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웅(52) 시인은 어느 날 머리 위에 뜬 달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왈칵 눈물이 났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로 차고 기울면서 달은 이 세상 존재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힘들고 슬픈 밤에 달만은 길을 잃은 마음에 등불이 되고 소망이 되어준다 여겼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마음속 어둠과 내일의 불안까지도 환하게 비춰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인은 휘황찬란한 도시의 인공 빛들에 밀려 희미해지는 달빛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이 포악해지고 우리 삶이 팍팍해진 것이 왠지 달빛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으로 보였다.
시인은 그때부터 달의 이야기를 담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고, 이를 페이스북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사람들은 달 그림과 어우러진 이 시들을 '달시(詩)'라 불렀다.
많은 사람이 달시를 좋아했다. 팍팍하고 건조한 일상에 촉촉한 감정의 울림을 준다 했다. 잊고 있던 그리운 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했다.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 찾아보게 됐다 했다.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의 달시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영국에 사는 페친이자 한국교포인 레이첼 박 씨는 달시를 영어로 번역해 올렸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달시를 알리고 싶어서란다. 번역가 백선희 씨는 불어로 번역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신간 '당신이 사는 달'(김영사on 펴냄)은 시인이 달시가 전하는 위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내놓은 책이다. 책에는 '달시' 스물세 편과 시에 미처 담지 못했던 말들을 담은 산문이 실려 달빛 같은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달은 참 좋은 에너지다. 언제나 따뜻하고 밝고 환하고 둥글다. 그런 달의 기운을 받고 또 나누고 싶었다. 선물하고 싶었다. 조금 외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당신의 달을."('작가의 말' 중에서)
여기에 시인이 이국의 여행에서 촬영한 다양한 사진들도 곁들여져 정서의 깊이를 더했다.
달을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차오르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그렇다. 삶의 거울이 되고 위로가 되는 달의 정서를 똑 닮은 책이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비가 어디서 무엇과 부딪히는가에 따라 그 소리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소리, 처마 밑 깡통에 떨어지는 소리, 비닐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창문에 떨어지는 소리, 나무의 어깨 위에 떨어지는 소리, 호수 위에 떨어지며 둥글게 퍼져 나가는 소리…. 사람도, 사랑도 그렇다.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 그 소리가 달라진다. 깊은 소리, 가벼운 소리, 행복한 소리, 시끄러운 소리, 슬픈 소리, 아름다운 소리…. 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178~179쪽)
한편, 시인은 이 책 출간을 기념해 다음 달 4~6일 서울 인사동 시작갤러리에서 '달동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기부 시화전'을 열고 손 글씨로 쓰고 그림을 그려넣은 시화들을 전시, 판매한다. 수익금 전액은 달동네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쓰기로 했다.
남미영(71)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이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학생들을 만나 황순원의 ‘소나기’에 대해 수업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이 소년은 좋아하는 여자가 죽었지요? 그 사실을 안 순간 소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반장이 손을 들었다. “이제는 다른 여자를 사귀겠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남원장은 경악했다. 다른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생각에는요. 이제는 건강한 여자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그때 그는 깨달았다. 아무도 그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사랑을 배운 적이 없다. 부모님은 과외공부는 시켜주면서도 사랑은 가르쳐주지 않았고, 학교는 외국어와 방정식을 가르쳐주고, 먼 우주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지만 사랑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프롤로그’ 중에서) 그가 최근 펴낸 ‘사랑의 역사’(김영사)는 이러한 자각에서 출발한 책이다. 책에는 1597년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으로 2012년에 나온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까지 동서양에서 발표된 34편의 사랑 이야기가 실렸다.
남 원장은 이들 작품 속에서 사랑에 울고 웃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와 환경, 가족과 성장사를 통해 그들의 사랑이 왜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독자들이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읽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미리 예행연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알랭 드 보통 등 시공을 초월한 작가 34명이 들려주는 사랑의 강의이며,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인생에 뛰어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사랑의 교과서’다.
남 원장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는 인생의 여명기에 찾아온 허무한 사랑이우리 인생에 놓인 행운의 시작이었음을 발견하고, 가브리엘 루아의 ‘싸구려 행복’에서는 가난을 벗어나려는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아는 행복이란 철저히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낭만과 열정을 발견하는 대신 수백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못한 결혼 시장의 모순을 폭로한다. 또 다른 남자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서영은의 ‘먼 그대’에서는 짓누르는 현실에 반항하지 못하고 작아져 가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책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고,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남 원장은 말한다. “사랑의 본질을 모른 채 하는 백 번의 사랑보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하는 한 번의 사랑이 더욱 아릅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