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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람 그 바람을 만나러 몽골에 가자
- 인천공항에서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까지는 비행기로 네 시간 남짓. 비행기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마음먹어볼 수 있는 피서지 몽골! 그 낯선 땅에 발을 딛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툭 치며 환영 인사를 던진 건 사람도 동물도 아닌 바람이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해봤지만 몽골의 바람은 아주 생소하게 느껴졌다. 초원의 상큼함 같기도 하고 동물의 썩은 가죽 냄새 같기도 한, 뭐라 한마디로 형용하기 힘든 태초의 냄새 같은 것이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세월에 걸쳐 지구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머물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했을 그런 바람이 지니고 있는 냄새. 그제야 난 깨달았다. 불과 네 시간 만에 와 닿은 곳은 대륙의 이편저편이 아니라 내가 살던 삶의 방식과 정반대의 삶이 있는 땅임을. 한여름 최적의 피서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몽골은 평균고도 1580m에 위치하며 5분의 1이 고비사막이다. 넓게 퍼져 있는 사막의 영향으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에 속한다. 이르면 9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4월까지 겨울이 계속되고 매우 춥기 때문에 7월과 8월 한여름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다. 여름 한낮의 평균기온은 16℃이고 밤엔 살짝 한기가 느껴질 정도.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쾌적한 휴양지를 찾고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비라도 내리면 파카를 꺼내 입고 밤새도록 불을 지펴도 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한반도 7.5배의 면적에 달하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인구는 고작 서울의 한 구에도 못 미치는 280만 명이 사는 곳.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해 바다라 불리는 호수 홉스굴까지 한 바퀴 돌아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2499km의 길고 험한 여정이다. 피서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에겐 맞지 않는 곳일 수도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몽골 여행은 바람에서 시작해서 바람으로 끝난다. 초원의 바람에서 시작해서 구릉의 바람으로, 구릉의 바람에서 시작해서 호수의 바람으로. 러시아,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초원과 구릉 외에 4000개에 달하는 호수와 강이 있는 대자연이 몽골이다. 그렇다고 대자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를 품은 에르덴조(Erdene Zuu) 사원, 간단(Gandan) 사원 같은 불교 사원, 칭기즈칸 기념관, 자이승 전망대, 이태준 공원 등 역사적 건물들과 화산, 협곡까지 다채로운 자연을 품고 있다. 지구상에 아직 이런 땅과 이런 유형의 삶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원시적이다. 실크로드와 칭기즈칸의 나라 기원전 13세기 초 칭기즈칸이 건설한 몽골 대제국은 ‘용감함’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나와 있듯 러시아와 중국, 동남아와 유럽, 중동 국가에 이르기까지 동서 문물교류에 큰 영향을 끼치며 실크로드를 열었다. 결코 멸망할 것 같지 않던 이 야생의 유목제국도 결국 막을 내리고 내륙 중앙부가 1688년 중국 청나라에 복속되어 ‘외몽골’로 불리다가 1911년 제1차 혁명과 1921년 제2차 혁명을 통해 독립을 이루게 된다. 고비사막을 주변으로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며 내몽골은 아직도 중국에 속해 있다. 몽골 여행 하면 대부분 울란바토르와 테를지를 중심으로 한 옛 몽골 제국으로의 여행을 말한다. 지금도 도시 한가운데서 전통 복장에 무공훈장을 단 노인을 볼 수 있는데 현대식 마트 앞 벤치에 앉아 먼 과거로 시선을 둔 그 모습이 왠지 모를 아련함을 자아낸다. 한국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마트 울란바토르 마트에는 한국 음식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 집 건너 한국 음식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에만 머무른다면 먹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몽골의 대표적 휴양지인 테를지에는 전통 가옥 게르를 호화롭게 개조한 호텔부터 유럽식 리조트까지 편리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말을 타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그러나 몽골까지 와서 이런 편리함만 만끽하고 간다면 진정 몽골을 여행했다 할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수만 마리의 양떼와 말떼들을 호령하는 거친 유목민의 삶을 제대로 체험하려면 몽골의 옛 수도 하르호린(Kharkhorin)을 지나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호숫가 차강노르와 푸른 진주라 불리는 홉스굴까지 적어도 열흘간의 유목생활을 체험해보길 권한다. 유목민 전통 천막 게르에서 잠들고, 삶은 양고기 허르헉을 먹고, 30도의 독한 칭기즈 보드카에 취해보는 것. 그리고 새벽에 깨어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대자연에 온몸과 마음을 맡겨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몽골 여행이다. 스타렉스와 초원 화장실 몽골 여행은 눈뜨면 4륜 구동차를 타고 온종일 초원 사이로 난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달리다가 아무 데서나 철퍼덕 앉아 도시락을 먹고 볼일도 수풀 사이로 찾아들어가 보는 일이다(아프리카에선 이를 ‘부시 토일렛’이라 표현하는데 몽골에선 초원 화장실쯤 되겠다). 처음엔 우산이나 옷으로 가리면서 불편해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익숙해지면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간혹 길 한가운데 간이화장실처럼 보이는 곳도 있는데 재밌는 것은 앞문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얼마나 귀한 대자연과의 교감인데 문으로 풍경을 굳이 가릴 필요가 있을까. 말과 양 외에 초원을 달리는 차는 딱 두 종류, 한국 차 스타렉스와 러시아 차 푸르공뿐이다. 편한 아스팔트길은 없고 대부분 협곡과 구릉을 번갈아 넘어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길이다. 그중에서도 차강노르에서 홉스굴까지 12시간이나 달려야 했던 비포장도로는 내 생애 가장 고단한 여정으로 기록될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풍경은 답답했던 가슴속을 한방에 뻥 뚫어줬다. 도로 곳곳엔 ‘어워’라는 이름의 파란색 천을 두른 돌무덤이 있었다. 샤머니즘의 강한 전통을 보여주는 어워의 돌 사이사이에는 음식과 돈이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도 이 어워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며 기도를 드렸다. 거친 비포장 길을 달리다 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차를 타고 가지만 말을 타고 가는 것처럼 끝없이 요동치던 길. 어이쿠, 어이쿠 비명을 지르다 나중엔 그마저 체념한 채 눈을 감아버렸다. 어쩌면 이 길을 가장 잘 만끽하는 방법은 칭기즈칸을 떠올리며 말 타고 달리는 상상을 해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옛 수도 하르호린에서 만난 에르덴조 사원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아우르기 위해 모든 종교를 허락하고 관대한 정책을 폈다. 그의 아내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옛 수도 하르호린의 폐허 위엔 1585년에 세워진 몽골 최초의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다. 바로 에르덴조 사원. 108개의 불탑으로 성벽과 같은 벽을 이루고 있어 한참을 걸어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광활하다. 사원 주변에서는 9세기경 투르크 기념비와 8세기경 위구르 왕국 수도의 폐허 등 역사적 유적도 만날 수 있다. 대륙 횡단용 캠핑카를 타고 이동하는 유럽의 단체 여행자들도 만날 수 있다. 어떻게 저들이 몽골 한 귀퉁이까지 왔을까 신기했지만 칭기즈칸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홉스굴의 비 내리던 밤과 차탄족 소녀 ‘푸른 진주’라 불리는, 바다 같은 호수 홉수굴 근처 타이가 숲에서 진정한 노마드로 불리는 차탄족을 만났다. 전 세계에 약 200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차탄족은 순록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영하 40℃의 날씨에도 순록의 등에서 잠을 잘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부동산이 부의 상징이지만 이들 유목민들에겐 순록의 숫자가 부의 상징이다. 오르츠라 불리는 천막은 게르와 다르게 생겼는데 에스키모족의 원추형 천막 티피와 닮았다. 여름엔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거나, 손수 만든 전통 장신구와 사탕, 꿀, 옷을 팔기도 한다. 전통 복장을 다소곳이 차려입은 차탄족 소녀의 수줍은 미소가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다. 단순한 삶을 보여주는 땅 전통 음식 허르헉을 끓이는 강인한 인상의 몽골 여인. 밤새도록 난롯불이 꺼지지 않도록 두세 시간 간격으로 야크 똥을 넣어주던 무뚝뚝한 아들. 평생 번 돈을 주고 산 스타렉스를 애지중지 닦으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하던 무뚝뚝한 아트레 아저씨. 그들의 웃음은 요란하지 않았고 그만큼 귀한 감동을 주었다. 노을이 지고 칠흑 같은 밤이 오자 별이 쏟아지더니 어느새 여명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가는 풍경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몇 곳이나 될까? 짜릿한 볼거리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몽골 여행이 허무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하루 종일 초원과 구릉을 달려 게르에 도착한 뒤 작은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는 일, 게르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일, 바람의 소리를 듣는 일,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못해본 경험을 하면 그만큼 인생이 레벨업되는 것”이라던 어느 일본 영화의 대사처럼 한 번쯤은 복잡한 삶의 시간을 멈추고 단순한 야생의 삶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한 여행지로서 몽골은 최고의 땅이 아닐 수 없다.
- 2018-06-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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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성군 시골에 사는 윤태홍·이숙연 부부
- 어딜 가도 꽃잔치가 한창이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송이들 우르르 일으켜 세우는 봄의 힘. 그걸 청춘이라 부른다. 자연의 청춘은 연거푸 돌아온다.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끝이다. 조물주의 디자인이 애초에 그렇다. 청춘은 전생처럼 이미 아득하게 저물었다. 바야흐로 생애의 가을에 접어든 사람에겐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을 절정으로 가늠하는 사람에겐 여전한 봄. 싱싱한 태도와 관점이 청춘의 사촌인 회춘(回春)을 데려다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이란 흥미진진한 극장! 신을 발견했다. 새파랗던 청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어느새 어중간한 중늙은이로 변해버린 게 아닌가. 흉포한 세월의 간계에 부질없는 삿대질을 해대는 대신, 그는 올 것이 왔다는 투로 태연히 응하기로 했다. 과학교사였던 그에겐 매사 과학적 사고를 하는 버릇이 있다지. 어차피 거역할 수 없는 숙명엔 대번에 순응하자는 게 그의 과학적 인생관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인색한 조물주가 주입한 숙명에 짓눌리지 않는 길이라는 지론 또한 그의 과학이렷다. 윤 씨는 교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모종의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 모종의 일이란 반전 평화운동이나 조국의 통일운동 같은 웅장한 사업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내밀한 영혼과 관련됐을 수도 있을 그 모종의 일이란 귀촌이었다. 귀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더란다. 사실 그건 오크통에 숙성시킨 와인처럼 그가 오랫동안 무르익힌 숙원이었다. 적당한 때가 오면 시골에 들어가 살겠다는 포부. 귀촌으로 인생 가을을 회춘의 계절로 누리겠노라는 열망. 그는 포부와 열망 자체가 믿을 만한 길잡이인 걸 알아차리고 귀촌을 단행했다. 미련도 불안도 없이 사표를 던졌다. 마치 담 밖에서 부르는 연인의 음성에 이끌려 집을 나서는 사람처럼 스윽 도시를 벗어났다. “남들이 뜯어말리더라고요. 그 어중간한 나이에 시골 가서 무슨 재미를 보겠느냐, 웬 생고생을 자청하느냐, 그런 소리들을 했어요. 그러나 은퇴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왔던 저에겐 귀촌이 움직일 수 없는 답이자 길이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귀촌에 매력을 느끼고 모색해왔으니까. 다만 타이밍을 기다렸을 뿐인데, 예순 나이에 접어들 즈음, 이제 때가 왔다, 더 미룰 수 없다, 그런 판단을 했죠.” “평생 생활고에 쫓기다 옥살이까지 했던 세르반테스. 그가 ‘돈키호테’를 써 성공한 게 예순 무렵이었죠.” “저의 꿈은 소박해요. 일테면,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다, 그런 거….” “선생께서 미리 간파한 귀촌의 매력 요소란 어떤 것들이죠?” “일단은 제 취향과 잘 맞을 거라 봤어요. 딱히 도시에 환멸 같은 걸 느끼진 않았지만, 마음은 자주 시골로 흘러갔어요.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기르고, 앞산 뒷산을 산책하고, 그런 한적한 생활에 대한 선망이 많았어요. 생활비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점에도 호감을 느꼈어요. 시골의 싼 땅값도 매력 요소라 봤고요. 이래저래 귀촌으로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한결 생동감 넘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요.” “살터를 잡는 일부터 착수했겠죠?” “광주 인근 나주나 담양에 터전을 마련하려고 많이 돌아다녔지만 마땅치 않았어요. 우연히 이곳 이 마을을 발견한 건 행운입니다. 땅값도 쌌어요. 광주의 아파트 한 채 값이면 땅 사고 집짓고, 그럭저럭 충분하리라는 예상대로,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었죠.” 원주민보다 귀촌 가구가 더 많은 마을 귀촌을 작심한 이후 불과 반년 안짝 만에 집짓기까지 마치고 이사를 했다. 윤태홍 씨의 아내 이숙연(57) 씨가 동지애를 발휘해 한껏 조력한 성과였다지. 이 씨 역시 교사 출신이다. 영어를 가르쳤었다. 부부 교사였으니 연금을 합산하면 쏠쏠하리라. 부부가 보유한 나름의 물적 토대는 귀촌의 돛을 미는 순풍 역할을 했을 테다. 500여 평 부지를 사 번듯한 2층집을 짓는 데엔 처음의 예상대로 아파트 한 채 값이 들어갔단다. 이후 집 뒤편 산자락에 있는 묵정밭을 추가로 사들였다. 날 보러 와요, 라고 어여삐 노래한다. 윤 씨네 집 둘레에 피어난 봄꽃들이 말이다. 봄 아니고 꽃 아니더라도 헌칠한 마을이다. 높고 낮은 산들이 어깨를 겯고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바탕 춤을 추어대는 그 복판에, 혹은 꽃잎들 환하게 벌어진 그 안통 화심(花心) 부위에 마을이 들어앉았다. 저 아래 초록빛 호수 위로는 아지랑이 아롱거린다. 전쟁이 터지더라도 감쪽같이 무사할 듯 외진 맛이 있는 반면, 볕 바른 양달 일색이라 으슥한 구석 없이 포근하다. 대를 이은 농투성이로 살았던 원주민들은 대부분 도시로 흩어져 나갔다. 바야흐로 귀촌·귀농 전성시대라 해야 하나. 지금 이 마을을 이룬 24가구 중 70%가 도시에서 유입된 귀촌 가구들이라는 게 아닌가. 어떤 이들이지? “저와 같은 퇴직자들, 자영업을 하다 들어온 사람, 예술인, 광주로 출퇴근하는 건설업자 등 다양합니다.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아 텃세, 그런 건 없어요. 원주민들 자체가 순후하지만, 다들 편하게 어울려 지냅니다.” “이사 뒤 가장 먼저 공들여 한 일은 무엇이었죠?” “제가 소나무를 무척 좋아합니다. 광주 아파트에 살 때도 화분에 소나무를 길렀어요. 소나무를 바라보면 왜 즐거움이 샘솟을까, 그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그놈들을 애호했어요. 정원 둘레에 소나무를 심어 가꾸고 싶다는 염원은 사실 귀촌 동기에 속합니다. 해서, 공들여 소나무부터 심기 시작했어요.” “소나무로 뜰을 둘렀으니 솔향이 은은할 테고, 달빛이 솔가지를 타고 흐를 테고, 수시로 운치를 즐기시겠다.” “소나무뿐일까. 모든 자연 환경이 아름답죠. 그러나 제가 풍경을 즐기는 일에 능하진 못합니다. 낭만적인 성향의 인물은 전혀 아니라서.(웃음)” “그럼 어떤 성향?” “흠. 원만한 성품이랄까? 눈앞에 주어진 일에 단순하게 매달리는 기질이고요, 부지런히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성격이기도 하죠. 딱히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찾아 열심히 매달리곤 했어요. 귀촌 이후 아로니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도 그런 성격 탓이죠.” 윤 씨는 800평 규모의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다. 이왕에 사들인 널따란 묵정밭을 그냥 놀리기란 대지의 여신에게 결례되는 일이거니와, 시골의 적막 속에 찻물이나 마시며 도 닦는 사람처럼 고요하게 눌러앉아 지내기란 고문처럼 고역스러워서였겠지. “농원을 보여주실래요?”라고 부탁하자 나른하던 그의 표정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강박과 속박 없이 맘껏 즐기는 일상 4월의 아로니아나무들은 미처 깨어나지 못해 둔하다. 윤 씨 홀로 살뜰한 눈매로 나무의 싹눈을 이리 쳐다보고 저리 들여다보고, 마치 현미경으로 박테리아균의 신비한 동향을 살피듯 진지하다. 귀촌 1년 만에 농부로 변신한 그는 3년여가 더 흐른 현재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텃밭농사도 그렇고 농사라는 거 진짜 재미있습디다. 아로니아 농사에 관한 한 별로 어려울 것도 없더라고요. 워낙 강한 작물이라서요. 병충해에 강하거든요. 극단적으로 농약 살포를 자제하더라도 농사를 망치진 않아요.” “수익성은?” “하향세가 뚜렷해요. 재배 농가가 급증해서죠. 재작년엔 2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만 작년엔 반 토막 났어요. 작물 전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체리나 굵은 대추로 바꿀까 해요.” “선생은 과학을 전공했어요. 농사에도 과학을 적용하시나?” “농사도 응용과학이지 않겠어요? 그 점에서 제겐 농사가 유리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고집스럽게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없는 처신, 그리고 자기합리화입니다. 그런 쓸모없는 것들을 경계하고, 과학적인 사고에 따른 주도면밀함과 준비성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고 봐요. 자랑은 아니지만, 제게 몸에 밴 과학적 실천은 있다고 봅니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다탁에 마주앉는다. 그의 아내가 주방에서 다과를 가져와 탁자에 놓고 원래의 자리였던 저편 의자에 다시 앉는다. 말수가 드물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거동. 묵언수행을 하는 도류처럼, 식물처럼, 시종을 일관해서 고요하다. 말보다 내밀한 침묵의 웅변이란 게 있겠지. 세상에서 할 말을 이미 다해버렸거나, 말이 아닌 은근한 눈빛으로 부부애를 나누기에 숙달됐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부부간에 언쟁이라도 있었나? 흔하디흔한 게 부부싸움이지 않던가. 그러나 윤 씨 말하길, “우리에겐 그 흔한 부부싸움이 아예 없다”고 한다. “부부싸움이 되질 않아요. 왜냐? 집사람이 전혀 대꾸를 안 하거든요.(웃음)” “저런! 남편을 숫제 포기하셨을까?” “대꾸를 하거나 제동을 걸어봤자 먹히지 않아서겠죠. 때로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섭섭한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천성이 그래요. 소리 없이 남편을 도와주고 믿어주고 챙겨주고, 숨 쉬는 공기처럼 제겐 고마운 존재죠. 제가 그걸 모를 정도의 멍청이는 아닙니다.(웃음)” “귀촌이라는 급격히 바뀐 환경에 남편은 빠르게 적응하는 반면, 아내는 적응이 더딘 경우가 드물지 않죠.” “배려가 필요하겠죠. 상대의 성향을 존중하는 자세 말이죠. 저는 제법 활달한 편입니다. 외부 활동이 잦아요. 반면 아내는 이웃의 단짝 친구와 어울리거나, 집에서 혼자 조용히 머무는 걸 즐겨요. 그런 아내를 위해 도서관엘 자주 들러 소설책들을 빌려다 줍니다.” 배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메마른 공유지를 적시는 단비. 윤 씨의 성정은 담백함이 넘쳐 무색무취에 가깝다. 그러나 아내에게 쓰는 마음은 나긋하거나 촉촉하겠지. 부부가 불화하고서도, 아내를 고려하지 않고서도, 시골생활을 무사히 누릴 묘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귀촌 4년 차. 윤 씨는 더 바빠졌다. 오라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졌다. 그는 이걸 생동하는 삶의 징표로 본다. “제가 일찌감치 서예와 사진에 열을 냈어요. 이젠 꽤 조예가 생기고 동호인 모임들에도 빠지질 않아요. 귀촌 공부도 여전합니다. 이미 예전에 집짓기 학교나 각종 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섭렵했지만 지금도 열심히 찾아다녀요. 한문 고전 강독 모임에도 참여해요. 때론 몸이 둘이라도 부족할 지경이에요. 귀촌에 만족합니다. 강박과 속박 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비로소 맘껏 즐기며 사니까. 이보다 나은 삶이 어디 있을꼬.” 귀촌으로 자유를 얻었다는 얘기다. 상처가 없는 지평, 자유를.
- 2018-05-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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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관람했다. 오랜 시간 공연되어왔을 텐데도 오늘 공연에도 큰 객석이 꽉 차는 성황을 이루었다. 어린이 관객도 꽤 많은 건 아마 어린 빌리 엘리어트의 유명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빌리 엘리어트를 뮤지컬로 보게 되었을 때 영화로 먼저 이 작품을 만났던 필자는 어떻게 영화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고 연출했을지 매우 기대되었다. 영화로 봤을 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뮤지컬 본토에서 우리나라 소년 빌리 엘리어트를 발탁하려는 오디션 담당자가 내한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소년들이 오디션에 참가해 피나는 연습을 하며 재능을 심사받았고, 그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오디션 과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현재는 적합해 보이는 지망생이지만 앞으로의 변성기 등을 고려할 때 재능이 출중해 보이는 아이가 오디션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슬퍼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오늘의 주인공이 그 소년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상당했다. 멋진 아이는 뮤지컬 내내 날아다녔다. 영화로 이미 잘 아는 내용이라 그만큼의 기대를 하고 관람을 했다. 대작 뮤지컬답게 웅장한 사운드와 배우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연극이 시작되었다. 캐스팅을 모르고 왔는데 아버지로 김갑수 씨가 나왔고 할머니 역을 박정자 씨가 맡아 매우 반가웠다.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어수선한 영국의 한 작은 마을 탄광촌 이야기다. 탄광촌의 광부들은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하며 그들의 권리를 지키려 했다. 주인공 빌리는 몇 년 전 엄마를 잃고 광부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할머니와 사는 11세 소년이다. 과거에 권투선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권투를 강요한다. 그러나 어린 빌리는 권투보다는 발레에 관심이 많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본 발레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빌리는 발레리나의 꿈을 꾸는데 이를 안 아버지가 심한 꾸지람을 한다. 아버지는 강한 사나이로 크려면 권투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레 선생님은 빌리를 런던 왕립발레학교에 보내고 싶어 오디션을 추천한다. 그리고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발레 연습을 하고 있는 빌리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들만큼은 이 가난한 탄광 마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디션을 허락한다. 그리고 빌리는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준 돈을 들고 런던으로 간다. 뮤지컬에서는 옷걸이에 걸린 옷들의 댄스 등 볼 만한 장면이 많았다. 탭댄스의 경쾌한 리듬도 관객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필자는 감동의 눈물을 쏟게 했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다렸다. 영화는 탄광촌에서 영국 최고의 왕립발레단에 들어가 크게 성장한 빌리가 어려운 살림에도 빌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뒷받침했던 아버지와 형을 공연에 초대한다. 공연장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가득했다. 허름한 모습의 아버지와 형은 머뭇거리며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무대 뒤에서 아버지와 형을 발견한 빌리는 음악 ‘백조의 호수’에 맞춰 무대로 날아오르며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호흡이 멈춰질 정도로 멋진 광경이었다. 비리비리했던 어린 시절의 빌리는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해준 아버지와 형에게 보답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그 장면에서 필자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딱 그 장면을 기대했는데 뮤지컬에서는 그냥 왕립학교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좀 아쉬웠다. 하지만 매우 경쾌한 장면이 많아 재미있게 관람했다. 어린 빌리를 연기한 아이는 정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멋진 배우가 될 것으로 기대되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 2018-04-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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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걸어도 좋은 ‘서울 산책길 50’
- 북촌 8경길, 여의도생태순환길, 서리풀공원길 등 서울 시내에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아졌다. 그중 어디를 걸어도 좋지만, 원하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면 더욱 환영이다. 서울 곳곳 50가지 걷기 코스의 지도, 소요 시간, 여행 정보 등을 비롯해 길의 역사와 문화 정보까지 알차게 담은 ‘서울 산책길 50’을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서울 산책길 50’ 최미선·신석교 저, 넥서스BOOKS 5가지 테마로 떠나는 걷기 여행 야트막한 산자락 숲길, 도시와 숲을 잇는 공원&숲길, 물길 따라 걷는 한강&천변길, 재미있는 골목길, 걸으며 배우는 역사문화길 등 5가지 테마로 나눠 50가지 길을 소개한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펼쳐 익숙한 길이나 궁금했던 길부터 찾아봐도 괜찮다. 또는 책을 후루룩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곳부터 읽어도 좋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125×205mm)로 평상시 이곳저곳 걸으며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책 표지 양 날개를 펼치면 앞장에는 서울시 지도가, 뒷장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나와 서울 주요 걷기 코스의 위치와 교통편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걷기 코스 정보와 약도를 한눈에 책에서 각각의 걷기 코스를 소개하는 첫 장에는 코스의 이름과 길에 대한 역사와 문화 정보, 대표 사진이 실려 있다. 바로 옆 장에는 걷는 데 꼭 필요한 이정표를 중심으로 전체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한 약도가 나온다. 그 아래 걷는 거리(km)와 소요 시간, 출발점을 상세하게 적어 걷기 전 미리 시간과 거리 파악이 가능하다. 더불어 길 주변 맛집과 그밖에 정보, 참고 사항 등을 친절하게 담았다. 이 두 페이지에 담긴 정보만으로도 코스의 풍경과 진행 방향, 난이도, 특징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구간마다 거리와 사진을 알차게 출발 지점부터 목표 지점까지 코스를 세분화해 각각 이정표로 구분하고, 순서대로 번호를 달았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 거리를 미터(m) 단위로 표시해 길을 걸으며 쉬는 구간이나 중간 목표 지점을 계획성 있게 짤 수 있다. 이정표마다 정보 글과 함께 그곳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 사진을 넣어 코스를 헤매지 않도록 돕는다. 그밖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적에 대한 설명과 이용 방법, 요금 등을 담아 도보여행을 하는 데 더욱 유익하고 편리하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1 책 속의 맛집 ‘남산공원 둘레길’은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출발해 명동역까지 총 8.2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 N서울타워를 중심으로 남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둘레길을 빠져나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부터 명동역까지 이어진 만화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향하기 약 400m 전 산채비빔밥과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목멱산방’이 나온다. 코스 거리와 시간을 조절해 식사 때에 맞춰 방문해보면 좋겠다. #plus 2 책 속의 영화 ‘홍제동 개미마을’은 6·25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1980년대,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골목마다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등장한 벽화를 찾아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plus 3 책 속의 미술관 석촌호수 산책로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과 철쭉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석촌호수 꽃길을 걷다가 곰말다리를 지나 몽촌토성길을 향하다 보면 올림픽공원 내 자리 잡은 소마미술관을 발견할 수 있다. 43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녹지와 어우러진 소마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를 이용해 자연친화적인 외관을 자랑한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봄꽃이 만발하는 4월에는 ‘작가 재조명 展-황창배, 유쾌한 창작의 장막’을 관람할 수 있다(5월 20일까지, 회화·드로잉·영상 등 200여 점 전시).
- 2018-04-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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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자고, 소식하고, 매일 걷자
-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하는 대답이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빨리 늙고, 병들기 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수면은 부족하고, 칼로리만 높고 영양이 부족한 식사를 하면서,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나쁜 습관을 갖고 살아간다. 이런 습관을 버려야 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 잠이 보약 누구나 수면 타이밍이 따로 있다. 그래서 수면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 한다. 잠잘 시간을 놓치면 잠이 안 와 밤새 뒤척여야 한다. 필자도 잠잘 시간을 가끔 놓칠 때가 있는데, 잠이 부족하면 하루 종일 눈이 게슴츠레하고 졸린 느낌이 들면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기억력도 흐려지고, 피곤해 만사가 귀찮아진다. 이런 상태가 되면 활력이 떨어져 순간적으로 늙는다. 식사는 당뇨 환자처럼 “건강한 식사를 하려면, 일반인도 당뇨 환자처럼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기, 생선, 채소, 과일, 유제품을 골고루 알맞게 먹어야 하고, 소식을 해야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고기, 생선 종류는 전혀 안 먹으려 한다. 지나치게 거부하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지고 빨리 늙는다. 필자의 경우,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날이면 혼자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데, 상 차리기가 귀찮아서 맘에 드는 반찬 한두 가지만 꺼내놓고 먹는다. 이럴 때는 아무래도 밥을 더 많이 먹게 된다. 전에는 사람들이 필자를 5~6년 정도 더 젊게 봐주곤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나이보다 더 많이 보는 경우도 있다. 나쁜 식습관 때문에 겉늙어버렸다는 증거다. 매일 30분 걷기 나이가 들수록 움직이기가 귀찮다. 그런데 ‘매일 30분 걷기’를 해야 건강하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걷기만 잘해도 웬만한 병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사람들은 왜 안 할까? 그냥 걷기만 해도 되는 것을! 필자도 움직이기를 매우 싫어한다. 걷기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당뇨 환자의 대열에 낀 것이다. 담당 의사가 ‘소식과 운동’ 처방을 내려줬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혼자 다니기는 싫다. 그렇다고 시간 맞춰 같이 다닐 만한 사람도 없다. 생각다 못해 ‘둘레길 걷기 커뮤니티’에 들기로 했다. 혼자 걷는 것은 귀찮거나 지루하고 싫증나면 그만두기 쉽지만, 단체가 함께 움직이면 한 번이라도 더 참석하게 되고, 더 많이 걸을 수 있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 몇 번은 힘들어서 그만 다닐까 하는 유혹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커뮤니티 안에서 걷는 시간이 편하고 즐겁다. 시니어는 조금만 높은 산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면, 무릎에 무리가 가서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고 한다. 걷기의 왕초보인 필자가 걸어보니까, 평지나 경사도가 낮은 길이 걷기에 적당하다. 남산이나 석촌호수, 서울대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 올림픽공원 같은 공원이 걷기에 좋고, 궁궐 나들이도 좋다. 그리고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둘레길을 정해놓고 매일 30분씩 걷는 것도 건강하게 젊음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건강에 안 좋은 습관은 모두 털어버리고, 젊고 활기차게 살았으면 좋겠다.
- 2018-03-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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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나들이 추천 베스트 3
-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었다. 몇십 년 만의 강추위가 엄습했고 제주도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도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사람들은 맹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셀리가 읊었던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시 구절처럼 봄이 다가왔다. 이제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봄을 만끽하며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다. 메마른 대지 위에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꽃의 정원으로 떠나보자. 제1추천지 : 접근성이 좋은 서울대공원에서 테마별로 즐거움 만끽하기 필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대공원을 한때 자녀들을 데리고 갔던 동물원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서울대공원은 동물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첫째는 동물원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호랑이, 사자 등 맹수와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희귀동물로 가득하다. 세계 각국의 동물들을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동물의 고향과 각각의 성향과 습성 등을 살펴보고 관찰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1984년 5월 1일 개장한 이래 29개 동물 막사에 332종 2700마리의 동물이 있다. 둘째는 식물원이다. 진귀한 꽃들이 많다. 봄꽃들의 화려한 자태를 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꽃향기는 덤이다. 봄은 꽃들의 잔치가 화려하게 열리는 계절이다. 2017년 5월에는 600여 종의 식충식물로 꾸며진 식충식물관도 개관을 했다. 식충식물은 향, 색, 꿀 등으로 먹이를 유인하는데 끈끈이형, 포획형, 흡입형, 유도형 등이 있다. 날카로운 덫으로 순식간에 파리를 낚아채는 파리지옥, 끈끈이주걱, 벌레잡이제비꽃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셋째는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힐링할 수 있는 좋은 코스다. 맑은 공기와 꽃향기를 맡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봄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장소다. 호수 둘레길, 동물원 둘레길, 숲속 愛 힐링 코스가 있다. 호수 둘레길은 분수대 광장에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로여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 가볍게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며 잠깐 커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다. 동물원 둘레길은 제법 길다. 청계산 자락인 이 길은 2013년도 서울시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단풍길 81개소’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한 곳이다. 서울대공원을 추천한 이유는 동물원뿐만 아니라 테마별로 즐길거리가 있고 사계절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봄에는 나들이하기 좋은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벚꽃 축제, 튤립 축제, 장미 축제도 열려 축제의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제2의 추천지 : 고창 청보리밭 청보리밭 축제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열린다. 봄을 꽃의 계절로만 보는 것은 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푸른 언덕 위에 펼쳐진 청보리의 싱싱함을 느끼고 풋풋한 내음을 맡다 보면 젊음의 에너지가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도깨비’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해마다 수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청보리밭을 걸으며 청보리 향에 취하다 보면 도시의 소음에 지친 심신이 어느새 맑아진다. 또한 이곳에서는 푸른 청보리밭과 함께 유채꽃도 즐길 수 있다.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유채꽃의 샛노란 자태가 눈부실 정도다. 고창 청보리밭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곳과 함께 가까운 곳에 있는 선운사 동백꽃을 함께 볼 수 있어서다. 또 먹거리가 풍부하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시간을 내어 청보리밭을 거닐고 선운사에 들러 동백꽃까지 감상한다면 시간과 경비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는 오래된 장어 요리집도 있다. 제3의 추천지 : 수안보 벚꽃 축제와 온천 축제 수안보는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온천 지구다.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태조 왕건과 숙종은 물론 현대의 역대 대통령들도 즐겨 찾았던 곳이다. 53℃의 적당한 수온과 각종 미네랄까지 포함돼 있어 장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매년 4월 중순 벚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온천 축제와 벚꽃 축제가 함께 열려 온천욕도 하고 벚꽃까지 즐길 수 있다. 천변으로 길게 늘어선 벚꽃길은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아름드리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사하게 핀 벚꽃길을 걷노라면 향기는 물론 눈꽃을 맞으며 황홀감에 젖어들게 된다. 행사기간에는 행진 퍼레이드, 각종 축하공연, 이 고장 명물인 꿩고기 시식회도 열린다. 다채로운 볼거리와 힐링온천 그리고 아름다운 벚꽃이 더욱 풍요로운 봄의 축제를 선사한다. 벚꽃 축제, 온천 축제가 열리는 수안보는 전국 어디에서든 승용차로 오기 적당한 거리에 있다. 문경 옛길을 걸으며 등산도 할 수 있다. 30년 전통의 꿩 요리가 유명하며 올갱이 해장국, 칡냉면, 물만두 전골집 등 맛집도 많아 식도락을 느끼기에도 제격이다.
- 2018-03-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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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농대 교양학과 교수님들
- 초등학교 친구인 옥자가 자신이 근무하던 서울대학교 농대 교양학과 사무실의 사환자리를 필자에게 물려주었다. 기회를 준 옥자가 참으로 고마웠다. 필자가 근무하던 자동차 노조 사무실은 한 달 봉급이 5000원이었지만 농대는 절반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그곳에 더 있다가는 숨통이 막혀버릴 것 같았기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인생은 선택이다.' 단 하루를 살아도 맑은 공기를 나눠 마실 수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는 진흙탕에서도 살 수 있는 미꾸라지가 결코 아니었다. 물이 탁해지면 금방 숨이 끊어져버리고 마는 은어였다. 농대는 야학 시절 음악회나 연극이 있을 때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다. 농대 캠퍼스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그곳에 근무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뛸 듯이 기뻤다. 마음속에 ‘농대 교수님들은 필자가 그리도 좋아하는 서둔 야학 선생님들의 선생님들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조건 교수님들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교양학과 교수님들은 한 분 한 분이 참으로 학구적이고 매너가 부드러운 신사들이었다. 필자에게도 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교양학과 과장님은 영어를 담당하신 조성지 교수님이었다. 키가 크고 체구가 당당하시며 혈색이 좋으신 조 선생님은 필자가 붙여드린 ‘영국 신사’라는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인간성까지 좋으신 조 선생님은 흐트러진 구석을 절대로 보이지 않았다. 학자로서 교재연구를 착실히 하면서도 글쓰기를 즐겨 생활수필을 써서 신동아 등의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원래 열렬한 기독교인이었으나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조 선생님은 ‘가톨릭이야말로 진짜 종교다’라고 역설하시곤 했다. 고향이 이북인 조 선생님은 근검절약의 표본이시기도 했다. 구두 뒤축이 다 닳으면 왼쪽과 오른쪽 구두의 굽을 바꿔 달아서 신으시는 등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절대로 지출을 하지 않았다. 필자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는 1원짜리로 세어서 왕복 14원을 주실 때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체구 큰 남자 어른이 잘아도 너무 잘다’라는 생각도 했지만 근검절약하시는 모습을 늘 보면서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절약하고 사셔서 그런지 자제분들을 꽤 많이 두었음에도 모두 대학교를 보냈다. 점심에는 주로 라면을 드셨다. 필자는 라면을 끓여드리곤 했다. 뚱뚱하신 체구에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드시는 모습을 뵙기가 안타까워 옆에서 부채질을 해드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사양하시다가도 필자가 고집을 부리면서 부채질을 해드리면 어린애같이 좋아하셨다. "내가 애란이 덕분에 너무 호강한다." 고교 시절, 필자는 적어도 세계문학전집만큼은 다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농대 도서관과 학교에서 책을 빌려다 놓고 틈만 나면 책 속에 빠져 있곤 했다. 그때 조 선생님이 넌지시 지적해주셨다. "애란아, 책은 그만 보고 공부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니?" 그날 밖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점심식사를 하신 조 선생님이 싱글벙글 웃으시며 들어오더니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며 말씀하셨다. “이거 우리 약혼 시계야.“ 껄껄 웃으시며 시티즌 손목시계를 필자 손목에 맞게 조절해서 채워주셨다. 60대 노교수님 얼굴에 어린애같은 순진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 차보는 손목시계의 차가운 감촉이 퍽 신선한 느낌으로 와 닿았다. 시계는 얼마 안 가 고장이 났지만 조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만은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꼭 베일을 쓴 신부 같네.” 필자가 근무하는 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다. 사무실 탁자에 언제나 꽃을 꽂아 놓고 싶었으나 너무 가난했기에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화원에서 흰 국화와 아스파라가스를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커피 병에다 정성껏 꽂아놓았더니 교수님들이 즐거워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교양학과 교수님들은 대개 인품이 훌륭하셨다. 그중에서도 선하신 데다 겸양의 미덕까지 갖춘 이상철 철학 교수님은 철저한 학자이셨다. 이 교수님은 앉으나 서나 책만 봤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눈을 혹사시켰기에 그즈음 의사가 처방을 내리기를 “책을 그만 봐야 한다. 안 그러면 시력을 아주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했다. 교수님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분은 책을 안 읽고 살 수 없는 분이셨다. 차라리 밥을 먹지 않는 게 그보다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좋은 눈을 갖고도 책 한 권 읽지 않고 방탕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의 눈은 왜 나쁜 것일까. 안타까웠다. 이 교수님은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백면서생인 데다가 세속적인 영달도 바라지 않는 듯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학자 타입의 남자였다. 독신주의자이셨던 교수님을 보면서 막연하게 이런 분 뒷바라지를 하며 생을 보내는 것도 행복하고도 보람 있는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어 교수님은 릴케의 시 ‘가을날의 기도’를 번역하신 송영택 시인이었다. 배가 튀어나온 송 선생님은 흘러내리는 허리띠를 연신 치켜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날렵한 몸매에 순수한 눈빛을 가진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고 있던 필자에게 배 나온 시인은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가장 젊은 국어과 홍윤표 교수님은 정의감과 의협심이 투철하신 분이었다. 순수와 열정을 갖춘, 날카로운 지성과 달콤한 감성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교수님은 필자만 보면 “이빨 두 개 내놔라, 이빨 두 개 내놔” 하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필자 이름이 ‘배비장전’에 나오는 기생 애랑과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악의 없는 농담에 한바탕 웃곤 했다. 교수님의 아버님은 평소에 “사람을 믿어라, 사람은 근본적으로 착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시 돈으로 어마어마한 3000만 원(?)인가를 사기당한 후부터는 “사람을 믿지 말아라”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교수님은 사람을 믿고 싶고, 믿을 것이라고 하셨다. 천사가 따로 없었다. 필자 눈에 비친 교수님은 천사 같은 분이었다. 안경 쓴 남자 천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양학과 사무실이 있던 농대 신관은 가운데가 사각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잔디가 파랗게 심어져 있었다. 늦은 봄이면 초록색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소담스럽게 환히 피어 있어서 너무도 아름다웠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아침마다 방긋 웃던 샛노란 민들레의 미소가 필자에게 행복감을 듬뿍 안겨주곤 했다. 그런데 5월 어느 날 아침,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본 필자는 참담해졌다. 어제까지 피어 있었던 민들레들이 모두 날카로운 낫에 베어져서 한쪽에 모아져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베어져버린 민들레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베어진 민들레들이 마치 여인네의 퇴색한 옷자락 같아요.” 다른 교수님들도 있었지만 특별히 홍 교수님께 인정을 받고 싶었다. 필자의 계산이 들어맞은 것인지 교수님께서 감탄했다. “야! 박 양 표현력이 대단하구만” 따가운 햇볕에 지친 나무들이 ‘자울자울’ 졸고 있는 듯한 어느 날 오후였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홍 교수님과 같이 서호 둑을 거닐었다. 햇살이 온 천지에 내려앉아 눈이 부셨고 호수의 잔물결은 가장자리에 박혀 있는 돌들을 가볍게 쓰다듬고 있었다. "지방에 산재해 있는 비어 중에 배를 가리키는 비어로 ’배때기‘, ’배때지‘ 등이 있다니까 여대생들이 어찌나 배를 잡고 웃던지 강의를 계속할 수가 없었어요." 교수님은 강의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다. 그때 재미있게 들으며 웃던 필자의 눈에 호수 둑 밑에 피어 있는 자그마한 노란 꽃이 들어왔다. "어머, 저 꽃 참 예쁘다." 무심결에 감탄했더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박 양, 내가 저 꽃을 따다 줄까요?" 가지고 있던, 책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손가방을 필자에게 맡기시고는 조심조심 내려가 그 꽃을 따다 주셨다. 그 장면은 필자로 하여금 물망초의 전설을 연상시켰다. 나를 잊지 말라 했다는 슬프디슬픈 전설이. 교수님은 따다 주신 꽃을 소중하게 받아 들고 필자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라 했다. 그날 홍 교수님은 너무나도 멋진 기사님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값진 것은 역시 사람의 인품이다. 교양학과 교수님들은 필자가 근무하는 3년 동안 늘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갈등을 겨자씨만큼도 보여주신 적이 없다. 주간으로 나오던 대학신문 또한 필자에게 좋은 선생님이 돼주었는데 훌륭한 소설평이나 칼럼 등은 반드시 그날 일기에 적어두고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참으로 훌륭한 집단에서 보낸 세월이었다. 그래서 취업을 앞둔 제자들에게 필자는 늘 이렇게 강조한다. “돈 몇 푼 더 받는 곳보다 분위기 좋은 직장을 골라서 가라. 그래야 배울 것이 많고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확률도 높다.”
- 2018-03-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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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맞닿아 눈부시게 빛나는 곳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 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과 같다. 자연이 거대하고 단순할수록 내 안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알맹이만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느끼는 나는 아주 작고 또한 아주 크며 힘없고 미약한 존재다. 동시에 우주를 포함한 자연이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여행이란 교실에서 배운 지식들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 아닐까. 많은 이의 버킷리스트인 우유니(Uyuni). 잘 알려진 소금사막과 바람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암괴석, 붉은 빛깔의 호수, 안데스의 희귀동물 라마까지 신비함이 가득한 곳이다. 새롭고 아름다운 그 세계로 떠나보자. 해발 366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라파스’ 볼리비아는 남미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모험심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우유니 사막에 가려면 먼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로 들어가야 한다.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는 수크레이지만 실질적인 행정수도는 라파스로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서 해발 3660m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오색 성냥갑으로 만든 산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사가르나가 거리 골목에는 안데스 특유의 패브릭과 장신구들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재래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데스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자를 사서 쓰고 나니 금방이라도 빗자루를 타고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풀린 치마에 중절모를 쓰고 등짐을 진 컬러풀한 의상의 인디오 여성들 모습에서는 이국적인 향기가 느껴진다. 높은 지대라서 모든 길이 언덕처럼 되어 있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거리마다 가득한 상점들과 사람들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른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마녀시장’ 사가르나가에서도 가장 유명한 골목은 ‘마녀시장(Witch Market)’이다. 이곳엔 말린 라마의 태아와 향료들이 기묘한 냄새를 풍기며 진열되어 있다. 온갖 색상의 돌과 장식품을 작은 병에 담아 행운의 상징으로 팔기도 한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이곳 또한 스페인이 전파한 천주교가 안데스의 전통적 제의와 만나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토속신앙도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도인 인디오들은 하나님께 중요한 소원을 빌 때 살아 있는 라마를 잡아 바치는데, 이때 말린 라마 태아를 올리기도 한다. 온갖 허브와 목각, 희귀한 진열품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빗자루를 탄 마녀가 나타나 마법을 부릴 것 같다. 이곳 골목은 뭔가 음험하면서도 삶의 비밀을 들킬 것 같은 으스스함이 함께 느껴져 색다른 감흥이 일어난다. 1549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레스토랑, 전통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 여행사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들은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해준다. 라파스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허락된다면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투어를 떠나보자. 달 모양과 흡사하다고 해서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마치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줄 것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소금사막 ‘우유니’ 볼리비아 남서쪽, 해발 약 3600m에 자리 잡은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은 남미를 대표하는 매혹적인 여행지다. 원래 바다의 땅이었던 우유니는 대륙붕의 충돌로 바다 아래의 땅이 하늘 가까이 솟구쳐 오르면서 만들어졌다. 고지대의 공기가 건조해 시간이 흐르면서 바닷물이 증발되었고 이로 인해 생겨난 소금평원 우유니는 언제 가도 아름답지만 특히 12~2월의 우기 때 가면 비가 고인 물에 푸른 하늘이 반사되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의 거대한 소금사막을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로질러가다가 다른 행성에 착륙이라도 한 듯 소금사막 한가운데 발을 내딛었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사막의 풍경 앞에서 모두들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며 인생샷 한 장이라도 건져보기 위해 바쁘다. 소금사막의 광활한 풍경 앞에 서면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 2박 3일의 우유니 사막 투어가 가장 인기 우유니 사막 투어는 초입의 작은 광산마을 포토시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사람을 모아 1일 투어, 2박 3일 투어 등 다양한 투어를 한다. 시내에는 많은 여행사가 있다. 경쟁이 심한 만큼 몇 곳을 비교해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길이 험해 사륜구동차를 이용해야 하며 투어 비용은 한 대를 기준으로 책정되므로 함께 투어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비용은 낮아진다. 우유니 사막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려면 2박 3일 투어가 좋다. ‘우유니’ 하면 대부분 하얀 소금사막만 생각하는데,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사막 지대와 플랑크톤 작용으로 인해 붉은 빛을 띠는 신비로운 호수, 눈 덮인 산, 수많은 플라밍고를 볼 수 있는 호수까지 희귀한 풍경이 가득하다. 또 소금호텔을 둘러본 후 눈부신 사막 한가운데 앉아서 맛보는 라마 스테이크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조금 전 귀엽다고 쓰다듬어주었던 라마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은 조금 께름칙하지만 그토록 부드러운 고기는 태어나 처음 맛보는 진미였다.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온천욕 덜컹거리는 지프를 타고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리는 동안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바람이 깎은 예술조각들이 가득한 협곡과 붉은 빛깔의 신비로운 호수를 지나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플라밍고를 만날 때까지…. 이토록 짧은 기간에 신비로운 풍광을 흠뻑 경험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변화무쌍하고 이국적인 향기를 열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건 함께 차를 타고 2박 3일 동고동락한, 칠레와 독일에서 온 친구들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때는 국경이나 언어 장벽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칠레에서 온 친구는 어디선가 커다란 타조 알을 주워와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칠레 국경을 넘기 전에 만난 노천 온천은 축복이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물도 잘 나오지 않는 곳에서 씻지도 못한 채 다니다가 대자연 속에 거짓말처럼 준비되어 있던 따스한 온천을 만나자 모두들 앞뒤 재지 않고 옷을 벗어던지며 뛰어들었다. 볼리비아의 자연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곳곳에 반짝이는 풍경이 많다. 팀 케일은 ‘나를 유혹한 낭만적인 곳들’이라는 책에서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먼 곳까지 가는 색다른 모험을 꿈꾸었다. 이런 꿈은 가슴 설레게 하는 꿈 아니었는가?” 하고 묻는다. 그의 말처럼 그 시절처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면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안 그러면 영원히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며 자신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며 안타까워할지도 모르니까. travel tip 항공>> 한국에서 볼리비아 라파스로 가는 항공편은 미국과 페루를 경유한다. 라파스에서 우유니는 국내선 항공이나 버스를 이용한다. 우유니 마을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다양한 사막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 당일치기로 소금사막을 즐기는 1일투어와 우유니를 출발해 칠레 북쪽의 사막도시 산페드로데 아타카마로 가는 2박3일의 투어가 인기가 좋다. 비자>> 볼리비아는 여행시 비자가 필요한 나라다. 여행비자의 경우 30일 단수비자가 발급된다. 한국에서 볼리비아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출국할 수도 잇지만 비용이 비싼 편이다. 라파스 국제공항으로 입국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남미의 다른 나라를 거쳐서 볼리비아로 들어간다면 페루 쿠스코영사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영사관, 브라질 상파울루 영사관, 칠레 산태아고 영사관 등에서 무료로 발급이 가능하다. 고산병>> 해발360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간혹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라파즈에서부터 오는동안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유니에서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산병은 낮은 지대에서 해발 2000-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했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생기는 신체반응으로 피로, 두통, 호흡곤란, 체온저하 등이 있다. 대처방법은 낮은 지대로 이동하는 가장 좋으며, 물을 충분히 마시고, 천천히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 2018-02-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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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위로의 손
- 사진 촬영을 명령받을 때가 있다. 내 스스로 정한 곳이 아니라, 소속된 조직으로부터 다녀와야 하는 지역과 대상이 정해질 때다. 프놈펜에서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 길이 주어졌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유엔 요원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나를 떠나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멈추면 절대 안 됩니다. 만약 보트 엔진이 꺼지면 침입자로 오인받아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나를 태운 보트는 두 대의 엔진을 가동하면서 만약을 위해 중간중간 연료를 채워 넣어야 했다. 막무가내인 엔진 소음도 투명한 긴장을 깨진 못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이 얕아지더니 구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한 진동이 일었다. 프놈펜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때다. 보트가 바닥을 긁고 있었다. 좁고 얕아진 물길에서 배의 프로펠러는 물이 아니라 모래를 밀어내며 탱크처럼 움직였다. 한동안을 그렇게 가면서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제야 유엔 요원이 들려준 주의사항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가 엔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엔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마침내 그 고비를 넘기자 거대한 호수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목적지에 닿은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톤네샵 호수는 장관이었다. 두 시간 동안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소음으로 피곤해진 귀가 놀랐다. 고요함. 너무 조용해도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귀도 상대적인 감각기관인가보다. 어디 귀뿐인가. 눈과 코가 열렸다. 피부도 긴장해 소름이 돋았다. 호수의 엄청난 크기와 고요 앞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내가 느낀 긴장감과는 아무 상관없이 평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극적인 반전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오감을 되찾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은 나에게 주어진 다큐멘터리 취재 사진이 아니다. 거기 살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을 감싸고 안아주는 구름과 하늘빛이다. 부드러운 메시지는 긴박한 현장 고발 사진보다 더 강했다. 거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물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을 난 거기서 알았다. 눈에 보이는 평화와 낭만과는 다른 현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바람과 물 그리고 구름들로부터 위로받고 있었다. 호수 위로 바람이 불자 새들이 날았고, 사람들은 곧 있을 비바람에 대처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여자아이 둘이 아버지를 따라 지붕에 올라가 노는 모습이 뷰파인더에 잡혔다. 아이들은 지는 해를 배경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아이들의 겨드랑이 사이로 조금 더 빨라진 호수의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과 노는 아이들. 이들이 과연 어른들의 싸움에 휘둘리는 아이들인가? 불안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누가 그들에게 평화를 가르쳤을까? 비 내린 다음 날 하늘은 맑았고 호수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다시 무더운 오후가 되자 그 얕은 평화 위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서너 명의 아이들은 벌써 연잎 하나를 꺾어 머리 위에 썼다. 물에 들락거리느라 벌거벗은 아이들은, 젖는다는 기준으로 보면 연잎 우산을 쓰나 안 쓰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아이들의 유희다. 세상의 아이콘이다. 자연과 함께 노는 아이들의 방식이다. 톤네샵이 준 선물. 사진을 찍을수록 나의 카메라가 그 선물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에게서 바람과 비와 나무의 소리를 빼앗고 그 대용물로 장난감과 전자게임기를 건네준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웃는 웃음 지키기와 빼앗긴 웃음 뒤에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몇 배의 돈이 드는지 나는 사진으로 전해야 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난감해 있는 내게, 연어 빛으로 물들어가는 톤네샵 구름이 보이지 않는 위로의 손이 되었다. 함철훈(咸喆勳) >>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 2018-02-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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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벳푸에서 온천하고, 유후인에서 즐기는 자유여행
-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규슈(九州) 지방. 그중 오이타 현의 벳푸(別府) 시는 예로부터 온천 여관, 온천 욕장으로 번창해 1950년 국제관광온천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한마디로 온천 천국의 도시. 현재 300여 개의 온천이 있다. 시영온천에서는 단돈 1000원의 입장료만 내면 전통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매일 온천욕으로 건강 다지고 심심하면 인근 유후인 시로 나들이 떠나는 재미. 한 달이 후딱 지나간다. 글·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 저자, www.sinhwada.com) 국제 온천관광도시, 벳푸 시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로 이동하는 일본 여행은 특별하다. 좁은 의자에 앉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행기 안보다 백번 낫다. 후쿠오카 하카타 항에 내려 텐진에서 점심만 먹고 바로 벳푸 시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두 시간 정도 달려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벳푸 시내에 이른다. 뜨거운 온천 열기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연기가 가득하다. 벳푸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실컷 온천욕을 하기 위함이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온천은 츠루미다케 산(1375m)과 약 4km 북쪽에 떨어져 있는 가란다케 산(또는 유황산, 1045m)의 화산 동쪽에 집중되어 있다. 2800개 이상의 원천수가 자연용출되며, 용출량은 일본에서 1위다. 처음부터 온천도시로서 명성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100℃가 넘는 고온의 용출수에 목욕은커녕 빨래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화탕지옥(火湯地獄)’의 땅이었다. 이 재앙의 도시를 명품 온천도시로 만든 이가 아부라야 쿠마하치(油屋熊八, 1863~1935)다. 그는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나이, 온천은 벳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벳푸를 온천도시로 부상시켰다. 벳푸 역 앞 광장에는 ‘벳푸 관광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의 동상이 있다. 300여 개의 온천 천국, 10분 온천욕으로 힐링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목욕용품부터 챙겨 다케가와라 온천(竹瓦温泉)으로 향한다. 벳푸의 300여 개 온천 중에서 내로라하는 시영온천이다. 벳푸 만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온천은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메이지 시대인 1879년, 한 어부는 해안 근처에서 솟아나는 자연용출장에 간소한 오두막을 지었다. 지붕에 대나무를 얹었다 해서 ‘다케가와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1938년에는 중국의 호화로운 기와지붕으로 장식해 재건립했다. 이 건축물은 2004년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고, 2009년에는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온천이 생긴 지는 139년의 세월이 흘렀다. 건축물도 8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어 전통의 향기가 폴폴 난다. 입장료는 단 100엔.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여자 스태프는 일본식 영어를 구사하면서 이것저것 알려준다. 수건이 필요하냐? 모래찜질은 안 하냐? 신발보관장 코인은 나중에 돌려받는다 등등. 린스 하나만 달랑 사 들고 안으로 들어선다.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실내 인테리어다. 윤기 나는 나무 바닥과 목욕 후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무 테이블. 로비는 천장이 높아 시원하다. 탕 입구는 두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쪽은 모래, 한쪽은 40℃가 넘는 뜨거운 물이 용출되는 자연탕이다. 2층에서 탈의하고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옴팍한 곳에 우물보다 약간 큰 탕이 있다. 찬물을 쓸 수 있는 수도꼭지도 있다. 온천욕 하는 사람들 중에 한국인은 없고 대부분 일본 관광객 또는 동네 할머니들이다. 그들의 목욕 방법을 슬쩍 눈여겨본다. 일단 뜨거운 물에 들어가기 전, 바가지로 물을 퍼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그리고 두어 번 탕 속에 몸을 담근 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간다. 길어야 10여 분 정도. 일본 목욕 문화는 10분씩 3회를 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식 목욕법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일본의 온천욕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그래도 온천수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온도가 높아서인지 몸이 금방 개운해진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옛 유곽 거리를 만난다. 옛날 옛적 전국의 한량들을 불러 모았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곳. 일본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은 선술집에 들러 구운 닭요리를 안주 삼아 사케를 마신다. 그 재미가 묘하다. 이색 순례, 간나와 지옥 온천 벳푸 여행 코스에 지옥 온천 순례를 빼면 안 된다. 벳푸 핫토(別府 八湯) 중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간나와(鉄輪) 온천 단지. ‘지옥 온천’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그곳을 찾은 날 주룩주룩 비가 많이도 내렸다. 여러 형태의 ‘지옥’ 중 일본 국가 지정명소로 채택된 세 곳(바다지옥, 백야지옥, 소용돌이지옥)이 있다. 가장 인기 있다는 바다지옥만 둘러본다. 지옥 온천 중에서 가장 큰 열탕을 갖고 있는 곳이다. 약 1200년 전부터 지하 300m에서 뜨거운 증기와 흙탕물이 분출되고 있다. 200℃라니 말만 들어도 지옥에 온 느낌이다. 그저 구경하고 산책하는 것이 전부.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족욕장뿐이다. 탁한 물에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집어넣는다. 생각보다 뜨겁지 않다. 비가 내려 운치는 좋다. 관광객 특수를 누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산품 코너로 간다. 수많은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온천 증기로 만든 간장을 넣어 맛을 낸 푸딩을 사 먹는다. 흑설탕 맛이 나는 푸딩이 별미다. ‘오래된 마을’로 꾸민 ‘새 마을’ 벳푸에서 유후인(由布院)으로 간다. 25km 떨어져 있고 버스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본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 1위이고 60% 이상이 한국인 관광객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유후인을 배경으로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제작했다. 유후인 기차역 앞으로 난 유노쓰보 거리(湯の坪街道)의 첫 느낌이 참 좋다. 아기자기한 숍들이 길 양쪽으로 이어진다. 마치 유럽의 소도시에 온 듯하다. 유후인을 명물로 만든 사람은 1955년 유후인 초대 정장(町長, 우리나라의 면장)을 지낸 이와오 히데카즈(岩男額一). 당시 36세였던 그는 마을재건위원회를 결성해 본격적인 온천 개발을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서는 건물 높이는 11m를 넘지 못하게 했다. 마을 어디에서나 유후다케 산(1584m)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호텔, 골프장 같은 대형 레저시설은 불허했고 60실 이하의 료칸(旅館)만 허가했다. 음식도 유후인에서 생산한 재료로만 만들어 판매하도록 했다. 단체 관광객도 받지 않았다. 그 후 ‘오래된 마을’처럼 꾸민 ‘새 마을’은 엄청난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다. 긴린코 호수도 보고 온천욕도 하고 유후인 역에서 긴린코 호수(金鱗湖)까지는 약 1.5km. 호수까지 걷는 동안 ‘재즈 카페’에서 맛있는 컬럼비아 산 커피를 마신다. 금상을 받았다는 크로켓도 너무 맛있어 두 개나 사먹는다. 크지 않은 긴린코 호수는 차가운 물, 뜨거운 물이 용출되어 만들어졌다. 호수는 아침이면 안개와 이슬을 만든다. 호수 앞쪽으로는 아름다운 미술관 건물이 들어앉아 있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 때문에 어수선하다. 호수를 빨리 벗어나 누루카와 온천(ぬるかわ溫泉)으로 간다. 유후인은 벳푸, 구사쓰에 이어 일본에서 세 번째로 용출량이 많은 도시다. 누루카와 온천은 벳푸의 시영온천보다는 비싸지만 유후인에서는 가장 저렴하다. 샴푸와 보디용품도 있다. 남탕과 여탕은 나누어져 있지만 말이 들릴 정도로 가깝다. 야외 온천탕 중간에 돌이 놓여 있고 칸막이도 만들었다. 울창한 숲은 담 역할을 한다.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 료칸에서 머물지 못한 여행객들은 이것만으로 일본식 전통 온천을 체험한다. 훌륭한 일본 가정식까지 먹고 벳푸 시로 되돌아온다. 벳푸나 유후인이나 훌륭한 여행지다. 벳푸 시에서 장기숙박하면서 원 없이 온천욕을 하고 심심해지면 유후인으로 나들이나 하면서 푹 쉴 날은 언제 또 올까?
- 2018-01-25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