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 번째 인생] 새 인생에 딱 맞는, 제2 직업에 도전하세요
- 생물학적 수명은 늘어나고 사회적 수명인 정년은 점점 짧아지면서, 제2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 즉 은퇴자금 준비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제2 직업은 더 중요하다. 시니어들의 이러한 요구에 발맞춰 여러 민·관 기관에서 제2 직업에 관한 다양한 안내와 새로운 직업 소개를 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기보다 교육과 준비과정을 통해 새 인생에 어울리는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최근 제2 직업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구인 활동을 펼치는 업체나 기업을 살펴보면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장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사발전재단이나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은퇴자협회 등 여러 기관에서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전국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이 일자리 희망센터를 이용하면 구인구직 정보에서부터, 교육 프로그램, 관련 컨설팅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시니어 구인구직 단순직종에 집중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직업이나 일자리가 시니어들이 원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경비직이나 청소, 택배와 같은 단순 노무직이고 그나마 이런 일자리의 대부분은 40대를 우선적으로 선호한다. 연령이 높은 시니어들에겐 순서조차 돌아오기 힘들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정현주 대리는 센터가 최근 사회공헌형 일자리로 사업 방향을 옮긴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적으로 자유롭거나 노후 자금이 해결된 시니어들은 단순직 일자리를 원치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그간의 경력을 살릴 수 있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으려는 분들이 많아요. 수고를 인정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죠. 저희 센터에서는 이런 시니어들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센터에서 준비하는 직업들은 경제적 소득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이나 참여 시니어들의 자부심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에는 건강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이 있다. 지역 치매센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도 인지장애(초기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인지학습 역할을 할 사회공헌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밖에 바른먹거리전문가 양성과정은 유치원 등 각 교육기관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먹거리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를, 다문화가족 서포터스 양성과정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요청을 받아 한국생활 정착의 멘토 역할을 할 지원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수익보다 보람과 자부심 얻을 수 있어야 지난해 도심권 50플러스센터를 통해 SNS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종로지역자활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김희순씨(64)는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니어들에 대한 직업 교육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재능기부를 통해 교육생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갖게 됐습니다. 예전엔 손주들이 와이파이 터진다고 하면 뭐가 터졌냐며 놀랄 정도였지만, 이제는 대화도 통하고 생활이 달라졌어요.” 물론 일자리나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현장에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실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겹치게 되면 사업 자체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현장에서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활동 무대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성공적인 직업에 정리수납전문가가 있다. 정리수납전문가는 여성발전센터, 여성인력 개발센터 등을 통해 민간에 알려졌다가 현재는 협회까지 설립됐다. 한국정리수납협회의 정경자 협회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정리수납은 보통 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시니어, 특히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입니다. 평생 살림을 해온 분들은 원칙과 이론을 알려주면 금방 익숙해지거든요. 이렇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거나 창업하려면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니까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의 전문성, 문제를 해결할 창의성, 구성원과 소비자를 대할 인성을 갖추고 있는지 늘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찾을 수 없다면 창직(創職)도 방법 새로운 직업에 대한 단서가 필요하다면 한국고용정보원(www.keis.or.kr)을 노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선 제2 직업을 필요로 하는 중년들을 위한 자료를 연구하고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올해 3월에 발간된 자료집 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베이비 부머들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직업 30개를 선정해 하는 일을 소개하고 해당 직업을 가지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 지난 5월부터는 중장년층의 창직 활동을 돕기 위한 라는 지침서를 배포 중이기도 하다. #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 2016-07-01 08:45
-
- 출장지에서 생긴 에피소드
- 30대 초반 중공업 부문 회사의 플랜트 화공설비 부문 해외영업 팀장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과 제철은 겨우 기초를 마련하였고 자동차도 현대 포니를 시작으로 국산 소형차가 출고되어 인기리에 주문받던 시기였다. 회사에서는 새로이 중화학 분야의 플랜트를 일괄수주 방식이나 주요설비의 부문별 주문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 하였으나 아쉽게도 당시 우리에게는 플랜트 엔지니어링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거의 없어 국제 경쟁 입찰에 참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회사 경영진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유명 엔지니어링 회사와 접촉하여, 우선 우리 회사의 생산제조 기술과 경쟁력, 그리고 상세 설계 능력 등을 홍보하여 그들 하청 형태로 납품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나아가 기본 설계와 엔지니어링에 경험이 많은 그들의 협조 하에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공동으로 국제 입찰에 참여하여 그들의 기술도 습득하고 동시에 공사에도 참여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하였다. 필자와 화공설비설계부장, 그리고 뉴욕주립대학교 공대 학장을 역임한 미국인 고문(어드바이저)으로 기본추진킴이 구성되었고 필요에 따라 현지 지사장과 본사 임원진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우선 일본지역으로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스미토모(住友) 등 10여 개의 유명 엔지니어링 업체와 약 보름 정도의 일정으로사전에 회의 일정을 마련하여 개별적으로 방문하였다. 놀라웠던 것은 당시 상대 회사의 참석자가 상당한 나이와 직급의 고위급 인사들이었으나 무척 긍정적이어서 우리의 거의 다 받아들여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특히 회의 후에는 출입문까지 배웅하며 상대적으로 젊은 우리에게 끝까지 몇 번이고 응대 인사를 하여 처음에는 무척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2차 미팅은 미국과 캐나다 지역으로 면적도 넓고 회사도 많아 약 한 달 반 정도의 일정을 갖고 회사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회의 일정은 현지 지사의 도움으로 주로 필자가 결정하였는데 두 번 세 번 방문하기가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들 것 같아 한 번으로 정했는데 일정이 빠듯하니 중반 이후부터는 상당한 피곤함을 느꼈다. 출장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멸치, 김, 고추장과 라면 등을 준비해 갔는데 호텔 방을 함께 사용했던 설계부장과 커피용 더운물을 요청하여 가끔 몰래 라면도 끓여 먹으면서 지냈다. 가져갔던 음식물도 떨어지고 넉넉하게 준비했던 양말과 내의도 부족하여 저녁 늦게 돌아와서 빨아서 말려 입기도 하였다. 주로 주 중에 회사들과 회의하고 주말에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도록 일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쇼핑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겨우 휴일에 시간이 있어서 내의를 사러 미국 디트로이트인지 피츠버그인지에 있는 현지 백화점에 가서 내의를 몇 장인가 사고 50달러 짜리 현금을 냈더니 점원이 위조지폐인지 확인을 하러 계산대로 가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별로 큰 액수도 아닌데 그곳에서는 주로 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현금 50달러는 큰돈이라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카드를 별로 사용하지 않아서 해외 출장을 갈 때는 매번 미화 100달러 짜리 여행자 수표나 현금, 그리고 방문국가의 현지 화폐를 준비해 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휴스턴과 뉴욕에서는 현지 주재원의 안내로 라이브 쇼를 구경했는데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성행위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무척 놀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밖에 댈러스 등 텍사스 지역은 같은 영어지만 끊지를 않고 계속이어서 응얼응얼 발음하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대도시에는 대부분 한국음식점이 있어서 가끔 한식을 즐길 수 있었으며 한국과 비교하여 값도 비싸지 않으면서 맛도 좋은 집이 많았다. 특히 미국 동부해안 지역에 있는 도시의 회사들과 회의 후 식사 때에 바다가재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에 초대받은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렇게 크고 맛있는 바다가재 요리는 그후 별로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으로 돌아와 방문했던 회사들과의 회의 시 상담했던 사항들에 대한 후속 조치들을 약 한 달 여에 걸쳐 처리한 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지역 엔지니어링 업체 방문 계획을 세웠다. 유럽 지역 업체는 스냄프로게티 등 이탈리아 회사부터 상담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직항노선이 없어 홍콩, 싱가포르,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로마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기본 팀원인 3명이 함께했는데 당시 로마에는 우리 회사의 지사가 없어 공항에서 우리가 방문할 회사의 주소를 공항 안내카운터의 직원에게 알려주고 방문할 회사 근처의 호텔로 어떻게 가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했다. 그 직원이 운전기사를 한 명 소개하면서 도움을 받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해주었다. 운전기사는 친절하고 싹싹하며 영어는 잘 못 하지만 무척 명랑하고 낙천적이였다. 운전하면서도 연신 휘파람으로 노래하곤 했다. 그는 약 1시간 반 정도 달려서 원형경기장 옆의 호텔로 친절하게 인도해 주었으며 내일 아침 다시 그가 와서 우리를 회사로 안내하기로 약속하였다. 택시 요금이 상당히 많이 나왔으나 주행거리가 많아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다. 호텔이 약 150년 전에 지어져서 거의 문화 유적지 같은 그런 형태였으며 엘리베이터는 없고 도르래 같은 리프트의 쇠사슬을 손으로 잡아당겨서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는 형태였다. 방을 배정받은 후에 제일 먼저 약속한 엔니지니어링 회사에 전화하여 다음 날 회담 시간 등을 다시 확인하였다. 우리 호텔 이름과 주소를 물어서 알려주니 자기 회사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단다. 약간 황당하였으나 다음 날 아침에 운전기사와 약속한 사항이 있어서 그대로 이용한 택시를 타기로 하였다. 조금 후에 욕실에서 샤워하려고 하니 온수가 나오지 않아 호텔카운터로 전화를 하니 샤워를 한다면 자기들에게 미리 전화하면 온수를 가져다준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많은 나라 많은 호텔을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행인 점은 호텔 식당에 직접 갓 구운 빵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어 식사 시 맛 좋은 빵과 신선한 치즈와 우유, 채소 등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웃기는 일은 다음 날 운전기사가 우리를 회사로 데려다 주는 데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우리가 공항에서 회사 주소를 주면서 그 주소 근방의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따지자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척하면서 능청을 떨어 그냥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 그 회사가 자기들이 자주 거래하는 택시를 불러주어서 타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요금이 타고 갈 때와 비교하여 반 정도밖에 안 되었다. 웃고 친절하게 하면서 여러 가지로 바가지를 씌운 것 이였다. 로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주말에 거리를 산책하는 데 젊은 아가씨들이 일광욕을 위해서인지 상체를 완전히 벗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안 보는 척하며 슬쩍슬쩍 훔쳐보기도 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먼저 파리에서 일정을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본사의 설계담당 상무가 한 분 합류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분이 도착하자마자 사고가 발생했다. 호텔 안내대에서 입실 등록을 하는 매우 짧은 순간 서류가방을 훔쳐가 버려서 여권과 돈 등을 모두 잃어버렸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파리였다. 후에 대사관에서 서류 재발급 받고 주변에서 돈 빌리고 해서 겨우 출장을 마칠 수 있었다. 한 가지 웃기는 일은 우리 일행이 네 사람인데 한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운전기사 옆에는 보통 커다란 개를 태우고 다니며 뒷좌석에만 손님을 태우는 것이다. 그밖에도 우리의 미국인 일행이 영어로 무엇을 물어보면 자기는 영어 잘못 한다고 상당히 유창한 영어로 대꾸하며 상대를 잘 안 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 백화점 등에서 쇼핑할 때는 어떻게든지 영어를 잘하는 젊은 여자를 데려오는 것이다. 이때 내가 아내를 위해서 멋진 가죽 치마와 점퍼를 사다 주었는데 옷은 사다 줄 때마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나중에는 포기하고 돈을 갖다 주니 좋아해서 그때부터 아내가 돈을 더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필자가 독일어 전공이라는 점이 빛을 발했다. 밤에 호프집 등 음식점 갈 때 꼭 필자와 동행을 하려고 해서 약간 우쭐댈 수가 있었으며, 영국에서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많았는데 보행자가 있으면 차들이 반드시 정차해서 보행자가 완전히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 운행하여 당시 우리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엔지니어링 회사 방문 상담 이후 점차 엔지니어링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축적되어 약 10여 년 후부터는 조선이나 단순 구조물 생산보다 일괄도급 형태의 공사 수주가 더 많아졌다. 물론 최근에는 경쟁적으로 저가 공사 수주를 많이 하여 대부분의 중공업 업체들이 부실 위험에 처해 있어 무척 안타깝게 생각된다.
- 2016-06-28 16:08
-
- [건강119] “잠자리가 두렵다” 남성 갱년기
- 중년 여성이 겪는 갱년기 증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제는 대체로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갱년기 극복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제약회사 등 여러 단체들은 관련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한 번쯤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남성은?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들 쉬쉬할 뿐 해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성 갱년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는지 대한남성과학회 허정식 홍보이사(제주대학교병원 비뇨기과)를 통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대한남성과학회 허정식 홍보이사 남성 갱년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정력이다. 남성에게 있어 정력은 성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자존심과 같은 것이다. 정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남에게 밝혀서는 안 되는 비밀 중의 비밀 취급을 받는다. 술자리에서 성생활에 대한 허풍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이고, 안타깝게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도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남성 갱년기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허정식 이사는 아직 원인이 완벽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남성 갱년기는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논란이 남아 있는 상태죠. 지금까지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의 감소와 연관 있다는 정도만 밝혀진 상태입니다. 용어 역시 변화가 있어 그동안은 ‘후기발현 남성갱년기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였지만, 최근에는 ‘남성호르몬결핍증후군’으로 부르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불확실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허정식 이사에 따르면 여성 갱년기의 경우 여성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생리가 중단되는 경우를 말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노화과정이 급격한 생식능력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점진적인 감소세를 나타낸다고 한다. 남자의 고개 천천히 숙여져 대한남성과학회에서 2010년 전국의 40대 이상 남성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남성호르몬 검사를 한 결과 28.4%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 이하로 나타났다고 허 이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40대 이상 남성은 4명 중 1명꼴로 갱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드물죠. 남성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은 생식능력의 감소입니다. 그 이외에 안면홍조,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 피로감과 수면 장애, 내장지방 증가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근육량과 근력 감소, 체모와 골밀도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남성 갱년기라는 것이 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면 되는 것일까?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허 교수는 남성호르몬의 부족으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에게는 남성호르몬을 생리적 상태와 가장 근접하게 보충해 주는 것이 매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성호르몬은 약효 작용 시간이 충분하고, 안전하면서 사용이 편리한 제품을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겔 타입의 테스토스테론 연고가 많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식이요법이나 유산소운동을 통한 근력운동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 중 성기능과 관련해선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등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일반적이지만, 간혹 남성호르몬 부족 환자 중에서는 이러한 약제가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단독 요법이 실패한 경우에는 남성호르몬과 발기부전 치료제를 함께 투여해 치료한다고 허 교수는 말했다. 부족한 남성호르몬 보충가능 남성 갱년기 중 심각한 부분 중 하나는 단순한 성기능 저하로 생각해서 내버려뒀을 때 다양한 증상들이 함께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이다. “50~60대 베이비붐 세대는 무엇보다도 정년퇴직이나 은퇴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런 스트레스와 만성피로, 우울증 등이 남성 갱년기와 겹치게 되면,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져 가족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끼치게 되죠. 여기에 성욕 저하와 발기부전, 지적 활동이나 인지 기능의 저하 등에 시달립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남성호르몬 검사를 통해 수치가 정상범위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흡연과 음주는 줄여야 하고요.” 특히 허 이사는 남성 갱년기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인간은 누구나 젊음을 유지하고,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면서도, 중년이 되며 겪게 되는 몸의 변화에 순응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의 나이에는 그것이 정상일 것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것이죠. 단지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져서 여러 증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쉽게 오판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남성 갱년기는 치료 가능한 질환 일부에서는 자가진단표 등을 사용해 몸 상태를 점검하는데 변별력이 높지 않고, 오히려 치료시기만 늦추기도 해서 최근에는 권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아무래도 정력과 관련해선 보신음식이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실험적으로 해마를 먹는 사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도 증명된 바 없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운동을 쉬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을 너무 무시하거나,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러한 증상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질환은 치료의 대상일 뿐이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남성호르몬을 이용한 치료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반드시 비뇨기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아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2016-06-27 08:11
-
- [미니 자서전] 삶의 노을이 지기 전에
- 밥만 해 먹는 여자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폐업 하고나서 꼭, 10년! 집에서 밥만 해먹고 사회활동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밥만 해 먹으면서 가정 살림만 한다고 하면 누구든지 한심하게 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회활동을 해야만 훌륭하고 대단하게 여겨 주는 것이 요즘 사회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집에만 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를 반짝반짝하게 닦아 빛이 나게 하며 살아가는 주부도 아니고, 요리솜씨가 뛰어나 특별하게 내세울 나만의 ‘필살기 메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살림도 대충하고, 청소도 대충하면서도, 남들처럼 취미하나도 계발하지 못하고 무취미로 살아가는 ‘게으른 은둔자’다. 게으른 은둔자 사람들은 동호회다, 친목계다, 동창회다 해서, 갖가지 모임을 만들어 가며 사람들을 사귀고, 만난다. 그러나 필자는 집에만 있어도 세상 편하고 좋다. 밖에 나가는 일은 꼭 필요 할 때만 나간다. 병원갈 때, 은행이나 관공서에 볼 일이 있을 때, 가끔 언니들이나 지인을 만날 때, 교회에 갈 때, 그리고 대부분 반찬거리 사러 대형마트에 갈 때뿐이다. 집에 화수분이라도 하나 있어서 반찬거리가 저절로 생겨난다면 외출 할일도 없을 터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화수분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주 1회 정도, 반찬거리 사러 할 수 없이, 사람이 북적거리는 대형마트엘 간다. 사람 많은 곳에서 휘둘리다가 오면, 너무 피곤해 초주검이 되곤 한다. 집에만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필자에게 묻는 말은 하나같이 ‘심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 그것은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살아도 하루 24시간이 항상 모자란다. 재미있는 영화보기, 다양한 프로의 TV시청,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책들을 읽기에 하루는 너무나 짧다. 그러니 살림을 대충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필자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보다 책이 더 좋고, 영화나 TV가 더 재미있다. 이렇게 은둔자가 된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답답해하는데, 이런 은둔을 반기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 필자에게 마음 놓고 밥을 시켜 먹으려는 사람, 바로 남편이다. 구석기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하루는, 오전에 야쿠르트 영업사원이 우리 집의 벨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가니 깜짝 놀란다. 벨을 눌렀기에 나간 것뿐인데 왜 필자를 보고 놀라는 것인지 물어 보았다. “이 시간에 집에 계시네요?” 마치 신기한 뭔가를 보듯 한다. 내가 물었다. “이 시간에 우리 집에 내가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야쿠르트 판매사원이 대답했다. “아니요, 요즘은 이 시간엔 집집마다 주부들이 나가고 집에 없거든요. 돈을 벌기 위해 나가든지, 취미활동을 하러 나가든지, 다들 나가고 없는데, 그런데 집에 계신 분도 있네요” 그녀는 집에 있는 필자가 마냥 신기한가보다. 마치 구석기사람이라도 본 듯이 그런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이상한가?’ 하긴 요즘은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데, 혼자서만 한없이 늘어져 있다는 생각도 가끔 하긴 했으니까, 야쿠르트 판매사원의 말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밥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 까지는 아니라도, 당당한 일임엔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야쿠르트 판매사원의 말에 필자는 은근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생각까지 든다. 경제활동을 꿈꾸며 며칠을 두고 은둔생활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이가 더 많아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어서 털고 일어나 경제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인들은 취득하기 어려운 자격증을 묵혀 두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다시 개설하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건 부동산 중개업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많이 걸어 다녀야 하고, 누군가 에게는 전 재산일 수도 있는, 고객의 큰 재산이 오가는 일을 해야 하므로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직업이지, 시니어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절대 아니다. 또, 멀지 않아 대기업과 외국기업들이 부동산 법인을 만들어서 부동산 중개업시장에 진입하는 날이 다가 올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부동산중개업의 경기가 좋지 않을 때이고 보니, 더더욱 사무소 개업은 할 수가 없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인터넷에 들어가 ‘서울시일자리플러스센터’에 구직 신청을 했다. 취업교육을 받다 하루는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에서 취업교육을 받으라는 문자가 왔다. 취업교육을 받으러 가보니까, 여러 가지 교육이 다양하게 있어서 그때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들꽃 가드닝 교육, 동년배 상담가 교육, 도슨트 교육, 취업설계아카데미 교육등 그 외에도 다수의 교육을 더 받았다. 교육을 받고나서 그걸로 취업을 해보려고, 내게 맞을 것 같은 교육만 골라서 받았다. 그러다보니, 1년이 어느새 꿈결같이 흘러갔다. 취업을 못해 크게 실망 교육을 받고나면, 처음에 내가 그 교육을 선택 했을 때와는 결과가 달랐다. 필자가 직업으로 가지기에는 힘들고, 자신도 없고, 취업할 분야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실망도 많이 되고,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교육 받을 때, 강사들이, 정말로 재미있고, 취미로 즐길 수 있는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이 재미있어야 싫증 내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을 테니까, 뭘 잘 할 수 있을지 꼭 취미부터 찾으라는 것이다. 나는 맞는 취미를 못 찾아서 지금까지도 취미생활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취업도 어려운가보다. 취업을 포기할까? 아니면 진로를 바꿔 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진로를 ‘상담’ 쪽으로 바꾸어 보려고 굳게 마음먹었다. 적성 진로검사를 받다 센터에는 그만 다니려고 상담분야의 교육기관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였는데, 센터 강사님이 ‘취업설계아카데미교육’을 받아 볼 것을 적극 권유 하셨다. 뿌리칠 수가 없어서 이번 교육만 한 번 더 받아보고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교육을 받았다. ‘취업설계아카데미교육’은 직업상담 분야의 프로그램이 들어 있어서 ‘진로검사’도 받게 되었다. 이때는 이미 상담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어 있어서 결과가 상담관련분야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술적, 진취적, 탐구적’ 뭐 이런 단어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상담분야로 전환 하려던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갑자기 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졌다. 지금 까지는 예술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온 사람인데, 예술이 왜 별안간 튀어 나오느냐 말이다. 상실감에 허탈해하는 이 모습을 본 담당 복지사가 ‘본인이 좋아하는 교육만 받지 말고, 관심 없는 분야도 골고루 받아 보면, 의외로, 관심 없던 분야에서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도 있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복지사의 조언이 정말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교육을 골고루 다 받아 보기로 결심 했다. 방송인 교육을 받으며 ‘취업설계아카데미교육’을 마치고 났을 때, 마침 ‘방송인교육’의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복지사의 조언대로 평소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방송인교육’을 신청했다. 방송인 교육은 시니어 연기자, 모델, 리포터와 같은 방송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직 교육이다. 연기엔 관심 없지만,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방송기사작성과 리포터교육은 글쓰기가 있어서 받아보면 좋을 것 같았다. 리포터교육을 받으면서, 자기 소개하는 글을 발표했을 때와 리포터 기사작성을 했을 때 두 번 모두 강사에게 칭찬을 들었다. 고칠 것이 하나도 없고, 지금 바로 현장에 가서 리포터를 해도 되겠다고 했다. 큰 박수도 두 번이나 받았다. 도슨트 교육과 시니어 기자교육을 받을 때도 같은 칭찬을 받았다. 이렇게 여러 번 강사들에게 칭찬을 듣고 보니, 교육생들 사이엔 필자가 글을 잘 쓴다고 소문이 났다. 시니어 잡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기자가 되다 시니어기자교육이 끝날 무렵에, 마침 경제신문 ‘이투데이’에서 만들고 있는 시니어잡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시니어기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 모집광고를 보고, 필자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바로 이거다. 여기서부터 시니어의 새 삶을 시작해야지!” 필자는 그 길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시니어기자 지원서를 냈다. 운이 좋게도 합격되어서, ‘기자’가 되는 어릴 적 꿈은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시니어기자인 ‘동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글쓰기로 삶을 꽃 피우리라! 글을 잘 쓴다고 소문이 나고 보니, 소문 난대로 정말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글쓰기를 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또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문예반은 아니지만, 방과 후에 집에서 원고지를 묶어놓고, 혼자서 취미로 틈틈이 시를 썼다. 그 덕분에 중학교 3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뽑혀서 대학교 백일장에 나가 장려상도 탔다. 상을 타고 보니, 시인이 되어서 기자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건 언니들이 보던 여성월간지를 보고서 부터였다. 시인인데, 유명 인사를 인터뷰하러 다니는 걸 읽어본 후로는 필자도 ‘시인이면서, 기자가 되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생각했다. 그 티끌만한 작은 경험을 움켜지고, 지금부터라도 ‘글쓰기’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시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시인이 되지 못하면 어떤가! 글쓰기를 하는 순간들이 행복한 날들이 될 것이고, 필자의 남은 삶을 아름답게 꽃피워 낼 것이다. 이 화려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삶의 노을이 지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 2016-06-20 10:22
-
- [노후경제] 노후준비의 첫째가 건강이다
- 미래연구소 통계조사 결과에 의하면 행복한 노후생활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시니어들이 첫 번째로 건강을 꼽았다. 두 번째로는 남자는 부인을 꼽았지만 여자는 돈을 선택했다. 두 번째에서 남녀 사이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부동의 1위인 건강은 모두가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건강은 돈이지만 돈은 건강이 아니다. 젊었을 때는 건강을 담보로 몸을 혹사하면서 돈을 번다. 나이 들어 그렇게 번 돈으로 건강을 다시 사려고 병원을 순례하고 몸에 좋다는 이것저것을 먹어보나 원래대로 몸의 건강을 되돌리지도 못한다. 즉 돈으로 100% 완벽한 건강을 살 수는 없다. 수학의 등식이 건강에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의하면 고령화 사회로 노인의 인구가 증가하면 할수록 고령자가 사용하는 의료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노인들이 사는 집에 가면 이곳저곳에 약 봉투가 가득하다, 약국을 나서는 노인들의 손에는 시장바구니 든 것처럼 두툼한 약 봉투를 들려 있다. 그렇게 많이 먹은 약으로 반짝하고 건강이 회복되면 좋으련만 실제는 약의 효과를 의심할 만큼 차도가 별로 없다. 한번 나빠진 건강은 회복이 어렵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젊은이들보다 회복이 더디거나 약의 효과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건강을 사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건강하면 각종 의료비가 절감되므로 결국 건강은 돈이다. 의료보험 제도가 선진국인 미국보다 앞선다는 한국도 65세 이상 고령자가 중증 질환에 걸리면 모아둔 전 재산 날아가는 건 예사다. 자기 재산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친척의 돈까지 끌어다 쓰다가 끝이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병원비로 돈만 들어가는 부모를 좋아할 리가 없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하늘에서 돈 보따리가 떨어질 리가 없는 것처럼 건강도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지키는 세 가지 요체는 편안한 마음과 적절한 운동에다 섭생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요즘은 건강정보도 넘쳐 나는 세상이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하지 못 하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평소 맑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건강할 때는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몸이 늙어가는 퇴직 무렵이면 제일 먼저 관심을 둬야 하는 것이 건강이다.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가계부를 쓰고 저축한다면 돈이 불어나는 것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건강은 잘 모른다. 건강에 무관심하다가 덜컥 몸에 고장이 생겼을 때 그때 가서 후회한다. 예전부터 흔히 듣는 말로 ‘그렇게 고생해서 이제 밥술이나 먹으려니 큰 병이 왔다’는 말이 있다. 있을 때 잘하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돈을 지키기 위해 세무사, 보험설계사, 자산운용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듯이 자기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건강 관련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시니어라면 가까운 보건소 건강센터를 강력히 추천한다. 보건소는 이제 예방주사나 놓아주고 거리 방역이나 하는 곳이 아니다. 의사는 물론이고 간호사, 영양사, 운동처방사들이 개인별 맞춤 처방을 통해 건강증진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대사증후군도 측정해주고 비만도 검사와 체성분 분석, 신체균형발달도 최신 장비로 검사해준다. 나아가 운동능력 테스트를 통해 신체 부위별 근력, 지구력, 순발력을 알아본 뒤 적절한 운동 종목도 알려준다. 필자의 경우 스스로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하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병원 정기검진을 받아보니 지방간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깜짝 놀라 보건소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나이에 비해 과식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는 것이 나이 들면 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운동량을 늘리기보다 섭생을 줄여야 했다. 건강의 최대 적인 스트레스를 줄이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는 남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니어라면 이루지 못하는 꿈도 있다는 것을 알고 포기할 때는 포기해야 한다.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게 좋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이유도 없다.
- 2016-06-13 16:26
-
- [노후경제]시니어의 가정경제 _ 아는 만큼 행복하다
- 대부분 시니어는 경제적으로 노후 준비가 돼 있지 않거나 불충분하다. 그렇다고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공공 안전망도 매우 미흡해 이를 기댈 수도 없다. 따라서 본인의 생활비는 본인이나 배우자의 근로(사업) 소득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취업이나 창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이 어려운 한국의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준고령자(베이비붐 세대)나 고령자는 현재의 상태에서 어떻게 돈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가 관심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취약계층, 퇴직(예정)자들과의 재무상담 및 강의를 했던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벽하지는 않으나 알면 유용한 시니어의 가정 재무 설계와 관리의 팁(Tips)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재무 설계나 재테크에 대한 과거의 인식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 준고령자나 고령자는 어릴 때 경제교육을 못 받아 경제의식이 결여돼 있고 사회적 성장기에 살아와 잘못된 재테크 관념이 있다. 둘째로 현재의 자신의 순자산(자산-부채) 및 부채 구조, 현금 흐름을 알아봐야 한다. 한국 준고령자나 고령자는 외형적 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자산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셋째로 남은 생존 기간에 필요한 기본 생활비와 목돈 지출금액을 계산해야 한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구체적 계량화로 해결 방법 모색하자는 것이다. 넷째로 앞으로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간과 예상 금액 파악해 거기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한다. 잘못된 소비 습관을 재점검하고 개선해 새는 돈을 막는 방법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다섯째로 현재의 자산을 활용해 이익을 얻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특히 준고령자나 고령자에 적합한 금융 상품을 알아보고, 부동산 자산을 활용할 방법에 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초저금리 시대에 고수익 낸다는 금융 상품이 많은데 엄밀히 검토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돈이 안 들어가는 활동에 의한 행복 찾기가 필요하다.
- 2016-06-10 10:51
-
- [호국보훈의 달] '빛과 소금’이 되고픈 짭짤한 청춘들-국가유공자 자녀 중심 대학생 의료 봉사단 ‘소금회’
-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 토요일 오후.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서울 동작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한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라 부르기엔 앳된 얼굴을 한 그들의 가운에서 ‘소금회’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20년 넘게 동작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다는 이들은 국가유공자 자녀 중심으로 꾸려진 ‘소금회 대학생 의료 봉사단’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한다는 소금회 학생들이 흘린 건강한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86년 결성한 소금회는 국가유공자 의대생 자녀들이 부모세대와 국가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의료 봉사단이다. 30년이 흐른 지금, 일반 의료계 전공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대학 연합 동아리로 발전했으며, 해외 의료 봉사도 나가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봉사단은 크게 진료반(의과대학 학생), 치과반(치과대학과·치위생학과 학생), 간호반(간호대학 학생), 약국반(약학대학 학생)으로 나뉜다. 의과대학은 서울대·연세대·한양대·중앙대·순천향대 학생들이고, 약학대학은 이화여대·숙명여대, 간호대학은 가톨릭대, 치과대학은 연세대, 치위생과는 영동대(永同大) 학생들이다. 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이기 때문에 평균 연령은 24세 정도로, 대부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2년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소금회 창단 초기에는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무의촌(無醫村)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했다. 동작종합사회복지관에선 20년 넘게 격주 토요일마다 어르신들의 말벗과 상담, 방문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2003년 당시 소금회 회원들은 태풍 ‘매미’로 인해 전염병이 우려되었던 충북 영동군 상촌면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매년 여름이면 상촌면을 찾아 진료 봉사를 한다. 현충일에는 국립현충원 국립묘지를 찾은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검진과 응급 처치 등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희생을 통해 배운 베풂의 미덕 매년 그들이 하계 진료 봉사를 위해 떠나는 상촌면은 병·의원이 한 곳도 없는 의료 취약지이다. 소금회 회원들은 3박 4일 동안 여름날 한낮 태양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한다. 지난해부터 소금회를 이끄는 이상원(李相沅·23·한양대학교 의학과 4학년) 회장은 “아직 학생들이기 때문에 병을 완벽히 치료하거나 아픈 것을 전부 해결해 줄 수는 없겠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작은 조언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정말 기쁩니다”라며 어린 학생들의 작은 손길이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에 일조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많은 소금회 회원이 3박 4일간의 봉사활동을 의미 있게 여긴다. “우리가 이렇게 뜻깊은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부모세대는 우리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이후 한국전쟁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치며 지금의 이 나라를 만든 고마운 분들이죠. 그들은 자녀 세대가 잘 성장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 주셨잖아요. 건실하게 잘 자라고, 남을 위해 베푸는 자세로 국가와 사회 발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남을 위하는 봉사는 결국 나를 위하는 길 공부하고 학과 수업 따라가기 바쁜 의대생에게 주말과 여름방학은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달콤한 휴식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 활동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막상 결심을 했더라도 쉬는 날이 되면 침대를 벗어나기 어렵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기 힘든 것이 현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이 회장이다. “봉사는 자신의 일부분을 포기하며 그만큼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 생각해요. 자기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는 힘들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죠. 부모님은 항상 남에게 베풀라고 가르치셨어요.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베푼다는 것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베푼다는 것’이 참 막연했는데, 소금회를 통해 좋은 친구들과 체계적인 방법으로 여러 사람에게 베풀 수 있게 된 것 역시 감사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소금회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개 부럽다는 반응을 보여요.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봉사하는 단체와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그만큼 의미를 갖고 열심히 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이 회장은 봉사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으로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일단 결심을 했다면, 어떤 단체에서 들어가서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게 좋아요. 제가 아직 누군가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니지만, 또래의 친구들에게 한번 해보면 봉사의 참맛을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은 할 수 있어요. 물론 자신도 챙기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봉사란 그렇게 많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오랫동안 봉사 현장에 나간 소금회 회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고맙다”는 인사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이 한마디가 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보람을 느끼게 한다. “한 달로 치면 총 7~8시간, 짧다면 짧은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 큰 고마움 선사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짧은 시간이더라도, 내가 의미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 뿌듯해요.” 지난 30년 동안 묵묵히 어려운 이웃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소금회. 국가유공자 자녀를 중심으로 생겨난 봉사단체인 만큼 매년 현충일에는 국립현충원에서 뜻깊은 봉사를 한다. “올해 현충일에는 혈압, 혈당을 측정하고 간단한 건강 상담을 할 예정이에요. 보훈처 직원과 미리 만나 봉사할 내용을 보고하고, 현충원 내에 부스를 지정받아요. 소금회 회원들은 6월 6일 오전에 장비를 설치하고, 현충원 행사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의료 봉사 활동을 시작합니다.” 또 다른 활동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이 회장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그동안 걸어온 소금회 활동의 명맥을 유지하고, 회원들의 변함없는 마음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선배들이 활동해온 것 외에 추가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저 우리가 보는 어르신들, 주민들이 앞으로도 건강하기만을 바랍니다. 또 함께 하고 있는 회원들, 그리고 미래의 회원이 될 학생들도 소금회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부모세대의 헌신 덕분에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보람과 경험을 계속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 2016-06-07 09:08
-
- [지금 뉴욕은] 미국에도 ‘캥거루족’, 캥거루족은 불경기의 산물
-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어린이처럼 처신하는 현상이 미국에서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캥거루족, 키덜트(Kidult), 어덜테슨트(Adultescent) 같은 신조어에도 익숙해졌다. 제 앞가림을 못하는 자녀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속앓이가 심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애지중지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런 현상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전문가들의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AARP(미국은퇴자협회)가 5월호에 게재한 ‘끔찍한 22세들(The Terrible 22s)’이란 제목의 특집 내용을 소개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시각 :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요즘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애지중지 키웠더니 제 구실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건 한쪽에 치우친 말이다. 정말 문제는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다. 원인을 제공했고 날개까지 달아줬다. 줄리 리스코트-하임스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 에서 “많은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간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힘든 경험을 해보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온실의 난처럼 현실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20대일 때는 해외여행이나 연수를 가도 부모가 일정을 세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엽서나 편지 한 장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당시 부모는 자녀가 20세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첫 봉급을 받을 때까지 생필품과 방값을 지원해 주면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겼다. 이런 경험을 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신들의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품안에 끼고 있다. 자녀와 함께 지내면서 내밀한 생활까지 공유하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와 같은 현대기술 덕분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이용해 자녀의 일상생활과 고민을 낱낱이 파악하고 간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녀의 연예나 결혼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청년과 몇 년째 교제를 하고 있는 딸에게 시간 낭비니 단교하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중매 사이트에 자녀의 세세한 이력과 취향까지 올려 배필을 물색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녀의 직장 생활에까지 발 벗고 나서는 부모도 적지 않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자녀의 취업인터뷰 절차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연봉 계약과 승진 문제로 직장 상사와 직접 상담을 하고, 자녀의 업무 성과까지 평가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자녀가 어린이일 때보다 부모의 역할이 더 커진 셈이다. 미국 부모의 과보호 현상은 지난 1979년, 당시 여섯 살이던 에단 파츠가 학교버스를 타러 가다가 행방불명되면서 미국 전체가 공포에 빠진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1980년대 초 미국 어린이의 학력이 세계 수준에 못 미쳐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내용의 대통령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헬리콥터 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6명 중 1명이 불안증세로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약해졌다. 부모가 병원 예약에서부터 선물 구입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일을 대신해주니 자녀는 성인이 되어도 사소한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는 아들딸이 도움 없이도 잘 지내게 되면 자신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네브래스카의 임상심리학자 제인 워렌은 “좋은 가정에서 곱게 자란 자녀들의 자립심이 더 낮은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니 독립할 이유가 없어진다. 부모들도 고분고분 잘 따라주는 자녀와 함께 살고 싶으니 독립이 반가울 리 없다. 맨해튼의 심리치료사 제리 애게이트는 “자녀가 독립하면 부모는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자녀로부터 소외된 느낌도 들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리건주립대학 리처드 세터스턴 교수와 작가인 바바라 레이는 공동 저서 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조언과 자문을 받을 뿐 아니라 동료애와 위안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 덕분에 세대 차이가 많이 좁혀지고 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와는 달리 자녀의 생각이 부모와 닮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스스로 자유로운 생활을 접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면을 감안할 때 이제는 자녀들이 21세기에 직면할 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 하는 공동 목표를 세우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음 세대가 번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 : 부모님은 몰라요 베이비붐 세대는 헌신적인 노력에도 자녀들이 무기력하고 생활을 꾸려갈 준비도 안 됐다고 낙담하고 있는 것 같다. 공포와 수치심이 뒤섞인 숨 막힐듯한 태도로 자녀를 대하는 느낌마저 준다. 밀레니얼 세대를 평가절하하는 근거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돈다. 입사 면접에까지 부모와 함께 간다는 소문이 단적인 예다. 이 이야기는 2013년 9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면접장까지 부모와 함께 가야 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인력관리회사인 아데코가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한 이 기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응답자의 8%가 입사 면접에 부모와 함께 갔고 3%는 자리를 같이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 보면 황당해진다. 차가 없는 자녀를 면접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면접장 주위에 앉아 기다린 부모의 비율을 집계한 통계를 왜곡해 큰 제목으로 기사화한 것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미국에서는 부모가 어디든 차로 데려다 주는 것은 자연스런 일상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왜곡된 점이 없지 않다. 2013년, 25~34세인 남성의 수입은 1980년 그 또래의 남성에 비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18.5%나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간 젊은 여성의 수입은 40.5%나 증가해 전체적으로 보면 그 전 세대와 수입 차이가 별로 없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하위 60%는 부모세대 때보다 재정상태가 훨씬 열악하다. 1989년, 18~34세의 젊은 성인들은 평균 3300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했으나 2013년의 그 또래는 77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학자금 융자가 빚 증가의 주요인이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과거 부모세대에 비해 더 많이 파산했냐 하면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 경우 베이비붐 세대보다 형편이 더 낫고 고등학교 이하 학력의 경우는 부모세대 때보다 수입이 훨씬 떨어지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런 자녀를 위해 옹호자, 친구, 상담사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녀와 좀 더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의 생각은 좀 다르다. 부모가 자신만의 소셜미디어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부모 집에 같이 사는 것도 밀레니얼 세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1911~1924년에 태어난 가장 위대한 세대 때는 대공항의 여파로 직업을 구하지 못해 부모와 함께 지낸 캥거루족이 더 많았다. 고용여건이 악화되고 임대료 부담이 가중되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요즘 직장 상사들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문자를 주고받느라 근무를 태만히 하지만 일일이 나무랄 수 없어 포기하고 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무 태만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징계를 하거나 해고를 하면 될 일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직 젊다.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가면서 미흡한 생활능력을 키우고 재산도 모으며 자녀도 낳아 기를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면 밀레니얼 세대도 다른 세대와 별 차이가 없다. 더 예민한 부모가 있을 뿐이다.
- 2016-06-07 09:07
-
- [취업창업] 전직성공, 앙코르 커리어에서 찾다
- 시니어 전직지원 전문 ‘앙코르 브라보노 협동조합(이사장 신창용)을 찾았다. 충정로 소재 이동교육장을 살피고 궁금한 점은 정운관 이사에게 질문하였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재동(73) 교육생에게 궁금점 몇개를 물어왔다. △참가동기와 희망은 무엇인가. “100세 장수시대라지만 50대 초반이면 은퇴가 시작되는 것이 현실이다. 7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인생 재설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터득한 귀중한 경험을 후세대와 공유하며 보람차게 살고 싶다. 청장년 일자리창출에 기여하는 창업을 하고자 한다.” 앙코르 브라보노협동조합은 2015년 10월 13일 설립하였다. 조합원 11명은 20~30년 금융, IT,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40~60대 중장년으로 구성되었다. 사회적 경제, 전직지원, 상담 및 코칭 등 협업도 전문화 되었다. △조합의 사업목적은 무엇인가? “장년 퇴직(예정)자 및 경력단절 여성에게 인생후반 수입 뿐 아니라 개인적 의미, 사회적 가치를 만족하는 앙코르 커리어를 제공하고, 사회적 경제 기업에 진정성과 지식을 갖춘 앙코르 인재를 육성, 연결하는 것이다.” △사업모델 및 상품, 서비스는 어떻게 특화되었는가? “앙코르 커리어로의 전직지원, 전직지원 코치, 상담, 전문가 양성 및 커리어 전환을 위한 컨텐츠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현장중심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조합은 2015년 사회연대은행 KDB 시니어브리지를 시작으로 신나는조합, 사회적기업진흥원, 동부여성발전센터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회적기업가 육성, 취업과 전직지원전문가 과정을 운영한다. 전직지원 성공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조합원은 열정과 시간을 가진 퇴직자가 중심이다. 신나는 조합, 사회연대은행 등 사회적 기업 중간관리기관과의 협약을 통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 전직을 연계하는 사업이 주효하다.” △교육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영리 기업에서의 오랜 경륜은 살리되 새로운 일터, 사회적 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을 지시하던 과거와 달리 많은 것을 직접 해야 하므로 자기 역량 강화에 노력하여야 한다.” 정운관 이사는 장래 계획을 “한국의 선도적 사회적 기업으로서 특히 베이비부머의 안정적인 앙코르 일거리 찾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80년 만의 초여름 더위가 대지를 달구고 있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시니어의 전직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바라며, 정운관 이사의 보충설명에 감사한다. 홈페이지: www.encorebravono.com
- 2016-06-03 17:14
-
- [IT도사 되는 법] 컴퓨터로 재취업 관문 시원하게 뚤었다
- IT도사? 필자에게 이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견 필자는 IT도사일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먹고사니 나름 IT도사 아니겠는가?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인생을 사는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은 과거의 특수한 경험이나 트라우마 같은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퇴직하면서 이 말대로 삶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살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필자는 1999년 40대 중반에 은퇴하고 인생 2막을 준비하려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3년 정도 열심히 팠는데 상담으로는 2막을 시작하기 쉽지 않았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필자는 교육받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그래서 기관마다 회원으로 가입해 교육이란 교육은 죄다 섭렵하기 시작했다. 여성능력개발원, 구청 사이트, 문화원 등등. 그리고 그중엔 고용센터에서 취업 전략으로 교통비와 식비까지 주면서 무료로 하는 강의도 있었다. 필자는 이를 통해 ‘쇼핑몰 제작과 운영과정’을 배웠다. 그 과정 안엔 포토샵, 일러스트, HTML, 플래시 등 과목이 있었다. 난 사진작가이기에 포토샵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할 줄은 몰랐고 다른 것은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처음 교육이 시작된 날 책을 보니 그 난이도가 ‘심오’ 그 자체여서 아차 싶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듣기로 했다. 첫 시간이 끝나자 필자의 뇌리에 남은 단어는 ‘멍’하고 ‘우왕좌왕’.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젊은 친구들에게 체면 불고하고 물어댔다. 그런데 문제는 40대 여성 한명도 계속 묻는다는 것. 필자보다 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짜증났겠는가? 강의실 뒤에서 짜증 섞인 소리가 들리고, 들린 듯하다. 마침 앞에 앉은 아가씨가 착해 그 아가씨를 무척이나 귀찮게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나고 나니 눈치가 보여 묻는 것을 줄이고 집에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는 그런대로 할 수 있었으나 플래시는 조금만 잘못 클릭해도 전혀 진행이 안 돼 무척 고전했다. 쇼핑몰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수업 땐 잘되다가 집에만 가면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독자 학습은 포기하고 다음 날부턴 다시 앞에 앉은 아가씨를 괴롭혔다. 밥을 사줘 가면서…. 많은 시니어는 잘못될까 봐 기계 만지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잘못되면 돌아가면 되고 잘못되면 까짓 서비스센터에 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하니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2014년 회원 가입된 여성능력개발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서울시에서 은퇴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당연히 원서를 냈고, 사진작가로서 인터넷을 할 줄 안다는 스펙으로 합격해 홍보팀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곳에서 모 기업 동우회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 이 사람을 통해 해당 동우회에서 일하게 됐다. 만약 컴퓨터를 못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동우회에서 사무자료 작성을 제대로 하려면 엑셀 능력이 필요해 퇴근 후 고용센터 내일배움카드로 학원에서 엑셀을 무료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한 덕에 사무자료 작성, 소식지 편집, 행사 사진 촬영, 홈페이지 사진 관리 및 편집을 전혀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됐다.
- 2016-06-01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