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4

120세까지 살기로 결심한 그가 시골을 즐기는 방법은?

입력 2026-09-24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전북 순창군 동계면 산골에 사는 공병린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큰길을 벗어나 산과 강물을 따라 난 소로로 접어든다. 낭만적인 영화의 첫 장면처럼 굽이굽이 수려하고 감미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섬진강 상류의 절경지 ‘장군목’ 구역이니 알조다. 이곳에 귀촌인 공병린(67, ‘싸리재 스토리’ 대표)의 집이 있다. 그는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부터 자연에 묻혀 살고 싶었다. 눈이 가고 귀가 쏠리는 곳은 늘 시골이었다고. 광주광역시에 살았던 그가 마침내 산골에 도착한 건 10여 년 전이었다.

“순창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그러나 그토록 빼어난 경관이 존재한다는 걸 미처 몰랐다. 지인의 소개로 여길 구경하러 왔는데 신세계를 목격한 기분이었다. 한국적인 정서보다 이국적인 풍취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공병린은 풍경과의 첫 만남에 사로잡혀 이 골짜기를 남은 생애의 정착지로 꾹 점찍었던 셈이다. 그러곤 득달같이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제 귀촌 10년 차. 그는 장쾌한 산과 유려한 강물을 벗 삼아 안도할 만한 날들을 유유자적한다. 아내 조은영(64)과 다섯 살배기 손녀, 그리고 재롱쟁이 강아지와 함께 산골살이의 다채로운 재미를 누린다. 그가 무엇보다 만족하는 건, 오랜 세월 전전긍긍한 건강 문제를 산골에서 말끔하게 해결했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 공병린은 명상과 단전호흡에 빠져 살았다. 수련이 익어가면서 도장(道場)을 차려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심신을 단련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무너져가는 건강을 복원하고 싶다는 열망에서였다. 건강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려서부터 건강이 나빴다. 팔팔해야 할 청춘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예컨대 위장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자심했다. 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의사의 진단은 이상했다.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위가 있다니.’(웃음) 증상마다 의사들의 소견은 비슷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증상은 분명한데 병이 없다니, 스트레스가 주범이었을까?

“스트레스 정도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이게 신기(神氣)나 무병(巫病) 증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남의 앞일이 환히 보이는 정말 기이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저 사람에게 곧 큰 우환이 들이닥치겠어’ 그렇게 직감한 지 3개월 뒤 멀쩡했던 그가 별안간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섭더라. 한시 빨리 벗어나야 했다. 그래 마음공부와 명상과 단전호흡 수련에 나서게 됐다.”


도장까지 차린 걸 보면 단순한 자가 치유 차원을 넘어 직업화에 이른 셈이다. 운영은 잘 됐나?

“처자를 건사하기 위해선 사업화가 필요했다. 도장을 세 개로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수익이 나오지 않아 난감했다. 잘못하다간 타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느꼈다. 돈을 벌려면 장삿속을 발휘해 도인 시늉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간 내가 먼저 망가질 게 분명해 보였다. 이 바닥의 경향 자체가 진정한 수련보다 돈에 눈먼 사이비들의 각축으로 변질되고 있어, 중심을 잡느라 고민이 많았다.”


남들은 어떻게 하든 나만 정도를 가면 되는 것 아닐까?

“돈을 벌고자 할 경우, 밝은 쪽으로 가기가 불가능한 게 수련원 사업이다. 마음공부와 단전호흡 자체는 건강에 좋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호구지책으로 삼으면 초심을 잃고 엉뚱한 짓을 하기 십상이다. 내 눈엔 도장 운영자들이 사기꾼으로 비쳤다. 나 역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다 치웠다.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하며 10년 만에 손을 뗐다.”


시간과 자금만 날린 꼴이다. 건강은 다소 나아졌지만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건 궁색한 가정경제. 도장을 운영하며 애먼 아내를 고생시켰으니, 이젠 효능적인 사업을 통해 체면을 만회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뛰어든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철학관 운영이었다. 사주팔자·작명·풍수지리 등을 다루는 역술인으로 변신한 것. 그 결과는 썰렁한 것이었다. 사주풀이에 조예가 깊었지만, 점괘를 받아 든 의뢰인들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점에 회의와 각성을 느껴 다시 일을 접었다고 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일상 자체가 힐링

인생의 중세 시대랄까, 위태해진 건강부터 사업 실패까지 공병린의 중년 시절은 이렇게 덧없이 흘러갔다. 덕분에 남편을 믿고 묵묵히 뒷바라지한 아내의 상심이 깊었을 테지. 그러나 웬걸, 그릇 크기가 보통이 아닌 듯 그녀는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 묵묵히 생계를 해결해나갔다. 의상실을 차려 수입을 올렸다. 이렇게 되면 꽁무니에 불붙은 병아리처럼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건 공병린 쪽. 그는 회심의 유효타를 날리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궁리했을 법한데, 뜻밖에도 일이 술술 풀려 큰 성과를 거두었다. 내부에 숨은 창의력과 잠재력을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 꽤 기발한 용품 하나를 개발했다. ‘거꾸로 타는 펠릿 난로’가 바로 그것!

“광주에서 살던 집이 겨울이면 너무 추웠다. 집 안에 주물 난로를 설치했지만 효율이 떨어졌다. 해서 작심하고 연구한 결과물이 ‘하향식 펠릿 난로’였다. 공기와 불길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게 설계, 연소효율이 극대화된 난로다. 공인된 건 아니지만 아마 내가 국내 최초의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갖가지 절차를 거쳐 시판에 들어갔을 땐 기대 이상의 반향이 일었다. 전국에 산재한 대리점 15개를 통해 인기리에 팔려나갔던 거다. 기름값보다 싼 펠릿을 연료로 적용한 덕분이다. 펠릿 가격이 상승한 뒤론 시들해졌지만.”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불길이 아래로 내려가는 난로가 당신을 위로 들어 올린 셈인가? 돈에 관해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나?

“난 변변히 가진 것 없이 근근이 살아왔다. 결혼 뒤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손목시계나 전자계산기 같은 잡화를 팔기도 했다. 길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나의 것이라곤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난로 덕분에 먹고살 걱정을 덜어 안심하게 됐다. 이 산골에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 있어 좋았고. 여하튼 가진 게 조금 있더라도 과시와 사치를 삼가고, 가급적 나누며 사는 게 좋은 삶이라고 본다. 주변을 보면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예외 없이 재앙이 잦더라. 가졌든 못 가졌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소신 있게 살아가는 게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생활이 원했던 삶과 일치하나?

“그렇다. 젊어서부터 산골로 향하던 마음과 갈증을 비로소 충족할 수 있는 시골 생활에 희열을 느낀다. 번듯한 직장 생활 한번 해보지 못한 채 헤맸던 인생의 전반과 대비되는 후반의 안정감을 유지하며 밝은 쪽으로 일관되게 나아가고 싶다.”


이곳은 외진 산중이다. 때로 고립감을 느끼진 않나?

“수련 이상의 수행을 한 내게 고독이나 고립감 같은 게 침범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생활의 모든 조건에 평온을 느끼며 산다.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 없이 살았던 시절의 결핍감과 강박감을 산골에 들어와 모두 씻어낸 셈이다. 무엇보다 산과 강물이 곁에 있어 일상 자체가 힐링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그의 슬로건, ‘120살까지 살자!’

산간 외딴집에 살지만 공병린의 일상은 알고 보니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가 일상의 중심에 둔 건 좋은 인적 관계의 확장을 위한 친선 도모다.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할 만한 사람들, 인근 주민들, 또는 오다가다 쓱 들어온 객들을 흔쾌히 맞이해 기탄없는 교류를 하는 게 신성한 의무라는 양 다방면으로 접촉한다. 그러기 위해 집을 크게 지었다. 민박집을 차려 방문자들이 묵어가기 쉽게 기초도 다졌다.

“이곳에 들어온 직후 한동안은 적적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불러들일 ‘거리’를 뭔가 만들어야 했는데, 우리 부부는 무설탕 천연발효종 빵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교류의 물꼬를 트면서 심심할 틈 없는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즐기나?

“귀촌 전 나의 주도로 만들어진 건강 동아리 회원들이 찾아와 자연을 즐기고, 건강 치유에 관한 정보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집 한 칸엔 카페풍 스튜디오를 꾸몄다. 여기서 소공연이 벌어지곤 한다. ‘아침이슬’을 작곡한 가수 고(故) 김민기 선생을 기리는 행사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참석했다. 내가 순창군 귀촌귀농인협회장을 역임하며 맺은 인연들의 발길도 잦다.”


부인은 산골살이에 만족하나?

“아내는 아예 신바람이 났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각종 교습을 마치고 딴 자격증과 수료증이 20개도 더 된다. 스스로 기른 실력을 남들과 나눈다. 이를테면 천연염색이나 바느질 공예를 가르친다. 순창군 소식지에 글도 올린다. 알차고 자유롭게 산다. 아내가 꼽는 유일한 불만은 남편의 심한 잔소리다.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단다.(웃음)”

다년간 마음공부를 했으면서 아내에게 심한 잔소리를?(웃음)

“난 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걸 보면 바로 지적하는 편이다. 물건 하나라도 제자리에 있는 게 보기에 좋고, 뭐든 망가지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하자는 주의다. 화장실 청소를 할 경우, 거울에 튄 물방울까지 싹 닦아내야 속이 시원해진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흰머리와 수염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환하다. 건강은 어떤가?

산골에 들어온 목적이 몸 살리기였다. 그걸 이루었다. 지난 10년간 딱히 아픈 데가 없어 병원을 가본 적이 없다. 좋은 공기와 물, 창으로 들이치는 아침 햇살, 쏟아지는 달빛, 산야에 피고 지는 꽃들…. 모든 생동하는 자연환경에 젖어들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나에겐 ‘120세까지 살자!’는 슬로건이 있다. 20~30년 전부터 계속 지니고 산 모토다.”


그토록 장수하고 싶은 이유는?

“충분히 참회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 한다.”


공병린에게 유독 참회할 가짓수가 많을 리 있으랴. 가급적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나?

“(곰곰 생각하다가) 글쎄, 뭘 하지? 할 게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

싱거운 답이다. 그러나 화두처럼 서늘하다. 산뜻한 해탈에 이를 길은 아득한데 종말이라니. 그는 일단 120세 장수 외에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다. 아마도.


공병린이 주는 귀농귀촌 Tip

•도시인들이 흔히 마음을 비우고 시골 생활을 하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미 몸에 밴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편한 생활을 간신히 유지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말로만 내려놓을 게 아니라 진정으로 비우고 내려오라. 그래야 신선한 시골 생활을 누릴 수 있다.

• 정원을 꾸미고 텃밭을 일구느라 너무 애쓰지 말자. 나는 마당을 콘크리트로 도배하고 살았다. 잡초를 완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지 않으면 맹렬하게 올라오는 풀들과 싸우다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텃밭도 없다. 상추며 고추 등 소소한 채소류는 사서 먹으면 그만이다. 그게 더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다.

•전원생활을 너무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말자. 특히 농사를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넉넉한 보유 자금을 믿고 농사에 거금을 투자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실패에 이르는 케이스가 많다는 걸 유념하자. 인생의 목표가 농사짓는 데 있다면, 즉 확고한 의지와 분명한 방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전하라.

•60대 나이에 농사로 돈벌이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자. 몸만 상할 수 있다. 고령자라면 도시의 사무실에 앉아 편하게 돈 벌 방법을 모색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

•시골 생활의 재미를 돋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이웃과의 교류다. 소소한 것이나마 ‘나눔’을 하자. 그러면 반드시 답례가 돌아온다. 친목을 도모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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