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가 함께 놀고 배우며 서로의 취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부모세대는 젊은이들이 몰리는 공연장을 찾고, 자녀세대는 부모가 즐겨온 뜨개질과 등산, 전통시장과 제철 음식에 눈을 돌린다.
세대의 취향이 완전히 같아진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젊은 취향이고 무엇이 나이 든 사람의 취향인지 가르던 구분은 전에 비해 희미해졌다. 이른바 ‘취향의 에이지리스’다.

57세 김 씨는 올해 또래 친구들과 싸이 흠뻑쇼를 찾았다. 물에 젖으며 음악에 맞춰 뛰는 여름 축제는 오랫동안 젊은 층의 놀이터처럼 여겨졌다. 김 씨도 처음에는 “내가 가도 어색하지 않을까” 망설였다.
등을 떠민 사람은 자녀였다. 오랫동안 싸이의 음악을 즐겨온 김 씨에게 “이번에는 직접 가서 놀아보라”고 권했다. 휴대전화 예매 방법부터 옷차림과 준비물도 알려줬다.
김 씨는 장시간 서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틈틈이 체력도 길렀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자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관객도 눈에 들어왔다. 청년이 된 자녀와 함께 이들도 많았고, 어린 손주까지 3대가 같이 온 관객도 발견했다.
“젊은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해서 우리가 못 갈 이유는 없잖아요. 힘들면 중간에 쉬고,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면 되죠.”
‘엄빠코어’는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의 취향과 생활방식을 새롭게 받아들여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흐름이다. ‘그랜마하비’는 뜨개질·자수·가드닝처럼 과거 할머니 세대의 취미로 여겨진 활동을 젊은 층이 즐기는 현상을 말한다. ‘엄미새’는 엄마를 유독 좋아하고 함께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온라인 표현이다. 서로 다른 말이지만, 나이에 따라 취향을 나누던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녀의 놀이터로 들어간 부모세대
모바일 예매와 온라인 쇼핑, OTT, SNS 이용법을 자녀에게 배운 부모는 자녀세대가 즐기는 문화에도 직접 들어간다. 자녀가 추천한 공연을 찾고, 팝업스토어를 예약하며,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가족 단체대화방이나 SNS에 올린다.
학계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기술 이용과 소비 행동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역(逆)사회화’라고 설명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생활방식을 가르치던 기존의 방향이 뒤집힌 것이다. 성인 자녀는 부모가 새로운 장소와 서비스에 스스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된다.
김 씨의 흠뻑쇼 방문도 이런 과정을 보여준다. 자녀가 예매와 준비 방법을 알려줬지만, 공연을 즐기겠다고 결정하고 또래 친구들과 현장을 찾은 사람은 김 씨 자신이었다. 부모세대가 자녀의 문화를 멀리서 구경하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방식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중장년층이 젊은 세대의 공간에 들어간다고 해서 젊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 씨의 말처럼 힘들면 쉬고, 즐길 수 있는 만큼 참여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나이에 가도 될까’라는 질문에 스스로를 허락하는 일이다.

엄마의 취미를 가져온 자녀세대
반대편에서는 젊은 세대가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생활방식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트렌드 미디어 캐릿은 2025년 Z세대가 부모 세대의 취향과 일상을 자기 방식으로 즐기는 흐름을 ‘엄빠코어’로 소개했다. 꽃 사진 찍기, 전통시장 방문, 등산, 오래된 브랜드와 아날로그 제품처럼 과거에는 촌스럽다고 여겼던 것들이 젊은 세대의 일상으로 들어오는 현상이다.
해외에서는 뜨개질, 자수, 가드닝, 도예처럼 손을 움직이는 활동을 ‘그랜마하비’라고 부른다. AP통신은 2026년 3월 젊은 세대가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벗어나 창작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아날로그 취미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시기에 늘어난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오프라인 모임과 소규모 사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젊은 세대가 만족하는 본질은 시간과 공을 드린 결과물이다. 뜨개질은 한 코씩 쌓아야 결과가 나오고, 식물을 키우려면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수선한 옷과 손으로 만든 그릇은 주문 다음 날 도착하지 않는다. 빠르게 사고 버리는 소비가 지겨워진 젊은 사람에게 부모 세대의 취미는 시간과 손을 들여 하나를 완성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디지털은 이런 흐름을 돕는 역할을 한다. 젊은 이용자는 SNS에서 뜨개 작품을 발견하고, 유튜브로 바느질을 배우며, 온라인으로 공방 모임을 찾는다. 스마트폰이 오래된 취미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잊힌 취미로 들어가는 새로운 진입로가 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세대의 취향도 그대로 복제되지는 않는다. 젊은 세대는 오래된 도안에 새로운 색을 넣고, 전통 음식을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으며, 시장 풍경을 짧은 영상으로 기록한다. 부모에게서 받은 취향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편집한다.
친구 같은 부모, 취향의 나이표가 떨어졌다
두 세대의 취향이 오갈 수 있는 배경에는 달라진 부모·자녀 관계가 있다. 함께 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일상을 얼마나 자주 보여주고 이야기하느냐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6년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자녀가 있는 응답자의 84.6%가 자신의 자녀와 가깝다고 답했다. 자녀와 나누는 대화 주제 1위는 ‘일상 공유’로, 응답자의 71.2%가 꼽았다. 부모의 역할이 훈육과 지시에서 일상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엄미새’라는 말도 이 변화를 보여준다. 같은 조사에서 엄미새 인지율은 전체 48.5%였지만 10대는 55.5%, 20대는 63.0%로 높았다. 젊은 층에는 엄마와 잘 지내고 함께 노는 일을 감추기보다 온라인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일이 익숙해졌다.
물론 부모와 자녀가 가까워진 배경에는 경제적 현실도 있다. 20대 응답자의 56.8%는 부모에게 의지하는 영역으로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청년의 독립이 늦어지는 상황과 부모를 향한 정서적 친밀감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집에 같이 산다고 취향이 저절로 닮는 것은 아니다. ‘취향의 에이지리스’는 식탁에서 본 영상을 이야기하고, 쇼핑 정보를 주고받고, 서로의 외출에 동행하는 시간의 밀도가 취향을 이동시킨다. 한쪽이 가르치고 다른 쪽이 따라가는 관계보다 각자가 잘 아는 세계의 입구를 열어주는 관계에서 비롯한다.
이는 모든 연령대가 같은 제품과 문화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60대가 팝업스토어에 간다고 20대가 되는 것도 아니고, 20대가 뜨개질을 한다고 부모세대와 생각이 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특정 활동에 붙어 있던 나이표가 떨어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경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부모세대에게는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젊은 사람들의 낭비’로 평가하기 전에 한 번 동행해 보기를 권한다. 자녀세대도 부모의 취향을 사진 찍기 좋은 복고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 그 물건을 오래 썼고, 왜 그 취미를 계속했는지 물으면 상대의 취향이 생긴 이유를 알 수 있다.
취향의 에이지리스는 서로 다른 세대가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고, 때로는 따라 해보며, 자기 생활에 맞게 다시 고르는 과정이다. 부모와 자녀는 이제 서로에게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가르치기보다, 좋아할 수 있는 세계를 넓혀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