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가려는데 어디가 좋을까?” 딸아이의 물음에 “인도가 좋다던데!”라고 무심코 대답하는 아빠. 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인도는 위험하지 않을까? 당신도 함께 다녀오는 건 어때?” 그렇게 보호자 신분(?)으로 아빠는 딸과 여행을 떠났다. 딸의 꿈으로 시작된 배낭여행은 이제 함께하는 꿈으로 성장했고, 아빠는 딸의 보호자가 아닌 꿈의 동반자가 됐다. 어느덧 8년 차, 환상의 배낭여행 콤비 이규선(62)·이슬기(32) 부녀의 여행기를 들어봤다.
◇ 아빠 이규선
30년간 다닌 은행에서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가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딸 덕분에 여행에 눈을 뜬 뒤, ‘어디로 떠나지?’라는 즐거운 고민에 빠져 지낸다. 자타공인 ‘딸바보’라 불리길 좋아하는 푼수 아빠다.
◇ 딸 이슬기
삼성맨을 그만두고 놀이·공연·강연을 기획하는 액션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추억부자가 되길 바라는, 또 무엇보다 부모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길 바라는 철부지 딸이다.
◇ 이규선·이슬기, 우리 부녀의 여행은?
여행 이력 8년 차. 인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5개국 111개 도시 여행
여행 콘셉트 청춘여행! 나이와 무관하게 자기가 꿈꾸는 걸 실현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청춘!
여행 시기 목표로 했던 꿈을 이루고, 그다음 꿈을 향해 갈 때
역할 분담 아빠) 그날그날 일과 짜기&요리담당, 딸) 예약 및 정보수집
여행 경비 현재까지는 아버지와 자신을 위한 선물로 딸이. but, 돈 관리는 아빠가!
사실 말은 쉽지만 가족여행은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쩌면 ‘가족여행’이라 쓰고 이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싸운다. 고로 가족이다.’ 에 딸 슬기씨가 쓴 글귀다. 낯선 이국땅에서 아빠는 딸에게 맞추느라, 딸은 아빠에 맞추느라 서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아빠와 딸이라서 다시 애틋한 가슴으로 서로를 껴안을 수 있었던 그들이다.
첫 배낭여행, 싸우며 싹 틔운 부녀의 동지애
아빠: 인도에 도착하고 처음 며칠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죠. 여행 초보자가 감당하기엔 버거웠거든요. 그런 데다가 딸이 이거는 이렇게 해라, 저거는 하지 마라는 둥 잔소리를 하니 서럽더라고요. 그때만큼은 한국에 있는 아내가 무척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빠와 딸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어느새 동지애를 느끼는 친구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전보다 대화거리도 풍부해졌고, 딸에 대한 믿음도 더 확실해졌죠.
딸: 처음 배낭여행을 떠나는 아빠인데, 친구와 함께 간다고 착각하고는 티케팅 30분, 배낭 싸기 한 시간, 그리고 여행 관련 책 한 권 달랑 가방에 넣고는 여행 준비를 끝내버렸죠. 여행 초반에는 아빠와 하루에 열 번, 아니 그 이상 싸웠어요. 그래도 그 넓고 낯선 곳에서 믿을 사람은 아빠와 나뿐 아니겠어요. 긴급한 상황에 서로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똘똘 뭉치게 되더라고요.
서로의 낯선 얼굴과 마주하다
아빠: 살면서 자식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린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슬기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집 밖에서 본 딸애의 모습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나? 이런 모습도 있네?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딸: 내게 익숙한 아빠의 모습은 ‘가장’이라는 책임의 가방을 메고 있는 남자였어요. 히말라야에서의 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촛불을 켜고 카드게임을 하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죠. 아빠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이야기 속에는 나보다 어린 나의 아빠가, 그리고 내 나이의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메기 전, 그도 한 소년, 한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여행을 하면서 아빠는 내게 ‘이규선’이라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꿈과 희망, 열정으로 가득한 멋진 남자였습니다.
“또 같이 갈까?” 여행 유발자는 누구? 아빠? 딸? 둘 다!
아빠: 첫 여행 때 호되게 (딸아이에게) 시집살이를 하고 다시는 슬기와 여행 가지 않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60대 버킷리스트, 유럽여행을 위해 다시 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여행을 다닌다고 다녔지만 여행 일정, 이동 경로와 수단, 숙박까지 스스로 해결하기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혼자 끙끙거리는데 때마침 슬기가 전화를 해 여행을 가자는 거예요. 첫 여행에서 당한 것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함께 떠나기로 했죠.
딸: 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면서, 또 다른 꿈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휴식시간과 같아요. 그럴 땐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하든 응원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죠. 내겐 아빠가, 아빠에겐 내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주 함께 떠나는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오면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이번엔 어디 갈까?’라는 말을 꺼내게 되죠.
‘부모·자식’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아빠: 은퇴 후,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이겨내기 어렵다고 느꼈을 때, 사랑스러운 딸 슬기가 배낭여행이라는 요술로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조건 떠나세요. 나의 분신, 자식과의 여행은 여러분을 행복한 추억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딸: 온 가족 여행도 좋지만, 장기 여행이라면 모녀, 부자 등 두 사람이 떠날 것을 권합니다. 여행은 보러 가는 것보다 느끼러 가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해요. 여럿보다 단둘일 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죠. 이왕이면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여유 넘치는 곳으로 가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추천할 만합니다. 걷고 싶은 데서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아요. 함께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답니다.
◇ 자녀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Tip 10가지
1. 망설이지 말자. 때는 바로 지금!
2. 잘만 먹어도 성공한 여행이다. 필수품으로 팩소주와 라면, 그리고 고추장.
3. 많이 걷자. 여행 책자와 지도를 들고 발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걸어보자.
4.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다양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유명 관광지보다 볼거리가 더 풍성할 때가 많다. 대중교통 표를 직접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5. 긴장을 풀고 (자식보다) 앞장서 가보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편해지고 여행도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6. 사진을 많이 찍자. 셀카봉은 필수!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몰래 찍는 파파라치 컷을 추천한다.
7.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자녀가 골라주는 곳도 좋지만, 직접 여행지를 찾아 떠나면 즐거움과 더불어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8. 다양한 숙소를 경험하자. 호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현지인의 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현지인의 집을 추천한다.
9. 그 나라 언어를 알지 못해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할 때 직접 도전해보자. 손가락 몇 개와 간단한 영어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10. 배낭여행이지만 한 벌쯤은 휴양지에서 갖춰 입을 복장을 챙기자. 차려입었다는 기분 덕분에 해변에서 마시는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지난달에 백두대간 선자령으로 겨울산행을 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그동안 세 번이나 갔다 왔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눈길이었다. 스틱을 사용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출발해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멀리 강릉과 동해가 다 내려다보이는 새봉 전망대를 지나 풍력발전기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선자령(1,257m)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선경(仙境) 같았다.
내려올 때는 눈이 수북이 쌓인 활엽수 숲속을 지나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양떼목장을 지나 원점회귀했다. 그날 일기예보는 영하 15도의 추위라고 했는데 선자령은 눈가루가 하얗게 섞인 칼바람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쯤 되는 것 같았다. 혹한에 멋진 설경 담아오겠다고 배터리도 두 개나 가지고 갔는데 추위에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 중에 카메라 보온덮개를 준비한 사람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손가락은 꽁꽁 얼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스키 장갑만 믿고 핫팩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떼목장에 양은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가득
내려오는 코스는 숲속을 지나서 양떼목장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양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드넓은 목장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마치 동화의 나라 같았다. 끝없이 이어서 걷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흰색뿐이었다. 다양한 원색의 등산복들은 마치 설원에 핀 꽃들 같았다. 일행과 함께 하산하는 중이었지만, 잠시 멈춰 어느 것 하나 보이지 않는 눈 쌓인 목장을 바라보면서 쓸쓸하다는 생각보다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함께 텅 빈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끝없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돌아오는 겨울에도 다시 갈 것 같다.
고단함 끝에 얻어지는 것들
겨울산행은 아이젠과 롱 스패츠를 착용해도 위험하고 눈 속에 빠져 고생한 적도 있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더 약해질 체력을 생각하며 일주일간 망설이면서 고민을 했다. 힘들 거 뻔히 알면서도 강행하려는 마음은 아직도 도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다. 그리고 힘든 산행을 마친 후에는 몸은 고단하지만 정신은 맑아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평소에도 운동을 지나칠 정도로 하곤 한다. 이번 등반 중에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을 다섯 시간씩 맞아가며 고생했지만 바람이 적은 골짜기에 수북이 쌓인 눈 속에 누웠을 때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이 마냥 좋았다. 두 볼은 얼음사과같이 되었지만 드넓은 설원을 걷는 내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선자령에서의 멋진 경험으로 올 한 해도 혹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상황을 잊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 닥쳐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힘들었던 것만큼 깨달은 것도 많았던 겨울산행이었다.
* 겨울산행 tip
보온 유지는 필수. 두꺼운 겉옷 하나보다는 얇은 옷 여러 겹을 입는 것이 보온에 더 좋다.
스틱, 아이젠, 스패츠, 핫팩, 보온병은 필수. 카메라와 배터리 보온 커버도 준비할 것.
선자령처럼 눈과 바람이 심한 곳에서는 스키용 고글이 좋다.
일기예보를 100%로 믿지 말고 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서킷 코너링을 위해) 바이크와 함께 몸을 옆으로 점점 뉘이다가 급기야 뺨이 지면에 닿으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바로 그때 느껴지는 짜릿함이란 말로 형언하기 어렵죠.”(웃음)
전국 바이크 족들이 모여 실력을 뽐낸다는 경기도 가평 유명산 정상. “크앙~”하는 거친 굉음과 함께 날렵하면서도 묵직한 기운이 느껴지는 슈퍼 바이크(배기량 1000cc이상) 한 대가 멈춰섰다. 이 바이크에 앉은 라이더가 헬멧을 벗자 마초(남성) 라이더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머리를 단아하게 뒤로 빗어 넘긴 준 연예인급 미모의 여성이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로 내년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지천명(知天命·50세)의 나이를 바라보는 아마추어 슈퍼 바이크 레이서 겸 주부, 전규정(49)씨였다.
◆우울증 = 그녀의 바이크 인생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인 등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우울증이란 진단이 떨어진 것이 바로 그 즈음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직장과 집만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삶이 낳은 결과였던 것. 즐겁게 빠져들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는 의사의 권유에 사격을 비롯해 승마, 스킨스쿠버, 보드, 심지어 킥복싱까지 영역을 넓혀 갔다. 바이크도 그때 시작했다.
“강원도의 한 리조트 근처에서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 400대가 무리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죠. 오토바이 하면 택배 배달만 생각했는데 저렇게 타는 사람들도 있구나 했죠. 그길로 서울의 한 바이크 교습소를 찾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교관이 스쿠터 레이스도 나가보라고 해서 레이싱 세계에 입문하게 된 거예요.”
◆와인딩 = 슈퍼 바이크는 최고속도가 300㎞를 넘나든다. 전씨 역시 경주용 서킷에서 시속 200㎞를 훌쩍 넘겨 내달릴 정도 스피드에도 자신있다. 남성에 비해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여성인 데다 아마추어 라이더라는 점을 감안하면 준 선수급이라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즐기는 플레이는 따로 있다. 바로 와인딩(굽이길)이 그것. 서킷에서 바이크와 몸을 뉘어 업-다운을반복하며 코너링할 때 느껴지는 스릴감이 그녀가 바이크에 앉는 가장 큰 이유라고. 특히 코너를 돌 때 바이크가 기울어져 얼굴이 땅에 부딪칠듯한 느낌이 들 때가 가장 희열감이 느껴진단다. 이때 속도가 무려 시속 140㎞에 이른다. 그런 스피드가 무섭긴 하다고. 하지만 바이크를 서서히 세우며 코너를 탈출할 때 느껴지는 ‘해냈다’는 해방감은 그녀에게 가장 큰 성취감을 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녀는 바이크 투어링에 나설때 굽잇길을 골라서 다닌다. 도로가 뱀처럼 꼬불꼬불 꼬이면 금상첨화다.
강원도 느랏재, 태기산, 구룡령, 대관령, 한계령 등이 그녀가 주말이면 즐겨 찾는 투어링 코스라고. 특히 굽잇길이 심한 지리산 뱀사골이 라이딩 재미에는 그만인데 너무 멀어 자주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차량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평화의 댐도 그녀의 단골 투어링 코스다.
“업-다운으로 이어지는 와인딩은 바이크 타기의 백미예요. 내년에는 BMW원메이커 레이스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에요. 더 늙기 전에 나가서 남성들과 당당히 실력으로 겨뤄보고 싶어요.”
◆남편보다 좋은 것 = 전씨의 바이크에 대한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름 절약을 아는 주부 9단 그녀도 바이크 앞에선 한없이 무너진다. 이런 이력은 미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크를 만난 이후
로 돈을 버는 족족 바이크에 투자했던 것. 그래서 지금 소유하고 있는 바이크만 3대다.
가장 아끼는 애마는 BMW S1000RR. 가격이 무려 4000만원에 이른다. 나머지도 예사롭지 않다. MV아구스타 브루탈레675는 대당 2000만 원을 호가한다. 베스파 이태리 스쿠터도 전씨가 즐겨타는 바이크다. 레이싱용 장비까지 합하면 금액은 더 올라간다. 레이싱용 슈트를 비롯해 헬멧, 부츠, 라이딩 자켓, 라이딩 바지, 글로브 등을 합치면 2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여기에 2년 전부터 바이크 세계에 입문한 남편 바이크(할리데이비슨)와 장비를 합치면 추가로 수천만 원이 더해진다. 바이크 라이딩 취미생활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주부다. 바이크에 투자하는 돈 이외에는 지독할 만큼 아낀다. 일단 자신을 치장하거나 꾸미는 데 돈을 들이지 않는다. 성형은 물론이고, 그 흔한 피부 마사지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양말 살 돈을 아끼기 위해 남편 양말을 신기도 한다고. 그녀의 털털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렇다 보니 여자들이 다들 좋다고 한다는 명품 가방하고도 거리가 멀다.
“피부관리요? 일단 저를 누가 만지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래서 팩도 안 하고 미용 같은 것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제 유일한 취미는 바이크죠. 바이크에 들인 돈이 엄청나긴 하지만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남편보다 바이크가 더 좋으니까요.”(웃음)
◆스턴트 우먼 = 바이크는 그녀의 직업도 바꿔버린다.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스턴트우먼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 교습소에서 바이크 레이싱 교육을 받는 동안 알게 된 영화제작자에게서 “운동신경이 남다르다. 스턴트 전문 교육을 받아보는 게 어떤가”라는 말을 듣고, 그 길로액션 스쿨에 등록한 것. 각종 무술과 액션 기술을 두루 섭렵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지난 2005년 반올림 드라마에서 배우 고아라 대역(여자 경찰)으로 나왔고, 드라마 막상막하에선 배우 성유리 대역(군인)으로 바이크를 탔다. 특히 MBC 베스트 극장에선 건물 3층에서 트럭으로 뛰어내려는 스턴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요즘도 대역배우 요청이 들어오면 선별해서 방송출연하기도 한다고. 내년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있다. 이외에도 오토 바이크 로드매니저로도 활동하고 있다.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남자 형제들하고 자라다 보니 여기저기 치이면서 자랐거든요. 특히 남존여비라는 개념이 너무 싫었죠. 내가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스턴트가) 저도 무섭긴 한데 그런 두려움과 긴장감이 저를 더 즐겁게 해요. 바이크를 타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셈이지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사는 게 즐거워요.”
◆국제 여성라이더 협회 = 그녀의 바이크 사랑은 해외로도 이어졌다. 지난 2012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 여성라이더 협회 행사에 한국 대표(4명)로 참가하게 된 것. 총 300명 정도 참여하는 국제 행사에 당당히 그녀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녀는 국제적인 행사에 태극기가 찍힌 레이싱복을 입고 한국여성 라이더의 위상을 알리는 기회를 얻게 돼 영광스런 자리였다고 했다. 게다가 투어형 바이크를 현지에서 렌트해 약 12일 동안 오스트리아 곳곳을 누비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금상첨화였다고.
그렇지만 전씨는 바이크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바이크 타는 사람들 전체를 폭주족이나 불량배로 매도하고 배척하는 세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오토 바이크 타는 사람들의 취향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바이크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도 불만이다. 자동차 전용도로는아예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데다 일반도로에서도 사륜차들의 텃세에 치여 배척당하기 일쑤라는 것. 외국에서는 바이크를 출퇴근용으로 더 권장하기도 하고 사륜차들이 오토바이에 길을 비켜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데 한국은 선진국과 대조적인 모습만 연출되고 있다고. 그녀는 여성 라이더에 대한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금녀의 구역이다 보니 처음에는 미친 여자 취급까지 받았다고. 특히 자신을 여성이 아닌 똑같은 라이더라 봐달라는 것이 그녀의 부탁이다.
“체계적인 라이더 훈련을 받고 경험을 쌓은 후 자기 실력껏 바이크를 타면 그리 위험하지 않아요. 조금 빠른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는 오토바이를 타면 안 좋게 보는 이유가 유교적인 사상에 기인한 것 같아요. 오토바이 타면 주렁주렁 치장하고 문신하고 하다 보니 더 곱지 않은 시선을 주는 것도 있고요. 자기 취향일 수 있는데 말이지요.”
◆바이크 미술 전시회 = 그녀는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학에서 전공했던 미술(서양화)이다. 전씨는 본인의 천직은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만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워 직장생활에 파묻혔고 바이크를 타면서 더 등한시하게 됐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얘기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놓았던 붓을 다시 쥐고 짬짬이 작품활동을 해서 미술 전시회도 연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서도바이크는 빠지지 않는다. 바이크를 조형화하거나 형상화한 이미지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래서 전시회 이름도 ‘바이크 미술 전시회’로 벌써 지어놨다.
“바이크는 나의 심장이고, 삶의 원동력이에요. 바이크가 없으면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지요. 체력이 닿는 때까지 바이크를 탈 생각이에요.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바이크를 생각하고 즐기고 있어요. 젊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있어 좋기도 하구요.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거나 스피드만 즐기기 위해 타는 이들도 많은데 저는 이제 (그런 것은) 초월했어요. 바이크는 제 인생을 바꿔준 대상이고, 삶의 가치를 높여 풍성하게 해준 최고의 친구예요. 이젠 누구보다 진지하게 바라보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바이크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