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근세에 70주년인 4·3사건이 발생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섬 제주. 두려움과 희망은 늘 바다 넘어서 밀려왔다. 1271년. 그날 하늘은 파랗고 땅은 붉었다. 그리고 자당화는 고왔다. 1273년 4월’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 가면 토성 옆 쉼터 움막 안에 쓰여 있는 누군가의 글이 가슴을 쓰리게 한
김일태(63) 화백에게 금화의 선두주자라는 말을 쓰니 바로 지적이 날아온다.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세계에 없습니다.”
유일무이. 특유의 단호한 목소리 톤에서 자신의 업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김 화백이 예술가로서의 높은 긍지가 느껴지는 이 문답 너머에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는 청렴(淸廉, integrity)은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결백(潔白, purity) 역시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정한 일과 욕심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언제나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나 역시 그러한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기에 성실히 노력하고 싶어진다.
청백(淸白, upri
가끔 내리는 비가 성급하게 여름으로 치달으려는 대지를 달래주는 덕에 봄 날씨가 겨우 연명하고 있다. 화사한 꽃이 만발한 따뜻한 봄날에 걸맞은 싱그러운 영화 한 편이 도착했다. 프랑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다. 원제는 ‘Back to Burgundy’로 그저 와인의 명산지인 부르고뉴로 돌아왔다는 말인데 영화 수입사가 설명적인 제목을 덧붙
큰 창 사이로 봄볕이 드는 넓은 복도 한편. 간이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그는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읽고 있다. 가방 안에는 공부해야 할 읽을거리와 책이 가득해 보인다. 정지한 듯 몰두해 있는 모습, 옛 러시아 영화의 롱테이크 장면처럼 깊고 안정된 정적이 흐른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다물었던 입술이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9회를 맞이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던 ‘전주국제영화제’가 내 가슴 속에 들어온 건 지난해 전주시가 제작비를 지원한 ‘노무현입니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난 뒤였다. 전주시는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어지러웠던 정국 속에서도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함으로써 영화제가 표방하는 표현과 창작
세상은 늘 변한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변화는 꾸준히 이어진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안간힘을 쓴다. 근래엔 어느 시대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름을 느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어제와 오늘이 급변함을 피부로 느낀다. 다가올 미래엔 더 심해지지 싶다. ‘리쇼어링(reshoring)’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리쇼어링은
지구상에서 세계화와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고유의 전통을 지키는 곳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오직 한 나라,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희귀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부탄이다. 전 세계가 GNP(국민총생산)만을 부르짖으며, 효율과 편리라는 기치 아래 경제성장에 목을 맬 때도, GNH(국민총행복지수)를 최고 정책으로 삼고 있는 나라.
그 옛날 영화관 앞. 영화표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기다리다 바로 앞에서 매진되는 일도 있었다. 인기가 있거나 작품성이 있는 영화는 일찌감치 암표상들이 표를 선점하고 나와 “암표 있어요”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색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을 찾아가는 꿀 재미도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어떤가. 한 장소에
OEC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부양률은 100명당 19.6명으로,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32위 수준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2050년엔 100명당 71.5명, 2075년엔 80.1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돈을 버는 사람이면 무조건 어르신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