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의 경제학

기사입력 2018-05-11 09:15:13기사수정 2018-05-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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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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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로 가는 치킨 전문점이 있다. 전통시장인 대전 중앙시장 안에 있는 집이다.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에 고작 7000원이다. 가격이 이처럼 착해서인지 언제 가도 손님들로 북새통이다.

그제도 이 집에 들러 전기구이 통닭과 소주 한 병을 시켜 먹었다. 셈을 치르려 보니 메뉴판 위에 ‘외상사절’이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맞아! 외상을 주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고 결국엔 단골손님마저 아예 단절되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래전 시장 어귀에서 순대 전문 식당을 했다. 먹는장사이다 보니 가끔 외상을 청하는 손님도 있었다. 박절하게 거절하기 뭣해 외상을 줬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이듯 외상 손님들은 하나같이 다시는 우리 가게를 찾지 않았다.

식당이 생각만큼 안 됐기에 일찍 처분을 했다. 그러곤 슈퍼마켓을 차렸다. 그러나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꼭두새벽에 문을 열고 자정이 넘어서야 문을 닫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단골손님이 느는 만큼 외상 손님도 시나브로 증가했다.

‘다시는 외상을 주지 말아야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금방 갖다 주겠다며 소주와 담배를 사간 이웃은 한 달이 돼도 코빼기조차 비추지 않았다. 자정이 넘도록 가게 밖 파라솔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제 문을 닫아야 하니 계산을 하고 드시든가 하시죠” 해도 셈은 나중에 치르겠다며 맥주를 한 병 더 주고 문을 닫든가 말든가 하라며 적반하장이었다.

이미 만취한 사람과 드잡이를 할까 싶어 함구하며 문을 닫았지만 속이 편할 리 없었다. 선친께선 생전에 술을 물처럼 드셨다. 아내 없는 홀아비라는 자괴의 신세타령에 덧붙여 경제적 고립무원이었던 당신을 자학하며 침면(沈湎, 술에 절어서 헤어나지 못함)으로 사셨다.

가장이 돈은 안 벌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면 누란(累卵)의 위기에 봉착하는 건 시간문제다. 술은 담배처럼 중독성이 심각하다. 그래서 이미 취했음에도 더 취해 아예 인사불성이 되길 원하는 게 알코올 중독(자)의 특성이다.

뿐만 아니라 상습적 외상까지 필자에게 강권하셨다. 외상으로 술과 담배 따위를 가져만 갔지 도무지 갚지 않았던(사실은 갚을 능력이 못 되었던) 우리 부자(父子)에게 동네에 하나뿐이던 구멍가게 주인은 점점 냉담해졌다.

“밀린 외상값을 다 갚기 전에는 우리 가게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나는 뭐 땅 파먹고 사는 줄 아니?” 당시엔 자정부터 통행금지였다. 필자는 자정이 임박해 시키는 술심부름, 그것도 외상으로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술 채근(採根)이 가장 싫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의 집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새우잠을 청하는 등의 풍찬노숙을 점철했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로 필자는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외상’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물건을 사거나 파는 일을 뜻한다. 외상이 잦으면 단골손님마저 잃게 되는 외상(外傷)을 반드시 입는다. 이게 바로 필자가 경험한 외상의 경제학(經濟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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