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인ㆍ구직 정보업체 ‘케리어 캐스트 닷컴(Career Cast.Com)’이 발표한 2016년 ‘미국 최고의 직업 10개’를 보면 IT 관련 업종이 4개나 차지하고 부동의 1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랭크됐다. 그만큼 이 시대의 화두는 IT다. 이런 변화가 불과 30년 이내에 일어나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시니어들로서는 숨 가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컴퓨터가 필기구를 대신해 책상 위에서 자리를 차지했다. 주인인 인간은 이를 익히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컴맹이었던 필자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엑셀 도사’로 거듭나 ‘알파 고’를 잡으러 나섰다.
은퇴 전 회사에서는 경영분석, 회계처리, 재고관리 등 필요에 따라 엑셀을 주로 사용했다. 체계적인 교육은 받을 여유가 없었다. 젊은 직원들 어깨너머로 배우고 아침 일
중년이 좋아하는 아이돌. 잘못 생각하면 짧은 치마로 무장한 여자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삼촌 팬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의 음악애호가, 특히 색소폰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이돌을 꼽자면 단연 강기만(姜其滿·40)씨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강기만씨는 알려진 명성에 비해 늦깎이 데뷔를 한 음악가다. 애초 직업은 군인이
2000년대 초반 ‘아름다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의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주제를 보고 필자는 대단원에 나이 들어 얼굴에 잔주름 가득한 미국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두건을 한 채 뼈만 앙상한 흑인 어린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넣기로 했다. 이 사진만큼 ‘아름다움의 지속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필자는 완전 컴맹
히 식스(He 6). 1960~1970년대 미8군 무대와 이태원·명동 일대 음악 살롱을 격렬한 록 음악으로 장악하던 여섯 명의 청년(권용남, 김용중, 김홍탁, 유상윤, 이영덕, 조용남)이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거울과 같았던 그들은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세대의 거울 앞에 섰다. 중·장년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고, 낭만을 추억하는 그
그날도 광화문 시내로 가기 위해 성북동 뒷길을 통해 삼청터널을 향하고 있었다.
이 길은 솔직히 초보운전자나 초행길인 사람에게는 좀 힘들 수 있는 코스이다. 경사가 급한 언덕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오르내리는 길도 많으며 급커브 길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렇지만 이 길을 수십 년째 다니고 있는 나에겐 참으로 편리하고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 친숙한 길이다.
한국 사람들은 중산층이라 하면 보통 30평대 아파트나 중형차를 떠올린다. 물질적인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같은 질문을 유럽인들에게 한다면 어떨까? 그들은 외국어 하나 또는 악기 하나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중산층이라 한다. 맹목적으로 그들이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자세는 배워야 할 것이 아닐까.혹시 어린 시절 소망했던 악기가 있었다면, 이제라도
나는 대한장애인댄스스포츠서울연맹 소속 선수 겸 코치이다. 자원봉사자로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혼자서는 댄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나 같은 비장애인이 파트너로 같이 경기대회에 나간다. 올해가 4년째이다.
장애인들은 겨울철 빙판이 위험하기 때문에 겨울 동안에는 훈련을 쉰다. 그리고 대략 4월부터 새로 선수등록을
퇴직 후 양재천을 자주 걷는다. 아내와 함께 걷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걷기도 한다. 시간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산책할 수 있어 좋다. 양재천은 철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6월이면 화사하던 봄 꽃 들은 자취를 감추고 연초록 나뭇잎은 싱싱한 푸르름을 더해간다.
6월에는 우리 가족에게는 큰 행사가 두 개있다. 어머니의 기일이 있고 둘째 동생이
경력 35년 이상의 신인 밴드가 데뷔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지만 어찌 됐든 사실이다. 이 경력 넘치는 밴드는 컨트리음악의 한 장르인 블루그래스(Bluegrass) 음악 밴드인 ‘실버그래스’. 나 와 같은 이름난 경연은 아니지만, 당당히 오디션을 통해 경쟁을 물리치고 정식 데뷔를 할 기회를 잡았다. 이 실버그래스의 다섯 멤버인 김구(金口·60), 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