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으로 떠내려간 지식들…
1938년 출간된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서 칠성네 아주머니가 방망이를 두들기며 빨래하던 청계천은 나에게는 헌책방과 고물상이 즐비한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고등학교 때 조금이라도 싸게 참고서를 구입하기 위해 기웃거리던 거리를 국문과 진학 후 전공 관련 자료를 찾느라 다시 뒤졌을 때 캐캐한 책 냄새는 은은한 향기로 다가왔고, 수많은 책들이 자꾸 속삭이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책벌레보다는 수집광에 가깝다고 할까.
도쿄살이 18년에 책이 그립고 자료가 땡기면 곧잘 도쿄 진보초(神保町) 일대의 ‘간다(神田) 고서점가’를 찾는다.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서 도쿄대학 근처의 헌책방을 기웃거리도 한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이 되면 대학 강의를 마치고 일부러 고서점 거리를 지나 다른 대학으로 걸어간다. 약 180개의 서점들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처럼 늘 듬직한 미소로 반겨준다.
‘책의 거리’ 간다 진보초의 공식 사이트(http://jimbou.info)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 거리임을 자랑하면서 176개의 고서점을 소개하고 있으며, 52군데 고서점과 6군데 신간서점의 재고를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도 공개해 이용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역사가 제일 오래됐고 규모도 가장 큰 전국고서적상업협회(JADOB)가 운영하는 ‘일본의 고서점’ 공식 사이트(http://www.kosho.or.jp)를 통해서는 전국 2200여 개의 고서점이 등록한 약 600만 권의 고서를 검색하고 구입할 수 있으며, 고서점의 소개 및 이벤트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나 역시 진보초와 도쿄대 일대의 고서점에서 구할 수 없던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 한국 근대사의 자료를 먼지방의 고서점으로부터 직접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사이트 덕분이었다.
반면에 우리 사회가 청계천을 통해 배운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옛것을 없애고 부수는 것은 쉽지만 이를 다시 복원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사실. 어쩌면 헌책방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그 속에 담긴 지식도 함께 떠내려간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료, 활용하면 가치
‘헌책방’보다는 ‘고서점’이 연구자들의 귀중한 자료라는 인상 덕분에 좀 세련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훈훈한 정겨움은 역시 전자가 더 진할지 싶다. 하긴 이 거리의 출발도 가난한 학도들의 얄팍한 주머니와 뗄래야 뗄 수 없었다.
100여년 전 메이지유신 이후 이 지역에는 도쿄대학의 전신인 도쿄카이세(開成)학교를 비롯해 메이지(明治)대학, 주오(中央)대학, 니혼(日本)대학의 전신인 각종 학교들이 연이어 설립돼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가 모이는 거리로 자리 잡았다.
1913년 이 일대에 큰 화재가 발생해 잿더미로 변한 뒤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가 고서점을 열었고 이듬해인 1914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대표작 ‘마음’을 간행하면서 출판업에도 진출해 문학 작품과 철학서 등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것이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이와나미서점의 시작이자 간다 고서점 거리의 출발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화폐 1000엔권에 초상이 실릴 정도로 존경을 받는 일본의 국민작가로 이와나미의 간판도 그가 쓴 것이라고 하며, 이런 인연으로 1916년 향년 49세의 나이로 그가 세상을 떠난뒤 '나쓰메 소세키 전집'도 이와나미서점에서 발행돼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1920년 도쿄고서적상업협회(TADOB)가 설립됐으며, 1921년 문화학원이 개교되면서 음악, 미술, 무용 등 예술 관계서를 다루는 서점까지 등장해 고서점 거리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유명해졌다.
지난 2001년 일본 환경성은 독특한 향기가 풍기는 이 거리를 ‘향기로운 풍경 100선’으로 뽑기도 했는데, 현재는 서점 이외에도 각종 사업시설과 수많은 식당, 멋진 분위기의 레스토랑까지 등장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고서점 탐방을 즐기고 있다.
매년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3월말 진보초 벚꽃거리 페스티벌로 ‘봄 헌책 축제’가 열리며, 10월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약100군데 서점이 참가하는 ‘도쿄 명물 간다 헌책 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된다.
올해로 55회째를 맞이하는 간다의 헌책 축제는 특별 전시 및 판매, 자선 경매, 각종 강연회와 좌담, 관련 영화 상영 및 토크쇼, 그리고 다양한 체험교실 등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애호가는 물론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이 시기에 맞춰 ‘진보초 북페스티벌’도 사흘간 거리와 광장에서 총 매장 면적 5000 평의 규모로 함께 열려 300만 점의 각종 서적(총 재고수는 무려 1000만 권)이 넘쳐난다.
올해로 24회째이며 헌책 판매뿐만 아니라 낭독회, 문학상 수상, 공개 방송, 다양한 검정시험 도전, 그리고 연주회 등 각종 공연도 마련돼 찾는 이들의 눈과 귀도 즐겁게 만든다.
이처럼 이 거리의 서점 주인들은 틈만 나면 먼지를 털고 표지를 닦으면서 누구보다도 ‘헌책’의 새로운 가치를 신뢰한다. 버리면 그냥 1kg 당 60 원 선에서 거래되는 폐지에 지나지 않는 헌책. 이런 헌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내용에 따라 분류돼 새 주인과 만나 값진 가치를 발한다.
따라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을 실천하는 거리가 바로 이곳이며, 시니어 세대의 향수 어린 추억을 떠올리는 무대가 아니라 지금도 젊은이들이 옛것의 소중함을 느끼고 새로운 가치를 캐어내는 산 교육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헌책 시장의 규모는 가치 창조의 시금석
일본의 출판과학연구소가 지난해 출판물의 판매액을 1조7000억 엔으로 추정했으며, 인프레스 종합연구소가 간행한 ‘전자서적 비즈니스 조사보고서 2014’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 출판물도 1013억 엔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억 엔대를 넘어서 2018년에는 3000억 엔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헌책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헌책 체인망인 '북오프(Book-off)'가 2011년에 보고한 자료를 보면 중고서적의 시장은 873억 3300만 엔 규모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또 다른 업체가 조사한 헌책 구입 방법에서는 점포를 찾아가 직접 구입한 적이 있는 사람이 81%, 반면에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적이 있는 사람은 49%(중복응답)였다. 그 이유로 “책 상태를 알 수 없는 게 불안”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에서는 국회도서관을 비롯해 국공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 등 대규모 도서관을 제외한 작은 규모의 공공도서관의 경우 책을 구매한 지 5년 정도 지나면 정리해 폐기하게 되는데,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하지만 보통 많은 책들이 헌책방으로 유입된다.
또한 개인들도 나이가 들어 신변을 정리하면서 재산과 함께 골동품, 미술품, 서적 등을 상속하거나 팔며, 혹은 기부한다. 여기에 각 출판사들의 재고서적까지 가세하면 헌책방을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길 기다리는 책들이 끊임없이 넘쳐난다고 하겠다.
‘간다 고서점가’의 산책은 서점마다 인문, 자연, 과학, 기술, 미술, 공연, 사진, 대중문화, 아동도서, 외국잡지 등 특화된 전문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잘 분류된 서가를 걷는 기분이 든다. 책의 향기 속에 흠뻑 빠져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환상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는 시니어 세대의 인기를 모았던 절판 서적들이 다시 복각돼 출판되는 예도 크게 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리가 아니더라도 ‘잘 익은 된장맛’ 같은 헌책의 가치를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거리에서 수많은 ‘온고지신’의 향기는 계속 퍼져나갈 게 분명하다.
근현대사의 풍파 속에 복개와 복원 끝에 떠내려간 청계천의 헌책방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가슴 아프며 부럽기 그지없다.
소위 로얄 패밀리, 연봉 2억원 이상, 기업 오너, 자산가와 전문 경영인, 스포츠 스타와 문학인 들이 와서 쉬는 곳. 그러나 오로지 한 손님, 한 가족만을 위한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곳. 강화에 위치한 담담각(淡淡閣)은 조용한 자신만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20년 동안 준비된 공간이다. 그동안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알려져 왔던 담담각의 특별한 모습을 담백하게 담았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bravo-mylife.co.kr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담담각(淡淡閣)의 도우미와 집사들이 바쁘다. 디테일한 취향에 따라 저녁 식사를 위해 더덕구이, 바비큐 숯과 그릴 장비를 준비하고 어디선가 테이블을 가져와 정원에 가지런히 셋팅한다. 바지런히 패 둔 장작을 가져와 벽난로를 피우니 거실이 금방 따뜻하게 데워진다. 손님들을 위해 호박죽, 전복죽으로 건강한 아침이 차려졌다. 게다가 직접 재배한 상추, 딸기, 고구마, 건강한 오골닭이 매일 낳는 담담각표 유정란을 삶아 강화순무김치와 함께 얌전히 차린 아침 테이블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정갈하고 예의 바르게 손님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집사ㆍ 도우미들은 다른 어떤 숙소에서도 느껴 보기 힘든 한국식 명품 서비스를 보여줬다.
그들만을 위한 새로운 문화공간, 현대판 아방궁
한국을 방문한 글로벌 기업들이 전통문화를 경험하고자 숙소로 임대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반에 문을 열게 됐다. 집 전체를 대여하는 조건으로 임대료는 하루 150만원 선. 회의룸과 리셉션 장소도로 적합한 영빈관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한 가족이나 한 팀에게 통째로 빌려준다.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이 재방문하기 때문에 굳이 홍보나 광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도 10월까지 예약이 차 있는 상황이다.
“짬짬이 시간 내서 조금씩, 계속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담담각의 규모가 크다는데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저로서는 규모가 큰지 작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3개의 정원과 2채의 한옥(본채, 행랑채), 3개의 침실과 욕실, 2개의 거실, 별도의 쉼채로 구성된 5000평 규모의 담담각은 완공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소유주인 지동훈 강화한옥문화연구소 소장이 긴 시간만큼이나 공을 들인 건 소수의 그들만을 위한 완벽한 휴식처로서의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걸 증명하듯 내부 곳곳에서는 진품 골동품과 미술품이 놓여 있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격조 높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덕망있는 분들은 가족 여행을 이곳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른들은 한옥이 정서에 맞는 편이지만 아이들은 불편해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고 즐거워 하더군요.”
지 소장은 “불면증인 분들도 여기 와서는 잠도 푹 주무시고 하루 머물다 가면 생명이 연장된다는 생각이 든다고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실 때 가장 보람이 있다”며 웃는다.
VVIP만을 위한 완벽한 휴식처를 만들다
한옥의 공간이라 빛과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 몇 조각이 어우러지는 방마다 그의 수집 작품에 터를 잡는다. 저마다 삶과 체취를 품은 작품들은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뿜어낸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밀려온다. 특별한 프라이빗 공간을 나름 재해석하고 연출함으로써 담담각은 럭셔리하게 정취가 물씬 익어가고 있다.
5000평 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돌담은 지 소장의 수집 인생의 대표 작품이다. 강화도 자연석으로 돌담을 쌓고 한옥 바깥은 원형을 유지하면서 내부는 현대인이 생활할 때 불편하지 않게 재배치했다, 새 둥지도 지방에 내려가서 입수하는 등 꼭두 소품 하나 하나 애정을 갖고 배치하고 천천히 뜯어 고친 결과 우물이 있던 마당이 부엌으로, 거실로 바뀌며 집이 커졌다.
각 방과 거실, 주방 곳곳에 좋은 컬렉터와 좋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는 지 소장은 추억과 취향을 작품 하나 하나에 깃들게 하고 싶어했다.
계단의 장대석은 서울 상왕십리 공사 현장에서 가져왔다. 연개소문 생가에 가서 소나무를 어렵게 모셔와 정원에 심었다. 고재상을 거치지 않고 20년간 직접 발품 팔며 사 모으니 이제 전국에서 고귀한 물건들이 있다 싶으면 지 소장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산하 유럽·코리아재단의 이사장으로도 있는 지 소장은 “월급 타서 아파트·상가 같은데 투자하지 않고 한옥 가꾸는 일에 돈을 쓰니까 사람들은 저 보고 미쳤다며, 시간이며 노동력까지 버리느냐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다”고 말했다.
1인용 침대와 쇼파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북유럽풍 스타일 가구와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설치한 쉼채는 원래 경기도 용인에 있는 조그만 절의 본당이었다. 도시개발로 철거될 절을 옮겨놓은 것. 지 소장이 담담각에 쏟는 스케일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빈관 앞 입구 마당도 현재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조만간 박물관을 꾸밀 생각이다. 또한 이미 논밭을 일구고 있는 담담각 마을 입구 터에도 조만간 카페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