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단풍놀이 꼭 간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시간이 없어 먼 곳으로는 가지 못하고 낙엽이 떨어지기 전, 부랴부랴 서울 근처 유명 단풍숲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에도 주말에 예약을 하지 못해 실패했던 ‘화담숲’. 역시나 올해도 주말엔 예약이 꽉 차 있어 주중에 시간을 내기로 하고 예약을 마쳤다.
화담숲에는 평일에도 단풍놀이하러 온 사람이 넘쳤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쓰고 다니면서도 단풍놀이하러 가는 국민들, '참 대단하다.'
하여간 지난해 예약 실패 후, 올해 벼르고 별러서 가본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운영한다. 이 재단이 지구의 기후환경 개선을 위해 벌이는 여러 가지 일들 중 ‘화담숲’ 조성 운영도 들어가 있다. 기업 오너의 취미였던 분재와 수석들이 숲 곳곳에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런 품격 있는 취미를 즐기다가 대중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오픈한 대기업 오너는 참 괜찮은 인생을 살았던 듯싶어 부러워진다.
단풍은 하늘에서 봐야 제맛이란 생각에 모노레일을 타기로 했다. 높은 곳에서 단풍을 내려다보니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아름다운 자연의 색에 마음이 푹 안기며 평화로워진다. 다음번 방문에는 모노레일을 타지 말고 천천히 트레일 코스를 따라 산책해보리라 다짐해본다.
낙엽이 떨어지고 곧 겨울이 몰아닥칠 기세다. 올해도 마지막까지 별 탈 없이 즐겁게 지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언제나 모든 문제는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데, 화담숲에서 책을 읽다 한 구절, 마음에 훅 들어오는 구절이 있어 갈무리한다. “인간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어른이 된다.”
단풍 들 때가 더 유난히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화담숲을 마음껏 감상했다. 가을이 후딱 지나가기 전에 함께 눈요기라도 하기 위해 사진을 올려본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설립 운영하는 수목원이다. 2006년 4월 조성 승인을 받아 정식 개원은 2013년에 했다. 17개의 테마원과 국내 자생식물 및 도입 식물 4000여 종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LG상록재단 측은 관람시설이기 이전에 멸종위기 동식물을 복원해 자연 속에 자리 잡게 하는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한 현장 연구시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단순히 멋진 풍경을 위해서 다양한 나무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생물자원 보호 차원에서 국내 최다 종을 수집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화담숲이 다른 수목원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소나무 정원이라는 데 있다. 다양한 형태로 줄기가 굽이굽이 뻗어나간 소나무와 단풍나무의 조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담숲만의 가을 풍경이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단풍나무를 보유한 숲으로도 유명하다. 화담숲의 가을이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18년 5월 14일,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으로 그이와 함께 봄나들이를 갔다. 2016년 10월에 블로거협회 벗들과 가을 단풍을 즐긴 곳이다. 그때 단풍이 너무 고와서 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동백꽃은 으레 탐스런 모양의 붉은색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처음 본 쪽동백나무는 꽃송이가 작으며 하얀색이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은방울꽃은 오월에 피어난다. 혹시나 하고 초록 이파리를 살펴보니 귀여운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있다. 야호! 정말 반가웠다. 타원형의 선명한 초록색 잎에 만든 듯이 예쁜 하얀색 꽃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무리 져서 피어난 하얀 조팝나무도 환상적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필자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화담숲은 나무 데크로 완만하게 산책길을 만들어놓았다. 어린이나 다리 힘이 부족한 시니어도 안전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가족, 연인 등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한택식물원에 갔을 때였다 바위틈에 피어 있는 체리 빛 패랭이꽃이 얼마나 예쁘던지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3년 전에 갔을 때는 나무에 벌레들이 많아서 벤치에 앉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살아있는 것들은 늘 관심과 사랑을 주며 보살펴야만 한다."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은 자금력이다. 다른 곳에 편의성, 볼거리 등 더 좋은 환경의 식물원이 생기니 경쟁력이 떨어져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을 것이다.
화담숲은 자연과 기획한 사람의 작가정신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오밀조밀 만들어진 여러 곳의 폭포와 계곡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렀다. 청아한 물소리가 계속 이어지며 귀와 마음을 씻어줬다.
사람만 이름이 있는 게 아니라 꽃들도 제각각 이름이 있다. 뭉뚱그려 꽃이라고 하지 말고 제 이름을 불러보자.
쪽동백나무, 하늘으아리, 매발톱꽃, 금낭화, 미쓰 김 라일락 등 토종꽃들과 은방울꽃, 조팝나무, 아이리스, 양달개비, 마거리트 등 서양의 다채로운 꽃들이 고유의 빛깔과 향내를 내뿜고 있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꽃만 꽃이더냐! 떨어져 누운 꽃잎 또한 예술이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로 구본무 회장의 아호다. 화담숲의 운영비는 연간 150억 원이나 드는데 입장 수입은 80여 억 원정도라서 매년 적자운영을 하고 있지만 구본무 회장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화담숲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구 회장의 철학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화담숲의 기획력이 돋보인 것은 옛것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풍경 때문이다. 출구 쪽에 조성해놓은 야트막한 기와담장과 장독대가 정겨웠다. 화담숲 중간쯤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는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는 듯싶었다.몇십 년이 된 분재에 영양제를 주는 방식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튼실한 자금력으로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게 눈에 보였다. 걷는 내내 '정말 좋은 곳이다.' '조경을 정말 잘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 와아! 은방울꽃이다!"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꽃들에게 반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필자에게 그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꼭 유치원 애 같아!"
기꺼이 전속 사진기사가 되어준 자상한 그이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은 누구라도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생로병사로 삶을 마감한다. 이어 장례를 치르노라면 인생처럼 허무한 게 또 없음을 새삼 천착하게 된다. ‘때 되면 고작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거늘 왜 그렇게 지독하게 살았을까…’라는 화두를 놓고 고인에 대한 평가까지 ‘난상토론’으로 이어지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5월 20일 타계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생전 미담이 새삼 세인들의 존경의 대상으로 우뚝하다. 평소 소탈했던 성품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감동을 더하고 있다는 뉴스가 도배를 이뤘다.
“몇 년 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주차장에서 후배 몇 명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노신사가 ‘어이쿠 실례합니다’하며 급하게 걸어오길래 길을 비켜드렸다. 노신사는 미안한 듯 멋쩍게 웃었는데, 구본무 회장님이셨다. 그룹 총수가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작년 화담숲에서 모자 쓴 어떤 할아버지가 더운 날 힘들게 걷던 만삭 임신부를 보고 모노레일을 무료로 타고 내려갈 수 있게 배려해 주더라. 자세히 보니 회장님이셨다.”
“아버지가 LG에서 일할 때 회사 구경을 갔다가 회장님을 만났는데 ‘꼬마 신사님, 커서 훌륭한 사람 돼서 다시 만나요’하며 용돈을 주신 것이 생각난다. 권위 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쏟아지는 칭찬이 이 같은 주장의 방증이다.
이러한 고인의 ‘추모 글’에서 사람은 과연 어찌 살아야 현명한 것인지를 거듭 되돌아보게 된다. 이는 또한 한진그룹 재벌 총수 일가의 그야말로 ‘무차별 갑질’이 국민들 반감의 정점으로 떠올랐음과 크게 비교된다.
때문에 이를 보자면 두 재벌은 마치 겸손과 교만의 교차로에 서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컵 갑질’로 시작된 대한항공 사태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 의혹과 사정당국의 전방위 조사, 기업 가치 하락 등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는 건 오너리스크의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오너리스크의 부끄러운 작태는 비단 한진그룹의 경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만 하더라도 남양유업, (주)피죤, 네이처리퍼블릭, 미스터피자, 호식이 두 마리 치킨 등 그야말로 부지기수인 까닭이다.
‘사람이 미래다’라고 했음에도 정작 20대 1~2년짜리 신입사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을 강요하다 뭇매를 맞은 두산그룹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 댄 애리얼리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란 저서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합리화가 가능한 선에서 거짓말과 부정행위를 저지른다”고 했다.
그렇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이다. 거짓말과 부정행위는 언제든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자신과 심지어 가족까지 벨 수 있다.
10월에서 11월은 한창 단풍여행이 이어진다.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화담숲이나 아침고요수목원은 물론 여러 곳에 있는 허브랜드와 단풍이 좋은 산을 차를 대절해 단체로 여행가는 계절이다. 필자는 동네 통장이나 부녀회장은 물론 각종 모임에 단체 임원을 많이 맡아 일해본 경험이 있어 여행 꿀팁을 모아봤다.
나이 들어도 한껏 멋을 부린다고 치마를 입거나 구두를 신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여행길에서는 불편한 옷차림이다. 박물관 견학 등 편안하게 다녀오는 장소 외에는 운동화를 신는 게 좋다. 산에 갈 때도 등산화가 당연히 필요하지만 오래 걸을 때, 딱딱한 도시의 길을 걸을 때도 등산화가 발이 덜 아프다.
대형버스로 이동할 때 휴게소도 아닌데 아무데서나 차를 세워달라는 분들이 꼭 계셔서 서로가 난감할 때가 있다. 요실금 증세가 신경성이나 급박성으로 있는 분들은 여행 당일에는 가능한 한 물 종류를 드시지 않는 것이 좋다.
여행지에서는 식사를 한 끼 이상 함께하게 되는데 꼭 건배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분위기상 필요할 때만 건배사를 하는 게 좋다. 보기에는 인격적으로 생긴 분들이 가끔 여성 회원들이 나이가 있어 당연히 이해하겠지 하면서 아주 듣기 거북한 19금 건배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얼굴이 찌푸려지는 일이다.
유난히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목소리가 너무 크고 시끄럽게 해서 함께 여행간 분들이나 맛집에서 눈총을 받는다. 같은 팀의 다른 자리에 계신 분들이나 다른 모임에서 오신 분들과 시비가 붙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안 좋은 일에 휘말려 함께 간 여행객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요즘은 친한 모임에서도 초상권 운운하면서 사진을 함부로 찍거나 영상을 찍는 것을 안 좋아한다. 사전양해도 없이 스마트폰으로 사람을 줌으로 당겨 무작위로 촬영모드에 들어가는 분들이 꽤 많다. 분위기상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따지고 드는 다른 여행객 일행들을 만나면 같이 간 사람들이 아주 힘든 상황이 된다. 사전양해 없이 얼굴이나 영상을 막무가내로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식사시간에 술을 주문해서 드실 때 폭음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놀러가셨다가 폭음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자녀들이 단체나 운영자에게 큰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누군가 폭음할 경우에는 자제시켜야 한다. 이러한 책임은 함께 간 모든 분들에게 있다.
노래방으로 이동해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 차례가 왔을 때 분위기를 위해 한 두곡 부르는 것이 좋다. 노래를 잘 못 부른다고 생각하는 분은 무난한 곡, 예를 들어 모두 잘 아는 ‘만남’이나 ‘개똥벌레’같이 함께 부르기 좋은 곡을 평소 알아두었다가 부르면 좋다. 노래방에서는 무조건 안 한다고 빼지도 말고, 남이 노래하는데 눈치도 없이 마이크 하나 더 있는 것 집어서 함께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 함께 부르기를 청할 때 외에는 잘 들어주고 호응해주는 것이 매너다. 또 상대방이 노래하는데 본인이 노래할 제목을 찾느라 책만 들여다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배려가 없는 행동이고, 누군가의 기억에 안 좋게 남는 행동이다.
부디 즐거운 여행을 할 때마다 매너 있는 행동으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대방 기억 속에 남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