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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
-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임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끄는 호수들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제한민족재단에서 주관한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 회상열차’의 일원으로 희망 대장정을 다녀왔다. 극동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출발하여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6,500여 km를 열차로 이어가는 긴 여정 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했다. 아나콘다 구렁이 같은 커다란 몸체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달려 나간다. 잠시 후 부터 하늘과 벌판만이 펼쳐져 있는 시베리아벌판에 가르마를 내며간다. 가슴은 열차 지붕 위에 올라앉았고 시선은 막힐 것 없는 지평선 위를 나른다. 저토록 청맑은 하늘과 이토록 넓은 벌판은 희뿌연 미세먼지가 아닌 해 저문 어둠만이 덮어 가릴 수 있을 것이다. 4인실 2층 침대 열차안의 일행 네 명이 준비해온 보드카로 궁색하지 않은 술상이 차려진다. 시베리아 벌판이 어둠에 진하게 물들 듯 우리들도, 열차도 보드카에 취한 듯 흔들리며 간다. 어릴 적 시골집 어두운 종이천장 안에서 타닥대며 뛰어 다니던 생쥐들의 달그락거림이 열차 바퀴 덜컹거림으로 울려져 온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열차 차창에 아침이 밝는다. 어둠을 벗어 던진 대륙의 한 기차역에 내려 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경쾌하다, 시원하다. 인공양념 섞이지 않은 담백한 초두부 맛이라 할까 삼삼하게 우러난 맑은 동치미 국물 맛이라 할까. 벌판의 풋내 담겨오는 아침공기를 허파꽈리 잔뜩 끌어들이니 허기가 느껴져 온다. 갑자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놀란 내장을 매콤한 국물로 중화시켜주고 싶다.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채워온다. 밤새 흔들리며 선잠에 웅크렸던 육신을 매콤한 노크로 잠 깨워 본다. 서서히 한반도 토종의 몸 말초신경에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이틀을 달려온 열차는 아직도 갈길 먼 나그네 이다. 뉘엿뉘엿 햇살이 낮게 지평선위에 걸터앉는다. 차창을 바삐 스치는 늘씬한 소나무 줄기 불그레한 넓적다리가 황홀하다.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어 너 댓 잔 들이키는 보드카 술기운에 젖은 시선이 여전히 흔들거린다. 저녁노을 문지른 적송 줄기의 쭉쭉빵빵 각선미가 몽롱하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다. 내 어릴 적 엄마의 흔들리는 무릎위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때처럼 침대열차도 쉼 없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내 코고는 소리를 감추어 주며 달린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중요치 않다. 몇 시 인지도 알 필요 없다. 열차 복도 창에 햇살이 들면 아침이고 침대칸 차창에 석양이 깔리면 저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의 새하얀 피부를 닮아 들안개도 뽀얗게 물들어 깔린 벌판에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차창 밖 저 멀리 녹색 벌판이 끝나는 선에 파란 하늘이 이어져 있다. 다만 내 시력이 초록에서 하늘공간으로 건너지 못할 뿐이다. 수십km 밖 아니 수백km 밖까지 펼쳐지는 대지에 내 시선이 이르지 못할 뿐이다. 밤새 흔들던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열차 중간의 샤워장에 갔다. 우리 돈 3천 원 쯤을 내고 생전 처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를 해봤다. 비눗물은 곧 바로 철길 위로 빠져 나갔다. 내 육신의 비늘 조각과 머리카락 몇 오라기를 시베리아 벌판에 뿌려 놓고 가는 것이다. 3일 전 부터 열차는 쉼 없이 서쪽으로 달려왔다. 기울어가는 해를 따라 꿈틀대며 간다. 사흘 반나절을 옆에서 같이 달려온 벌판과 소나무와 자작나무와 언덕과 야생화가 일시에 사라졌다. 검푸른 바다 같은 물결이 차창 옆까지 들이 닥친다. 우와! 바이칼 호수! 그림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바이칼! 자작나무의 희멀건 가랑이 사이로 바이칼의 푸른 영혼이 가득 차 쏟아져 들어온다. 어찌할꼬? 저 푸른 호수에 풀쩍 안기고픈 충동은? 내 어릴 적 북한강변에서 첨벙대며 멱 감던 시절아. 열차야 잠시 멈추어 다오. 걸쳤던 옷 훌러덩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으스러지고 싶소. 저 호수 건너편 까마득한 수평선까지 물수제비 던져보고 싶소. 바이칼호수도 반갑다고 물결 잠재우고 수 백 수 천 개의 물수제비 받아들고 품에 안고 있는 2600여 종의 동식물들에게 나눠 줄 것이요. 광활한 대자연.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마르지 않는다는 바이칼. 3,000만 년을 얼고, 녹은 바다 같은 호수. 천지의 어머니 바이칼. 우주 밖에서도 보인다는 바이칼. 나는 잠시 두 발을 적시고 갈 뿐이요. 나는 H2O가 70%인 작은 물방울일 뿐이요. 나의 머릿속에서 평생 출렁이고 있을 것이요. 나는 먼지처럼 작아질 뿐이다.
- 2017-10-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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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
-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임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끄는 호수들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제한민족재단에서 주관한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 회상열차’의 일원으로 희망 대장정을 다녀왔다. 극동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출발하여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6,500여 km를 열차로 이어가는 긴 여정 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했다. 아나콘다 구렁이 같은 커다란 몸체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달려 나간다. 잠시 후 부터 하늘과 벌판만이 펼쳐져 있는 시베리아벌판에 가르마를 내며간다. 가슴은 열차 지붕 위에 올라앉았고 시선은 막힐 것 없는 지평선 위를 나른다. 저토록 청맑은 하늘과 이토록 넓은 벌판은 희뿌연 미세먼지가 아닌 해 저문 어둠만이 덮어 가릴 수 있을 것이다. 4인실 2층 침대 열차안의 일행 네 명이 준비해온 보드카로 궁색하지 않은 술상이 차려진다. 시베리아 벌판이 어둠에 진하게 물들 듯 우리들도, 열차도 보드카에 취한 듯 흔들리며 간다. 어릴 적 시골집 어두운 종이천장 안에서 타닥대며 뛰어 다니던 생쥐들의 달그락거림이 열차 바퀴 덜컹거림으로 울려져 온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열차 차창에 아침이 밝는다. 어둠을 벗어 던진 대륙의 한 기차역에 내려 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경쾌하다, 시원하다. 인공양념 섞이지 않은 담백한 초두부 맛이라 할까 삼삼하게 우러난 맑은 동치미 국물 맛이라 할까. 벌판의 풋내 담겨오는 아침공기를 허파꽈리 잔뜩 끌어들이니 허기가 느껴져 온다. 갑자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놀란 내장을 매콤한 국물로 중화시켜주고 싶다.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채워온다. 밤새 흔들리며 선잠에 웅크렸던 육신을 매콤한 노크로 잠 깨워 본다. 서서히 한반도 토종의 몸 말초신경에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이틀을 달려온 열차는 아직도 갈길 먼 나그네 이다. 뉘엿뉘엿 햇살이 낮게 지평선위에 걸터앉는다. 차창을 바삐 스치는 늘씬한 소나무 줄기 불그레한 넓적다리가 황홀하다.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어 너 댓 잔 들이키는 보드카 술기운에 젖은 시선이 여전히 흔들거린다. 저녁노을 문지른 적송 줄기의 쭉쭉빵빵 각선미가 몽롱하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다. 내 어릴 적 엄마의 흔들리는 무릎위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때처럼 침대열차도 쉼 없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내 코고는 소리를 감추어 주며 달린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중요치 않다. 몇 시 인지도 알 필요 없다. 열차 복도 창에 햇살이 들면 아침이고 침대칸 차창에 석양이 깔리면 저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의 새하얀 피부를 닮아 들안개도 뽀얗게 물들어 깔린 벌판에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차창 밖 저 멀리 녹색 벌판이 끝나는 선에 파란 하늘이 이어져 있다. 다만 내 시력이 초록에서 하늘공간으로 건너지 못할 뿐이다. 수십km 밖 아니 수백km 밖까지 펼쳐지는 대지에 내 시선이 이르지 못할 뿐이다. 밤새 흔들던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열차 중간의 샤워장에 갔다. 우리 돈 3천 원 쯤을 내고 생전 처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를 해봤다. 비눗물은 곧 바로 철길 위로 빠져 나갔다. 내 육신의 비늘 조각과 머리카락 몇 오라기를 시베리아 벌판에 뿌려 놓고 가는 것이다. 3일 전 부터 열차는 쉼 없이 서쪽으로 달려왔다. 기울어가는 해를 따라 꿈틀대며 간다. 사흘 반나절을 옆에서 같이 달려온 벌판과 소나무와 자작나무와 언덕과 야생화가 일시에 사라졌다. 검푸른 바다 같은 물결이 차창 옆까지 들이 닥친다. 우와! 바이칼 호수! 그림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바이칼! 자작나무의 희멀건 가랑이 사이로 바이칼의 푸른 영혼이 가득 차 쏟아져 들어온다. 어찌할꼬? 저 푸른 호수에 풀쩍 안기고픈 충동은? 내 어릴 적 북한강변에서 첨벙대며 멱 감던 시절아. 열차야 잠시 멈추어 다오. 걸쳤던 옷 훌러덩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으스러지고 싶소. 저 호수 건너편 까마득한 수평선까지 물수제비 던져보고 싶소. 바이칼호수도 반갑다고 물결 잠재우고 수 백 수 천 개의 물수제비 받아들고 품에 안고 있는 2600여 종의 동식물들에게 나눠 줄 것이요. 광활한 대자연.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마르지 않는다는 바이칼. 3,000만 년을 얼고, 녹은 바다 같은 호수. 천지의 어머니 바이칼. 우주 밖에서도 보인다는 바이칼. 나는 잠시 두 발을 적시고 갈 뿐이요. 나는 H2O가 70%인 작은 물방울일 뿐이요. 나의 머릿속에서 평생 출렁이고 있을 것이요. 나는 먼지처럼 작아질 뿐이다.
- 2017-10-1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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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을 향한 그리움이 ‘소나무’로
- 2016년 3월 12일~5월 8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근대미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백년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한국근대미술의 거장전인 화가 변월룡, 이중섭, 유영국의 작품전시회가 열렸다. 그 중 첫 번째로는, 한국 최초로 전시하는 작품이며, 앞으로는 또, 언제 다시 전시를 하게 될지 기약이 없는, 아주 특별한 화가, 변월룡의 첫 회고전인 ‘삶과 예술’ 전이 개최됐다. 그런데, ‘변월룡 화가’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6년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났으며, 레닌그라드의 레핀 예술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가 된 고려인이다. 그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국경 밖에서 태어나, 이주의 땅에서, 소수자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자신의 디아스포라적인 실향민의 운명을,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승화시킨 화가다. 세상과 자기 내면을 향한 시선을, 화폭에 담은 흔적이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레핀 예술아카데미의 교수로 있을 때, 독·소 전쟁이 일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으로 정치 포스터를 많이 그렸다. 그런데 1953년, 그가 레핀 예술아카데미 부교수로 있을 때,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평양미술대학 학장과 고문을 역임했다. 15개월 정도 평양을 다녀온 것이다. 후에 다시 가려 했으나, 북한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겨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후로는, 변월룡은 소나무를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러시아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나무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흔한 나무다. 그의 소나무 그림을 보면, 반듯하고 곧게 뻗은 나무가 없고, 대부분 뒤틀리고, 심하게 구부러져있다. 화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언제나 조국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으로 소나무를 그렸다. 소나무를 그린 작품 중에서 ‘금강산 소나무’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 금강산을 배경으로, 홀로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를 그린 것인데, 이 작품의 특징은 다른 소나무들과는 달리, 모습이 뒤틀린 것이 아니라 나무가 곧게 뻗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내적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나무는 작가가 그의 삶을 마감하는 이생의 끝에서, 영혼이나마 조국으로 돌아가, 비로소 그의 고뇌를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은, 화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한 것은 아닐까? 변월룡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을 끝내 가보지 못한채, 1990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 2016-07-05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