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가려는데 어디가 좋을까?” 딸아이의 물음에 “인도가 좋다던데!”라고 무심코 대답하는 아빠. 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인도는 위험하지 않을까? 당신도 함께 다녀오는 건 어때?” 그렇게 보호자 신분(?)으로 아빠는 딸과 여행을 떠났다. 딸의 꿈으로 시작된 배낭여행은 이제 함께하는 꿈으로 성장했고, 아빠는 딸의 보호자가 아닌 꿈의 동반자가 됐다. 어느덧 8년 차, 환상의 배낭여행 콤비 이규선(62)·이슬기(32) 부녀의 여행기를 들어봤다.
◇ 아빠 이규선
30년간 다닌 은행에서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가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딸 덕분에 여행에 눈을 뜬 뒤, ‘어디로 떠나지?’라는 즐거운 고민에 빠져 지낸다. 자타공인 ‘딸바보’라 불리길 좋아하는 푼수 아빠다.
◇ 딸 이슬기
삼성맨을 그만두고 놀이·공연·강연을 기획하는 액션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추억부자가 되길 바라는, 또 무엇보다 부모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길 바라는 철부지 딸이다.
◇ 이규선·이슬기, 우리 부녀의 여행은?
여행 이력 8년 차. 인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5개국 111개 도시 여행
여행 콘셉트 청춘여행! 나이와 무관하게 자기가 꿈꾸는 걸 실현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청춘!
여행 시기 목표로 했던 꿈을 이루고, 그다음 꿈을 향해 갈 때
역할 분담 아빠) 그날그날 일과 짜기&요리담당, 딸) 예약 및 정보수집
여행 경비 현재까지는 아버지와 자신을 위한 선물로 딸이. but, 돈 관리는 아빠가!
사실 말은 쉽지만 가족여행은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쩌면 ‘가족여행’이라 쓰고 이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싸운다. 고로 가족이다.’ <아빠도 여행을 좋아해>에 딸 슬기씨가 쓴 글귀다. 낯선 이국땅에서 아빠는 딸에게 맞추느라, 딸은 아빠에 맞추느라 서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아빠와 딸이라서 다시 애틋한 가슴으로 서로를 껴안을 수 있었던 그들이다.
첫 배낭여행, 싸우며 싹 틔운 부녀의 동지애
아빠: 인도에 도착하고 처음 며칠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죠. 여행 초보자가 감당하기엔 버거웠거든요. 그런 데다가 딸이 이거는 이렇게 해라, 저거는 하지 마라는 둥 잔소리를 하니 서럽더라고요. 그때만큼은 한국에 있는 아내가 무척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빠와 딸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어느새 동지애를 느끼는 친구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전보다 대화거리도 풍부해졌고, 딸에 대한 믿음도 더 확실해졌죠.
딸: 처음 배낭여행을 떠나는 아빠인데, 친구와 함께 간다고 착각하고는 티케팅 30분, 배낭 싸기 한 시간, 그리고 여행 관련 책 한 권 달랑 가방에 넣고는 여행 준비를 끝내버렸죠. 여행 초반에는 아빠와 하루에 열 번, 아니 그 이상 싸웠어요. 그래도 그 넓고 낯선 곳에서 믿을 사람은 아빠와 나뿐 아니겠어요. 긴급한 상황에 서로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똘똘 뭉치게 되더라고요.
서로의 낯선 얼굴과 마주하다
아빠: 살면서 자식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린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슬기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집 밖에서 본 딸애의 모습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나? 이런 모습도 있네?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딸: 내게 익숙한 아빠의 모습은 ‘가장’이라는 책임의 가방을 메고 있는 남자였어요. 히말라야에서의 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촛불을 켜고 카드게임을 하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죠. 아빠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이야기 속에는 나보다 어린 나의 아빠가, 그리고 내 나이의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메기 전, 그도 한 소년, 한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여행을 하면서 아빠는 내게 ‘이규선’이라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꿈과 희망, 열정으로 가득한 멋진 남자였습니다.
“또 같이 갈까?” 여행 유발자는 누구? 아빠? 딸? 둘 다!
아빠: 첫 여행 때 호되게 (딸아이에게) 시집살이를 하고 다시는 슬기와 여행 가지 않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60대 버킷리스트, 유럽여행을 위해 다시 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여행을 다닌다고 다녔지만 여행 일정, 이동 경로와 수단, 숙박까지 스스로 해결하기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혼자 끙끙거리는데 때마침 슬기가 전화를 해 여행을 가자는 거예요. 첫 여행에서 당한 것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함께 떠나기로 했죠.
딸: 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면서, 또 다른 꿈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휴식시간과 같아요. 그럴 땐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하든 응원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죠. 내겐 아빠가, 아빠에겐 내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주 함께 떠나는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오면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이번엔 어디 갈까?’라는 말을 꺼내게 되죠.
‘부모·자식’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아빠: 은퇴 후,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이겨내기 어렵다고 느꼈을 때, 사랑스러운 딸 슬기가 배낭여행이라는 요술로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조건 떠나세요. 나의 분신, 자식과의 여행은 여러분을 행복한 추억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딸: 온 가족 여행도 좋지만, 장기 여행이라면 모녀, 부자 등 두 사람이 떠날 것을 권합니다. 여행은 보러 가는 것보다 느끼러 가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해요. 여럿보다 단둘일 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죠. 이왕이면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여유 넘치는 곳으로 가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추천할 만합니다. 걷고 싶은 데서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아요. 함께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답니다.
◇ 자녀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Tip 10가지
1. 망설이지 말자. 때는 바로 지금!
2. 잘만 먹어도 성공한 여행이다. 필수품으로 팩소주와 라면, 그리고 고추장.
3. 많이 걷자. 여행 책자와 지도를 들고 발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걸어보자.
4.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다양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유명 관광지보다 볼거리가 더 풍성할 때가 많다. 대중교통 표를 직접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5. 긴장을 풀고 (자식보다) 앞장서 가보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편해지고 여행도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6. 사진을 많이 찍자. 셀카봉은 필수!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몰래 찍는 파파라치 컷을 추천한다.
7.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자녀가 골라주는 곳도 좋지만, 직접 여행지를 찾아 떠나면 즐거움과 더불어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8. 다양한 숙소를 경험하자. 호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현지인의 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현지인의 집을 추천한다.
9. 그 나라 언어를 알지 못해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할 때 직접 도전해보자. 손가락 몇 개와 간단한 영어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10. 배낭여행이지만 한 벌쯤은 휴양지에서 갖춰 입을 복장을 챙기자. 차려입었다는 기분 덕분에 해변에서 마시는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