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중부의 호수 도시, 루체른. 로이스 강에는 14세기의 목조다리 카펠 교가 긴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변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가옥들이 줄지어 있다. 밤이 되면 호수 물길 따라 흔들리는 야경이 더 멋지다. 스위스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난 곳. 1897년 여름, 이곳을 찾은 마크 트웨인은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격찬했다.
글·사진 이신화(의 저자, www.sinhwada.com)
루체른 호수의 또 다른 이름은 ‘월광소나타’
루체른(Luzern, 해발 437m)은 취리히와 인터라켄의 중간쯤에 있다. 알프스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루체른의 아름다움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리하르트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음악가는 물론 빅토르 위고, 괴테, 실러, 바이런 등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이 월광소나타로 불리게 된 배경에도 루체른이 있다. 베를린 태생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음악평론가인 루트비히 렐스타프(1799~1860)가 베토벤의 제1악장에 대해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다고 평했기 때문이다. 루체른이 외부에 알려진 시기는 8세기, 수도원이 세워지면서부터다. 도시 명은 켈트어와 로망스어가 혼합된 로체리나(Lozzerina, 늪의 거주지)에서 유래했다. 13세기에는 장크트 고트하르트 고개(2108m)가 개통되면서 알프스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고, 1332년에 합스부르크로부터 독립했다. 루체른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은 로이스 강을 길게 잇는 목조다리 카펠(Chape, 204m) 교다. 1333년에 축조된 카펠 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 지붕이 있는 다리의 천장에는 축조 당시 새겨진 그림과 글씨가 이어진다. 다리 중간의 팔각형 석조물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 겸 방위 탑이었다. 카펠 교 위쪽으로는 1408년에 세워진 슈프로이어 교(Spreuerbrucke)가 있다.
바그너가 결혼한 마테우스 교회와 빈사의 사자상
로이스 강과 루체른 호수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Altstadt) 골목이다. 곡물 시장, 와인 시장, 뮐렌 시장 등이 있는 그곳에 마테우스(matthaus) 교회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코지마(1837~1930)가 결혼식(1870)을 한 곳이다. 리스트의 딸이었던 코지마는 당시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 겸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의 부인이었다. 바그너와 24세나 나이 차이가 났던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기 전에 이미 바그너의 아이를 낳았다. 어쨌든 둘은 평생을 같이했다. 또 빙하공원으로 가면 ‘빈사의 사자상’(Lo ¨wendenkmal)이 있다. 작은 연못 위 바위 절벽 속에 들어앉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상이다. 이 사자상에는 스위스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좁은 국토의 스위스는 농경지가 적은 산악지대인데다 지하자원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젊은이들은 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외국 부대 용병으로 참가해 돈을 벌어야 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던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다. 다른 국가들의 용병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죽어간 이유는 단 하나. 후세들에게 용병자리를 물려주기 위함이었다. 선대의 처절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은 1820년, 덴마크의 조각가 토르 발센이 시작해 1821년 독일 출신인 카스아호른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자의 발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의 방패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했다. 또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눈길을 끄는 호프 교회(Hofkirche)가 있다. 735년, 이 도시에 처음 세워진 수도원이다. 17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후 1645년에 후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1525년,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두 개의 첨탑은 화재 때 피해를 입지 않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1640년에 4950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건물 주변으로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묘석들이 남아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루체른 호수 따라 찾아가는 리기 산
루체른에는 멋진 리기(Rigi, 1797m) 산과 필라투스(Pilatus, 2132m) 산이 있다. 특히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리기 산은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Vitznau)까지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유람선 여행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위스 풍치를 보여준다. 호반을 정원 삼은 300~400m의 언덕 위에 터전을 잡은, 아름다운 스위스 가옥들과 전원 풍경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작은 도시, 비츠나우에 도착하면 산악열차 리기 쿨름(Rigi Kulm)이 눈앞에 있다. 리기 쿨름은 1871년 5월 21일에 개통한 유럽 최초의 산악열차. 리기 산 중턱 마을인 리기 칼트바트(Rigi Kaltbad, 1453m)를 거쳐 30분 정도 가면 정상에 이른다. 그곳에는 1861년, 스위스 최초로 산정에 세워진 호텔이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다. 여러 갈래의 산책로(30km)를 따라 여름에는 하이킹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키나 썰매를 탄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르는 이유는 멋진 풍치를 보기 위함이다. 미텔란트(Mittelland) 지방의 13개 호수와 켜켜이 이어지는 산들이 파도를 친다. 마치 ‘천국이 여기다’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산은 리기 칼트바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Weggis)로 10여 분 내려오면 된다. 435m 고지에 위치한 휴양도시 베기스는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Travel Tip!
현지 교통:루체른 선착장에서 비츠나우까지 매시간 유람선이 운행된다. 스위스 패스(www.swisstravelsystem.com)가 있으면 무료. 시내는 걸어 다니면 된다.
맛집과 숙박:호수 주변이나 구시가지에 레스토랑이 많다. 강변 옆의 라트하우스 양조장(Rathaus Brauerei)은 하우스 비어를 생산하는 곳으로 블론드 비어가 대표적이다. 또 뮐렌 광장에는 대형 쿱(coop) 마켓이 있다. 숙박은 루체른 시내를 이용하면 된다. 리기 산 중턱에 있는 리기 칼트바트 호텔(www.hotelrigikaltbad.ch)에서는 온천욕이 가능하다.
여행 포인트:필라투스 산을 가려면 알프나하슈타트(Alpnachstad) 역에서 등산 철도를 이용해 필라투스 역(2070m)까지 오르면 된다. 눈 덮인 필라투스 산 풍치가 매우 빼어나다.
문의
루체른 홈페이지:luzern.ch
유람선:lakelucerne.ch
스위스정부관광청:myswitzerland.com/ko
가왕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가요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킬리만자로를 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조용필씨는 탄자니아 및 케냐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단다. 글ㆍ사진 변종경 언론인
지구 온난화로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의 만년설이 녹아 금세기 이후에는 만년설을 볼 수 없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6000m에 달하는 세계 고봉 가운데 특별한 장비 없이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 산악인이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해서 트레커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0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를 다녀온 뒤 더 높은 곳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6000m의 고봉임에도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킬리만자로를 버킷 리스트로 정해 등정하기로 마음먹고 9월 22일부터 13일간의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하게 됐다.
아프리카 최고봉 등정 준비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 예방주사는 국립의료원이나 각 공항 검역소에서 맞을 수 있는데 잠복기 3일, 접종 부작용 3~5일 후 발현 여부를 점검한다. 10년간 효력 등을 감안할 때 출발 2~4주 전 미리 접종하는 것이 좋다. 말라리아 예방약도 처방이 필요한데 킬리만자로 등정 일정만 소화할 경우 주로 고산 지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약 복용을 강력하게 권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발 3000m 이상에서 나타나는 고산병에 대비해 이뇨제인 다이막스와 비아그라는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트레킹할 때는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고산병 관련 약이 필요 없었으나, 이번에는 3700m에 위치한 호롬보 산장에서부터 고산병 약을 복용해야 했다. 다만 낮에는 계속 걷기 때문에 비아그라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적도 지역에 위치한 고봉이기 때문에 저지대는 열대성, 고지대는 아한대성으로 등산복 등을 봄, 여름, 겨울 등 사계절에 맞도록 준비해야 한다. 트레킹 과정에서 산장이 27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해 샤워 등이 어려운 데다 숙소도 다인실로 열악해 물티슈는 요긴하게 쓰이는 필수품이다. 또한 적도 지역은 햇볕이 강렬해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블록 크림, 진한 색깔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입술 건조 때 바를 립크림, 트레킹 때 먼지에 대비한 마스크도 준비하면 좋다.
정상을 향한 긴 여정(旅程)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카타르의 도하까지 9시간, 그리고 몇 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을 거쳐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까지 6시간을 비행했다.
이후 탄자니아 제2의 도시 모시에서 일박한 뒤 이튿날 일행은 2시간의 버스를 타고 킬리만자로 입산 수속을 위해 마랑구 게이트(1972m)에 도착하였다. 킬리만자로 등정은 마랑구 루트, 마우아 루트, 움부웨 루트, 므웨카 루트, 쉬라 루트 등이 있는데,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ayer)가 1889년 10월 9일 유럽인 최초로 현지인 가이드 라우오(Lauwo)와 함께 정상에 오른 마랑구 루트가 비교적 오르기 쉬워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입산 수속을 마치고 마랑구 게이트에서 등정 첫날 숙영지인 만다라 산장(2720m)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열대 우림 지역 숲길 8.2㎞를 약 4시간에 걸쳐 걷는 것으로 비교적 수월했다. 등정 둘째 날은 킬리만자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웬지봉(5249m)을 옆으로 바라보며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3700m)까지 11.7㎞를 산행했다. 그런데 경사는 완만하지만 낮은 관목 사이의 약 50㎝ 깊이의 참호 같은 화산재 흙길을 햇볕 속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8시간을 걷는 것이 고역이었다.
호롬보 산장은 꽤 큰 편이었는데, 역시 숙소는 다인실을 사용하였고 3700m 고지대라 약간의 고산병 증세로 다이막스와 비아그라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등정 셋째 날은 고산 적응과 체력 비축을 위해 인근 지브라록(4200m)까지 왕복 4시간을 산행한 후 일찍 휴식을 취했다. 등정 넷째 날은 호롬보 산장에서 킬리만자로 등정 베이스캠프인 키보 산장(4700m)까지 10.1㎞를 트레킹했다. 이 지역은 황무지 사막지대로서 역시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물(Last Water Point)이 있는 곳을 지나 8시간여 산행 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키보 산장에 도착해 정상 도전을 준비했다.
고전 끝에 우후르 피크 정상 등정
키보 산장에 오후 4시경 도착해 일찍 저녁을 먹고 6시경부터 수면을 취했다. 10시 반쯤 일어나 죽으로 식사를 간단히 한 뒤 11시 반부터 등정 다섯째 날 마지막 급경사를 오르는 정상 도전이 시작됐다. 겨울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헤드랜턴을 밝히며 4700m 이상 고지의 거의 직벽에 가까운 화산재 모래 자갈길을 오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현지 가이드들은 연신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힘들어 하는 우리들을 응원했다. 미끄러지는 길과 싸우고 산소 부족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로 머리 위로 멀리 보이는 앞 팀의 랜턴 빛줄기를 따라가며 5시간쯤 오르니 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자 킬리만자로 정상 분화구 언저리인 길만스 포인트(5685m)에 다다랐다. 킬리만자로 정상은 원뿔 모양 분화구를 가진 사화산으로 분화구 폭이 2.4㎞에 이르는데 정상인 우후르 피크(5895m)까지는 분화구 둘레의 바윗길과 완만한 산길을 오르는 것으로 왼쪽 북쪽 사면으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만년설을, 오른쪽으로는 수백 미터 깊이의 분화구를 보며 스텔라 포인트(5765m) 등을 지나 천천히 2시간여를 등정했다. 아침 7시경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르 피크에 올랐다. 우후르 피크는 비교적 평평하고 눈도 없었다.
생애 최고점인 5895m를 밟았다는 감격과 함께 정상에서 아침 햇빛을 받으며 주변 만년설과 거대한 분화구의 장엄함을 잠시 감상했다. 하지만 호롬보 산장까지 하산하는 일정 때문에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스와힐리어로 ‘킬리만자로’는 ‘반짝이는 산’을 의미하고 ‘우후르’는 ‘자유’를 뜻하는데, 1961년 탄자니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킬리만자로 정상을 ‘우후르’로 명명하였다 한다. 우후르 피크는 100년 전만 해도 20m 두께의 만년설이 10㎢에 걸쳐 있었다고 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최근까지 85%가 녹고 북쪽 사면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만년설도 금세기 내에 녹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나중에는 흰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사진 속 전설로만 남아 있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산하는 길은 정상을 밟은 데다 고소 적응이 돼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빨랐다. 그런데 하산하면서 낮에 보니 길만스 포인트에서 키보 산장에 이르는 직벽은 경사도 가파른 데다 화산재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스키장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듯이 미끄러져 내려와 아마도 낮에 등정했다면 엄두를 못 낼 것 같았다. 키보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호롬보 산장까지 내려와 일박한 뒤 모시 리조트로 돌아와 수영으로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에 먹는 저녁 뷔페는 꿀맛이었다.
다음 날 케냐로 이동해 드넓은 암보셀리 국립공원 사파리를 구경하면서 멀리서 북쪽 사면의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긍정의 삶, ‘하쿠나 마타타’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듣는 첫 인사는 ‘점보(Hi, welcome)’다. 안나푸르나 현지 주민 인사 ‘나마스테’와 비슷한 어감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등정하면서 ‘뽈레뽈레(Slowly)’와 ‘하쿠나 마타타(Don't worry, it will be good)’를 자주 듣게 된다. 고산에서는 산소가 희박해 빨리 걸을 수 없다. 일행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현지 가이드들은 ‘뽈레뽈레’를 외치고, 힘들어 하면 ‘하쿠나 마타타’를 소리 높인다. 지금 힘들겠지만 잘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의미다. 어찌 보면 이들은 참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물론 어려운 여건이 이들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그들이 불쌍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시각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긍정적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원천일 것이다.
영국의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모든 일에 만족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기뻐할수록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마음이 결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성실한 태도로 사는 사람은 이를 저절로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네만 교수도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다’며 행복은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버킷 리스트인 킬리만자로 등정의 기쁨과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기분 좋은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을 희구한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계기로 ‘하쿠나 마타타’의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것을 기약해본다.
>>변종경(65) 일요시사 전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1973)한 뒤 잠시 공직을 거쳐 미국 유학, UCLA 대학원에서 석사 취득(1985) 후 1987년 삼성물산(주) 조사부장, 경영기획부장, 1994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 담당 임원(이사,상무,전무), 2004년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기획 분야에 주로 종사해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삼부그룹 계열 ㈜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에 취임해 경영 혁신을 통해 2011년 지식경제부, 중앙일보 주관 '한국을 빛낸 창조 경영인' 대상(혁신 경영 부문)을 수상하였고 2012년 일요시사 회장으로서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는 등 경영자로서 경륜을 쌓기도 하였으며 2013년 자유인이 된 뒤 등산, 사진 등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그동안 못 다한 여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 만능 스포츠맨이 있다. 스킨스쿠버, 사막 울트라 마라톤, 등산, 축구, 자전거 하이킹까지. 자칭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다. 때문에 건강한 신체를 얻었고, 건강한 정신이 따라왔다. 몇 살이냐고? 화투로 따지면 ‘6땡’ 66세 주름 많은 늦청년이다. 건강한 신체로 250km나 되는 사하라 사막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했다. 건강한 정신으로 파키스탄 오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을 만났다.
작은 체구 사내의 눈웃음이 환상적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열린 25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남성이다. ‘이 사람이 완주를 했다고?’. 고개가 갸우뚱 거릴 만큼 왜소해 보인다. 그러나 거둬 올린 셔츠 소매 사이로 튀어나온 팔뚝은 꽤나 다부지다. 팔뚝에 도드라진 힘줄은 남성미를 물씬 풍기기까지 한다. 신중년들의 행복을 가꿔 주는 행복 디자이너 ‘아름다운 유산’의 우헌기(66) 대표다.
누군가는 산을 좋아하는 그를 산악인이라 부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마라토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 대표를 한 가지 수식어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그가 가진 재주가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마라톤과 산 때문이었지만, 정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키다. 다부진 몸매의 소유자 우 대표의 비결은 스포츠다.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들 중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은 아마 ‘철인’일 것이다.
◇ 도전의 즐거움 - 63세, 사하라를 횡단하다
2011년, 그는 철인답게 사하라 사막 250km를 횡단하는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했다. 즐기는 자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환갑을 넘긴 나이는 도전이라는 즐거움 앞에서 아무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도전이라는 즐거움이 무거울 수도 있었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약 250km. 꼬박 6일 반나절을 걷고 뛰었다. 무박으로 100km를 걸을 때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걷고 또 걸었다. 대회가 진행되면서 처지는 참가자, 포기하는 참가자가 속출했지만 우 대표는 단 한 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도전을 위한 철저한 훈련 덕분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위해 4월부터 열심히 준비를 해요. 한 여름부터는 울트라 마라톤을 가는 훈련을 하죠. 10kg이상의 배낭을 메고 가기 때문에, 그 정도의 물을 채워 가방에 싣고 하루 30~40km씩 걷는 훈련을 했어요. 2개월 이상 그렇게 하니 사막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더라고요.”
사하라 사막이라는 대자연을 맞서는 것에 우 대표도 상당히 망설였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출국 1주일 전까지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를 할지 말지 고민했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을 믿었다. 여름 내내 시간을 투자한 훈련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흘린 땀방울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키기 충분했다.
“완주하고 나니 세상일이 생각한 것 보다 쉽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양사언의 시조가 생각나더라고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새로운 도전이 두려운 것은 당연해요. 그것은 무지(無知)에서 오는 것이죠. 도전하고 싶다면 그 분야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세요. 그러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깁니다.”
◇ 나눔이라는 보람 – 파키스탄에 희망을 전파하다
“사막 마라톤에 도전할 것입니다. 또 그것을 통해 모금을 해 나눔을 실천할 것입니다.”
2010년 송년회에서 우 대표가 자원봉사단체인 ‘해피포럼’의 지인들에게 2011년 계획을 발표했다. 당찬 포부였다. 추진력과 준비 또한 탄탄했다. 가을에 열리는 사막 마라톤을 위해 반년 이상을 준비했다. 뚝심 있게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1Km당 100원씩 받은 지인들의 성금이 100만원이나 모였다. 결심한대로 좋은 곳에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그 때는 이 돈만 모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돈이 모이니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수 없이 고민하던 끝에 일단 방콕에 수재의연금으로 보냈습니다.”
우 대표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기부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 할 것인지 더욱 구체화했다. 그러던 중 파키스탄의 카라코롬 산맥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 우리나라의 50~60년대에 모습을 봤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오로지 강물을 이용한 관계농사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 사람들. 우 대표가 보는 그들의 삶은 고단하고 무기력해 보였다.
그래서 우 대표가 그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싶었다. 파키스탄 안에서도 외진 곳. 정치적으로 소외 받고, 문화‧종교‧환경적으로도 이질적인 그곳에 꿈과 희망을 불어 넣고 싶었다. 이를 위해 2012년 그는 서슴없이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짓는 등 활력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또한 매년 열리는 사막 마라톤, 산악 마라톤을 통해 모금한 성금을 파키스탄의 한 작은 마을에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나눔 활동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들의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미약하나마 변화의 미동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표정이 없던 마을사람들에게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마을을 보는 순간 바로 생각났어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따로 있구나’라고요. ‘보이스 비 엠비시어스(Boys, Be Ambitious! :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을 그들에게 각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좀 더 넓게 얘기하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 도전 + 나눔 = 행복
“이 모든 것이 제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도전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나눔을 통해 얻는 보람이 합쳐지니 행복해지더라고요.”
결국 마라톤은 즐거움이었고, 나눔은 보람이었다. 우 대표는 이 두 가지가 더해지니 행복한 삶이 보였다. 사실 우 대표는 60세 퇴직 이전까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내 인생에 어떠한 유산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택한 것은 도전과 나눔을 통한 행복이었다. 또한 이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 그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사막마라톤과 기부. 우 대표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고 한다.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는 방법을 확산 시키자는 취지에서 만든 ‘아름다운 유산’을 사단법인화 하려는 것이다. 파키스탄 카라코롬 기부, 태국 수재의연금 기부 활동을 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기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 기부금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는 ‘아름다운 유산’의 사단 법인화를 통해 의료나 교육면에서 더 많은 예산을 지원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퇴직 후 아름다운 유산을 만들려는 신중년들에게
우 대표는 퇴직한 신중년들이 ‘우리는 영원한 현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퇴직 이후의 삶이 덤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순간 퇴물이 된다면서 말이다. 그는 퇴직 이후 건강하고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한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첫째, 퇴직 이 후의 쉬는 시간을 길게 할애하지 말라. 아무리 길어도 6개월 이상 넘기지 말 것을 충고했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삶이 무기력해지고 편안한 삶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됐을 경우 새로운 삶에 나라는 존재를 다시 넣기 어려워진다.
둘째, 새로운 역할을 찾는데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하라. 우 대표가 사막 마라톤을 위해 여름 내내 시간을 투자 한 것처럼 새로운 역할을 찾기 위한 성실한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형편이 된다면 돈을 투자해서 배워야, 그 상식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셋째, 건강에 도움이 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을 하라. 그는 앞으로의 삶은 건강하고 보람이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건강을 채워준 것은 마라톤, 보람을 채워준 것은 나눔이었다.
‘도전과 나눔으로 아름다운 유산을 만드는 사람’. 우헌기 대표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에는 이렇게 써 있다. 도전에는 끝이 없다. 목표도 많다. 이제 66세 철인은 더 많은 나눔을 위해 비단길12000km 횡단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기행- 이기섭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먼 해외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90세가 넘으면서 모든 것이 약간씩 귀찮아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나 열심히 다녔던 등산도 잘 안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두 아들이 오스트리아 여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싶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딸이 살고 있다. 사위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본부가 있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내년에 귀국예정이다. 사위는 전부터 계속 나를 초청했었으나, 나이 탓인지 좀 귀찮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계속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2명이 사위와 같이 여행경비를 부담하면서 정성껏 모시겠다고 하니 용기를 내어 다녀오게 되었다.
2014년 5월 1일 출국해, 5월 10일 귀국했다. 나의 건강을 염려해 기간을 좀 짧게 잡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비행기 실컷 타 보았다. 갈 때는 인천공항 출발, 이스탄불 경유, 비엔나까지 약 14시간, 돌아 올 때도 같은 노선인데 약 13시간 걸린 것 같다. 갈 때 비행기에서 제공된 비빔밥이 참 맛있었다.
성수기라 그런지 갈 때 올 때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는데, 나처럼 백발노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젊어서 다니는 거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아들은 비행 내내 영화나 음악 감상으로 바쁜 모습인데, 난 기기 조작도 귀찮고 해서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비엔나 도착 후엔 딸집에 편안히 머물면서 이곳저곳 다녀보았다.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은 한마디로 음악과 함께 낭만을 마음속에 가득 품었던 여행이었다. 5월은 역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아주 딱 맞는 온난한 기후라 쾌적하게 지내다 왔다.
◇ 오스트리아 개관
오스트리아하면 수많은 음악가와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떠오른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브람스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해 낸 국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약 8백 만명 정도로, 절대 다수가 카톨릭 교도라고 한다. 모든 면에서 넉넉하고 느긋하다는 인상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었다.
위 말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법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버스가 2시간 이상 운행하는 경우는 운전자가 2명 탑승, 교대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고 한다. 안전 운전을 위한 조치라 하겠다. 오랜 세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사는 우리와 달리 ‘안전 안전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동쪽 비엔나에서 서쪽 찰츠부르크행 고속도로로 사위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오스트리아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알프스산맥의 눈덮힌 산악지대도 많이 보였다. 동북쪽으로 평지와 완만한 경사 지대인데, 농지의 잘 정리 정돈된 모습과 곳곳에 펼쳐지는 노란 유채꽃 단지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부분의 인구는 동쪽에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서쪽 지역은 골짜기가 깊고 높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기저기 스키장도 많이 보였다. 서쪽으로 가면서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추억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