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큰 가위를 어떻게 쓰지?’
소싯적 엄마의 바느질함에 있던 커다란 가위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자잘한 바늘 사이에 놓인 큼지막한 무쇠 가위는 크기도 버거웠고 왠지 위협적이었다. 양말, 단추, 치맛단 수선에서 방석, 커튼, 이불까지 가위는 집안의 모든 수작업을 항상 같이하던 규중칠우 중 하나다.
우직하고, 무뚝뚝한 무쇠가위는 바느질은 물론 머
올해 55세의 처가 친척 조카인 P는 등산을 갔다가 심장에 고통을 느꼈다. 함께 간 일행이 119에 급히 연락해서 헬기가 왔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뒀다. 심장마비인데 시간이 많이 지체된 까닭이다.
방송에 소개된 80대의 현직 사장님이 있었다. 쉼 없이 운동을 해서 무척 건강한 분이었다. 이 분이 산에 오를 때 배낭 속에 꼭 명함을 챙기
100년 만에 왔다는 최악의 폭서(爆暑)가 근 한 달간 우리 곁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뜨거운 불, 하나로도 모자라 두 개로 온 누리를 덥히고 있는 본격적인 염천지절(炎天之節)이다. 어릴 적 시골의 여름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한낮 더위를 피하고 저녁에는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환한 달빛을 양념으로 마당 밥을 먹곤 했다. 늦게까지 두런두런 서로의 이야
통상 남자들이 주도하는 종친회 일을 오랫동안 수행 봉사하는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친해져서 물어보니 오빠나 남동생 없이 자매들만 있다 보니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더 친해져서 자세한 가정사를 물어보니 한스러운 사연을 토로했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여자들만 있었어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와 나. 이렇게 넷이서요.”
“어떻게 그렇게 되셨어
엄마는 요리솜씨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요리가 최고인 줄 알았다. 주발에 담는 밥도 엄마만 세워서 담을 수 있고 세상의 맛이 엄마의 손끝에 다 있는 줄 알았다. 그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 엄마의 요리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천성이 부지런해서 늘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셨다. 학구열
글 김민혜 동년기자(한국농어촌공사 창녕지사)
자연친화적이고, 느린 삶에 대한 도시민의 소망은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설마 귀촌생활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보통 귀촌에 대한 의견을 부부에게 물으면, 여자 분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도 없고, 놀러갈 곳도 없는 산속 오지에서 어찌 살란 말이오?” 하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1990년대 후반 IMF를 악으로 깡으로 견뎌야 했던 부모 세대에게 묻는다면 ‘평범했노라’ 회상하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넥타이를 매던 손놀림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어느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아버지 중 변용도 동년기자도 있었다. 남들보다 이른 ‘용도폐기’ 인생을 딛고 잇따른 ‘용
여름철 폭염으로 낮 시간대 활동이 어려워지자 저녁에 외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여름날 낭만을 즐기며 더위를 쫓을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바로 ‘백인제가옥 야간 개방’이다.
서울시는 인제 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 선생의 후손으로부터 백인제가옥을 매입해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우린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아도 될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퇴근길에 피자를 사줄게’라던가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점수가 좋게 나오면 자전거나 휴대폰을 선물로 사 줄게’ 같은 약속이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별생각 없이 쉽게 하고 편리하게 잊어버리는 게 더 문제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이야기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날이 있다.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집 안을 한 구역씩 나누어 뒤집어놓는다. 앞뒤 베란다, 거실, 냉장고, 안방, 공부방, 그리고 창고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이다. 그날은 창고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이사 오고 20년 가까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창고의 짐들을 거실에 펼쳐놓았다. 창고 속 상자를 열자 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