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청춘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화여고 정동길을 안혜초(安惠初·75세) 시인과 걸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 나이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젊음을 보여줬다. 민족지도자인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의 손녀이기도 한 그녀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1967년 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니 작가로서의 경력도 내년이면 50주년이 되는 원로시인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이와 경력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꾸준한 시 활동과 더불어 소설, 콩트, 동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안 시인의 젊음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랑 지금은
잠들어 가도
조금씩 알게 모르게
잠들어 가도
그대와 나
어느 한쪽이라도
깨어 있으면
오뉴월의 싱그러운 햇바람으로
깨어 있으면
우리 사랑 이대로
스러지지 않아요
그대 사랑 나 먼저
하품을 하면
내 사랑이 자꾸
자꾸 흔들어 주고
내 사랑이 그대 먼저
눈을 비비면
그대 사랑 자꾸
자꾸 흔들어줘서
- 중
안혜초 시인의 시 은 2006년 봄, 시비(詩碑)로 만들어져 전남 화순군 남면 운산리 평화문화휴양 시비공원에 세워졌다. 또한 2004년 가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중국어역시집의 제목으로 선정, 타이틀 포엠이 되기도 했다. 1941년에 태어난 안 시인의 나이를 잊게 만드는 풋풋함이 담겨 있는 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감수성은 저 시를 쓴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한 듯해 보였다.
시는 기도, 일기, 편지, 세상에 내보내는 뜨거운 메시지
안 시인이 기억하는 자신이 처음 쓴 글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에서 내는 문예지에 투고했던 산문이었는데 제목은 였다. 그 글이 입선된 것을 계기로 문예란에 계속적으로 글을 투고했다. 이화여고 재학 중 교지 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안 시인 스스로 말하길 자신에게 시란 ‘기도, 일기, 편지, 세상에 내보내는 뜨거운 메시지’이다. 그녀는 어떤 길을 갔더라도 시만큼은 계속 썼을 거라고 말하는 투철한 시인이기도 하다.
“무얼 바라서가 아니라 시를 쓰지 않곤 못 배겼을 겁니다. 오죽하면 내가 ‘시는 내게 있어 평생 결혼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숙적 같은 연인’이라고 시로도 썼을까요?(웃음) 평범한 시민인 나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제 시는 관념적이지 않고 쉽죠. 조금이라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시를 쓰고자 앓고 또 앓았습니다. 시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시는 쓰는 시인이 아프면 시도 아프고 시인이 비틀어지면 시도 비틀어집니다. 그리고 원래는 언론인으로 크게 성공하고 싶었는데 건강 문제도 좀 생기고 결혼 생활과 병행도 힘들고 해서 집에서도 쓸 수 있는 문학 쪽으로 기울어졌지요.”
윤동주 시인과 안혜초 시인
안 시인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 와 영화 의 흥행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윤동주 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바로 2001년 제17회 윤동주문학상의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바보야, 이 바보야
차 한 잔
사과 한쪽에도 맘에 걸리고
잎새에 이는 잔바람에도
잠 못 이루는 …
- 중
“자작시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윤동주 시인하고 나하고는 기질적으로 비슷한 데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동안 50년 가까이 시를 써 오면서 꽤 여러 번 문학상을 받았는데 윤동주문학상은 그중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상이기도 합니다. 이 상이 내게 더의미가 있는 것은 한국문인협회 사상 처음으로 수상자를 한국문인협회 이사진 및 문협지회장 투표로 결정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심사위원에 의해 결정했는데 당일 회의석상에서 ‘수상자 선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열띤 토론 끝에 투표로 하자고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난 그 당시 임원이 아니어서 나중에야 알았지만.”
안 시인은 자신의 시집들 중 가장 아끼는 시집은 따로 없고, 시집마다 각별히 아끼는 시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제 시선집을 내게 되면 시선집이 되겠지요. 지난 2012년 9월 세계한글작가대회(국제펜한국본부 주최) 한영대역 자선 소시집을 만들어냈는데, 현재로선 그게 가장 아끼는 시집이에요. 시집 제목은 이구요.”
그녀가 시를 쓰면서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 같은 일들이 있다. 와 등 두 편은 시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 , , 등 여러 편은 작곡되어 노래로 발표되기도 했다. 그녀는 시가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재차 말했다.
오랜 경륜에서 다져진 삶의 철학과 포스
관념적인 시가 아닌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시를 쓰고 싶었고 주로 우리 누구나의 보편적인 진실을 추구했다는 안 시인은 그렇게 살아있는 것에 대한 몰두를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지켜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피할 수 없는, 나이듦에 대한 깨달음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늘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들이 쌓여 있어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지하철 어르신 우대용 교통카드’를 신청하라는 공문이 날아들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원로시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정말 이제부턴 내가 노인세대로 분류되는구나’ 하여 내심 당혹스러웠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최근 유엔에서 재정립한 평생 연령 기준을 보면요 0~17세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100세이후 장수노인이라네요. 하하.” 활달하게 웃어젖히는 안 시인의 몸짓과 말투에서 오랜 경륜으로 다져진 삶의 철학, 아우라가 느껴진다. ‘20세의 청춘에도 노년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80세 노년에도 청춘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새뮈얼 울만의 저 유명한 말과 함께.
인간으로선 ‘부끄러움’, 여자로선 ‘수줍음’을 잃고 싶지 않아
나이가 들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그녀가 유지하고 있는 젊음의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인간으로선 ‘부끄러움’이고 여자로선 ‘수줍음’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수줍음’은 ‘약한 것’과 다릅니다. 요즘 강하고 유능하게 보이고 싶어 ‘수줍음’을 벗어 던져 버린 듯한 여자들이 많아져 가는 게 안타깝습니다. 요즘 여자들은 ‘예쁘다’보다 ‘섹시하다’는 말을 듣기 원하는데, 수줍음이야말로 여자를 가장 여자답다고 느끼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난 남자도 약간 수줍어하는 남자가 매력이 있어요(웃음).”
그러고보니 활달한 듯 보이면서도 언뜻언뜻 수줍어하는 기색이 만년 소녀와도 같다.
안 시인이 요즘 들어 가장 쓰고 싶은 글 중의 하나가 ‘여자는 여자로 강하라’라는 주제다.
“강하게 보이기 위해 남자처럼 구는 여자들은 한심하잖아요? 보이시한 여자가 일면 매력 있긴 하지만, 그건 남자 흉내하곤 다르지요. 여자로 태어나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무엇보다 어머니가 된다는 건 숭고한 거예요. 자녀를 낳아 한 사람의 몫을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도록 양육함은 개인과 나라와 인류를 위한 실로 위대한 공헌이 아닐 수 없죠.”
할아버지 민세 안재홍이라는 거대한 산
최근 가장 행복한 일로 지난해 가을 첫 손자를 본 게 가장 큰 경사이고 기쁨이라고 꼽는다.
“너무 늦게 본 손주라서요. 기도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손주를 본 지금이)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맘 편한거 같아.”
안 시인은 독립유공자인 민세 안재홍의 손녀이기도 하다. 민세(民世)는 ‘민족과 세계’라는 뜻이다. 안재홍은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 주필, 사장 등 언론인으로 종횡무진 활약, 일제에 의해 9번이나 투옥되었으며 사학자로서의 업적도 크게 남겼다. 해방 이후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국민당 당수 등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으로 활약, 초대 대통령 선거에선 이승만·김구에 이어 3위를 하였고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국전쟁 때 불행히도 납북되었다.
“혜초(惠初)는 첫 은혜, 첫 손녀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그분은 아랫사람에게도 존칭을 쓰셨고, 모진 고문에도 신음조차 크게 내지 않아 심문하던 왜경들도 경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실하고 검소해 미 군정시절 한국인 행정수반인 민정장관 시절에도 도시락을 꼭 지참하셨고, 고매한 품성의 민족지도자였습니다. 할아버지께 물질적 혜택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나라를 구하시는 데 평생을 헌신한 분의 손녀라는 자긍심과 함께 그 분께 누를 끼칠까봐 조심 조심하며 살아왔어요.”
등단 50주년, 이젠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시점
안 시인에게는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내년 1월이면 문단 등단 50주년이에요. 시집 7권을 정리해서 시선집을 꼭 내려구요,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신앙 간증집도 내야겠구요. 또한 한불대역 시집, 한일대역 시집도 준비 중입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할아버지 민세 안재홍 선집에 이어 전집을 내느라고 내 것은 자꾸 보류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됐어요. 수필집, 칼럼집도 내야 할 것들도 있고 단편소설, 콩트, 동화 들도 써서 발표할 것들이 각각 여러 편씩 쌓여 있는데….”
안 시인에게는 평생을 살면서 꼭 지키면서 살아온 것이 있다.
“40세 전후에 몇 차례 걸쳐 성령은사체험을 경험한 이후로 지금까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을 하루도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넋두리를 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안 시인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 의지 또한 안 시인의 나이를 믿기지 않게 만드는 젊음의 원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선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곤 한다.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따라 걸어온 길은 고스란히 그녀의 자부심이 됐다. 그녀의 시가 투명한 건 삶에 대한 특유의 낙관 때문일 것이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바라보는 안 시인의 예쁜 감정을 담아왔다. 봄이 오는 덕수궁 길목에서 안 시인과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벌써부터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이 기다려진다.
△ 안혜초 시인
이화여고·이화여대 졸업. 세계여기자 작가협회 한국지부 부회장 역임.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평화위원회 위원장.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현 지도위원. 한국문인협회 대외 협력위원. 한국여성문인회 이사. 이화여대 동창문인회 회장, 현 고문.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은 인생 2막 설계에 관한 관심이 높다. 그런 요구에 맞춰 각 대학은 발 빠르게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신중년세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전 국민의 고등교육화를 꿈꿨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프라임칼리지를 개설해 신중년들의 미래 인생설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젊은 은퇴로 고민에 빠진 신중년들에게 한국폴리텍대학은 펜 대신 드라이버와 망치를 손에 쥐어 주며 실전 학습을 가르치기에 나섰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방송대 대항마로 떠오른 사이버대학교는 이상 실현과 재교육을 토대로 시니어들의 배움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이다. 미래 설계가 아직 좀 미흡한 신중년들이 있다면 주목하라. 더욱 나은 제2의 인생으로 인도할지니.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40·50세대를 위한 제2 인생설계·준비과정
원격대학의 원조,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안에는 또 하나의 대학이 있다. 바로 프라임칼리지다. 1997년부터 운영돼 온 방송대의 평생교육원이 2012년 프라임칼리지로 개명한 것.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기존 평생교육원의 틀을 깨고 전 세대를 아우를 만한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습 프로그램으로 무장했다.
프라임 칼리지는 평생학습시대, 국민의 생애주기와 학습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이다.
특히 40·50대 신중년들을 위한 제2 인생 설계·준비과정 등을 시행하고 있다. 제2 인생 설계·준비과정은 중·장년층의 자립 의지에 힘을 실어주고, 더 나아가 사회공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 2012년 제2 인생설계과정 32개 신규 교과목으로 총 2660명 수강에 이어, 2014년에는 총 1만284명이 프라임칼리지를 이용할 정도 관심이 뜨겁다.
프라임칼리지 교육과정은 제2 인생대학, 인문교양·시민문해, 귀농·귀촌, 창업, 사회적 경제, 국제개발협력 사회봉사, 전문자격, 명장교수, 평생교육 등 10가지 대분류 아래 각각에 부합한 과목을 배치했다. 영미영작 단편선, 문해 교육 이론 등은 물론, 집짓기, 창업, 다양한 국가의 어학학습 등 프라임칼리지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과목들을 개설해 놓았다. 방송대 학생은 프라임칼리지에서 강의를 들으면 졸업학점으로 최대 12학점까지 인정받을 수 있어 굳이 다른 곳에서 배울 강좌가 아니라면 꼭 한번쯤 프라임칼리지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외에 20·30세대를 위한 선취업·후진학 학위과정과 재직자 기초과정도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Ⅰ 박찬영 블루베리-연금나무, 게으름의 농장 수강 (서울, 방송대 농학과 15학번, 54)
귀농·귀촌을 꿈꾸는 신중년들에게 좋은 길라잡이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강좌를 기웃거리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작년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전공 교수이신 문원 교수님이 블루베리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셔서 조금 더 알려 달라고 했더니 프라임칼리지 강좌를 한번 들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사실 귀농·귀촌할 생각만 있었지 어디로 갈지 또 어떤 작물을 키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블루베리에 관한 관심이 한창일 때 들었던 프라임칼리지 강좌는 꽤 도움이 되더군요. 적어도 블루베리가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접근하기 쉽고 수익성 좋은 작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농업에 관련한 일을 알아 가는 데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라임칼리지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가 귀농·귀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도 없어요. 귀농·귀촌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방송대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프라임칼리지를 먼저 알았더라면 이쪽 강의를 먼저 들었겠죠. 프라임칼리지에 귀농·귀촌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학교 입학하고 난 후에 알았거든요(웃음). 프라임칼리지도 새로운 인생 2막의 길을 찾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우선 농학과 공부에 집중한 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프라임칼리지를 좀 더 이용할 계획입니다.
인터뷰Ⅱ 양봉선 제2 인생대학 마스터클래스- 마음 외 5과목 수강 (전주, 방송대 국문학과, 58)
프라임칼리지는 마력이다
동화를 쓰고 창작을 하면서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 방송대에 편입학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에 고장이 단단히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동화 작가. 직장인, 주부, 엄마, 방송대 학생으로 숨 쉴 틈 없이 살아온 탓일까요. 1~2년 전 9개월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지냈어요. 그런데 병원을 오가다 우연히 프라임칼리지의 제2 인생설계 광고를 보게 됐어요.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클릭해 보았는데 평소 관심 있던 과목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스리는 삶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과목도 있고요. 두 과목만 수강할까 하다 프라임칼리지에서 수업을 들으면 방송대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기에 욕심을 좀 더 냈죠(웃음). 강좌를 선택하다 보니 6개가 되더라고요. 제2 인생 설계과정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중년의 삶,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삶 등을 공부했습니다.
내 이름을 단 아동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 ‘작은집-싸게 짓고 행복하게 살기’를 즐겁게 들었습니다. ‘안전, 웰빙, 스마트 여행을 위한 건강관리’ 강의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다른 나라 예절, 선물로 현지인들에게 주면 좋을 것 등을 배웠습니다. 듣다 보니 3개월 단위로 끊어지는 강좌를 6개월이나 들었더라고요. 지금도 듣고 싶은 과목은 한없이 많아요. 프라임칼리지 너무 좋습니다. 글을 쓰면서 부족했던 것들, 살면서 배우지 못한 처세술도 배울 수 있었어요. 고령화시대에 남다른 감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행복했어요.
펜 놓고 손에 기름 묻히길 원하는 자
한국폴리텍대학으로 가라!
한국폴리텍대학(이하 폴리텍대학)은 말 그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을 추구한다. 이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실질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고 학습한다. 1968년 국립중앙직업훈련원으로 시작해 2006년 24개의 기능대학과 19개의 직업전문학교가 합쳐져 지금의 폴리텍대학이 됐다. 폴리텍대학은 해마다 80% 이상의 높은 취업률을 보인다. 땀의 결실을 보게 해주는 알찬 대학으로 세대와 학벌 위주 사회에서도 주목받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국민 누구나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다. 학비 걱정 없이 기술을 배우고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평생직업교육대학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한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이 시니어들의 재취업과 제2 인생 설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학사과정 외 시니어들을 위한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을 2012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은 3개월 단기과정으로 만 45세 이상 만 62세 이하의 실업자, 전직 예정자,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기업 맞춤형 과정으로 진행된다. 장년층의 재취업을 돕는 이 과정은 올해 전국 31개 캠퍼스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2012년 333명의 수료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1868명이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을 수료했다. 놀라운 사실! 3개월 교육과정이 전액 무료로 이뤄지며 수료생에게는 별도의 지원금도 지급된다.
인터뷰 송재구 (청주, 베이비부머 전기제어과정 2015년 8월 수료, 59)
노래하는 만학도에게 새 삶을 준 베이비부머 훈련과정
지난해 8월 베이비부머 전기제어과정을 수료했습니다. 30년 이상 의류업과 요식업을 하면서 살았 습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성장했을 무렵 늦바람이 불었는지 48세에 대학수학시험을 봐서 2013년 새내기 대학생이 됐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 2014년 말에 음식점 문을 닫았어요. 예전부터 전기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충주지역 폴리텍대학 광고를 보고 베이비부머 훈련과정을 알게 돼 훈련과정에 들어왔습니다. 기초부터 전기 에너지, 설비, 이론 등 다 가르쳐주더라고요. 일단 배우고 있었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을 배워서 자신감도 생기고 삶에 활력이 됐습니다. 과정 수료하고 바로 아파트의 시설관리기사로 취업했습니다. 아무래도 폴리텍대학에서 훈련과정을 수료한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됐습니다. 내 나이에도 그런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이력서를 내니 업체에서도 좋아하더군요. 전기 설비에 관한 한 내 손으로 다 고치고 만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 나이에 기술 없으면 딱히 취업할 곳이 없어요.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기회를 저는 얻은 거죠.
지금 학교를 나온 이후에도 전기기능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격증은 꼭 하나 더 따고 싶어요. 앞으로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도 목표지만 나보다 힘들고 직업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노하우로 그분들을 도와가면서 사는 게 목표 중 하나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 그 이후까지도 사회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침 교육현장에서 열성 참석자를 만났다. 경제 관료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경제 부분 전문성의 최고 자리라 할 수 있는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지낸 이다. 그것도 모자라 경제 5단체 가운데 2개 단체의 수장을 지내고, 대기업 CEO도 두 번이나 맡는 진기록도 보유했다. 바로 현 LG상사 고문이자, 제8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李熙範·66) 회장의 이야기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그런 그가 평범한 화요일 새벽 조찬 포럼에 나타났다. 형식적인 참석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포럼의 참석자 대표라 할 수 있는 총원우회 회장을 맡고, 이·취임식까지 가졌다.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aSSIST(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CEO 포럼과의 인연을 묻자 그는 처음엔 입장이 달랐다고 했다.
“이 포럼이 처음 생긴 것이 2005년이니까, 장관 재직시절이었어요. aSSIST측에서 요청이 와서 CEO 과정의 강사로써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좋은 분들과의 매력을 느껴 눌러앉게 되었고,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마 현재 서울 시내에만 경영자 포럼이나 모임이 100개 이상 되겠지만, 여기가 교육과정이나 내용이 다양하다고 생각됩니다. 참석자들도 중견기업의 CEO나 공직자, 민간연구소 연구원 등 다양해서, 여러 입장에서의 다채로운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이 안에서 비즈니스도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식견도 넓어지기도 하고 말이죠.”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모임을 참석해 열의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형식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진정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유독 국내에서 이렇게 조찬 모임이나 경영자 과정의 인기가 많은 것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칭찬한 적이 있잖아요. 제가 공직 시절 대통령을 보좌해서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현지 관계부처 장관과의 미팅을 조찬으로 추진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쪽에서 놀라더라고요. 아침은 가족과 함께 먹는 것 아니냐고. 아예 조찬회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것이죠. 결국 빠듯한 일정 탓에 무리하게 오전에 약속을 잡아서는, 수위도 출근 안 한 건물의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그 장관과 단 둘이 마주앉아 회의를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다면 이런 현상이 꼭 우리만의 일일까? 이에 대해 이제 우리보다 더한 곳이 있다고 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서도 우리와 같은 경영자 모임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6개월 과정의 비용이 4만달러 수준이니 가격은 국내 수준보다 훨씬 높은 편이죠. 게다가 모임도 오전에 잠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선전(深?) 등을 돌며 1박 2일 일정으로 해요. 그들에게 힘들거나 비싸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봐요.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품 하나를 잘 만들게 되면 그를 통해 얻는 수익이 얼마인데 그런 소리를 하냐는 것이죠. 그들의 정보와 아이디어에 대한 가치 평가는 어떤지, 기업 경영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죠. 매일 빅데이터들이 계속 쌓이고 이를 활용하는 기업의 패러다임이 매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경영자들에게 이런 모임들은 트렌드를 읽고, 도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가에서 기업가로 변화하는 동안 그는 다양한 기관, 다양한 조직에서 변화의 순간을 맞이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이 모임을 놓지 않았다. CEO 포럼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마 산업자원부 차관을 맡은 뒤 바로 장관에 임명됐으면 많은 어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그 사이에 한국생산성본부 회장과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맡으면서 관료 시절엔 알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체득하게 됐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것도 이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업부 후배들도 이제 1일(日) 1사(社) 방문을 유지하고, 현장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또 경영자가 되고 나서는 그간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웠다고 했다. 공직과 기업 간 시각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공직자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애정을 갖고 기업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겸손이 섞여 있지만, 실제로 그는 현장을 찾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2000년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시절, 발전사업 분할 때 한국전력 노조가 전면 파업을 선언하자,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노조원들의 집결지를 찾아 사태 해결에 앞장선 일화는 유명하다. 또 장관 재임 시절에는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도시락 미팅’을 가지며, 일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수첩 사이에 노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흔히 포스트잇으로 부르는 접착식 메모지다. 그는 미소지으며 “제가 가장 애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창조의 노란 패드’라고 부르고 있어요. 작성한 정보가 완료되지 않고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어 애용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수첩 안 메모지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공포의 노란 패드’. 사무관, 서기관 때부터 일벌레로 유명했던 그를 지칭한 별명이다. 수치 하나까지 틀림없이 기억하려는 철저한 그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따로 묻진 않았지만 또 다른 별명은 아마 그도 알고 있으리라.
그의 꼼꼼함을 알 수 있는 또다른 모습은 안주머니 가득 자리 잡고 있는 샤프들이다. 몽블랑 같은 명품이 자리 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샤프 중에서도 흔히 우리가 ‘제도 샤프’라 부르는 흔하디 흔한 물건이다. 그는 “샤프로 작성하면 쓰고 지울 수 있으니까, 다양한 수치나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설명했다. 결국 두 가지 키워드다. 정보와 업데이트. 여러 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총원우회 회장을 수락한 배경에 대해서는 이제 좀 한가해졌다고 대답하며 소탈한 웃음을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서 물러난 후 30개가 넘는 직함을 함께 내려놓았다. 한때는 국내뿐만 아니라 두바이 아부다비 왕립 연구소 자문위원이나, 에티오피아의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 참여 등 여러 활동에 참여했던 그다.
“10기까지는 신입 기수 내에서 회장을 뽑았지만, 이제 모임이 성장한 만큼 본격적인 사업진행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형성되면서 요청이 있었어요. 저도 나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교류를 강화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교류를 떠나 전체 790명 회원을 위해 소모임을 활성화하고, 문화예술 공연 지원이나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이희범 회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정무직 공무원을 거친 뒤 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LG상사 고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공계 출신 최초의 행시 수석 합격자로도 잘 알려졌다. 상공자원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주EU사무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산업자원부 차관 등 경제 관료로 이름을 알렸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2003년 12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제8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퇴임 뒤에는 한국무역협회장을 역임하고, 2009년 STX그룹 에너지 부문 총괄 회장으로 영입되며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2013년 LG상사 고문으로 이직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트러스톤연금교육포럼의 강창희 대표는 자산운용회사의 경영을 맡으면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투자자들이 우리 펀드에 장기 투자를 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던 강 대표는 일본의 ‘워런 버핏’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 회장이 운영하는 사와카미투자신탁을 찾는다. 그때가 2000년 초. 약 16년 전의 일이다. 그때 강 대표는 사와카미 회장에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운용하는 펀드에 투자한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장기 운용’이라는 항해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앞의 실적에 연연하는 고객은 배의 진행을 방해하고, 다른 승객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승선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15년이 지난 2015년 12월, 이 둘이 만났다. 한국의 미래라고 하는 과거와 현재의 일본. 일본의 현재를 살고,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사와카미 회장에게, 강 대표가 묻는다.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합리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
[강창희] 지금 한국의 전체 가계자산 중 70% 정도가 부동산이고 금융자산은 30%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또 금융자산의 절반 정도는 금리 1%대의 예금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1990년대 초 일본의 가계자산 구성과 비슷한 상황이지요. 똑같은 방식이 한국에도 적용되어야겠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와카미] 버블시대 이전의 일본도 ‘부동산이 최고’라는 현재 한국의 인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산을 늘릴 수 있었고, 축적된 재산을 바탕으로 소비활동도 활발해지니 기업도 성장할 수밖에 없었죠. 기업이 사니 건설 경제도 당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업은 생산 시설을 키우기 위해 주택과 공장을 우후죽순처럼 늘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났습니다. TV와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을 구매하던 국민들은 이제 가전제품을 ‘장만’의 개념이 아닌 ‘교체’의 개념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소비가 줄어들게 된 것이죠. 이와 함께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늘렸던 공장은 파리만 날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됐습니다. 빈 공장과 빈 주택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빈집이 860만 채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부터 일본의 땅값은 계속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버블이 꺼진 것이죠.
저성장기에 자산을 늘리고 지켜가는 데는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우리 생활을 지켜주는 좋은 기업,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기업의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제가 열심히 장기 투자 계몽활동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강창희] 과거 20년 동안 주식이나 펀드 투자로 재미를 보지 못한 투자자나 주식 투자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신이 늘고 있는데, 정기예금 금리 1%대의 저금리 시대에 금융자산 운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와카미] 고성장 시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재산을 늘릴 수 있었어요. 고금리가 따라오니까요. 하지만 그 고성장 시대가 지나고 성숙경제의 시대가 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금리는 떨어지고 예금으로는 재미를 못 볼 테니까요. 이때는 투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부동산의 가치와 예금도 매력이 없습니다. 일본은 아직 디플레이션 사회라 화폐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예금 금리도 당연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주장하고 있는 것이 주식 장기 투자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자산 형성층은 10~15년 정도를 한 기업에 투자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판단으로 장기 투자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재산 차이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창희] 아무래도 일반 투자자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기업을 꼼꼼히 따져보고 투자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공적인 장기 투자를 하려면, 어떤 것을 고려해 기업을 선택해야 할까요?
[사와카미] 국민들이 생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실 주식 투자를 할 때 기업의 이익률을 가장 먼저 따지는 투자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장기 투자에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 나라의 경제 확대 발전에 공헌을 하고 있는 회사는 장기적으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즉, 회사의 부가가치를 보고 투자해야 합니다. 기업의 인건비, 연구개발비, 세금 지불 내역, 지불 이자 등을 따져보고 이런 부가가치를 키운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가가치의 확대는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니까요.
[강창희] 아무래도 장기 투자를 할 때 가장 많이 애먹는 상황은 ‘리먼 쇼크’처럼 전반적으로 경제에 타격이 있을 때라고 생각하는데요. 장기 투자를 잘하려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요?
[사와카미] 사실 일본도 저희 회사 빼고는 장기 운용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개인이 장기 투자를 하는 경우도 1000명 중 1명꼴이죠. 이때의 문제점은 장기 투자를 결심해 놓고, 조마조마해한다는 것이죠. 그런 조바심은 결국 주식을 팔아버리게 만듭니다, 그것은 투자를 무용지물로 만듭니다. 사실 ‘리먼 쇼크’ 같은 상황에도 끝까지 버텨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는 않죠.
그래서 장기 투자에 대한 금융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개인 투자자 중에는 내 갈 길만 가겠다는 ‘My Way’형의 투자자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돈을 잡습니다. 주식이 폭락할 때 사들였다가 오르면 파는 방식으로 말이죠.
[강창희] 20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회장님과 같은 방식의 경영이랄까, 투자교육 활동을 하시는 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장기 투자 계몽활동을 하시게 되었나요?
[사와카미] 저희 회사에서는 1999년부터 장기 투자를 위한 펀드를 발매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필요성을 느낀 것은 사실 198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그때 유럽의 자산관리회사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구조적으로 저성장 성숙경제로 들어선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자산을 형성해 나가는지, 또 자산가가 됐을 때 어떻게 그 자산을 품격 있게 쓰는지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방식을 일본 투자자들에게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이 그런 성공 사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장기 투자를 해서 자산을 모으면 그것을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멋있고 폼 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볼 수 있으니까요.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 회장
1947년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 출생(만 69세). 젊은 시절을 스위스캐피털인터내셔널의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로 일하며 성숙 경제로 들어가는 미국과 유럽을 배웠다.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현명한 대처 방안이 장기 투자라는 것을 깨닫고, 일본에 그것을 전파·계몽하기 위해 사와카미투자신탁을 설립해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현재는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가왕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가요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킬리만자로를 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조용필씨는 탄자니아 및 케냐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단다. 글ㆍ사진 변종경 언론인
지구 온난화로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의 만년설이 녹아 금세기 이후에는 만년설을 볼 수 없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6000m에 달하는 세계 고봉 가운데 특별한 장비 없이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 산악인이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해서 트레커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0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를 다녀온 뒤 더 높은 곳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6000m의 고봉임에도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킬리만자로를 버킷 리스트로 정해 등정하기로 마음먹고 9월 22일부터 13일간의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하게 됐다.
아프리카 최고봉 등정 준비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 예방주사는 국립의료원이나 각 공항 검역소에서 맞을 수 있는데 잠복기 3일, 접종 부작용 3~5일 후 발현 여부를 점검한다. 10년간 효력 등을 감안할 때 출발 2~4주 전 미리 접종하는 것이 좋다. 말라리아 예방약도 처방이 필요한데 킬리만자로 등정 일정만 소화할 경우 주로 고산 지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약 복용을 강력하게 권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발 3000m 이상에서 나타나는 고산병에 대비해 이뇨제인 다이막스와 비아그라는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트레킹할 때는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고산병 관련 약이 필요 없었으나, 이번에는 3700m에 위치한 호롬보 산장에서부터 고산병 약을 복용해야 했다. 다만 낮에는 계속 걷기 때문에 비아그라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적도 지역에 위치한 고봉이기 때문에 저지대는 열대성, 고지대는 아한대성으로 등산복 등을 봄, 여름, 겨울 등 사계절에 맞도록 준비해야 한다. 트레킹 과정에서 산장이 27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해 샤워 등이 어려운 데다 숙소도 다인실로 열악해 물티슈는 요긴하게 쓰이는 필수품이다. 또한 적도 지역은 햇볕이 강렬해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블록 크림, 진한 색깔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입술 건조 때 바를 립크림, 트레킹 때 먼지에 대비한 마스크도 준비하면 좋다.
정상을 향한 긴 여정(旅程)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카타르의 도하까지 9시간, 그리고 몇 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을 거쳐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까지 6시간을 비행했다.
이후 탄자니아 제2의 도시 모시에서 일박한 뒤 이튿날 일행은 2시간의 버스를 타고 킬리만자로 입산 수속을 위해 마랑구 게이트(1972m)에 도착하였다. 킬리만자로 등정은 마랑구 루트, 마우아 루트, 움부웨 루트, 므웨카 루트, 쉬라 루트 등이 있는데,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ayer)가 1889년 10월 9일 유럽인 최초로 현지인 가이드 라우오(Lauwo)와 함께 정상에 오른 마랑구 루트가 비교적 오르기 쉬워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입산 수속을 마치고 마랑구 게이트에서 등정 첫날 숙영지인 만다라 산장(2720m)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열대 우림 지역 숲길 8.2㎞를 약 4시간에 걸쳐 걷는 것으로 비교적 수월했다. 등정 둘째 날은 킬리만자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웬지봉(5249m)을 옆으로 바라보며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3700m)까지 11.7㎞를 산행했다. 그런데 경사는 완만하지만 낮은 관목 사이의 약 50㎝ 깊이의 참호 같은 화산재 흙길을 햇볕 속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8시간을 걷는 것이 고역이었다.
호롬보 산장은 꽤 큰 편이었는데, 역시 숙소는 다인실을 사용하였고 3700m 고지대라 약간의 고산병 증세로 다이막스와 비아그라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등정 셋째 날은 고산 적응과 체력 비축을 위해 인근 지브라록(4200m)까지 왕복 4시간을 산행한 후 일찍 휴식을 취했다. 등정 넷째 날은 호롬보 산장에서 킬리만자로 등정 베이스캠프인 키보 산장(4700m)까지 10.1㎞를 트레킹했다. 이 지역은 황무지 사막지대로서 역시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물(Last Water Point)이 있는 곳을 지나 8시간여 산행 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키보 산장에 도착해 정상 도전을 준비했다.
고전 끝에 우후르 피크 정상 등정
키보 산장에 오후 4시경 도착해 일찍 저녁을 먹고 6시경부터 수면을 취했다. 10시 반쯤 일어나 죽으로 식사를 간단히 한 뒤 11시 반부터 등정 다섯째 날 마지막 급경사를 오르는 정상 도전이 시작됐다. 겨울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헤드랜턴을 밝히며 4700m 이상 고지의 거의 직벽에 가까운 화산재 모래 자갈길을 오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현지 가이드들은 연신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힘들어 하는 우리들을 응원했다. 미끄러지는 길과 싸우고 산소 부족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로 머리 위로 멀리 보이는 앞 팀의 랜턴 빛줄기를 따라가며 5시간쯤 오르니 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자 킬리만자로 정상 분화구 언저리인 길만스 포인트(5685m)에 다다랐다. 킬리만자로 정상은 원뿔 모양 분화구를 가진 사화산으로 분화구 폭이 2.4㎞에 이르는데 정상인 우후르 피크(5895m)까지는 분화구 둘레의 바윗길과 완만한 산길을 오르는 것으로 왼쪽 북쪽 사면으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만년설을, 오른쪽으로는 수백 미터 깊이의 분화구를 보며 스텔라 포인트(5765m) 등을 지나 천천히 2시간여를 등정했다. 아침 7시경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르 피크에 올랐다. 우후르 피크는 비교적 평평하고 눈도 없었다.
생애 최고점인 5895m를 밟았다는 감격과 함께 정상에서 아침 햇빛을 받으며 주변 만년설과 거대한 분화구의 장엄함을 잠시 감상했다. 하지만 호롬보 산장까지 하산하는 일정 때문에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스와힐리어로 ‘킬리만자로’는 ‘반짝이는 산’을 의미하고 ‘우후르’는 ‘자유’를 뜻하는데, 1961년 탄자니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킬리만자로 정상을 ‘우후르’로 명명하였다 한다. 우후르 피크는 100년 전만 해도 20m 두께의 만년설이 10㎢에 걸쳐 있었다고 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최근까지 85%가 녹고 북쪽 사면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만년설도 금세기 내에 녹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나중에는 흰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사진 속 전설로만 남아 있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산하는 길은 정상을 밟은 데다 고소 적응이 돼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빨랐다. 그런데 하산하면서 낮에 보니 길만스 포인트에서 키보 산장에 이르는 직벽은 경사도 가파른 데다 화산재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스키장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듯이 미끄러져 내려와 아마도 낮에 등정했다면 엄두를 못 낼 것 같았다. 키보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호롬보 산장까지 내려와 일박한 뒤 모시 리조트로 돌아와 수영으로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에 먹는 저녁 뷔페는 꿀맛이었다.
다음 날 케냐로 이동해 드넓은 암보셀리 국립공원 사파리를 구경하면서 멀리서 북쪽 사면의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긍정의 삶, ‘하쿠나 마타타’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듣는 첫 인사는 ‘점보(Hi, welcome)’다. 안나푸르나 현지 주민 인사 ‘나마스테’와 비슷한 어감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등정하면서 ‘뽈레뽈레(Slowly)’와 ‘하쿠나 마타타(Don't worry, it will be good)’를 자주 듣게 된다. 고산에서는 산소가 희박해 빨리 걸을 수 없다. 일행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현지 가이드들은 ‘뽈레뽈레’를 외치고, 힘들어 하면 ‘하쿠나 마타타’를 소리 높인다. 지금 힘들겠지만 잘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의미다. 어찌 보면 이들은 참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물론 어려운 여건이 이들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그들이 불쌍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시각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긍정적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원천일 것이다.
영국의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모든 일에 만족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기뻐할수록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마음이 결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성실한 태도로 사는 사람은 이를 저절로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네만 교수도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다’며 행복은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버킷 리스트인 킬리만자로 등정의 기쁨과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기분 좋은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을 희구한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계기로 ‘하쿠나 마타타’의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것을 기약해본다.
>>변종경(65) 일요시사 전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1973)한 뒤 잠시 공직을 거쳐 미국 유학, UCLA 대학원에서 석사 취득(1985) 후 1987년 삼성물산(주) 조사부장, 경영기획부장, 1994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 담당 임원(이사,상무,전무), 2004년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기획 분야에 주로 종사해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삼부그룹 계열 ㈜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에 취임해 경영 혁신을 통해 2011년 지식경제부, 중앙일보 주관 '한국을 빛낸 창조 경영인' 대상(혁신 경영 부문)을 수상하였고 2012년 일요시사 회장으로서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는 등 경영자로서 경륜을 쌓기도 하였으며 2013년 자유인이 된 뒤 등산, 사진 등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그동안 못 다한 여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달갑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목적이라 해도 수억 원의 금액을 기부하고, 장기를 기증하고, 머나먼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최근에는 팬클럽 회원들과 봉사활동을 하거나, 목소리 재능기부, 온라인 도네이션을 통해 네티즌과 함께 기부금액을 모으는 등 대중과 함께하는 형태의 선행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처음에는 재단이나 기관의 홍보대사, 친선대사 등으로 나눔을 시작했지만 세월이 지나 더욱 성숙한 자세로 선행을 이어오고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1980년대부터 유니세프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배우 안성기(63), 1986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과 인연을 맺고 있는 개그맨 이홍렬(61), 그리고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임명된 후 전 세계 아이들을 돕고 있는 배우 김혜자(74) 등. 그들은 이미지 차원을 넘어서 삶의 철학이 담긴 진중한 나눔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과 사회에 보답하며 훈훈한 에너지를 선순환하고 있는 스타들을 살펴봤다.
이문세X프렌즈 아트 컬래버레이션
가수 이문세(56)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들과 함께 ‘이문세X프렌즈 아트 컬래버레이션’ 재능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해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제작했다. 수익금은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으로 전달돼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 활동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카드는 10월 30일 ‘네이버 해피빈’과 ‘2015 씨어터 이문세’ 수원 공연장에서 시작해, 강남 교보타워 내 하임, 서울역 디트랙스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00만 원을 목표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1월 11일 기준) 685만여 원을 넘기며 목표액의 2배가 넘는 수익을 냈다.
이문세는 2009년 MBC FM 라디오 의 청취자 461명의 사연을 담아 만든 노래 ‘이 겨울 날 지나간다’의 저작권 기부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캐럴 느낌이 나는 발라드 곡으로, 청취자의 참여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저작권법에 따라 이문세 사후 50년까지 노래에 대한 저작권과 음원수익금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갖게 되며, 모두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해밀학교’의 이사장 인순이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로 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 가수 인순이(59).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의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인순이는 각종 봉사활동은 물론 대학생 오케스트라 팀과 재능기부 형태의 ‘지하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 다양한 자선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선행을 한다는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2013년 4월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 명동리에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를 설립했다. 2011년부터 3년여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를 완성했다. 내년부터는 그동안 시행해온 수업료 면제에 이어 입학금, 급식비, 기숙사비까지 학교에서 부담하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해밀학교의 이사장 인순이는 “학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꿈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겪었던 어려움, 외로움,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 격려, 위로를 나와 같은 다문화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좋겠다”며 많은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재능기부, 해외봉사, 장기기증까지… 국민엄마 고두심의 선행 릴레이
1983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자로 나선 고두심(64)은 2006년 이후부터는 재단 내의 스타서포터즈에서 나눔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배우 채시라와 함께 재단이 진행한 ‘어른이날(성년의 날)’ 캠페인 CF에 목소리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그녀는 “어린이를 돕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닌 필수”라며 “어른들이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자”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모교인 제주여자고등학교에 2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2008년 에티오피아 우간다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등 다양한 선행을 펼쳐온 그녀는 1999년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하며 장기기증 서약을 하기도 했다. 고두심은 한 인터뷰를 통해 “장기기증 서약 이후 건강을 더 생각하며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나이가 드니까 세월이 인생을 가르쳐 주더라.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 썩을 육신인데 다른 사람에게 주고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위 동료 연예인들에게 기증하라고 자주 권하는데 아직은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장기기증 문화를 알리고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1호 공익신탁자 유동근
올해 7월 배우 유동근(59)은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김현웅 법무부 장관,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와 함께 국내 첫 공익신탁자가 됐다. 공익신탁은 기부자가 은행이나 단체에 재산을 맡기고 이를 운용해 나온 수익금을 장학, 구호 등 자신이 지정한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무부와 외부 감시인 감독 아래 기부자가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쓰이고, 적은 금액이라도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간단한 절차로 ‘나만의 재단’을 만드는 셈이다(법무부 상사법무과에 문의 후 참여).
유동근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의 생계 및 교육 지원을 위해 ‘나라사랑 공익신탁’을 만들었다. (이철희 원장은 ‘난치성 질환 어린이 치료를 위한 공익신탁’, 김현웅 장관은 아동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파랑새 공익신탁’, 한비야씨는 인류애를 키우는 사업에 쓰일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에 참여) 그는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복원 성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한 바 있다.
연예계 선행 바이러스 정애리의 ‘하래의 집’
연예계 기부천사 정애리(55)는 아프리카 구호활동, 몽골 기아체험, 동남아 쓰나미 피해 지역 방문, 도시락 캠페인, 생명의 전화, 연탄은행 홍보대사, 월드비전 친선대사 활동 등 다양하고 끊임없는 선행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2004년부터 SBS 사회공헌 프로젝트 프로그램 에 참여하며 매년 후배 연기자들과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에 함께 아프리카에 다녀온 배우 장서희는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을 끝내고 드라마 촬영장에 온 정애리 선배의 모습을 보고 나도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애리의 선행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2005년에는 17년간의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를 펴내며 인세 수익금 1억 원 전액을 정읍의 ‘사랑의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책에는 그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고아시설 ‘하래의 집’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지상에서 굶는 아이들이 없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이라며 책을 펴낸 소감을 전한 그녀는 책을 통해 ‘하래의 집’에 대한 이야기와 나눔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자옥 재단 ‘공주는 즐거워’ 프로젝트
지난해 11월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김자옥을 추모하고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했던 그녀의 뜻을 기리는 ‘김자옥 재단’이 내년 1월 설립된다. 기아대책 홍보대사활동, 사랑 나눔 한복 패션쇼 참여 등을 비롯해 2007년에는 배우 주현, 전무송, 나문희 등과 함께 출연료 전액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도네이션 드라마 (KBS 2TV)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나눔을 실천했던 그녀다.
고 김자옥의 남편인 가수 오승근은 “생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선행을 많이 한 아내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고 재단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김자옥 재단’은 배우 강부자를 비롯한 동료 연기자들이 동참해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봉사활동과 재능기부 등을 할 계획이다. 김자옥 재단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원하는 40~60대 여성들이 불우한 청소년들의 멘토로 활동할 수 있는 ‘공주는 즐거워’ 프로젝트를 첫 공식 활동으로 기획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불투명한 지금, 부모에서 자식으로, 손주에게 자산을 배분하는 ‘세대간 원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부등식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g)을 능가한다는 의미[r>g]다. 즉 자본가가 주식과 투자로 번 돈이 일반국민의 소득 성장보다 커져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격차의 시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자산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자신의 세대만 행복을 누릴 것이 아니라 쌓은 재산은 다음 세대에게 선물해야 한다. 자산가들은 금융자산, 부동산, 현금 등 세 가지 별로 남기는 사람과 남기지 않은 사람들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정리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 금융자산
>> 남기자 파
△ 장기투자로 자산을 늘린다
장기투자란 자신이 응원하고 싶은 기업에 투자해 그 성장과 함께 돈이 늘어나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장기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작하는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일반적으로 일해온 사람이라면 막대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걸 더욱 늘려서 처음으로 ‘어떻게 남길까’라고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퇴직 후에도 20년 정도 인생은 계속되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있다. 장기투자를 시작하면 돈이 느는 흐름을 타고 생활할 수 있어 여유를 유지하게 된다.
△ 장기투자를 후세에 남긴다
진짜 투자가는 ‘돈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돌린다’는 가훈 아래 일하고 기업을 응원하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하며 몇 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다. 알뜰하게 쌓아올린 돈이기에 소중하게 길러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는 것이다. 자산을 물려줄 때는 자손에게 그러한 교육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점, 자신이 그 기업을 응원하는 이유 등을 자식과 손주에게 알려줄 것. 그러면 후손들도 돈과 함께 ‘그런 식으로 살아가라’라는 당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의미 있게 돈을 쓸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엔이라는 돈을 상속해도 받은 쪽은 2~3년 놀며 살면 끝나 버린다. 과연 그게 좋은 상속이라고 하겠나?
그리고 어떤 투신도 소액으로 현금화할 수 있어 주식과 달리 받는 측도 쪼개서 상속세를 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식과 손주의 부담도 배려해야 한다.
>> 안 남기자 파
△ 의미 있는 기부를 한다
돈을 소중히 키우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부는 자신의 꿈과 생각,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다. 기부를 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죄 만들기’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부를 받는 곳의 활동이 시간이 걸리는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사정으로 기부를 그만두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기부처의 활동도 중지되고 만다. 특히 기부의 도움으로 활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게 된다. 돈을 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자기 세대에서만 기부가 끝나지 않도록 자식과 손주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기부하면서 활동에 참가
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불투명한 곳에는 기부하지 말 것. 그리고 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부처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더 의미있게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 도우미 활동을 지원한다. 기부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고령자도 정년 퇴직 후 평생 사회와 이어질 수 있다. 자식과 손주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돈만이 아니라 기부활동에 관한 생각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부동산
>> 남기자 파
△ 신축 아파트 경영
부동산을 똑똑하게 남기는 대표적인 방법은 신축 아파트 경영이다. 갖고 있는 자금으로 땅을 대출 구입해 아파트를 짓고, 월세로 경영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젊은 사람들은 도심에서 살기를 동경한다. 그런 20~30대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아파트 경영은 장래에도 안정된 투자라고 하겠다.
자신은 월세 수입으로 얻은 돈에 연금을 얹어 입지 조건이 좋은 아파트를 빌리든지 사든지 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10~20년 뒤 도심에 구입한 아파트 대출을 다 갚은 시점에 손주에게 물려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손주에게는 월세수입이 큰 도움이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 좋은 대출은?
임대 병용 주택을 지어서 한쪽은 빌려주고 또 다른 한쪽에 사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월세 수입으로 대출을 갚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돌린다. 그 경우 아파트 대출(투자대출)이 아니라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낮은 금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 투자에서 ‘좋은 대출’이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입주자가 갚도록 하는 것이다. 남은 월세수입은 자신의 재산.
>> 안 남기자 파
△ 일찌감치 판다
손주에게 확실하게 월세수입이 있는 아파트를 남기길 권하고 싶지만, ?아파트 경영이란 모험은 못 하겠다’라는 사람들에게 다음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지금 사는 집을 매각할 것.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알다시피 거품이 빠지고 나서 토지가격이 상승할 기미는 없다.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매각해서 역 앞 아파트로 이사하는 쪽이 무난하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라고 말했는데, 일본에서 현재 두드러진 것은 ‘토지의 격차’다. 값이 오르는 토지와 떨어지는 토지로 양극화됐다.
팔 것을 생각한다면 도심에 사는 사람은 혹시 상승할지도 모르는 토지가격의 변동을 조사하고, 교외와 지방에 사는 사람은 서둘러 매각하길 권한다.
△ 빌린다
입지가 좋은 집이라면 누군가에 빌려주고 자신은 역 앞 아파트에 살자. 20만엔 정도로 빌려주고 10만엔에 역 앞 아파트를 빌리면 남은 10만엔이 생활비다. 다만 ‘아무도 빌리지 않겠지’라고 판단되는 곳이라면 빌려주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살고 있는 집을 매각해 그 집을 빌려 살 수도 있다. 해외에 살고 있는 딸 내외가 귀국해서 살 집을 사전에 구입해 두는 경우이다. 교섭하기에 따라서는 딸 내외가 귀국하기 전까지 싸게 빌려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 기부한다
전국에 빈집이 820만호나 있는 시대. 인구감소의 사회가 도래하기에 향후 빈집이 증가할 것은 틀림없다.
아무리 집과 토지를 무상으로 기부한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와 NPO법인으로부터 ‘필요없다’는 답변을 받는 것도 각오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시의 경우 집을 기부한다고 신청해도 이미 빈집이 1만호나 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해체비용도 들고, 빈터로 만들면 고정자산세가 6배가 된다. 기부를 생각한다면 서둘러 결정하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들에게 절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 물려주면 그때부터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 나이든 자산가들 사이에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라도 갖고 있어야 자식들이 자주 찾아와서 노년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의 큰어머니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67세의 사촌형에게 재산을 상속했다고 한다. 92세라고 하면 일본인의 평균수명을 생각할 때 특별히 오래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런데, 92세 고령자라면 그 배우자 또한 비슷한 수준의 고령자일 것이고, 자녀들도 젊어야 50대 후반이나 환갑을 넘은 나이일 것이다. 즉, 일본의 노인이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갖고 있던 재산이 거의 확실하게 노인에게 상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老老(노노)상속이 일본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돈이 노인들 수중에서만 돌고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 세대에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미래의 꿈을 가진 벤처비즈니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20여년의 일본의 장기 경제불황은 ‘돈 쓰지 않는 부자 노인’과 ‘돈이 없어 소비하지 못하는 가난한 젊은 세대’라는 이중적인 사회구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60대 이상의 고령세대는 일본 전체 가계금융자산의 7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노인은 지금과 같이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언제 어떤 고생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현금을 움켜쥐고만 있다. 본인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익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하지도 않는다.
돈 가진 세대가 소비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니 경제 또한 활성화되지 않는다.일본의 정책당국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 특히, 노인들 수중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젊은 세대에게 이전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제 우대제도를 도입했다. 부모가 자녀들의 주택 구입자금, 교육자금, 결혼·출산·육아비용 등에 원조를 할 경우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 증여세를 면제해주도록 한 것도 이런 정책적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은 고령세대가 보유한 자산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체 가계금융자산 중 60세 이상의 고령세대가 보유한 비율은 30%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715만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세대로 편입된 이후이다. 그때쯤이면 고령세대가 보유하는 가계금융자산의 비율은 50~6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정책당국의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고령세대의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판 老老상속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의 정책도 자산가들의 마음가짐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산가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지난 30~40년 동안 우리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자산가격이 계속 상승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성장시대의 혜택을 받은 세대로서 사회공헌 조직을 만들거나 기존의 사회공헌단체에 기부활동을 함으로써 그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자산가라면, 그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은 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00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70세 된 자녀에게 상속을 한다면 그 재산이 생산적인 곳에 쓰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녀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에 투자하거나 꿈이 있는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재산상속과 자녀들의 효도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을 잘 시켜서 자녀들 스스로가 부모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온다면 모르지만 돈을 미끼로 찾아오게 만든다면 그 노년이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차라리 노부부 둘만 남았거나 사별해서 혼자되었을 경우에라도 외로움에 견딜 수 있는 능력, 고독력을 키우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보유재산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거나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싶어도 노부부가 몇 살까지 살게 될지 또는 노후생활비가 얼마나 들지를 예측할 수 없어서 지원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현역시절에 가입해둔 3층 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나 즉시연금, 주택연금, 농지연금 등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본생활비 정도를 보장받을 수 있겠는지를 먼저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계산해본 결과, 이들 연금으로 기본생활비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나머지 재산 중 일부는 안심하고 사회공헌 활동 또는 자녀 지원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이든 고령세대 자산가들에게는 재산 축적과 사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재산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이것은 국가경제를 불황에 빠뜨릴 뿐 아니라 그 불황의 여파는 다시 자신과 자녀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
나를 위한 여정은 결박된 현실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나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웰에이징 힐링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에서는 명상, 운동, 요가, 건강식 등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쉼표를 찍고 싶은 싱글들이 건강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사진 힐리언스 선마을 제공
힐리언스 선마을에서는 매월 첫째 주 2박 3일간 이시형 박사와 함께하는 하이라이프 캠프가 진행된다. 이 캠프는 질병 없이 장수하기 위한 생활습관개선법과 이시형 박사의 건강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월부터 12월까지 매월 1회 운영된다.
하이라이프 캠프는 올바른 4대 생활습관(식습관, 마음습관, 운동습관, 생활리듬습관)의 학습을 통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건강검진결과 만성질환 위험인자가 있는 사람, 노화방지를 원하는 사람이 참여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2박 3일간 배우게 될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시형 박사의 강의로는 ‘자연의학과 생활습관’, ‘세로토닌과 뇌 피로’ 등이 있다. 이 강의를 통해 ‘왜 지금 선마을인가’와 뇌 피로 회복, 건강과 뇌의 관계, 질병예방을 위한 생활습관개선의 방법,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또 세로토닌의 세기, 행복씨앗 세로토닌을 이해하고 활성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감정조절과 스트레스 관리방법을 체험하게 된다.
생활리듬습관 개선 프로그램에서는 인디언식 키바(KIVA)를 통해 감성을 깨우는 방법을 배운다. 모닥불 감상과 별 감상 등을 하고 고구마도 굽고, 차도 마시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서로 터놓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감성회복에 도움을 주는 체험인 와식명상은 누워서 전신을 이완시켜 깊은 휴식을 취하는 명상 방법이다. 와식명상은 스트레칭, 누워서 호흡에 집중, 마무리 체조로 구성된 이완명상으로, 이를 통해 피로회복 및 올바른 수면 습관을 체험할 수 있다.
식습관 개선 프로그램에서는 ‘맛있게, 푸짐하게, 건강하게’라는 임상영양사의 강의를 듣는다. 선마을이 만든 거꾸로 식사법 등을 통해 한국인의 식습관에 맞춘 식사습관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기본 원리에 맞춰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마음습관 개선 프로그램에서는 ‘산림 치유 명상’, ‘상쾌한 선마을 종자산둘레 트레킹과 자연명상’ 등의 시간을 갖게 된다. 걷는 즐거움과 함께 심폐지구력 및 근지구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감성회복에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와 명상’ 시간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내외적 원인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스트레스 예방 및 해소를 위한 중요한 마음습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참가비는 1인 72만 원.
숲속의 하루와 숲속의 힐링런치
서울권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 강원도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은 홍천군으로부터 나트륨 저감화 사업소로 선정되어 건강식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홍천 유명지역을 둘러본 후 선마을 당일여행을 떠난다면 숲여행으로도 손색이 없다.
힐리언스 선마을 ‘숲속의 하루’ 프로그램은 오전 10시에 입촌하여 오후 4시에 퇴촌하는 당일 코스 일정으로 되어 있으며, 시설을 둘러본 후 명상, 요가, 운동, 트레킹 수업 중 하나를 골라 체험할 수 있다. 이후 항산화 콘셉트의 웰에이징 푸드 선마을 점심식사를 한다. 제철재료로 건강한 조리법을 이용하기 때문에 맛과 건강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영양만점 밥상이다. 이어 황토찜질방, 팔선욕장, 탄산천 등 자연세유 스파를 체험할 수 있다.
‘숲속의 힐링런치’ 프로그램은 힐링 체험과 점심식사 후 미강가루와 각종 견과류, 말린 과일, 올리고당과 두유 등을 넣어 반죽한 현미쿠키만들기 클래스 체험이 가능하다.
숲속의 하루는 1인 5만9000원, 숲속의 힐링런치는 1인 3만5000원에 참여할 수 있으며, 매주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진행된다.
자연스럽게, 느리게 하는 NST 다이어트
N.S.T(Natural Slow trimming) 식단을 적용한 체인징바디 프로그램에서는 생활습관의학 개선에 근거하여 매주 일~월요일 1박 2일간 캠프를 개최한다. 식단은 아침으로 비타민, 미네랄, 살아 있는 효소가 풍부한 주스를 제공하며, 점심에는 메밀요리 또는 현미식단을 제공한다. 하루의 시작은 스트레칭과 하체 근육 운동, 30분 걷기나 100계단 오르기를 진행한다. 또 입촌 시 체성분 측정 및 허리둘레를 측정하고, 파워 & 슬리밍요가, 비타민D 트레킹, 자연세유스파와 명상수업까지 함께 한다. 여름(7, 8월)과 겨울(12월)에는 특집 4박 5일 과정을 진행한다. 1인 1실 18만 원이다.
힐리언스 선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한국 10대 테마코스 치유여행지로 ‘국내 민영 1호 치유의 숲’으로 선정됐다. 강원도 홍천 종자산 250m 고지에 위치한 힐리언스 선마을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건강 체험 프로그램, 면역력강화식단, 전문 강사진을 확보한 웰에이징 힐링센터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된 완벽한 디지털 디톡스존으로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뇌 피로 회복과 최적의 휴식여행 장소로 꼽히고 있다.
숲 명상을 염두에 둔 10개의 트레킹코스와 친환경 시설로 완비되어, 웰에이징 라이프를 위한 힐리언스 웨이 캠페인과 사회건강공헌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문의: 1588-9983 홈페이지: www.healience.com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대개 이상, 사회공헌, 자아실현, 사랑, 성공 등 몇몇 단어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뒤도 안 보고 달린다. 돌아보면 이리 저리 치였고, 주름은 하나둘 늘었다. 지난 세월의 무게만큼 늘어진 몸,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측량해 볼 수도 없지만 마음속엔 늘 돌덩이 하나 앉아 있다, 중년이다. 잠깐, 돌덩이 내려놓을 휴식이 필요하다. 오전과 오후 일상을 이어주는 낮잠처럼 쉼표 하나 찍는 것으로 ‘충전’이 가능하다. 잠 깨면 다시 일상이지만 그와는 다른 힘을 주는 낮잠이 있다. ‘템플스테이’다. 전국에는 훌쩍 찾아가도 낮잠을 내주는 사찰이 많다. 사찰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한다.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이다. 천혜의 자연은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떠난다.
글 최호승 법보신문 기자 0910time@naver.com
사진 한국불교문화산업단 제공
거북도 쉬어 가는 성주 심원사
거북도 쉬어 간다는 경북 성주 심원사는 지친 몸과 마음을 뉘일 수 있는 곳이다. 소백산맥 자락 가야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산사다. 일찍이 에 ‘가야산의 지세나 풍경이 천하에 뛰어나며 그 덕은 해동에 견줄 곳이 없으니 참으로 수도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으니, 심원사는 일상 속 쉼표를 찍기에 제격이다.
심원사는 등산객으로 비좁은 가야산 안에 있지만 관광객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다른 세상이라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다. 가야산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거북이처럼 쉬어 갈 수 있다.
특히 심원사는 ‘푹 쉬다 가이소’라는 휴식 템플스테이가 주말과 평일에 운영된다. 기본적인 사찰예절과 108배 등을 빼면 간섭을 받지 않는다. 사찰에 도착하면 단아한 수련복을 제공받고 기본적인 일과 설명이 끝나면 자유다.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참가비가 아쉽다면 차담을 권한다. 스님과 차담이 자유로워 말 못할 고민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유필상 상상출판 대표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도움으로 이곳을 찾아 스님을 만난 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촌음을 다투며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과거와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했던 아픔을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자신 안의 ‘나’와 마주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는 “잘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스님이 답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반짝이는 돌을 갖기 위해 싸우고 숨기는 이야기가 나오네. 자네가 가지려는 그 무엇이 반짝이는 돌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잃어버리면 낙심하고 세상 다 끝난 것 같고 죄진 것도 아닌데 피하고 숨어 지내는 것 아니겠나. 돈이든, 자리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밤엔 가야산 산줄기 따라 쏟아지는 별빛에 몸과 마음을 샤워하는 환상적인 시간이 참가자를 기다린다. www.simwonsa.kr 054)931-6887
내게 걸어 들어가는 길, 반야사
충북 영동 반야사도 혼자 가야 정취를 제대로 느낀다. 자신을 위한 여행의 로망을 풀어놓기에 영동 첩첩산중에 자리한 반야사가 안성맞춤이다. 반야사는 큰 물줄기를 끼고 있다.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백화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만든 연꽃 모양 중심에 반야사가 있다.
반야사의 길은 특별하다. 숲에 난 오솔길을 한참 걸려야 산문에 다다르는데, 이 길의 고요함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넓지 않은 도량에 문수전과 관음전이 적당히 떨어져 있어 오가는 길이 곧 산책로이자 사색의 길이다. 문수전을 돌아 푸른 대나무 숲을 지나 관음전으로 향하는 짧은 산책로는 맨발로 걸으며 흙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 또 산마루에 있는 문수전까지 이르는 길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정묵당 뒤로 개천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계단이 나오는데, 물길 따라 걷는 이 길은 압권이다. 그리고 관음전 연못가는 자신을 반추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상시 운영 템플스테이 ‘난 나를 사랑해’와 특별 프로그램 ‘또 하나의 시작’에서 누구나 길을 만날 수 있다.
별빛 아래 산책은 반야사 템플스테이의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한낮의 산행과 다른 맛과 멋을 선사한다. 반야호수 주변에는 가로등 몇 개만 가물거린다. 달과 별을 위한 배려다. 한적한 이 호숫가를 거닐면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반야호숫가, 관음전 오솔길, 편백나무숲, 수령 500년 된 배롱나무, 문수전 등 반야사 도량이 건네는 쉼표이기도 하다. 심원사에 이어 반야사도 찾았던 유필상 상상출판 대표는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웠던 자연의 소리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 순간,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고 회고했다. www.banyasa.com, 043)742-7722
지리산 천왕할미 품 속 산청 대원사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약손처럼 위로가 필요할 땐 지리산 산청 대원사로 발길을 돌려보자. 대원사는 주차장에서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천왕봉에 이르는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새재마을 아래에 일주문이 있다. 대원교에 올라서면 남한 제일이라는 시원한 계곡 경치가 맞이한다. 천왕봉에서부터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등을 지나온 실개울들이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사찰예절과 합장, 절에 대한 의미를 배운다. 이어 지리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저녁 공양시간이다. 마고할미가 산다는 지리산에 자리한 대원사는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이다. 여성 수행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해서 공양에는 어머니 손맛이 그득하다. 지리산에서 나는 갖가지 산나물이 지천이고, 비빔밥은 나물마다 독특한 향이 날것 그대로 몸과 마음을 적신다.
골짜기 주변으로 맹수들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맹세이골 숲 탐방을 나서면 지리산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친 나무들이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로 다가온다.
대원사에는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이 한 번도 바닥에 눕지 않고 42일 동안 수행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좌선대가 있다. 흉내 낼 요량으로 앉으면 지리산 치마폭에 안긴 대원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혜윰씨는 “어떤 모습이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 줄 것만 같은 절집으로의 여행은 고향 할머니를 찾는 마음처럼 부담이 없다”며 “힘들다고 한바탕 한탄하고 어리광 부리면 ‘그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안아주고 고봉밥을 내주던 할머니 같다”고 했다.
대원사는 ‘몸생생’, ‘마음생생’ 2가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계곡 포행(布行: 천천히 걸으며 선을 행함)이나 약초찜지라, 맹세이골 생태체험 등 휴식 템플스테이 ‘몸생생’은 매일 진행된다. 명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면 주말에 ‘마음생생’을 찾길 권한다. www.daewonsa.net, 055)974-1112
사람 향기 풍기는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땅끝마을, 그곳에도 절이 있다. 달마산 아래 해남 미황사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주차장에서 미황사로 오르는 돌계단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섬에 있는 곳을 제외하곤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천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대웅보전에는 거북이나 게 등 바다생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미황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석양이 물드는 시간,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일몰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달마산에 해 지고 달이 찾아오면, 처마 끝으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는 밤풍경에 취하는 것이다. 김혜윰씨는 “달마산 정상의 백색 화강암 바위 봉우리가 낙조의 붉은 빛을 받아 더욱 금빛으로 반짝인다”며 “대웅보전 주춧돌에 조각돼 있는 게와 거북이 마치 연꽃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 듯 보인다”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미황사 경내를 돌아보는 시간을 추천한다. 미황사가 품은 단 하나의 암자인 부도암은 왕복 20분 거리다. 여러 부도탑에는 게와 물고기, 거북 조각이 새겨져 있고, 조각의 소박함에서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측백나무 숲길이 주는 싱그러움이 그립다면 돌 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지나 ‘다르마 로드’에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미황사는 ‘참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다. ‘나를 챙기다’는 간단한 수행 프로그램이 있다. 특별 프로그램 중 ‘길 없는 길’을 택한다면 참선부터 다도, 묵언, 오후불식, 수행문답 등을 체험하면서 일상에 길들여진 ‘거짓 나’에서 ‘참 나’를 찾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www.mihwangsa.com, 061)533-3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