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돌아온다’가 초연 3년 만에 대학로 무대로 돌아왔다. 미투의 칼바람이 휩쓸어버린 이후 연극계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관객의 발길이 끊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연극 ‘돌아온다’의 재공연 소식을 듣고 찾은 혜화동은 조금이나마 다행스런 모습이다. 매진 행진을 이어가며 그리움과 먹먹함으로 수놓았던 연극 ‘돌아온다’. 초연에 이어 색감 따뜻한 영화로 찾아왔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작품 ‘돌아온다’를 잠시 좀 들먹여보도록 하자.
2015년 10월, 지인이 괜찮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으니 같이 관람하자며 혜화동으로 불러냈다. 연극을 보는 나름의 방식이다. 누가 같이 보자고 연락을 해오거나, 공연을 한다며 보러 오라고 하면 본다. 아주 수동적인 자세로 객석에 앉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 그런데 공연장에 끌려들어갔다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팬이 돼서 나온 작품이 바로 극단 필통의 ‘돌아온다’(선욱현 작/정범철 연출)였다. 연극 ‘돌아온다’는 당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해 서울연극제 우수상과 연출상을 휩쓸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다.
무대의 주 배경인 막걸리집에는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라고 쓰인 표구가 걸려 있다. 등장인물 모두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정서를 안고 이곳을 찾는다. 누군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잔 또 한 잔을 기울인다. 하지만 막걸리집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의 기다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운 상대가 돌아오는 방식은 다들 다르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와 서로에게 안긴다.
좋은 작품은 역시 생명력도 강하다
초연을 본 허철 영화감독은 선욱현 작가에게 이 연극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배우 김수로 또한 자신이 연극으로 제작하겠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2015년 말 연극 초연에 이어 영화로 제작된 이 작품은 2017년 제41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금상을 받으며 영화로도 성공을 거뒀다. 올봄 배우 김수로의 제안까지 성사돼 재공연에 이르렀다. 초연이 끝남과 동시에 영화 작업, 개봉, 연극 재공연까지 쉼 없이 이어온 작품이 ‘돌아온다’이다.
영화 제작 전 허철 감독은 선욱현 작가에게 “연극에 나온 배우들을 많이 기용하고 연극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독립영화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선 작가는 “상업영화로 만들게 되면 판권료를 훨씬 많이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감독을 만나 그 순수성이 영화로 잘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영화라는 장치에 연극의 느낌과 원형을 그대로 살린 작품이 있었던가? 영화 ‘돌아온다’는 사실적인 색체가 강하면서도 연극과 영화가 스리슬쩍 교차하는 실험영화이기도 했다.
재공연과 관련해 배우 김수로가 제작에 나서면서 작품이 혹시 변색되는 것은 아니냐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영화와 TV에서 보여준 김수로의 이미지가 한몫했다. 배우 김수로가 제작을 주도한 재공연. 극단도 달라졌고 극장 또한 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연극 역시나 좋다. 초연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정범철 연출가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막걸리집 주인으로 등장한 대학로의 숨은 연기파 정상훈과 영화배우 강성진이 초연 연기자인 윤상호의 빈자리를 꽉 채웠다. 이전보다 배역을 줄여 무대의 몰입도도 높였다. 스크린이 더 익숙한 김수로와 강성진이 어색했다면 그건 편견일 뿐이다. 특히 김수로는 좋은 작품에 선뜻 손 내밀어 제작에 나섰고 주인공 아닌 배역을 맡아 최선을 다했다. 박수를 쳐줘도 모자라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만들어낸 이야기
‘돌아온다’의 원작자이자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인 선욱현 작가는 이 작품을 왜 썼냐는 질문에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입을 뗐다.
“어느 순간 제가 아버지한테 너무 불효를 하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언제인지 아세요? 제가 도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들어오고 나서입니다.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니까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제 가슴에 문학적 화두로 그리움과 기다림이 자리 잡았습니다. 실향민도 아니고 시련을 겪은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그리워할까. 지금도 못 풀었어요.”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보다 더 많이 울었다고 고백하는 선 작가다.
재공연 관람 이후 작품 ‘돌아온다’ 전편을 다 본 듯 후련하다. 초연 때 인연이 영화로도 이어져 우리 잡지에 소개한 바 있다. 재공연을 끝으로 마무리 기사를 쓰고 있자니 느낌이 남다르다. 마침 공연을 보던 날 선욱현 작가뿐만 아니라 약속이라도 한 듯 영화팀 배우와 제작진까지 모였다. 제목 때문일까? 돌아온다. 모두 돌아와 만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