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떡국과 함께 먹으면 좋을 나박김치 만드는 비법을 배울 기회를 가졌다. 강남역 근처 한국전통식품문화관에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마다 명인들에게 한국전통식품 비법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공식 지정한 식품명인들과 함께 술이나 한과, 김치, 장류 등을 만드는
운명을 말하는 이상용(李尚龍·48) 작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기도 한 ‘운명’을 새삼 되새겼다. 평택에 있는 작업실에서 은둔하듯 기거하며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그는 드로잉, 판화, 벼루, 조약돌, 바큇살, 의자, 상여 등 독특한 오브제들을 사용하며 남들과 다른 고유의 영역을 개척해가는 중이다. 한
필자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건축 문화에 새겨진 ‘다름’을 언급한 바 있다. 중국 건축의 지붕선(Roof line)에서는 ‘권력, 권세’가 묻어나고, 일본의 지붕선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한국 건축물에서는 ‘여유와 푸근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선(線)의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술가로 오스트리아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보인다.
01 관크족
영화관에서 주위 사람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
필자가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곳은 돈암동이다. 당시 돈암동 랜드마크는 태극당이라는 제과점이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정할 때 ‘태극당 앞 몇 시’ 하면 다 통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규모도 상당히 컸고 빵도 맛있고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자주 이용했으며 그땐 데이트도 제과점에서 하는 게 보통이었다.
중학교 때 필자는 전차 통학을 했다. 전차 종
‘피카소를 그린 화가, 샤넬을 그린 여자’. 얼마나 대단하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그려냈을까?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프랑스 여성 작가의 전시회는 이렇듯 가벼운 궁금증으로 문을 두드리게 한다. 전시장에서 첫 인사를 나누듯 초기작을 접하고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감상하니 점점 그 이름이 각인된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호가 춘곡(春谷)인 고희동 가옥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빨래골을 만나게 된다. 약간 지하에 있는 개구멍받이처럼 생긴 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옛날 궁녀들이 그곳에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단다. 궁녀들이 비누 대신 곡물을 사용해 늘 뿌연 뜨물이 흘러나왔는데 사람들은 그 물에 빨래를 했고 그 뒤 빨래골이라 불려왔다 한다.
곡물로 머리를 감았다니 궁녀들
필자는 어릴 때 한옥에서 오래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대문 앞에 있던 한 그루 대추나무 때문에 대추나무집이라 불렸던 아현동 집과 반듯한 서까래가 아름다웠던 돈암동 집 등 한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늘 넘친다.
오늘은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북촌 탐방을 하기로 한 날이다. 하늘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차분한 날씨. 이런 날은 여행이나 산책하기에
영하 15℃의 강한 한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던 어느 겨울날 저녁, 대학로로 연극 한 편을 보러 갔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꽃할배로 유명한 이순재, 신구 선생이 더블 캐스팅된 작품이다.
필자가 보러 간 날은 신구 선생이 열연을 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호통을 치는 광고로 매력을 발산하던 신구 선생. 고집불통
"너무 예쁘셔요."
"그렇다고 빠지지는 마세요. 책임 못 져요."
며칠 전 남자 파트너와 홀딩을 하고 왈츠를 추는 중에 나눈 대화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은 필자가 춤을 꽤 잘 추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왈츠나 탱고는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춤을 춰야 하니 뭔가 ‘썸’을 타지 않을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춤을 한번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