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대추꽃이 여물고 원추리꽃이 피었어요.
그간 잘 계셨는지요.
지난해 추석 지나 애들이 집을 장만했다고 해서 보고도 할 겸 찾아뵙고는 꽤 여러 달이 지났어요. 그때 선산에는 검불이 내렸고 큰 소나무 가지에서 부엉이가 귀를 쫑긋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두 분이 생전 그렇게 불화했는데 나란히 누워 산천을 바라보고 계시는 걸 보면 많은
봄비에 적신 웃음이 꽃잎처럼 퍼지는 것 같았다.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지난 5월 12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정동에 소재한 이화여자고등학교 유관순기념관이 그러했다. 그 안에는 기쁨, 반가움, 감격과 같은 밝은 감정들이 발랄하게 소용돌이쳤다.
1988년에 이화여고를 졸업한 88졸업생들은 준비된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마치 어제도 본 듯한 환한 표
연극 ‘돌아온다’가 초연 3년 만에 대학로 무대로 돌아왔다. 미투의 칼바람이 휩쓸어버린 이후 연극계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관객의 발길이 끊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연극 ‘돌아온다’의 재공연 소식을 듣고 찾은 혜화동은 조금이나마 다행스런 모습이다. 매진 행진을 이어가며 그리움과 먹먹함으로 수놓았던 연극 ‘돌아온다’. 초연에 이어 색감 따뜻한 영화로 찾
5년 동안 15번의 방어전을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챔피언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장정구(張正九·56). 사각 링 위에 올라서면 그는 한 마리의 야수로 변했다. 상대가 주먹을 맞고 쓰러지면 장내는 “장정구! 장정구!” 그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체육관 입관비로 1500원을 겨우 냈던 그가 대전료로 7000만 원을 받는 복싱 스타로 거듭나기
동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지인이 아무개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레 “왜 입원했는데?”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몸이 가려워서 입원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대답하는 지인의 목소리에는 부정적 음색이 뚜렷했다. 표정에도 몸이 좀 가렵다고 입원까지 하느냐는 핀잔이 완연히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 역시 중병이 아니라는 사실에
베트남 커피 진하게 한잔 내려서 거실 소파에 앉아 일간지를 펼쳐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새벽녘 잠결에 ’받들어 버린‘ 마나님의 분부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명을 좇아 먼저 베란다 구석에 있던 큼지막한 빨래 통을 옮겨온다. 아내가 덮고 자는 흰 이불을 그 안에 담는다. 세재를 세 가지나 섞어 골고루 뿌려준다. 충분히 적실만큼 물을 쏟아 붓는다
우리가 김구 선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였고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것 정도의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방 후 귀국했으나 이승만 정권과 뜻이 안 맞아 역사적으로 묻힌 부분도 많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김구 선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해줬다. 그러나 영화 제목만으로는 ‘대
거친 역사와 함께 살아온 작가 채만식의 후기작 이 무대에 오른다. 남편을 잃고 아들의 생사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최씨’. 그를 연기한 배우 강애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연출을 맡은 최용훈씨와는 오래된 친구이자 신뢰하는 동료인데 같이 하자고 해서 무조건 승낙했어요. 사실 작품도 안 보고 결정했죠. 너무 솔직했나요?(하
우리의 미술품 시장은 화랑과 경매 회사로 양분되어 있다. 물론 작가가 직접 개인적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개인전 기간에도 작가는 화랑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술품은 그리거나 만드는 예술인의 정신세계가 투영되기에, 각각의 개성이 다르고 장르가 다르므로 공산품이나 생필품처럼 쉽게 살 수가 없다. 제아무리 저명한 작가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