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쁘셔요."
"그렇다고 빠지지는 마세요. 책임 못 져요."
며칠 전 남자 파트너와 홀딩을 하고 왈츠를 추는 중에 나눈 대화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은 필자가 춤을 꽤 잘 추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왈츠나 탱고는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춤을 춰야 하니 뭔가 ‘썸’을 타지 않을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춤을 한번 배
A라는 사람은 “될 대로 돼라.”
B라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겨우 열넷, 열다섯 살이었던 우리들에게 이따금씩 이런 물음을 넌지시 던지면서 조용히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시던 분이 있다. 바로 통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박순직 선생님이다. 필자가 정신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청년 시절, 내 편이 되어준 처사(불교에서 성인 남자 신도를 이르는 말) 한 분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을 생각하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분과의 인연은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15세 때였다. 불일폭포 가까이에 있는 초가지붕의 한 암자에서 생면부지의 처사를 만났다. 행동과 말이 어눌한 60대 노인(지금은 한창 나이이지만
‘앞으로 10년만 엄마의 상태가 지금처럼 유지되도록 도와주세요.’ 2007년 겨울 엄마의 치매 판정이 내려진 날, 하윤재(河侖材·47) 감독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당시 일흔이 넘은 노모에게 10년은 막연히 긴 시간이라 여겼다. 그러나 만 10년이 지난 현재, 절망으로 휩싸였던 그날의 기억이 무색하리만큼 모녀는 여전히 인생의 희
산중에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천지가 마주 붙어 눈보라에 휘감긴다. 어렵사리 차를 몰아 찾아든 산간 고샅엔 오두막 한 채. 대문도 울도 없다. 사람이 살 만한 최소치의 사이즈를 구현한 이 갸륵한 건물은 원시적이거나 전위적이다. 한눈에 집주인의 의도가 짚이는 집이다. 욕심일랑 산 아래 고이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리라, 그런 내심이 읽힌다. 대한성공회 윤정현
노래하는 시인 김광석! 마침내 그를 만났다. 지난 해 11월 25일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였다. 그는 시인이다. 노랫말이 아름다우면서도 곡은 애잔하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5년 전이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던 필자가 우니까 아들이 필자를 안고서 등을 토닥
사람과 공간이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풍수학이다. 그런 면에서 풍수는 집을 살 때뿐만이 아니라 집을 단장할 때도 유용하다. 물론 누군가는 풍수를 ‘미신’이라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현대적 삶과 맞지 않는 비합리적 이론’이라 할 수도 있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분명 귀 기울
예닐곱 어렸을 때부터 아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열두 살부터 무병을 앓고 열일곱에 만신(萬神)이 됐다. 내림굿을 해준 이는 외할머니였다. 나라 만신으로 불리는 김금화(金錦花·87) 선생의 무당 인생 첫 장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무당이 된 이후 세상 숱한 질문과 마주한다. 제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만사형통합니까? 크고 작은 인간사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북한 핵 개발을 소재로 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3)로 밀리언셀러에 이름을 올린 김진명(金辰明·60). 그 후 ‘한반도’, ‘제3의 시나리오’, ‘킹 메이커’, ‘사드’ 등을 펴내며 한국의 정치·외교·안보 문제에 촉각을 내세웠던 그가 이번엔 ‘미중전쟁’으로 돌아왔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묵직한 주제인 만큼 마음이 편치만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가수 남궁옥분 님이 선배 가수 송창식 님에게 쓴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자연인 송창식!
참으로 맑고 하얀 웃음이 아름다운 당신!
소년처럼 순수하고 맑고 구김살 없어 보이는 당신!
30년을 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