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4

‘보이스피싱 피해 1조 원’ 금융권 공동 대응 강화해야

입력 2026-11-04 15:45

2025년 건당 피해액 5384만 원…보상 기준 마련해야

▲4일 '디지털전환에 따른 금융소비자 보호 및 금융보안 과제’ 세미나에서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실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4일 '디지털전환에 따른 금융소비자 보호 및 금융보안 과제’ 세미나에서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실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가 2025년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금융 거래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돈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범죄 피해를 막고 회복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금융회사와 통신사, 수사기관 간 정보 공유를 강화하는 한편 피해가 발생한 뒤 보상받을 기준과 절차도 구체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실장은 4일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디지털전환에 따른 금융소비자 보호 및 금융보안 과제’ 세미나에서 ‘보이스피싱 등 디지털금융 범죄 피해자 보호 현황과 과제’를 발표했다. 이 연구실장은 디지털금융 범죄 피해 추이와 국내 대응 제도,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사전 탐지부터 피해 구제까지 보완할 과제를 제시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액 1조2579억 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5년 1조2579억 원으로 집계됐다.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선 규모다. 건당 피해액도 커졌다. 2019년 1699만 원에서 2025년 5384만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투자 리딩방 사기 등 신종 금융사기도 피해를 키우고 있다. 이 연구실장은 2025년 투자 리딩방 사기 피해 규모가 6581억 원이라고 밝혔다. 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 금융서비스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범죄도 다양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금융 범죄가 금융회사만을 직접 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서비스를 이용해 소비자의 돈을 가로채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비대면 거래가 늘고 자금 이동 속도와 거래 규모가 커진 데다 범죄 수법은 지능화·조직화하고 있다. 해외 거점에서 범죄가 이뤄지는 사례도 있어 개인의 주의만으로 피해를 예방하고 회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의심 거래 탐지와 신속한 지급 정지

국내 금융권은 금융사기 의심 거래를 사전에 찾아내기 위해 공동 대응 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금융권은 2023년 10월 업권별 사기 거래 탐지 규칙을 개발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2025년 10월에는 정보 공유·분석 플랫폼인 ‘ASAP’를 가동했다.

ASAP는 금융회사 등이 사기 의심 정보와 탐지 결과를 공유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이 연구실장은 2026년 7월까지 9개월 동안 46만3000건의 정보가 공유됐고, 이를 통해 피해액 663억6000만 원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외 신종 사기에 대응하는 조치도 마련되고 있다. 기존에는 보이스피싱을 중심으로 계좌 지급 정지와 피해 환급 절차가 운영됐지만, 새 유형의 사기는 기존 제도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어서다. 정부는 2026년 6월 신종 피싱 의심 계좌의 거래 정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 연구실장은 의심 계좌를 조기에 확인하고 임시 조치로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후 구제 제도도 바뀌고 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개정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2026년 10월 시행되면서 가상자산을 이용한 범죄를 피해 구제 대상에 포함하고,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정보 공유와 피해자 보호 조치 의무를 부과했다.

배상 책임과 보상 절차는 더 구체적으로

금융권은 비대면 금융사고 피해에 대한 자율 배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배상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이 연구실장은 2026년 5월까지 접수된 배상 규모가 41건, 약 1억7000만 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금융회사의 무과실 배상 책임을 법으로 정하는 방안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외에서는 금융회사 등의 보상 책임을 제도화한 사례가 발표됐다. 영국은 2024년 10월부터 소비자가 속아 직접 송금한 사기 피해에 의무 보상 제도를 적용했다. 소비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금융회사가 원칙적으로 5영업일 안에 보상하고, 송금 금융회사와 수취 금융회사가 보상액을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무단 거래 피해에 대해 금융회사와 통신사, 소비자 순으로 책임을 따지는 공동 책임 체계를 도입했다.

이 연구실장은 정보 공유와 거래 정지 제도가 다른 범죄의 수단이 되거나 정보 유출 경로로 악용되지 않도록 상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유 정보가 금융정보를 넘어 통신·탐지 정보와 악성 앱 정보까지 넓어진 만큼, 사용 목적을 제한하고 보관·폐기 기준을 지키도록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와 공공기관 간 정보 공유 범위를 넓혀 사기 징후를 더 일찍 파악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피해 보상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무과실 배상 책임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금융회사에 소비자 보호와 불법 거래 차단을 위한 구체적인 의무를 먼저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면책 요건과 배상액 산정 기준, 심사 절차도 명확히 해 도덕적 해이를 막고 피해자가 구제받는 과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에서 고령층 피해 규모를 별도로 집계한 연령별 통계는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비대면 금융 이용과 디지털 범죄 대응은 시니어를 포함한 모든 금융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범죄를 조기에 차단하는 정보 공유 체계와 함께 피해자가 실제로 보상받을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 금융소비자 보호의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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