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뉴욕타임스는 나리타 유스케 예일대 조교수의 과거 노인 폄하 발언에 대해 재조명했다. 2021년 나리타 교수는 한 온라인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급속한 고령 사회의 부담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에 대해 “유일한 해결책은 노인의 할복”이라 언급했다. 할복은 19세기 불명예스러운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행해진 일종의 자살 행위다. 즉, 나라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년세대에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라는 충격적 언행을 내뱉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기사에서 오토키타 슌 일본유신회 참의원의 “노인들이 연금을 너무 많이 받고 있고,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부양한다는 비판이 있다”는 발언도 함께 언급했다. 아울러 나리타 교수와 오토키타 참의원 등 “노인을 폄하하는 이들이 현실적인 정책은 제안하지 않고 고령 인구의 부담만 강조한다”고 지적하며 노인과 같은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증오가 확산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드러냈다.
나라밖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노인 비하 및 폄하 또한 공공연하게 매스컴에 등장하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발언의 정치적 휘둘림 속에 정작 대상인 노인에 대한 인권 및 인식 개선은 뒷전으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과거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미래는 2030세대의 무대다. 60~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 쉬셔도 된다”고 말한 것이 뭇매를 맞으며 보수층 노인들이 집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판세에 영향을 끼쳤을 만큼 정치인들의 노인 비하는 언급됐다 하면 순간적인 이슈가 되고, 사죄를 반복하지만 실상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묘연하다.
지난해 11월 한민수 국민의힘 의원의 노인비하 발언도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한 의원은 당시 행정사무감사에서 학교 시설물 청소원으로 일하는 고령 노동자들을 향해 “81세면 경로당도 못 간다. 이런 분이 학교 청소원으로 일하는 게 말이 되나? 81세면 돌아가실 나이다. 학교에서 일하다 돌아가시면 누가 책임지나. 학교에 80세 넘는 근무자가 있는 건 맞지 않다. 이들을 정리해야 한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이후 네티즌 및 인천평화복지연대 등 한 의원에 대한 시의원 사퇴 촉구가 이어지자, 결국 얼마 후 열린 제4차 시의회 본회의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망언과 사과가 반복되는 가운데 이달 6일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의 언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진 교수는 6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자리에서 “70세 된 분들은 얼마 있으면 돌아가신다. 언제까지 외국인 노동자와 70세들을 먹여 살리는 데 헛돈을 써야 하나”라며 노인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내뱉었다. 이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쌀농사로 생계를 잇는 농민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폄훼로 들린다”며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해명을 촉구했다. 결국 진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네티즌들은 “70이면 죽어야 하나“, ”당신도 언젠가 늙을 것이다“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편 이러한 현실에 대해 김현정 경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노인복지학회 대외홍보분과 위원장)는 "노인에 대한 비하 발언의 뿌리에는 경제적 성장이나 생산성 중심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논리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인간존중의 가치나 인권은 누군가의 어떠한 잣대로 제단되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가치를 침해 받을 수는 없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는 늙는다는 것이 사회적 위험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될 정도로 노인복지정책의 미비점이 보이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이다. 정책은 사회적 합의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러한 정치인들의 노인 비하 발언은 노인복지정책을 제자리에 머물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고령화의 급진전을 생각할 때 정책의 퇴행을 가져오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될 수 있음으로 정치인들의 노인에 대한 발언에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공간의 이용에 있어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행동한다는 ‘투명인간 증후군’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공감한다는 댓글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그런 현상들이 더 눈에 보였다. 전철 역사에 가서 10분만 앉아 있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지하에 내려갔으니 바깥처럼 건물 등 랜드 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숫자와 안내 표지판에 의지해야 하니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여지는 것이다. 적응이 좀 둔한 사람은 당황해 하고 순발력 좋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이때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날카로운 손톱에 얼굴이라도 찔릴까 봐 깜짝 놀란다.
투명인간 증후군의 또 다른 모습은 소리 통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전철 안에서나 당구장, 음식점 내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자기네들이 전세 낸 양 마구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들이 투명인간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투명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영화 모임에서 영화 감상 후 식사 겸 간단한 감상평을 돌아가며 얘기하려고 근처 유명 음식점에 갔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한 쪽에는 회사 단체 회식 팀이 있었고 한 쪽에는 아줌마들 계모임인지 동창회 모임인지 모여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 도무지 대화가 불가능해서 너무 시끄러워 그냥 나왔다.
특히 전철 옆자리에서 껌을 ‘딱딱’ 소리 내며 씹는 사람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리가 얼마나 민폐를 끼치고 있으며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이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늦은 저녁 시간에 당구장에 가보면 술 한 잔 걸치고 당구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술 한 잔 걸쳤으니 목소리가 크다. 자기네들끼리 스토로크 하나하나에 괴성이 나온다. 노래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아예 합창으로 응수하기도 한다. 여러 명이 함께 왔으니 패거리의 용기도 가세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참고 있기에는 살인 충동이 일 정도로 밉다. 그래서 어떤 당구장은 ‘음주자 출입 금지’라고 써 놓았다. 어떤 당구장은 한 테이블에서 5명 이상이 같이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구장 입장에서는 어차피 시간당 계산이라 마찬가지일 듯 싶은데 괴성과 소음이 싫은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방귀를 남발하는 노인들도 같은 증상이다. 화장 실 내에서 문 닫고 은밀히 해결해야할 일들을 공공장소에서 생리현상이라며 부끄럼 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남들에게는 안 보이고 남들이 투명인간처럼 안 보이는 모양이다. 방귀 소리까지는 참아 넘어갈 수 있지만, 지저분한 냄새는 속을 뒤집어 놓는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자동차 경적 소리도 민폐이다. 특히 대형 화물차나 버스의 경적소리는 매우 크다. 운전하는데 방해가 되는 앞차나 앞에 사람이 있는 경우에 경적을 울리는데 온 사방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이는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다. 자신이나 남을 투명 인간 취급하면 불편하다. 남에게 주는 피해는 안 보이겠지만, 반대로 당하고 나면 화가 난다. 그러면서 “선진국 되려면 아직 멀었다”며 폄하한다.
60년 만에 돌아온 무술년, 환갑을 맞이한 ‘58개띠’ 이재무(李載武·60) 시인. 음악다방에서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듣고 군대에 다녀온 뒤 청년 이재무가 만난 시는 위안과 절망을 동시에 안긴 존재였다. 자신의 20대를 무모한 소비이자 아름다운 열정의 시간이라 말하는 그는 가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얼른 노인이 되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순에 이른 그는 시를 통해 자아를 비춰보고, 지난날을 낭비케 했던 집착과 울컥으로부터의 도피를 바라고 있다.
햇수 나이로 60세에 펴낸 이재무의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에는 나이 듦에 대한 시인의 단상을 드러낸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시인의 회한은 시 ‘나는 벌써’에 잘 드러난다.
‘삼십 대 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오십 대가 되면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 사십 대가 되었을 때 나는 기획을 수정하였다 육십 대가 되면 일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애오라지 먹고노는 삶에 충실하겠다 올해 예순이 되었다 칠십까지 일하고 여생은 꽃이나 뒤적이고 나뭇가지나 희롱하는 바람으로 살아야겠다/나는 벌써 죽었거나 망해버렸다’
강렬한 시의 마지막 구절, 한탄 섞인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젊은 시절의 로망과 희망을 놓치고 살아온 것에 대한 자조적인 시인데 공감하는 이가 많더라고요. 우리 세대는 미래 때문에 현재를 유보하거나 죽이는 삶을 살아왔어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도 참고 다음에 더 여유가 생기면 먹자, 어디 여행을 가고 싶은데 지금은 갈 형편이 아니니 나중에 가자. 내일, 다음에, 미래에… 그렇게 자꾸 현재의 삶을 미뤄왔죠. 지금 보면 오늘 행복한 사람이 그냥 행복한 사람인 거예요. 내일은 또 내일의 현재를 충실히 살면 되고요. 행복한 하루가 쌓여 행복한 미래가 되는 건데, 우리는 오랫동안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런 삶은 결국 행복하지 않은데 말이죠.”
쌀 한 포대 비우듯 나이를 먹다
시인답게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다채로운 비유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인생을 두꺼운 책이라고도 표현하는 그는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기보다는 매일 그날의 행복을 만끽하며 삶의 페이지를 늘려가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충실히 더해왔음에도 쪽수(나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책의 두께를 가늠하지 못한다는 그다.
“쌀 한 포대 사면 ‘이걸 언제 다 먹지?’ 하잖아요. 의식하지 않고 먹다 보면 어느새 동이 나죠. 나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새삼 인식하고 나면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구나’ 하니까요. 하루하루는 마디게 가지만 한 달, 1년은 뭉텅뭉텅 빠지는 느낌이 들어요. 숫자를 의식하고 사는 편이 아닌데 올해가 환갑이라고 하니 나이가 실감이 나네요.”
나이 듦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가만 보면 그에게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점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계단이 내 무릎을 연주하는 기분이에요. 관절이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나이가 드니 몸의 이음새가 녹슬어 계단을 오르면 소리가 나죠. 몸무게는 자꾸 늘고, 숙면을 하기도 힘들고, 새벽잠도 줄었어요. 집에서 주도권을 빼앗겨 요새는 가사를 전담하고 있는데, 아내 목소리는 커지고 내 목소리는 작아지고. 아, 이게 늙는 건가 싶어요.”
이재무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불현듯 ‘늙는다는 건 슬픈 건가?’라는 물음이 생겨났다. 질문을 하면서도 ‘슬프지 않다’라는 답변을 슬쩍 기대했는데,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솔직한 심정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요. 그게 슬프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막연하고 초조하긴 해요. 내가 언제까지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까? 아직 크게 이룬 것도 없는데 나이만 먹는구나. 요즘은 내 아들이 부러울 정도예요. 돈이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원하는 삶을 여유롭게 즐기며 잘 살더라고요.”
건강하고 순수한 사유를 위한 움직임
그는 에세이 ‘집착으로부터의 도피’에 50대 이후 집착과 울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마음공부에 전력을 다하리라는 글을 썼다. 60대를 사는 현재, 여전히 내면의 적들과 완벽히 헤어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집착과 울컥이 내 안에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처럼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말과 글대로 삶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의식하면서 살기 때문에 조금은 진일보했겠지만, 죽을 때까지 과제로 남을 것 같아요.”
쉽지 않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걷기를 통해 내면을 다스리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고요히 명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묻자 오히려 몸을 가혹하게 해야 정신이 순수해진다고 대답했다.
“육체가 편하면 정신은 부패합니다. 몸이 한가할 때 충동적인 것, 탐욕스러운 것이 들어와 타락하기 쉽거든요. 비유적으로 말하면, 호미가 밭에서 놀아야 하는데 허청에 오래 걸려 있으면 녹슬어요. 선박도 항해를 해야 아름답지 항구에만 묶여 있으면 밑창이 썩고 구멍이 나죠. 또 가만히 있는다고 고요한 게 아니에요. 묵언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인데 속은 시끄러울 수 있잖아요. 고요는 내면까지 침묵하는 겁니다. 그게 꼭 몸의 정지를 뜻하지는 않아요. 걸으면서도 충분히 고요할 수 있죠. 방 안에 웅크리고 얻는 사유보다 움직이며 얻는 사유가 더 건강하게 빛난다고 생각해요.”
욕망하는 노인이 아름답다
이재무 시인은 무던히 걸으며 울컥과 집착을 비워내면서도 욕망의 고갈을 경계하고 있었다. 혹자는 나이 들수록 욕망은 추한 것이라 폄하하지만 그는 욕망을 갖고 사는 노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격려한다.
“나무가 늙었다고 피우는 꽃도 나이 든 건 아니잖아요. 고목이 만드는 그늘은 언제나 풋풋하고 피우는 꽃도 늘 싱싱해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인간에게 꽃은 욕망이라 생각해요. 주름 많은 몸이라고 해서 왜 욕망이 없겠어요. 태풍에 나무가 쓰러져도 살아 있는 한은 새 이파리를 피우죠. 사람도 죽을 때까지 욕망을 내려놓기 힘들어요. 욕망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욕망이 긍정적일 때 삶이 발전되고, 일상의 에너지로 작용하죠. 노인의 욕망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해요.”
때때로 자신의 세대를 향해 ‘노인’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아직은 입에 붙지 않는 듯 어색함이 묻어났다. 이른바 100세 시대, 예순에 노인이라는 말은 이르게 느껴지는 요즘 세상. 그는 압축 성장한 산업화 시대를 지나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58개띠 세대가 경계인이 됐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58개띠 친구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상징적으로 우리를 전근대·근대·탈근대가 모두 들어 있는 세대라 말하고 싶어요.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다가 기차를 타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KTX를 타고 있잖아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는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숨차도록 열심히 달려왔어요.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정체성 혼란을 느끼고 끼인 세대로 지내는 게 안타깝죠. 오늘도 각자 현장에서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가교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을 58개띠의 무궁한 삶을 기원합니다. 2018년 힘내세요!”
윤문상(59) 전 교육방송공사(EBS) 부사장은 대한민국의 숨 가쁜 교육현장을 유아교육에서부터 초·중·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담아온 현장 PD 출신이다. 그는 2016년 2월 교육방송 부사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인생 2막 계획은 6개월씩 타국에서 생활인으로 살아보기다. 이를 통해 “인생 리타이어가 아닌 리셋을 해보겠다”는 계획이다. 2016년 하반기는 대만에서 생활했고(4~10월), 2017년 상반기는 베트남에서 한국어와 언론학을 강의하며 거주할 예정이다. 마침 방학을 틈타 잠깐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퇴직 후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세우는 계획이지요. 관광이 아닌 6개월씩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기식 ‘생활 거주’는 흔치 않습니다.
“6개월씩 타국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강제적 공간 이동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됐어요. 단지 타이어를 바꿔 끼는 리타이어가 아니라 처음부터 새롭게 리셋하고 싶었어요. 의식을 바꾸기 위해선 본인의 자발적 노력뿐 아니라 공간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요. 타국 거주의 강제적(?) 환경 설정으로 리셋한 것이지요. 버스를 타는 사람은 버스 안에선 자세히 볼 수 있지만 바깥 풍경은 자세히 보지 못합니다. 달리는 버스 밖에서 보면 안은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 보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가 있었습니까?
“퇴직 후 인생 2막 하면 기존에 하던 것의 연장선으로 강도-속도만 늦추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연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30, 40년 이상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새로운 시작은 새 무대’에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익숙한 서울의 아파트 방에 앉아서 머리로만 생각을 하는 것과 말 설고 사람 설고 풍경 낯선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한국에선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반면 외국에 갔을 때는 친한 사람도 없고, 언어와 문화 등 많이 불편하지만 원점에서 시작해 나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게 되지요. 외국에서 생활인으로서 살아보니 단지 출장이나 관광으로 접하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것을 느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보게 되더군요.”
리타이어와 리셋은 어떻게 다른가요?
“리셋은 한마디로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하는 적극적, 원초적 환골탈태라고나 할까요. 리타이어가 같은 트랙에서 속도만 늦추는 소극적 의미라면 리셋은 속도와 방향, 관점 이것들을 총체적으로 합쳐 객관적으로 보자는 의미예요. 그러기 위해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한국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선 내가 잘 아는 사람, 나를 잘 아는 사람만 만나게 돼 나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힘들어요.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조직 브랜드, 계급장을 떼고 자연인으로서 자신만의 정체성, 주제 파악을 하는 것입니다.”
리셋은 의식과 환경을 함께 바꾸는 것이군요. 월화수목금금 열정적으로 일한 분들일수록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시던데요.
“하하. 군대 속담에 ‘졸병보다 제대병이 더 마른다’는 말이 있는데요. 퇴직자들에게 갑자기 시간이 주어지면 자율적 관리를 하지 못해요. 제 경우엔 마인드 세팅을 이렇게 했어요. ‘브랜드 없는 사무실에서 봉급 받지 않고 일할 뿐이다. 초조해하지도 말고, 시간에 끌려가지도 말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끌었다 놓았다 하는 여유’를 갖자고요. 현직에 있을 때는 시간에 나를 맞췄지만, 이제 나에게 시간을 맞추자고요. 여기에 환경 리셋 작업으로 ‘6개월 낯선 국가에서 살아보기ʼ를 더한 것이고요.”
‘살아보기’ 리셋 경험 국가로 베트남과 대만 등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는 한국어, 언론학을 강의하며 생활인으로서 거주 환경이 마련될 수 있는 곳을 골랐지요. 엄밀히 말해선 자기성찰뿐 아니라 세상 관찰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인생 2막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심층답사라고나 할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는데 한 템포, 아니 반 템포라도 빨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힘은 두 배가 들면서 성과는 반 토막이기 쉽습니다. 아시아에서 사업을 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호치민이라는 도시가 이런 발전 단계에 있는데 미래에는 어떻게 바뀔까, 무슨 씨앗을 뿌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에 안테나를 세우고 관찰하고 통찰해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기회와 잠재력의 나라인 탄자니아나 가나 등 아프리카 대륙으로도 가보고 싶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막상 타국에서 사실 때 생각과 생활이 많이 달랐을 것도 같습니다만…
“외국에 살아보니 일단 퇴직했다는 사실을 저절로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만에선 대학에서 언론학과 특강을 하는 한편 6개월간 랭귀지센터에서 중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과 학생 역할을 동시에 한 셈이지요. 큰 사무실, 비서와 기사 딸린 임원생활을 하다가 작은 책상에서 중국어 기초부터 배우고, 북적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내와 함께 해내야 했지요. 불편하기도 했지만 신선하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특히 젊은이들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대만을 가이드 없이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큰 소득 아닙니까. 성장과 발전이라는 불편함을 통해 익숙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아내와 동지애로 끈끈하게 뭉치게 된 것입니다. 이역만리에서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네이티브 한국인은 우리 둘밖에 없으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의논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더군요(웃음).”
윤 부사장의 지인들은 그의 성공력을 넘어 성장력의 원천으로 독서를 꼽는다. 동기들 중 차장, 부장 승진은 가장 늦었지만, 임원 승진은 제일 빨랐던 역전의 힘은 바로 독서력에서 나왔다. 낯선 것을 이질감보다는 호기심으로 수용했고 그 기저에는 책이 자리한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월급의 10%는 무조건 책 사는 데 쓰셨다면서요.
“네. 솔직히 말하면 직장생활 초년병 시절 10년간은 불평쟁이였어요. 늘 사표 던질 타이밍만 재며 불만이 가득한 채로 보냈어요. 그러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변화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는데 책이 계기가 됐어요. 당시 월급이 40만원 정도였는데 4만~5만원은 꼭 책 사는 데 썼지요. 독서에 빠지다 보니 현재의 불만을 한 걸음 뒤에서 보고, 또 한 치 더 깊이 보게 되더군요. 사고력, 판단력을 넘어 힐링의 치유력을 줬다고나 할까요. 상계동 집에서 서초동 직장까지 두 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매일매일 정거장 숫자나 세면서 가는 것이 참 지루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지하철을 도서관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독서삼매에 빠져 지하철역을 몇 정거장 후딱 넘길 때의 기쁨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친 , , 등 수백 권은 20년 동안 모두 지하철에서 읽은 책들이랍니다. 나중엔 누군가 집에 와서 다양한 책들을 보더니 ‘교수 같긴 한데 전공을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웃음).”
독서삼매에 빠졌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PD란 직업의 숙명 같아요.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상 필요에 의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 그 사람과 관련한 책을 미리 읽는 것이 기본 예의란 생각을 한 게 독서의 직접적 동기였습니다. 라는 책은 과학 관련 내용이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나 이론이 나올 때마다 그 부분을 쉽게 풀어쓴 책들을 다시 사서 읽으면서 진도를 나갔지요. 1년 뒤에 보니 관련 서적 50권 정도를 읽었더라고요. 극구 언론을 기피해 30분 내에 인터뷰를 끝내는 조건으로 겨우 인터뷰를 했던 어느 교육 전문가와 서로 좋아하는 책 관련 대화를 하다가 친해져 6시간 정도 대화를 했던 일도 있습니다. 책은 사교력뿐 아니라 판단력, 자신감도 키워주지요. 위로 올라갈수록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예측력과 큰 그림에 대한 파악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윤 부사장은 ‘독서력은 퇴직 이후에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직자들의 공통 트라우마는 ‘할 일이 사라졌다’는 목표 상실이다. 거기서 스트레스가 생긴다. 이럴 때 관심 주제를 정하고 2주 내에 관련 책 몇 권 읽기 등으로 목표 설정을 해놓으면 성취감뿐 아니라 정신건강과 목표관리에도 좋다”며 책은 시간 관리, 스트레스 관리의 해결책이자 좋은 친구라고 덧붙였다.
최근 1년 새 부모상을 잇달아 치렀다는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삶의 마지막을 미리 생각해봄으로써 남아 있는 현실을 좀 더 소중하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란 어떤 의미인가요?
“‘죽음’ 하면 먼 일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그리고 ‘임종의 사전 준비’ 하면 상조회사, 묘자리 예약 등을 퍼뜩 떠올리는데요. 진정한 죽음의 준비는 세대 간 대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할아버지)는 누구이고, 어떤 고민을 해왔으며, 이렇게 살아왔다’를 책이든 뭐든 다양한 형식을 통해 들려주고 공유하는 것이지요. 어느 학교, 어느 직장 어느 직급까지 올라갔다는 이력서 상의 궤적을 넘어 한 인간 고유의 고민, 즉 삶의 흔적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에 대한 파악부터가 필요해요. 후손이든 누구든 대화를 나누려면 스스로를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기억을 되살리고 기록을 남기는 것, 생을 마무리하는 인간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생각을 부쩍 하고 있습니다.”
존경받는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노인 하나가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생긴 것은 그만큼 지혜의 기록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반증이라고 봅니다. 주관적 기억이 아니라 객관적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우리나라가 현재의 부강한 국가가 된 것은 그냥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대, 다른 국가에게 이 무형의 자산을 무형의 기억이 아니라 유형의 기억으로 알려야 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성세대는 충분히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 18년 동안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사헌부 기록만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보다, 자신을 정확히 알리고 싶다는 강한 욕구 때문이었다”며 “일부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무시하고 폄하하는 것은 ‘잔소리만 많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은 남기지 않은 원인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인생 2막의 기준을 속도보다는 방향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하하. 네, 맞습니다. ‘거리두기’를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진짜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돌아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것은 시설이 잘된 회의실에서 하는 대규모 회의도, 큰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도 아니더군요. 의견이 맞는 사람들과 가치 있는 성과를 하나하나 이뤄간 것이었습니다. 인생 2막은 일의 규모나 외형보다는 삶의 질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습니다. 진정한 삶의 성과는 ‘어디까지 올라갔나’보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했는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점심에 만나 시작된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는 저녁시간이었다. 귀갓길, 저 멀리 있는 입간판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고, 코앞의 버스정류장 노선안내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면서 읽히지 않았다. 요즘 부쩍 심해진 원시(遠視)의 증상이었다. 예전이라면 ‘노안(老眼)’의 시그널로 심란했을 텐데 문득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이듦이란 가까이 보기보다 멀리 보기의 장점, 이점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는 한 발짝 떨어져 거리두기, 멀리 보기를 할 때 보다 더 잘 보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꽃보다 할배’ 탤런트 백일섭 씨가 갑자기 검색어 상단을 차지했다. 무슨 사연인가 찾아보니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졸혼’ 상태에 있음을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졸혼’의 뜻을 몰라 부인이 죽었나 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했다는 뜻이란다. 이혼은 아니고 결혼을 졸업하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이혼하자니 주변의 여러 관계나 자식들 문제 등 생각보다 복잡해서 호적은 놓아둔 채 서로 떨어져 살아가는 것이 말하자면 ‘졸혼’의 심오한(?) 개념이었다. 백씨는 현재 부인과 떨어져 남해 여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를 즐기며 신나게 혼자 살고 있단다. 남의 집안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떨어져 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건 노인네건 이혼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어찌 보면 ‘졸혼’이 현명한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혼이혼’이라고 문학적 수사를 곁들여 근사하게 표현하지만, 이혼이 그리 쉬운 일인가. 이혼의 사유부터 이혼하는 과정 속에 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쌓이겠는가. 배우자의 죽음보다는 덜 하지만, 이혼도 말년에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임에 틀림없다.
옛날에는 유명인의 이혼이 신문에 대서특필되곤 했지만, 요즘은 이혼이 개들도 물고 다닐 정도로 흔해빠지다보니 소리 소문 없이 이혼하고 어느 날 불쑥 ‘화려한 돌싱’이니 뭐니 하며 나타나는 일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다양한 개념의 ‘신상품’도 등장하는구나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상처 없는 이혼’이라는 브랜드로 새로운 유행이 될 조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결혼을 못 해 혼자 사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이혼하는 이들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대는 바람에 혼자 사는 것이 대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TV에서는 이미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혼자 사는 프로그램을 마구 쏟아내고 있고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용어도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우치다 타츠루라는 일본인 저술가가 쓴 를 보면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 “점점 사람들이 아이들이 되어간다.”고 진단한다. 그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 유무로 어른과 아이를 구분한다. 예컨대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이 ‘모두의 일’이기에 하지 않는다면 아이, ‘모두의 일’이므로 줍는다면 어른이다. ‘아이’가 늘어날수록 사회는 퇴화한다는 뜻이다.
경쟁 시스템의 교육 제도가 이런 ‘아이’들을 양산하고, 자본주의는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어른 없는 사회’를 부추긴다. ‘미운 우리 새끼’라는 TV 프로에서 나이가 50이 다 된 아들들이 아이처럼 노는 모습을 보며 우치다의 진단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장가가야 어른이 된다는 옛날 어른의 말씀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 한 인간으로의 책임감이 싹튼다는 말이겠다.
아무쪼록 백일섭 씨의 ‘졸혼’ 실험이 성공하길 빈다. 아무래도 이혼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므로 그들의 선택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삶이 자칫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아이’로 퇴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마음에 걸린다. 주변의 솔로들에게 빨리 중매라도 서야겠다.
◆※ 자세한 내용은 고품격 시니어 전문 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www.bravo-mylife.co.kr) 사이트와 모바일웹(m.bravo-mylife.co.kr)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1기 시니어 기자로 선정된 정운관님(56년생)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덕수상고를 나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 행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이후 한주통상과 자동차 부품회사인 세종공업 스로바키아 사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증권 등 자산관리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하십니다.
젊은 시절 은행원을 거쳐 건설회사, 종합무역상사 등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최근에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주로 노후설계 쪽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가락시장 역에서 하루 4시간씩 ‘노후진단 및 일자리 무료상담’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같은 은퇴설계 무료 활동이 벌써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활동을 하면서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과 인생의 애환을 나누고 그 분들의 살아온 과거와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신다고 합니다.
평소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기 좋아하고 늘 책과 가까이 하면서 세상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하시네요. 특히 한국 노인인력개발원과 고용사회고용진흥원과 인연을 맺고 전문 상담원으로 활동하면서 직업 상담 및 일자리 상담이 왜 필요하고 그분들을 위해 제가 하는 일이 왜 보람된 일인지를 늘 깨닫고 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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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가락시장역에서 무료상담을 시작한지도 벌써 3개월째로 접어든다. 오고 가는 많은 바쁜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200여명인 되는 분들과 인생의 애환을 나누고 그 분들의 살아온 과거와 살아갈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하고있는 이 일이 과거 직업세계에서 열심히 일할 때와는 또 다른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일하고 있는 부스의 안내 간판에는 ‘노후진단 및 일자리 상담’ 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간판을 내 건 주최측은 ‘노후진단을 주로 하되 부수적으로 무료 직업 상담을 한다’ 는 의도로 이번 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료상담을 준비한 주최측에서도 노후진단 상담사 3명에 직업상담사 1명을 1개 팀으로 편성했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손해보험협회 등 7개 기관은 지난 달 6일부터 서울지하철 8개 역사에서 ‘노후설계 및 일자리 상담센터’를 설치, 오가는 시민들의 노후준비를 진단하고 노후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상담센터를 찾는 시민들은 우선 10분 정도 걸리는 노후준비진단지를 작성하게 된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노후준비진단지는 △사회적관계 △건강한 생활습관 △소득과 자산 △여가활동 등 네 영역에 걸쳐 50개 선택지 문항으로 구성됐다.
내담자는 진단을 통해 자신의 노후준비지표와 건강, 여가 등 4가지 영역별 준비유형과 간단한 노후준비방법을 알 수 있다. 건강이 염려되는 유형으로 진단되면 그에 따른 건강관리, 식습관과 건강검진 등을 안내받는 식이다.
노후설계 상담은 지난 12월부터 시작해 오는 2월 말까지 진행되는 한시적인 서비스로, 현재 서울 지하철 5호선 구간 8개역(가락시장, 가산디지털단지, 강동, 여의도, 영등포구청, 왕십리, 종로3가, 충정로)에 상담센터가 운영 중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상은 첫날부터 어김 없이 빗나갔다. 지금까지 상담부스를 찾아와 상담신청을 한 사람들 약 300여명 가운데 노후진단이 궁금하다고 하신 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여기서 일자리 알선해 주나요?”라고 물어 오신다. 원하시는 대로 일자리 상담을 해 드리고 나서 눈치를 보아 가면서 노후진단 서비스에 대해 설명할라치면 70%는 사절이다. 어떤 이는 ”나는 노후준비를 잘 해 놓았으니 필요 없다” 고 하시고 어떤 이는 “오늘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노후 준비는 무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부에서도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 부머들과 선진국 대비 절대로 부족한 노후 연금 수준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서 노후진단 매뉴얼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고 개개인이 직접 진단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주최측에서는 노후진단 활동을 통해 이 사업을 홍보도 하고, 가급적 많은 분들이 이 진단 사업에 참여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대한민국 노후진단 실태를 파악할 수 있게 끔 하는 목적으로 상담부스를 운영해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홍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겠지만 일부 관심 있는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언론은 물론 일반인들도 노후진단이나 노후 준비 같은 단어들을 생소하게 여기고 있다. 매일 매일 자질구레한 정치 이슈에만 모든 방송들이 매몰되어 있다고나 할까. 시청자들이 지방선거에서 누가 출마하고 누가 당선되는지가 자신의 노후 준비보다 10배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가다 일부 언론에서 베이비부머가 어떻다 혹은 생계형 창업자 도산이 사회적 문제다 등 노후준비 없이 사회에서 퇴출당한 실버세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실버세대는 산업화 시대에 국가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한 자신들이 소외되고 있고, 반면 100세 시대라는 마냥 즐겁지만 않은 장수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TV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전문 패널이라는 분들도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진정으로 그들이 보고 싶어서 본 것을 솔직하게 의견 표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실이나 양심과는 관계 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따라서 그러한 방송을 하루, 한 달 혹은 1년을 보더라도 시청자들은 결국 자기가 몰랐던 것에 대한 정보 취득 및 이해력 향상에는 방송 시청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고정관념만 강화되는 결과만 가져 올 수도 있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서 정부와 언론의 획기적인 지원이 없이는 창조 경제가 무엇이고 노후설계를 왜 해야 되는지를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것이 대부분의 민초들이니, 부스에 나와 있는 상담사 몇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시니어들이 많이 시청하는 낮 시간이라도 노후 설계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넣어 많은 실버세대들이 무의식 중 에라도 ‘노후설계를 해야 하겠다’ 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사회 안전망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국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 시니어들 중 일부 선각자들은 자신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고, 걱정한 만큼 준비도 하고 그야말로 액티브한 노후 생활은 즐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와 상담한 많은 분들은 보고 싶은 ‘일자리’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디 경비 자리라도..."하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노년층이 경비를 하는 것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내가 왜 경비를 선호하는지, 경비를 해 수입이 생기면 어떻게 노후 생활을 할 것 인지까지 같이 고민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에서 이다.
가락시장역에서 청소를 하시는 김선생 이라는 분이 있다. 상담을 시작한지 며칠도 되지 않아 내담자로 찾아와 노후진단을 하시고 간 특이한 분이다. 김선생은 아침 일찍 출근해 역사 내 곳곳을 청소하고 일과를 마치면 오후에는 매일 친구들과 남한산성을 등산하면서 “그날 하루 있었던 많은 일들을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고 함으로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했다. 매일 등산하는 것 이상의 특별한 건강관리는 그 분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 같지도 않다. 김선생은 많은 수입이 아니었지만 젏은 시절부터 각종 연금을 부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개인연금까지 수령하기 때문에 적어도 부부 둘이 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랑하셨다.
진단결과도 양호했지만 이후에도 부스 앞을 지나갈 때면 상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밝은 미소를 보여 주시는 김선생이 어쩌면 필자가 생각하는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는 진정한 액티브 시니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이런 김선생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고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살펴 모든 사람들이 노후 설계를 하고, 설계된 대로의 안락한 생활을 하며 노후 생활을 즐기는 사회가 진정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