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미약한 존재지만 생각을 할 수 있으므로 그 어떤 존재보다 위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갈대처럼 가냘픈 존재이기는 하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우주를 포옹할 수도 있는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양극을 공유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이성적이
필자가 운영하는 서울시 50플러스 센터의 댄스 교실은 개설한지 1년이 지났다. 댄스스포츠 종목 중에 그간 자이브, 차차차, 룸바를 가르쳤고 이제 차차차 중급 과정에 돌입했다. 그간 거의 빠짐없이 강의를 했고 등록회원 수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가끔 공연 등 요청이 들어오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며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댄스스포츠는 남녀가 한 커플이 되어
P씨는 동네에서 같이 당구를 즐기는 사람이다. 150점을 치는데 여간해서는 지지 않는다. 기초가 탄탄해서 당구를 정확하게 치는 편이다. 150점을 넘는다는 얘기이다. 200점실력인데 150점대에서 놀다 보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충고 했다. 200점으로 올리라고 했더니 드디어 오케이 했다. 200점을 놓고도 150점대에서 자기 점수에 좀 약한 사람들을 상대
‘글을 잘 쓰는 패션 디자이너’
필자의 후반생 꿈이다.
2012년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다. 패션 디자인, 패션 모델, 발레와 왈츠 그리고 탱고 배우기, 영어회화, 서유럽 여행하기, 좋은 수필 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하기, 인문학 공부하기 등 많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주책이라는 말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놀림조로 이야기할 때는 ‘주책없다’를 써야 옳다. 그런데 요즘은 반어법(?)처럼 ‘주책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언어는 시대 상황에 따라 그렇게 변화해가는 것 같다.
주책이 없는 사람을 예로 들라면 대표적인 인물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주변에
필자에게 정기적으로 음악회에 초대하는 이가 있다. 보통 20만 원짜리 로열석이다. 몇 명을 데려 와도 좋다는데 늘 혼자 간다. 몇 번은 지인들을 초대하여 갔으나 펑크 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겨 못 간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어떤 이는 길이 너무 막혀 화가 나서 그냥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예술의 전당 앞이 늘 교통이 막히는 것은 삼척
“아파트 꼭대기층서부터 좀 찾아내려와 주실래요?”
퇴근 후 분리수거와 음식물봉지를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갔다가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어르신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하신다.
항상 출입구에 앉아 계시던 A어르신께서 병원에 다녀오신 후 타고 가실 실버카를 조카가 가지러 간 사이 어디로 가신 것이다. 항상 눈 여겨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던 분들이라 모두 여기저기로
어머니가 생전에 당신의 사진 중 괜찮은 포즈의 사진을 몇 장 인화해 서랍에 넣어두었다. 식구들이 자주 열어보는 서랍이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 하신다.
“엄마 보고 싶다고 사진 달라는 놈들이 있을까봐 몇 장 뽑아놨는데도 아무도 달라는 놈이 없다,”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포스터 문구가 참 그럴듯했다. ‘세
어떠세요?
어여쁜 여성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죠?
바로 그거예요.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은 샤넬의 재킷보다 디올의 구두보다 당신을 빛나게 합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헤어스타일이 환상적으로 아름답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행위이거든요.
이왕에 입는 거 예쁘게.
여성이 아름다우면 남성이 행복하고 남성이 행복해지면 세상이 평화로워집니다.
"나는 애란씨를 첫눈에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노래와 함께 인형극이 시작된다. 거리를 걷다 멈춰 서다를 반복하다 간이의자에 자리 잡고 앉는 시민 관객들. 서울역 고가 보행길 ‘서울로 7017’ 개장과 함께 어린이들과의 교감을 담당하기 위해 탄생한 인형극단 ‘오늘’의 공연에 구름관객이 몰렸다. 활기차고 밝은 에너지로 중무장한 시니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