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에 시달린 겨울이었다. 그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두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가볍게 흙길을 걷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미 트레킹을 즐기는 시니어의 마음은 들로 산으로 가 있을 터. 하지만 막상 길 위에 섰을 때 주의해야 할 불청객이 있다. 걸을 때마다 고통을 유발하는 족저근막염이 그 주인공이다. 모처럼 따뜻해진 봄에 건강한 발로 걱정 없이 산책을 즐길
교보문고 광화문 세미나실에서 ‘생각의 깊이 사진으로 더하다’라는 제목으로 달을 넘기며 강의한 내용이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이란 책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출판사에서 제안한 인문학이란 단어에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부담스런 제목이었다. 그런데 몽골에서 다시 인문학을 꺼내 들 일이 생겼다. 아직 추운 몽골 봄 평원에서 인문이란 단어가 푸른 하늘로 경쾌하게 피
왜 여행하느냐에 대해서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정의와 이유가 있지만 아마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상에 묻혀버린 꿈과 환상을 충전하기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른이 된다는 건 시시해지는 것”이라고 일갈했듯이,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꿈이 있어야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이라
추운 겨울 아침 며느리가 전화했다. 친정엄마가 동치미를 보내셨는데 어머님께도 갖다 드리라며 한 통을 더 주셨다 한다. 말만 들어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사부인의 김치 솜씨는 익히 알고 있어서 맛보게 될 동치미에 벌써부터 입맛이 다셔졌다.
사돈댁이 사는 곳은 충청도인데 마당에서 익힌 동치미라 했다. 며느리가 들고 온 동치미에는 탱글탱글한 무가 알차게 들어
아침 신문을 보니 한때 잘나갔고 장래도 촉망되던 한 정치인이 미투(Me Too)운동에 연루되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나락에 빠져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고로 ‘남자는 세 끝을 조심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나는 혀끝, 손끝, 그리고 바지 아래 돌출물 끝을 얘기한다.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소 다르긴 하나, 혀끝은 말로 인한 실수를 뜻하고, 손끝은 도박이
요즘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예전 같지 않은 매너 때문에 마음 상해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학생일 때는, 어른이 차에 타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누가 앞에 있든 스마트폰에 빠져 자리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동방예의지국의 오랜 전통이 불과 수십 년 사이에
필자는 비교적 동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탈모도 많고, 피부도 늙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사진을 봐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감기다. 해마다 겨울이면 감기로 고생을 해서 독감주사를 맞아두긴 했지만 이번 겨울 감기를 피하지 못했다. 작년 11월 초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른 시간에
SNS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과연 이렇게 발달하다 보면 어떻게 될까 고민하게 해주는 충격적인 영화이다. SNS를 통한 남들과의 소통은 미덕이자 의무인 사회이다. 반면에 SNS에 동참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사람은 은둔자 또는 성격이 이상한 이기적인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이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초대된 단체 톡에서 탈퇴할 때 우리는 이런 비판과 후유증을
살아 온 날 중에 댄스스포츠 경기대회에 출전한 일들은 하나하나 귀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백만 명의 댄스 스포츠 동호인 중에 정식 댄스 스포츠 대회에 선수로 참가해 본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러므로 그런 면에서는 행운아인 셈이다.
처음 댄스 대회에 출전한 것은 댄스에 입문한지 10년이 지난 2000년대 초 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동덕여대 총장 배 대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