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꾼 왕기철 명창, "16살 까까머리, 명창 되기까지"
- 판소리계에는 유명한 왕가네가 있다. 그 중심에는 왕기철(59) 명창이 있다. 왕기철 명창의 동생 왕기석 명창뿐만 아니라 딸 왕윤정도 소리꾼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왕기철은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판소리꾼이자 위대한 아버지, 그리고 스승인 왕기철 명창. 이 찬란한 5월에 그를 특히 만나고 싶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안에는 ‘왕 카페’가 있다. 그곳이 어디인가 하면 다름 아닌 교장실이다. 바리스타는 왕기철 교장이다. 왕 명창은 교장실을 찾는 선생님들, 손님들에게 직접 커피를 내려서 대접한다. “요즘 시대에 교장이라 권위를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상대방이 인정해줄 때 나의 권위가 서는 거죠. 저는 우리 선생님들하고도 수평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 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하면서 다가서려고 하죠. 그렇다고 해서 약하기만 한 교장은 아니랍니다. 하하.” 왕기철 명창은 1985년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은 이후 전주대사습놀이, KBS국악대상을 휩쓴 ‘당대의 명창’이다. 소리꾼이라는 삶을 이어온 지 50여 년인데, 예술가의 까탈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서 넘쳐흐르는 것은 행복한 기운이었다. “소리계에서 그래도 이름 좀 있는 사람이 교장으로 있으니까 학생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공연 단체에도 오래 있었잖아요.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거죠. ‘너희 세대는 나보다 훨씬 더 길이 열려 있다’고 응원해주고, 좋은 기운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교장으로서 제 목표는 다른 것이 없어요. 우리 학생들이 꿈을 꾸고 이루고 행복해하는 학교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스승 박귀희 명창 만나 소리꾼 돼 왕기철 명창의 판소리 오디션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졌다. 왕 명창의 형인 故왕기창은 서울에서 판소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왕기창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 향사 박귀희 명창이 남자 제자를 뽑으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8남매 중 일곱째인 동생 왕기철 명창에게 전갈을 보냈다. 당시 왕기철 명창은 전라북도 정읍의 시골에 사는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다. 그는 그저 형의 부름에 서울 구경을 할 수 있어 신이 났다. 박귀희 명창은 왕 명창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고, 그는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형님이 잠깐 가르쳐준 대로 소리를 했는데, 뭐 잘했겠어요? 그런데 향사 박귀희 선생님께서 제 목소리를 듣고 마음에 든다고 바로 제자로 받아주셨어요. 아마 저의 여러 가지를 살펴보셨겠죠. 시골 촌놈에 옷도 남루하고 뭐 볼 것도 없는 저였는데, 선생님은 정말 제 인생의 은인이시죠.” 그렇게 왕기철 명창은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박귀희 명창은 현재 왕기철 명창이 교장으로 있는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의 설립자다. 왕 명창은 국립전통예술고에 다니는 한편, 박귀희 선생의 학원에서 가야금 병창과 소리를 배웠다. 멀고도 어려운 소리꾼의 길, 왕기철 명창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가야금과 소리를 함께 한다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가야금이 되면 소리가 안 되고, 소리가 되면 가야금이 안 되어 고생을 많이 했죠. 그때 학원은 종로 3가와 창덕궁 사이에 있었는데 그 길을 다니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소리를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속상해서… 노력해도 잘 안 되니까 속상해서 울었던 것 같아요.” 왕기철 명창은 고등학교 졸업 후 한양대학교 국악과로 진학했다. 당시 한양대학교에서 판소리 전공자를 뽑은 것은 처음이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왕 명창은 ‘판소리 학사 1호’라는 영예로운 타이틀도 얻었다. 그는 “옛날에는 소리 하시는 분들은 배움이 많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석사, 박사까지 하는 분들도 많다. 소리꾼들이 학문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왕기철 명창은 소리꾼으로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2001년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던 때라고 밝혔다. 판소리 전공자들은 대통령상을 받아야 명창의 반열에 올라선다고 생각한다. 왕 명창은 1999년, 2000년, 2001년까지 3수 만에 장원을 받은 터라 값진 노력의 결실이라고 느꼈다. 더불어 동생 왕기석 명창도 2005년에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왕기철 명창은 “형제 명창은 우리가 1호”라고 자랑하며 웃었다. 교육자 그리고 무대 왕기철 명창은 대학교 졸업 후 1985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좋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응어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지 못한 것. 국립창극단은 국립극장 전속단체로서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창극’을 통해 우리 문화를 알리는 곳이다. 더욱이 동생인 왕기석 명창은 국립창극단 소속으로 활약을 펼쳤다. 현재 그는 국립민속국악원의 원장이다. 무대에서 소리를 하는 아우가 형은 부럽기만 했다. 왕기철 명창은 무대에 대해 타는 목마름을 느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다. “동생의 무대를 보고 나면 그날 밤 내내 무대 생각이 맴도는 거예요. 무대에 너무 서고 싶은 거죠. 무대에 서야 살아 있다고 느끼니까요. 교직에 있으면 안정적으로 평생 일할 수 있어요.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니까 아내도 아이들도 반대를 하더라고요. 동생도 ‘형은 교육계에 계시는 게 어때’ 그랬는데, 저는 무대에 서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과감히 그만뒀죠.” 결국 왕기철 명창은 13년 2개월 만에 교단을 떠났다. 39세로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왕 명창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단원 시험을 보고 1999년 국립창극단 단원에 합격했다. 왕기철 명창은 당시를 회상하며 “소리는 괜찮게 내는 것 같은데, 창극은 안 해봤기 때문에 연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생 왕기석 원장이 롤모델이었다고 밝혔다. 왕 원장은 17세 최연소 나이에 단원이 되어 약 40년 동안 몸담았다. “국립창극단에 들어가서 동생과 같이 캐스팅되면 동생이 발은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이런 것을 계속 보고 배웠어요. 특히 1999년 완판 창극 ‘심청전’을 했는데, 저도 왕기석 원장도 심봉사 역을 연기했죠. 그리고 우리 딸 윤정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어린 심청 역에 오디션을 보고 붙어서 저와 같이 연기했어요.” 왕기철 명창은 14년 8개월 동안 국립창극단에 있다가 2013년 다시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7년에 16대 교장이 됐다. 임기가 끝난 후 재임용에 도전해 지난해 17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2025년까지다. 박귀희 명창이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었는데, 그 길을 이어가는 왕 명창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전했다. 딸과 함께 걷는 국악의 길 왕기철 명창의 딸 왕윤정(32)은 앞서 말했듯이 아빠를 따라 소리꾼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에는 15대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창극단 정단원이 됐다. 왕 명창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왕윤정이 특히 노래를 잘 부르고 끼가 있었다고. 다른 자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왕윤정은 왕기철의 딸이기 때문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잘해도 본전’이었다는 그녀는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이 인정할 수 있도록, 내가 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사춘기 때도 치열하게 열심히 했죠.” 왕윤정은 왕기철 명창에 대해 “아빠와는 친구 같은 사이이긴 한데, 선생님으로서는 엄격하셨다”고 말했다. 왕 명창은 “딸에게 기대도 컸고, 조심스럽기도 했다”면서 “딸이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으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의 마음을 헤아리는 위로의 말이었다. “딸이 저보다 더 실력이 나은 예술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딸이 국립창극단에 들어가고 공연하는 걸 봤는데 소리의 추임새나 테크닉적인 부분도 괜찮고 이제 들을 만한 실력을 갖춘 것 같아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주기도 하고요. 최근에 딸이 ‘리어’라는 작품을 했어요. 무용학원에 보냈어서 그런지 춤도 잘 추고, 무대에서 잘 보이는 예술 소리꾼이 됐더라고요. 그리고 딸이 저보다 성격도 좋답니다.” 지난 3월, 왕기철 명창은 20년 만에 국립극장에서 흥부가 완창 무대를 선보였다. 표가 보름 전에 매진될 정도로 기대감이 높았기에 그의 부담감 또한 컸다. 왕 명창은 최선을 다해서 연습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아쉬운 무대를 남기고 말았다. “공연날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확 바뀌었더라고요. 진단 키트 검사를 해보니 음성이어서 공연을 했죠. 그런데 갈수록 컨디션이 최악이었어요. 내 목소리가 이런 소리가 아니었는데 너무 속상했죠. 다음 날 다시 검사를 했더니 양성이었어요. 얼마나 속상하고 아쉬웠는지 몰라요.” 왕기철 명창은 인생의 마지막 완창이 흥부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아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단다. 딸 왕윤정은 “저는 아빠가 건강만 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고 잘하시는 소리를 오랫동안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완창 무대를 한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에요. 두 시간 이상 대사도 다 외워야 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목 관리도 해야 하죠. 이제 완창 무대는 안 하려고 했지만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예술 무대를 꾸미는 거예요. 왕기석 원장과 그의 딸 왕시연도 소리를 하거든요. 넷이 ‘왕가네 소리판’, ‘왕가네 소리 이야기’라고 해서 무대를 꾸미고 싶어요.” 왕기철 명창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는 소리를 계속할 것 같다”면서 삶을 즐기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왕 명창은 이전에 성대결절로 수술을 한 적이 있고 현재 98% 회복했다고 한다. 아직 2%는 회복하지 못했지만 “거의 다 되찾았으니 행복하다”면서 웃었다. 그의 긍정적인 생각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틀림없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는 것은 인생에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60세에 은퇴했다고 해서 다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도 하면서 인생을 즐기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은 가족들 생각하면서 열심히 사셨잖아요. 저도 그러려고 하거든요. 저는 무엇이든지 즐기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가 소리를 하면 행복한 무대를 만드는 거고, 그럼으로써 내 소리를 듣는 관객들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에너지를 얻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2022-05-10 13:12
-
- "일상 회복, 문화생활 즐기자" 5월 문화 소식
- ●Exhibition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일정 5월 22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전시 ‘노실의 천사’(Angel of Atelier)가 이번 달까지 열린다. 전시 제목 ‘노실의 천사’는 권진규가 쓴 글에서 따온 것으로, 노실은 거미가 있는 방, 천사는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을 뜻한다. 권진규는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그는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편견 없이 넘나들었으며 세속을 떠나 이상을 추구했다. 권진규는 생전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도 불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과 생활고 등으로 고통받던 그는 1973년 5월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유족이 기증한 작품(총 141점)과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리움 등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작품이 포함됐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개인 소장하던 작품 ‘말’도 있다. 총 240여 점으로 권진규 개인전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는 자작시를 바탕으로 불교에 한평생 귀의해왔다는 점에 착안해 시기별로 입산(1947~1958), 수행(1959~1968), 피안(1969~1973)으로 구분해 진행한다. ◇화각 : 오색의 향연展 일정 5월 22일까지 장소 용산공예관 ‘화각 : 오색의 향연’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이재만 특별초청전이다. 화각은 황소의 뿔을 이용한 우리나라 고유 각질 공예다. 황소 뿔 하나를 가공하면 10~20cm 정도의 작은 각지(角紙) 단 한 장이 만들어진다. 재료의 수급·가공 과정이 까다로워 예로부터 화각 공예품은 특수 귀족층이나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1996년 최연소 국가중요무형문화재가 된 이재만 작가는 화각 공예로는 유일하게 지정된 장인이다. 유물을 재현한 화각 봉채함, 바둑판을 비롯해 이재만 화각장이 새롭게 창작한 12지신 필통, 불감, 보석함, 은장도, 가야금, 삼층장 등 화각 공예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Book ◇산산조각(정호승 우화소설)(정호승·시공사)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이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아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을 펴냈다. 시의 압축된 묘사 이면에 숨겨진 서사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재탄생시키고 우화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 보다 친근한 이야기로 인간의 삶이 지닌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산산조각’에 등장하는 화자와 주인공은 동식물과 사물이다. 망자(亡者)가 입는 수의, 못생긴 불상, 걸레, 숫돌, 오래된 절간 화장실의 받침돌 같은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엄연히 이 세상에 실재하고, 심지어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참나무 이야기’의 참나무는 대웅전의 대들보나 목불(木佛)이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선암사 해우소’의 바윗돌은 싱그러운 차밭에서 안락하게 지낸다. 하지만 참나무와 바윗돌은 전혀 뜻하지 않은 처지에 놓인다. 참나무는 장작이 되고 바윗돌은 해우소의 기둥을 받치며 똥물을 맞고 사는 신세가 된다. 꿈꾸던 미래와 안락함을 빼앗긴 두 존재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묵묵히 견디는 가운데 삶의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른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듯 ‘나’ 역시 분명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이 세상에 왔으며 존재하기에 살아가야 할 이유 또한 명백하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정호승 시인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 그 가치를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화의 방법으로 성찰했다”고 말했다. ◇작별인사(김영하·복복서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간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삶이란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등을 묻는다. ◇다시 말해 줄래요?(황승택·민음사)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의 채널A 황승택 기자가 쓴 두 번째 투병 에세이다. 저자는 인생 42년 만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급성중이염으로 200여 일 동안 청력을 손실한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면면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혐오의 과학(매슈 윌리엄스·반니) 범죄학자인 저자가 혐오하는 마음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탐구한 책으로, 신경과학·심리학·사회학·통계학적 접근이 눈에 띈다. ‘혐오를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 혐오범죄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탐구한다. ●Stage ◇넥스트 투 노멀 일정 5월 17일 ~ 7월 31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로라 피에트로핀토 출연 박칼린, 최정원, 남경주, 이건명, 양희준, 노윤, 이석준, 이아진, 이서영, 이정화 등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7년 만에 돌아온다. ‘넥스트 투 노멀’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굿맨 패밀리 가족 구성원의 아픔과 화해,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16년째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 다이애나, 그런 엄마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딸 나탈리, 다이애나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흔들리는 가정을 지켜내려 노력하는 아빠 댄, 다이애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들 게이브까지 여러 상황으로 저마다 한계에 다다르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위태로웠던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작게 피어나기 시작한 희망을 붙잡으려 한다. 이번 프로덕션에는 연기력과 가창력을 갖춘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뭉쳤다. 국내 프로덕션 초연부터 두 번째, 세 번째 재연까지 참여한 배우 박칼린이 다이애나 역으로 다시 돌아온다. 한국 뮤지컬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배우 최정원도 다이애나로 새롭게 합류한다. ◇모래시계 일정 5월 26일 ~ 8월 14일 장소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김동연 출연 민우혁, 온주완, 조형균, 최재웅, 송원근, 남우현, 박혜나, 유리아, 나하나 등 뮤지컬 ‘모래시계’가 2017년 초연 이후 5년 만에 돌아왔다. 동명의 SBS 드라마가 원작이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서사시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를 담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격동의 시대 속 엇갈린 선택과 운명에 처한 ‘태수’ 역에는 민우혁, 온주완, 조형균이 캐스팅됐다. 태수의 절친한 친구이자 세상의 정의가 되고 싶었던 ‘우석’ 역은 최재웅, 송원근, 남우현이 연기한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좌절했던 ‘혜린’ 역에는 박혜나, 유리아, 나하나가 함께한다. ◇돌아온다 일정 5월 7일 ~ 6월 5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정범철 출연 강성진, 박정철, 김수로, 정상훈, 이아현, 홍은희, 김곽경희 등 연극은 ‘돌아온다’라는 이름의 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허름하고 작은 식당에서 욕쟁이 할머니,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청년, 작은 절의 주지 스님 등의 사연이 펼쳐진다. ‘돌아온다’ 제작진은 “누구나 가슴속에 ‘그리운 사람 혹은 무언가’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 주변에 있을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온 가족과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감동과 웃음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 2022-05-06 09:14
-
- 고령화 사회 달라진 방송가… '엄마는 예뻤다'부터 '진격의 할매'까지
- 시니어(Senior)란 보통 고령자, 노인 세대를 말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시니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시니어 세대를 경제·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는, 2040세대의 부모 세대 정도로 여기고 있다. 반대로 꾸밀 줄 모르고 고독하게 혼자 늙어가는 꼰대라는 인식은 줄어들었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송가에 불고 있는 시니어 열풍에 대해 조명해봤다. 지난 1일 첫 방송 된 LG헬로비전, MBN ‘엄마는 예뻤다’는 의학 패션 뷰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 엄마의 예뻤던 청춘을 다시 돌려주는 건강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이다. 배우 황신혜와 가수 이지혜, 장민호,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이 진행을 맡았다. 특히 황신혜로 인해 그가 과거에 진행을 맡았던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tvN ‘렛미인’이 떠오른다. 이와 관련 황신혜는 제작발표회에서 “‘렛미인’이 젊은 친구들의 메이크오버였다면 이번에는 또래,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엄마의 인생을 찾아준다”고 차이점을 짚었다. ‘엄마는 예뻤다’는 사연 접수, 솔루션, 애프터 3단계로 구성된다. 자녀들이 엄마를 위한 사연을 보내 신청하면,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닥터스 군단’이 카운슬링부터 시니어 뷰티, 패션팁까지 사연자에게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박현우 CP는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서만 살고 본인 삶이 없다. 그런 엄마들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인데 패션, 뷰티까지 더했다. 자식들이 엄마의 사연을 신청한다”며 “대반전은 없지만 표정이 변한다. 웃음을 되찾고 당당해진다. 엄마들이 행복해지니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밝아진다. 그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매력이다”고 밝혔다. 앞서 2020년~2021년에는 MBN에서 ‘오래 살고 볼일-어쩌다 모델’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바 있다. 시니어 스타일 아이콘을 찾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장장 5개월의 시니어 모델 선발 과정은 웃음과 감동을 안겨줬다. 최종 우승은 73세의 최연장 도전자 윤영주 씨가 거머쥐었다. 윤영주 씨는 “70대를 대표해 통쾌한 기분”이라며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기쁘다. 힘들지만 짜릿한 도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와 같은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외에도 시니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7년부터 방영됐고, 현재의 시즌3에 와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안착했다. 또한 시니어 연예인들의 합창단 도전기 JTBC ‘뜨거운 씽어즈’도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합창단은 배우 김영옥, 나문희를 중심으로 하며, 평균 연령 56.3세다. 김영옥, 나문희, 박정수가 고민 상담을 해주는 채널S ‘진격의 할매’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젊은 세대의 고민을 인생 경험이 많은 할매들이 듣고 매운맛 상담을 해주는 콘셉트인데 그 조언의 깊이가 달라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할매들의 입담은 젊은 MZ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같은 시니어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이유는 고령화 사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65세 노인 인구 비중은 17.3%다. 특히 2020년부터 2040세대의 부모 격이자 총인구 800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에 진입했다. 엄마, 아빠 세대가 고령층이 된 셈으로 노인 세대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욱이 100세 시대에 50·60대는 사회·경제적으로 젊은 층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상은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을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나이가 많아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도전하면서 참된 말을 해주는 어른들을 원한다. 제작진은 그 니즈를 프로그램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2022-05-02 16:15
-
- 日 치매 고령자 자산 250조엔 넘어… "자산 동결 우려 커"
- 일본 치매 고령자의 보유 자산이 약 250조엔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자산 동결이 일본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 최대 규모 신탁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에 따르면 2020년 치매 고령자가 보유한 자산 총액은 약 250조엔(약 2500조 원)이며, 2030년에는 약 314조엔, 2040년에는 약 345조엔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 중에서도 2020년 금융자산은 약 172조엔으로 가계보유금융자산 총액의 8.6%에 다랗며, 부동산은 약 80조엔으로 가계보유부동산 총액의 7.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2020년 치매 환자는 602만 명이다. 2030년 치매 환자는 744만 명으로 고령자의 2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총무성에 따르면 2021년 65세 이상 인구는 3640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29.1%를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고령자 비율은 세계 1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치매 유병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1위에 달하고 있다. 또한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 중 20%가 치매 환자가 된다는 연구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앞으로 고령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그에 비례해 치매 환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의 자산 동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성년후견제도나 가족신탁 제도를 더 활발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성년후견제도 이용자는 약 24만 명에 불과했다. 치매 환자 수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치매 고령자 중 후견인이 될 수 있는 친족이 없어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자산이 적은 고령자는 이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아 많은 자금이 동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치매 환자가 보유한 유가 증권이 2035년이면 전체의 15%를 차지할 것이라며, 시민 후견인, 법인 후견인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젊은 층으로의 금융 자산 이동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제2기 성년후견제도 이용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2년부터 향후 5년간 실시할 방침이다. 미쓰이스미토모의 타니구치 인생100년응원부 부장은 “일본에서 고령화와 함께 치매 고령자가 늘어나는 점은 사회의 큰 과제”라며 “인생 100년 시대에서 후견이나 신탁을 통한 사전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2022-04-27 14:07
-
- ‘안정적 수익’ 매력적인 노년층 대표 희망 직업, 아파트 관리소장
-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시니어들을 위해 유망 직업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아파트 관리소장은 우리가 상주하는 아파트, 상가 등 전체 건물의 관리인을 말한다. 중장년층 채용을 선호하는 직업으로, 보수가 높아서 각광받고 있다. 아파트 관리소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택관리사가 되어야 한다. 주택관리사는 대통령이 정하는 주택관리 실무 경력, 그밖에 주택 관련 경력을 갖춘 자로서 시·도지사로부터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발급받은 자를 말한다. 주택관리사는 공동주택 및 아파트 관리소장, 아파트 관리실 행정관리자, 대형건물 관리자, 공공건물 관리책임자 등으로 활동할 수 있다. 300세대 이상 아파트, 150세대 이상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아파트에서는 주택관리사 채용이 필수기 때문에 주택관리사의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취업하면 사무, 회계, 대외업무 관리 등의 행정 관리부터 시설, 안전, 환경 등의 기술 관리까지 담당하게 된다. 또 입주민 간의 민원 및 분쟁을 조정하고 사무, 주차 관리, 청소 등 다양한 직종의 직원들을 지휘 감독한다. 여기에 노인정, 놀이터, 주차장 등 공동시설까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주민들이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가장 선호하는 연령대는 평균 53세로 나타났다. 사회적 경험을 두루 갖춘 중장년층을 선호하는 것. 더욱이 아파트관리소장은 정년이 없어 70대에도 근무할 수 있다. 아파트 관리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인 수입이다. 집합건물 관리기업 ‘우리관리’에서 소속 관리소장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관리소장의 월평균 급여는 380만 원, 평균 연봉은 4555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증 취득 방법 주택관리사 자격증의 정식 명칭은 주택관리사보(Housing Manager)다.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전문자격증이다. 자격 시험과 관련된 정보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웹사이트 큐넷(q-net.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1차, 2차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올해 1차 시험은 7월 9일(토), 2차 시험은 9월 24일(토)로 예정되어 있다. 1차 시험은 민법, 회계원리, 공동주택 시설개론 총 세 과목이다. 민법은 총칙, 물권, 채권 중 총칙, 계약 총칙, 매매, 임대차, 도급, 위임, 부당이득, 불법행위 등에 대해 다룬다. 공동주택 시설개론은 목구조, 특수구조를 제외한 일반 건축구조와 철골구조, 공기조화, 냉동설비, 홈네트워크를 포함한 건축설비 개론 및 장기 수선계획 수립 등을 위한 건축 적산이 포함된다. 1차 시험은 객관식 5지 선다형이고 과목당 5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1차 시험은 절대평가로 매 과목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다. 각 과목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 득점 시 합격이다. 2차 시험은 주택관리관계 법규, 공동주택관리 실무 두 과목을 본다. 공동주택관리 실무는 시설 관리, 환경 관리, 공동주택 회계 관리, 입주자 관리, 공동주거 관리, 이론·대외업무, 사무·인사 관리, 안전·방재 관리 및 리모델링 등에 대한 실무적인 내용을 다룬다. 2차 시험은 과목당 50분으로 1차와 동일하지만 주관식 문제가 있다. 더욱이 2020년부터 2차 시험은 상대평가로 바뀌어 고득점을 받아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시험이 1차, 2차로 나뉘어 있어 시험 준비부터 취업까지 빠른 경우 1년 만에 가능하다. 그러나 연령이 높고 시험 합격에 자신 없는 수험생이라면 1차는 올해, 2차는 내년에 합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짜고 천천히 준비하는 것도 좋다. 자격증 취득 후 아파트 관리소장 되는 법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바로 주택관리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500세대 미만 아파트에서 근무 가능하다. 여기서 3년의 경력을 채워야 정식 주택관리사 자격이 주어진다. 정식 주택관리사가 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으로 취업할 수 있다. 자격증 취득 후 취업하는 방법은 공채와 사채 두 가지가 있다. 공채는 위탁 관리업체에서 공개 채용으로 뽑는 것이고, 사채는 인맥 등으로 빈자리가 났을 때 들어가는 방법이다. 보통 공채로 많이 취업한다. 공채는 대부분 10~12월에 진행된다. 때문에 주택관리사로 첫발을 딛는 사람이라면 2차 시험 합격 여부를 예상해 취업 준비를 바로 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다. 더욱이 아파트 관리소장이 맡는 업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요구되는 능력도 다양하다. 먼저 경리 업무가 가능한 관리자를 선호한다. 업무 자체가 경리겸직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리실무, 전산회계 같은 회계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면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전기·소방·위험물·보일러 기사 또는 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친환경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 조경과 관련된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플러스 요인이 된다 ◇“안정적인 월급, 정년 없어 좋아” 황보반 아파트 관리소장 황보반(63) 관리소장은 원래 응급의료기기 납품을 하는 사업가였다. 사업이 어려위지면서 2011년 일을 접게 됐고, 아내의 추천으로 아파트 관리소장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10여 년 전부터 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황보 소장은 “내가 돈을 제대로 못 버니까 아내가 강력하게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라고 했다. 그동안 아내를 고생시켰으니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 일을 하기로 했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그해부터 그는 아파트 전기기사로 일했다. 동시에 주택관리사보 자격증 준비를 했다. 2년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했고, 2014년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전기기사 경력에 자격증까지 취득한 뒤 정식으로 아파트 관리소장이 된 것은 2016년 1월 1일이다. 황보 소장은 자격증 취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대해 “기술자 입장에서 1차 시험 과목인 회계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도 아파트 관리소장은 경리나 회계와 관련된 업무가 많다 보니 그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하기에 더 좋은 직업 같다고 짚었다. 덧붙여 황보 소장은 아파트 관리소장의 장점으로 안정적인 월급과 정년이 없는 점을 꼽았다. “사실 우리 나이대에 일정하게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다는 게 어렵잖아요. 300만~4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아파트 관리소장의 장점이죠. 저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은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반대로 단점도 많다고 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관리소에서는 공용 부분만 관리하는데, 입주민들이 전유 부분도 관리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 예로 아파트 유리창은 전부 전유 부분입니다. 난간대만 공용이에요. 그런데 그 유리창 청소를 관리비로 하재요. 그건 불가능한 거예요. 또 그거를 공동구매 개념으로 하자고 해서 일을 진행해주면 꼭 악성 민원이 발생해요. 청소가 잘못됐다든지 같은. 직원들이 전유 부분이라서 안 해줘도 되는 것을 도와줄 때도 있어요. 그러면 고맙다고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당연히 여기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될 때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서 보람도 느낀다. 황보 소장은 “우리 일은 총괄적인 관리를 하는 거다. 기술, 행정, 조경까지 모든 것을 한다”면서 “3년에 한 번씩 법적인 절차에 따라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제는 전기 검사를 했는데 무사히 잘 마쳤다. 그럴 때 안도감과 또 하나의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입주민들에게 “서로 상식과 순리가 통했으면 좋겠다. 아파트가 새것이라도 결국에는 점점 낡아지지 않나. 관리와 보수를 잘해서 오래 유지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2022-04-22 08:56
-
- 성우 나이 40세, 새로이 눈을 뜨다
- 눈을 뜬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선 푹 자고 일어나 아침을 맞을 때 쓴다. 눈을 떠야만 하루치 인생이 시작되고, 눈을 감으면 막이 내리기 때문에. 이제껏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깨우쳤을 때도 눈을 떴다고 한다. 성우 서혜정(61)은 새롭게 눈뜨기를 즐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롭게 시작한 하루치 인생이 기대돼 좋고, 일상 속 소소하지만 빛나는 깨달음이 반가워 좋다. 화수분 같은 목소리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에 성우라는 한 우물을 40년 파온 경력까지 합쳐지니 금상첨화다. 서혜정 성우는 1982년 KBS 공채 17기 성우로 일찍이 데뷔했다. 이후 1988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외화 시리즈 ‘엑스파일’(X-Files)의 데이나 스컬리 역, KBS ‘생로병사의 비밀’, tvN 예능 프로그램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의 내레이션 등을 맡으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원 성우과 겸임교수이자 서혜정낭독연구소 소장으로서 성우 지망생들을 만나고 있다. 양반 교육이 터준 성우의 길 ‘국민 성우’의 될성부른 떡잎이 일찍이 보였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양반가 핏줄인 어머니로부터 ‘양반 교육’을 받았다. “양반은 말을 빨리 하면 안 된다. 밥 먹을 때 소리 내서 말하면 안 되며,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서도 안 된다. 양반이란 걸을 때도 방정맞지 않게 걸어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셨어요. 일부러 하신 건 아니었지만 성우 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언어 훈련을 받았던 셈이죠.” 게다가 어릴 적 집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드라마는 그가 목소리에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라디오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던 아이는 자라서 방송반 활동을 하고, 서울예대 방송 경연대회에서 대상과 개인상을 따내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경연대회 입상은 수시 특별전형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는 무리 없이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그도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여느 새내기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5월에 성우 선배의 추천으로 시험 삼아 본 KBS 공채에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대학가요제도 나가고,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었던 꿈 많은 새내기는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휴학계를 내야 했다. 당시 KBS에 막 입사했을 때의 나이 스무 살. 동기 내에서도 여덟 살까지 차이가 났다. 막내 중의 막내였던 그는 어린 나이에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이었죠.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울기도 많이 울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차이도 상당했거니와 나는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하다, 고로 꾸지람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선배들이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성우실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훈훈하고 따뜻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혼낼 때도 끝에 가서는 꼭 안아주거나 밥을 사주셨어요.” 칭찬은 천재를 노력하게 만든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은 막내 성우를 대성우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잘한다, 목소리 좋다’는 칭찬이 더 듣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무슨 배역을 맡아왔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가리지 않고 대본을 받아 들었다. 가장 애정 가는 배역은 뭐니 뭐니 해도 ‘엑스파일’의 스컬리다. ‘엑스파일’은 1994년 10월 31일부터 2002년 10월 26일까지 방영된 미국 드라마다. 한 인물을 10년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기회는 그때도 지금도 흔치 않기 때문에 애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컬리는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여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이성적이며 똑 부러지고 빈틈없는 과학자. 타고난 성격이 정반대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단다. 반면 덮어두고 싶은 ‘흑역사’도 있다. 1992년에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의 휘트니 휴스턴 역이 그렇다. 녹음을 앞두고 목을 쓰는 성우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감기에 걸리고 만 것. 수많은 스태프들이 더빙 작업을 위해 어렵게 맞춘 일정을 미룰 수 없어 녹음 부스로 향했지만, 결국 기대한 만큼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돌이켜봐도 여전히 아쉽다. 1982년부터 성우 일을 했으니 경력만 40년이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녹음 부스를 들락거렸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베르사유 궁전부터 추억의 외화 시리즈, 유명 애니메이션, TV 프로그램 내레이션까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다. 장을 보다가 직원에게 찾는 제품이 없는데 갖다달라고 요구하면 부탁한 물건 말고 ‘혹시 성우가 아니냐’는 질문부터 날아들곤 했다. 녹음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옛날 방송 속 자신의 목소리에 지레 놀랐던 적도 있다. “저는 성우로서 할 건 다 해봤어요. 그래서 이젠 젊을 때처럼 일에 미쳐서 살지도 않고, 하나라도 더 하려고 욕심부리지는 않아요. 대신 그날그날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 하죠. 집에서 요리할 때나 청소할 때, 오디오 녹음이 필요한데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요.” 일에 미쳐 살던 40년 세월이 만들어낸 변화는 아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거창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저 매일을 열심히 살다 보니 이 위치에 와 있더라고 회고할 수 있는 사람. ‘재능 재벌’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늙지 않고 아무리 써도 축나지 않는 목소리를 나누는 일도 그렇다. 자칭 ‘재능 재벌’인 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활동에 나선 지도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배리어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어르신도, 장애인도 누구나 장벽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화면 해설과 자막을 동시에 제공한다. 화면 속 진희라는 인물이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장면이라면, ‘진희가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라고 해설해주는 식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는 2000년대부터 배리어프리 버전 영화를 제작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그는 배리어프리 내레이션 녹음만 벌써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는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의 협약으로 시니어 배리어프리 활동가 양성과정 중 하나로 창설된 수업을 새롭게 진행했다. 그는 교육과정 중 더빙과 내레이션 녹음하는 법에 대해 8주가량 강의했다. 녹음의 기초부터 영화 각 장면에 대해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본어 대사를 한국어로 더빙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직접 대본을 써서 제작한 영화에 시니어들이 더빙한 배리어프리 영화는 지난해 ‘2021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기대 이상이었어요. 이미 목소리와 발성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모여서 그런지 무언가 가르쳐드리면 곧잘 흡수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처음 시행한 게 워낙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같은 과정이 개설될 것 같아요. 다만 참여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 수강신청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겠어요.” 그는 서혜경낭독연구소에서도 시니어 성우 지망생을 만난다. 기초부터 심화, 전문가반 등 다양한 낭독 강의를 제공하는 연구소를 지난해에만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거쳐갔다. 처음에는 목소리에 자신 있어 찾아왔다가 낭독의 매력에 빠져 오디오북 내레이터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성우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낭독이다. 사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추천하고는 있지만, 시니어를 대상으로 가르칠 때는 특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목소리는 늙지 않아요. 그런데 분명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이건 말소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신체 기관, 즉 조음 기관들이 둔해져서 그래요. 나이가 들수록 말할 일이 줄어들거든요. 그러면 혀, 입술, 턱, 치아 같은 조음 기관이 점차 굳으면서 둔해져요. 목소리가 변한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미 줄어버린 ‘말할 기회’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아하는 글을 혼자 소리 내 읽는 일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직접 말하고 본인 목소리를 직접 듣는 낭독은 눈으로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묵독보다 뇌를 더 자극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꾸준히 낭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젊어지려면 조음 기관을 깨워내고 훈련해야 된다는 것. 오죽하면 그가 써낸 책 제목이 ‘나에게, 낭독’일까.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는 강의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그는 최근 낭독연구소 덕분에 의외의 효과를 봤다. 낭독 수업이 세대 화합의 장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 청년들은 중장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중장년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세상에 대해 배우는 식이다. 낭독을 위해 모인 사람들과 ‘눈을 뜨는’ 기쁨을 함께할 수 있어 요즘 그는 기쁘기만 하다. 만 60세, 새로운 서혜정의 ‘지금 이 순간’ 그는 사람 나이 60세 때 진정한 ‘인간’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까지는 몸이 성장하는 시기이고, 스물부터 예순까지의 40년은 인간이 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시기라는 것. 벼는 익어야 고개를 숙이듯, 60년이 지나야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그는 새로 태어난 지금이 만족스럽다. 60세인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은 나이도 없다. “올해로 103세이신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딱 100세 됐을 때 했던 인터뷰 기사가 기억에 남아요. 기자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분 대답이 60세였어요. 기자가 더 젊은 시절을 놔두고 왜 60세를 골랐느냐 되물으니 ‘60세는 돼야 철이 들어 그렇다’고 답하셨거든요. 60세가 된 지금 100% 공감해요.” 최근에는 ‘사랑’에 대해서도 눈떴다.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데, 그런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생각을 고쳐먹은 지 얼마 안 됐다. 그렇다고 거창하거나 숭고한 희생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속을 잡을 때 나보다 남에게 더 편한 곳으로 장소를 정하고, 나보다 남을 위해 먼저 기도할 줄 알게 됐다고나 할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삽입곡 ‘지금 이 순간’이 그의 테마곡이다. 그의 목표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이다. 오늘 만나는 사람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마실 나가듯 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즐길 뿐이다. 다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강렬한 느낌은 곧 경험이 뒷받침해주는 근거 ‘있는’ 직감이다. 매일에 충실했던 40년 세월이 국민 성우 서혜정을 만들었다. 그가 오늘보다 내일 더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리란 직감이 들었다.
- 2022-04-22 08:56
-
- 자연주의 인기로 몸값 치솟는 ‘내추럴 와인’
- 요새 유행하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나 블로그를 보면 소위 힙한 ‘인싸’들 사이에서 내추럴 와인에 대한 해시태그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다양한 취향과 철학을 바탕으로 감성을 드러내고 즐기는 마니아들이 늘어나는 추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추럴 와인이 짠!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산업 발전의 격동기인 1980~90년대에 이어 2000년대부터는 웰빙(Well-being), 로하스(LOHAS) 등의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친환경’이 화두로 떠올랐다.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내추럴 와인은 친환경주의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와인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유기농·친환경 등의 자연주의 방법으로 생산한 순수한 와인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매력물로 등장했다. 해외에서도 내추럴 와인이 확산되는 추세다. 2016년 10월 ‘뉴욕 타임스’에서는 ‘The Next Generation of French Wine Makers’라는 헤드라인과 ‘Bring on Natural Wine’이라는 제목으로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는 젊은 와인메이커와 내추럴 와인 트렌드에 대해 조명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이미 10여 년 전부터 내추럴 와인을 소비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내추럴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유럽과 파리를 중심으로 최근 4~5년 사이에 빠르게 주목받고 있는 내추럴 와인이 이젠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이런 현장의 인기에 힘입어, 현대 문명의 도움으로 위치기반 서비스를 활용한 내추럴 와인 가이드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Raisin’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파리, 도쿄, 뉴욕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내추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좌표가 포도송이처럼 오밀조밀하게 뜨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추럴 와인 관련 시음회나 행사도 점점 확산되고 있으며, 파리 와인 위크엔드(Paris Wine Weekend), 로 와인 페어(Raw Wine Fair), 루트 스톡 시드니(Root Stock SYDNEY)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와인 에이전시 비노필(Vinofeel)에서 주최한 살롱 오(Salon O)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내추럴 와인 시장이 점점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렇듯 높아진 관심만큼 국내에서도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주의 와인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내추럴 와인의 갑작스러운 인지도 상승이 내추럴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게 현실이다. 아직 유럽에서조차 내추럴 와인에 대한 정의가 없다. ‘Life is too short to drink bad wine.’ 영국 유학 시절 우연히 들른 와인 상점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인생은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 너무 짧다’라는 강렬한 문구에, 나쁜 와인이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나쁜 와인보다는 다양한 와인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봤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와인이 있다. 같은 품종이라 하더라도 생산지의 테루아, 양조가의 철학, 와인이 유통되는 이동 마일리지와 컨디션에 따라서도 최종 소비자가 경험하는 와인은 다채롭게 느껴질 수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존재하는 내추럴 와인이 최근 뜨겁게 재조명받고 있는데, 내추럴 와인, 오가닉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인과 내추럴 와인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연배우를 위해 필요한 연출 과정은 매우 복잡하지만 어쨌든 포도와 효모가 주인공이다. 포도 재배와 양조 과정에서 약간의 다른 점이 각각의 와인 명칭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품질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와인을 편의상 컨벤셔널 와인(Conventional Wine)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와인이라고 해서 품질의 고저(高低)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널리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와인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효자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내추럴 와인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테루아, 혹은 포도의 재배와 와인 생산 방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참에 내추럴 와인과 유기농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유기농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내추럴 와인의 포도 재배와 양조 방법의 기본은 일단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유기농 와인은 화학비료나 제초제, 살충제, 유전자 변형물(GMO), 곰팡이 제거제 등의 사용을 지양해서 포도를 재배한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유기농 재배를 기본으로 달의 움직임(음력)에 따라 포도를 재배하고, 규정(바이오다이내믹 농업 규정 ; BD 500~508 등 9개의 특별퇴비와 소뿔점토 등을 사용)에서 정하는 퇴비만 사용한다. 포도 수확도 기계 수확이 아닌 손으로 수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유기농 와인의 포도밭은 생물의 다양성과 조화를 존중한다. 100% 자연 부산물 퇴비만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며, 유기농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1920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Dr.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에 의해 시작되었다. 혹자들은 유기농 와인보다 상위 단계라고 하는데, 포도밭을 자체적인 자연 순환이 가능한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추럴 와인이란 무엇인가? 내추럴 와인은 언제나 존재해온 와인이며, 전혀 새로운 존재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식량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농업 분야에서 신품종 개량과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기술적 혁신을 통해 식량 생산이 증가했다.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재배에도 화학약품 등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적인 방법으로 만든 와인은 설 자리를 위협받게 되었다. 내추럴 와인 캠페인을 최초로 시작한 이는 이자벨 르게롱(Isabelle Legeron)이다. 아버지와 삼촌 등 친척들이 화학물질 노출 등에 기인한 암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걸 목격한 그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내추럴 와인이 필요하며, 땅의 정화 작업과 함께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혹은 바이오다이내믹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 생산하는 것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조정만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개개인의 와인 생산자가 적은 포도 수확량으로 정제된 효모가 아닌 야생 효모를 사용하고, 대부분 청징(Fining)과 정제(Filtering) 과정을 최소화하거나 시행하지 않고 이산화황의 첨가도 배제한 상태로 와인을 생산한다. 매년 생산량과 품질의 일관성을 보장할 수 없지만, 환경 사랑과 장인정신에 가치를 두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 만점이다. 유니크하고 재미있는 레이블 디자인도 인기몰이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지만 생산 과정 중 발생하는 천연 이산화황의 존재로, 각 와인 스타일별 SO2 허용량이 정해져 있기도 하다. 아쉽게도 현재 내추럴 와인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와 법적인 규정은 없다. 하지만 건강과 자연, 환경 등의 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요즘 내추럴 와인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내추럴 와인은 테루아라는 작곡가가 만든 클래식 음악을, 연주자인 와인메이커가 품종이라는 악기를 이용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내추럴 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와인 정보에 대한 목마름과 신비주의가 와인을 더욱 멋있어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이기도 하다. 유기농 와인, 내추럴 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러저러하게 와인 라벨 판독은 끝났지만, 정말 내추럴 와인인지, 유기농법이 확실한지, 관련한 인증이 있는지, 최소한의 규정은 지켰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하다. 정식 인증을 거친 와인에 더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추럴 와인에 대한 인증은 있을까? 프랑스에는 AVN((L'Association des Vins Naturels, www.lesvinsnaturels.org)이라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내추럴 와인 인증 마크가 있긴 하지만 모든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이 인증 마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생산자의 와인 생산에 대한 풀 스토리를 들어야만 비로소 내추럴 와인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아직 프랑스에서도 내추럴 와인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았다고 하니 하루 빨리 관계 법령이나 최소한의 정의가 내려졌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내추럴 와인의 정체성이 단 몇 마디 말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니, 지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모순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추럴 와인에 대한 인증과 등급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셀프 어필(?)을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이름표’가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이름표’가 있는 와인이 등장했다. 내추럴 와인만 수입하는 국내의 한 수입사는, 회사명 이니셜을 딴 동그란 스티커를 와인병에 붙여서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우리나라 정부기관에서 공식 인증하는 마크도 아니고 식품위생법에 근거한 스티커도 아니다. 해당 수입사는 수입할 내추럴 와인을 선정한 후 여러 가지 까다로운 수입 과정과 셀러링 조건 등을 만족하는 와인에만 스티커를 붙인다고 하는데, 엄선해서 수입하는 와인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녹아 있는 듯하다. 이렇게 내추럴 와인 소비자와 애호가들을 위해 이름표를 붙여주는 생산자나 수입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 구수한 트로트 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 2022-03-31 08:23
-
- 4차 산업시대 고령층 재취업, "73세까지 일하고 싶어"
- 100세 시대에는 은퇴란 없다는 말이 있다. 은퇴 후 재취업으로 제2의 직업을 가지며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중장년층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연령은 49.3세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남자는 51.2세, 여자는 47.7세다. 더불어 고령층은 평균적으로 73세까지 일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층의 일하는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이 58.7%로 가장 많았고 ▲‘일하는 즐거움·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고 싶어서’(33.2%) ▲‘무료해서’(3.8%) 등 순이었다. 결과를 보면 실제 평균 은퇴 연령과 희망 연령에는 20년이 넘는 차이가 발생한다. 고령화 사회에 신중년 일자리가 더욱 증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신중년들의 일자리는 단순 노무직을 떠나 4차 산업시대를 맞아 점점 전문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신중년 고용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들도 함께 짚어봤다. 4차산업과 전문성 2021년 5월 55~79세 고령층 인구는 1476만 6천 명으로 전년동월대비 49만 4천 명(3.5%)이 증가했으며, 15세 이상 인구(4,504만 9천 명)의 32.8%를 차지했다.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8.0%로 전년동월대비 0.5%p 상승했고, 고용률은 56.0%로 전년동월대비 0.7%p 상승했다. 55~64세 고용률은 67.1%로 전년동월대비 0.2%p 상승했으며, 65~79세 고용률은 42.4%로 2.0%p 상승했다. 고령층 취업자의 산업별 분포를 보면,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이 38.1%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도소매·숙박음식업(17.6%), 농림어업(13.6%) 순으로 높았다. 직업별 분포를 보면, 단순노무종사자(25.6%), 서비스‧판매종사자(22.3%), 기능·기계조작 종사자(22.3%)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전문 기술직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이 꼽은 신중년 유망 직업은 보건, 의료, 생명공학, 사회복지 분야 등이다. 특히 데이터 보안, 항공(드론) 관련 직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4차 산업시대를 맞아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이 높아짐에 따라 재취업을 원하는 신중년들도 전문적인 기술과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 이제 단순 노동직을 원하면 안 된다는 것. 단순 노동직은 단기 일자리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어 이전처럼 농사만 지을 것이 아니라 스마트팜을 운영하면서 디지털 사회에 맞춰 발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년 일자리 정책 먼저 신중년의 고용을 위한 정책으로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이하 ‘적합직무’) 제도가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된 적합직무 사업은 중소·중견기업이 신중년 적합직무에 50세 이상 구직자를 채용하면 1년간 최대 960만 원의 고용장려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우선지원대상기업(산업별로 상시 사용하는 근로자 수가 일정 기준 이하인 기업) 등 기업들은 장려금을 지원받아 필요한 직무에 적합한 신중년을 채용해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단 우선지원대상기업 또는 중견기업은 50세 이상 구직자를 채용하려는 경우 지원받을 수 있다. 우선지원대상기업은 최대 월 80만 원, 중견기업은 최대 월 40만 원까지 지원한다. 지원 기간은 최대 1년으로 승인 후 3개월 단위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노동부는 지난해 디지털·환경 분야의 20개 직무와 인구구조·시장 변화에 따라 구인 수요가 늘어난 장례지도사·애완동물 미용사 등 9개 직무 등 총 29개 적합직무를 추가로 지원대상에 포함하며 신중년의 고용을 장려했다. 이와 함께 장년 근로시간단축 지원금 제도도 있다. 근로시간단축으로 감소된 장년 근로자의 임금 일부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현재 직장에서 18개월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 근로자로서, 주당 근로시간을 32시간 이하로 단축하면서 임금이 줄어든 경우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대상이 되면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단축 전후 임금 차액의 2분의 1을 최대 2년간 연 1080만 원 한도로 지원한다. 사업주에게는 근로시간 다축 적용 근로자 1인당 최대 2년간 월 30만원의 간접노무비가 지원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신중년을 위한 일자리 지원 센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4차 산업시대에 발맞춰 전문성을 길러주는 교육도 확대되고 있다. 자신이 사는 지역과 업무 능력을 파악해 자신에게 맞는 지원센터를 찾아보자. 먼저 대표적으로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있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만 40세 이상의 중장년에게 생애경력설계, 전직, 재취업 등과 관련된 교육을 제공한다. 대표 프로그램으로 신중년 인생 3모작 패키지와 생애경력설계서비스, 전직·재취업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중장년이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직업역량을 강화하는 맞춤형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고령자인재은행은 만 50세 이상 장년 구직자들에게 직업을 소개해주는 곳이다. 현재 44개소가 있다. 이밖에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나 자신이 사는 지역의 50+센터나 일자리 센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2022-03-29 10:33
-
- 노후 준비, 4대 크레바스를 조심하라
- 은퇴를 앞둔 86세대는 걱정이 많다. 우선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다는 점이 공포스럽다.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신체적 변화도 두렵다. 일만 열심히 했던지라 은퇴 후 닥쳐올 방대한 시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런 그들을 위해 일하는 은퇴자 컨설턴트가 있다. 같은 고민을 공유하기에 그의 자산관리뿐만 아니라 인생 2막 설계 서비스는 호응도가 높다. 동년배 친구와 강사, 컨설턴트를 넘나들며 고객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돕는 86세대 이관석 신한은행 은퇴솔루션 컨설턴트를 만났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명예퇴직한 회사에 재취직한 케이스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실제로 은퇴해본 자산관리 경력자가 필요하다는 은행장과 퇴직연금사업그룹장의 판단으로 이뤄진 일이다. 명퇴 전 자산 규모 50억 이상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산관리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전에 비해 보수도 적고 업무량도 소일거리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일은 만족스럽다. 그간 해왔던 업무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일할 수 있어서 현재 맡고 있는 ‘은퇴 자산관리 컨설팅’은 앞으로 발전할 유망 분야를 개척한다는 자부심도 있다. 무엇보다 은퇴를 앞둔 동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차다. 일대일 은퇴 컨설팅을 진행할 때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을 우선시한다. 솔루션 제공은 그 다음 일이다. “본인은 은퇴 후 일터를 떠나 여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데 백세 시대이니 무조건 일하라고 한다거나, 계속 일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준비가 잘 되어 있으니 일터를 떠나 여행하고 놀러 다니라고 조언한다면 듣는 사람 마음이 편할까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이미 은퇴를 경험해본 데다 숱한 컨설팅 경험으로 다져진 그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1년째 하고 있는 컨설팅과 강의가 마냥 즐겁다. “86세대, 수혜자이자 낀 세대” 그가 평가하는 86세대는 고도성장의 수혜자이자 자식 부양을 받지 못하는 낀 세대다. 어릴 적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경제·사회적 신분 상승이 가능했고, 집도 한 채씩은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누렸다는 것. 하지만 정호승 시인이 말했듯 누구나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는 비슷하다. 86세대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지만 자식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그런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단연 건강이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몸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 자리의 대화 주제는 거의 대부분 건강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아졌는지, 그래서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무엇이 효과가 좋았는지 등을 얘기해요. 서로 가진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죠.” 건강 다음은 전혀 달라질 인생 2막에 대한 걱정이다. 장수는 축복이라는 것도 점차 옛말이 되어가는 시대, 요즘 86세대는 ‘오래 사는 위험’에 대해 고민이 많다. 은퇴 후 40~45년을 살아가야 할 이들의 고민거리를 한 가지씩 추려내니 무려 다섯 가지나 된다. 첫째 유병(有病)장수, 둘째 무전(無錢)장수, 셋째 무업(無業)장수, 넷째 독거(獨居)장수, 마지막으로 투쟁(鬪爭)장수다. “돈 걱정 없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지요.” 고객들의 고민 대부분은 그도 공감하는 바이나, 무전장수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건강만큼이나 노후생활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어찌 보면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매달 받던 월급은 끊기고, 다달이 지급되는 국민연금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우니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걱정이에요.” 2018년 통계청이 발표한 은퇴한 노부부 월 적정생활비는 283만 원, 최저생활비는 197만 원이다. 그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는 국민연금에 더해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퇴직연금제도를 이용하면 충분한 노후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퇴직연금을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했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므로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은퇴자 자산관리 컨설팅에 나설 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찾지 말고 연금으로 수령하라는 것. 세금 절세는 물론 금융소득종합과세, 건강보험료 등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은퇴자가 빠지면 안 될 4대 크레바스 크레바스(Crevasse)란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고 깊은 틈이다. 한번 빠지면 구조되기 어려워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지형으로, ‘소득 크레바스’나 ‘연금 크레바스’ 등 경제·사회적 위험 요소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컨설팅, 은퇴자 대상 강의에서 4대 크레바스에 대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배우자 크레바스’는 은퇴한 남성들에게 특히 위험한 크레바스다. 은퇴 후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칫하다 크레바스에 빠져 이혼하게 되면 앞으로의 노후가 암담해지는 것은 물론, 살아온 인생 자체가 허망해지기 쉽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를 보세요. 최근 배우자 크레바스에 빠져 그가 모은 재산이 반토막 나고, 그간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는 자식 크레바스다. 자신의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에도 자식의 유학, 결혼, 사업 자금을 대다 노후가 불행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지원해주라고 말한다. 과도하게 지원하다 노후 자금이 축나서 훗날 부양 부담을 지우는 것보단,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두 아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법적으로 성인인 자녀에게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는 한도는 5000만 원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미리 말했지요, ‘너희 결혼할 때 5000만 원씩 주겠다. 단, 어떠한 부양도 받지 않겠다’고요.” 세 번째 크레바스는 사업이다. 은퇴하는 사람 중 다수가 재취업이나 창업을 꿈꾼다. 현금 흐름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건 재취업이지만, 퇴직금이라는 목돈을 갖고 있는 이들은 창업의 유혹에 곧잘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는 창업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에 하던 일이 있는데 고작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느냐며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직원이나 은행원, 군인, 공무원, 교사처럼 세상사에 비교적 적게 노출된 이들이라면 더더욱 피해야 해요. 생각보다 손실이 나기 쉽고, 그 손실을 메우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크레바스는 투자다. 은퇴 자금으로 주식, 부동산 외에도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하며 우려를 표했다. 제대로 된 지식 없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큰 손실을 입고 그 충격에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추천하는 보편적인 투자 방법은 ‘100-나이 투자법’이다. 숫자 100에서 현재 나이를 뺀 숫자의 비율만큼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예금이나 TDF를 활용해 안정적인 운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나이가 60세라면, 100에서 60을 뺀 40%만큼만 투자하고 나머지 60%는 예금에 넣어두는 식이다. 사람마다 투자 성향이 다르므로 각자에게 맞는 투자법이란 가지각색이기 마련이나, 그는 변동성이 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을수록 소액만 투자할 것을 권한다. 자산관리 컨설팅 외에 비재무 은퇴 컨설팅도 맡고 있는 그는 고민하는 86세대에게 다양한 조언을 건넨다. 세 가지 이상의 취미를 만들어둬라, 동호회나 도서관 등 일정하게 외출할 장소를 만들어둬라 등등. 그럼에도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을 꼽으라면 역시나 건강이다. 여태껏 현업에 매진하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86세대가 인생 2막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돈이든 취미든,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건강이 우선이고, 그 다음 노후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세요. 노후에 월급처럼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을 마련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 2022-03-21 08:11
-
-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어머니”
- 119만 평의 대지에 웅장한 건물,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815개의 태극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뭉클해진다. 1919년 3월 1일 그날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103주년 3·1절을 앞두고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시준(68) 독립기념관 관장을 만나 우리 역사에서 독립운동이 중요한 이유와 의의를 들어봤다. 지난해 제12대 독립기념관 관장에 취임한 한시준 관장은 평생을 ‘독립운동’을 연구한 역사학자다. 그는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1988년부터 2019년까지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한국광복군, 대한민국임시정부, 한중 공동 항일운동 등을 연구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한시준 관장은 “제 전공이 독립운동사여서 독립기념관이 만들어질 때부터 교육, 강의도 하고 자문을 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은 독립기념관 내에 있는 한국독립연구소 연구소장을 맡았다”며 독립기념관과의 특별한 인연을 얘기했다. 더욱이 그는 기존의 관습을 깨고 선출된 의미 있는 독립기념관 관장이다. 한시준 관장은 “독립기념관이 건립되고 대대로 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닌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학자가 관장을 맡은 건 제가 처음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그만큼 한시준 관장이 독립운동 전문가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벌써 1년을 보낸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독립기념관을 어떻게 이끌고 싶을까. “밖에서 볼 때와 관장으로 안에서 보는 게 다르더라고요. 독립기념관을 이렇게 크게 지어놓고, 국민뿐만 아니라 정부도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워요. 독립기념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념관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념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900년대 20세기 전반기에 제국주의가 만연했고 많은 약소국들이 식민지가 됐죠. 식민지가 된 나라들은 독립운동을 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거의 다 독립했어요. 그런데 독립한 나라들 중에 우리나라처럼 독립기념관을 엄청난 규모로 지어놓고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고 교육하는 나라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독립기념관이 세계적인 기념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1945년에 해방했잖아요. 우리가 독립운동을 해서 나라를 되찾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미국이 일본하고 싸워서 이겨 어부지리로 해방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우리가 일본과 싸워서 나라를 되찾았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크죠.” 독립운동의 중요성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 민족이 독립하기 위해 민족운동을 벌인 것을 독립운동이라고 한다. 특히 1919년에는 한국 독립운동 역사 최대의 독립운동인 3·1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의 영향으로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한시준 관장은 독립운동이 우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에 대해 “한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민족한테 나라를 빼앗겨본 적이 없다. 그런데 1910년 처음으로 일본에 나라를 뺏겼고, 다시 되찾아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을 다시 살아나게 한 것이 바로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시준 관장은 3·1운동에 대해 “대한민국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폭압적 지배에 맞서 일어난 비폭력 만세 시위운동이다. 전국을 넘어 해외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3·1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유관순 열사가 꼽힌다. 한시준 관장은 3·1운동에서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부분에 주목했다. 독립선언서에는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한 관장은 “이 핵심 문장은 대한민국이 건립되는 계기가 됐다”며 “3·1절과 대한민국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짚었다. 이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됐다. 3월 1일에 독립국을 선언했기 때문에 국가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 그러나 이날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는 것이 맞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한민국 건국일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이라는 입장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한시준 관장은 “역사적 사실로 보면 1919년 4월 11일이 맞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그동안 암묵적으로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에 세워졌다고 봤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고 2008년 광복절에 ‘건국 60주년’ 행사를 열면서 잡음이 불거졌다. 이에 한시준 관장은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라며 1919년 4월 11일을 건국일로 인정받았다. 문 대통령은 2019년을 ‘건국 100주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건국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확실하게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세워지면서 우리나라 역사는 확 바뀌었어요. 단군 때부터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할 때까지 국가의 주인은 군주였죠. 그때는 국민이라고 하지 않고 백성이라고 했어요. 백성은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죠. 지금은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고, 권리도 갖고 있어요.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주권을 처음으로 행사하게 됐으니 그때 국가가 세워진 것이 맞는 거죠.” 한시준 관장은 현재도 역사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 역사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 관장은 “1945년 해방 후를 현대사라고 한다. 보통 그때 우리 역사가 새롭게 출발했다고 생각하지만, 독립운동에서 계속 이어진 것이다. 독립운동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해방 시기에도 살고, 그 이후에도 살면서 계속 연결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임시의정원’이라고 국회도 만들었어요. 국군도 이미 독립운동 시기에 독립군, 광복군이 있었죠. 지금 대한민국 정부도, 국군도, 국회도… 한국의 현대사는 1945년 해방되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 시기의 역사적 경험이 그대로 이어진 거예요.” 독립기념관, 전 세계에 알릴 것 독립기념관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리고 후세를 위한 산 역사의 교육장으로 삼기 위해 관련 사료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민족 기념관이다. 1982년 건립이 추진됐고,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한시준 관장은 “국민들이 성금을 내서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었고, 관련 자료도 많이 기증해주셨다”면서 국민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의 한 해 관람객 수는 약 180만 명이라고 한다. 지난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114만 명에 그쳤다. 한시준 관장은 “그러나 관람객 중에 외국인의 비율은 1%도 안 된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전시가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거의 오지 않는 것”이라고 문제점을 짚었다. 이에 따라 관장으로서 그의 목표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독립기념관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이다. 한시준 관장은 앞으로 2년 내에 ‘연합국(미국·중국·영국)과 함께한 독립운동’ 전시관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 1000평의 대규모 전시가 될 전망이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지난해 8월 ‘한중 공동 항전 특별전’을 열었고, 올해는 한미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미 공동 항전 특별전’을 개최한다. 한시준 관장은 “1945년에 광복군이 미국 OSS라는 정보기구에서 훈련을 받고 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보통 6·25 때 한미 동맹이 맺어진 줄 알지만 이미 오래전 맺어졌다”고 설명하며, 이를 들은 미군 장교도 놀랐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렇게 특별전을 통해 자료를 풍부하게 수집해 최종적으로는 ‘연합국’ 전시를 열 계획이다. “독립운동가들은 우리 혼자 힘으로는 일본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1910년에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서 차지했는데, 한반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을 알았죠. 일본이 중국, 러시아, 미국과도 충돌할 것을 예상했고, 일본이 그 나라들과 싸울 때 함께 전쟁한다는 전략을 세웠어요. 실제로 그분들이 예견했던 대로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고, 1941년에는 미국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으며, 아시아를 차지하면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도 침략했죠. 그래서 일본은 중국, 미국, 영국과 전쟁을 했어요. 우리는 그때 같이 연합해서 일본과 싸웠습니다. 우리나라가 연합국과 독립운동을 같이 해서 나라를 되찾은 것이죠. 그 전시를 보면 우리나라가 독립을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쟁취했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은 전략가였다. 한시준 관장은 많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조소앙 선생(1887~1958)의 업적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더욱이 한 관장과 조소앙 선생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20대 시절 한시준 관장은 사학과 학생이긴 했지만 사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군대를 가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군대에서 한 관장은 조소앙 선생의 조카를 만났는데, 그가 집에 있는 조소앙 선생의 책들을 갖다줬다고. 한시준 관장은 그 책들을 읽으면서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 특히 독립운동을 전문적으로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조소앙 선생은 독립하면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지 생각한 분이에요. 특히 선생은 삼균(三均)주의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했어요. 자본주의 국가도, 공산주의 국가도 각각 장단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선생은 자본주의가 가진 장점, 공산주의가 갖고 있는 장점을 모은 국가를 만든다는 논리를 세웠고, 그게 삼균주의예요. 인류 사회에서 누구도 세우지 못한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 한 사람이죠.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안중근 의사, 청산리 전투 등도 모두 훌륭하지만 저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던 조소앙 선생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박상돈 천안시장은 독립기념관에 ‘K-컬처 전시관’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시준 관장은 이에 대해 “독립기념관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계에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백범 김구 선생도 문화 국가를 세워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독립기념관의 취지와도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그때의 나라를 되찾으려는 간절한 움직임이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으로 이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한시준 관장은 ‘불가능에 도전하여 가능을 창조한 독립정신’이라고 말한다. 그 독립정신이 바로 대한민국 모든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여기 독립기념관에 오면 엄청난 정신, 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독립운동 정신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독립운동을 한마디로 비유할 때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달걀이고 일본은 바위죠. 달걀로 바위 못 깨잖아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과 협력하는 길로 갔잖아요. 독립운동가들이라고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낸 것이 독립정신이죠.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고 독립기념관에 오면 독립정신,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정신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으로 많이 많이 오세요.”
- 2022-03-01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