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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하다! 빨강을 입힌 대지미술
- 산수미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강원도 영월군이다. 서린 역사와 보유한 유적은 또 어떻고? 그저 심심풀이로 여행을 갔다가도 오감 만족으로 기억에 새겨지는 곳이다. 박물관, 문화 공간, 전시장의 합이 자그마치 20여 개이니 말 다 했다. 2019년에 개관한 미술관 ‘젊은달 와이파크’는 개중 등등한 기세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주말이면 수백 명의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벌어진 이변이다. 영월 변방 주천면 언덕배기에 있다. ‘젊은달 와이파크’에서 맨 먼저 만나는 건 입구를 이룬 설치작품 ‘붉은 대나무’다. 빨간 페인트를 입힌 수백 개의 기다란 강철 파이프로 작은 대나무 숲을 연출했다. 말이 대나무 숲이지 저만치서 보면 길길이 치솟는 불길을 연상시킨다. 빨강은 열정과 절정의 상징색이다. 욕망과 유혹과 혁명의 표식이기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엄습해 교감신경을 일깨우며 심리적 침체를 털어내게 한다. 그렇다면 ‘붉은 대나무’ 입구를 들어서며 가슴을 빨강으로 물들여 기분을 기차게 돋우라는 권유? 미술관에 차려진 성찬을 포식하기 전에 입맛을 다시라는 애피타이저? 담긴 뜻이 한둘이 아닐 테다. ‘붉은 대나무’를 만든 이는 대지미술을 추구하는 조각가 최옥영이다. 강릉 정동진에 대형 미술관 ‘하슬라아트월드’를 세워 명소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내친김에 ‘젊은달 와이파크’를 2차로 설립해 다시 한번 실력을 입증했다. 빨간색은 최옥영의 시그니처 컬러다. ‘붉은 대나무’만이 아니라 미술관의 거대한 파빌리온(가설 건축물)에도 통째 빨강 물감을 쏟아부었다. 파란 하늘, 초록 산야, 그리고 빨강의 선명한 색채 대비가 주는 감흥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라는 뜻에서다. 미술관 본관으로 향하는 야외 동선을 따라 걷는다. 미지근한 일상에서 벗어난 쾌감이 오롯하다. 불면증과 우울증이 서식하는 도시의 권태를 잠시나마 멀리에 뒀으니 이게 어딘가? 미술관 외벽을 이룬 산과 하늘의 표정은 잡티 없이 해맑아 순수하다. 완벽한 회화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이 그리는 미술을 사람의 예술과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이 미술관이 지닌 미덕이다. 외부의 자연과 수시로 조우할 수 있도록 건축과 공간을 개방적으로 구성했다. 본관 로비로 들어서자 커피 향이 그윽하다. 매표소를 겸한 카페 공간이다. 미술관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길모퉁이 작은 찻집에서처럼 농밀한 운치를 즐긴다. 시스템 전환이랄까? 요즘 미술관들은 필수 부속처럼 카페를 운영한다. 미술과 커피의 조합이 거두는 효율이 커서다. 미술관은 커피를 팔고 관람객은 한 줌의 낭만을 산다. 커피 한잔과 내 인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커피를 혀로 굴리며 예술을 생각해보는 잠깐의 휴식은 비루한 삶을 잊게 한다. 일러 ‘소확행’이다. 상상력을 돋우는 ‘목성’ 카페에서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거대한 돔 안으로 들어선다. 철골빔 뼈대에 일정한 크기로 빠갠 소나무들을 굴비 두름처럼 촘촘히 엮어 쌓은 돔이다. 이 미술관의 설치작품 대부분은 최옥영의 생산물. 대형 나무 돔 역시 그렇다. 타이틀은 ‘목성’(木星)이다. 작가는 우주에 사는 목성이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린 이벤트를 상정했나? 그는 나무 무더기를 무수히 쌓아 동굴을 닮은 설치를 하고서 목성을 보라 한다. 광폭의 감성 사이즈로 우주를 느끼라 한다. 그렇다면 ‘목성’은 우주의 축약이며, 신과 우주를 향한 외경을 표출한 고대 로마의 판테온처럼 신성하다. 최옥영의 창작 변을 간추리면 이렇다. ‘무한의 영역인 우주를, 상상의 우주를 조각적 형태로 만들었다. 이는 생명의 분화구를 상징한다. 원초적인 힘과 사랑, 그리고 우주적 활력을 돔 안에 쏟아냈다.’ ‘목성’은 대작이다. 높이 15m, 지름 12m에 달하는 원형 구조물이다. 꼭대기엔 휑하게 구멍을 내 하늘을 보게 했다. 늘 거기에 있는 일상의 하늘과 돔의 구멍을 통해 올려다보는 하늘은 달라 상상력을 돋운다. 내가 하늘 아래 존재하는, 또는 하늘과 공존하는 썩 의미 있는 생명체임을 자각하게 한다. 구멍으로 쏟아지는 빛과 나뭇더미 틈새로 들이치는 빛살 역시 일상의 빛을 바라볼 때와 달라 유심히 반추하게 한다. 작가의 의도를 따라 읽자면, 저 빛들의 산란은 우주적 쇼다. 우리가 늘 눈에 달고 사는 빛의 출처가 무한 우주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급기야 나 역시 우주에 동참한 하나의 소우주임을 느끼게 한다. ‘목성’을 뒤로하고 이제 오만 가지 조화(造花)를 오브제로 삼은 설치작품 ‘시간의 거울-신사임당이 걷던 길’과 만난다. 박신정(그레이스 박)의 작품이다.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방기한 시대를 살았던 신사임당의 삶과 내면을 칡넝쿨과 꽃, 그리고 거울을 설치해 조형했다.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은 꽃들의 퍼포먼스에 기뻐 팔짝팔짝 뛰며 인증샷을 찍는다. 박신정은 최옥영의 부인으로 ‘젊은달 와이파크’의 관장이다. 화가 부부의 협연으로 미술관을 구축, 공간 곳곳에 선율과 리듬을 부여한 셈이다. 이곳엔 원래 ‘술샘박물관’이 있었다. 주천면의 유별한 술 문화와 양조 역사를 홍보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운영이 신통치 않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버려지다시피 한 걸 박신정 부부가 미술관으로 살려냈다. 술 박물관이 시들고 미술관이 꽃 핀 것. 미술관이 생동하면서 숨이 넘어가던 술 박물관도 회생했다. 다시 말해 미술관이 술 박물관을 옆구리에 끼고 동행한다. ‘젊은달 와이파크’의 주조음을 탄주하는 건 어디까지나 최옥영의 작품들이다. 재생타이어 수백 개로 만든 ‘블랙 드래건’, 쓸모를 잃은 널빤지들을 조형해 별의 원초적 에너지를 은유한 ‘우주정원’, 금속 재료로 회오리치는 바람기둥을 만들어 승천하는 용을 상징한 ‘실버 드래건’ 등 다수의 설치작품이 스케일과 볼륨을 과시한다. 그렇다고 난해하지 않다. 뭐가 뭔지 모를 관념의 카오스로 애먼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달라 감정이입이 쉽다. 최옥영이 구현하는 대지미술이 자연주의의 계보라는 걸 고려하면 작품 이해가 더 쉽다. 재미있는 미술관이란? 어디서 도무지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는 미술관? 그렇다면 이 미술관이다. 공간 구성의 핵을 이룬 작품 ‘레드 파빌리온’을 보라. 철제빔과 철판, 쇠 파이프만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온통 빨강을 칠해 야릇한 미감을 구현했다. 미술관의 랜드마크다. 이 흥미로운 구조물은 전시장이자 통로다. 공중에 걸쳐진 통로 바닥은 숭숭 구멍 뚫린 철판이라 마치 허공을 걷는 듯 묘한 느낌을 준다. 붉은 창살 밖으로는 푸른 자연이 환히 보여 작가의 의도가 비친다. 그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하늘, 산, 들판, 마을, 허공에 부유하는 미세먼지,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 우주를 이루는 미립자라는 걸.
- 2022-03-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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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성별로 알아보는 갱년기Q&A
- 여성 갱년기 Q&A 폐경을 늦추는 방법은? 흔히 알려진 방법으로 석류, 칡 등 유사 여성 호르몬 성분이 많은 식품의 섭취와 골반 근육을 강화하는 케겔 운동, 주기적인 성생활 등이 있다. 다만 폐경을 전후해 나타나기 쉬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는 일부 도움을 주지만, 폐경 시기를 결정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여성 호르몬이 많이 함유된 식품은? 석류, 칡, 대두가 대표적이다. 석류는 피토에스트로겐이 많아서 갱년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칡은 여성 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 풍부한 식품이지만, 장기복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두 속 엽산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해 우울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 다만 이 식품들이 모든 여성에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며, 무작정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방법은? 평소 소화에 문제가 없다면 잠자기 전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꿀을 타서 마시면 좋다. 우유에 있는 트립토판 성분이 숙면을 도와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 꿀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 해소에 탁월하다. 카모마일 차도 신경 이완 효과가 있어 자기 전에 따뜻하게 마시면 도움이 된다. 폐경이 가까워도 피임을 해야 할까?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기간이 달라진다. 대한폐경학회에 따르면 50세 이상이며 1년간 생리를 하지 않았다면 1년간은 계속 피임을 해야 하고, 50세 미만으로 1년간 생리를 하지 않았다면 2년간 피임을 하라고 권고한다. 폐경 전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고 있거나 생리가 불규칙해도 피임은 필요하다. 남성 갱년기 Q&A 항상 피곤한 이유는? 특히 늦은 오후에 피로를 느끼는 것은 전형적인 남성 갱년기 전조 증상 중 하나다. 테스토스테론의 결핍이 일으키는 현상이다. 운동 후나 식사 후에 피곤함을 느끼면 이 호르몬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반면 아침에 피로가 느껴진다면 코르티솔이나 갑상샘 호르몬이 결핍된 증후다. 아침에 발기가 되지 않는 이유는? 아침에 발기가 안 된다면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부족하다는 신호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아침 발기가 없는 상태를 1년 이상 놔두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치료 효과를 보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이 들수록 머리가 빠지는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DHT를 만드는 효소는 더 활성화된다. DHT는 모근을 자극해 탈모를 유발한다. 유전성이 강해 탈모 유전자를 가진 남성에게만 탈모가 일어난다. DHT 과다 생성을 부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물질이 있지만, 성욕이나 성적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배가 나오는 이유는? 남성의 뱃살은 여성의 엉덩이와 같다. 내장지방이 축적되면서 생기는 결과다. 지방을 연소하는 데 가장 좋은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면서 발생한다. 내장지방은 당뇨병,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서 특히 위험하다. 근육이 줄어들고 탄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주로 엉덩이, 장딴지 등 근육과 요추에서 근육 손실이 많이 일어난다.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을 충분히 마시고, 단백질이 많은 고기나 생선을 먹는 것이 좋다. 적어도 하루에 5000보 이상씩 걷는 걸 추천한다.
- 2021-02-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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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교향악을 울리는 등칡!
- 세월이 참 쏜살같습니다. 화창한 봄 가곡 ‘동무 생각’을 부르던 누이들 얼굴엔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파이고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들이 되었습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들녘을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설익은 앵두처럼 풋풋했던 황혼의 누이들이 가만가만 속삭입니다.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 유자효의 시 ‘인생’ 중에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온 산이 풀빛으로 물들어가는 강원도 삼척의 고갯길을 지나다 갑자기 들려오는 웅장한 교향악 소리에 멈춰 섰습니다. 그 옛날 누이들이 입을 모아 합창하던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환청을 들었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관악기가 봄날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한 천상의 교향악을 들었습니다. 숱한 수가 한꺼번에 울리니 그 소리는 산과 계곡을 압도합니다. 숲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주인공은 바로 유별난 생김새를 무기로 단번에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등칡의 꽃입니다. 나뭇가지를 휘감으며 최대 10m까지 길게 뻗는 줄기뿐만 아니라 10~26cm로 제법 큰 데다 하늘을 뒤덮을 듯 풍성하게 나는 심장형 잎이 칡을 빼닮았고, 무성한 가지마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송이를 숱하게 늘어뜨린 것이 등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등칡이라 불리는 덩굴식물입니다. 그런데 누에고치 집을 U자형으로 구부려 놓은 듯한 길이 10㎝ 안팎의 꽃이 참 독특하니 매력적입니다. 4~5월에 피는 꽃의 구조는 단순해, 지름 18㎜ 정도인 꼬부라진 통부(筒部)와 3개로 갈라진 꽃가장자리로 되어 있습니다. 꽃 색은 다소 평범해 통부 입구의 꽃가장자리는 연한 노란색, 통부는 밝은 연녹색, 안쪽 중앙부는 연갈색이며, 밑에는 검은 자주색, 윗부분엔 보랏빛의 갈색 반점이 있는 등 전체적으로 황록색을 띱니다. 하지만 꽃 모양은 오묘해서 대개는 “앗, 색소폰을 닮았네”라는 첫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한술 더 떠 통부를 옆에서 보면 남성의 상징을, 정면에서 보면 여성의 국부를 연상하게 된다며 “애들은 가라”라는 우스갯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선에 대해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꽃은 곱건 밉건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꽃 색이 대부분 황색인 것은 수분을 돕는 꿀벌 등 곤충이 가장 잘 식별하는 색이 황색이기 때문이다.” 꽃 구조가 야릇해 마주보기가 민망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말이겠지요. 실제 등칡의 생식기관인 꽃 안으로 벌이나 파리가 일단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새끼손가락만 한 통부 안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잔뜩 옮겨 수분을 돕게 된다고 합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중국 및 극동 러시아, 그리고 함경북도에서 강원도까지 분포한다. 강원도 이북에서 많이 자란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남으로 경북 청송의 주왕산, 경남 거제도까지 개체 수는 많지 않지만, 널리 분포한다. 서울 등 수도권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은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화천의 경계에 있는 화악산. 강원도 삼척 일대 계곡과 너덜지대에서는 등칡의 꽃이 줄줄이 달려 천상의 교향악을 울리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울산의 재약산에선 수령 300년 된 노거수 등칡 2그루가 발견되기도 했다.
- 2020-04-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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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거리, 쇠막, 씨부게, 애기구덕, 남태...”
- 제주도 옛날 농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제주전통농가전시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현장이다. 제주감귤박물관 본관 2층에 설치되어 있다. 제주도 전통농가의 옛 모습과 삶의 지혜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요즘 제주도 젊은이들도 잘 모르는 특이한 명칭들이 많다. 제주전통농가의 옛 모습 제주민속자료 제3호인 제주전통 초가 세 채와 정낭, 통시(전통화장실), 우영밭(텃밭) 등 제주농가 전체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옛 농가 전체를 실내에 조성했다. 제주 농업과 제주전통농가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용어 자체가 제주도의 전통과 특성에 맞게 붙여진 것이 많다. 사람들이 주로 살았던 집을 "안거리"라고 한다. 안채의 방언이다. 안거리 옆에 별도로 지은 작은 집을 “밖거리”라고 한다. 바깥채의 방언이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모두 진흙을 발라 지은 초가집으로 안거리는 살림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집으로 사용하였다. 밖거리는 주로 부엌으로 이용하여 부엌에서 밥을 지어 먹을 때는 안거리에서 먹었으며 남은 공간은 마늘과 고추 등 농산물을 걸어놓고 말리고 그 외에 농산물과 농기계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하였다. '쇠막'은 외양간의 방언으로 소와 말을 기르는 곳이다. 옛날에는 말이나 소가 농사를 지을 때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집 가까이 두고 정성껏 보살폈다. 말은 수레를 끌거나 직접 타는 교통수단이었고 소는 쟁기를 매어 밭을 가는 역할을 했다. '통시'는 대소변을 보는 곳과 돼지를 가두어 기르는 곳을 하나로 합쳐서 돌담을 쌓아 만든 주거공간이다. 옛날 제주의 민가들이 사는 입구의 올레에는 '정주석'을 세우고 '정낭'을 걸쳐서 대문 역할을 했다. 정낭은 인적 정보를 이웃에게 알리는 제주가 갖고 있는 특유의 생활 풍습이었다. 정주석에 3개의 구멍을 뚫어 나무로 만든 정낭을 걸쳐서 소나 말의 출입을 막고 집주인의 외출을 이웃에게 알렸다. '장항'은 장을 담는 항아리이고 '장독대'에는 늘 여러 개의 장항이 놓여 있었다. 제주에서는 탈곡하기 전의 농작물을 단으로 묶어 쌓아두거나 탈곡하고 난 짚을 낟가리로 씌워 쌓아 놓은 것을 "눌"이라고 하고 눌을 쌓기 위한 공간을 “눌굽” 또는 “눌왓”이라고 했다. '우엉'은 텃밭을 말하고 '물허벅'은 물을 길러 나르는 물항아리다. '물구덕'은 물을 길어 다닐 때 등에 지고 다녔던 정방형 모양의 대바구니다. '물팡'은 물허벅을 지고 다니다 내려놓는 곳을 말한다. 제주전통농가의 삶의 지혜 농사를 지을 때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한 모습을 전통 농기구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애기구덕'은 아기를 좌우로 흔들면서 재우는 데 사용하였던 구덕이다. 말과 되는 곡식을 측정하던 기구이며 '도고리'는 가축의 먹이를 주는 그릇으로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대패랭이'는 대나무로 만든 패랭이이다. 갓과 비슷한 형태로 '이대'라는 대나무의 한종류로 만들어지는 데 '이대'는 제주지역 어디에서나 군락을 지어 자생하며 바닷가에서 소금바람을 견뎌내며 자라서 좀이 슬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 장점이 있다. 농부들이 무더운 여름날 밭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사용하였다. 덩드렁마께'는 나무 방망이이다. 나무 토막으로 만든 투박한 방망이로 짚이나 칡을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다. 빨래를 할 때 두들겨 물을 뺄 때도 쓰인다. '남방애'는 남방아라고도 하며 제주도에만 있는 것으로 큰 나무를 파고 그 안에서 곡식을 찍는 부분인 돌로 만든 절구다. 나무로 만든 방아라는 뜻이다. '맷방석'은 고래방석이라고도 하며 고래할 때 밑에 깔아서 이용했다. '고래'는 맷돌을 돌리는 기구로 맷돌을 돌리는 것을 고래곤다라고 한다. 메밀 등 마른 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이다. '푸는 체'는 곡식에 섞인 겨 따위를 걸러내는 도구이다. 바람을 일으켜 죽정이나 겨를 내쫓는 데 사용했다. '도깨'는 도리깨의 방언으로 콩, 보리 등 곡식을 두둘겨서 알갱이를 털어 내는 데 쓰이는 연장이다. '홀태'는 촘촘한 날 사이에 벼, 보리, 밀 따위의 이삭을 넣고 훓어내어 낱알을 터는 농기구다. “골갱이”는 제주의 농기구 중 가장 작으면서도 대표적인 도구이다. 손에 쉽게 휴대하여 잡초 등을 제거하고 종자를 심을 때 사용한다. '호미'는 풀, 나무, 곡식의 대 등을 베어내는 데 쓰는 낫이다. '남태'는 흙덩이를 고르거나 씨가 날리지 않도록 땅을 다지는 데 쓰는 나무로 만든 기구다. '씨부게'와 씨부게기는 짚으로 만들어 씨앗을 보관하는 주머니로 주둥이를 좁게 만들어 쥐나 벌레로부터 피해를 막는 씨앗주머니다. '곰배'는 곰방애라고도 하며 흙덩이를 깨뜨리거나 골을 다듬으며 씨를 뿌린 뒤에 흙을 고르는 데 쓰는 기구다. '쇠멍에'는 말이나 소가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목에 거는 막대를 말한다. 지금 사용하는 현대식 농기구는 대부분 과거 전통농가에서 사용했던 기구들을 발전시킨 것들이다. 전통 농기구들이 잘 보관되어 더욱 잘 활용되길 기원한다.
- 2020-02-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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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똥망태’ 지혜 되살려 쓰레기 줄였으면
- 개똥망태의 사전적 의미는 개똥을 주워 담는 망태기다. 개똥뿐만 아니라 쇠똥, 말똥 등을 주워 담기 위해 볏짚으로 만든 망태기를 말한다. 전라도에서는 개똥끄렁지나 개똥끄랭이라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그냥 망태기라고 한다.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칡덩굴이나 억새, 볏짚 등을 이용하여 둥그렇게 통으로 짰다. 거름이 귀하던 시절에 거름 역할을 하던 개똥을 수집하는 도구에서 점차 농작물, 농기구 등을 간편하게 넣거나 운반하는 데도 사용됐다. 손으로 직접 짰다. 1970년대 이전에 시골에서는 개똥망태를 들고 다니거나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가방 대용도 했다. 농촌에서 일할 때는 망태를 메고 다니는 게 일반화 돼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농촌에서도 점차 사라져갔다. 옛날 농촌에서 못자리 밑거름을 수집하는 일은 노인네 몫이었다. 노인들이 망태기를 메고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개똥과 쇠똥을 모아서 그것을 거름으로 사용했다. 과거에는 못 살아서 쓰레기가 없었다기보다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정신이 살아 있던 덕으로 쓰레기가 적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절약 정신이 개똥망태 속에 녹아있는 셈이다. 옛날의 개똥망태의 지혜를 되살린다면 재활용해서 쓰지 못할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요즘 우리는 쓰레기와 전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음식물쓰레기는 너무 많이 나와 연간 발생되는 음식물쓰레기는 대략 500만 톤을 넘어서고 처리 비용도 8000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심각한 상황이다. 살아가면서 무엇이든지 재활용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개똥망태의 지혜를 되살렸으면 한다.
- 2020-02-1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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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야초 전문가 전문희와 다담(茶談)하다
- 현미와 섞인 녹차 티백이 ‘녹차’로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동네 빵집에 가도 로즈메리부터 재스민, 루이보스 등 다양한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야흐로 기호식품의 시대, 다반사(茶飯事)의 전성기다. 그러나 이 많은 차 중에 우리 차의 향과 맛을 지닌 게 얼마나 될까. 30여 년 전 지리산에 들어가 산야초를 공부하며 우리 차의 고유한 향취를 개발하고 전파하는 데 매진한 전문희(57) 씨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것이다. 지리산 산청에서 만난 차의 달인에게 우리 차와 차 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차 문화의 새로운 전기가 열리는 분위기다. 지자체마다 차와 관련한 행사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고 사람들도 좋은 차를 찾아 여기저기 물색하고 다닌다. 시니어 세대의 문화가 점점 고급화, 다양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차를 마신다는 의미 그런데 다도(茶道)라 하면 사람들은 일본을, 그리고 차의 원산지라 하면 중국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차 대신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신다. 이런 와중에 우리 차의 미학을 찾아 보급하는 데 삶을 바친 사람이 있다. 바로 산야초 전문가 전문희 씨. 그녀가 우리 차의 우수성과 차 문화를 제대로 전파하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간 지 벌써 30여 년이 된다. 요즘도 그녀는 전국 각지에서 알음알음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산야초 차의 깊은 맛과 멋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산야초 차란 어떤 차일까? 그녀는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바로 ‘산야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꿔 부르게 된 이유를 “약초는 아픈 사람이나 먹는 약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다도’라는 말보다는 ‘다담’(茶談)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이 차는 어디에 좋은가요?” 전문희 씨가 ‘건강을 위한 산야초 연구회’를 이끌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녀에게 이러한 질문은, 몸에 좋은 것은 일단 먹고 보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에서 나온 조급증으로 다가온다. 약도 아닌 차 한 잔 마신다고 당장 몸에 어떤 효험이 나타난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무조건 몸에 좋다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싶어 나름 답변을 준비해놨다. “인간의 몸은 콩나물시루와 같습니다. 위에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밑으로 다 빠져나가고 남는 게 없죠. 그러나 보십시오. 콩나물은 자라 올라오지 않습니까? 차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차를 마시면 당장은 다 오줌으로 빠져나가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 오줌과 함께 우리 몸에 있는 노폐물도 배출이 돼요. 그리고 피는 그만큼 깨끗해집니다. 피가 깨끗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뿐하죠. 이것을 생활화해야만 우리 몸은 병균이 서식할 수 없는 건강한 상태가 유지됩니다.” 좋은 차를 마신다는 것 전 씨는 식물마다 약성과 성질이 다르므로 자기 체질을 확실히 알고 그에 맞는 차를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깊이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니 처음 접하는 이는 일단 동글동글하게 가는 것이 맞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혈액순환이 잘되면 피부가 좋아지고 얼굴이 맑아져서 노화가 덜 와요. 그러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표정이 예뻐지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거죠. 차를 마신다는 건 내 마음을 맑게 하는 것과 같아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차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차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이끈다”는 그녀의 말이 와 닿았다. 그런데 다도의 정신처럼 느껴지는 이 설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도라 할 때 떠올리는 격식과 절차와는 거리가 있었다. 아니, 되레 그런 것들에 대한 반박에 가까웠다. “누구나 다반사로 숭늉 마시듯 하라” “좋은 차를 마시면 스스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 차를 마시면 소통이 없을 수 없겠지요. 차 맛은 그 차가 내게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어떻게 만든 것인지, 누구와 함께하는지, 마실 때의 분위기와 기분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전 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도라고 할 때 치르는 복잡한 과정들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소위 차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소모하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차가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에 담긴 역설과 일맥상통한다. 원래 다반사라는 단어는 한자 뜻대로 ‘차 마시듯이 늘 있는 예삿일’을 말한다. 과거에는 그런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차 마시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나마 남은 차 문화는 중국 차와 커피가 잠식한 우리네 차 문화의 현실이 안타깝단다. 그래서 그녀는 번잡함과 불필요한 의식을 치우고 어떤 수단으로든 좋은 차를 가까이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너무 바빠서 차 생활에 몰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텀블러도 좋고 담을 용기라도 좋아요. 차를 우려서 들고 다니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차인이 아닙니다. 차 생활의 일상화가 중요해요. 하루에 물을 2ℓ씩 마셔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 수분 보충을 차로 한다고 생각하면 삶이 바뀔 거예요. 찻물의 빛깔을 바라보고 차 향을 맡으며 차 맛을 혀끝에서 음미할 때 우리는 하루의 피로에서 놓여나고 마음의 평안함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릇을 따지고 격식을 차리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는 육체의 피로와 함께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피로해소제보다 차 마시기를 권한다. “다도는 예의와 격식을 상당히 중시하지요. 하지만 차를 그렇게 어렵게 마실 필요는 없어요. 편안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다담 문화’가 더 보편적이고 서민적이지요. 너무 격식 따지지 말고 깊은 산에서 나는 깨끗한 산야초를 차로 달여서 그냥 물 마시듯 자주 마시면 건강에 좋아요.” 자연에서 채취한 차가 좋은 차 차를 생활화하는 것은 멋도 중요하지만 멋은 나중 일이라는 그녀의 차 문화관은 실학적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내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게 우선이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설명이었다. 사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그녀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녀가 지리산에서 살게 된 것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됐다. 젊은 시절 통기타 가수, 모델, 인테리어 사업가로 활동하던 중 어머니가 암 말기 선고를 받자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리고 직접 채취한 각종 산야초로 자연치료법과 한방요법을 병행해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머니를 3년 넘게 병구완했다. “차를 마시면 자연에 대한 감사함이 저절로 든다”는 그녀의 철학은 철저히 체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었다. “차를 마신다는 건 약성과 각종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 물질을 섭취하는 겁니다. 그러니 차에서 제초제나 농약 잔류물이 나오면 안 되는 게 당연하죠.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어야 좋은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 좋은 차를 잘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차라면 무조건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인스턴트 차만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산야초 문화의 최전선에서 수십 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현실이다. “제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지리산에 머물러 산야초 대중화에 투신한 참뜻에는 ‘중국 차와 커피를 덜 마시자’는 의미가 있어요.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자는 거죠. 너무 커피만 마셔대는 문화는 우려스러워요. 그러나 하루에 커피는 한두 잔 마시되, 나머지 수분 보충은 우리 차로 하자. 그렇게 질 좋은 수분 섭취를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차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전 씨가 우리 차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차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는 병을 고치는 도구이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주체는 오롯이 자기 자신이다. “평소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차를 마셔 당장 몸이 좋아져 무슨 병이 낫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생활은 건강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이어가면서 차만으로 건강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 역시 지나친 욕심이고요. 차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녀가 일궈낸 ‘백초차’가 있다. 백초차는 말 그대로 100가지 산야초로 만든 차다. 오염이 없는 청정하고 깊은 산중에서 채취한 새순만을 녹차 같은 방법으로 덖어서 만든다. 100가지 식물의 약성이 섞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분이 상승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혹시 그중 어느 식물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독성을 중화하는 작용도 한다고 한다. 100여 가지 새순으로 만는 ‘백초차’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선생은 “그녀가 정성들여 만든 백초차를 우려 마시면서 이것은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을 통째로 내 몸에 모시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백초차의 주요 원료는 가시오갈피나무, 산복숭아나무, 소나무, 산뽕나무, 두충나무, 고로쇠나무 등의 어린 잎사귀와 다래, 으름덩굴, 칡, 찔레, 인동초, 복분자, 하수오, 두릅 등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무들의 새순이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라도 뾰족이 올라온 새순은 무엇이든 다 채취한다. 산속에서 자라는 야생 차나무의 새순도 백초차에 빠져서는 안 될 재료다. 물론 안전은 필수다. 그녀는 이 새순들을 채취하면서 직접 씹어서 맛을 보며 독성 여부도 체크한다. “혀끝에 아릿한 맛이 느껴지면 약성이 강한 식물이죠. 나중에 차를 마시다 채취하면서 씹었던 맛이 그대로 차에 살아 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나무에 깃들어 있던 모든 기운이 차 한 잔에 담긴 듯하거든요.” 3~5월에 채취한 100여 가지의 새순은 덖어서 모아두었다가 6월이 되면 전부 섞어 백초차를 만든다. 봄이 오기도 전에 산과 들로 뛰어다녔던 시간들이 모두 녹아 있는 차가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다. 마셔본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진다며 효험을 검증해줬다. 특히 오랫동안 차를 마셔온 스님들은 백초차에 자연의 기가 충만하다며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바로 알아차린다고 한다. 차를 매개로 한 자연과의 교감 “누구나 나이가 들면 건강 문제가 절실해집니다. 생활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건강을 잃고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되죠. 건강을 잃고서야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좇아 다닙니다. 그런데 좋은 차를 마시면 자신의 몸이 보내는 경고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제대로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그녀는 차를 접하기로 마음먹으면, 산과 들에 와서 직접 채집하고 욕심 부리지 말고 만들어보고 교감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차 문화의 발전이란 단순히 차에만 고착되는 게 아니라 차를 매개로 한 생활의 변화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교육에서도 그와 같은 과정이 꼭 들어간다고 한다. 직접 채집하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향을 느끼며 집에 와서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행복해질 수 있는, 그 잊기 힘든 시간이야말로 차가 삶과 연결됨으로써 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잘 덖은 차는 우려냈을 때 산야초 본래의 색깔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처음 마셨을 때는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오래 음미하고 있으면 달큰한 것 같기도 하고 시큼한 것 같기도 한 독특한 맛이 느껴지죠.” 그녀는 차를 덖을 때 구증구포(九蒸九曝)를 고집한다.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비는 전통 제다법이다. 산야초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건조시킨 뒤엔 살청(殺靑)을 한다.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넣고, 나무주걱으로 쉼 없이 휘젓고 뒤집기를 반복한다. 엽록소의 산화효소를 파괴해 차의 변질을 막고, 맛과 색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다. “처음 딸 때의 찻잎 향과 아홉 번 덖은 손의 차향이 같아야 제대로 된 차입니다. 구증구포로 만든 차는 몇 번을 우려내도 첫맛을 잃지 않습니다.” 차 문화는 생활 밀착이 중요 그녀는 “옷차림, 도구, 공간 등 고급스러움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연에서 채취한 질 좋은 차를 감사하면서 먹는 것이며 각자의 생활환경에 맞춰 차를 일상적으로 마셔야 한다”고 말한다. 차가 생활과 밀착해 음용돼야 한국의 차 문화가 될 수 있음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말하는 올곧은 소리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한국의 차 문화가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자연스러움을 갖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팽주(차를 다려 내는 사람)인 그녀로부터 건네진 차에서 우러나는 향을 맡으며 그런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다인(茶人)을 만나고서야 차는 예이고 덕이고, 도이며 소통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주는 백초차를 마시니 자연에게 무한한 감사함이 절로 들게 하는 웅숭깊은 가르침이 향기로 퍼졌다.
- 2019-11-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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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위 예술가 문순우, 이 악물고 살 거 없다, 물처럼 살면 빛나거든!
- 저무는 놀빛 앞에선 허허롭다. 서산 너머로 사라진 해는 이제 어느 숙소를 찾아가는가. 인생 황혼에 접어든 사람은 어디로 가나. 만족은 없고 갈증은 자글거린다. 요즘 말로 ‘심쿵’은 멀고, 딱딱한 가슴에 먼지만 폴폴 날린다. 이건 겁나게 먹은 나이에 보답하는 정경이 아니다. 어이하나. ‘나, 물처럼 살래! 흐르는 물이 돌부리에 걸리거나 진땀 빼는 법이 있던가, 물이 답이자 선생이다!’ 문순우(73) 화백은 그리 생각한다. “너, 나를 물로 보니?”라 할 때의 그 물이다. 옳다구나, 가급적 만만하게 살자는 얘기일 게다. 그게 잘 사는 길이라는 소식이다. 노자가 설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이니 문순우 기자, 아니 문순우 도사가 취재한 ‘도(道) 뉴스’일 수 있다. 못 믿을 게 도인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하니 문순우를 도사로 읽는 건 결례이거니와, 그는 ‘도’라는 거룩한 단어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물이 좋아 물을 닮고자 한다. 물처럼 거침없이 흘러가는 노경(老境)을 선망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물로 봐야 한다. 그게 예의에 맞다. 이 물은 오늘 숲속의 잠잠한 초록호수처럼 평온하다. “나 요즘 편안하거든. 만족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고. 여기에서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에요.” 문순우의 올해 나이 일흔셋.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연치(年齒). 이젠 귀신조차 바라보일 시절이다. 그러나 그가 요새 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건 캔버스다. 죽자사자 그리는 것 같다. 창작이란 방울방울 피를 뿜는 일. 흔히 산고(産苦)에 견준다. 이 힘든 일을 왜 용을 쓰고 하나, 싶지만 문순우는 힘 안 들이고 대꾸한다. “힘은 무슨 힘? 영감(靈感)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영감’이라는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후루룩 내려오는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매사를 힘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해치우는 문순우의 내공이랄까, 그런 게 영감님을 모셔다주는 모양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문순우는 그림만 그리진 않는다. 그는 사진으로 예술에 입문했다. 도예도 주 종목이다. 목수이자 오디오 평론가이기도 하다. 와인과 재즈에 통달한 전문가다.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남몰래 눈물을 훔칠 요리의 달인이기도 하다. 이 기똥찬 다재를 일컬어 ‘전방위 예술가’라 한다. 어찌 보자면 이도 저도 아니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하나를 들입다 파더라도 도로아미타불에 그치기 쉬운 게 예술이다. 하나에 쉬 질리거나 옹골차게 돋우지 못해 여럿을 동시에 신나게 파 젖히는가? 딴엔 그게 자연스럽다. 물에 무슨 경계가 있던가. 열에 열 골 물이 하나로 통하고 모이는 게 물의 생태 아니던가. 나부터 사랑하기 문순우가 점심 요리를 한다. 아내 박미광(64)이 조수로 나서 묵은 김치를 물에 헹궈 숭숭 잘게 썬다. 그 사이 그는 양파와 토마토 등 갖가지 재료를 올리브유에 지지고 볶아 소스를 만들고 국수를 삶는다. 이름은 묵은지 파스타. 작은 꽃송이와 향신채소 잎 두어 개를 파스타 위에 살짝 얹고 요리 끝! 그러나 진정한 마무리는 아니다. 촛불을 켜고 글라스에 레드와인을 채우고서야 식사가 시작되니까. 나는 한낮의 식탁에서 제 몸을 사르는 촛불에 황송하다. 생일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촛불 보시를 한 이여, 복되도다. “웬 촛불이냐고? 이게 격(格)이라는 것이지. 우린 항상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해요. 라면을 먹더라도 초를 켠다고. 하하핫. 이왕이면 소소한 일상이더라도 축제처럼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기,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하기, 내가 나부터 사랑하기, 그런 게 돼야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겠어? 그게 생활의 격이라 보는 것이지.” “요리는 언제 배우셨지?” “마흔 살 넘어 사진 공부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했는데, 그때 요리를 배웠어요. 내겐 특이한 성향이 하나 있어요. 왕성한 호기심, 그거! 중학생 땐 전축에 호기심이 불붙어 진공관식 앰프를 직접 만들었다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그런 호기심을 누를 길 없어 유목민처럼 평생 곳곳을 떠돌기도 했어요. 파리 유학 시절엔 프랑스 요리에 호기심이 들끓더라고. 그 무엇보다 파리의 살롱 문화에 반해버렸고.” “궁정과 귀족의 저택을 무대로 성행한 프랑스의 사교 모임, 그게 살롱의 유래죠? 사르트르나 피카소가 즐겨 드나들었던 몽마르트의 카페들이 그 후신일 테고.” “한마디로 문화 사랑방이라 해야겠지. 프랑스 문화의 기저, 단순히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논쟁과 소통이 다반사로 벌어져 당대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나간 공간, 다종다양한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어 생을 즐긴 아지트. 꼭 필요한 그게 한국엔 드물다는 걸 알고 귀국하자마자 살롱을 차렸어요. 재즈 클럽 ‘라 끌레’라고 삼청동에 있었다고. 너무도 빨리 망하고 말았지만.(웃음)” 나에겐 삼사 년 전 문순우의 거처에서 한나절을 놀았던 추억이 있다. 당시 그의 집은 시골 숲속에 있었다. 그의 집이랄 것도 없다. 그는 돈이라는 게 당최 없다. 남의 헌털뱅이 대형 창고를 빌려 집으로 개조해 부부가 살았다. 그게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만가지 진기한 사물들이 절묘한 미학으로 어울린 예술적 파빌리온. 작업실과 와인 바와 집채만 한 오디오 장비가 혼융된 그 창고 건물은 그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살롱 용도로 쓰였다. 수많은 예술 동네 종족들이 물방개처럼 부산히 드나들었다. 현재 그의 거처는 안성시 외곽 대로변에 있다. 큼직한 신축 건물에 산다. ‘제네시스 미술관’이라 쓴 손바닥만 한 팻말이 붙어 있다. 이 집도 그의 것이 아니다. 갸륵한 후배들이 지어 내준 건물이다. 내부는 전에 살았던 창고 건물 풍경과 거의 이하 동문이다. 고스란히 옮겨 적절히 반죽해 치장했다. 별개의 사물과 사물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공감각적 코러스를 자아낸다. 오디오를 켜면 그의 귀는 칡넝쿨처럼 뻗어 선율을 빨아들일 게다. 와인 병이 즐비하니 취하고 싶을 때 취할 테지. 이 집의 모티브 역시 살롱이다. 사적으로는 미술 작업실이고 공적으로는 재즈 클럽이다. 그는 재즈에 홀려 산다. 재즈의 무엇에 심취하지?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얘길 해볼까. 그녀의 대표곡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살해된 흑인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노래했어요. 자유와 해방, 그걸 노래로 외쳤다고. 그게 재즈 정신이에요. 재즈를 듣다가 인생이 변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재즈란 고도의 매혹적 예술이겠고.” “이곳에서 매월 한 차례씩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죠? 재즈 전도사로 나선 거예요?” “한국의 암 발생률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더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난 문화의 열악함에도 원인이 있다고 봐. 예술이란 어디에 쓰이느냐, 남들에게 이바지하는 거, 즉 사회적 공헌에 목적이 있다고 난 봐요. 내 그림도, 재즈 공연 기획도 문화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길 바라며 하는 짓들이지. 공연 때 놀러오라고. 1세대 재즈 밴드를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재즈 뮤지션들이 오거든.” “비쌀 텐데, 개런티!” “기름값밖에 못 주지만 부르면 다들 기꺼이 달려와요. 자유로운 영혼들이거든. 게다가 내가 일찍이 한국 재즈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어서.” 집문서 없어도 잘 산다 인생이란 희로애락을 다탄두로 매단 럭비공을 닮았다. 문순우의 삶이 그걸 알게 한다. 젊은 날의 그는 날품팔이나 구두닦이로 밥을 벌며 세상이라는 정글을 배웠다. 공수부대원으로 3년간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가진 거라곤 돈뿐이던 시절도 있었다지. 디자인 분야 사업을 해 17명의 직원들을 거느렸고, 스포츠카를 몰았더란다. 그러다 회의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돈에 덜미 잡힌 삶이 원숭이를 껴안고 블루스를 추는 것처럼 요상하고 우스웠던 모양이다. 해서, 사업을 접었다. 돈벌이의 노예로 사느니 천성인 방랑벽을 고이 살려 유목민으로 살자, 늦깎이로나마 예술과 한판 붙어보자, 그런 작심을 야무지게 하고 프랑스 유학에 나섰던 것. 이후 오늘날까지 예술이라는 참호 속에 들어앉아 세상을 겨눈다. 돌아다닌 세상, 겪은 세사가 많아 일화도 숱하다. 누적된 연기(緣起) 속에서 명멸한 기억들…. 아프기론 월남전에서 목도한 참상이다. 곱살하기론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심혼이 남긴 잔상으로, 일테면 그건 문순우가 보유한 정신적 체력을 북돋운 한 가지 양분이었던 것 같다. 들어볼까. “언젠가 용산역 앞에서 어느 스님이 건달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더라고. 그걸 내가 뛰어들어 수습했어요. 알고 보니 중광 스님이더라고. 묘한 인연이었지만 이후 가족처럼 지냈지. 내 삶으로 육박해온 가장 청명한 성좌였다 할까. 때로 파격의 괴물이었으나 근본은 순진무구의 화신이었어요.” “사람이 새벽이슬도 아닌 것을, 순진무구를 유지하며 이 난잡한 속세를 견딜 수 있을까요? 때 묻히고 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지 않나?” “그렇기에 용케도 순수한 사람들이 그립고 좋고 사랑스러운 게 아니겠어? 이 순수란 증류수와도 같은 무균 상태가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품성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당신 역시 봄바람처럼 따사로워 인간적이지만, 일면 자학적이기도 해요. 그 독한 파이프담배 아니면 시가만을 피우다니, 그거 자학 아닌가?(웃음)” “애연가 등소평은 아흔네 살까지 살다 간 것을.(웃음) 그가 말했지. 흡연은 젊은이에겐 낭만을, 늙은이에겐 위엄을 부여한다고. 와인은 또 얼마나 좋은가. 내가 아 술타령으로 죽을 쑨 인생이 많지만, 술이 건진 고통과, 술이 익힌 시와 노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는 와인과 노닐어 멋과 낭만을, 작업의 효율을 구가하는 것 같다. 버선목이 아니라서 문순우의 속을 뒤집어볼 순 없지만, 그의 내부에도 고독과 불안이 고여 있을 테지. 그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우수를 술과 음악으로, 또는 창작으로 청소하길 능란하게 하는 사람. 해서, 태연하고 평온하게 노년을 영위하는 사람. 그게 문순우이며, 이런 그에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는 건 돈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모두 그 앞에서 절을 하는 물신(物神)의 가호를 받지 못한 채로 영일(寧日)을 누리다니. 늙어서도,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돈이라는 감옥에 갇히기 십상인 게 삶이지만, 그는 감옥 밖에서 말짱하다. 비결이 뭘까? 그를 물로 보면 답이 나온다. 어디든 흘러가 채워주는 물! 목마른 자에게 흘러들어 한 잔의 샘물이 되는 삶! 그는 그런 지향으로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 결과 집문서는 없으나 사람문서를 쥐게 됐다. “나를 부르주아라 오해하기 십상이지. 시가에 와인에, 고급 음악에, 모든 호사를 누리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난 가진 게 없어요. 옷가지도 30년째 입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작품 재료도 모두 폐품을 활용한다고. 전화기도 오래된 폴더 폰이야. 식재료도 텃밭에서 손수 길러 쓰고 말이지. 딱히 잡기라는 것도 없어요. 돈 들어갈 게 뭐란 말인가.” “날마다 한두 병씩 마시는 와인은 어디서 오죠?” “작품이 팔리면 와인부터 비축하지만, 작품이 팔리는 일은 드물지. 그걸 잘 아는 제자나 후배들이 와인이며 시가며, 심지어 거처까지 마련해주더라고. 차후 ‘문순우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하더군. 아아, 내가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 자주하는 것이여.” “반대급부 없는 도네이션은 없는 법.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었기에 그토록 받으시지?” “좌우명을 말해볼까? ‘남을 대하기를 나를 대하듯이 하자.’ 이기심을 버리는 게 자유롭게 사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살았어요. 주변과 타인을 채우는 샘물로 살아야겠다, 언제 어디서든 남을 소중하게 아끼면 그게 메아리로 돌아온다, 그게 나를 채우는 길이다, 그런 신념을 잊지 않고 실천했어. 사실, 우리는 모두 빚쟁이 아닐까? 남들에게, 세상에게 신세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던가? 그렇다면 날마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사는 게 옳지 않나?” 이 악물고 살 거 없다, 계산 없는 물로 돌아가 세상 빚을 갚으면 빛난다! 그게 문순우의 비결이다. 윽! 난 오늘 한 방 맞았다. 허울 좋은 처신과는 격이 다른 고수(高手)의 이타(利他), 그 실천적 뉴스에.
- 2019-07-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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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온보다 습기가 더 해로운 이유
-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한 달 넘도록 열대야와 40℃에 육박하는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폭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열사병으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매년 여름 이런 더위와 싸워야 한다면 서울 사람,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의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름마다 이렇게 사람 지치게 하는 원인이 열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캐나다, 미국, 케냐, 호주에 가보면 기온이 40℃라 해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당연히 열대야도 없다. 습기가 없기 때문이다. 습기는 열기나 한기를 더 잘 전파한다. 한국이나 일본은 여름에 그늘에 들어가도 덥다. 추운 날도 마찬가지다. 습기 많은 계곡을 가면 햇볕 속에 있어도 뼈가 시릴 만큼 춥다. 여름철에 대관령이나 태백 같은 고산으로 피서를 가는 것은 습기가 없어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기 때문이다. 습기가 많은 물가에 살면 관절이 약해진다. 습이 몸의 순환을 막아 관절을 붓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습기는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 힘들 때 우리는 몸이 마치 물먹은 스펀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운이 순환되지 않고 정체되어 막히면 몸에 습이 쌓이기 때문이다. 습기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습이 있고, 인체 내부에서 생긴 습이 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이슬, 안개 등이 많으면 외부에서 습기가 들어오는데, 다리가 무겁거나 각기병이 생긴다. 이럴 때는 땀으로 습기를 배출해야 하는데, 오래된 습은 소변으로 빼줘야 한다. 날것, 습한 것, 밀가루, 유제품 등을 많이 먹거나 술을 자주 마시면 인체가 습해지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메슥거리며 온몸이 붓는다. 이때는 대소변을 통해 습을 제거해줘야 한다. 몸속의 습기를 제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주거 환경 개선, 음식 조절이 그것이다. 몸이 무거울 때는 대관령이나 태백, 백두대간 등 고산으로 가 쉬면 좋다. 습이 낮은 환경에 있어야 몸속의 습이 빠져나간다. 높은 산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대로 물가나 호숫가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바닷가는 얼핏 보면 습기가 많은 것 같지만 소금기를 띤 습이라서 오히려 인체의 습을 제거해준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삼투압 때문에 몸의 수분과 습기가 빠져나간다. 그래서 장수마을이 고산과 바닷가에 많은 것이다. 습이 적어야 장수할 수 있다. 자연에서는 바람이 안개와 습기를 흩어지게 한다. 몸속에서는 향기가 바람의 역할을 하며 습을 없애준다. 술 먹은 다음 날 몸이 무거운 건 술로 인해 습이 몸속에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는 유자, 모과 등 향이 나는 과일이나 깻잎, 배초향 등 향이 강한 채소를 먹는 것이 좋다. 칡꽃, 팥꽃, 국화로 만든 차도 좋다. 귤껍질이나 허브티를 달여 마셔도 도움이 된다. 안개의 나라 영국에서 향기 좋은 커피와 홍차가 발달한 이유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중국의 사천 요리는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사천 지방은 왜 매운맛을 즐겨 먹는 것일까? 중국 속담에 “촉나라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다 해를 보게 되니 개가 이상해서 짖어댄다는 의미다. 촉나라는 사천 지방에 있던 나라인데, 이 지방은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해를 보기 힘들다. 당연히 습이 많고 이 습을 제거하기 위해 매운맛의 화초(花椒)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한 거라 한다. 동남아 등 습도가 높은 지방에서도 향신료를 즐겨 먹으며 습기를 극복한다. 숙취를 깨기 위해 사람들이 얼큰한 해장국을 많이 먹는 이유도 매운맛이 술로 인해 생긴 습을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덩굴 식물도 몸속의 습기를 잘 뽑아내준다. 술을 마시고 칡즙, 칡차, 수박, 키위, 방울토마토, 포도 등을 먹으면 습 배출에 효과가 있다. 식물의 넓은 잎도 습기를 제거해준다. 연잎밥이나 호박잎밥, 바나나잎밥, 쌈밥은 습기 제거, 특히 여름철 습기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 몸속에 습기를 쌓이게 하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인공적인 식품은 대부분 습기를 조장한다. 미원 등 인공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을 먹으면 갈증이 나고 다음 날 몸이 찌뿌둥하고 소변을 봐도 시원치 않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 정제 음식, 탄산음료, 튀긴 음식 등도 습을 조장한다. 또 음식이 아닌 에어컨이나 온풍기, 인공적인 빛과 소리도 몸속에 습을 조장해 몸을 무겁게 하고 머리도 띵 하게 만든다. 방 안에 숯을 갖다 두면 습 제거에 효과를 볼 수 있다. 음식은 담백한 것 위주로 먹고 먹을 때는 10번 이상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 음식을 너무 싱겁게 먹으면 습이 쌓이고 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몸이 붓는다. 적절히 죽염으로 간을 해서 먹어야 습이 제거된다. 미역국, 다시마, 퉁퉁마디 등 해조류나 염생식물의 약한 짠맛은 습 제거에 좋다. 여름에 콩국수나 우뭇가사리를 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붕어, 잉어, 미꾸라지, 게, 조개류 등 연못이나 갯벌에서 사는 생물들도 습 제거에 도움을 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 2018-08-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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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나들이 추천 베스트 3
-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었다. 몇십 년 만의 강추위가 엄습했고 제주도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도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사람들은 맹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셀리가 읊었던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시 구절처럼 봄이 다가왔다. 이제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봄을 만끽하며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다. 메마른 대지 위에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꽃의 정원으로 떠나보자. 제1추천지 : 접근성이 좋은 서울대공원에서 테마별로 즐거움 만끽하기 필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대공원을 한때 자녀들을 데리고 갔던 동물원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서울대공원은 동물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첫째는 동물원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호랑이, 사자 등 맹수와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희귀동물로 가득하다. 세계 각국의 동물들을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동물의 고향과 각각의 성향과 습성 등을 살펴보고 관찰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1984년 5월 1일 개장한 이래 29개 동물 막사에 332종 2700마리의 동물이 있다. 둘째는 식물원이다. 진귀한 꽃들이 많다. 봄꽃들의 화려한 자태를 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꽃향기는 덤이다. 봄은 꽃들의 잔치가 화려하게 열리는 계절이다. 2017년 5월에는 600여 종의 식충식물로 꾸며진 식충식물관도 개관을 했다. 식충식물은 향, 색, 꿀 등으로 먹이를 유인하는데 끈끈이형, 포획형, 흡입형, 유도형 등이 있다. 날카로운 덫으로 순식간에 파리를 낚아채는 파리지옥, 끈끈이주걱, 벌레잡이제비꽃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셋째는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힐링할 수 있는 좋은 코스다. 맑은 공기와 꽃향기를 맡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봄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장소다. 호수 둘레길, 동물원 둘레길, 숲속 愛 힐링 코스가 있다. 호수 둘레길은 분수대 광장에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로여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 가볍게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며 잠깐 커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다. 동물원 둘레길은 제법 길다. 청계산 자락인 이 길은 2013년도 서울시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단풍길 81개소’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한 곳이다. 서울대공원을 추천한 이유는 동물원뿐만 아니라 테마별로 즐길거리가 있고 사계절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봄에는 나들이하기 좋은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벚꽃 축제, 튤립 축제, 장미 축제도 열려 축제의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제2의 추천지 : 고창 청보리밭 청보리밭 축제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열린다. 봄을 꽃의 계절로만 보는 것은 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푸른 언덕 위에 펼쳐진 청보리의 싱싱함을 느끼고 풋풋한 내음을 맡다 보면 젊음의 에너지가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도깨비’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해마다 수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청보리밭을 걸으며 청보리 향에 취하다 보면 도시의 소음에 지친 심신이 어느새 맑아진다. 또한 이곳에서는 푸른 청보리밭과 함께 유채꽃도 즐길 수 있다.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유채꽃의 샛노란 자태가 눈부실 정도다. 고창 청보리밭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곳과 함께 가까운 곳에 있는 선운사 동백꽃을 함께 볼 수 있어서다. 또 먹거리가 풍부하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시간을 내어 청보리밭을 거닐고 선운사에 들러 동백꽃까지 감상한다면 시간과 경비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는 오래된 장어 요리집도 있다. 제3의 추천지 : 수안보 벚꽃 축제와 온천 축제 수안보는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온천 지구다.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태조 왕건과 숙종은 물론 현대의 역대 대통령들도 즐겨 찾았던 곳이다. 53℃의 적당한 수온과 각종 미네랄까지 포함돼 있어 장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매년 4월 중순 벚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온천 축제와 벚꽃 축제가 함께 열려 온천욕도 하고 벚꽃까지 즐길 수 있다. 천변으로 길게 늘어선 벚꽃길은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아름드리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사하게 핀 벚꽃길을 걷노라면 향기는 물론 눈꽃을 맞으며 황홀감에 젖어들게 된다. 행사기간에는 행진 퍼레이드, 각종 축하공연, 이 고장 명물인 꿩고기 시식회도 열린다. 다채로운 볼거리와 힐링온천 그리고 아름다운 벚꽃이 더욱 풍요로운 봄의 축제를 선사한다. 벚꽃 축제, 온천 축제가 열리는 수안보는 전국 어디에서든 승용차로 오기 적당한 거리에 있다. 문경 옛길을 걸으며 등산도 할 수 있다. 30년 전통의 꿩 요리가 유명하며 올갱이 해장국, 칡냉면, 물만두 전골집 등 맛집도 많아 식도락을 느끼기에도 제격이다.
- 2018-03-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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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커피 명인, 여종훈
- “맛이 서로 싸우는 걸 알아야 해요.” 명인의 한마디는 예사롭지 않았다. 20여 년간 커피와 함께한 삶. 육화된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엄살도 없고 과장도 없다. 오로지 그 세월과 맞짱 뜨듯 결투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절창이다. 국내에 커피 로스터가 열두 대밖에 없던 시절, 일본에서 로스팅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그가 문을 연 청담동 ‘커피미학’에는 각지에서 맛을 보러 온 커피 애호가들로 북적였다. “여종훈 커피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소문에도 아랑곳없었다. 20대 때부터 커피를 달고 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서커피에서 나온 무늬만 커피인 믹스커피를 마실 때 그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깡통커피를 사다 마시곤 했다. 드립 커피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대에 퍼컬레이터로 원두커피를 추출해 하루 열 잔 이상씩 마셨다니 요즘식으로 말하면 커피 덕후였다. “당시 원두커피를 파는 다방들은 많지 않았어요. 신촌의 몇몇 다방은 양키시장에서 깡통커피 MJB, MJC를 사다가 썼죠. 그때는 바리스타를 ‘주방장’이라고 불렀어요. 지금 그러면 기겁할 일이지만 커피 전문 주방장들이 원두커피 맛을 높이기 위해 담배꽁초나 칡뿌리 등을 몰래 넣기도 했어요.” 아직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여종훈(呂鐘勳·64) 명인의 커피 인생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원예 사업을 해보려고 20대 중반에 시골로 들어갔던 그는 6년 만에 다시 도시로 나오고 말았다. 지금처럼 성능 좋은 농기계가 없던 때라 삽으로 직접 흙을 파야 했는데 허리가 견뎌내질 못했다. 젊은 패기에 농사일을 너무 우습게 봤던 것이다. 원예 사업을 접은 뒤에는 몇 번 직업을 바꿨다. “손에 딱 잡히는 일이 없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때였어요. 어느 날 일본에 살던 친구가 사업 구상차 한국에 왔는데 드립 세트랑 원두커피를 트렁크에 넣어왔어요. 마셔보니 맛이 기가 막힌 거예요. 어디서 가져온 커피냐 물었더니 일본에서 ‘커피미학(珈琲美学)’이라는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장인이 볶은 콩이라고 하더군요. 국내 커피랑은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향과 맛의 품격이 느껴졌어요. 반해버렸죠. 제가 커피를 정말 좋아하긴 했나봐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한국에서 계속 마실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커피 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어요.” 일본에서 온 친구는 그와 함께 청담동에서 커피미학을 운영한 재일교포 나가시마 요시코였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그는 곧바로 일본으로 가 오하라 히로시(小原博 )를 만났다. 명성대로 꼬장꼬장했다. 그에게 로스팅 기술을 배우고 ‘커피미학’이라는 브랜드를 가져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1년간 공부했어요. 고달팠죠. 커피 맛을 보기 위해 매일 30~40잔의 커피를 마시고 혈변을 보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최고의 맛을 찾고야 말겠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련했어요. 한 모금 입에 넣고 맛만 보고 뱉어버려도 되는데 다 마시다가 그 사달이 났으니 말이에요.” 그는 해외유학파 1세대로서 일본 커피 명장의 인정을 받는다. 대학교 때 커피숍에서 일하다 마신 원두커피 한 잔이 인연이 되어 장인 명단에까지 이름을 올린 오하라 히로시는 많은 제자를 두었지만 여종훈 명인을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제자들이 자신이 가르친 범주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여종훈 명인은 제자들을 가르쳐보고 나서야 선생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됐다. “강의할 때 ‘이렇게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배우는 사람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왜 안 돼?’ 하면서 의심해보지 않는다는 거죠. 오하라 선생은 그런 면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게 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로스팅을 10년 해본 사람과 20년 해본 사람은 감별 능력이 다릅니다. 20년간 로스팅을 해온 저도 헤맬 때가 있어요. 맛에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연구는 끝이 없어야 합니다.” 그는 커피 맛을 스펙트럼에 비유해 설명한다. 맛의 정점이 한곳에 모여 있는 콩도 있고 넓게 형성되어 있는 콩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원두 종류에 따라 반응하는 온도가 다른데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약배전으로 해줘야 맛이 제대로 나는 콩이 있어요. 그럴 때는 약배전으로 끝내야 해요. 더 볶으면 제 맛을 잃어요. 또 어떤 콩은 강배전일 때 최고의 맛이 나죠. 이런 콩을 약배전으로 볶으면 맛이 망가집니다. 이런 감별 능력은 경험치에서 나와요. 끊임없이 테스트를 해본 사람만이 섬세한 맛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는 거지요. 이런저런 방법 다 써봐야 맛의 정점에 가까운 로스팅 방법이 구해집니다. 제가 오하라 선생을 만나러 일본에 갔을 때 매장에 내놓은 커피가 70여 종이나 되었는데 참 대단한 분이에요. 커피에 미치지 않고서는 그 많은 콩의 맛을 감별해내기 힘들거든요.” 청담동 ‘커피미학’에서 ‘커피쌤’의 시대로 일본에서 돌아와 청담동에 커피미학을 열고 그는 40여 종의 커피를 메뉴판에 올렸다. 맛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가 직접 로스팅하고 핸드드립으로 정성껏 추출한 커피를 내놓자 난리가 났다. 당시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이 무려 1만 원이나 했는데도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매장 안은 커피 애호가들로 북적였다. “커피값이 밥값보다 비쌌어요. 그래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들락거렸지요. 우스갯소리로 커피미학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청담동 사람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돌았어요. 연예인, 스포츠인들도 자주 왔는데 손님들 중 3분의 1은 연예인이었어요. 손숙, 윤석화, 임예진, 최민식, 송강호, 차인표, 김선아 등이 그때 단골이었죠.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 끝나면 기자들 데리고 와서 인터뷰도 하고 금융권에서는 특별한 날 아예 하루 빌려 행사를 치르기도 했어요.” 다양한 문화인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커피미학은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만큼 편안하고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와 넓은 정원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지하에 쿠바,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등지의 나라에서 수입한 생두를 로스팅하는 공장까지 세팅해놓아 마니아들에게 신뢰감을 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종훈 명인의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 한창 입소문을 탈 때는 신문과 잡지, TV 등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커피미학에서 로스팅한 콩을 가져다 쓰는 커피 전문점도 점점 늘어났다. “인기가 대단했어요. 지금은 원두를 팔기 위해 영업을 하지만 그때는 아무데나 안 주고 커피 맛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 심사를 한 뒤 콩을 줬죠. 그래도 간혹 커피를 재탕해서 쓰는 곳이 있었어요. 그런 소리가 들려오면 바로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커피미학은 2010년 문을 닫는다. 1998년 청담동 본점을 시작으로 인사동,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안성 등지에 새 둥지를 틀었다가 이런저런 부침을 겪은 후 재정상황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또 매해 급상승하는 월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현재 여종훈 명인은 경기도 용인민속촌 근방에서 ‘커피쌤’이라는 브랜드로 공방과 매장 운영을 하고 있다. 갓 로스팅한 그의 커피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온라인에서도 여종훈 커피 맛에 중독되어가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 판매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위력에 놀랐다고 한다. 이참에 브랜드에 명인 이름을 좀 더 부각하는 게 어떠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친다. “맛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 이상 뭐가 필요하겠어요. 그렇게 해서 방송에 나가고, 광고하고, 해외 산지 돌아다니다 보면 로스팅 연구는 뒷전이에요. 연구 안 하면 맛의 퀄리티는 당연히 떨어지는 거고요. 그런 커피 내놓기 싫습니다.” “커피 맛은 농부와 조물주가 결정합니다” 그는 최근 지나치게 낮은 가격의 커피가 유통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드립 에스프레소는 식어도 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좋은 원두를 써야 하는데 요즘 인터넷에서 파는 원두 가격을 보면 놀라워요. 제대로 된 콩이라면 생산지에서 절대 그 가격에 사올 수 없습니다. 저가 커피는 품질을 의심해봐야 해요. 한때 유통업자들이 유통기한 지난 커피를 봉지갈이해서 팔았던 적도 있어요. 한두 가지 생두를 사다가 배전도에 따라 커피 이름을 마음대로 붙이기도 했죠. 커피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던 때였어요. 지금은 마니아가 워낙 많아 맛을 속이면 금방 들통이 납니다.” 요즘도 그는 새 로스팅 기계가 나오면 도전한단다. 기존의 로스터로 최고의 맛을 찾았을 텐데 뭐하러 새 기계를 들여와 그 힘든 과정을 다시 시작하냐고 물었다. 대답이 걸작이다. “새 기계는 자동차로 비유하면 벤츠예요.(웃음)” 솔직히 호기심도 있고, 새로운 룰을 만들면서 긴장하는 시간이 즐겁단다. 커피에 대한 그의 애착은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요즘도 어디 커피가 맛있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당장 가서 마셔보고 분석한다. “사람들은 맛이 싸우는 걸 몰라요. 커피를 다루려면 커피 마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맛이 다투는 걸 먼저 느껴보고 로스팅은 그다음이에요. 세미나 할 때 하는 질문들을 들어보면 빤해요. 저는 이미 다 고민해본 것들이거든요. 어느 날 블렌딩 비율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조금 무겁네요, 요걸 한번 빼보세요’라고 말해줬더니 무릎을 탁 치더군요. 돌아가서 조언해준 대로 해보고는 전화를 했어요. 맛이 훨씬 좋아졌다고.” 서로 지지고 볶아대는 그 내밀한 다툼의 맛을 봐버린 그는 자신을 더 경계하게 됐을 것이다. 그래서 생두를 볶을 때마다 첫 마음,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간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기술이고 전략이며 내공이리라. “커피 맛은 농부와 조물주가 결정합니다. 로스팅은 생두에 열을 추가해 그 맛을 최대한 살리는 과정일 뿐입니다. 원재료가 형편없어도 로스팅 기술로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밥 짓는 솜씨가 좋다고 정부미로 아끼바리 밥맛을 낼 수는 없잖아요.” 농부와 조물주의 공을 먼저 챙기는 명인. 그에게도 얼마 전 직업병이 온 모양이다. “로스팅하면서 연기를 하도 많이 마셔서 그런지 2년 전부터 폐가 안 좋아졌어요. 아파보니 ‘잘못되는 게 순간이구나’, ‘생과 사의 경계선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 욕심이 사라졌어요. 예전에는 인간들 비리만 보이고 그랬는데 요즘엔 좋은 모습들만 생각해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 일도 좀 줄이고 제자도 키워볼 생각입니다.” 참 감사하다는 말이 오래 귓전에 머문다. 잘 숙성된 커피처럼 향이 깊다. 맛을 섬겨왔듯 이제는 그의 몸을 받들어 모실 때다.
- 2018-01-25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