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10월에 멋진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윤석화의 .
1998년 첫 공연 이후 17년간 이어진 공연이라니,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윤석화라는 연극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 클래스는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하지 못하게 된 후 젊은 성악가들을 위해 연 심화 과정의 특별 수업이다. 인생의 전부였던 목소리를 잃고 사랑도 잃은 칼라스의 정열, 조소, 질투, 비탄, 눈물, 의지, 환희가 오페라처럼 교차하는데 그 역할이 윤석화 아니면 대신할 수 있는 연극배우가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좋은 무대였다. 이번 공연은 윤석화의 교통사고로 열리지 못할 뻔했다고 한다. 실제로 윤석화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다른 날은 모두 저녁 공연인데 목요일만 낮 3시 공연이 있어 예매를 하고 친구와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침 필자가 도착했을 때 셔틀버스가 떠나버려 다음 버스를 기다리려다 걸어가기로 했다. 서늘한 가을 날씨에 장충공원을 따라 걸으니 아련한 옛 추억도 떠오르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공연장엔 주로 주부처럼 보이는 중년 여성들로 가득했다. 공연이 시작되어 커튼이 열리자 중앙 문에서 휠체어를 탄 주인공 윤석화 씨가 등장했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등장에 손뼉을 쳤는데 그녀의 첫마디는 “여러분 손뼉 치지 마세요, 여러분은 제 수업을 들으러 온 마스터 클래스의 학생입니다”였다. 우리는 그렇게 마스터 클래스의 학생이 되어 숨 죽이고 무대를 지켜봤다.
사고 때문인지 원래의 설정인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연극이 시작되었는데 노련하게 이끌어 가는 모습이 ‘역시 윤석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는 단출했다. 한쪽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을 뿐이었지만 무대가 꽉 찬 듯 느껴지는 건 관록 있는 배우의 역량일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의 첫 번째 학생 소피가 들어와 엄격한 칼라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실수하는 장면, 두 번째 학생인 콧대 높은 샤론이 중간에 뛰쳐나가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세 번째 남학생 토니와 피아니스트 안드레이로 등장인물은 모두 다섯 명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 타고난 성량으로 성악을 하게 됐고 1949년 부유한 사업가 메네기니와 결혼해 함께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해서 명성을 얻었다. 흥미로운 건 그때까지 뚱뚱했던 그녀가 30kg을 감량하고 날씬한 몸매가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성량을 걱정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녀는 메네기니와 헤어진다. 오나시스의 아이를 가졌음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오나시스는 칼라스를 버리고 재클린과 결혼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오나시스를 향한 애절한 마음의 연기가 윤석화를 통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져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는 오페라의 전설,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인생 전부였던 목소리를 잃고 오나시스의 사랑도 잃은 후 젊은 성악가들을 위한 특별 수업 마스터 클래스를 하며 자신의 인생도 돌아본다는 이야기였다.
윤석화 씨는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17년간 이어졌던 무대를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 안타깝다. 마리아 칼라스의 연기를 누가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녀가 “오 다또 뚜또 아 떼(난 당신에게 모든 걸 바쳤어요)”라고 외칠 때 비통함이 느껴져 필자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연극 한 편으로 깊어가는 가을이 운치 있게 다가온 하루였다.
우리 집에서 버스 세 정거장 아래에 전통 재래시장이 있다.
이 시장은 새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운동하러 갈 때 배낭을 메고 나가서 오는 길에 시장도 보고 올 수 있어 좋다.
아파트 뒤편으로 몇 년 전 새로 산책로가 생겼는데 우리 동네는 청계천 복원처럼 서울의 예전 개천을 정비하여 깨끗한 하천으로 바꾸는 사업이 끝나 참으로 깔끔하고 예쁜 산책길을 갖게 되었다.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부터 흘러내린 개천물을 따라 정릉 초입까지 2km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이제 무릎이 고장 나 산이 가까이 있음에도 올라갈 수 없는 시니어들에게 최적의 운동코스로 환영받고 있다.
왕복 4km면 시니어의 하루 운동량에 적합하다고 하여 필자도 열심히 걷는 중이다.
사계절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도 멋져서 고운 색의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자태를 자랑하는 봄철과 한여름엔 녹음이 싱그럽고 콸콸 웅장하게 쏟아져 내려가는 계곡물이 장관이어서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기도 하고 차분한 갈색 세상으로 바뀌는 가을철, 새하얀 눈이 꽁꽁 언 계곡물 위로 살포시 쌓여 온통 순백의 세상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낮에는 몰랐는데 어느 날 저녁 무렵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시장쯤 오니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와 와글와글 사람들이 재미있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산책길 위쪽 시장통 거리에서 각각 음식점마다 자기 집 마당 쪽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노천카페 겸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치킨집, 주꾸미볶음집, 삼겹살집, 피자집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 앞에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노천카페라면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멋있는 가게 앞 길가에 예쁜 공간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차를 마시거나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우리 동네 노천카페는 그렇게 세련되지는 않지만 친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맥주잔을 부딪치는 모습을 보니 어느 멋진 노천카페 부럽지 않을 듯하다.
이웃집 가족들이 함께 나왔는지 산책로 아래에서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개울 속의 작은 물고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돌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수풀 속 곤충을 탐색하기도 하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엄마아빠들 끼리는 시원한 맥주잔으로 건배도 하며 친목을 갖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 모여앉아 길가에서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들의 소속감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살면서 한 번도 직장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나 실제로도 열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동료끼리 몰려가 회식을 하거나 모이는 장면은 부럽기만 한 일이었다.
어느 곳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일부러 산책길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와 무리지어 담소하는 그들을 지나쳤다.
산책로가 생기기 전 이곳은 더러운 하천으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천정비가 끝나고 조성된 산책로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나와 길가에서의 담소를 즐길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매우 고맙고 만족스러운 풍경이다.
여기저기 자리 잡고 즐겁게 떠드는 무리를 지나면서 필자도 저 속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즐겁고 정겨워 보이는 노천카페 풍경이다.
●미술품 구입하기
문체부는 1995년을 ‘미술의 해’로 정하고, 미술 관계 문화 단체를 통해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을 전개했다. 국민의 보편적 경제 능력은 향상되었는데 문화의 수준은 거기 못 미쳐서, 우선 여러 장르의 미술품 중 그림을 사다 걸자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그 후 해마다 5월이면 이 행사를 민간화랑 주도로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당시 국민총생산이 1만 달러를 넘으며 문화의 욕구도 상승되고 있어 중산층 국민들에게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은 동기 부여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자가용 승용차 구입하기, 레저 스포츠 즐기기와 더불어 비싸기만 한 줄 알았던 미술품도 잘 선택하면 한두 점 소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나 화랑들도 거품을 빼고 통상 거래 가격에 30%정도를 할인하여 특수층이 아닌 일반 중산층 소비자를 적극 공략하였다.
미술품 유통은 화랑이 독점하다시피 했으나, 1996년 , 1998년 , 2005년 이 설립되어 미술품 판매에 새 시대를 열어왔다. 이후 , , , , 등의 경매회사가 미술품 판매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화랑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던 미술품들이 도록과 전시를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고 가격도 떳떳하게 노출되었다.
경매회사별로 미술품 감정단을 두어 작품의 진위와 적정 가격을 산정하여 미술품 가치의 객관화에 기여하였다. 미술품 가격이란 것이 작가와 화랑 사이에서 내밀하게 형성되었고 같은 작가의 작품도 화랑별, 지역별로 각기 그 편차가 심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전시장이나 화랑에서도 가격을 표시하지 않아 도대체 작품을 팔기는 하는 것인지, 가격은 얼마인지를 몰라 묻기도 겸연쩍어 돌아나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경매회사에 회원 가입(연 회비 10만~20만원)하면 연간 경매도록도 받아보고, 인터넷으로 경매 미술품을 검색하여 작가와 가격이 합당하면, 전시 기간에 직접 실물을 확인하고 큐레이터에게 세세히 자문하며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매회사는 온라인으로도 경매를 진행하고 있어 집에 앉아서도 다양하게(회비 납부 안 하는 준회원 가입으로)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다.
경매는 항상 최고가를 입찰한 사람에게 낙찰되며, 실수로 낙찰을 받더라도 취소가 안 되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낙찰이 되면 수수료로 작품가와 16.5%의 수수료(부가세 포함)를 지불하고 작품을 인수하면 경매 과정은 종료된다.
그러나 초보자에겐 작품을 선택하기가 어렵기만 할 것이다. 우선, 주변의 화랑이나 전시장을 찾아 미술품을 자주 보며 안목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 미술품은 시각예술이므로 긴 시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의 감흥이 오고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그래도 미술품은 금전적 가치가 수반되는 동산(動産)이므로 장르별, 작가별 가격 추이도 잘 살펴보고 수집하길 권한다.
●미술품 보관하기
경매에서 낙찰받거나 화랑에서 구입할 때에는 반드시 영수증과 관련 도록(해당 미술품의 도록이 없으면 작가의 다른 도록이나 전시 인쇄물) 그리고 작품보증서를 꼭 받아서 함께 보관한다. 그림의 경우 대부분 유리 액자에 표구되어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화나 서예 등은 굵게 말아서 신문지로 싸둬도 무난하나 유화나 드로잉 판화 등은 반드시 유리액자에 표구하고 뒷면이 통풍되게 걸어두면 된다.
●미술품 팔기
최근 미술품 경매회사들의 소위 블루칩(blue chip) 작가(지명도 있고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는)들의 작품 가격은 연평균 23% 이상의 수익률을 가져온다고 분석한 자료도 있다. 영구히 작품을 소장한다면 모르나, 여윳돈으로 한두 점 수집했다가 경매시장이나 화랑을 통해 판매할 때에는 계산을 꼼꼼히 해야 한다. 100만원이 작품가일 때는(낙찰가) 연회비, 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37만원 가까이 되므로 그 작품가 137만원과 판매위탁 수수료 11%(부가세 포함)를 더하여 150만원이상을 받아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단기매매는 금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어, 미술품 시장도 꾸준히 성장할 뿐 아니라 경매회사의 낙찰률도 70%를 상회해 금년 상반기 경매시장에서 960억원이나 유입되었다. 여유자금만 있다면 노후를 대비, 긴 안목의 투자도 가능하다고 본다.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작고(作故)작가이고 작품가가 6000만원이상일 때 발생하게 되는데(세율 20%) 작품 소장자에게 80%의 기본 공제가 허용되어 우려할 바는 아니다. 6000만원에 구입, 1억원에 양도하면 차익 4000만원 중 3200만원이 공제, 800만원의 20%인 160만원만 세금이 발생하므로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사석원(史奭源, 1960~ )화가는 촉망 받는 인기 화가로 여기 소개한 작품 는 삼베 천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고 액자까지 손수 짠 멋진 그림인이다. 인사동에서 ‘한 집 한 그림 걸기’ 행사할 때 아주 싸게 구입한 작품이다. 1984년 ‘국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는 수집가들이 손꼽는 이 시대 걸출한 화가다.
유년기 포천의 외가에서 지내며, 숱한 동물들(염소, 당나귀, 올빼미 등)과 접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깔끔한 외모와 달리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방한 성품과, 두 권의 수상집(隨想集), 두 권의 기행록(紀行錄)을 펴낸 뛰어난 문장력은 만날 때마다 경외심(敬畏心)을 갖게 한다. 대작할 수 없는 나의 주량(酒量)이 야속할 따름이다.
이종구(李鍾九 1955~ ) 화가는 정부미 쌀 포대에 농민의 실경(實景)을 그리기로 유명한 화가다. 모교인 중앙대학교에서 후학을 열정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도 이 화가의 작품이다. 위의 그림 는 평소 이 화가의 소재인 농민, 소, 농기구(낫 삽 곡괭이)가 아닌, 북두칠성 아래 한 사발의 물을 그린 깊은 명상의 산물이다. 화랑 주인은 쌀 포대에 그린 시퍼렇게 날이 선 낫 그림을 권유했으나, 망설이다 이 그림을 택했다. 서재에 놓고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심상(心象)이 결곡해지기를 기원한다.
>>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지난 몇 년간 필자는 창경궁을 돌아 창덕궁으로 가는 율곡로를 지나며 궁금한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부터 율곡로에 있던 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구름다리가 싹둑 잘려서 창경궁 담에 바싹 붙어 형체만 조금 남았기 때문이다.
율곡로는 지난날 청춘 시절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지나다녔던 곳으로 필자에게는 추억이 담긴 특별한 거리라 할 수 있다.
그때 그곳을 지나며 올려다보았던 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구름다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도 해 주었었다.
구름다리의 이쪽저쪽 크지 않은 쪽문은 어딘지 모르게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당시 무수리나 궁녀들이 왕의 눈에 들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며 드나들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들게 했는데 언제부턴가 이 구름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관심을 두고 보니 구름다리가 싹둑 잘려서 한쪽 기둥만 썰렁하게 남아있다.
반대편 종묘 담 쪽은 길게 벽이 쳐 있고 그 안에서 공사 중이라는데 그 기간이 무척 오래전부터여서 무슨 공사일까? 참 오래 걸리네...하며 지나다닌 게 벌써 몇 년째이다.
어릴 적 낙엽 깔린 그 거리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랑 무작정 걸었던 예쁜 기억도 있어서 율곡로는 필자에게 추억으로 가득한 그런 곳이다.
원남동에서 창경궁 담벼락 코너를 돌아 창덕궁 쪽으로 가는 길엔 낙선재도 있고 구름다리도 보이던 고즈넉하고 아주 운치 있는 거리로 산책하기 좋아서 자주 찾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쪽으로 벽이 세워지더니 구름다리가 없어진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던 풍경이 달라져서 저 공사가 무슨 공사인지 공사가 끝나면 구름다리는 제대로 복원될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종로구청에 전화해보았다. 담당 부서 직원은 길을 넓히는 공사이며 구름다리는 복원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지하터널로 차가 다닐 것이고 위쪽은 구름다리 대신 생태로처럼 녹지를 조성하여 창경궁과 종묘가 연결될 것이라 한다.
자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상상이 안 되었다.
필자는 약간 보수성향이라 알고 있던 그 무언가가 없어지거나 바뀌는 게 사실은 싫다. 익숙한 게 좋은데 생소해져서 그 거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언제나 친숙한 옛것을 좋아하는 필자로서 그 길의 모습이 바뀐다는 게 어쩐지 섭섭하기도 하지만 더 편리하고 멋진 모습이 된다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내게 익숙했던 율곡로 그 거리는 원래 창경궁과 종묘가 통했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면서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율곡로를 만들어 맥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 필자에게 익숙하고 좋았던 그 길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다.
그래서 율곡로에 의해 끊어진 창경궁과 종묘의 고궁 녹지를 연결하기로 하고 공사가 진행 중이라니 이해가 되었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원남동 사거리에 걸친 300m를 지하차도로 만들어 차량 정체를 해소하고 위쪽으로는 두 개의 공간으로 단절되었던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여 녹지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 일제의 잔재인 구름다리를 철거했다는데 우리의 맥을 끊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설치물이어서 없애는 게 당연하겠지만, 항상 올려다보며 재미있는 상상을 했던지라 어쩐지 서운한 마음도 든다.
시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창경궁이 옛 모습을 되찾아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사가 끝난 후의 율곡로가 우리의 맥도 잇고 역사를 품은 멋진 곳으로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얼마 전 한 여행사에서 유럽 단체 여행객에게 ‘등산복은 피해 주세요’ 라는 문자를 보내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고 여행사가 왜 여행자의 복장까지 제한하는지 의아 했다.
관광객 개인적 취향까지 여행사에서 간섭하는 것은 지나친 관섭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자의 대상이 대충 필자와 비슷한 세대의 유럽관광객이라고 하니 연대감에 살짝 발끈하기까지 했다.
여행 갈 때 편리성, 간편성 등 기능적 면에서 등산복만 한 옷이 있을까? 특히 금방 비가 왔다 그쳤다 를 반복하는 유럽의 변덕스런 날씨에 방수, 방풍, 투습 기능이 있는 고어텍스 등산 재킷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적절한 여행 차림새 일지도 모른다고 격하게 자기변호를 했었다.
새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져서 기사의 달린 댓글을 모두 읽어 보았다.
댓글을 단 대부분의 사람이 젊은이들로 어머니 아버지 제발 등산복 좀 입지 말아요, 성당이나 왕궁 등이 산이냐 왜 등산복을 입는가? 예의가 아니다. 우리나라 아줌마 아저씨들 만나면 너무 창피하다고 까지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젊은이들의 생각을 엿보며 씁쓸하면서 5년 전에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카이로를 제외한 도시는 나일 강을 따라 크루즈를 한 적이 있다. 초호화 크루즈가 아니라 도시 간 이동수단 정도의 소박한 크루즈였다.
이용자 중 동양인은 필자와 친구 그리고 서너 명의 일본인 뿐 이고 대부분이 유럽의 시니어 들이었다. 낮 시간에는 볼륨 감 넘치는 유럽의 시니어 들은 거의 반나체의 모습으로 수영을 하거나 선탠을 즐기곤 하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모두 리셉션 장에 모였을 때 예상치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유럽 시니어 들은 모두 화려한 성장으로 갈아입고 내려온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짧은 바지에 티셔츠 차림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냥 한 끼 식사를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우아하게 차려입고 만찬을 즐겼다. 구두 색깔 까지 완벽하게 맞춰 입고 온 유럽 시니어 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해외여행 갈 때 등산복이 좋으면 등산복 입자. 현지인이 비웃으면 비웃으라. 해라. 그리고 당당하게 말하라. ‘우리나라에서 등산복은 등산할 때만 입지 않고 평상복 여행복으로 다 입는다’ 라고. 다행히 요즘은 등산복이 기능성은 살리고 디자인도 멋진 일상복과 등산복의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아웃도어 브랜드 들이 등산복을 좀 변형한 여행복도 많이 내놓고 있다. 그러니 여행갈 때 편한 등산복이 좋으면 당당하게 취향대로 입고 가자.
그리고 조금 여유가 있다면 예쁜 원피스나, 멋진 나비넥타이에 정장 재킷 정도는 한 벌씩 만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낮에 관광할 때는 편하게 등산복 입고 저녁에 근사한 레스토랑에 갈 때, 미술관이나 성당 갈 때 한번 정도는 멋지게 차려 입고 간다면 더 근사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이나 현지인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나의 멋진 여행을 위해서 T. P. 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여행복을 준비하여 적절하게 즐길 수 있다면 여행의 추억에 더 근사하게 남을 것이다.
필자는 영화광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영화관에 가실 때 꼭 필자를 데리고 다녀서일까? 영화로 모르는 남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좀비나 총질로 때려 부스는 건 별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필자에겐 요즘은 영화도 영화배우도 다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케이블방송 채널을 돌리다 보면 심심치 않게 예전에 즐겼던 명화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오늘은 ‘위대한 개츠비’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필자가 젊었을 때 대한극장의 와이드 화면으로 보았던 그 작품은 아니었다.
타이타닉으로 유명해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인공이니 볼만은 하겠지만, 그 옛날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 주연의 작품에 비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도 화면이 매우 화려하고 배우들의 의상이나 머리에 쓴 모자가 뉴요커들의 패션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었는데 새로 만들어진 작품은 화려함의 극치가 더한 것 같다.
저택도 멋지고 매일 열리는 파티장면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예전 영화에는 멋진 미남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와 그리 미인이라 할 수는 없어도 묘한 매력을 가진 ‘미아 패로’가 주인공으로 흥행도 잘 되었던 영화이다.
필자는 ‘위대한 개츠비’ 영화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도 필자는 신데렐라가 되는 여자 이야기나 한 여자를 사랑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비극으로 치닫는 남자 이야기를 다룬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필자가 그런 행운을 얻지 못해서일지 그저 자신의 노력 없이 미모만으로 신분상승과 부를 거머쥐는 여자들을 질투했는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개츠비’의 남자 주인공은 여자를 향한 바보스러울 정도의 순애보를 보여주기 때문에 가슴 아픈 한편 화가 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라 화려했던 영상과 실속 없이 순수한 사랑만을 갈구했던 한 남자 이야기로만 맴돌 뿐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는데 새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며 다시 한 번 감동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다 보고 난 후 남은 씁쓸한 기분은 예전과 똑같았다.
남자들은 왜 그리 바보 같을까? 여자들이 실속 차리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동안 사랑만을 선택해 비극에 빠지는 남자들이 안타깝고 싫다.
필자가 보기에 여자 하나를 잊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개츠비’에게 왜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의문이 있었다.
자신을 버리고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그런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자수성가 후 그녀를 되찾으려 했으니 좀 미련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하지만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1920년대 미국의 물질 만능이 판치는 시대에 사랑에 올인 하는 ‘개츠비’의 모습이 더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속물이라 할 수 있는데 ‘데이지’에 대한 사랑만으로 환하게 빛났던 ‘개츠비’는 당시는 물론 요즘에도 찾아보기 힘든 낭만적인 사랑의 화신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닉’ 이라는 남자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닉’은 1922년 뉴욕에 살면서 이웃의 호화스러운 별장 저택에 살고 있는 한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그 남자 ‘개츠비’는 어딘지 의문스럽고 신비스러운 존재로 다가온다.
베일에 싸인 이 남자는 주말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한다.
파티에 초대받아 참석한 ‘닉’은 자신의 사촌 ‘데이지’와 ‘개츠비’가 5년 전 연인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이 남자가 이렇게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이유는 옛사랑 ‘데이지’가 와 주길 바라서라니 놀랍다.
‘데이지’는 가난한 데다 전쟁터에 나간 ‘개츠비’를 버리고 부자인 ‘톰’과 결혼한 속물 같은 여인이다.
부자로 돌아온 옛 연인을 보고 감정이 싹튼 ‘데이지’는 갈등을 한다.
데이지의 남편은 바람둥이로 주유소 직원의 아내를 정부로 두고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데이지’는 안락한 생활을 버릴 수 없어 참는 중이었다.
파티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같이 떠날 것을 제의하고 ‘데이지’는 고민을 하면서도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데이지’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개츠비’와 달리 ‘데이지’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데이지’의 남편 때문에 오해를 사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개츠비’를 망설임 없이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허망한 ‘개츠비’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한 여자에게 집착한 ‘개츠비’가 바보스러우면서도 쓸쓸해서 눈물이 나는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한 여자에게 집착하고 올인 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화려하고 멋진 화면 속에 드리워진 슬픔을 느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인데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개츠비’의 순수한 열정을 높이 평가할 것인지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데도 집착한 바보라는 평가를 할지는 보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서울 어느 동네 골목을 취재하여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좁은 골목에 집마다 주차하여 교통사고도 자주 일어났고 동네꼬마들이 놀다가 다치는 일도 많은 곳이었는데 어느 날 동네 사람이 차를 다른 곳에 세우고 각자 자기 집 앞을 가꾸자고 의논했다고 한다.
담장을 없애고 담벼락 있던 자리에 화분이나 꽃, 덩굴 식물을 심어 예쁘게 단장하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골목 안 풍경이 달라지고 이웃 간의 관계도 좋아져 사람 살맛나는 골목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먼저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기 시작했고 주민들 사이가 좋아져서 골목에 돗자리를 깔고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한다.
팍팍한 서울살이가 아니라 시골처럼 푸근한 인정이 넘치는 골목으로 집집이 준비한 재료로 부침개 파티도 자주 열고 퇴근 후 돌아오는 주민들이 지나다 같이 어울려 먹기도 하는 등 보는 사람도 즐겁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해서 불편한 점은 있지만, 범죄 걱정 없이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는 이렇게 멋진 골목문화가 생긴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고도 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떠들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어릴 때 개구쟁이 시절이 떠올랐다.
서울로 이사하기 전 초등학교 5학년까지 살았던 대전 대흥동 주택가에 있던 우리 집도 좁은 골목 안에 있었다.
우리 집은 그래도 당시에 흔하지 않게 목욕탕이 있는 예쁜 양옥집이었다. 매우 좁은 골목 안에는 십여 채의 집이 있었고 모두 필자 또래 개구쟁이 친구들이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 모이면 무서울 게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남의 집 대문 초인종을 누르고 누가 끝까지 남는지 담력도 실험했고 “누구세요?” 하며 주인이 나오면 후다닥 도망치는 장난을 재미로 했다.
어느 날 이 친구들과 작당하여 골목 안에서 연극을 하기로 했다.
골목의 폭이 좁아서 우리는 집에서 들고 나온 담요를 이쪽저쪽 전신주에 걸어 손쉽게 무대를 만들었다.
춘향전을 연습하는데 옆집 우영이 오빠가 이 도령을 맡고 필자가 춘향이를 했음은 물론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어느 날 몇 시에 연극 보러 나오시라고 알리고 드디어 막을 올리게 되었다.
그땐 정말 놀이 문화가 없었던지 골목 안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들 나와 돗자리나 신문지를 깔고 관람해 주셨다.
뭐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았겠지만, 꼬마들 재롱에 즐거워하며 아낌없이 손뼉을 쳐주셨고 과자를 한 아름 사주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골목은 그렇게 정다운 추억이 많이 쟁여진 보물 창고 같은 곳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훗날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안전한 골목길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빛으로 상큼한 9월이 시작된 첫 주말에 모처럼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샤갈, 달리, 뷔페 전시회에 다녀왔다.
초대권이 있어 나서긴 했지만 어린 손녀, 손자와 그림을 감상한다는 게 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는 했다.
꼭 보고 싶은 그림전시회인데 아기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지루해하면 빨리 퇴장해야 할 테니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예술의 전당 광장에서는 시간에 맞추어 분수 쇼도 펼쳐지고 있으니 꼭 그림 감상만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나들이에 나섰다.
주말이어선지 관람객이 상당히 많았으며 미술 공부하는 학생들인 듯 단체로 온 사람도 꽤 보였다.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베르나르 뷔페. 이들은 세계 현대 미술을 이끈 거장들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유화, 판화, 드로잉, 조각 작품으로 총 128점이 전시되었는데 수채물감과 비슷한 ‘과슈’ 작품도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스타일은 각기 다르지만, 평생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중 샤갈과 달리는 익히 들었던 이름이고 작품도 많이 보았지만, 솔직히 뷔페는 생소해서 작품을 보기 전에 미리 검색해 보았더니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생전에 상업적 성공으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말년에 파킨슨병을 앓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라 한다.
그런데 전시회 퇴장하는 문 앞에 감동한 세 거장에게 스티커 붙이는 판이 있는데 뷔페의 판에 가장 많은 사람이 스티커를 붙여서 그의 인기를 알 수 있었다.
전에 마크 로스코 전시회 때는 도슨트가 있어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했었지만 이번 전시회에 도슨트는 따로 없어 설명문을 열심히 봐야만 했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은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말한 샤갈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등 폭풍 같은 세계사를 온몸으로 맞으며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겪었고 고난 속에 살면서도 자신의 예술세계만은 좌절의 수렁에 빠트리지 않고 꽃과 동물, 자유로운 연인들의 모습 등으로 오늘의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냈다. “나에게 그림은 창문이다. 나는 그것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 샤갈의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떠오르는 말이다.미친 사람 같다는 평을 들은 광기 어린 천재 화가 달리는 ‘나는 미치지 않았다’며 세간의 편견을 일축했다. 그가 매우 독특한 인물로 비친 것은 강렬한 콧수염과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표정,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예술적 성취에서 비롯되었는데 달리가 말했다. “나는 매일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최고의 희열과 함께 눈을 뜬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나 살바도르 달리는 어떤 놀라운 일을 할 거냐고.”
매우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작가로 느껴진다.베르나르 뷔페는 1950년대 당시 ‘모던아트의 모차르트’라는 평을 받으며 피카소의 대항마로 여겨졌다는데 그의 작품은 쓸쓸하고 메말랐으며 삭막하기 짝이 없다. ‘가감 없는 직시와 표현, 쓸데없는 화장으로 희망을 고문하지 말자’가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고 또한. 뷔페는 자신의 화풍에 대해 ‘즐거우려면 서커스에 가라. 미술이 세상을 즐겁게 할 필요는 없다.’ 고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고 한다.다섯 살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감상을 시작했다. 달리의 유명한 늘어진 시계 작품을 본 우리 손녀가 “할머니, 저 시계가 잠자나 봐요, 아니면 녹아내리고 있나?”라고 한다.
매우 정확하고 귀여운 표현에 놀라며 우리 어린 손녀가 벌써 미술 보는 눈이 있는 건가? 팔불출이 발동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은 작품을 만지려 하기도 해서 통제하느라 힘들었지만 이런 전시회나 공연에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자가 지루한지 보채기 시작해 좀 일찍 퇴장했다.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멋진 음악에 맞춰 피어오르는 분수의 화려한 모습에 아이들과 함께 매우 즐거웠다.
먼 훗날 손녀가 할머니와의 미술전시회 나들이를 즐거웠다고 기억해 준다면 행복할 것 같다.
혼자가 좋다. 때로는 갇힌 공간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있다. 외로움도 고독도 함께 즐기다 보면 생각을 넘어 긍정의 삶으로 충전되기도 한다.
*힐링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오늘날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그 몰려오는 힘겨운 것들을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적절한 힐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또 다른 삶의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의 쉼터, 자신만의 아지트가 될 수도 있다. 하나하나 극복해간다는 것은 삶의 성숙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살아가면서 숱한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차를 운전하며 어디론가 달려가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달래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지나온 역경의 시간들이 어느덧 옛말같이 들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었던 순간도 지내왔고 견뎌왔기에 웃음 섞인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고, 또 감사하기만 하다.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자신만의 공간은 생각만 해도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곳에서는 저 한쪽 구석에 잠자코 웅크리고 앉아있던 엔돌핀들을 마구 흔들어 깨워놓는다. 무거웠던 가슴에는 다시 삶의 활기가 솟아나고, 모든 것들은 나 자신으로부터라는 조용한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어준다. 그 혼자만의 사랑스러운 시간에는 참회의 감정이 흘러내려 더없이 좋다.
필자의 신혼시절에는 참으로 힘든 혼란기간이 있었다. 성격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서로 어울려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한참 좋았던 시절에야 그리 다툴 일이 많지 않았지만, 짧은 달콤한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은 시작되었다. 남편과 언쟁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어느 날에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갈 곳이 없다. 필자의 승용차에 올라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의자를 뒤로 재치고 화끈하게 달아오른 몸을 눕힌다. 그래도 화가 다스려지지 않아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음악과 함께 치솟은 감정이 출렁대며 얼굴에 서러움이 흘러내렸다. 참아왔던 삶에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다. 실컷 복받친 마음을 맘껏 쏟아내고 나면, 뒤틀렸던 감정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머릿속에서는 선한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또 살아야 했다. 여자가 아닌 아내, 두 딸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참고 인내하며 견뎌야 한다고, 음악의 선율들이 조용히 귓가에 충고를 해준다. 두 눈을 감고 달아오른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을 때 벅찬 가슴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쭈그러졌던 감정에는 긍정의 힘으로 새로운 활기가 솟아난다. 필자는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달려간다.
어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음악소리는 묵직하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위로 분위기를 타고 흐른다. 그 기운 속에서 필자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속죄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는 순간이다. 모든 아픔들을 그렇게 털고 나면 머릿속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비와 음악과 자신의 회한이 어우러지는 낭만으로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멋진 ‘달리는 차 안’이다.
책 속에서 사람이 난다는 말도 있다. 책과 함께하는 습관은 남달라 보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의 인생을 우지 좌지 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본다. 예전처럼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다. 음악이 살아있고 비싼 커피와 분위기가 있어야 더 머릿속에 잘 들어가는 모양이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나 카페 빈 같은 카페에는 누구나 노트북을 지니고 홈 워크(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널려진 책들의 현주소
어느 집이나 책들과의 전쟁이다. 이사할 때마다 소동이 벌어진다. 어느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부부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 박스 속으로 다소곳이 들어간다. 당연히 책이 들어간 박스가 가장 무겁다. 책에 대한 넘치는 욕심이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을 갖기도 한다.
필자에게도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한 권 두 권 쌓이는 책들이 수없이 짐이 되어갔다. 사전에서부터 학습서, 각종의 어학 책, 문학 책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다양한 책들이 여기저기 공간을 차지했다. 물론 서재 방을 만들어 한 곳으로 몰아 놓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필자는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서재와, 음악과 커다란 스크린이 함께하는 감상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책은 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니 가난이 무섭지 않았고, 음악은 듣고 있으면 마음을 치유해주니 더 없는 삶의 약이었다. 또 하나, 그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소중한 바람이었다.
이사를 다니고 결국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동안 간직해온 수많은 책들을 시댁에 맡기고 떠났다. 거기에는 고급 오디오 세트와 그 옛날의 레코드 원판, 엘피 판 그리고 백판 등 몇 트렁크를 고이 모셔놓았다. 필자의 남편도 음악에는 조회가 깊어 취미가 같았고, 집에만 들어오면 음악을 틀어 감상하는 것이 생활의 시작이며 공동의 관심사였다.
*북 카페로 변신을
오랜 세월 후 고국으로 돌아와보니 모든 것들이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필자가 직접 관리를 못했으니 어디 하소연을 할 데도 없다. 미국에서도 이삿짐을 싸면서 미국에서 사온 오디오 세트와 가장 먼저 귀한 책들을 챙겨왔다. 지금은 나름대로 간직한 책들과 구형 오디오, 흘러간 메모리 음악이 담긴 CD들이 필자의 소중한 재산이다.
아이들이 남겨놓은 책들과 필자의 책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다. 거실의 한쪽에 다행히도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오디오가 자리 잡고 있는 거실 옆으로 빈 공간에 책방을 만들었다. 음악과 책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언제라도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멋진 북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남편과 함께 한쪽 벽면에 선반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장르별로 책들을 분리하며 정리를 했다. 예를 들면 여행에 관한 책들은 한 곳으로 몰아놓아 언제라도 꺼내어 볼 수 있는 간편함이 있도록 했다. 그 옆에는 여행을 하면서 수집해온 소품으로 군데군데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
창가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넓은 소파도 마련해놓았다. 영락없는 카페가 되었다. 언제든지 책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넘치는 북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제 모든 것들은 분위기가 좌우하는 세상이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싶은 충동적 분위기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그곳이 가장 먼저 발길을 유혹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꾸며 놓은 책들과 소품들이 마치 훌륭한 카페 같다며, 이 책 저 책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모두가 최고라고 했다.
분위기가 흐르는 필자의 북 카페에서는 오늘도 은은한 음악과 함께 마음의 글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