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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은 벚꽃의 계절…전국 꽃놀이 명소는
-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다. 전국이 벚꽃에 잠겨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다. 남에서 북상하는 벚꽃의 경로를 따라 축제 분위기도 고조된다. 벚꽃에 묻힌 향락객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그 발길 속에서 약간은 들떤 듯한 기대감 같은 것에도 빠져든다. 한국관광공사는 3월 말∼4월 초부터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전국 곳곳의 꽃놀이 명소를 28일 소개했다. 경남 창원 진해는 벚꽃 축제의 대명사다. 4월 1∼10일 진해군항제를 기점으로 중원로터리, 여좌천,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장복산 공원, 안민도로, 경화역, 제황산 공원, 해군사관학교 등 도시 곳곳에서 벚꽃이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서울에서는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호젓한 꽃길이 펼쳐진다. 가지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수양 벚꽃이 특징으로, 벚꽃 행사가 열리는 14∼20일엔 저녁 9시까지 연장 개장한다. 제주에서는 4월 초 벚꽃이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꽃잎이 크고 화사한 왕벚나무의 원산지답게 4∼6일 제주종합경기장 부근에서 열리는 제주왕벚꽃축제를 필두로 전농로, 제주대학교 진입로 등 곳곳에서 꽃망울이 터진다. 전남 순천에서는 송광사의 벚꽃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고속도로에서 송광사길로 접어들어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10㎞ 구간에서 꽃비가 쏟아진다. 송광사 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2㎞ 구간은 산책로로도 좋다. 전북 익산에도 곳곳에 벚꽃 명소가 숨겨져 있다. 보석박물관, 함벽정, 왕궁리 유적지, 송천마을, 함라산임도산책로 등이 가볼만 만하다. 충북에서는 충주호 주변을 따라 벚꽃이 줄지어 핀다. 4월 11∼13일 열리는 충주호봄나들이한마당을 전후해 푸른 물빛을 벚꽃이 새하얗게 물들인다. 18∼20일 열리는 수안보 온천제에서는 온천욕과 벚꽃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대구에서는 달성군 옥포로가 세갈래 벚꽃길로 변신한다. 두류공원과 화원유원지, 인흥마을, 마비정 벽화마을, 대구수목원, 옛 구암서원 등도 명소다. 강원 강릉 경포호는 호수 주변을 따라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 1년중 가장 아름다운 때로 꼽힌다.
- 2014-03-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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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기자 리포트]선조님들의 유적(遺蹟)을 찾아서
- 최근 동갑내기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난 뒤 한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과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려는지 한껏 흥이 올라 있었다. 청진동 피맛골을 출발해 종로3가에 이를 무렵 양측 도로변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구수한 멸치국물 맛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잔만 더하자는 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냄비우동을 안주삼아 회포를 나누다 자정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지만 어떻게 집을 찾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늦게까지 마신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아침나절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즐기며 여유 있는 게으름으로 창문 밖 멀리 비쳐지는 남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긴 호흡을 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언뜻 오래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작은바 람 하나가 떠올랐다. '삶에 대한 가치'였다. 이제껏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숨 가쁘게 매달려온 삶을 살아왔지만,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행복했고 즐거웠던 지난 수십 년간의 '직장'은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 늘 나와 함께 있었다. 자신은 누구인가? 한가문의 후손으로서 책임과 한가문의 장자으로서의 조상님들에 대한 도리, 한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자문(自問)해 보고 향후 후대(後代)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치와 보람이 담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가보(家寶)를 마련키로 마음먹었다. 며칠이 지난 오후 어느 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먼지 쌓인 서재를 정리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도서와 선친(先親)이 남겨주신 한지(韓紙)로 만들어진 해묵은 고서적과 더불어 누런색으로 찌든 표지의 몇 권의 족보가 한쪽 모서리에 꽂혀있음이 눈에 띄었다.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며 책장을 넘기자 선대 조상님들께서 기다렸다는 듯 반가움으로 맞이해 주시는 느낌이었다. 시조가 누구시며, 몇몇 대의 조부님의 함자(銜字), 업적, 몇 대손이라는 말들은 소싯적 부모님으로 부터 훈육삼아 들어온 터라 때가 되면 알려려니, 아니면 나중에 알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귀담아 듣지 않고 지나쳐 버리고, 3대 조상님만 봉향하여 온 터였다. 때문에 5대조 고조(高祖) 이상의 선조님들의 유적과 계위 마져 알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살아온 것이 현실이지만, 바꿔보면 자신에 대한 뿌리마져 알지 못하고 살았다는 자책과 더불어 이를 기회로 족보(族譜)와 유적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장서의 족보를 들여 보는 순간, 편집특성상 어려운 한문과 한자로 만들어지고, 여러 권과 도표로 연결된 세계(世系)연결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시조부터 직계선조 마저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책머리와 한 줄씩 부재만 읽고 해석함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됨을 알고, 우선 전권(全卷)의 편집형태를 살핀 후 장시간에 걸친 노력으로 성씨(姓氏)의 사성(賜姓)과 관향(貫鄕). 득성(得性)을 하게 된 역사와 유래, 그리고 더불어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님의 탄생연혁 및 선조님의 세계(世系). 파계(派系). 직계(直系). 문중(門中)을 우선 파악했다. 전국 각 지역에 흩어진 선조님들의 묘향(墓享), 유적(遺蹟), 업적(業績), 유작(遺作)을 알기 쉽게 요약 정리해 후손 계승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포(鮑) 한마리와 한잔의 술로나마 참배(參拜) 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먼저, 우리고향 영천의 유래와 성씨(姓氏), 사성(賜姓)에 대한 유래를 접하면서 절야화(切也火)라는 인상적인 생소한 단어가 있음에 궁금증을 더하게 되었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밤에 피어나는 야생화가 아닌가 싶었지만, 경북 영천시의 옛 신라시대 지역 군(郡)명이 변천되었음을 이번 족보탐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건치연혁(建置沿革) 본신라(本新羅) 절야화군(切也火郡)이였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임고(臨臯)로 개칭하였고, 고려초 도동(道同)과 임천(臨川) 이현(二縣)을 합해 영천(永川)으로 개칭하였으며, 역(域)은 고울부(高鬱府)라고 하였고, 조선조 태종13년에 영천군으로 이름을 정했다. 군(郡)명이 절야화, 임고, 영주(永州), 익양(益陽), 영양(永陽), 고울, 영천군에서 지금의 영천시로 변천돼 왔던 것. 우리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감회와 아울러 ○씨(氏)의 득성 유래와 시조님의 탄 생 연혁을 알게 되었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래를 살펴보면 ○씨(氏)의 선본(先本)은 신라 양산부(楊山府) 사람으로 유리왕 9년(서기 32년) 봄에 육부이름을 개칭하고 이로 인해 사성 할 때 양산부 대인에게 제일성 (第一姓)을 ○라하여 여기서 ○씨가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문헌이 전하지 못하였지만 이때 우리 ○○ ○씨(氏)의 시조가 탄생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아울러 문헌자료를 찾고 찾아 전국에 흩어진 선대 조상님들의 묘향(묘 소재지)을 찾았을 때는 안타까운 일면도 있었지만 당시의 족적(足跡)을 미루어 볼 때 나라를 위해 활약하신 흔적을 엿 볼 수 있었으며, 우리 조상님들께서 남기신 국보급 유물과 주요 명소에 위치한 정감 스러운 서원(書院)과 아름다운 고택(古宅) 풍경, 군신(君臣)간 충절이 담긴 유명 시작(詩作), 조선조 4대 병란 때 의사(義士)활동과 임진왜란의 구갑선도(龜甲船圖: 거북선설계도), 천체성좌(星座)를 연구한 혼천의(渾天 儀) 신기옥형(璿璣玉衡), 수군절제사를 겸임 후 좌군총제로서 경상도병 마절제사(慶尙道兵馬節制使)의 활약상의 유적을 찾았을 때 후손으로서 가슴 벅찬 감회를 느꼈다. 시조(2000년: 서기32) 부터에 현재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수록된 족보, 문헌상 방대한 유적을 찾기란 어려웠지만 6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앞서 서술한 선조님들의 득성 연혁, 사성유래, 시조-중시조 탄생, 세계.파계.세손연계, 유적을 우선 파악했다. 하지만 직계 선조님들에 대한 구체적인 세계 계위, 함자, 묘소재지, 향사일, 업적, 유적 등은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 2014-02-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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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협상전문가 키우는 ‘지식창업 요람’ 초석 다질 겁니다”
- 2011년 초, 건설회사 임원을 끝으로 30여 년 간의 직장생활을 갈무리하고 시작한 제2의 인생. 협상의 ‘파워’에 매력을 느껴 건설회사 임원에서 협상전문가로 변신, 이참에 아예 협상전략연구소까지 차린 남자가 있다. 예순 넷의 나이에 분쟁 해결과 협상 전문가, 협상 관련 강사로 활약 중인 1인 기업가 최점수(64) 씨다. 탄탄한 경험과 지식, 기술로 협상의 무대를 휘어잡는 그의 힘은 현업에서 쌓은 풍부한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10년간 쌓은 분쟁해결 경험이 ‘협상가’ 꿈 자양분 10년 전쯤이다. 최 씨가 협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건설현장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데 부도, 지분 다툼, 영업 등과 관련해 이익 다툼이 비일비재했다. 당시 임원이었던 그가 맡은 첫 ‘사건’은 산재사고가 난 유족과의 협상이었다. 안전사고로 직원이 죽었기 때문에 그 어느 협상보다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유족들로부터 욕도 많이 얻어먹었죠. 회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보상밖에 없는데 사내 규정상 정한 금액과 업계 관례를 고려해 적절한 수준으로 보상금액을 책정하는 게 어렵거든요.” 그는 우선 회사에서 정한 수준보다 낮은 금액을 유족에게 제시했다. 다각도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고 철저히 준비해 제게 유리한 쪽으로 대화를 끌어갔다. 처음엔 이게 기술(스킬, skill)인지 몰랐는데,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대응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런 것들이 다 협상의 스킬이더란다. 그가 협상에 빠져든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 상대방을 대할 때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긴 해요. 그러나 일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재미가 있고 결과가 좋으면 보람이 상당하더라고요. 제 성향과도 잘 맞았고요.” 산재사고로 인한 보상 협상, 기업간 콘소시엄 분쟁, 하도자 관련 분쟁, M&A 협상, 조사 관련 대처법, 구매 협상, 연봉 협상, 해고자 협상 등 최 씨는 재직 중 200건 이상의 각종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했다. M&A와 관련해 서원벨리골프클럽 인수, 한국도로공사 정보통신공단인수위와 같은 굵직한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다. ◆협상 콘텐츠의 비즈니스 상품화 최 씨는 10년간 해왔던 분쟁 해결, 이게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확신했다. 퇴직 후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돌입, ‘마이구루’라는 지식유통 업체에서 ‘지식창업’ 분야 교육프로그램을 한 달간 공부했다. 이곳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아웃풋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파워포인트도 마스터했다. 그리고는 2011년 5월, 6개월여 동안 창업 컨설팅과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서울시 장년창업센터에 입주했다.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받고 마케팅과 경영학 전문가에게 코칭을 받으면서 구체적으로 판매할 상품을 확정지었다. 그는 상품의 경쟁력을 확신했다. 협상은 일상에서 누구나 접하게 되며 비즈니스상에서는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기업에서 인사, 영업, 구매, 분쟁, 산재보상, 인수합병 등 협상할 대상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개입하는 단계에 이르면 소송비용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여러모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요. 분쟁이 생겼을 때 변호사가 아닌, 회사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역할이 사내에 존재해야 합니다. 기업 담당자에게 분쟁 해결과 협상에 대한 기술을 교육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승부할 상품이었습니다.” 그 해 9월에 자료 수집과 독서, 파워포인트 및 스토리텔링 작성 등의 준비를 거쳐 10월에는 콘텐츠 개발을 최종 완료, 곧바로 한국협상전략연구소를 오픈했다. 지식창업이라 별다른 창업 자금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콘텐츠를 구성할 정보를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공부에 투자했다. 한국협상전략연구소는 기업에 종사하는 해당 실무자로 하여금 스스로 분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교육시키는, 일종의 양성기관의 역할을 한다. 주요 대상은 기업의 법무·총무·영업·기획 담당자들이다. 수익 모델은 강연 수익이 주가 된다. 갈등과 문제가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조정하는 코칭도 병행한다. 협상의 정의, 원칙에 의한 협상, 협상 경험 나누기, 협상 태도 테스트, 협상 실습 등의 커리큘럼으로 짜여진 협상전문가 양성 교육프로그램은 5시간 분량으로 구성된다. 최 씨의 강의를 들은 이들은 한결같이 입심도 좋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니 귀에 쏙쏙 들러붙는다는 반응이다. 최 씨는 “우선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생활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건설회사를 다니면서 운 좋게 재건축 등에 대한 정보가 밝아 노후를 위한 재테크는 물론 연금 준비까지 다 마쳐놨단다. 그는 앞으로 기업에 협상 및 분쟁전문가가 상주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문기구 조직을 구상 중이다. “국내는 협상전문가들이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협상전략을 교육하는 기관도 대표적인 곳 1~2군데 정도이고요. 전문가를 키워 협상 분야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만드는 초석을 다지고 싶습니다.”
- 2014-02-07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