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오늘도 젊음을 향해 질주하는 정찬(53)에게 썩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연예계 대표 라이더’로 통하는 그는 바이크 라이딩뿐만 아니라 스킨스쿠버 다이빙, 사격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이것이 젊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마음속에서 꽃핀 철학이 몸과 마음 모두 단단한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찬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작품 운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이 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기가 묘하게 맞물렸다. 간간이 작품 활동을 했지만 주요 배역을 연기한 것은 2019년 KBS 2TV 일일드라마 ‘왼손잡이 아내’가 마지막이다. 일이 없는 괴로움과 상실감은 너무나 컸다. 과거 ‘한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불리며 청춘스타로 인기를 끈 시절도 있었으니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열심히 다잡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선물처럼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달 첫 방송된 KBS 2TV 일일드라마 ‘피도 눈물도 없이’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활동 기지개를 편 그는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운 좋게도 데뷔 이후 계속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한 해에 세 작품을 한 적도 있었죠. 그래서 지난 고비의 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염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끙끙거리면서 배앓이를 하는 그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아픔이라는 고비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픔의 감정에 휩싸이고 우울해집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다른 탈출구를 찾고, 공부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찾은 마음이 건강해지는 답은 감정 기복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모든 것은 나한테서 시작되거든요. 지금 죽을 것 같은 상황도 결국 내 판단일 뿐이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가지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정찬은 다양한 아웃도어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이것이 건강하게 천천히 늙어가는 ‘슬로 에이징’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취미 생활이나 운동을 하다 보면 감정의 기복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그의 유별난 취미 생활이 알려진 것은 2018년 국내 최초 실탄 예능 ‘방탄조끼단’을 통해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다. 알고 보니 그의 밀덕 역사는 길었다. 1995년부터 BB건(BB탄 총)으로 즐기는 레저 스포츠인 에어소프트 게임을 즐겼다고.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아웃도어 취미 생활도 ‘질주’
“드라마 데뷔작인 1995년 MBC ‘TV 시티’에서 스턴트맨 영태 역을 맡았어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안 배웠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촬영을 위해 배우게 된 거죠. 그런데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2002년에는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취득해서 계속 활동했어요. 저에게 수업을 받은 연예인 제자도 몇 명 있습니다. 저는 바다라는 존재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 휴지기 때도 다이빙 여행을 다녔는데요. 덕분에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찬의 대표적인 취미는 바이크 라이딩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오토바이 업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인 수준이다. 정찬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OB찬_일기’를 통해 라이더로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바이 리뷰를 하거나 오토바이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재밌게 전해준다. 여기에 더해 이번 달에는 유튜브 채널 ‘임볼든’에서 그가 MC를 맡은 라이더 관련 토크쇼 콘텐츠‘정찬의 술레바퀴’가 공개된다.
“바이크 라이딩 취미는 30대 중반부터 갖게 됐어요. 이제는 대중들도 취미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존중해주고 좋게 봐주신다고 느낍니다. 물론 위험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바이크를 탈 때는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해야 합니다. 크게 한 번 사고를 당한 적이 있지만, 안전 장비를 하고 있었던 덕에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죠.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는 스쿠터 한 대를 갖고 있는데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거나, 병원에 갈 때 아이들을 스쿠터 뒤에 태우죠. 아이들 스스로 스쿠터 탈 때는 헬멧을 꼭 써야 하고, 반소매 옷은 안 된다는 걸 알고 딱 준비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줄 때도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어요. 아이들이 안전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취미 생활과 그의 작품 속 캐릭터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도회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실장·사장 등 고위 엘리트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방영 중인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YJ그룹 회장 윤이철 역을 맡고 있다. 액션 연기를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는 언젠가 한풀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작품 속에서 제복을 입어본 적이 아예 없습니다.(웃음) 당연히 액션물도 좋고, 장르물에도 출연하고 싶어요. 업계에서는 제가 소비된 이미지가 있으니, 계속 그 이미지로 저를 불러주신다고 생각해요. 이번 ‘피도 눈물도 없이’도 회장님 역할이니까 그동안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티스트이고 허당스러운 캐릭터라는 거예요. 작가님께서 ‘젊었을 때 반짝이던 미남 배우가 와서 철없이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캐스팅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작품 출연에 신나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악역 전문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 ‘퀸’, ‘오만과 편견’ 등에서 악역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이제 중년으로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은 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도 50대에 액션 영화에 도전했고, 60세가 넘어서 전성기를 맞았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늦깎이 아빠의 버킷리스트
정찬은 또 하나의 슬로 에이징 방법으로 ‘늦은 육아’를 꼽았다. 42세에 아빠가 됐다는 그는 “첫딸은 열 살이고 둘째인 아들은 아홉 살이다. 친구들의 자녀는 벌써 성인이다”라면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인지 젊게 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2015년 이혼한 정찬은 올해 8년 차 ‘싱글대디’다. 방송과 SNS에서 보이는 아버지로서 그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싱글대디로서 부족한 부분은 많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이죠. 친구들이 아빠가 되면서 많이 변했다고 그래요. 저 스스로도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평소에 저는 아이들하고 장난도 잘 치지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분명하게 짚어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감정이란 괴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싱글대디에 대해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정찬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한 적도 있겠지만, 내색을 많이 안 한 것 같다. 주말마다 엄마를 자주 만나고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혼 생각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취미를 즐기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일상이 행복하다. 연애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육아가 또 다르고 힘들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그때 일이고,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정찬. 최근에는 드론 강사 자격증, 무인 헬리콥터 교관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가 남았다. 첫 번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 두 번째는 손자·손녀를 품에 안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우선적으로 소화해야 할 역할을 ‘배우’와 ‘아빠’라고 꼽은 사람답다.
“당장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상한 이력도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손자·손녀를 안아보는 게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적령기가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결혼을 늦게 하겠죠.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고요. 더욱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 낳을 가능성도 있죠. 제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지만, 아프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오토바이 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정찬은 인생 모토를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은 제2의 탄생이다’라고 표현했다. 잘 늙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도 거론된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법이다. 이를 몸소 입증한 정찬은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40~60대는 자신에 대해 심오하게 사색하고 고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사람들과 다툴 때 ‘내가 왜 그럴까’라고 원인을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나를 사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죠. 죽음이라는 제2의 탄생이 다가올 때까지 한 발짝씩 계속 걸어갈 겁니다.”
감사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는 찾아내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찾지 않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저물어가는 계묘년을 감사로 마무리해보면 어떨까요.
초등학교 시절 소풍에서 백미는 보물찾기입니다. 장기자랑도 좋고, 김밥에 사이다 먹는 맛도 좋지만, 보물찾기만큼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그 시절 보물찾기는 학생 수만큼 보물이 적힌 쪽지가 넉넉하지 않고 찾기 힘든 곳에 감춰져 있는 게 아쉬운 점이라면, 감사 보물찾기는 보물 쪽지가 학생 수를 넘어설 만큼 충분할 뿐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게 다른 점입니다. 심지어 남들은 불운이나 불행·불평·불만이라 생각하는 것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보물 쪽지가 생겨난다는 점은 가장 특별합니다.
감사는 나에게 없는 것을 찾는 게 아닙니다. 내게 있는 것, 남들 눈에 하찮아 보일지라도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감사는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불행을 은혜로 돌리는 마법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나쇼날, 파나소닉, JVC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든 마쓰시타(松下)전기 창업주입니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성공을 이룬 비결을 묻자, 하늘로부터 세 가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가난한 것, 병약(病弱)한 것, 못 배운 것이 그가 꼽은 세 가지 은혜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덕분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는 잘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네. 또 허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았지. 몸을 아끼고 건강에 힘썼기 때문에 아흔이 넘은 지금도 겨울에 냉수마찰을 한다네. 그리고 알다시피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야. 그 덕분에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받들고 배웠다네. 이런 불행한 환경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주었으니, 하늘이 준 은혜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부모를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며 불행 속에 자신을 가둘 것들이 그에게는 하늘이 준 축복이자 은혜였습니다.
고마운 게 없는 당신에게
“너는 그게 고맙지 않니?”
“왜요? 저는 하나도 고마운 게 없는데요.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은진 씨는 아들 이야기를 듣자마자 뒤통수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팔십 넘은 아버지가 혼자 된 아들을 위해 좋아하는 육회거리 장을 봐오셨는데 한다는 말이 그 모양이라니요.
괘씸하고 서운해만 할 일은 아닙니다. 찬찬히 아들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때입니다. 요즘 들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늘 성난 얼굴로 자기 방에만 처박혀 있기 일쑤에, 고마운 게 없다는 말은 자기 마음이 상처받고 병들어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무엇을 보아도 자기 기대와 욕심에 못 미치는 것들뿐이라 불평·불만이 꽉 찬 상태여서 고마운 맘이 들어갈 틈이 없을 테니까요.
‘때문에’ 안경을 벗을 때
2018년에 나온 영화 ‘레슬러’(Love+Sling)에서는 자신(유해진 분)의 뒤를 이어 레슬링 국가대표 선발전을 눈앞에 둔 아들(김민재 분)이 갑자기 결승전 문턱에서 사라지면서 숨겨왔던 갈등이 폭발합니다.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웃음을 잃은 아버지를 위로하고자 시작한 레슬링 놀이가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이르자, 아들은 이게 자신의 꿈이 아니라고 호소합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홀로 너를 키우며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은 자신에게 꿈이 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아버지를 납득하지 못합니다.
자식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한풀이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 거야, 이런 말은 자녀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줍니다. 부모의 불행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미안함은 무력감, 좌절, 분노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때문에’ 지옥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매사를 ‘때문에’ 안경으로 보면 불평·불만,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차게 됩니다.
밥 한 그릇의 여정(旅程)
‘감사’(感謝)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감사입니다. 우리말 ‘고맙습니다’도 이전 글에서 필자가 풀어본 것처럼 당신은 ‘고마’(신을 뜻하는 옛말)와 같이 귀한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고마움은 내 앞에 있는 존재를 하늘과 같이, 신과 같이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로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 잘 먹겠습니다)와 ‘고치소사마’(ごちそうさま, 잘 먹었습니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타다키마스’는 ‘하늘과 땅의 은총을 젓가락을 높이 들어 받겠습니다’를 줄인 말로, 나에게 생명을 내준 식재료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밥 한 그릇만 봐도 씨 뿌리고 키운 농부의 정성, 비와 햇볕과 바람으로 함께한 하늘의 정성, 탈곡과 정미, 유통, 그리고 깨끗이 씻어 밥을 한 정성까지 긴 여정을 거쳐 상에 오릅니다.
‘고치소사마’는 일본식 한자로는 ‘ご馳走様’가 되는데 ‘馳走’는 둘 다 ‘달리다’는 뜻으로, 이 식재료가 내게 오기까지 분주히 뛰어다닌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린다는 의미라고 합니다.(히스이 고타로, ‘하루 한 줄 행복’ 중에서)
감탄-감사-감동 삼위일체
몸도 마음도 지친 퇴근길,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이 버스에 탄 승객들을 위로하고 감사와 감탄, 감동의 물결을 이룹니다.
“마을 경로당 어르신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수능을 앞둔 인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한 명도 빠짐없이 돌아가도록 손수 초코과자를 만들어 전달했습니다. 선물을 받아 든 학생들이 고마워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감사에 주파수를 맞춘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 감사 파동이 일렁입니다. 감탄-감사-감동은 삼위일체처럼 움직입니다. 아, 감탄하는 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고,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갑니다.
감사가 바꾸는 세상 : 덕분에 챌린지
#장면1
무인(無人) 카페의 문이 열립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이가 들어오더니 목이 말랐는지 물을 마십니다. 갑자기 한 아이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향해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가게 문을 닫고 나가면서도 두 아이 모두 고맙다며 인사를 합니다.
#장면2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어른 손님들 속에 한 초등학생이 계산대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더니 동전을 기계 뒤편에 놓고 나서 CCTV를 쳐다보며 주인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아이스크림값 여기에 두고 간다고요.
최근 들어 무인 점포가 늘어나면서 주인이 지키지 않는다고 물건을 함부로 집어가거나 바닥에 용변을 보는 등 파렴치한 일이 간혹 뉴스에 등장하곤 합니다. 부끄러운 어른들 기사 속에 별처럼 아름다운 아이들 이야기가 가슴을 찌르르 울립니다. 학교폭력에 손가락질하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요즘 아이들 욕하다가 정작 내 곁에 다가온 착하고 아름다운 천사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장면3
코로나19 시국이 길어지면서 우리 국민 모두 지쳐갈 즈음 2020년 보건복지부에서 ‘#덕분에챌린지’를 통해 의료진을 위한 릴레이 응원 이벤트를 펼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국민은 의료진에게 수어(手語)로 ‘존경합니다’라는 표현을 하고, 의료진은 국민에게 ‘감사합니다, 자부심을 느낍니다’라는 뜻을 담은 손동작을 공식 SNS에 올렸습니다. 숨 막히는 장비를 껴입은 채 밤낮없이 더위도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역과 치료에 매진했던 의료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글로 영상으로 나눴던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1. 어머니가 태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2. 아버지가 태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3. 아버지, 어머니를 존재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합니다.
4. 어머니가 탈 없이 무사히 자라셔서 감사합니다.
5. 아버지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셔서 감사합니다.
6. 부모님이 잘 만나셔서 감사합니다.
7. 부모님이 결혼하셔서 감사합니다.
8. 저의 형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9. 저를 낳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10. 저와 형이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건강하게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1. 제가 부모님을 볼 수 있는 건강한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 형 수능 끝나고 힘든 기간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21. 저 수능 끝나고 진짜 위험한 순간 잘 넘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27. 늘 저를 믿어주시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63. 제 사생활을 존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7. 우리 가족이 최고여서 감사합니다.
2015년 4월 어느 날 필자 작은아들이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받은 후 부모 초청 행사에서 세족식(洗足式)을 하면서 읽어준 ‘100 감사’ 중 일부입니다. 올해 마지막 ‘마음 반창고’를 준비하면서 서랍에서 찾았네요. 당시 아들이 울면서 읽어 내려가느라 세세히 몰랐던 내용이 이제야 가슴에 들어옵니다. 독자님 덕분에 아들 마음을 다시 새겼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이들이 그룹을 이루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합창단이 있다. 하지만 구성원이 여성 성악가, 그것도 소프라노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레이디스타즈는 특별하다. 성악계의 스타들이 모여 창단한 그룹이기 때문이다.
소프라노는 이탈리아어로 ‘높은’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에서 온 단어다. 말 그대로 성악에서 높은 음역을 담당하는 여성 성악가를 말한다. 단지 높은 영역의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니다. 흔히 프리마돈나라고 말하는 오페라의 주인공은 소프라노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오페라가 이것을 전제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모인 여섯 명은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스포트라이트를 당연히 독차지했던 인물들이다. 모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주인공들이다 보니, 어떤 면에선 어느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머니들이 만든 성악의 길
리더인 김경희도 “소프라노들이 그룹을 이루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남성 성악 그룹은 조금씩 생기는 편인데, 그에 비해 여성 그룹은 거의 없어요. 그것도 여섯 명이나 모인 경우는 거의 없을 거예요. 게다가 저희는 대부분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에서 수학한 해외파로만 구성되었으니 더욱 신기한 일이죠.(웃음)”
레이디스타즈는 한국예술문화재단이 중심이 돼 지난 3월 창단했다. 6월 17일에는 첫 번째 창단콘서트도 가졌다. 남성 테너 10명이 모인 ‘더 텐테너스’ 역시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탄생했다. 일종의 남매 그룹인 셈이다.
콧대 높은 소프라노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모습은 예상과 다르다. 부르는 노래도 오페라 아리아뿐만 아니라 팝페라, 팝송, 가곡 등 다양하다. 여러 장르를 소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지난 창단콘서트 때는 ‘넬라 판타지아’나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곡들도 선보였다.
연습 과정은 어땠을까? 빛나던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보니 일종의 기싸움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합이 잘 맞아 자매처럼 지낸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결속력의 배경에는 다양한 이력과 유사한 성장 과정도 한몫했다. 같은 소프라노지만 김정현은 메조소프라노 출신으로 다른 역할 분담이 가능하고, 정지민은 뮤지컬을 전공한 이력의 소유자다. 현재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성악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유사하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김경희는 트로트 가수 출신의 어머니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닮아 끼가 있을 거라며 민요를 가르치기도 하셨죠. 그러다 중학교 때 성악을 해보았는데 적성에 맞아 시작하게 됐어요. 성악을 만나면서 성격도 바뀌고, 제게 물려받은 것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죠.”
김정현도 비슷한 경우다. 피아니스트 출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많아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오래 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 성악을 만나면서 진짜 맞는 것을 찾게 됐죠. 악기를 연주할 땐 그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기분이었다면, 노래는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으니까요.”
김정현은 대학 졸업 후 국내에서 알아주는 오디션에 합격해 활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길에 올랐다. 솔리스트를 위해 합창을 하던 어느 날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생 남 뒤에서 합창만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고 설명했다.
막내인 강수연은 본인이 원했다가 어머니의 후원을 받은 케이스다. “내성적이었는데도 초등학교 때 교회 성가대에서 솔로를 뽑는다길래 바로 손을 들었죠. 너무 하고 싶었어요. 무대를 보신 선생님이 성악을 권해주셔서 발을 내딛게 됐어요. 변성기를 겪으면서 포기하려 했는데, 어머니 생일에 선물 대신 참가를 강요하셨던 오디션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성악을 다시 시작하게 됐죠.”
이은진의 출발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다고. 체육부터 컴퓨터까지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했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남은 것이 합창단이었다.
“하지만 정작 성악을 한다니까 반대하셨어요. 집안에 성악을 접해본 사람이 없으니 덜컥 겁이 나셨던 거죠. 그러다 나중에 음악 선생님도 될 수 있다며 허락해주신 것 같아요.(웃음).”
코로나가 만든 고난
하지만 이들이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고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리더 김경희와 함께 수험 생활을 하기도 했던 ‘단짝’ 정지민은 “오랜 솔로 생활을 마치고 합류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빠른 비트의 음악에 끌려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전공했죠. 하지만 뮤지컬계 나름의 구조가 있기 때문에 주역을 맡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솔로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기도 하고 행사도 다녔는데, 쉽지 않았어요. 혼자 성악곡도 하고, 뮤지컬곡도 하고, 공연 외적인 부분도 모두 처리해야 했으니까요. 방송국에서 로고송 가수 생활도 했고요. 앨범도 하나 발매했어요. 처음에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땐 성악을 공부하긴 했지만 벗어난 곳에서 오래 활동한 터라 좀 망설여지기도 했는데요, 그룹 내에 친구도 있고, 함께하는 활동이 재미있고 기대돼요.”
이은진은 유학 과정에서 방황을 겪었다. 독일에서 계속된 입시 실패에 당황해하던 때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선생님의 추천으로 프랑스로 나라를 옮기는 모험을 감행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입국신고서에 국적이 북한으로 되었을 정도였는데도 무작정 떠났죠. 이후 죽어라 연습하면서 30대 가까이 되어서야 노래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야 ‘목소리 개발이 안 됐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문부희는 성악을 접하는 과정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음악 시간만 되면 문부희의 독무대가 열렸고, 선생님들은 당연하다는 듯 성악을 추천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달라져도 선생님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악을 전공했다. 학비 걱정에 시립대를 선택해야 했지만 고난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남편을 만나 약혼을 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어요. 예상과 다르게 유학 기간이 길어지던 와중에 첫째를 낳았죠. 학업과 객원 합창단 생활, 육아를 병행한 셈인데 쉽지 않았어요. 밤 11시에나 주변 친구들이 봐주던 아이에게 돌아온 날도 많았고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서로 돕고 살던 시절이죠.”
이어 졸업 직전에 둘째가 생겼고, 한국으로 돌아와 셋째를 낳았다. 큰애는 벌써 아홉 살이다.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볼까 생각하던 시점에 코로나가 터져버렸어요. 일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면서, 이참에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마음먹었죠. 신기하게 막내 돌이 가까워지니까 다시 노래할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레이디스타즈를 만났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강수연 역시 코로나 여파를 겪었다. 유학 이후 자리 잡았던 미국에서 팜비치 오페라단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던 와중에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 초기 뉴욕에서 동양인은 지하철도 제대로 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인종차별이 심해지면서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도 잠시 한국에 가 있으라는 조언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중 작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소극장 오페라 축제에 참가했다가 리더를 알게 돼 레이디스타즈에 참여하게 됐어요.”
함께라서 더 설레
평생 클래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활동한 이들이기에 다른 분야의 음악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을까 궁금했다. 김경희는 “시대가 변했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멤버 모두 오페라나 클래식 무대에서 개인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 그룹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장르의 음악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저도 유학 시절에는 클래식이 아닌 다른 무대는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무지했어요. 하지만 많은 무대에 서면서 관객들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형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많은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는 그룹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이은진은 레이디스타즈 활동이 모두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새로운 곳과 통하는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기분이에요. 문을 열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이후에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제게 달려 있으니까요.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커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으니까요.”
전염병과 맞서던 지난한 시간도 배움을 향한 열정만큼은 꺾지 못했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시기, 팬데믹이 지나간 교육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초여름 햇볕이 따갑던 지난달 12일, ‘옛 지도로 읽는 한양과 서울’ 수업이 있는 동남권 캠퍼스 강의실을 찾았다.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현군 강사가 어린이날 휴무로 인해 2주 만에 만난 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강의 참석자는 정원 15명 중 11명. 5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네 번째 답사인 한양도성 방문을 앞두고 이론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은 한 줄에 한 명씩 거리를 띄워 앉았다.
“여기는 지금의 어디일까요?”
1교시의 주제는 옛 지도로 읽는 도성과 서성(탕춘대성), 북한산성. 수업의 진도는 한양도성을 시작으로 동서남북, 네 가지 방향으로 펼쳐졌다. 2주 만에 만난 탓인지 복습차 묻는 질문에 대답이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다시 시작점인 한양도성부터 천천히 되짚으며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학생들의 열정도 만만치 않았다. 직접 뽑아온 옛 지도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생소한 내용은 수첩에 필기하는 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학생은 빔프로젝터로 띄워둔 지도의 지명이 잘 보이지 않자 손을 들고 지도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옛 지도로 읽는 한양과 서울’은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제공하는 서울학 강좌 중 하나다. ‘다양한 수업을 양질로 제공하자’는 서울시민대학 운영 방침 아래, 전문가 자문과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아 만들어진 과정인 만큼 전반적으로 높은 수강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데, 서울학 강좌는 특히 인기가 높다. 이론 수업과 현장 답사를 병행하는 덕분인지 수강 신청이 열리자마자 마감될 정도다. 김정호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시민참여팀 주임은 “수강 신청을 받던 시점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때문에 수강 인원이 줄어들어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고 증언했다.
“강의실이 조금 덥죠?”
부쩍 더워진 날씨에 강의실이 조금 후덥지근하다 느껴질 참이었다. 이미지 학습 매니저가 학생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 에어컨 작동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강의실 구석에 앉아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기에 강의를 신청한 학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강의에 배정된 학습 매니저였다.
서울시민대학에서는 강의당 학습 매니저를 한 명씩 배정한다. 강의 환경을 항상 확인하고 수업 시작 전 출석 체크를 하는 등 강사와 학생들이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온라인 강의의 경우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조절하는 일을 맡는다. 옛 지도로 읽는 한양과 서울 수업의 학습 매니저는 조금 더 할 일이 많다. 답사가 있는 날이면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체 기념촬영의 사진 기사 역시 그의 역할이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다시 자리를 채우자 2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포천 이동막걸리의 ‘이동’이 어쩌다 붙었는지, 잠실새내는 왜 ‘새내’가 되었는지, 평창동과 창동의 공통점 등 지명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19세기에 제작된 전국 8도의 지도 ‘동국여도’의 연융대도, 도성연융북한합도 등을 띄워놓은 채였다.
54년 만에 개방된 북악산 남측면 ‘김신조 루트’에 대한 보너스 설명도 있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의 무장대원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던 ‘1·21 사태’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자 강의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갔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하던가. 서울학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다음 시간 집합 장소에 대한 안내 후 이어지는 답사지 근처의 맛집 소개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답사 후 학생들과 뒤풀이를 할 수 없자 이 강사가 고안해낸 방식이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호를 되묻자 직접 검색해 확실한 상호를 알려주는 등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수업 시작 전 만난 이현군 강사는 “과거와 현재의 오버랩”이라고 자신의 수업을 평가했다. 고문헌, 지도, 그림 등 다양한 사료들이 교재가 된다. 살고 있는 지역에 얽힌 옛이야기와 지명의 유래에 대해 배우고, 직접 걸어보며 답사에 나서면 지식도 오래 남고, 학생들도 수업을 더욱 즐길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배움을 향한 열정 앞엔 그 무엇도 방해물이 될 수 없다. 코로나와 탈(脫)코로나의 경계에서 계속되는 배움의 열기가 초여름 들녘처럼 푸르렀다.
코로나19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속도에 불을 붙였다. 비대면 원격·재택 근무가 확대되면서 특정 소속을 갖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시간만큼 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가 됐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는 쉽지 않은 시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서비스 업종의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플랫폼 비즈니스 일자리는 늘었다. 음식 배달, 택배, 가사 서비스, 돌봄 서비스 등의 일자리가 많아진 것.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긱 이코노미’가 성장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는 ‘임시로 하는 일’이라는 뜻의 긱(Gig)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약 284조 원이었던 긱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52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정규직의 시대가 온다
긱 이코노미의 확산은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N잡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앞으로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었다. 최근에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나선:나도 선수’라는 플랫폼도 생겼다. N잡 시대의 정보에서 소외되는 중장년을 위한 재능 거래 플랫폼이다. 오히려 중장년이 N잡러가 되기 적합하다는 것.
은퇴 이후 불안정한 일자리가 중장년층을 취약계층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유연한 근무를 원하는 중장년에게 디지털 플랫폼 일자리는 기회일 수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민간에서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잘 참여하지 않는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중장년층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74%는 구직 활동에 가장 관심이 많았으며, 그중에서도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희망하는 비율이 약 50%에 달해 절반을 차지했다. 물론 생계형 일자리를 원하는 중장년층도 있지만(30%), 대부분은 오랜 시간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만 일하거나, 하루 세 시간만 일하는 형태의 일자리를 원했다. 숙련도 높은 시니어에게 긱 이코노미가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중장년분들이 교육을 듣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지속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원하고, 사회 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의지가 있었다”며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들이 단지 수업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 활동을 연계해서 목적에 다다를 수 있도록 일자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나는 디지털 격차
은퇴 이후 사회 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니어의 욕구는 무척 높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97.6%는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는 평균 71세까지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일자리가 줄면서 중장년 일자리도 감소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정년 60세 연장법을 만들고, 기업 차원에서도 은퇴 후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한정되거나 그 자리가 매우 적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재취업 시장의 경쟁도 치열하다. 은퇴 후 재취업에 도전했다가 여러 차례 실패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이도 많다.
디지털에 취약한 중장년층에게 비대면 시대는 눈뜬장님으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 2년 동안 무인 매장이 늘고 키오스크를 도입한 가게도 많지만, 서울에 사는 55세 이상 시니어 중 키오스크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54%로 절반이 넘는다.
액티브 시니어라고 불리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힘들더라도 이런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디지털 역량을 높이려면 대면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배점태 컨설턴트는 “디지털 교육에 대한 중장년의 관심은 높아졌는데, 코로나19로 대면 교육이 불가능해지면서 답답해하는 분이 많았다”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교육에 대한 적응도는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화상 대화 등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긱 이코노미가 중장년층에게 적합한 고용 시장이 되려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긱 이코노미가 디지털 플랫폼을 발판 삼아 확산되는 만큼, 중장년층의 디지털 격차를 줄여줘야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교육뿐 아니라 새로운 고용 시장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도 필요하다. 또 중장년층이 사회 취약계층이 되지 않도록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사회 안전망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2021년 12월,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1월 폐암 진단을 받고 꼬박 1년을 투병한 후 그렇게 떠났다. 그와 내가 사귄 지 10년째 되던 해이기도 했다. 나의 지난 한 해는 벽두부터 그의 병간호로 시작됐고, 소생과 회복에 대한 간절한 소망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떠나며 한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새해가 희망 없이 밝았다.
장례를 치른 후, 간호를 하느라 1년 동안 함께 지냈던 그의 대전 집을 나와 다시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왔다. 환자를 돌보는 도중 간간이 들러 옷가지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곤 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니 내 집 풍경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칫솔이나 면도기 등 내 집에 두었던 그의 소소한 물건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이제는 영원히 주인 잃은 것들, 그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아프니까….
그와 나는 20년 전 어느 기업인 모임에서 만났다. 나도 그도 나름 단단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이혼한 상태였지만 10년을 서로 바라만 보는 중이었다. 10년 동안 썸을 탔냐고? 그건 아니고 좋은 사람이니까, 좋아 보이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겠거니 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12월 중순의 첫눈 내리던 날, 첫눈치고는 늦었고 첫눈치고는 제법 눈송이가 실했다. 모임이 끝난 후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연히도 그와 나의 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와 그렇게 가까이 마주한 것도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천년의 사랑이 시작되고
다소 어색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고개를 기울여 그가 먼저 나가도록 손짓을 해 보였다. 그는 또 그대로 내게 먼저 차를 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서로 그렇게 배려의 몸짓을 하다가 내가 먼저 차를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시선까지 느껴져 더 당황스러웠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내게, 무슨 일인지 잠시 지켜보던 그가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별수 있나. 고장의 원인을 찾지 못한 데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니 내 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두고 그가 나를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깜깜한 밤하늘에 흰 눈이 별처럼 쏟아졌다. 우리 만남의 서곡이자 팡파르처럼. 나란히 함께 차를 타고 오던 시간이 의외로 편안했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천생연분이란 촌스럽고 진부한 표현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이혼 후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만난 그 사람, 이제야말로 하늘이 점지해준 짝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와는 모든 것이 잘 통했고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가치관, 취미, 식성, 관심사, 대화는 물론,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몸까지 잘 맞았다고 솔직히 고백하리라. 국내는 물론이고 코로나 이전에는 자유로이 해외여행을 다녔고 맛집이란 맛집은 죄다 섭렵했다. 전시, 공연, 독서 등 문화생활도 알뜰히 했다. 우리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각자 둘씩 있었지만 모두 독립해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 문제로 신경 쓸 일도 없이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관계였다. 느긋하게 나이 들어갔고 다가올 노후를 함께 설계하며 행복한 노년을 꿈꿨다.
사랑의 보험이 깨지고
그러던 그와의 화려했던 세상이 불과 10년 만에 흑백의 암전을 맞았고 그는 영원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랑은 떠나도 삶은 지속되는 거라지만, 환갑도 한참 지난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가 없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두망찰 길을 잃었다. 그가 없는 하늘 아래 나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혼자 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와 나는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성혼 선언문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견고한 우리 사랑 한가운데 죽음이 끼어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젊지 않은 나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미 노년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가 없는 나의 노년, 그 막막한 길을 홀로 걸어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부쩍 늙어버린 기분이다. 지난 1년간 그의 병간호로 쇠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사랑을 잃은 슬픔과 삶의 막막함 때문이리라. 홀로 늙어감,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이 든 여자의 사랑은 사랑을 하는 중에도 버겁다. 더구나 우리는 동갑이 아니었나. 여자로서, 그것도 젊지 않은 여자로서 같은 나이의 남자에게 위축되지 않는다면 약간은 거짓이리라. 내 경우 역시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관하게 문득문득 내 나이를 의식하곤 했다. 아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내가 젊은 여자가 아니라고 해서 그와 나의 사랑에 무슨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그와 만나는 동안엔 오히려 내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가 가고 나니 내 나이가 갑자기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혼자 남겨진 ‘나이 든 여자’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사랑은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할 상대를 찾는다는 뜻이란다. 더는 다른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성실한 보험 납세자처럼 꼬박꼬박 애정을 쏟고, 서로를 챙기다 보면 보험의 만기가 도래하듯 안온한 노후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들린다. 노년의 원만한 부부가 전형적인 그 모습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정성스레 부어가던 보험이 중간에 깨져버린 것 아닌가. 새로 들 가능성, 새로 들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없다. 탈 수 있는 보험금 없이 홀로 노후를 맞는 대열에 내가 동참한 것이다.
만날 사람을 다 만났다면
어느 종교계 방송에서 환갑이 지나면 인생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라 할 때 소위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되면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배우자가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맺어져 있는 인연을 일부러 끊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혹여 기존 관계에서 자리가 비어 새 인연을 들인다 한들, 관계 맺기를 통한 성장판은 이미 닫혔다는 의미다. 마치 빠진 치아 자리에 임플란트나 틀니를 해 박는다 해도 치아 본연의 성질과는 무관하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성장하고 누리고 진화할 수 없다면 더는 살아도 산 게 아니란 의미일까. 물론 그건 아닐 테지. 이제 저 너머의 존재, 신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겠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알아도 제약적이며 한계가 있었던 관계의 장막을 거둬내고 영성에 눈을 떠야 한다는 의미겠지. 그래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실상은 그러한 성장이 참 성장이라는 의미일 테지. 세속적 희로애락 속에서 울고 웃던 나를 관찰자, 주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교정하고 회복되도록 하는 과정일 테지.
내 경우라면 그의 빈자리를 하나님 혹은 부처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뜻일 테니 교회나 성당, 절에 나가 위로를 구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그 얼마나 진부하고 맥 빠지는 소린가. 나는 지금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간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외로움에 애간장이 녹아내릴 지경인데, 눈에 그 존재가 보이지도 않고 귀에 그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신을 통해 위로를 구하라는 말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공기를 뻐끔거리며 배를 채우라는 소리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위로받기는 고사하고 왜 그를 내게서 빼앗아갔냐고, 이제 겨우 64세, 아직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나이의 그를, 자기 분야에서 드물게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를, 무엇보다 나와의 변함없는 애정으로 행복의 절정기를 누리던 그를 무슨 이유로 데려가야 했냐고 따지고 대들고 싶은 심정이다. 신도 질투를 하냐고, 그렇다면 신도 아니지 않냐고.
차라리 그와 혼인을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아내였다면 세상 떠난 그를 대신해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가족 내의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며 감당할 역할들로 사별의 아픔을 추스를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껏’ 그의 연인이 아닌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그 상실감과 무력감만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전부다.
다시 빛을 찾아서
슬픔에 겨워 탈진하는 하루하루 중에도 간간이 빛을 느낄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평안과 내적 안온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실은 나는 그가 떠난 이후 성당에 다닌다. 매주 수요일마다 교리 공부도 한다. 신앙심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그저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왠지 성당에 가면 영혼이나마 그가 내 옆에 앉아 함께 미사를 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곤 한다.
올해로 나는 65세가 되었다. 10년 전 55세에 만난 그가 떠나고, 2022년의 출발선에 혼자 오도카니 섰다. 혼자라고 하지만 어쩌면 내 옆에는 신이 서 계실지도 모른다. 신은 무언의 침묵을 통해 나와 동행할 채비를 하고 계시는 걸까. 왜 신은 굳이 내 옆자리에 서려고 하시는지. 나는 그 사람 하나로 행복했건만. 하긴 연일 눈물로 어룽져 시야가 흐려진 내 눈엔 생의 완주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신의 손길에 의지해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인도가 절실하다. 그러나 앞서 방송 내용처럼 나 또한 이제 더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반자를 구하고 싶지 않다. ‘사람 대신 신’이란 결단에서가 아니라 또다시 그 존재를 잃고 슬픔의 늪에 빠져 허둥대거나 흐느적거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생 한 번으로 족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과 그리움, 그것은 너무나 혹독하기에.
지난 7월, 우주여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7월 11일 오전 7시 40분에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7월 20일 오전 6시 12분에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달과 화성 탐사용 우주선 ‘스타십’을 개발해 그 뒤를 쫓고 있다. 앞다투어 우주로 떠나는 나이 든 ‘회장님’들은 로망으로 존재하던 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달에 발을 딛는 우주인을 보며 상상만 했던 우주여행, 국내에서도 정말 가능한 걸까?
시니어가 우주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제각기 다양하다.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는 “기후 변화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지구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인류의 미래가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주가 어떤지 직접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는 “영화처럼 몸이 둥둥 뜨는 무중력 상태에서 파란 지구를 내려다볼 걸 상상하면 짜릿하고 흥분된다”며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아 꿈만 꾸고 있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첫 번째로 신청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한국인이 우주여행을 다녀온 사례는 없지만, 비슷한 사건은 있었다. 2008년 4월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이야기다. 2006년 진행된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는 당시 큰 이슈였다.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우주에서 태우고 싶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손자 손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당시 예순일곱의 나이로 최고령 도전자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사회에 울림을 주었다. 이외에도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 카레이서 황진우 등의 명사가 도전해 더욱 화제를 모았지만, 우주행 티켓을 거머쥔 주인공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의 이소연 박사였다.
이 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9박 10일간 머무르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 씨는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직업 우주인으로, 그녀의 여정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민간 우주여행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1호 우주인 탄생’이라는 경사를 지켜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누구나 우주를 여행할 수 있기를 꿈꿨다.
실제로 이소연 씨의 귀환 직후 인터뷰는 시청률 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 기준 17.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국민적 관심을 인식한 듯 국내 한 관광사는 유사 우주관광 상품을 내놓았다. 2008년 판매된 ‘우주에서 살아남기-우주항공 체험과 러시아 일주 6일’이 그것이다. 관광객들은 직접 우주로 떠나는 대신, 러시아 여행 중에 모스크바의 가가린 우주훈련센터를 방문했다.
로켓보다 열기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실제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우주여행 티켓을 팔며 분위기가 달아오른 모양새지만 우리나라에선 13년 전의 유사 우주 관광상품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기술로는 짧게 보면 10년, 길게는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릴 적 상상하던 ‘달나라로 떠나는 수학여행’은 정말로 요원하기만 한 걸까.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춘 어떠한 기업이 나타나 우주여행만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한 10년 안으로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주여행 산업 진출을 꿈꾸는 국내 기업이 있냐고 묻자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의 방산·항공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며, 아직 우주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단계라서 우주여행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을 논의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본부장은 “기술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돈”이라고 콕 집어 지적했다. 우주여행에 필요한 발사체를 제작하고, 우주정거장처럼 궤도를 도는 우주호텔을 건설하는 일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우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수백억 원 수준이다 보니 일상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로켓 대신 열기구를 도입할 경우 시니어에게도 희망이 있다. 열기구를 이용하면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에서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나 체력 단련을 거치지 않아도 우주와 비슷한 환경에서 푸른 별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스타트업 ‘스페이스퍼스펙티브’(Space Perspective)는 특수 제작될 열기구 ‘스페이스십넵튠’(Spaceship Neptune)을 이용한 관광상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열기구의 강점은 로켓보다 천천히 상승해 탑승자가 버텨야 하는 중력가속도로 인한 압력이 비교적 낮다는 데 있다. 즉 탑승자의 신체 조건이 완화된다. 현재 우주행 티켓을 판매 중인 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용 로켓에 탑승하려면 2~3G를 버텨야 한다. 2~3G는 급회전을 하거나 추락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안형준 연구위원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건강한 분이라면 탑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시니어들이 ‘열기구 우주여행’을 노려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엔 국내에서도 우주여행을 성공해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허환일 충남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수요가 있다면, 외국 기업이 제작한 발사체를 타고 국내 기업이 우주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가능할 수 있다”며 “아주 빠르면 10년 후에도 일반인의 우주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니 우주여행을 꿈꾼다면 지금부터 체크리스트를 챙겨 준비해보자. 꿈꾸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고,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올 테니까.
요트가 비싼 취미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개인이 요트를 소유해서 즐기면 비싼 취미일 수 있다. 하지만 요트를 직접 구매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요트를 즐길 수 있다. 또 수도권에서는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한강에서 요트를 탈 수 있다.
생활 주변에서 체험해 보는 요트가 어떤지 궁금할 시니어를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현대요트 도움을 받아 직접 요트를 체험해봤다. 현대요트는 서울 반포동에서 ‘더리버 마리나’를 운영한다.
동작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면 동작대교 남단을 통과해 한강산책로로 갈 수 있다. 한강산책로를 따라 10분에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더리버 마리나가 나온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친절하게 이정표가 있으니 지도 앱은 잠시 넣어두고 산책로를 즐겨도 좋다.
더리버 마리나
1층 카페가 있는데 요트를 타지 않아도 한강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곳에서는 30분간 한강을 유람하며 음료 한 잔을 제공하는 ‘커피보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운항이 끝난 후에도 커피가 남아있다면 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시다 가도 좋다.
요트를 타려면 카페를 통해 선착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카페에 입장하면 발열체크와 QR체크인을 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승선자 명단을 적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30분을 타더라도 안전이 중요하다. 요트를 타는 동안 마리나에서 구명조끼를 제공한다. 요트차터(대여)팀에서 간단한 구명조끼 사용법을 알려주니 숙지하고 들어간다.
선착장에 들어서니 세일링 요트 한 대, 12m 정도 크기의 파워보트 한 대와 기자가 탈 블루진 파티보트가 있었다. 한강 물이 출렁이다 보니 묶여 있는 요트들도 흔들렸다. 차터팀 관계자는 “운항을 할 때보다 선착장에 묶여 있을 때 오히려 더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랬다.
커피보팅 프로그램
덥지 않고 바람이 적당히 부는 날이었다. 운 좋게도 사람을 들뜨게 하는 좋은 날씨에 요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커피보팅 프로그램에서 운행하는 블루진 보트는 대략 6m 정도다. 30분간 한강을 떠다니며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에서는 보트를 잠시 멈춰준다. 보트를 타는 동안 항해사가 중간중간 설명해 줄 때 말고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보트는 반포대교(잠수교), 세빛섬, 동작대교, 노들섬 앞에서 멈춘다. 먼저 보트는 선착장을 지나 오른 편에 있는 반포대교(잠수교)로 향한다. 잠수교를 반환점 삼아 돌 때 잠수교를 건너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잠수교 근처에는 세빛섬이 있다. 차터팀 관계자에 따르면 밤에는 세빛섬 전체가 LED 조명을 뿜어내 야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방향을 바꾼 다음에는 동작대교로 향한다. 동작대교로 향하는 와중에 멀리서 보트가 출발했던 마리나가 작게 보인다. 새삼 한강이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작대교를 지나면 아치를 그리고 있는 한강대교가 보인다. 그 옆에는 한강대교를 살포시 받치고 있는 노들섬이 있다.
63빌딩이 보이는 여의도 방향의 사진까지 찍은 뒤 보트는 선착장에 돌아왔다. 보트가 선착장에 완전히 정박하기 전까지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항해사가 당부했다. 짧은 운항인데도 꽤 안전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더리버 마리나 커피보팅 프로그램은 30분 운항에 2만3000원이다. 야간에는 45분 운항에 3만3000원이다. 차터팀 관계자는 “커피보팅 프로그램은 가격이 저렴해 젊은층이 주로 이용하고 시니어들은 주로 카타마란 요트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체험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적은 인원이 이용한다면 시니어에게도 커피보팅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카타마란 요트 '블랙캣'
커피보팅 프로그램을 체험한 후에는 더리버 마리나가 보유한 카타마란 요트 ‘블랙캣’ 선내를 둘러봤다. 카타마란 요트는 3층 구조다. 지하 선실에는 침실과 화장실이 있다. 지상층에는 다과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도 있다. 지상층 선머리에는 그물이 있다. 블랙캣 이용객들은 이 그물에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일광욕을 즐긴다. 지상층 위층에는 요트 운전석이 있다.
블랙캣 이용료는 30분에 60만 원, 60분에 100만 원이다. 꽤 가격대가 있지만 3~4명이 나눠 내면 큰 부담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돼 4명 이상이 빌린다면 블랙캣을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날은 코로나19 4차 유행 탓인지, 안타깝게도 요트를 즐기는 시니어를 만날 수가 없었다.
언제나 탈 수 있는 나만의 요트를 가지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체험 프로그램으로도 요트의 낭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강 외에도 전국 여러 지역의 마리나에서 요트 대여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만 요트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당일 운영 여부를 마리나에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헛걸음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발사해 화제가 된 송호준 미디어아트 작가는 중고거래플랫폼을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고 요트를 샀다. 그리고 지난 7월 한 달간 항해할 계획으로 강릉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1978년생으로 올해 43세인 송호준 작가는 왜 그렇게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 가진 것을 모두 팔 정도의 매력이 요트에 있는 것일까.
여름휴가 기간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기 두렵다. 인기 있는 피서지는 많지만 그런 곳에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바다에는 코로나가 없다. 그래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요트다.
젊음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젊음은 새로운 문화와 유행을 흡수하는 적극성에서 온다. 기존의 여행이 식상했거나 코로나19로 인한 인파가 걱정되는 시니어라면 요트를 타고 드넓은 바다로 나가보자.
요트는 상선이나 군함처럼 업무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배가 아닌 여가용 선박이다. 풍력을 받아 돛으로 움직이는 배를 말한다. 종류에 따라 모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요트는 선체(Hull)와 돛대(Mast)가 기본이다. 여기에 붐(Boom), 리깅(Rigging), 돛(Sail), 그리고 러더(Rudder) 같은 구조가 있다. 붐은 돛의 아부분을 지지하는 활대다. 돛을 조정하는 로프가 고정돼 있다. 리깅은 돛대를 세우고 돛을 조절하는 등 요트를 조작하는 데 필요한 모든 줄을 말한다. 러더는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다.
선체 앞부분을 선수(Bow), 뒷부분은 선미(Stem)라 하고, 선체의 가운데 부분을 선복(Midship)이라 한다. 여기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을 콕핏(Cockpit)이다.
요트는 추진방식, 선체 모양 등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기관과 이용자마다 명확한 구분은 없지만 추진방식에 따라 크게 세일요트와 모터요트로 나뉜다. 세일요트는 주동력장치가 엔진이 아니라 돛인 요트다. 바람을 이용해 운항하므로 세일요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운항하기 힘들다. 하지만 바람을 이용하는 만큼 유지비용이 저렴하다. 바다를 여유롭게 즐기기보다는 스포츠 목적을 주로 이용된다.
사이즈와 탑승 인원에 따라 혼자서 타는 ‘싱글핸디드 세일링’, 1~2명이 타는 ‘딩기’, 2~4명이 운항하는 9m 미만 크기의 ‘위크엔더 요트’로 구분된다. 7~15m 사이의 비교적 장시간을 항해하는 ‘크루징 요트’도 있다. 위크엔더 요트와 크루징 요트는 모터 기반이지만 돛을 달기도 한다.
동력선인 모터요트는 선체가 큰 개인용 레저 선박만 요트로 불린다. 세일요트들의 선실이 크지 않은 반면 모터요트는 침실과 응접실, 화장실, 싱크대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배 길이는 9~30m가 일반적이다. 10m 이상은 슈퍼요트, 50m 이상은 메가요트, 91m 이상 초대형은 기가요트라고 한다.
세일링 요트는 선체모양에 따라서는 ‘모노헐’, ‘멀티헐’로 구분된다. 모노헐은 단일 선체로 구성된 가장 일반적인 선형이다. 민첩하지만 다른 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진다. 선체 아래로 ‘킬’이라는 중심추가 달려있는데, 이로 인해 바람을 맞을 때 밀리거나 전복되지 않는다. 작은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는 것도 킬이 있어서다.
멀티헐은 ‘카타마란’과 ‘트리마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카타마란은 두 개의 선체로 구성된다. 배가 물에 뜨면 그 무게만큼 물을 밀어내는데, 이를 배수량이라고 한다. 카타마란은 선체 두 개가 배수량을 분담하는 형태다.
선체가 두 개인 만큼 갑판 활용도가 높고 동요가 적어 안정감이 높다. 모노헐과 비교해 두 개의 폭이 좁은 선형을 채택할 수 있어서 배가 받는 물의 저항을 줄일 수 있고, 배의 지느러미라고 할 수 있는 용골의 중량을 조금 더 가볍게 설계할 수 있다.
트리마란은 세 개의 선체가 배수량을 분담하는 형태이며, 갑판의 활용도가 높고 동요가 가장 적은 형태다. 안정감이 가장 높다. 거친 환경을 견뎌야 하는 대양항해용 요트는 생존성능이 우수한 트리마란을 채택하는 추세다.
요트를 즐기고자 하는 모두가 송호준 작가처럼 가진 것들을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요트 체험 프로그램도 많고, 동호회 단위로 요트를 구매하기도 한다. 요트를 이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요트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직접 조종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요트면허 취득, 요트구매까지 이어지게 된다.
바다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여가를 즐겨보자. 요트를 잘 이용하면 혼자만의 여가가 아니라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나이 들면 단풍놀이 꼭 간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시간이 없어 먼 곳으로는 가지 못하고 낙엽이 떨어지기 전, 부랴부랴 서울 근처 유명 단풍숲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에도 주말에 예약을 하지 못해 실패했던 ‘화담숲’. 역시나 올해도 주말엔 예약이 꽉 차 있어 주중에 시간을 내기로 하고 예약을 마쳤다.
화담숲에는 평일에도 단풍놀이하러 온 사람이 넘쳤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쓰고 다니면서도 단풍놀이하러 가는 국민들, '참 대단하다.'
하여간 지난해 예약 실패 후, 올해 벼르고 별러서 가본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운영한다. 이 재단이 지구의 기후환경 개선을 위해 벌이는 여러 가지 일들 중 ‘화담숲’ 조성 운영도 들어가 있다. 기업 오너의 취미였던 분재와 수석들이 숲 곳곳에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런 품격 있는 취미를 즐기다가 대중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오픈한 대기업 오너는 참 괜찮은 인생을 살았던 듯싶어 부러워진다.
단풍은 하늘에서 봐야 제맛이란 생각에 모노레일을 타기로 했다. 높은 곳에서 단풍을 내려다보니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아름다운 자연의 색에 마음이 푹 안기며 평화로워진다. 다음번 방문에는 모노레일을 타지 말고 천천히 트레일 코스를 따라 산책해보리라 다짐해본다.
낙엽이 떨어지고 곧 겨울이 몰아닥칠 기세다. 올해도 마지막까지 별 탈 없이 즐겁게 지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언제나 모든 문제는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데, 화담숲에서 책을 읽다 한 구절, 마음에 훅 들어오는 구절이 있어 갈무리한다. “인간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어른이 된다.”
단풍 들 때가 더 유난히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화담숲을 마음껏 감상했다. 가을이 후딱 지나가기 전에 함께 눈요기라도 하기 위해 사진을 올려본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설립 운영하는 수목원이다. 2006년 4월 조성 승인을 받아 정식 개원은 2013년에 했다. 17개의 테마원과 국내 자생식물 및 도입 식물 4000여 종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LG상록재단 측은 관람시설이기 이전에 멸종위기 동식물을 복원해 자연 속에 자리 잡게 하는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한 현장 연구시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단순히 멋진 풍경을 위해서 다양한 나무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생물자원 보호 차원에서 국내 최다 종을 수집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화담숲이 다른 수목원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소나무 정원이라는 데 있다. 다양한 형태로 줄기가 굽이굽이 뻗어나간 소나무와 단풍나무의 조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담숲만의 가을 풍경이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단풍나무를 보유한 숲으로도 유명하다. 화담숲의 가을이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