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인생을 주름지게 하고, 포기는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 가슴을 진하게 울린다. 필자는 수많은 혹평 속에서도 상영되는 영화, 나라의 역사를 좀 더 알기 위한 이 작전을 보기 위하여 영화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실질적인 정부가 없었던 한반도는 38선 이북, 북한군의 기습 아래 남북 전쟁이 발발한다. 불과 사흘 만에 남한의 서울은 북한군에게 함락이 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이 모두 점령을 당한다.
국제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의 허리인 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고, 그 기세로 강원도까지 남한에서 북한군을 몰아내기 위한 엄청난 작전을 시도한다. 일명 'OPERATION CHROMITE' 라고 한다. 이름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더글러스 맥아더는 대한민국의 대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천 상륙작전은 대략 5000:1이라는 성공 희박의 전투 앞에, 맥아더가 이끄는 국제 연합군이 인천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 험난한 전세를 대 역전시킨 아주 기념비적인 군사 작전이다. 첫 번째로 맥아더의 지시 아래 대북 첩보 작전, 일명 X- RAY 작전에 투입되는 해군 첩보부대의 임무가 주어진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인천 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작전으로, 인천으로 가는 길, 즉 서해를 뚫고 가는 기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영화는 X-RAY 작전에 투입되는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950년 9월 15일 8인의 첩보원들은 장학수 대장(이정재) 주도 아래 북한군 스파이로 잠입한다. 그들은 인천의 수문을 뚫어야 하는 임무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한다. 북한군은 인천 앞바다 수로 주위에 주둔하며 수많은 포대가 바다를 향해 포진하고 있다. 이 삼엄한 부대에 첩보원들은 북한군으로 위장하고 잠입하여 스파이로 활동을 시작한다.
8명의 첩보원들은 모두가 오로지 조국을 위해서 가족, 자식을 등지고 몸 바친 장병들이다. 특히 장학수 대장에게 왜 이 전투에 지원을 했느냐고 맥아더는 묻는다. 장학수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어서 지원했다.’라고 대답한다. 그 말에 맥아더는 감동을 받는다.
맥아더(리암 니슨)의 특명을 받고 인천으로 떠나는 장학수는 대원들에게 말한다. ‘단 한 명이 남더라도 인천의 길을 열어줄 작전을 꼭 실행하자’라고 모두에게 당부한다. 이에 맞서는 잔인 무도한 북한군 사령관 림계진(이범수), 그는 스탈린 사상과 김정일 1인 독재체재의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북한의 인천 교두 보를 지키기 위해 주둔한 극악무도한 북한군 사령관이다.
장학수가 이끄는 팀이 스파이임을 알게 되며 두 사람의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며 흥미진진하다. 림계진의 잔혹한 연기와 대위 장학수(이정재)의 멋진 순발력은 과히 탑 배우의 이름값을 한다.
끝내, 장학수는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히며 조명탄 신호를 쏘아 올려 보내고, 이것을 본 맥아더는 드디어 인천으로 향한다. 긴장과 소름이 끼치며 스릴이 넘치는 장면들이다.
보급로가 끊긴, 남한 주둔 북한군과 국제 연합군의 치열한 전쟁은 시작되고 장학수는 임무를 마치고 림계 진과 처절하게 싸우다 결국, 함께 목숨을 거둔다.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실질적 주역들, 8인의 숨은 영웅들의 애달픈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였다. 우리나라 과거를 비추는 거울 역할의 아픈 사연들이다.
이 영화는 결코 단순한 첩보영화가 아니었다. 유엔군의 참여로 9.28수복까지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써온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를 인간적으로 재구성한 참으로 의미 있는 대 역사극이었다. 마지막으로 승리의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는 장병들 속에서 장학수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는 장면이 눈시울을 적시며 감동으로 다가왔다.
X-RAY 작전으로 사라져간, 실제적 모든 부대원들에게 깊은 애도와 박수를 보내며 이 역사적 슬픈 사건을 필자는 후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세월은 인생을 주름지게 하고, 포기는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는 명언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살아가면서 참으로 경륜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어떤 일에 연륜이나 경험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필자는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 오케스트라, 오페라 공연을 좋아해서 기회 되는대로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다. 그중엔 대작 무대도 있고 대학로 한 귀퉁이의 작은 소극장도 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연극이라 해도 무대장치가 있고 장면이 바뀌면 내용에 맞는 무대를 보여준다.그런데 무대에 어떤 장치도 없이 오로지 조명 하나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펼쳐진 연극이 이렇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지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오늘 필자는 장충동 국립 해오름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연극 제목은 널리 알려진 ‘햄릿‘이다. 너무나 유명하고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연극이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출연진이 대단했다. 근래 보았던 뮤지컬이나 연극에 아이돌 가수의 출연이 많아서 신선함으로 그것도 재미있게 봤지만, 오늘 연극엔 중견 배우들의 대거 출연이다. 필자의 그리운 젊은 시절 전성기에 이들도 전성기로 널리 이름을 떨친 배우들이어서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아직도 연극계에선 전설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한국 연극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해랑씨가 있다. 이미 타계하신 지 2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후학 양성 사업을 통해 한국 연극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이다. 이해랑 씨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해랑 연극 상을 받은 대한민국 연극계 거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햄릿을 맡은 유인촌을 비롯해 오필리아 윤석화, 박정자, 손숙, 정동환, 전무송, 김성녀, 권성덕, 손봉숙 씨 등 중후한 배우들이 모여 이해랑 씨를 추모하기에 적합한 작품으로 ‘햄릿’을 선택했다. 연극 햄릿은 1951년 이해랑 씨 연출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해랑 씨 생전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품도 햄릿이었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고 이해랑 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햄릿’은 최적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되어 연극이 시작되어도 무대가 썰렁했다. 아무것도 장치가 없었다. 그저 유인촌 햄릿이 나와 독백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무대 위에 아무런 꾸밈이 없어도 시간이 갈수록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권성덕 씨는 같이 연습했지만,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하고 다른 분이 대신 한 외에 9명의 배우만으로 감동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햄릿 유인촌 씨만 한 역을 맡았고 다른 분들은 여러 배역을 맡아 연기한 점도 재미있었다. 참 이상하다. 화려한 장치나 소품 하나 없이도 이렇게 완벽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배우들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무대 위라서인지 아마 나이도 꽤 들었을 듯한 배우들이 모두 멋지고 아름답다. 유인촌은 예전 드라마 전원일기의 농촌 회장님 댁 순박한 둘째 아들 모습 그대로 젊어 보인다. 한 분 한 분 개성 있고 완벽한 연기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참으로 배우들의 경륜이 돋보이는 연극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쓸쓸한 독백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번 달, 함석헌 선생님의 시로 시작해 보았습니다. 100세 시대에 소중한 사람과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처럼 60대에 은퇴하고 몇 년 더 살다가 가는 시대라면, 참으면서 사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는 자식들도 떠나가고 오롯이 배우자하고만 남게 됩니다. 이런 세월에서 배우자와 사이가 안 좋으면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몇십 년 동안의 노후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최고의 행운이자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공한 인생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20대-본인이 좋은 학교 다니고 있으면 성공
30대-좋은 직장 다니고 있으면 성공
40대-2차 쏠 수 있으면 성공
50대-공부 잘 하는 자녀 있으면 성공
60대-아직 돈 벌고 있으면 성공
70대-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성공
80대-건강하면 성공
90대-전화 오는 사람 있으면 성공
100세-아침에 눈 뜨면 성공
100세 시대에 성공한 노년은 같이 놀 사람이 많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같이 놀 사람이 없으면 정말 고독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게 되겠지요. 하루하루를 ‘누리며’ 살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같이 놀 사람이 많은 분들은 모임도 많습니다. 모임에서 건배사 하나를 하더라도 임팩트 있게 해야 합니다. 그냥 밋밋하게 “위하여”를 외치는 것보다는 유머러스한 건배사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겠지요.
건배사는 보통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덕담을 주고받는 ‘위하여’라고 하는 건배사는 초보 단계입니다. 술잔이 오고 가며 등장하는 마법의 주문 하나! 건배사란 모임의 술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술잔을 비우기 전에 하는 스피치입니다. 건배사는 여러 사람 간 장벽을 순식간에 허물어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건배사는 짧고 멋진 말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건배사는 ‘세상에서 가장 짧고 열정적인 폭발력을 가진 말하기’입니다. 1분 이내에 임팩트 있게 말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건배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모임에서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는 법이죠.
건배사는 사실 자기를 알릴 수 있고 모임의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건배사는 특별한 규칙이나 유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임 상황에 어울리는 코멘트로, 스토리를 가지고 재치와 감동까지 갖추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건배사가 중요해진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배사 제의를 받는 사람에겐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죠. 짧고 간단한 이야기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요. 게다가 나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 위험성이 있습니다.
모임에서 쓸 수 있는 유머러스한 건배사를 모아보았습니다.
남행열차 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 차세대 리더가 되자!
소녀시대 소중한 여러분 시방 잔대 봅시다!
통 통 통 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오늘도 새 신발 새롭게 신바람 나게 발로 뛰자!!(업적, 마케팅을 위해)
마무리 마음먹은 대로 무슨 일이든 이루자!
고사리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
껄 껄 껄 좀 더 사랑할껄, 좀 더 즐길껄, 좀 더 배풀껄
변사또 변함없는 사랑으로 또 만납시다!
무화과 무척이나 화려했던 과거를 위하여!
어머나 어디든 머문 곳에는 나만의 발자취를(추억을) 남기자
앗싸!가오리 가슴속에 오래 기억되는 리더가 되자
개나리 계급장 떼고 나이는 잊고 릴랙스(Relax or Refresh)하자
주전자 주인답게 살고, 전문성을 갖추고 살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자
위하여 위기를 기회로! 하면 된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마스터 마음껏 스스럼없이 터놓고 마시자
오바마 오늘은 바래다 줄게 마시자
당신 멋져 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살되 가끔은 져주자
술잔은/비우고, 마음은 /채우고, 전통은 /세우자
스트레스여/가라, 행복이여/오라
선배는/끌어주고, 후배는 /밀어주고, 스트레스는 /날리고
고진감래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면 감동으로 돌아온다
단무지 단순하고 무식해도 무지 행복하게 살자
대나무 대화를 나누며 무한 성공을 위하여
우행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위하여
오행시 오늘도 행복한 시간 되세요
오징어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자
아리랑 아름다운 이 순간 서로 사랑합시다
사이다 사랑을 이 술잔에 담아 다 함께 원샷!
기쁨은 / 더하고, 슬픔은 / 빼고, 희망은 / 곱하고, 사랑은
/ 나누자
이상은 / 높게 (잔을 높게 들면서), 우정(사랑)은 / 깊게 (잔을 내리면서), 잔은 / 평등하게 (잔을 모으면서)
나이야/가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야 가라!
재건축 재미나고 건강하게 축복 받으며 삽시다
9988 / 231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벌떡 일어나자
일십백천만 하루에 1번 이상 좋은 일을 하고, 10번 이상 큰소리로 웃고, 100자 이상을 쓰고,1000자 이상을 읽으며,1만보 이상 걷자
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남존여비 남자의 존재의미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
여필종부 여자는 필히 종부세를 내는 남자와 결혼해라
우아미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드라이버는/멀리, 퍼터는/정확하게, 아이언은/부드럽게
(영어)오늘은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영어로 건배제의를 하겠습니다.
Ladies and Gentlemen …One Shot!
(불어)오늘은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불어로 건배제의를 하겠습니다.
드숑/ 마숑 또는 더불어
(불어+독어)마셔부렁! / 마신당께!
(아프리카 스와힐리어)하쿠나/ 마타타 ‘괜찮아 걱정하지마’라는 뜻으로 영화 에서 나와 유명해짐
(그리스어)코이 / 노니아(Koinonia) ‘가진 것을 서로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관계’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돈독한 사이란 뜻
>> 강미은 교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전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저널리즘 석사.
영화 ‘플캉크 상수’ 서두엔 플랑크 상수가 무엇인가 설명하는 문구가 나온다. '플랑크 상수'란 불연속성과 불확정성을 보이는 양자역학적 미시세계의 본질에 관계하는 중요한 상수를 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관객 중에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렇게 어려운 제목을 뽑았나 싶다. 흥행은 애초부터 염두에 안 두고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감독에 조성규, 배우는 김재욱이 주연이고, 김지유, 진아름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나온다. 나오는 사람도 몇 안 되고 촬영 장소도 거의 실내라서 돈 안 들이고 만들었을 것 같다. 장르가 판타지 코미디로 되어 있다.
가끔 비현실적인 영화도 영화 보는 재미가 있기는 하다. 그러니까 영화가 아닌가. 그러나 사실적인 영화는 비장한 준비를 하고 보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함이 따른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영화는 “영화는 영화다”라고 생각하고 보면 된다.
이 영화는 '1㎜' 'Refill' 'Seat' '겨울 산'이라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김재욱이 모두 나오기 때문에 연속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1㎜에서 김재욱은 매일 미용실에 드나든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물어보면 “1㎜"요 라고 말한다. 얼핏 본 보조 미용사의 짧은 치마와 쪽 빠진 멋진 다리가 기억에 남는다. 매일 1㎜씩 머리를 자르면서 보조 미용사의 치마도 1㎜씩 짧아진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머릿속에는 온통 에로틱한 상상을 하며 즐긴다. 어느 날 늘 담당하던 미용사가 안 나오고 다른 미용사가 김재욱에게 어떻게 잘라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1㎜요“라고 말했는데 눈을 떠보니 1㎜만 남겨두고 머리를 다 잘라 버린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고 그래서 코미디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Refill'에서는 카페가 나온다. 그 공간에는 김재욱과 여종업원 단둘이다. 여종업원은 무료한 표정으로 서 있다. 김재욱은 그 여인을 주인공으로 리필을 요구할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는다는 상상을 하며 노트북에 시나리오를 쓴다. 나중에 들어온 말 많은 남자무리들에 밀려 카페를 나오면서 상상은 끝난다.
세 번째 에피소드 “Seat'에서는 어두운 영화관이 나온다. 영화도 에로틱하고 혼자 온 옆자리의 젊은 여자에게 눈길이 간다. 상상으로는 이미 그에게 가 있다. 그러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여자는 나가버린다.
네 번째 에피소드 ‘겨울 산’에서는 3명의 여자를 만나 에로틱한 대화를 이어가는데 정작 산사에서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정작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상수는 언제나 그대로 있는 수이고 변수는 늘 변하는 수이다. 상수와 변수는 현실과 상상에 따라 상수도 될 수 있고 변수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영화 중 시사회에 나온 감독 말이 뫼비우스의 띠를 설명한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만나 하는 행동을 다른 한 사람이 보고, 또 그 세 사람을 다른 사람이 보고, 또 그 네 사람을 다른 사람이 본다는 식의 끝없는 전개를 설명하다 자가당착에 빠진다.
상상은 자유이다. 젊은 남자 머릿속에는 온통 에로틱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원래 남자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의 여자들은 사무적으로 무표정하며 상상을 벗어나고 나면 언제 봤냐는 식이다.
시니어들의 현실에서 매일 미용실에 가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흑심을 품고 가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이나 갈까 말까 하는 미용실에 돈 아깝게 1㎜만 잘라달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나마도 한동안 미용실을 다니다가 남자 이발사가 있는 모범 이발관으로 옮긴 지 오래다. 현실도 실용적으로 변했지만, 상상도 시니어의 틀에 스스로 들어가 버린 느낌이다. 젊은 여종원업원과 단둘만 있는 조명 좋은 조용한 카페에서는 스스로 어색해서 문을 열다 말고 나가거나 들어갔어도 얼른 차 마시고 나온다.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옆에 여자 혼자 있으면 역시 신경 쓰여서 도망친다. 산에 올라가는데 처음 보는 여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은 벌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간 스스로 막아 두었던 상상의 세계의 문을 열어볼 생각은 하게 될지 모른다. 상상 세포는 다시 살려 둬야 마음이라도 늙지 않는다.
여권이 몇 개나 된다. 예전에는 5년마다 새로 갱신을 해야 했다. 이제는 두툼해진 10년짜리 여권이 몇십 년은 쓸 것 같다. 미국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비자가 필요했다. 더구나 그곳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신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분 유지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10년짜리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 앞에는 언제나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필자는 미리 받은 비자가 있어 미국을 수시로 드나들 수가 있었고, 큰딸아이도 카이스트 학생 신분으로 무난히 비자를 받아냈다. 문제는 막 초등학교를 마친 작은 아이가 비자가 없으니 골치가 아팠다.
IMF가 터지고 남편은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고, 필자 혼자 미성년자의 도도한 미국 비자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필자의 교수 신분으로 어렵사리 만들 수가 있었다. 필자 가족은 여행을 위한 6개월 여행비자로 무작정 미국으로 입국했다. 한국에서부터 미국 이민을 위한 확실한 신분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여행비자는 6개월간 유효하고, 한 번 더 6개월 연장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후부터가 된다. 미국에서 살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신분을 만드는 것이었다. 운전면허는 없어도 불편하지만 살 수가 있으나, 비자가 없는 신분은 곧 서류 미비자인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여 범법자가 된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드는 이민의 나라인 만큼, 신분을 위한 비자 종류나 취득방법은 아주 다양했다.
필자는 입국하고, 제일 먼저 이민 변호사를 만났다. 신분 없이 이민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의 첫 공식 행사이다. 저마다 처지가 다르니 개개인에 따라 비자 방향도 달라진다. 여행객 신분에서 3개월 지난 후에야 비로소 E2비자를 신청하기로 했다. E2란 비즈니스(사업) 비자다. 세탁소를 하기 위해서는 빨리 필요했지만, 오자마자 너무 일찍 서두르면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고 했다.
미국으로 잠시 여행을 왔다가 사업을 하고 싶어졌다는 타당성을 만들어, 합리적으로만 허락을 받기로 했다. 미국인들은 이치에 맞는 합리성을 대단히 중시한다. 반드시 입국 기간도 2개월 이상은 되어야 했다. 2~3개월이 지난 후에 마땅한 비즈니스를 물색해서 일정한 금액 투자를 하면 비로소 거주와 사업권을 얻어내는 투자 사업비자가 나온다. 투자 이민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얻기 쉬운 것은 여행비자로 들어가 미국 내에서 취득하는 F1(학생) 비자가 있다. 무조건 들어가서 미국 내에서 학생비자를 만드는 것이다. 제일 빠르고 무난하게, 학교만 선정하면 비자는 쉽게 해결된다. 한인타운에는 직접 알아서 해주는 학교들도 많다. 이 또한 여러 꼼수가 있으나 사기성이 다분히 있고, 단점은 공항 출입국을 못하니 한국을 왕래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꼼짝없이 공부 끝날 때까지는 미국 내에서만 있어야 하니, 숨통이 막힌다.
어쩌다 생각 없이, 한국이 그리워 무작정 나오면 다시 미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같은 미국 땅이라도 여권이 필수인 공항 통과는 두렵기만 해서 타 주 여행도 아예 금기시 되어 있다. 아무리 멋진 유학 생활이라도 오도 가도 못하는 생활은 꽁꽁 묶인 열린 감옥살이 삶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달러를 적게 들이고 가장 쉽게 한다는 생각으로 당장은 국내 학생비자를 선호했다.
말이 그렇지, 비싼 학비와 출석률 관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죽으라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은 그렇다 해도, 임시방편의 거주 목적으로 학생비자를 취득한 일반인들에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끝까지 유지하기 힘들어 서류 미비자가 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한인타운, 즉 LA 코리아타운에는 한인 서류 미비자가 전체 한인 중에 약 50%나 된다는 것은 심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물론 돈이 많아, 한국에서 미리 유학생 비자를 받으면 문제는 덜하다. 한국 왕래도 자유롭고 공부하는 동안 비자 유지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마다 입학 전 거액의 보증금이 필요하고 사립학교 학비가 하늘을 찌른다. 공립학교도 그 지역 주민이 아니면 약 3배 정도, 유학생은 대략 10배가 된다. 자본주의가 막강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감히 꿈도 꿀 수가 없다.
E2(사업) 비자도 처음부터 한국에서 얻어오면 영주권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아닌 국외에서 얻는 비자는 언제고 출입국이 자유롭다. 그러나 투자 금액이 미국 내에서보다 세 배 이상은 많아야 한다. 국내에서 10만 달러(약 1억1334만 원) 이면 한국에서는 보통 35만 달러 이상이라야 한다. 더구나 어떤 사업에 어떻게 투자를 하는지 몰라 사기 맞기가 일쑤다. 한국에서 E2비자 취득이란 쉽지도 않지만, 절대 만만치가 않았다.
의심이 많은 한국인에게 선호 대상은 그나마 확실한 미국 내 사업비자였다. 조금 살아보면서 취득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래도 사기를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운이 좋으면 투자금액이 아주 작은 5만 달러에도 E2비자를 받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 왕래가 제한되고, 2년마다 갱신을 해야 하므로 연장을 위해서는 착실한 영업관리가 요구된다. 또한 조건이 있다. 2명의 영주권자 종업원을 써서 고용 창출을 하고 엄청난 세금을 지급해야만 한다. 매출 관리도 아주 까다롭다.
필자도 현금 15만 달러를 여기저기 힘겹게 마련해, 세탁소를 인수했다. E2비자를 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멋모르고 와서, 세탁소를 소유하기 위한 과정은 엄청 복잡했고, 비자를 얻기 위한 절차도 산 넘어 산이었다. 하루하루가 불안함으로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흘렀다. 더구나 내 나라 한국을 왔다 갔다 못 하고 꼼짝없이 미국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어느 날, 한국을 왕래할 방법이 있다는 희소식이 날라왔다. 서둘러 한국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코리아타운으로 달려나갔다. 편법으로 행하는 ‘제3국 비자’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제목이었지만, 미국도 다 살기 마련이었다. 그 낯선 땅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돈만 있으면 방법을 찾아 교묘하게 해결할 길이 또 있었다.
비자와 신분의 세상, 지쳐만 가던 필자에게도 그때부터 서서히 꿈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찌푸린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빼는 이른 오후. 날씨도 부쩍 이상 증상으로 기승을 부린다. 전 세계가 무더위와 폭우, 테러로 들끓는다.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에 사람의 마음도 혼란스럽다 못해 멍하다. 혼 나간 영혼들은 정거장마다 멈추어서 한 시대를 장식하고,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저 높은 곳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 한 발 옮기고 있다.
산마루로 가는 길, 아침의 발걸음에는 고개를 살짝 든 햇살이 상큼한 미소로 인사를 한다. 계절의 중턱에서 올려다보는 높은 산의 절경은 웅장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산등성이들은 저마다 서로 기대어 세차게 불어대는 지독한 외로움도 잘 버텨가고 있다. 펼쳐진 대자연의 공간은 파랗게 펼쳐진 하늘의 섭리 아래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버팀의 갈증을 마구 뿜어내고 있다.
꼭대기로 향하는 초입부터 왁자지껄하다. 좁은 거리에는 병들어 신음하는 도시의 한복판을 벗어난 피난민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총천연색 일률적 빛깔로 온몸을 포장하고, 이미 소진해버린 빈 산소통에 재 충전을 준비한다. 저마다의 삶에 무거워진 심장 문을 활짝 열고 심호흡하는 소리가 왕왕거린다. 이른 아침부터 인내를 벗 삼아 두려움 없는 용기가 활기찬 삶을 향해 시작을 알린다.
봉우리를 지나고 저 높은 곳을 향해 한 고개 두 고개 의지의 기반을 쌓아간다. 어떠한 삶의 폭풍우에도 견디기 위한 강인함을, 온갖 세상 흔들림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저 바위들처럼, 든든하게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으로 산소를 들이킨다. 사람들은 온전한 인격과 풍부한 지혜로 안정된 삶의 설계도를 위해 묵묵한 침묵과 함께 힘겨운 중턱으로 향한다.
산언덕 위로 그림 같은 하얀 집들은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환상 속, 꿈을 가라앉히려 잠시 약수터로 향한다. 알록달록 차려입은 닮은 꼴 등산객들도 욕심의 갈증들을 이제쯤은 풀고만 싶은 가보다. 쪽 바가지 한 모금으로 마른 목도 축일 겸, 어깨의 무거운 짐 들을 산 중턱 바람결에 내려놓는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낡아진 긴 숨을 한껏 몰아 쉬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여린 나뭇잎들도 파릇한 미소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미 등줄기에 다소곳이 매달려 자연의 섭리로 가냘프게 떨고 있다.
산 중턱에는 자신을 구속하며 흐트러지지 않는 해묵은 소나무들이 검푸르게 자태를 드러낸다. 계곡아래로 맑고 깨끗한 투명의 물줄기가 줄기차게 쏟아 내리며 평화로움을 노래한다. 혼탁하게 물들어 버린 사람의 가식들을 씻어내고 싶다. 뭇사람의 마음속도 계곡물처럼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쉼터가 필요한 지친 사람들이 또 마음을 감추고, 발걸음만 무작정 꼭대기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의 인내는 온갖 자유의 방종 아래서도, 자신을 속박할 수 있는 구속의 지혜를 발걸음 위로 피어오르게 하는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살아가면서 인내와 절제, 자신의 성찰로 그 욕심을 무던히 내려야만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꼭대기를 향할 때처럼 끊임없이 스스로 노력해 마침내 얻어 갈 수 있는 것이리라.
마지막 고개, 정상을 위한 고지가 눈앞에 보일수록 발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 끝을 향한 마지막 인내가 빗장을 풀어댄다. 마침내, 삶의 종착점 같은 환희가 두 팔을 힘껏 뻗어 올린다. 꼭대기를 향한 꿈과 인고가 넓은 하늘로 소리 없이 흩어지고 있다. 가팔랐던 오르막길을 위로받기 위해 애써 참아왔던 지나간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비로소 꾹 참아왔던 올바른 삶 뒤의 터질듯한 숨 막힘이다.
어느새, 숨 가쁜 산의 끝자락 정상에 올라와 있다. 힘겹게 올라온 길들이 저 멀리로 굽이굽이 내려다 보인다. 저 아래 성냥갑 같은 온 세상은 마치 다른 나라만 같다. 발 아래로 보이는 세상이 힘껏 올라와 보니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숲과 바위와 하늘, 자연의 맑은 공기뿐이었다. 산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끝내 별것이 없었다.
단지 가볍고 가운데가 뻥 뚫린 위대한 동그라미인 원(0), 그것은 우주의 모양이었다. 영이라는 오묘한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있었다. 산소라는 맑은 공기가 세상사에 찌들고 답답해진 인간의 가슴을 맘껏 녹여 내고 있었다. 꼭대기 영의 세상, 텅 비어있는 삶의 공터 공간에서 숨 쉬며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내려다보며 훌훌 털고내고 있었다.
산꼭대기를 향해 무던히도 앞만 보고 올라왔다. 삶의 정상을 위해 그렇게도 힘든 역경을 헤쳐 지나왔는데, 결국 사람들은 시작이라는 발걸음으로 또 가장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 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산행 길의 마무리였다.
꼭대기에서 다 털고 다시 빈손으로 내려가야만, 멋진 하산 길, 그것이 사람들에게 남은 삶이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된다. 반에서 글씨 잘 쓴다는 두 녀석이 누가 더 잘 쓰는지 글씨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필자였다. 친구들은 우리 둘 주위를 빼곡히 둘러싸고 숨을 죽였다. 우리는 각자 공책에다가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누가 이겼는지 결과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 내내 미화부장을 했고 벽을 꾸미는데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직접 써 넣곤 했었다.
언제부턴가 손 글씨를 쓸 일이 없어졌다. 이제 글씨를 ‘쓴다’는 개념이 사라지고 ‘두드리는’시대가 되었다. 그 결과 글씨를 누가 더 잘 쓰느냐 보다 컴퓨터 자판이나 휴대폰 자판을 누가 더 빨리 두드리느냐 하는 속도가 관심거리로 되었다. 속도에 따라 자격증도 준다. 글씨의 모양이나 크기도 지정하는 대로 만들어 진다. 누군가 계속 멋진 글씨 모양을 만들어 낸다. 개발된 글씨 모양은 돈을 주고 사야 된다.
글씨를 두드리게 되면서 대부분 손 글씨 필체가 망가졌다. 글씨를 써도 모양이 재대로 안 나오므로 더 안 쓰게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필체는 더 심각하다. 필체도 엉망이지만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판독이 안 되는 글씨를 쓰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자기가 써 놓은 글이 무슨 내용인지 해독을 못하는 경우도 봤다.
컴퓨터로 인해 자꾸 손 글씨를 멀리하게 되고 필체가 망가지는 것이 아쉬워서 필자는 최근에 캘리그라피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간단한 기록정도만 손 글씨로 쓰면서 겨우 글씨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글씨 공부를 하면서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화선지를 앞에 두고 생각으로 미리 써 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쓸 지, 여백은 어떻게 둘 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먹을 찍는다. 글씨는 손에서 나오지만 온 몸으로 쓴다. 쓰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앞 사람에게 계속 인사하며 졸 정도로 힘든걸 보면 온 몸으로 쓰는 게 확실하다. 그렇게 몇 달 공부해서 일단 자격증 하나를 추가했다. 글씨를 두드려 만드는 속도자격증이 아니고 손으로 쓰는 자격증이라고 생각하니 글씨를 쓰는데 좀 더 신중해졌다.
글씨와 그림은 맥락을 같이한다. 요즘에는 글씨를 그림처럼 쓰고 그림과 조화롭게 쓰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아직 작품으로 내 놓기는 부족하지만 좋은 시를 골라 쓰고 작은 액자를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쓰는데 더 신중해졌다. 쓰는 동안 잡념이 사라진다. 집중하는 시간도 좋다. 그동안 잊고 있던 손 글씨 쓰는 맛을 다시 느끼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입이 하는 일은 말 하는 것과 먹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우선 모든 말들을 정해서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아침, 점심, 저녁에 마주치면 정해 놓은 인사들을 항상 주고받는다. 서로가 만나면 으레 하는 말이기 때문에 쑥스럽지도 않고 민망스럽지도 않다. 그냥 웃으면서 아니면 모른 척하면서 지나는 일이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높고도 밝은 톤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오하요~’ ‘곤니찌와’ ‘곤방와’ 멋진 말을 걱정하며 궁리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우리에게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오, 좋은 일 있어요?’ 등등 많다. 그렇게 우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그날 기분에 따라 아니면 상대방에게 맞는 인사말을 고르든지 만들어서 하게 된다. 자유로운 성격이 나타나는 우리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아니다. 정해져 있는 말을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고받는다. 어느 면으로 정말 편하다. 그 말을 하고 지나가면 누가 뭐라 시비도 안 걸고 서로 유쾌하게 지나가니 말이다. 바빠도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인사를 하고 지나가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좋다. 지극히 평등하다. 또 어른 아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통한다. 지위가 높던지 낮던지 통상의 인사말은 그걸로 족하다. 물론 시대극을 보면 다르지만 내가 하는 얘기는 어디 까지나 우리 모두의 평상인들을 대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그 인사를 하면서 편안하고 가볍게 웃어주면 서로가 좋은 것이다.
필자가 무슨 일을 열심히 하고 나면 ‘오쯔까레사마데시다’ 라는 수고했다는 인사를 해 준다 피로가 풀려가는 기분이 들고 뭔지 고맙고 힘이 나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해주는데 충분한 말이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손질을 하고 나가는 한 사람의 손님에게도 미용사 전원이 정중하게 큰 목소리로 소리쳐 준다. 처음에는 어찌나 큰 인사 소리에 어리둥절하며 순간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얼른 ‘하이하이, 아리가또우고자이마스’ 라고 인사를 하게 되어버린다. 얼른 웃으며 대답하게 하는 위력을 지닌 밝고도 큰 목소리의 정해진 인사다.
그런 식으로의 인사가 일본에는 너무도 많다. 처음엔 별 웃기는 민족이 다 있네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완전 몸에 배어 생활화되어있는 그들의 행동에 조금씩 긍정적인 요소가 생겼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를 예의 바르게 항상 연습하며 살아가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약간 부러워졌다. 처음엔 별 희한한 형식적인 말들을 멋대가리 없이 잘도 지킨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틀에 박힌 말들을 주고받는 사이 깍듯한 예의를 몸에 익히게 되는 거 같았다. 아무렇게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다 보면 실수가 생기는 법. 그러다 보니 국민들에게 개돼지...운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닐까? 그들은 그 자리 그 자리에 꼭 필요한 말들을 정해 놓고 앵무새처럼 전 국민이 지켜 나가는 게 놀랍다. 정해진 인사들을 주고받으니 서로의 잘잘못을 들춰내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예의들을 지켜갈 수가 있는 말들이 전부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린 정해져 있는 인사들도 태반이 안 지키며 적당히 얼버무리며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같은 입을 가지고 있으면서 너무 아끼는 기분마저 들 때도 있다.
대한민국은 급성장했다.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섰다. 가장 하찮게 여기던 화장실 문화가 세계 1위 급이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주축 대가 흔들리는 기둥에 이상한 지붕을 얹힌 듯한 불균형이 보인다. 국민 국고가 낭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고국은 엄청 많이 변해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화려하게 단장하고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고급스러운 화장실의 모습이다. 20여 년 전, 지방의 한 정치인으로부터 시작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가 전국으로 파생되었다. 예전에는 뒷방 문화로 하찮게 여기고 뒤쪽에 위치하여 뒷간으로 불리던 것이 새롭게 탄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뒷간이란 사람들의 배설물 처리장으로 냄새가 많이 나고 지저분한 곳이라 사람 사는 생활공간과는 격리되어있었다. 요즈음의 화장실은 용변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손을 씻고 화장하는 다양한 기능으로 어느덧 한나라의 문화 수준 평가의 잣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지방 자체 별로 막대한 국고 거금을 경쟁적으로 고급 화장실 만들기에 쏟아붓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지난겨울, 동네마다 잘 꾸며진 둘레 길을 따라 걷다가 예쁘게 지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달라진 공중화장실의 변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추운 겨울날, 빵빵하게 데워진 화장실이 필자를 반기니 더없이 흐뭇했다.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진 화장실 안 벽면은 편 백 나무로 곱게 단장이 되어있어, 볼일을 보면서도 이리저리 눈이 휘 동그래졌다. 더구나 일반 가정집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고급 비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평 세미 원을 가는 길목에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피아노 화장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필자는 엊그제 두물머리로 향하던 중에 호기심으로 그곳에 잠깐 들렀다. 하수처리장이라고 쓰여있는 입구에서 주차를 했다. 내리는 순간부터 이상한 오물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잘 정돈된 환경에는 실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용히 흐르는 계곡물 위로 정수 처리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적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여름의 찌는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그 광경에 시선을 멈추었으나 물살과 함께 퍼져오는 하수구 냄새는 기분을 망가트렸다. 하수처리장 위에도 그랜드피아노의 외형으로 멋진 화장실을 연출했다. 건물 꼭대기 옥상 위로는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어 상징적인 지붕을 만들어 냈다.
처리장 건물 앞, 작은 건물에도 피아노 의자 형태가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 기가 막힌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호기심도 많고 볼일도 있기에 2층 화장실로 오르려니 계단에 건반이 놓여있다. 층계를 밟는 순간 한음이 흐른다. 올라가는 대로 피아노 건반처럼 리듬 소리를 내는 것이다.
밟을수록 신나는 음악이 되어 크게 울려 퍼졌다. 한순간에 쾌쾌한 냄새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아담하고 예쁘게 가꿔진 식물 화단이 보인다. 잠시 쉬어가는 벤치와 아가들 수유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어딘가 구조가 어색해 보인다. 잘 꾸며진 고급스러운 세면대에서 손만 대충 닦고는 그냥 내려왔다. 어쨌든 화장실이라 오래 머무르기가 찜찜했다.
화장실이란 더럽고 부정한 것 같은 냄새로 일단은 청결 상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나는 듯해 서둘러 내려오는데 잘 가라고 또 인사를 한다. 계단 층계가 건반이 되어 밟는 대로 음계 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었다. 위대한 창조의 힘, 사람의 작은 아이디어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힐 링을 주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대로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놀라운 발상에 잠시 스쳐가는 곳이었다. 더러운 냄새로 버려진 곳을 사람 발길을 이끌며 멋지게 피아노가 있는 풍경으로 그려낸 것은 실로 감탄할 만 했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 화장실 문화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석구석 손대야 할 곳이 너무나 많은데 특별히 화장실에 낭비가 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개개인에게 어쩌면 필요한지도 모르지만 과연, 외출해서 그것도 공중화장실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대를 쓰는지는 의심스럽다. 그 비싼 금액은 도대체 어디서 충당이 되는지라는 의문점도 생긴다. 결국은 국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 창고가 이리저리 세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이리저리 몸살을 앓고 있다. 지 자체마다 독립적 행정으로 저마다 지역의 발전을 과시하는 난 개발이 우후죽순 벌떼를 쑤셔 놓은듯하다. 여기저기 공사판에 난장판은 주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통행은 물론 차선도 가로막는다. 그나마 잘 꾸며진 둘레 길로 향하는 길가에도 미세먼지가 남발하고, 사람들 얼굴에는 온통 가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가장 선진국인 미국에도 화장실은 깨끗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족하다. 거금을 들여 멋지게 꾸미기보다는 철저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 한국은 시간이 걸려 사용되는 비대가 줄 서서 기다리는 공중 화장실에 거의 설치되어있다. 마치 허술한 집에 화려하게만 꾸며진 화장실의 겉치레를 연상케 한다. 물론 서로가 앞다투어 먼저 이루어낸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가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미흡한 것들과 잘 어우러져, 보다 멋지고 훌륭한 나라, 기둥이 튼튼한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언젠가 멋진 ‘피아노 화장실’ 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들려올 것이다.
필자는 서울 변두리 끝자락 동네에 살고 있다. 비록 땅값 집값은 별로 안 나가지만 이 동네가 좋아 떠나지 못하고 벌써 몇십 년째 산다.
필자 동네는 바로 코앞에 북한산 국립공원이 있다. 남들은 이 산에 오르기 위해 버스 타고 자동차 타고 몰려들지만, 필자는 운동화 끈만 조여 매면 언제라도 오를 수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 아파트 뒤편으로 북한산으로부터 흐르는 개천이 있고 그 너머에 아직 개발되지 않아 무허가 집이 많은 산동네가 있다. 예전에는 지저분했지만, 이제는 무허가 집이라 해도 지붕도 고치고 텃밭도 가꾸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보기 좋은 전원주택 느낌이 물씬하다.
약간 불만은 TV 드라마에서 부자 동네로 평창동이나 성북동이 나오는데 우리 뒷동네는 주인공이 어릴 때 못살던 시절이나 형편 어려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촬영되곤 하는 점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허름한 집으로 뒷동네가 나와서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아 일부러 가끔은 그 동네로 산책하러 가기도 하는데 담장에 늘어뜨린 덩굴이나 예쁜 꽃이 핀 화분으로 집 앞을 치장한 조촐한 풍경이 마음에 든다.
지난해에는 북한산에서부터 개천을 따라 2㎞의 산책길이 조성되었다. 청계천처럼 옛 물길을 튼다는 의미로 정비되어서 동네 사람이나 다른 동네에서도 걷기 운동하기 위해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다.
시니어에 하루 걷는 운동량으로 적당한 왕복 4km 거리라 필자도 운동하러 열심히 이 길을 걷고 있다.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은 사계절 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봄이면 화사한 꽃이 지천으로 피어 즐겁게 하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과 흰 눈이라도 펄펄 내리는 겨울날은 그야말로 낭만을 만끽한다. 특히 그중 가장 멋진 일은 한여름 장마철의 동네 풍경이다. 내린 후 우리 집은 바로 설악산 계곡에 와 있는 것처럼 웅장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멋지다며 매우 부러워한다.
콸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소리는 설악산 못지않은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비가 그친 후 베란다에서 폭포처럼 휘몰아치는 개울물을 내려다보는 건 참으로 시원하고 즐거운 일이다.
산책하러 나가니 바로 옆에서 깨끗하고 맑은 시냇물이 신나게 노래하는 듯하다. 물이 너무 맑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맑은 물을 들여다보니 어릴 때 생각이 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대전에 살았는데 외가 동네에 대전천이 있었다.폭이 무척 넓은 개천으로 물이 그리 깊지 않아 동네 꼬마들 물놀이하기에 좋았다.어린 마음에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빛 시냇물이 너무나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빨래한다고 손수건 따위를 들고 넓적한 돌을 찾아 비비며 즐거웠다. 그때 시냇물 돌 위에 서서 흐르는 물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몸이 배를 탄 것처럼 마구마구 흘러가는 착각이 들었다. 좀 어지럽긴 해도 참으로 스릴 있고 재미있는 놀이였다. 오늘 이렇게 맑은 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린 날 느꼈던 감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집값이 좀 싸면 어떻겠는가? 바로 집 가까이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