아집니다. 제아무리 글쓰기 책을 본들 한계가 있습니다. 요지는 거의 비슷하거든요. 문제는 저자가 우리 글을 봐주지 않는다는 거지요. 혼자 쓰면 잘 쓰고 있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습니다.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내 글을 전문가에게 보이고 피드백을 받아봐야 합니다.”
윤석윤 강사는 이 과정을 2년여 거쳤다. 글쓰기 대학원에 다닌다는 생각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한 번에 두세 과정을 듣기도 했다. 숙제는 악착같이 냈다. 피드백은 가장 매운 버전으로 받았다. 원고는 시뻘건 줄이 죽죽 그어져 돌아오기 일쑤였다. “저는 빨간 펜을 지나 고추밭을 넘어 피바다를 헤맸습니다.(웃음)” 혹독한 트레이닝 속 방황하고 성장하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윤석윤 수강생은 윤석윤 강사가 됐다.
“저는 글쓰기 ‘입문’ 강사입니다. 여전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수강생이었던 오랜 경험이 있지요. 좋은 글을 보는 눈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답 노트도 있고요.”
그는 입문 단계에서 좋은 글을 쓰려면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쉬운 글, 재밌는 글, 짧은 글이다.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글을 지양하고,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끌고 가는 재밌는 글을 쓰라는 의미다. 이때 문장은 너무 길지 않게 단문 중심으로 쓰길 권했다. “글도 하나의 전달 수단입니다. 읽는 사람이 못 알아듣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에요. 어려운 내용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내용을 쓰더라도, 그 내용을 쉽게 풀어 써야 한다는 것이죠. 글에도 밀고 당기는 ‘밀당’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기억하세요. 그래야 뒤 내용이 궁금한 재밌는 글이 됩니다. 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입문 단계에서는 주술 호응이 틀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듯이 쓰면 정리가 되지 않아요. 문장을 짧게 정돈하며 쓰면 훨씬 더 잘 읽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겁니다.”
윤석윤 강사는 입문자를 상대로 방법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동기다. 그가 첫 수업마다 수강생을 향해 던지는 첫 질문도 ‘왜 글을 쓰려고 하느냐’다. “다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으로 글쓰기 교실 문을 두드리지만, 실제 동력은 필요에서 옵니다. 끝까지 하는 힘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 배가됩니다. 욕망이 있는 사람과 필요가 있는 사람은 달라요.”
윤석윤 강사는 철저히 필요에 의해 움직였다. ‘책을 쓰겠다’는 버킷리스트가 그를 지치지 않게 했다. 저서가 필요했고, 그래서 글을 썼다. 조지 오웰이 ‘왜 나는 쓰는가’에서 말했듯, 순전한 이기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잘난 체하고 싶어서다.
기회가 오면 욕심을 부리고, 기회를 얻은 뒤엔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길 10여 년. 윤석윤 강사가 출간한 책은 벌써 공저 포함 다섯 권이 넘는다. 필요에 의해 시작된 글쓰기로 그는 화려한 노후 준비까지 마쳤다. 그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고 말한다. “혼자 있어도 글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글을 쓰며 놀면 되니까요.”
책쓰기 편
‘순이 삼촌’부터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다. 1982년 출판계에 입문한 그는 1983년 출판사 ‘창비’에 입사한 뒤 15년간 영업자로 일하며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렸다.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해 25년째 운영하고 있는 한 소장의 관심은 이제 더 이상 판매에 있지 않다. 책에 관한 담론을 담은 책을 펴내는 출판사 ‘북바이북’, 국내 최초 시니어 전문 출판사 ‘어른의시간’, 4090세대 여성을 위한 그림책을 펴내는 출판사 ‘백화만발’ 등 양질의 단행본 출간을 지향하는 출판 브랜드를 운영하며 신인 저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윤석윤 강사에게 출간 제의를 한 이도 다름 아닌 한 소장이었다.
‘출판계 전설’ 한기호 소장은 시니어 작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삶을 살아낸 이들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이제 지식을 원하지 않아요. 지혜를 원하지요.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 살아냈는가가 중요합니다. 살아낸 이들이 편안하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 이미 일본 출판 시장을 휩쓸었습니다.”
‘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작가는 말했다. “창작을 하는 데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라고. 한 소장의 생각도 같다. 그는 고유한 삶의 지문을 가진 이를 발견할 때마다 따뜻한 말과 함께 손을 내민다. “책은 문장력으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축적된 삶으로 쓰는 것이지요. 책 써보지 않겠습니까?”
축적된 삶 중 어떤 부분을 보여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한기호 소장은 좋은 책을 쓰는 방법 중 단연 ‘트리밍’(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거나 격렬했던 순간을 몇 개 꼽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바로 트리밍입니다. 그 시기를 이야기하다 보면 앞뒤가 연결됩니다. 전후 맥락이 있을 테니까요. 그때 만난 사람, 겪은 일, 느낀 감정을 쓰다 보면 결국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정리가 중요해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는 팩트가 확실한 주관화도 강조한다.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만 해서는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느껴져야 해요. 어설프면 곤란하지만, 적당히 들어가야 합니다. 단, 팩트는 확실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팩트로 독자를 설득해야 하죠. 팩트는 사람, 사물, 사건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한 소장은 책을 쓰고자 한다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편집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편집자적 글쓰기’를 하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나아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 소장은 유홍준 교수를 예로 들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자세히 보세요. 문화재청장 하기 전과 후의 글이 또 다릅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고 접하는 지식이 달라지면 글도 진화합니다.”
한기호 소장은 책쓰기 연습을 서평 쓰기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한 사람의 인사이트가 응축된 책을 읽고 압축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추천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장이 권하는 좋은 책 쓰는 마지막 단계는 편집자와 같은 전문가를 만나 논의하는 과정이다. “책이 포트폴리오가 된다는 명분을 가지고 시쳇말로 ‘뜯어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글을 제대로 읽고, 가치가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전문가를 만나 피드백받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한 소장은 앞으로도 유명 저자를 섭외할 생각이 없다. 혹 출간 제안을 받으면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책을 내면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연결되고 또 연결되고 하는 거죠.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책을 쓰는 자체로 인생이 바뀝니다.”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일컫는다. 공자가 50세에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 천명은 인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우주의 섭리나 보편적 가치를 이른다. 쉰 살이 되던 해, 이광식(71) 천문학 작가는 지난 삶을 내려놓고 우주를 탐닉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지금, 그의 인생은 ‘별 볼 일’이 더 많아졌다.
이광식 작가가 천직이라 여긴 출판사 일을 그만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주 때문이었다.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천문학 서적을 두루 펴냈고, 한국 최초로 천문 잡지 ‘월간 하늘’을 창간하며 사심을 담았지만, 우주를 향한 갈증은 계속됐다. 발은 땅에 닿아 있어도 머릿속은 늘 별밭을 거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자신의 처지가 억울해졌다.
“하루는 야근하고 가는데 어느 집 베란다에 누런 조등이 걸려 있더군요. 그걸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 이렇게 정신없이 밥벌이하다 죽으면 저런 조등 하나 켜고 끝나겠구나. 내가 사는 우주라는 동네는 아직 산책도 못 해봤는데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대문 걸어놓고 지내다 집 안에서 죽는 꼴이잖아요. 마침 출판사를 인수하겠다는 임자도 나타났겠다, 그길로 일을 접고 강화도 퇴모산에 들어왔습니다.”
우주의 가르침, 그것은 사랑
‘우주로 떠나기 전(죽기 전) 백수가 되어 맘껏 빈둥빈둥 게으름 피우며, 읽고 싶은 책 읽고 별 보며 우주나 사색하다 가자.’ 이것이 그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리고 퇴모산에 들어오며 모든 것을 단번에 이뤄냈다. 쉰이라는 나이에 자칫 무모한 선택일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이 또한 천명이었을까. 우주를 사색하던 시간 속 그는 천문학 작가라는 제2의 직업을 얻었다.
“낮에는 자연 속에서 빈둥거리다가 밤에는 별을 보고 책도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수식이 많은 천문학서는 반도 이해 못 하겠더라고요. 오죽하면 중고등학생 수학, 과학 참고서를 사다가 공부했다니까요.(웃음) 그렇게 해도 천문학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더군요. 어쨌든 10년 정도 관련 책만 100여 권 읽다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천문학 서적을 재미있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집필을 시작했죠.”
가을부터 시작한 작업은 그해 겨울에 마무리됐다. 교양천문학서 스테디셀러에 빛나는 ‘천문학 콘서트’(2011)가 그렇게 탄생했다. 인문학적 융합형 천문학 도서라는 호평에 이어, 쇄를 거듭하며 인세도 적잖이 받았다. 들어온 돈은 고스란히 별과 우주를 산책하는 데 쓰였다.
“그 인세로 지금 사는 집 2층 베란다에 개인 관측소 ‘원두막 천문대’를 지었어요. 요즘도 가끔 올라가 10인치 돕소니언 반사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죠. 여름엔 안드로메다은하를 많이 보는데, 지구로부터 250만 광년 떨어져 있어요. 인간의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라고 해요. 또 우리가 보는 별은 대개 수백 년 전에 출발한 빛 알갱이들이죠. 그렇게 별과 우주의 방대한 시공간에 비하면 인류는 모닥불에서 탁 튀어 올랐다 사그라지는 불씨 한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천문학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고 했다. 밤하늘을 마주할 때면 그러한 물음을 통해 삶을 성찰한다고. 오랜 사색 끝에 이 작가가 내린 결론은 하나, 바로 ‘사랑’이다.
“수십 년 우주를 고찰하며 깨달은 점은 ‘결국 인간이 할 일이라곤 사랑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인데, 그 장구한 시간 앞에 우리네 인생은 그야말로 찰나입니다.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궤도에서 찍은 사진 속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아요.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지요. 그렇게 조그만 행성에서 길어야 100년 남짓 머물면서 욕심내고 아옹다옹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천명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슬기로운 삶이라 생각해요. 셰익스피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죠. ‘머지않아 헤어질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라.’ 그게 우주가 제게 준 가르침입니다.”
불을 끄고 별을 켭시다
이광식 작가는 우주를 잊고 사는 현대인을 일컬어 ‘우주불감증’을 앓는다고 표현했다. 특히 지금처럼 광해(光害)가 심하기 전, 깜깜한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며 꿈을 키웠을 중장년조차 우주감수성을 잃어가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에 우주와 별을 더 가까이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우주와 별을 알아가고, 나와의 관계를 이해하면 보다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갖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실제 거리만큼이나 별과 인간의 관계는 다소 멀게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에 그는 인간은 ‘메이드 인 스타’(Made in star)라며 관계성을 설명했다.
“흔히 별을 까마득한 존재라 여기는데, 알고 보면 인간은 별 먼지로 이뤄졌습니다. 수소를 제외한 지구상 모든 물질은 별과 초신성에 의해 생겨났으니까요. 철, 칼슘, 탄소 등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 또한 별들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셈이죠.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어버이별’에서 몸을 받고 태어난 존재랍니다. 즉 별이 없으면 인류도, 나도 없었을 거예요. 그만큼 별과 인간은 밀접한 관계죠. 별지기들이 별을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별지기 대부분이 이러한 별의 존재를 알리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가령 어떤 별지기들은 길가에 천체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행인들에게 토성을 보여주는 등 자신이 아는 별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천체 망원경이 많이 보급되고 관측 기술이 발달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별 보는 일’을 어렵게 여긴다. 하지만 이 작가는 “당장 오늘 밤이라도 별지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제가 수백만 원 하는 어마어마한 장비를 가진 줄 알아요. 그런데 지금 있는 굴절 망원경도 20만 원 정도고, 원두막 천문대에 놓은 몸체만 한 반사 망원경도 100만 원대입니다. 그거면 달 분화구는 물론이고 목성 줄무늬도 관측 가능해요. 관심 있다면 투자할 만한 금액이죠. 꼭 망원경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북극성을 비롯해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만 2000개가 넘거든요. 그러니 별지기가 되고 싶다면 일단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보세요. 동시에 우주와 별과 나의 관계를 헤아린다면 그것으로 별지기의 자격은 충분합니다.”
이 작가는 서울 같은 불야성 도시에서는 별 관측이 어려우니, 강원도나 강화도 등 인가가 적은 지역을 찾길 권유했다. 더불어 그는 한국의 빛 공해 문제를 일컬으며, ‘별 볼 일’ 많은 세상을 위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이 빛 공해가 심각한 걸로 세계 2위라고 해요. 빛 공해 지역이 국토의 89.4%를 차지하죠. 때문에 국내에서 밤하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양양 ‘별빛 보호지구’처럼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단순히 별 관측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수면 장애나 생태계 교란 등 환경 문제도 일으킨다고 해요. 그러니 인간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밤에는 불을 끄고 하늘의 별을 켜보면 어떨까요?”
“2022년 개기월식 놓치지 마세요!”
인터뷰 말미에 이광식 작가는 별지기를 꿈꾸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희소식을 전했다.
“다가오는 11월 8일은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월식은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해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이죠. 우리나라 어디서든 관측할 수 있는데, 좀 더 잘 보려면 주변에 큰 건물이나 높은 산이 없고 동남쪽 하늘이 트인 지역이 좋아요. 꼭 실제로 그 장엄함을 마주하시고, 우주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유쾌하고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 알아야 할 트레킹의 기초! 기초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트레킹이 유행하고 있지만 과연 배낭 속에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다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완벽한 트레킹이란 집을 떠나 산을 오르고 걷다가 다시 집으로 무사하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에서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웬만큼 안다고 자부해도 의외로 모르는 정보들이 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해봤다.
배낭 속 장비 리스트
걷고자 하는 코스, 당일 날씨, 동행자 인원 등에 따라 배낭 속 장비 리스트는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트레킹 필수 장비를 꼽아봤다.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비를 보완해 완벽한 배낭을 꾸려보자.
헤드램프 모든 일정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면 좋겠지만 시간은 예정보다 지체되기 십상이다. 특히 여름철의 경우 저녁 8시까지 시야가 밝기는 해도 산속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워진다. 여분의 배터리와 함께 배낭 윗부분에 헤드램프를 챙기자.
바람막이 재킷(방수·방풍 재킷) 부지런히 걸을 때는 온몸에 열이 나지만 5분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식으며 체온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바람막이 재킷을 챙겨 휴식을 취할 때 입으면 보온이 된다(일기예보를 체크해 방수·방풍 재킷을 준비한다).
선글라스 강렬한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한다.
선크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트레킹 전 미리 충분히 바른다. 땀과 함께 씻겨 내리는 액체류보다는 스틱용을 추천한다.
물병 1~2ℓ짜리 물병을 준비한다. 트레킹 시작 20~30분 전에 500ℓ정도를 마신다. 물을 미리 마셔두면 걷기 중 갑자기 목이 마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가면 기호에 따라 커피 등 차도 마실 수 있다.
물컵 둘레길 곳곳에서 만나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일 때 개인 물컵이 있으면 좋다.
방수주머니 땀이 나거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때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등을 보관할 수 있다.
깜빡이 날이 어두워진 상황에서 길을 잃었을 때 구호용으로 유용하다.
호루라기 비상시에 구호용으로 준비한다.
반사밴드 이른 새벽 혹은 저녁 보행 중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
벌레퇴치제 여름산에는 벌레가 많다. 트레킹 컨디션을 쾌적하게 유지하고 싶을 때 준비한다. 약국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손수건 땀을 비롯한 이물질을 닦을 때 유용할 뿐만 아니라 부상을 입었을 때 지혈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휴식 중에는 벤치 위에 깔고 앉을 수 있다.
기초 구급약 리스트
트레킹 중 구급약품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면서도 막상 준비하려면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허둥지둥할 때가 많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급약들을 정리해봤다. 작은 파우치에 넣어 가면 비상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소독용 에탄올 티슈 상처 부위에 묻은 흙을 닦아낼 때 사용한다.
연고류 외상용 기본 구성으로 준비한다.
밴드류 환부의 세균 침투를 막아준다.
거즈 환부를 보호해준다.
압박붕대 접질리고 골절을 당했을 때 고정용으로 활용한다.
스포츠 테이핑 발목과 무릎 등에 무리가 올 때 테이핑을 활용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도 쓸 수 있다.
진통제 갑작스러운 두통, 복통, 근육통에 시달릴 때 사용한다.
에어파스 삠, 타박상, 근육통 등에 쓰면 좋다.
칫솔 넘어져 다쳤을 경우 상처 부위의 이물질을 긴급히 제거할 때 요긴하다.
절단 주사기 산행 중 벌레에 쏘이거나 가시가 박혔을 때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나무젓가락 사고로 신체 부위가 골절됐을 때 고정용으로 활용한다.
노끈 나무젓가락 등으로 고정한 부위가 움직이지 않도록 묶을 때 사용한다.
행동食 리스트
행동식의 필수 요건이 있다. 첫째, 소화 흡수가 잘 돼야 한다. 둘째, 쉽게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유통기한이 길고 배낭 속에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 음식이 좋다). 셋째, 가벼워야 한다. 넷째, 칼로리가 높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다섯째, 무엇보다 내 입맛에 잘 맞아야 한다. 기호 식품 위주로 준비하되 이동하는 중간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준비한다.
미숫가루 포만감을 갖게 해주면서 갈증도 없애준다.
이온분말 땀으로 배출되는 전해질을 보충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을 이용해도 되지만 물에 타서 마시는 분말을 준비하는 게 좋다.
에너지바 빠른 시간 안에 당을 충전해야 할 때 먹는다.
비스킷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제공한다.
육포류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골고루 섭취하면 트레킹 중 체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견과류 단백질을 제공한다.
초콜릿류 에너지바와 함께 빠르게 당을 충전할 때 좋지만 지병이 있을 경우 과도한 섭취를 하면 안 된다.
인스턴트 쌀국수 기름기와 염분이 많아 국물까지 다 섭취하기 부담스러운 컵라면의 단점을 보완한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오이 수분이 많고 쉽게 먹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트레킹 메이트다.
분말커피 기호에 따라 준비한다. 걷기 중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캠핑정보 사이트 ‘고캠핑’(www.gocamping.or.kr) 기준 전국 캠핑장 수는 2300여 곳에 이른다. 과거 강가나 계곡 주변에서 텐트를 치고 즐기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요즘은 펜션이나 휴양림, 카라반 등 다양한 편의시설에 체험활동이나 액티비티 등을 운영하는 캠핑장도 늘어났다. 산, 바다, 도심 등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휴식, 취미, 관광 등 그 목적까지 고려해야 선택지를 좁혀가며 만족스러운 캠핑장을 고를 수 있다. 캠핑장 찾기 팁과 더불어 테마별 추천 캠핑장 정보까지 담아봤다.
도움말 및 자료 제공 캠핑퍼스트(김한수 이사)
캠핑은 야외에서 먹고 자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안락하고 깨끗한 편의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많아졌지만,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예견했던 불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캠핑장을 고르느냐에 따라 캠핑의 질이 달라지는 셈이다. 캠핑장을 고를 때는 캠핑의 목적을 먼저 염두에 둔다. 휴식을 위한 것인지,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함인지, 취미활동을 병행할 것인지 등에 따라 산, 바닷가, 계곡 등 주변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가족 등 동반자의 특성을 고려해 서로의 취향을 잘 반영한 캠핑장을 고른다.
◇ 캠핑장 선택 시 주요 고려사항
① 접근성 캠핑장에 머무는 시간에 비해 이동시간이 길면 피곤할 수밖에 없다. 거리나 교통 상황 등을 확인해 무리가 가지 않는 위치를 선정한다. 새벽에 출발해 밤에 돌아오는 일정을 선호하는 캠퍼들도 많다.
② 예약 가능 여부 아무래도 예약을 해야 더 안정적이다. 몇몇 캠핑장은 예약자에 한해서만 입장 가능하다. 선착순 운영 캠핑장을 간다면 대안으로 근처 다른 캠핑장들도 미리 알아두자.
③ 편의시설 캠핑장 인근에 식료품이나 캠핑용품을 구입할 만한 편의시설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에 따라 캠핑 짐을 쌀 때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정리해 빠짐없이 챙기자.
◇ 캠핑장 찾기 Q&A
❶ 초보 캠퍼가 캠핑장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실제로 캠핑장을 보고 선택하기는 어렵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참고하게 된다. 이러한 캠핑장 후기의 경우 주관적인 견해이거나, 간혹 대가를 받고 호의적인 글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가급적 다양한 리뷰를 살펴보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글이거나 홍보성 내용들은 걸러서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❷ 중장년이 캠핑장을 고르며 특별히 더 살펴봐야 할 것은? 지병이 있거나 건강이 염려되는 중장년의 경우 위급 상황에 찾아갈 인근 병원 위치를 파악해두도록 하자. 거동이 불편하다면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이 좋다. 자식이나 손주 등이 찾아올 계획이라면, 방문자 출입이나 인원 추가가 가능한지의 여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❸ 가을철 캠핑장(캠핑사이트) 선택 요령은? 가을은 비교적 쌀쌀하기 때문에 해가 잘 드는 자리에 텐트를 설치하면 좋다. 마른 나뭇잎이 많거나 마른 잔디인 경우 작은 불씨에도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한다.
◇ 테마별 추천 캠핑장
Theme#1 자연환경 취향 따라 Pick!
[01]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캠핑장
행복한나드리 캠핑장 |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소규모 캠핑장이다. 가을에 찾는다면 알록달록 물든 주변 풍경과 더불어 코스모스도 만끽할 수 있다. 캠핑장 인근의 배론성지나 치악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단풍 구경을 가도 좋다. 솔방울 공예품 만들기, 목공예 등 시기별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86-1)
달숲 캠핑장 | 산속에 단풍나무와 밤나무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이면 절경을 이룬다. 주변 소음이 적고, 캠핑장 내에서도 고성방가 등을 엄격히 제한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 도담삼봉 등이 가깝고, 제천 시내와 인접해 대형마트 등을 이용하기 편리하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89-1)
[02] 숲속 힐링&자연휴양림 캠핑장
춘천숲자연휴양림 |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닿는 거리로, 잣나무와 참나무 숲이 우거진 아늑한 자연휴양림이다. 산림휴양관, 숲속의집을 비롯해 야영데크, 글램핑장, 오토캠핑장 등이 마련돼 있다. 데크 이외에도 고급텐트와 캠핑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대여 가능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강원 춘천시 동산면 종자리로 224-104)
편백힐 치유의숲 | 치유의숲 내에 캠핑장이 있어, 편백나무 사이사이 텐트 설치가 가능하다. 피톤치드를 가득 내뿜는 조용하고 깨끗한 숲을 즐기기 제격이다. 야영장과 함께 편백나무와 황토로 벽을 만든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방 내부에도 나무보일러를 설치해 향긋한 편백의 기운을 따뜻하게 만끽할 수 있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하남실길 212)
[03] 바다를 한눈에 오션뷰 캠핑장
몽돌바다 캠핑장 | 서해 몽돌해변과 인접한 500m의 전용 해변을 보유한 곳으로,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감성돔, 우럭, 도다리, 숭어 등이 잡히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가 여러 곳 있고, 인근 갯벌에서 짱뚱어와 바닷게 채집 등 바다를 즐기기 좋다. 해질녘 노을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꼽힌다. (전남 신안군 암태면 신석리 413-1)
욕지도 파라다이스 오토캠핑 | 욕지도 유동마을의 한 폐교를 개조한 곳으로 민박과 야영장을 함께 운영한다. 캠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동해수욕장이 나온다. 인근 방파제에서 바다낚시를 즐기거나 조개, 고동, 소라 등 해산물을 채집할 수 있다. 섬에 있는 캠핑장이기 때문에 예약 전 통영 삼덕항에서 배편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경남 통영시 욕지면 유동길 111)
Theme#2 다양한 즐길 거리 따라 Pick!
[01] 역사·문화·관광지 인근 캠핑장
화적연 캠핑장 캠핑장 | 바로 옆 한탄강이 흐르고, 근처에 명승 제93호 화적연이 있어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도 옮겼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화적연은 영평8경중 제1경이자 포천 한탄강8경 중 제3경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 산정호수, 철원제2땅굴, 고석정 등이 인접해 주변 볼거리가 풍부하다. (경기 포천시 관인면 뗏마루길 43-116)
별을 다는 아이 | 온전히 캠핑을 즐기게끔 캠핑장 내에는 별다른 놀이 공간이 없지만, 인근의 다양한 문화 시설과 접근성이 좋다. 장흥유원지 내에 위치해 있고, 장흥자생수목원, 송암천문대, 권율장군묘,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장흥아트파크, 조각공원, 두리랜드 등이 인접해 아이들과 함께하기 제격이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309번길 132)
영월 느티나무 캠핑장 | 영월 내리계곡에 위치해 청량한 자연 경관이 매력적인 곳이다. 물놀이를 즐기는 여름에도 좋지만, 주변 볼거리 덕분에 언제라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김삿갓문학관, 별마로천문대, 고씨동굴, 청령포, 장릉, 모운동마을, 아프리카미술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등 찾아갈 명소가 즐비하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계곡로 1061)
[02] 농촌·텃밭·공예 체험 캠핑장
귀한농부학교 | 농부체험, 민속체험, 미꾸라지 잡기, 쿠키·피자 만들기, 목공예, 식물공예, 숲해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말체험농장의 경우 당일 또는 연간 회원권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캠핑장 내 민속체험장, 동물농장, 허브농장, 수생원 등이 마련돼 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422)
다릿재농원 | 캠핑장 천등산과 장병산 사이 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가을이면 사과(홍로) 따기, 밤 줍기, 모과청 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번 가을에는 매주 토요일 선착순으로 인근 충주 고구려 천문과학관 견학도 진행한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765-4)
신화 가족목공체험 캠핑소 | 목수 부부가 운영하는 목공체험 캠핑장.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책상, 가족이 만드는 식탁 등 원하는 품목을 정해 오랜 기간 숙박하며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캠핑장 내 카페와 가구 작업소, 갤러리, 수확체험농장 등도 이용 가능하다. 목공예 비용은 실비로 책정된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강상로 326)
Theme#3 특별한 편의시설 따라 Pick!
[01] 글램핑·카라반 캠핑장
새연카라반 리조트 |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리조트형 캠핑장으로, 반려견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다. 계곡 럭셔리 카라반, 프리미엄 폴딩도어 카라반, 스파 카라반 등 여러 콘셉트의 카라반과 감성 글램핑, 오페라 글램핑 등 다양한 글램핑도 즐길 수 있다. 짚바이크, 클라이밍 등 독특한 액티비티도 운영한다. (경기 가평군 조종면 운악청계로333번길 86)
생각 속의 집 | 모던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눈에 띄는 글램핑장이다. 복층형 펜션 2동과 독특한 구조의 글램핑 사이트 5동이 자리하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 좋다. 원주 레일바이크가 캠핑장을 지나고,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간현관광지, 한솔 오크밸리 등 관광지도 가까워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52-5)
[02] 스파·찜질방 겸비 캠핑장
원주 참숯가마 캠핑장 | 힐링존, 피크닉존, 스카이워크존 등 다양한 콘셉트의 사이트가 마련된 이곳의 백미는 바로 ‘참숯가마 찜질방’이다. 캠핑장 입장객에 한해 무료로 이용 가능한데, 매주 불 빼는 날에는 참숯가마에 구운 ‘3초 삼겹살’도 맛볼 수 있다. 깡통열차 체험장, 모래놀이터 등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무료로 개방한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 솔치로 88)
그린콩 캠핑장 | 깔끔한 농장형 캠핑장으로 오토캠핑과 일반캠핑 사이트 모두 운영한다. 사이트마다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어 그늘 걱정이 필요 없다. 여름엔 캠핑장 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쌀쌀한 가을엔 따뜻하게 야외 스파를 즐기면 좋다. 스파 시설은 총 3동으로, 1회 5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경기 가평군 북면 소법리 627-54)
◇ 캠핑퍼스트가 제안하는 캠핑장 매너 15가지
1. 캠퍼들이 잠드는 밤 10시~아침 7시까지 매너(에티켓)타임을 지킨다(매너타임은 캠핑장에 따라 다를 수 있음).
2. 고성방가는 자제한다. 음악은 볼륨을 낮추거나 이어폰을 사용한다.
3. 쓰레기는 분리수거하고, 샤워실, 개수대 등 공용시설을 깨끗하게 쓴다.
4. 주변에 피해를 주는 과도한 음주는 자제한다.
5. 불꽃놀이 금지. 텐트에 불꽃이 떨어지면 장비 손상이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6.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캠핑장이라도 통제가 안 된다면 출입을 삼간다.
7. 캠핑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곤 한다. 자전거든 자동차든 꼭 서행한다.
8. 도난사고에 유의하자. 귀중품은 휴대하고 캠핑장을 벗어날 때 고가의 장비는 차량에 보관한다.
9. 드론은 항공법에 준수해 사용하자.
10. 풍등 날리기 금지. 나무가 많은 캠핑장 특성상 풍등은 자칫 화재로 이어진다.
11. 남녀노소 불문 노상방뇨 금지. 아무리 급해도 용변은 화장실을 이용한다.
12. 지정된 장소에서만 흡연하기.
13. 다른 옆 캠퍼의 생활공간인 사이트를 허락 없이 지나치는 일은 삼간다.
14. 각종 공놀이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즐긴다.
15. 캠핑장 내 과도한 애정행위 자제하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김동문은 당시 금메달이 확실시됐던 배드민턴 혼합복식 박주봉-라경민 조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4개 대회 연속 우승,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2011년 세계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김동문(金東文·44) 원광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를 만났다.
“초등학교에 배드민턴부랑 야구부가 있었어요. 야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 대신 장비도 주고 간식도 준다는 배드민턴을 선택했죠.”
김동문 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드민턴과 야구, 둘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사실은 야구가 정말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야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배드민턴 라켓을 집어 들었고 그렇게 셔틀콕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후보에서 금메달리스트로
고등학교 1학년 땐 청소년 국가대표로, 이듬해엔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집을 떠나 지금은 없어진 진해선수촌에 입촌했다. 그 당시 2주에 한 번씩 외박이 주어졌는데 마치 군인이 휴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국가대표라고 해서 모든 선수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대표팀 안에서도 주전에 뽑혀야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 진출할 수 있어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죠. 웨이트 트레이닝, 모래코트 훈련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뛰어야 하는 체력훈련이 제일 싫었어요.”
그는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히기 전까지만 해도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긴 시간 동안 후보 선수로 지낸 탓에 여러 번 배드민턴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고.
“다른 동기들은 주전으로 뽑혀서 운동하는데 저는 후보 선수였어요. 운동하고 싶어도 심부름만 시키니까 당시엔 상처를 많이 받았죠. 운동을 그만두려고 맘먹으려는 찰나에 친구들이 ‘조금만 더 해보자’라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절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다른 삶을 살고 있겠죠.”
그때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던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수십 년간 함께 복식 파트너로 활동한 하태권이다. 김동문-하태권 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1999년 쿠알라룸푸르·2002년 방콕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 1999년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등 우승의 영광을 함께 누렸다. 그는 “생애 첫 우승과 마지막 우승을 함께한 친구”라며 “가족과도 같은 존재”라고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하태권 감독과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같이 운동을 시작했어요. 초등학교에서 가장 큰 대회가 소년체전이었는데 저희 둘이 같은 팀으로 출전했죠. 결승전을 앞두고 서로의 손을 꽉 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나요.”
‘기도’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에서 김동문-하태권 조가 이동수-유용성 조를 꺾고 선보인(?) ‘기도 세리모니’다. 이에 대해 그는 “선배인 이동수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선수랑 결승전에서 만나니 이기더라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감독님의 지시가 있었어요. 우승하고 나서 하태권 감독이 포옹하려고 다가오는데 제가 ‘태권아, 기도하자’라고 했대요.(웃음) 그렇게 해서 찍힌 사진이 저는 무릎을 꿇고 있고 하태권 감독은 제 머리 위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에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이용대 선수가 우승한 뒤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린 일명 ‘윙크 세리머니’는 당시 수많은 누나를 설레게 하며 한동안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에게 우승했던 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새롭게 해보고 싶은 세리머니가 있는지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즐기는 배드민턴을 한 게 아니라 무조건 우승을 목표로 전투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조금 즐기면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하라고 하면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 못할 것 같아요.”
배드민턴이 맺어준 인연
김동문은 남자복식뿐만 아니라 혼합복식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김동문-라경민 조는 국제대회 70연승, 14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는 등 8년여 동안 세계 최고의 배드민턴 혼합복식조로 군림했다. 김동문, 라경민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둘은 서로 연인관계였음을 공개, 동시에 깜짝 결혼 소식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경기 결과가 항상 좋을 순 없잖아요. 그럴 때 경기력 저하의 원인을 연애로 볼까봐 공개연애는 하지 않았어요. 다행히 복식 파트너여서 그런지 같이 밥을 먹고 챙겨줘도 저희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함께 운동하다 보니 서로 붙어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마음이 잘 통했던 것 같아요.”
한국 최강은 물론 세계 1위까지 올라간 김동문-라경민 조는 혼합복식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8강에서 중국의 장준-가오링 조에 일격을 당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8강에서 탈락, 유난히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올림픽 시작 전에 방송사에서 예상 순위를 공개하잖아요. 그때 저희 조가 금메달 1순위도 아닌 0순위로 이름이 올랐어요. 근데 8강에서 떨어진 거죠. 한동안은 아쉬워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였어요.”
그는 이겼던 경기보다 진 경기가 더 생각난다며 그중에서도 1점 차이로 우승을 놓친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를 꼽았다.
“이때 결승전에서 장준-가오링 조를 다시 만났어요. 1년 전 시드니올림픽에서의 패배를 꼭 갚겠다는 각오였죠. 경기 초반엔 잘 안 풀렸어요. 10대 3 정도로 크게 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한 점 한 점 따라붙으니 동점까지 만들어지더라고요.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엔 결승점을 내주는 바람에 17대 16으로 졌어요. 이때 이겼으면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3연패가 가능했을 텐데… 많이 아쉽더라고요.”
그는 같은 팀에게 연달아 패배한 이유에 대해 “정신력 싸움에서 졌다”고 토로했다.
“지는 경기를 많이 해봐야 했는데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거의 모든 경기에서 이기다 보니 저희가 지고 있을 때 헤쳐 나가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역전 기술이 부족해 점수에서 밀리고 있을 때 뒤집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지더라고요.”
한편 그는 가장 힘들었던 상대로 장준-가오링 조가 아닌 다른 팀을 꼽았다. 바로 자국 선수들과 만났을 때가 가장 어렵다는 것.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니까 제일 힘들죠. 그래서 서로 연습할 때도 절대 안 지려고 했어요.(웃음)”
후학 양성에 힘 쏟고 싶어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동문은 미련 없이 코트를 떠났다. 당시 영국, 프랑스 등에서 대표팀 감독 제의가 있었지만, 그는 대학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캐나다 유학길을 선택했다. 이후 모교인 원광대학교에 사회체육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현재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솔직히 편한 건 선수 때가 더 나은 것 같아요.(웃음) 처음엔 해보지도 않은 수업 준비도 해야 했고 또 엉뚱한 수업을 맡게 되면 거기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근데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서 돌이켜보니 감독이라는 자리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더라고요.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배드민턴은 무엇인지 물었다.
“제 인생에서 배드민턴을 빼면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뭐랄까… 배드민턴은 저에게 많은 과제와 책임, 기쁨과 희망, 그리고 지금의 ‘김동문’을 있게 해준 참 고마운 존재죠.(웃음)”
최근 들어 VR카페, 사금카페, 낚시카페, 방탈출카페 등 이색적인 체험을 테마로 하는 여러 레저 카페가 생겨났다. 그중 새롭게 떠오르는 카페가 있으니, 바로 양궁카페다. 양궁카페… 정말 양궁을 할 수 있는 곳일까? 김행수(70), 김종억(66) 두 동년기자와 함께 애로우팩토리 홍대점에 직접 가봤다. 촬영 협조 애로우팩토리
양궁장과 카페가 하나로 ‘양궁카페’
양궁카페는 말 그대로 양궁장과 카페가 합쳐진 곳으로 커피나 음료를 마시면서 양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선수들이 주로 70m 거리에서 경기를 한다면 양궁카페는 실제 양궁장의 크기를 축소해 일반인들도 접근하기 쉽게 만들었다. 애로우팩토리 홍대점의 경우 과녁까지의 거리는 약 10m. 초보자도 몇 번 연습하면 쉽게 과녁에 화살을 꽂을 수 있다. 레저 카페답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자와 음료도 진열되어 있다. 원하는 간식을 집어 결제하면 끝! 밖에서 음식을 사와도 된다. 단 음주는 불가능하다. 애로우팩토리 이용요금은 30발에 1만 원, 1시간에 1만5000원, 평일 종일권 3만5000원이다. 애로우팩토리 이동우 사장은 초보자라면 시간제를, 경험이 있으면 화살 개수로 체험할 것을 추천했다.
김행수 동년기자
음식도 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간단한 스낵류만 판매한다. 그래도 밖에서 사올 수 있다니 그 점은 베리 굿! 양궁카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김종억 동년기자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과녁이 붙어 있어서 활이나 총을 쏘는 곳인 줄 알았다. 벽에 걸려 있는 활을 보고 ‘아 여기가 실내 양궁장이 맞구나’ 확신했다. 활만 계속 쏘면 나이가 나이인지라 힘들 텐데 중간중간 쉬면서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전문 장비와 시설을 갖춘 공간
양궁카페를 이용하기 위해선 꼭 개인 장비를 사야 할까? 답은 ‘장비 걱정할 필요 없다’이다. 양궁카페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단순화한 활이 준비되어 있다. 또 손가락을 보호하는 ‘핑거 탭’, 팔목 보호대 ‘암 가드’, 가슴 보호대 ‘체스트 가드’ 등 보호 장비도 갖춰져 있다. 체험에 앞서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화살집 ‘퀴버’를 허리에 두르면 선수 출신 전문가의 도움으로 사전 교육이 이뤄진다.
“과녁을 중심으로 옆으로 선 뒤 양발의 간격은 어깨 폭 정도로 벌려주세요.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겨 가슴을 열어줍니다. 이때 왼손과 오른손이 일자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김행수 동년기자
솔직히 말하자면 큰 기대는 안 했다. ‘정식 양궁장도 아닌데 얼마나 잘되어 있겠어!’ 했다. 하지만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생각보다 장비도 잘 갖춰져 있었고 깔끔해서 좋았다. 자세 같은 경우 틀리면 옆에서 전문가가 바로바로 고쳐주니 초보자도 큰 부담 없이 올 만하겠다. 연습해서 명중에 도전해보자.
김종억 동년기자
양궁 경기를 TV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활을 만져보거나 쏴본 적은 없다. 전문 장비를 착용하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구쳐 오르는 기분? 겉모습만큼은 금메달리스트다. ‘활이 무거워서 무리가 가면 어떡하나,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했는데 다양한 무게의 활이 준비되어 있었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즐기기
양궁카페 이용객의 평균 연령은 20~30대. 주로 커플이나 직장 동료들이 찾지만 요즘엔 가족 단위의 이용객도 많아졌다고. 다양한 연령층과 비전문가가 모이다 보니 양궁장에서의 부주의와 실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연습이나 경기 시에는 안전수칙을 꼭 지켜야 한다. 화살을 뽑으러 갈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화살을 다 쐈을 때 한꺼번에 이동하며 이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절대로 경기장 내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 간단한 수칙 몇 가지만 지킨다면 안전하게 양궁을 즐길 수 있다.
혼자 연습만 하는 게 지루하다면 같이 온 사람과 함께 대결을 해보길 추천한다. 혼자 할 때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높아지고 짜릿한 승부욕이 발동된다. 10점에 명중시켰을 땐 인증사진도 잊지 말자.
김행수 동년기자
분명 가운데를 보고 쐈는데… 화살은 과녁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외롭게 꽂혀 있었다. 욕심을 가지고 쏴서 그런가? 편한 마음으로 쐈을 때 오히려 결과가 더 좋았다. 마지막 딱 한 발이 10점에 명중해서 기분이 좀 풀렸다. 내가 젊었을 땐 오빠, 누나라는 호칭이 없었다. 그냥 남녀 할거 없이 나이가 많으면 모두가 형이었다. 연애할 때도 딱히 데이트라고 할 게 없었다. 그 시절에 양궁카페가 있었다면 친구랑은 가봤겠지만 힘든 걸 싫어하는 아내와는 취향을 고려해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김종억 동년기자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화살이 나가지 않아 아쉬웠다. 마지막엔 김행수 동년기자와 대결을 했는데 확실히 혼자 할 때보다 집중하게 되고 재미있었다.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었을 땐 주로 다방 데이트, 한강 데이트를 즐겼다. 한강에선 보트를 빌릴 수 있었는데 여자 친구를 태우고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 시절 양궁카페가 있었다면 한 번쯤은 연인이랑 왔을 것 같다. 그때 살짝 져주는 센스를 보여줬다면 연인이 즐거워했겠지.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한마디로 노는 사람이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그는 2013년 52세의 나이에 여행사를 창업, 인생 2막을 ‘문화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뛰는 사람에서 ‘튀는 사람, 노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영욱 대표는 여행,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사진 모두 전문가 수준의 취미를 갖고 있다. 57세, 보통 사람은 이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할 때다. 그는 하나씩 실행해나가며 지워나가느라 오히려 홀쭉하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DJ의 꿈은 팟캐스트 활동으로, 음식 칼럼을 쓰고 싶다는 꿈은 중앙일간지 연재를 통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가상역사소설, 공상과학소설로 저술을 준비하는 등, 그의 꿈은 산지사방 전 분야에 걸쳐 뻗쳐 있고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는 왼쪽 팔목에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문신을 새겼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젊은이들처럼 멋부리기 유행을 타서도, 폭력배처럼 위협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버릭,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편견과 습관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고 자유선언이다. 그는 “세상의 터부 내지 스스로의 금기를 깬 느낌 때문인지 시원했다”며 “세상에 길들여져 탈색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단식과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는 것도 본질과 개성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는 비우고 내려놓고 편견의 곁가지를 쳐내야 핵심에 집중해 생생해진다고 말한다. 삶이나 몸이나 생각이나, 심지어 음식의 맛도….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간 일하며 미국, 일본, 프랑스 글로벌리서치 사의 한국법인 CEO를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52세의 나이에 이종 분야 창업을 하신 게 특이합니다.
“경영상 이견으로 외국 회사 한국법인 CEO를 그만두고 됐어요. 20대 때부터 몸담아온 마케팅 리서치 일을 다시 할까도 생각했어요. 마케팅 리서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 본질에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제 성격의 완벽주의랑 맞아 신나게 일했어요. 25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스스로 타성이 느껴지더군요. 현재의 삶에 그럭저럭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아직 젊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한 달에 보름씩 골프를 쳐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재미가 제 삶의 중요 요소예요. 좋게 말하면 글로벌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요. 익숙한 길보다 가지 않은 길, 새롭게 흥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던지고 싶었어요.”
주 대표께서 생각하는 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줘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절로 벗어나게 한다고나 할까. 여행 가면 늘 낯선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을 따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추하다vs아름답다, 옳다vs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줘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요.”
그는 인도 여행을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초라한 행색의 인도인이 자기 배를 타달라고 호객 행위를 심하게 하더란 것.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넘어져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기에 또 호객 행위를 하러 온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고. 알고 보니 약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매번 시시각각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요.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고품격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여행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400회 이상 해외 여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기획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여행 계획을 짜면 모두들 즐거워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여행사도 못 짠다. 너, 나중에 여행사 차려라’ 하고 농담할 정도였거든요. 두 번째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여행업은 미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요. 세 번째는 인맥에 대한 자신감이었지요. 제가 온갖 모임의 총무, 회장을 맡아 마당발이었거든요. 아는 VIP들만 모객해도 걱정 없겠다 생각했지요. 금방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만….”
즐기던 여행을 막상 사업으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과 취미는 전혀 달라요. 지금까지 여행사를 하며 실제 고객은 모르는 분들을 개척한 거예요. 아는 사람과 도와주는 사람은 전혀 별개예요. 처음엔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분보다 전문성을 갖고 냉정하게 판단하거든요. 인생 2막, 새로 도전하면서 과거 인맥을 바탕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적극 말려요. 사업은 아는 사람 믿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기본인데도 잊기 쉬워요.”
그는 “내가 여행상품 기획은 잘하니 호텔, 항공료 절감 등 원가 관련 문제 같은 부족한 실무 요소는 남을 통해 보완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며 “사장이 큰 그림 보며 해야 할 일을 직원이 대신 해줄 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만일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여행 가이드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직원을 하든 현장에서 밑바닥 경험을 1~2년 반드시 해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신은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해놓고 시작해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가 히트를 친 것은 고품격 테마여행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관광상품 출시다. 동종 상품의 3~4배 가격으로 고품격의 명품패키지를 기획한 게 먹힌 것이다. 2016년 그는 여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자와 서비스 제공자(여행사/랜드사/가이드/해외교민/유학생 등)를 직접 연결시키는 맞춤형 여행 도움 플랫폼 ‘티비스켓’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 대표는 “얼핏 마케팅 리서치 경력이 여행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케팅 리서치의 본질은 옥석을 가려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행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끌리기보다 호기심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 대표와 대화를 하며 특이한 모습을 발견했다. 인생의 우선순위로 재미를 이야기하고, 본인도 재미있게 살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유머가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서 설명하고 단어의 정의를 내린 후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나라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을 지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지요. 일간지에 연재도 하셨고 ‘이야기가 있는 맛집’이라는 책까지 내셨습니다. 일반 음식 칼럼과는 달리 식당 셰프, 사장의 인생 사연을 곁들이는 게 특색이더군요. 잘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이던가요.
간단히 말하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말은 쉬운데 오래 유지하긴 어려워요. 이런저런 핑곗거리와 유혹 때문에 넘어가기 쉽거든요. 유명한 집과 맛 좋은 집은 달라요. 진정한 맛집의 음식에선 주인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손님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 결국 음식은 재료맛, 손맛, 칼맛의 조합이거든요.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음식은 첫맛, 중간맛, 끝맛이 일관되게 같아요. 단맛이나 자극적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첫입엔 당기지만 끝맛이 좋지 않아요.”
주 대표는 ‘맛집을 고르는 비결’로 2가지를 귀띔해줬다. 사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 오랜 전통을 가진 곳, 이 두 기준으로 고르면 틀림없다는 것.
요즘 상(上)남자는 상(床)남자, 상 차리는 남자란 농담도 있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잘 하십니까.
“한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내 손으로 메뉴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의욕이 넘쳐 비싼 칼이랑 파스타 냄비만 잔뜩 사놓고선 그만뒀어요. 손이 입을 못 따라가 중년 남자의 작심삼일 셰프놀이에 그쳤지요.(웃음) 애들이 먹지 않으니 요리할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그냥저냥 요리는 재미있는데 뒷정리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동년 친구들에게 충고해주는 게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고가의 장비랑 상관없으니 비싼 그릇과 도구는 사지 말라고요. 고급 골프채를 새로 샀다고 골프 스코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주지요.”
음식 칼럼니스트가 꼽는 최고의 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준 김치찌개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돼지고기 넉넉하게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으면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요. 나의 소울 푸드라고나 할까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서 집밥 해주는 정성을 알기에 일절 불평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반찬투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답니다. 음식은 입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소박한 집밥 한 끼가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최근 아프리카 여행 때는 가수 휘성 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하셨다면서요. 산악자전거 타기, 사진가,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 전문 케이블 TV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자로서 저는 수치에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업이 자리가 잡히면 직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파트너 관계로 경영하고 싶어요. 좋은 음식이 그렇듯 뒷맛이 좋고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같이 질리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DJ로 활동하는 맛집탐방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촉촉한 7080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곁들여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얼마나 더 ‘홀쭉해진’ 버킷리스트를 갖고 나타날지 궁금해졌다. 그때 같이 먹을 추천 식당도….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손관승(58) 전 iMBC 대표를 만났다. 전 MBC 베를린 특파원, 전 iMBC 대표이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그는 여러 개의 호칭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여한 현업(業)은 스토리 노마드, 즉 이야기 유목민이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저술을 하는 삶이다. 전반전은 수치와 가치를 추구한 2치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브런치, 맘대로 시간을 쓰고 배울 수 있는 사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한발 먼저 호흡해야 하는 눈치, 3치의 삶이란다. 그의 3치의 삶에 1치를 덧붙이고 싶다. 재치! 고전의 인용과 고급 유머의 재치를 적재적소 활용하는 활용하는 그에게선 자유인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그는 거듭되는 사진 촬영 포즈 요청에도 ‘Sure’, ‘OK’를 연발하며 경쾌하게 응했다. 또 ‘흑모백모(黑毛白毛) 가리지 않고 아쉬운 중년의 머리숱이니 정수리 부분의 사진 촬영은 피해 달라’는 유머로 분위기를 경쾌하게 띄웠다. 퇴직 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른바 전직의 ‘잉크’가 쏙 빠진 티가 역력했다.
메고 오신 백팩의 끈이 ‘나달나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닳았습니다. 바꾸지 않고 사용하시는 사연이 있으신지요.
“독일 속담에 ‘가방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할 때 직원들이 선물해준 것입니다. ‘그간 고생했으니 새로운 설레는 이야기를 담아 가져와달라’는 당부를 담아서요.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제가 일생 뜨겁게 일하던 열정, 후배와 동료들이 준 사랑 등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긴 가보예요. 그 직원들의 바람과 기대를 생각하면 열심히 뛰게 되지요. 중요한 자리에도 가능한 한 이 가방을 메고 간답니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빈티’ 가방을 ‘빈티지’ 가방으로 보면서 감동받더군요. 이 백팩과 운동화는 스토리 노마드로서의 프로 의식과 현장 의식을 잊지 않겠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는 제 다짐이 담긴 인생 2막 필수 장비(?)입니다.”
퇴직 후 많은 사람이 조직의 후광, 즉 타이틀이 없어지는 상황에 멘붕이 되시더군요. 선생께선 어떠셨습니까.
“타이틀 앞에 전(前), ex라는 말이 붙는 것보다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죽어라 하고 치달린 인생이 A4 용지 발령장 하나로 흔들리지요. 자기 인생을 찾으려면 명함의 타이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과거는 선용 하면 자산이지만, 매달려 있으면 부채입니다. ‘내가 누군데’ 하며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실패합니다. 허세를 빼야 실세가 됩니다(허허). ex를 잊어야, 인생 전반전에서 exit해야 인생 후반전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예전 CEO를 할 때도 늘 엑시트 플랜이 없는 프로젝트는 결재 보류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20년 이상 일했으면 나중에 어떻게 엑시트할지 상정해놓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경영자는 수치(數値)가 나쁘면 수치(羞恥)를 당한다. 최고의 수치는 강판당하는 것, 그만두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경영자 시절 “매일 주가, 실적, 매출, 수익 등의 수치와 싸워야 했다”며 “나쁜 수치는 강판을 시키지만, 좋은 수치가 자리를 보호해주지는 않는 게 현실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그늘조차 위트를 담아 말하는 모습이 스토리 노마드다웠다.
조직에 있으면서 출구 전략을 미리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뭘 원하는지, 잘하는지 자신과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세월과 나이가 저절로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퇴직을 속절없이 당하느냐, 의지를 갖고 맞이하느냐는 차이가 큽니다. 코앞의 일이 급하다고 미루다 보면 늦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왔어도 자신과의 대화를 갖지 못한 사람은 퇴직 때 자괴감과 혼란을 느끼기 쉽습니다.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멈추면 더 위험하고 부상도 크게 당하지 않습니까. 준비 없이 갑자기 조직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그와 같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책 없는 ‘퇴직’과 대책을 생각해둔 퇴직은 많이 다릅니다.”
그는 “지금의 50플러스 세대는 물심양면에서 퇴직 이후가 가장 준비되지 않은, 낀 세대”라며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대충 해도 잘살았어 하며 퇴직 이후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선생께선 2013년 퇴직 후 괴테의 궤적을 따라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셨지요.
“과거에는 일에 미쳤지만, 이젠 한량이 되어 내가 미칠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심리스(seamless), 말 그대로 30년을 재봉틀 박음질하듯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에 완전 지쳤다고나 할까요. 번아웃(burn out)된 내 인생에 갭 이어(gap year), 안식년을 줘야겠다는 절박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혹자는 ‘먹고살 만한 게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요. 대학 다니는 애들도 둘이나 있고요. 독일 여행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느라 새 자리와 기회, 제안 등을 놓쳤지요. 하지만 리스크 없는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일, 내일’ 하며 미루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다 보면 ‘매일 책임질 일’은 계속 이어지고 평생 헤어나오질 못해요. 여행을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자유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요.”
그의 여행 궤적은 이라는 책으로 나왔고, 마법처럼 제2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퇴직 후 일반적 설계는 크게 버킷리스트의 로망형, 생활형 구직으로 크게 나뉘는데요. 각각의 유형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인지요.
“첫째도 둘째도 자기탐색입니다. 버킷리스트를 남, 책, 영화에서 나온 대로 따라 하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맞춤 프로그램을 세워야 합니다. 속절없이 시간보내기를 하면 후회합니다. 계획을 세웠으면 도전해야 합니다. 못할 이유를 찾으면 백 가지도 더 나오게 마련입니다. 또 조급한 구직 역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이 나는 이치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오랫동안 일할 커리어 로드맵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프리랜서로 2막을 시작하신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드셨지요. 전반전과 후반전의 룰은 무엇이 다릅니까.
“인생 전반전은 남이 정해진 룰을 익히는 타율의 적응학습이라면, 후반전은 자기주도 학습이에요. 전반전이 패키지여행이라면 후반전은 자유여행이에요. 당연히 전술과 전략이 달라야 해요. 남이 보기 좋은 옷이 아니라 내게 어울리는 옷, 내게 맞는 신발을 고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요. 남의 답안지 훔쳐보면서 인생을 허비할 시간이 이젠 없어요. 또 주인공에서 벗어나 조연, 심지어는 카메오 역할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관점을 전환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다스리면 됩니다. 그러다 가끔 주인공 역할 맡게 되면 또 감사한 것이고요.”
인생 전반전은 앞서가기 위해 최고에 역점을 뒀더라도, 2막은 최적을 택해, 오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빛 좋은 개살구’보다 ‘뚝배기보다 장맛’의 내용, 즉 자기 적합성 여부를 따져야 멀리, 오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말하며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꼰대는 과거에 갇혀 있고, 어른은 미래를 향해 있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꼰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며 장광설만 늘어놓고 실천은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른은 매일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영광, 기억에 머물러 있으면 ‘옛날 타령’만 하게 됩니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을 해야 하는데 꼰대일수록 doing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입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우려는 것, 그것이 조직 밖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자 어른으로 존경받는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職)과 업(業)은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직(職)은 조직에 있어야만 유지되는 직책, 직장이지요. 업은 남이 뺏을 수 없는 본인의 경쟁력, 경륜입니다. 퇴직 후의 대책 하면 흔히 경제적인 것과 이직을 위한 타이틀 등 유형자산만 생각합니다. 저는 업, 경험과 지혜의 노하우 등 무형자산을 준비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도 종잣돈이 필요하듯, 인생 2막에 키워나갈 수 있는 종자 경험이 업입니다. 전문성, 네트워크, 경험 등의 총합인 내 일[業]이 없으면 내일(來日)은 없습니다.”
그는 “직은 동료들에 비해 뒤처졌지만 업의 힘을 베를린 특파원 시절에 길렀다”며 “혼자 지낸 고독력이 그 비결”이라고 털어놓았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 혼자 하는 여행. 웅덩이가 있어야 물이 고이는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야 창조적인 것들이 따라온다는 설명이다.
파워 스토리텔링을 강조하시는데요. 선생처럼 베를린 특파원, CEO, 교수 등 화려한 경력과 해외탐방의 이색 경험이 없는 분들도 가능합니까.
“내 이야기야말로 삶의 무궁무진한 무형자산이에요. 각각 자기의 파워스토리는 다 갖게 마련이지요. 스토리텔링이란 성공 스토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극복 스토리예요. 백퍼센트 성공담과 실패담은 재미와 의미가 없어요. 시련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느냐 그것을 담아내는 반전에서 스토리의 파워가 나옵니다. 나를 스토리텔링할 줄 아는 게 경쟁력 있는 셀링포인트예요. 덕장, 지장보다 앞서는 게 운장이라고 하는데요. 그보다 상수가 담장(談將), 즉 스토리장이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그의 인생 2막을 열어준 비밀의 열쇠는 현직 시절 틈틈이 적어놓은 수첩이다. 이순신에게 남아 있던 ‘12척의 배’처럼 12권의 수첩이 그를 소생시켰다. 책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인생 2막의 시침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한다. 심지어는 영감을 얻은 식당의 영수증까지 노트에 꼼꼼히 붙여놓는다. 그것이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된다.
이른바 ‘손빠’를 가지실 만큼 강연 및 저술로 프리랜서계에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자신의 저서 에서 “100세 시대에 코끼리에 붙어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1인 기업가’처럼 강인한 벼룩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 바 있지요. 프리랜서가 명심해야 할 생존법은 무엇입니까.
“자유직업, 프리랜서의 다리는 조직인의 다리와 달라야 합니다. 뭍사람의 다리와 뱃사람의 다리가 다른 것처럼요. 뭍사람은 배를 타면 작은 파도의 출렁거림에도 일을 못합니다. 반면 뱃사람은 균형감각을 잡아 폭풍우 속에서도 일을 하지요. 프리랜서는 뱃사람처럼 심리적으로 굳건한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고체가 돼선 안 되고 액체가 돼 늘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고요.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프리랜서력(力)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상대를 설레게 할 정도의 섹시한 제안 능력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기 위해 생자료를 가공자료로 바꿔 기획안을 만들고, 제안하고, 그러다 역제안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전직을 내세워 고위관계자와 직통하려 드는 것. 필패하게 돼 있다는 조언이다. 둘째는 상시 준비력이다. 언제 어떤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알파에 베타까지 덧붙여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준비력이다. 평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쉬는 날에도 일해야 하는 상시 근무체제와 같은 의미다. 셋째는 탄력 회복성이다. 숱하게 거절당하거나 좌절당할 일이 있어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회복하고 돌아봐 스스로를 성장시킬 계기로 삼는 능력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묻죠. 손 선생에게 현재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마음 설레는 일을 갖는 것입니다. 쓰고 싶은 글거리가 줄줄이 머릿속을 채우고 맴돌 때의 희열, 그것 이상의 행복과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인터뷰 후 연거푸 제안서 미팅이 있다며 낡은 백팩, 아니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서둘러 일어섰다. 파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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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심플하게, 더 심플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들보다 더 많이, 더 크고 좋은 걸 가져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갖고 싶은 걸 가져도 행복감은 기대한 만큼 지속되지 않는다. 너무 마음에 들어 구입한 물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면서 결국 싫증이 난다. 꼭 필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모으고 사느라 월급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고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집은 점점 더 좁아진다. 우리는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갖게 된 물건을 보관하고 유지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다. 결국 정작 중요한 물건이나 일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고, 늘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집에 있는 옷장이나 책상 서랍을 예를 들어보자. 자주 꺼내 입는 옷,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물건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소유한 물건 중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채 2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80~90퍼센트의 물건은 몇 번 쓰지도 않고 공간만 차지한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많은 물건들을 더 소유하기 위해 오늘도 욕심을 부리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핵심, 욕심을 버려라
애플에서 쫓겨났던 잡스가 복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케케묵은 서류와 오래된 장비를 모두 없애는 일이었다. 첫 업무로 물건 줄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잡스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기에 그 외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최소한으로 줄였다. ‘무엇을 할까?’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더 중요시했던 진정한 미니멀리스트 스티브 잡스는 업무는 물론 옷도 단순한 스타일을 고집했다.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낼수록 나다운 삶,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스트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물건을 줄여나가는 사람’이다. 여기서 물건이란 가구, 가전, 소품, 옷 등 물리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물건을 탐내는 욕심, 무의미한 일에 쏟는 에너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포함한다. 그렇기에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면 ‘쾌적한 환경’과 더불어 ‘삶의 행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핵심이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인생철학
물건을 줄이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충만함이 느껴진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지 않기에 비참한 기분에 휩싸이는 일도 줄어든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니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으며, 집중력도 높아지고,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해서도 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무엇보다 달라지는 것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점이다. 물건을 줄이면 현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답답하고 복잡한 현실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미니멀리스트의 인생철학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