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야생화] 천 길 바위 절벽서 새벽이슬 먹고 피는 지네발란!

기사입력 2015-07-20 09:37 기사수정 2015-07-20 09:37

▲지네발란. 학명은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종 2급.(사진=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보는 이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 야생난초가 있습니다. 바로 지네발란입니다.

처음엔 그 독특한 생김새에 놀라게 됩니다. 동의보감에도 등장할 만큼 유용한 약재라고는 하지만, 처음 보는 순간 누구나 징그럽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절지동물 지네를 어찌나 똑 닮았는지 참으로 신기할 정도입니다. 둥글고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양편에 어긋나기로 뾰족하게 나온 잎 모양이 지네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지네발란이라 부릅니다. 지네난초라고도 합니다.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학명의 종소명(種小名) 스콜로펜드리폴리우스(scolopendrifolius)가 바로 그리스어의 지네(scolopendra)와 잎(folios)의 합성어로서 ‘지네를 닮은 잎’이라는 뜻이니, 서양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증좌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놀라게 되는 것은 집채만 한 바위에 몸을 의탁하고 새벽이슬만 먹고 살아가야 하는 척박한 서식 환경입니다. 천 길 낭떠러지 바위 절벽에 담쟁이덩굴처럼 온몸을 붙인 채 천지를 굽어보는 지네발란은 보는 이를 경악하게 합니다. 뿌리 내린 바위 덩어리를 제아무리 비틀어본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테니, 인근 바다나 저수지의 새벽안개가 만들어주는 이슬방울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꽃을 피우는 지네발란의 유일한 생명줄일 것입니다. 물론 바위에 붙어사는 식물들이 거개 그렇듯, 지네발란 또한 줄기나 잎이나 모두가 통통하니 한번 들어온 물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끔 되어 있기는 합니다.

▲지네발란. 학명은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종 2급.(사진=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지네발란. 학명은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종 2급.(사진=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다소 흉측한 외모나 이름과는 달리 어린아이의 미소만큼이나 환하고 해맑은 지네발란의 꽃을 보는 순간 세 번째로 놀라게 됩니다. 흰색과 연분홍, 자주색이 어우러진 꽃 모양은 그 어떤 난 꽃 못지않게 화사한데, 생김새 또한 갓난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듯 귀엽고 깜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누구는 지네발란의 꽃을 하늘의 별이라고 했다.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지네발란의 꽃은 가슴속에 일렁이는 하늘의 꽃물결이다.” 한 야생화 동호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찬사입니다. 지네발란 꽃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냈기에 소개해 봤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자생지가 제주도와 진도 등 극히 일부에 제한돼 있어 2012년부터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나주호.(사진=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Where is it?

제주도나 진도 등 전라남도 해안가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몇 해 전 전남 나주에서 최북단 자생지가 발견되면서 찾는 발걸음이 많아졌다. 제주도의 경우 거대한 바위산인 산방산 남쪽 암벽에 솔잎란 석곡 등 다른 착생난초들과 함께 지네발란이 붙어 자생한다. 목포 유달산에 국내 최대 규모의 지네발란 자생지가 있는데 최근 주변에 둘레길이 개발되면서 불법 채취 등으로 서식지 훼손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나주의 경우 나주호(사진) 인근 야트막한 야산 바위에 자생한다. 나주시 다도면 대한기독교청소년수련원 인근의 한 야산을 10여 분 오르면 나주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 더미가 나온다. 바로 그 바위에 지네발란이 붙어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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