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대중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양정무(55) 교수는 서양미술사 연구자인 동시에 친절한 미술 안내자로서 출판과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대중과 미술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신간 ‘벌거벗은 미술관’을 통해서 서양미술사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를 만나 미술의 가치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신간이 나올 때까지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책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이하 난처한) 시리즈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잠시 보류하다가 이제야 출간했다. 긴 레이스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의미도 있지만, 비평가로서의 근육을 굳지 않게 하려고 썼다. ‘난처한’ 시리즈가 서양미술사의 길잡이라면, 이 책은 서양미술사의 민낯을 다룬다. 미술사로 본 미술의 가치,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할, 초상화 속 무표정의 의미 등 늘 고민했던 질문에 대해 스스로 찾은 답을 책으로 풀어냈다. ‘난처한’ 시리즈에서 못 했던 얘기를 쿠키 영상처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미술사를 다룰 때 사상, 시대, 공간 등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책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 미술, 표정, 박물관과 미술관, 팬데믹 같은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조명한다.
“이 책이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됐으면 좋겠다. 결정적인 조각을 맞출수록 퍼즐이 완성에 가까워지듯, 이 책이 미술에 다가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미술사를 조명하되, 미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예를 들어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는 당시 지배 세력의 엄중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수단이었고, 박물관은 해외에서 약탈한 보물을 보관한 수장고였다. 결국 미술은 화가의 고유한 개성으로 읽을 수 있지만, 더 넓은 시야로 보면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미술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읽는 동시에 줄기처럼 뻗어가는 역사를 읽는 일이다.”
일상을 깨는 상상력의 세계
그는 스스로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불렀다. 그가 미술의 세계에 빠진 것은 어린 시절 우연히 본 백과사전의 삽화 때문이었다.
“우리 맘속엔 누구나 하나의 예술가가 살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가진 날것의 느낌을 낙서로 보여준다. 나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백과사전의 삽화에 우연히 마음을 빼앗긴 이래 미술 덕후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한마디로 하면 성덕이다. 미술과 역사를 좋아해서 미술사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있지만, 미술은 일상을 깨는 새로운 세계였다. 달나라를 동경하는 우주비행사의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까지 내게 미술이란 우주는 새로운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서양미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위해 갔지만, 그에게 그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학교 근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매일 등교 전에 한 번, 하교 후에 한 번은 무조건 들렀다. 집 가는 길에 있던 내셔널갤러리(The National Gallery)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르는 필수 코스였다. 당시 주재원, 교수, 기자,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다. 같이 수업 겸 토론도 하고 박물관이나 소규모 미술관을 다니면서 다각도의 해설을 들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인기가 나름 좋아서 한국에 못 돌아올 뻔했다.(웃음) 그 경험이 수업이나 강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미술이듯,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감염병’이란 키워드다. 팬데믹 이후 미술은 어떻게 변할까?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대규모 인원이 죽자, 다양한 계층에서 미술을 통한 추모를 기획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미술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도 비슷하다. 코로나19 이후 미술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면서, 미술관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미술을 통한 심리적 위안과 치유의 힘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고, VR을 활용한 비대면 관람이 주된 체험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미술은 비주얼의 언어
또한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술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장르다. 워낙 직관적인 영역이라, 그것을 언어로 풀면 어렵게 느껴진다. 가령 외국어는 알파벳, 맞춤법, 띄어쓰기 등 여러 가지를 익혀야 비로소 통달할 수 있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세계에 더 다가가는 일이다. 미술도 그 과정은 어렵지만 보는 훈련을 잘한다면 이전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잘 체득하면 시각적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결국 비주얼 리터러시를 통해 우리는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미술 입문자를 위한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전통과 역사에 관심 있는 시니어들이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은데, 입문자가 미술을 즐기려면 한 발짝 떨어져 볼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특히 미술관의 이미지를 무겁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미술관만큼 카페나 문화시설이 잘 갖춰진 곳도 드물다. 미술을 감상하지 않아도 좋으니 미술관을 친숙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론 이제껏 배우고 익힌 바를 토대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난처한’ 시리즈 번역본을 통해 이제껏 구축해온 관점을 서양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미술사학자로서 “미술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라고 했다. 그는 명작의 위대함보다 미술에 담긴 고뇌와 고민, 좌절을 읽으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배웠다. 결국 미술은 시대의 그늘을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좌절은 원동력이 되고, 어두운 그늘은 때론 위안의 공간이 된다. 미술 안내자인 그가 구축하는 미술의 그늘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친다.
매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2018 따뜻한 콘서트'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올해는 벌써 6회 공연이지만 필자는 운 좋게도 작년 이맘때쯤에 5회 공연을 관람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송파에 살고 있는 필자는 조금 이른 시간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퇴근시간의 지하철 9호선은 지옥철이었다. 공연시간보다 다소 이른 저녁 일곱 시 직전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KBS로 올라갔다.
입장하기 직전의 KBS홀 로비에는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모여서 반가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동년기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티켓팅 부스에서 티켓 두 장을 받아들고 입장을 했다.
사회를 맡은 서현진 아나운서의 맑고 카랑카랑한 멘트와 함께 막이 올랐다. 'K'ARTS 발레단‘은 국내외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무용수들이 대한민국의 발레를 선도하는 발레단이라고 들었다. 2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무대를 휘젓고 있었다.
사실, 발레공연은 필자 일상의 삶속에서 꽤나 거리가 먼 예술이다. 어쩌다가 찾아온 기회나 되어야 관람할 수 있지만, 오늘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환상적인 공연은 어렴풋 지난 세월 속에서 관람했던 ‘빌리엘리어트’라는 영화를 추억해 내게 했다.
삶의 벼랑 끝인 탄광의 막장에서 아들 빌리의 성공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광부와 그의 아들이 빌리엘리어트의 이야기다, 엄마를 여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광부인 아버지와 형을 둔 빌리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여 영국 왕립발레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멋진 발레리노가 된 빌리가 가족을 초청해서 공연을 펼치는데, 그 멋지게 날아오르는 앤딩 장면이 자꾸만 클로즈업 되어 왔다.
이어지는 무대는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였다. 바이올린의 대가 김남윤을 중심으로 한예종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어린 예술영재들의 황홀한 바이올린 연주였다. 곡이 끝날때마다 관객 모두가 힘찬 박수로 환호를 했으며, 이들은 전통클래식, 올드팝, 영화음악 OST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바이올린의 간드러지면서도 애달프고 때로는 경쾌한 선률이 리듬을 타고 객석에 울려퍼지는 순간, 칙칙한 겨울은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감상하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시원함이 묻어나왔다. ‘따뜻한 콘서트’에 딱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포르테 디 콰트로’는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의 초대 우승팀으로 4인조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우렁우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매료되어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감상을 했다. 선이 굵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4중창은 무대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마지막 순서로 서현진 아나운서가 비주얼 가수라고 소개한 김범수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정통클래식 공연을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섬세한 바이브레이션과 고저음을 오가는 가창력으로, 슬픈 가사와 멜로디를 지닌 김범수의 음악을 감상하게 되었다. “사랑이 날 또 아프게 해요 사랑이 날 또 울게 하네요 ~” 관객중에 어떤 분은 김범수의 ‘하루’를 들으면서 울컥했다고 했다.
공연은 무르익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공연자들과 끝까지 호흡하며 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아직은 모질게 추웠던 금년겨울의 여운이 남아있었지만, ‘따뜻한 콘서트’ 공연을 감상하면서 칙칙한 그 여운조차 밀어내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느껴야 했다. 아내와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공연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가장 인상깊은 공연은 ‘바이올린 오케스트라’라고 했으며 두 번째는 ‘포르테 디 콰트로’의 4중창을 꼽았다. 하지만 필자는 공연 모두가 의미있고 가슴속에 깊은 떨림과 여운으로 남았다고 대답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따분한 일상에서 만나게 된 ‘따뜻한 콘서트’는 잠자던 가지에 물을 올려 봄을 꽃피워 내고 있었다. 또한 아내랑 모처럼 함께 차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따뜻한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겨울철의 암울했던 찌꺼기들은 훌훌 떠나보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찬란한 새봄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