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실버 생활체육에 지각변동이 감지됐다. 곧이어 ‘파크골프가 인기’라는 말이 전국 곳곳에서 들려왔다. 반짝 흥행이 아니었다. 파크골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이 되면서 아예 실버 생활체육 주요 종목으로 부상했다. 인근 공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어서. 단지 그뿐일까? 현장에서 들은 파크골프의 진짜 인기 이유는 꽤 흥미롭다.
양평교 초입에 들어서며 걱정이 앞섰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성 장맛비가 예고돼 있었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었지만, 먹구름과 대기를 감도는 꿉꿉함은 양평교 아래 오가는 이 하나 없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영등포 파크골프장’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야말로 ‘줄 서서’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 영등포 파크골프장을 찾는 이는 500여 명. 영등포구파크골프협회 ‘사랑클럽’ 회원 A씨가 전한 인기는 그 이상이다. “파크골프가 정말 인기예요. 말도 못 해요. 체감상으로 매년 두 배씩 느는 것 같아요. 이거 봐요, 치려고 밀려 있는 거!”
영등포뿐만 아니다. 파크골프는 일대 붐을 맞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이 그 방증이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2020년 4만 5000여 명 수준이던 회원은 2022년 10만 명을 넘어섰다. 2023년 6월 기준으로는 12만 명을 돌파했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즐기는 동호인쪾비동호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대략 40만~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983년 일본 홋카이도 마쿠베쓰 강가에서 시작된 파크골프는 도심 속 공원이나 유휴부지에서 즐기는 게임이라고 해서 ‘공원 골프’(PARK GOLF)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는 2000년 경남 진주에 위치한 노인복지시설 상락원에 6홀이 들어서며 처음 소개됐다. 실버 세대 생활체육 핵심 종목으로 부상한 건 수년 사이다. 2022년 9월 발표된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스포츠 빅데이터 인사이트’ 제13호에 따르면 현재 실버 세대 생활체육 유행은 ‘게이트볼에서 파크골프로 전환’되고 있다.
현장은 클럽 한 개와 공 한 개, 그리고 티만 있으면 누구나 인근에서 즐길 수 있는 파크골프의 편의성과 접근성에 열광한다. 몇 천 원이면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비용도 현실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사랑클럽’ 회원 A씨는 “파크골프가 노인들에겐 최적의 운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운동 여러 가지 해봤지만, 이보다 좋은 운동은 없습니다. 접근하기 좋고, 이용료 저렴하고, 잔디 밟으면서 많이 걷고요.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어요? 고작해야 산책하는 건데, 산책은 지루해서 오래 못 해요. 근데 파크골프는 3시간이고 4시간이고 하죠!” 옆에서 듣고 있던 회원 B씨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장점이 정말 많아요.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아요.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게 삶의 활력이 돼요.”
파크골프가 사랑받는 주요 요인 중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종주국 일본의 파크골프협회는 파크골프가 퍼진 요인에 대해 “경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을 들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일반 골프장은 1번 홀에서 티업하면 다른 팀을 만날 수 없지만 파크골프는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에 교류가 이뤄지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랑클럽’은 회원 60여 명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회원 C씨의 말이다. “하면 할수록 재밌어요. 파크골프를 접하고 사람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자주 보니까 빨리 친해졌지요. 한번 어울리면 아침에 만나서 저녁까지 있다 가기도 합니다. 그게 너무 재밌어요.”
여기에 ‘한국판’ 파크골프만의 매력이 더해졌다. 경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파크골프는 하프 9홀(파33) 1라운드 18홀(파66)로 진행된다. 파3 네 개, 파4 네 개, 파5 한 개로 기본 제원은 일본과 같다. 차이는 한 홀의 거리다. 위험 방지, 연령이나 남녀 차이에 의한 핸디캡 최소화 등을 위해 거리를 100m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일본과 국내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9홀까지 연장 길이가 500m지만, 국내는 790m까지 가능하다. 파5 홀의 경우 일본은 60~100m, 국내는 100~150m다. 현재 국내는 대개 최장 거리인 150m를 선택하는 추세다.
이경호 대한파크골프협회 사무처장은 “국내 파크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한 요소”로 이를 지목한다. “일본은 ‘놀이’이고 우리는 ‘생활 스포츠’, 나아가 ‘경기’에 가깝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80대 이상이 파크골퍼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우린 연장 길이가 기니까 보다 젊은 세대가 많이 유입됐습니다.”이 사무처장은 배우기 쉬운 점도 파크골프 인구 증가 원인으로 꼽았다. “파크골프는 6개월 정도 열심히 하면 3년, 5년 배운 사람과 대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스포츠는 10년 이상 해야 우승할 수 있어요. 1~2년 바짝 해서는 대회 정상을 꿈꾸기 어렵지요. 그런데 파크골프는 노력 여하에 따라 6개월~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춰지는 운동입니다. 전국 투어를 다니는 분들도 그 수가 상당합니다.”
파크골프는 ‘경기’로 자리 잡고 있다. 대회 규모로 확인된다. 국내 대회 상금이 3000만 원까지 오른 상황이다. 경제 효과는 현장에서 먼저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산천어축제를 연이어 취소했던 강원도 화천군은 파크골프 대회를 유치해 특수를 누렸다. 약 한 달간 이어진 대회에 1500여 명의 선수단과 가족이 방문해 지역 음식점, 숙박업소는 물론 편의점과 카페까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이경호 사무처장은 “경제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말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파크골프장에도 라이가 있어요?’입니다.(웃음) 당연히 있지요. 다 다르고 각각의 특색이 있습니다. 대회 당일 처음 가서는 성적을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통 연습하러 현장에 일주일 전이나 열흘 전에 가서 현지에 체류하며 꽤 많은 비용을 씁니다. 1억 원을 투자해서 대회를 치른다고 하면, 그 열 배 이상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대회에 나가는 선수만 해도 500~600명입니다. 그 지역에 머물면서 쓰는 돈은 엄청납니다. 지자체에서 계속 유치 신청이 들어오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파크골퍼들에게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클럽’ 회원들은 스포츠로 자리 잡은 파크골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고는 못 삽니다. 대회 나가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해요. 진짜 장난 아니에요!(웃음)”
현장은 단기적 경제 효과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파크골프가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2007년에 이미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장수 국가군으로 진입했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이다. 고령자의 진료비, 의료비는 당면한 문제다. 통계청이 2022년 9월 발표한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진료비는 475만 9000원, 1인당 본인 부담 의료비는 110만 6000원에 달한다. 전체 인구 대비 각각 2.8배, 2.7배 수준이다. 반면 생활체육 참여자의 1인당 연관 의료비는 비참여자 대비 절반가량에 그친다. 생활체육 참여만으로 의료 비용 감소에 직접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은 파크골프가 현재 최일선에 있는 운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랑클럽’ 회원 A씨의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노인들이 집에만 있으면 자식이고 며느리고 손주고 누가 좋아하겠어요? 우리도 다 압니다. 근데 파크골프장에 나오면 운동하고, 여기서 만난 친구들끼리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고, 때론 반주하기도 하고, 내내 놀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는 피곤해서 바로 잡니다.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합니다. 아프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할까 봐요.(웃음) 또 실제로도 아프면 못 합니다. 그러니까 파크골프를 하기 위해서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요. 본인 건강하지, 가정의 평화 가져오지, 종국에는 사회적 비용 안 들지. 파크골프는 삼박자를 다 갖춘 운동이라니까요!”
연 매출 2조 원을 바라보는 국내 아웃소싱 기업 1위 삼구아이앤씨. 이곳 총수의 집무실에는 ‘책임대표사원’이라는 독특한 문패가 달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더 인상적이다. 비좁은 방 크기, 드넓은 세계를 담은 지구본, 박스 테이프로 덧붙인 40년 차 사무용 의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주인, 여든의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젊은 기자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며 다가왔다.
“사무실은 한정적인데 내 방을 크게 하면 직원들 공간이 좁아지잖아요. 이만하면 일하는 데 충분합니다. 이 오래된 의자도 아무 문제 없고요.(웃음)”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하 대표)은 자신의 공간을 줄이는 대신 직원들에게 넓은 책상을 놓아줬다. 책상의 크기만큼 생각도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하고도 남는 공간은 휴게실, 드레스룸 등 모두 직원들을 위해 쓰였다. 훗날 여건이 된다면 건물 한 층을 임직원의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보리라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늘 직원의 편의와 행복을 우선으로 여기는 구 대표. 그가 ‘책임대표사원’을 자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들과 달리 신규 채용, 신생 사업 등 새로운 시도에는 변수가 따릅니다. 직원들이 문제가 생기거나,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리스크까지 담당자가 모두 책임지려면 부담이 크겠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일이 잘못될까봐 기회를 주저하는 상황도 생길 테고요. 때문에 다른 일은 다 전결해도 딱 두 가지, 사람을 뽑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직접 결재합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최종 승인자인 내가 책임지게끔 하기 위해서죠. 그렇게 직원들이 다른 걱정 말고 맘 편히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회사 식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구 대표. 그런 그에게 가장 잊지 못할 직원이 있으니, 바로 박복순 여사님(삼구아이앤씨에서 청소 용역을 담당하는 여직원을 부르는 명칭)이다. 수십 년 전 일임에도 그 이름 석 자만큼이나 각인된 일화가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저도 현장에서 청소를 했어요. 하루는 고객사와 약속한 시간 안에 일을 못 마치겠더라고요. 함께하는 여사님들을 채근하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박복순 여사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사장님, 뜨는 해는 잡을 수 있는데, 지는 해는 못 잡아요. 이럴 거면 더 일찍 나오라고 하셨어야죠.’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래, 마감 시간은 우리가 못 바꿔도 시작 시간을 앞당길 순 있지!’ 인생에 빗대본다면 지는 해를 맞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뜨는 해를 맞는 시간은 자기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잖아요. 여사님의 한마디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일로 구 대표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형편 탓에 새벽일을 하며 아침을 허투루 보낸 적 없는 그였지만, 그날 이후 하루를 관조하는 자세가 사뭇 달라졌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조찬회와 대학 CEO 강의 등에 참여하며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두루 익혔다. 나태해지는 날이면 새벽 4시부터 일터에 나가 있을 여사님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뜨는 해를 앞당긴 덕분일까, 구 대표는 언젠가 찾아올 ‘지는 해’, 즉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이미 주변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묘비 하나 남기지 말라 당부했다. 다만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노라 말한다. 이는 여한 없는 삶을 살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구 대표가 중년 이후 해온 도전들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56세에 스키, 65세 할리데이비슨 면허 취득, 69세에 승마, 70세에 수상스키, 71세에 비행기 조종, 74세에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 트레킹 완주 등. 젊은이도 시도하기 어려운 도전들임에도 그는 망설임이 없다. 더 정확히는 망설일 수가 없다.
“예순이라서? 칠순이라서? 그렇게 늦었다고 한탄하고 미루다 100세가 되면요? 그때라도 할 걸 후회하지 않을까요? 건강이 허락하고, 즐길 만한 여건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해야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위험한 거 하다 잘못되면 어쩔거냐 그래요. 이 나이에 다치는 게 더 두렵지,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다쳐서 운 나쁘면 병원에 누워 연명하는 신세가 되니까요. 올해 여든에는 미국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스카이점프를 해볼 겁니다. 그리고 85세가 되면 뉴질랜드에 가서 밀포드사운드 트레킹에 재도전할 거예요. 현재 세계 최고령 완주자가 84세라고 하더군요. 그 기록 한번 깨보렵니다.”
고령 인력 위해 불태운 노년 학구열
구자관 대표가 레포츠 분야에만 도전을 일궈온 것은 아니다. 61세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해 64세에 졸업장을 땄고, 66세에는 서강대 경제대학원에 입학해 68세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단순히 학력을 쌓기 위한 흐름으로 보이겠지만, 그에겐 남다른 목표가 있었다.
“삼구아이앤씨는 다른 회사에 비해 중장년이 적지 않은 편이죠. 50~60대는 물론 70대도 꽤 있으니까요. 이분들을 접하다 보니, 다가올 백세시대에 고령 인력이 중요해지겠다 싶더군요. 평균 수명이 70세 전후였던 시절에야 60세에 은퇴하고도 그럭저럭 여생 즐기다 갈 만했겠지만, 요즘처럼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 시대에는 일 없이 버티기 어렵죠. 그런 고민과 메시지를 나누고 싶은데, 그냥 말하는 것보다 논문을 내면 더 힘을 실을 수 있겠더라고요. 후속 연구도 이뤄질 수 있고요. 근데 논문을 쓰려면 대학원에 가야 하고, 그전에 대학을 나와야 하잖아요. 당시 고졸 학력이 전부였던 터라, 예순 넘어 긴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었죠.”
보통은 학업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논문의 주제와 방향을 정하는데, 구 대표는 그 반대였던 셈이다. 어렵사리 졸업 시험을 통과했고, 손꼽아 기다리던 논문 작업에 착수했다. 최근에야 한국이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그가 고민을 시작한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학계의 움직임은 저조했다. 연구할 표본이나 참고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 난항을 겪던 차, 구 대표는 직원들에게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애초에 논문도 우리 회사 고령 직원들을 생각해 시작한 것이니, 결국 그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면 되겠더라고요. 먼저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설문조사를 계획했죠. 당시 담당 교수들이 우려했어요. 보통 답변 회수율이 10%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요. 요즘처럼 모바일을 활용하던 때도 아니니까요. 설문지를 꾸려 삼구아이앤씨에 다녔거나 다니는 70대분들에게 드렸는데, 600장 중 540장이 회수됐어요. 그것도 일주일 만에요. 덕분에 논문을 잘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나왔지만, 직원들과 함께 만든 결과라 말하고 싶어요.”
구 대표가 내놓은 ‘고령화 사회의 고령 인력 취업에 관한 연구’는 서강대 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우수논문상까지 받을 정도로 호평을 얻었다. 그는 당시 논문을 통해 임금피크제 및 건강 나이를 기준으로 한 정년제 도입 등을 이야기했다.
“근래 들어 정년 나이나 생산연령(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을 높이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기서 나아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개인의 건강 나이를 기준으로 노동력을 평가했으면 해요. 가령 내 나이가 팔십인데, 지금도 밖에 나가 땅도 파고 청소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나이라도 그게 어려운 분들이 있잖아요. 물론 그들에게도 단순노동 등 적합한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복지랍시고 그냥 돈을 주는 것보다는 소일거리라도 주고 소득을 얻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꼭 돈의 효용만을 따져서는 아니에요. 노인 스스로 일하고 노후를 개척할 때 자긍심과 보람을 얻을 수 있어요. 출퇴근을 하면 일상에 루틴과 활력이 생기고, 그렇게 노인의 심신이 건강해지면 역으로 복지비용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봐요.”
1등을 넘어 일류를 꿈꾸다
인터뷰 당일 아침 팔굽혀펴기 50개, 제자리뛰기 600개를 하고 나왔다는 구 대표. 논문에서 밝혔듯 자신 역시 고령 인력으로서 건강 나이 관리에 힘쓰는 모습이다.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뜻일 테다. 홀로 양동이와 걸레를 들고 다니며 식당 화장실을 닦던 청년이 4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업계 1위 기업의 총수가 됐다. 자수성가를 이룬 그에게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
“여느 기업가처럼 한때는 업계 1위가 되는 게 꿈이었죠. 그런데 2018년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고 그 꿈을 이룬 순간 목표를 재설정했습니다. 1등이 아닌 일류가 되자고 말이죠. 숫자로 정해지는 1등은 우리가 부진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일류가 지닌 품격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그 목표는 기업의 문화, 정신, 자세, 사회적 역할, 국가적 책임 등 모든 것을 아울러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구 대표는 30여 년 전부터 매년 회사의 경영지침을 새롭게 정한다. 2022년은 ‘한즉자주 수즉자거’(旱則資舟 水則資車)였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말로, 가뭄이 들 때 배를 준비하고 홍수가 나면 수레를 준비하라는 뜻이다. 올해의 경기 침체를 예견한 듯, 삼구아이앤씨 식구들은 그 지침에 따라 위기에 대비하는 한 해를 보냈다. 인터뷰 당시 2023년의 경영지침을 고민 중이었다. 내일 죽더라도 모레 일어날 일을 오늘 대비하겠다는 구 대표. 그런 그가 자신의 은퇴 시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궁금했다.
“요즘 하는 일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크죠. 나이 들었다고 그마저도 안 하고 은퇴한다? 그럼 아마 제 삶이 금세 망가질 것 같아요. 선친께서 말씀하시길 노인 근력 좋은 것과 겨울 날씨는 믿지 말랬어요. 그만큼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죠. 만약 내가 내일 없더라도 직원들은 출근을 하고 회사는 돌아가야 하잖아요.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들이 이곳에서 오래오래 미래를 설계하도록 토대를 만들어줘야죠. 그러려면 한시가 바쁜데 은퇴를 생각할 새가 어디 있어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자관이 세상 떠났대, 그런데 다음 날 삼구아이앤씨에 아무 문제도 없대. 그때야 비로소 제가 은퇴하는 날입니다.”
요즘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과거의 시니어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했다면, 요즘 시니어는 스스로의 인생에 충실하다. 경제력을 갖춘 이들은 자녀의 미래를 지원하면서도, 젊은 감성으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한다. ‘오팔 세대’라 불리는 이들 시니어의 우아한 인생을 들여다봤다.
요즘 시니어들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전쟁과 혹독한 불경기가 지난 뒤 태어나 사회적·경제적 성장을 이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시니어 삶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옛 시니어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지원하고 응원하지만 경제력을 갖춘 덕분에 이전 세대와 달리 풍요로운 노후를 즐긴다. 이들은 1958년 전후에 출생해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fe) 세대라고도 불린다.
오팔 세대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활발한 시간을 보내고, 빛의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오팔처럼 화려한 인생을 즐긴다. 자신을 가꾸고, 여가활동을 즐기면서 남은 노후를 우아하게 장식한다. 은퇴 전의 삶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목적이 강하다. 희소가치가 높은 것을 모으거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화려한 문화·예술활동을 즐기고, 재충전을 위해 호화스런 여행을 떠나거나 거친 레포츠에도 뛰어든다.
◇이제 한정판 구입도 거뜬하게
한상민(61세) 씨는 캠핑 마니아이자 한정판 수집광이다. 캠핑과 관련된 한정판 제품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비교적 저렴한 ‘실리웨어 티타늄 코펠세트’부터, 고가의 ‘힐레베르그 케론4GT’ 텐트까지, 최근 2년간 60여 개의 한정판 캠핑용품을 모았다. 최근에는 20만 원대 ‘조커 사냥용 나이프’ 한정판과 캠핑용품은 아니지만 스마트워치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구성된 297만 원짜리 ‘삼성전자 갤럭시 Z 플립 톰브라운 에디션’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한정판’ 수집은 대체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국내에 없는 상품은 해외 직접구매 사이트를 이용해야 하고, 판매가 완료된 상품은 온라인 중고카페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터넷 활용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옛 시니어들은 일반적인 수집을 취미로 즐기긴 했어도 한정판을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정판 수집이 시니어의 새로운 취미로 떠올랐다.
천연 원석 모으는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원석은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다. 각기 다른 색상과 모양 때문에 희소성이 꽤 높다. 보석보다 가격이 저렴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보석 가격이 워낙 비싸서 그런 것이지, 원석 가격이 절대적으로 싼 것은 아니다. 주로 파워스톤으로 사용되는 천연 화산암과 흑요석 같은 몇만 원짜리 원석부터 20만 원 안팎의 가넷 원석이 거래되고,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육박하는 다이아몬드 원석도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원석 전문점을 운영하는 윤정선 대표는 “원석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찾는 젊은 여성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나이 든 손님이 많이 방문한다”며 “시니어 손님들은 인체의 치유와 균형에 도움이 되는 원석을 집 안에 두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자수정이 방출하는 원적외선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논문이 있고, 동의보감에도 자수정을 사용해 병을 치료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사람이 내뿜는 기운이 다른 것처럼 원석도 각기 다른 파장을 방출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안목 기르려고 공부하다
정순철(62세) 씨는 정년퇴직을 한 3년 전부터 그림 경매 일정을 꼼꼼히 체크한다. 만족스러운 작품을 최대한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다.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안목이 부족하면 오히려 제값보다 비싸게 구매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예전에 규모가 좀 작은 옥션에서 위작인 줄도 모르고 사서 손해를 본 적이 있다. 이후 그는 옥션 구매를 하지 않는 날이면 전시회를 가거나 미술품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있다.
은퇴 후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미술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게 쉽진 않지만, 퇴직 후 여유가 생긴 터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시니어들은 보통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짜리 작품을 관심 있게 살펴보는데, 작품 값 외에도 15~20%의 구매수수료와 특송을 통한 배달료까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들은 가격보다 가치를 더 따진다. 감동과 행복감을 주는 작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귀는 어두워질수록, 더 좋은 음질을 원한다.” 오디오를 좋아하는 시니어들이 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청력이 점점 떨어지게 마련인데, 좋은 음질의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용 리스닝룸을 만들어 오로지 감상에만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후자에 속한다. 오디오를 즐기는 시니어는 좋은 음질을 즐기기 위한 최적의 구성을 늘 고민한다. 오디오를 취미로 삼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덴마크 ‘뱅앤올룹슨’의 무선 스피커 하나의 가격은 무려 270만 원에 달한다. 하이파이(Hi-Fi) 오디오의 구성 장비 중 하나인 파워앰프의 경우 미국 ‘제프롤런드’ 제품은 30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하이파이 오디오 구성 장비인 CD플레이어와 프리앰프, 파워앰프, DA컨버터, 튜너, 스피커 등을 모두 장만하려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기존 기기보다 두 배 더 비싼 장비를 들여놓는다고 해서 음질이 두 배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디오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취미로 꼽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백~수천만 원을 들여 원음의 재현율을 0.1%라도 더 높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계획하고 떠나는 여행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단체 패키지 여행 상품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의욕이 넘치는 요즘 시니어들은 젊은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자유 여행에 큰 관심을 보인다.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정신없이 움직이는 패키지 여행보다 직접 계획을 세운 뒤 떠나는 걸 더 선호한다. 이들은 평소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한 곳에 흥미를 보이지만,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여유로운 여정에 따라 움직인다.
취향이 뚜렷한 시니어들은 특별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초호화 기차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의 ‘트레인 스위트 시키시마’는 객실에 다다미 바닥과 전통적인 삼나무 욕조가 있다. 혼슈 동쪽 섬에 있는 온천과 고대사원 등을 방문하는 이 여행은 1인당 500만 원 정도가 든다. 또 아일랜드의 ‘벨몬드 그랜드 하이버니안’ 열차에서는 라이브 공연도 볼 수 있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더블린, 코르크, 벨파스트를 방문하는 이 여행의 비용은 1인당 350만 원 정도다.
보호자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은 여행도 혼자 떠난다. 일본 여행사 ‘클럽 투어리즘’이 내놓은 나홀로 여행객을 위한 맞춤상품은 50~70대의 신청만 받는다.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여행하려는 사람은 신청할 수 없다. 여성 전용 상품도 있어 남성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 이 상품은 온천, 꽃놀이, 미술관 투어, 크루즈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여행과 함께 사진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오팔 세대는 디지털 카메라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에 40대 안팎의 나이였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덩치 큰 DSLR보다 작고 얇은 ‘미러리스’와 아날로그 감성의 디지털 카메라 ‘라이카’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것. 디지털 카메라 조작에 익숙한 이들은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사진에 담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한다.
◇놀 줄 아는 오팔 세대
홈 파티를 열어 지인을 초대하는 시니어도 늘었다. 당일배송 서비스를 활용해 쉽게 식재료를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특히 마켓컬리의 경우 ‘레시피 골라 담기’를 통해 음식에 필요한 식재료를 클릭 한 번으로 살 수 있다. 가정간편식(HMR) 메뉴가 다양해져 홈 파티 음식을 대체할 수 있게 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동안 HMR은 바쁜 직장인이나 수험생이 메인 수요층이었는데, 이제는 시니어를 위한 보양식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홈 미팅 후에는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한다. 젊은 세대의 놀이터이자 공부방 역할을 해온 이곳에 시니어들이 발을 들이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 일. 심지어 커피숍을 찾는 시니어 손님이 늘자, 날계란이 들어간 쌍화탕을 메뉴에 추가한 곳도 생겨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스타벅스가 아니라 ‘실버벅스’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커피숍들이 시니어의 아지트로 바뀌고 있다.
이외에 산악바이크나 서핑 등 짜릿한 아웃도어 활동에 도전하는 시니어도 있다. 옛 시니어들은 힐링과 휴식이 목적이었다. 반면 도전적이고 체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요즘 시니어들은 성취감을 얻기 위해 레저나 스포츠를 즐긴다. 물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시니어도 많다. 이들은 피트니스, 요가, 필라테스 등으로 몸매를 가꾸거나 체력을 단련한다.
대한민국 1호 여성 시니어 보디빌더인 임종소(76세) 씨는 “허리 협착증을 앓던 중에 근육강화 운동을 해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좋아졌다”며 “이왕 시작한 거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한 결과 피트니스 대회에서 2위를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피트니스 외에도 왈츠, 탱고, 자이브 등 사교댄스를 배우고 있다”며 “매일매일이 바쁘고 즐겁다”고 덧붙였다.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기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한다.” 중장년을 위한 자기계발서 ‘비바 그레이’의 저자 홍동수(64) 씨가 말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공통점이다.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스쿠버다이빙, 승마, 요트 등 거의 모든 레포츠를 섭렵한 그에게 ‘젊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 “나이를 느껴본 적이 없다. 고로 나는 매 순간이 젊다.”
도움말 홍동수 ‘비바 그레이’ 저자
홍동수 씨와 같은 중장년을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라 부른다. 본래 이 말은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인 버니스 뉴가튼이 처음 사용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패턴이 가족 중심에서 여가, 자기계발 등 자기 중심으로 변화한 것에 착안한 용어다. 한국에서도 여가와 취미, 소비를 즐기며 사회생활에도 적극적인 50~60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줄곧 쓰인다. 액티브 시니어의 경우 과거 노인층과는 확실히 구분되며, 육체뿐 아니라 경제적, 정신적 측면에서도 혈기왕성한 성향을 띤다.
‘액티브’(활동적인)라는 의미처럼, 이들은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청년 시절보다 더 활발한 여가와 취미를 즐기고 있다. 홍동수 씨는 “레포츠 동호회에서도 직장생활로 바쁜 젊은 세대보다 시간 여유가 있는 시니어들이 반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활동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무엇일까? 첫째, 삶의 행복과 심리적 안정을 준다. 둘째,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사회적 혜택을 얻는다. 셋째, 신체적 여가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뭐래도 즐거워한다.
액티브 어덜트, 더할 나위 없이 놀자!
국내 최초 설악산 대청봉 패러글라이딩 및 샌드 요트 제작, 에베레스트 원정, 초경량 항공기 면허, 스쿠버다이빙 자격 취득, 그룹사운드 INDKY의 베이시스트 등등. 액티브 시니어 홍동수 씨의 활동 이력이다. 젊은이조차 엄두를 못 내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 더 쉽게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 덕분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나 신체가 아닌 마음가짐. 물론 취향의 차이는 있다. 시니어 레포츠 전문가인 그에게 사람들은 ‘어떤 액티비티를 즐겨야 좋을지’ 자주 묻는다. 이에 그는 ‘에니어그램’(Enneagram, 성격유형검사)을 기반으로 추천 종목을 정리해뒀다. 온라인이나 앱을 통해 ‘에니어그램’을 검색하면 손쉽게 자신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다음 궁금증, 바로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는 것. 장비의 경우 대부분 대여가 가능하고, 동호회 등을 통해 중고로도 구매할 수 있다. 활동보다는 고가의 장비 수집이 취미인 이들도 있어, 그야말로 자기 나름이다. 홍동수 씨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마련한 공식(?)을 내놓았다. ‘장비 구입비는 한 달 생활비 정도, 활동비(이용료, 입장료 등 하루 경비)는 하루 생활비 정도’로 계산하라는 것. 그의 경우 장비 구입비는 300만 원 선, 활동비는 하루 10만 원 선으로 보고 있다. 금액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지는 않는가? 홍동수 씨는 말한다. “레포츠는 돈보다는 열정과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최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각종 레포츠 모임이 주춤한 상태다. 그는 이때를 틈타 준비해둘 것이 있다고 조언한다.
“나이를 떠나 레포츠를 즐기려면 어느 정도 근력이 필요합니다. 집에서라도 조금씩 운동하며 기초 체력을 키우길 바랍니다. 건강하고 능력 있는 우리 시니어가 ‘잘 노는 사람’까지 된다면, 드디어 완벽한 인생을 누리는 첫 세대가 아닐까요?”
홍동수 씨가 권하는 상황별 레포츠
◇ 은퇴 후 부부가 함께하려면 ‘산악자전거’
산악자전거가 일반 자전거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외로 안전하다. 우리나라는 산마다 임도(산간 도로)가 잘 조성돼 있다. 이 길은 등산로와 다르다. 사륜구동차도 다닐 수 있다. 아내도 산악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건강해졌다. 산악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부부가 함께 전국일주도 가능하다.
◇ 럭셔리한 취미생활을 원한다면 ‘승마’
승마는 귀족 스포츠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말을 구입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부유한 이들도 말을 소유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 다양한 승마 체험의 재미가 있는데, 말을 사면 자기 말밖에 탈 수 없고 유지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정적이고 우아한 활동으로 여기기 쉬운데 의외로 격렬하고 체력소모도 심하니, 이 점 고려하자.
◇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땐 ‘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중장년이 꽤 많다. 하늘에 떠서 고요히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기 좋기 때문이다. 조절하기 나름이지만, 길게는 4~5시간도 공중에 떠 있다.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적인 레포츠다. 잠깐 교육만 받으면 스스로 바람을 살피면서 안전하게 제어가 가능해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일명 ‘버킷리스트(bucket list)ʼ라고 한다.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버킷리스트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실행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항목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서베이를 통해 시니어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여행, 취미, 관계·가족, 일·성취, 보람, 도전 등 총 7가지 주제로 나눠 알아봤다.
서베이 대상 브라보 동년기자단,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수강생, 낭랑18세 시니어 치어리더팀 등 50세 이상 남녀 140명(50대 61명, 60대 53명, 70대 이상 26명)
서베이 방법 주제별 버킷리스트 예시 항목 15가지 중 선택(중복 선택 가능) 및 그 외 항목이 있는 경우 별도로 작성
◇브라보 버킷리스트 상위 20위 목록
7가지 주제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여행’이다. 상당수 시니어가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제주 올레길 투어’ 등 제주 여행과 관련한 버킷리스트를 희망하고 있었다. “쉽게 이룰 수 있으니까”, “외국어 부담 없이 여행하고 싶어서” 등이 대표적인 이유다.
그밖에 혼자 여행 떠나기(27),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25), 캠핑카/크루즈 여행하기(18),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9) 등
운동이나 레포츠 등 몸을 쓰고 활동적인 취미보다는 배움, 글쓰기, 책 읽기, 전시회 관람 등 문화적, 정서적 활동을 원하는 이가 많았다. 아직 특별한 취미를 찾지 못해 ‘새로운 취미 갖기’(24)를 버킷리스트로 선택한 이도 적지 않았다.
그밖에 텃밭 가꾸기(21), 그림 관련 취미 갖기(19), 수영 배우기(16), 취미 동호회 가입(14), 수화 배우기(6) 등
가족을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항목들이 상위권에 올랐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애인 같은 친구를 만드는 등 새로운 관계 확장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휴대전화번호를 정리하거나 불편했던 관계를 해소하는 등 관계 정리에 관한 항목들도 눈에 띈다.
그밖에 외국인 친구 사귀기(21), 7명 용서하기(17), 휴대전화번호부 정리하기(15), 첫사랑에게 편지 쓰기(7) 등
제2직업을 향한 욕구와 더불어 전문 분야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포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자기 이름으로 책을 펴내고, 강연, 전시회를 여는 등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통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경향이다.
그밖에 귀농하기(15), 창업하기(12), 10년 후부터는 일 안 하고 놀기(8), 자격증 10개 따기(8) 등
버킷리스트 서베이 전체 항목 중에서 ‘재능기부’가 1위에 올랐다. 단순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기부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살린 사회적 활동에 관심을 두는 모습이다.
그밖에 장기기증 신청하기(16), 아프리카 봉사활동 가기(15), 봉사활동 1000시간 채우기(13), 유기견 돌보기(6) 등
건강하고 즐거운 일상을 추구하는 웰빙(well being)을 넘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등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다. 유언장 작성 등 웰다잉 관련 항목이 상위권에 올랐다.
그밖에 드레스 입고 파티하기(17), 세컨드하우스 짓기(14), 레스토랑에서 고급 코스요리 먹기(13), 주식·펀드 투자하기(12)
아직 버킷리스트가 없는 이들이 가장 빠르게 실행하고 이룰 수 있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버킷리스트 만들기’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순간 이미 한 가지 항목은 해낸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공모전 참가하기(14), 파격적으로 염색하기(13), 무인도에서 살아보기(7), 타투(문신) 해보기(6)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위한 7가지 방법
도움말 박창수 작가
하나, 원대한 목표를 먼저 정하라 ‘여행’이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목표는 유럽 배낭여행부터 서울 나들이까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돈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을 먼저 정해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의 경우 오랜 시간 머물게 되면 그만큼의 비용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여행 자금을 위해 적금을 든다거나 평소 걷기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등의 세부적인 목표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 귀농이나 창업 등 오래 준비해야 할 목록도 마찬가지다. 장기간 실천할 원대한 목표를 먼저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리스트를 차례로 적어나가자.
둘, 작은 목표는 매년 갱신하라 큰 목표가 담긴 버킷리스트와 작은 목표를 써놓은 버킷리스트를 따로 마련하고, 작은 목표 리스트는 매년 갱신한다. 원대한 목표만 적어놓고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의욕도 저하되고, 실천 의지도 약해진다. 한 해, 한 달 정도 투자해 부담 없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작성하자. 작은 목표들을 달성해나가며 얻은 자신감은 큰 목표를 이루는 데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셋, 유행에 편승하지 마라 버킷리스트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이뤄가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원하는 목표나 유행에 따라 버킷리스트를 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정말 뭘 원하는지, 어떤 것을 해야 만족도가 높을지 등을 깊이 생각해보고 진정 나만을 위한 목록들을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넷, 남의 눈치 보지 마라 돈이 많이 든다거나 스스로 주책없어 보이는 행동이라 여기고 가족이나 친구들 눈치를 보면서 버킷리스트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또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남에게 보였을 때 더 그럴싸하고 훌륭해 보이는 일들을 적곤 한다. 이른바 체면치레 때문에 시니어들의 버킷리스트를 보면 여행, 공부, 취미, 봉사 등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 물론 좋은 목표이지만, 그중에 한두 가지만이라도 나만의 개성과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것을 적어보면 어떨까?
다섯, 크게 쓰고 소문을 내라 자기 꿈을 소문내는 것은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혼자서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차일피일 미루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기분 좋은 속박(?)을 느끼는 편이 낫다.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되게끔 선언을 하거나 큰 종이에 적어 서재나 화장대 등에 붙여 자주 인식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타인은 물론 스스로와의 약속 이행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진다.
여섯, 1+1을 생각하라 나를 위한 버킷리스트이지만, 그것이 사회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예를 들어, ‘외국어 배우기’와 같은 단순한 목표를 뛰어넘어 ‘외국어를 배워 어려운 아이들에게 방과 후 재능기부하기’ 등 이웃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법까지 생각해본다면 더욱 뜻깊은 버킷리스트가 될 것이다.
일곱, 버킷리스트에는 점수가 없다 목표로 정한 버킷리스트를 꼭 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상처받지 말자. 물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을 했을 경우에 말이다. 버킷리스트는 숙제나 시험처럼 누군가에게 검사받고 평가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일인 만큼 부담 갖거나 서두르지 말고 목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길 바란다. 무엇을 이뤘느냐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발걸음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독자제보 브라보 버킷리스트 랭킹 20위 안에 해당하는 버킷리스트에 도전해 이뤄내신 분들을 찾습니다. 제보할 이야기가 있으신 분은 bravo@etoday.co.kr로 접수 부탁드립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높이 치솟은 팜트리, 그리고 역동적인 태평양 바다까지. 캘리포니아만큼 여름과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비키니 차림으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미녀들과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 이 모든 것을 시니어가 함께 즐겨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곳.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액티비티 시니어들의 천국이다. 꼭 비키니에 서핑이 아니라도 좋다. 패들보드 위에서 우아한 요가는 어떤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는 플라이 피싱은? 와인과 치즈가 담긴 피크닉 바구니와 담요 한 장이면 되는 로맨틱한 음악회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색다른 것에 대한 도전은 늘 그렇듯 삶의 행복지수를 높여준다고. 캘리포니아 시니어들의 이색 여름나기를 소개한다.
◇ 플라이 피싱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이 담긴 영화 을 본 사람이라면 플라이 피싱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플라이 피싱은 곤충처럼 보이는 미끼(플라이 훅)를 날려 보내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다. 진짜 벌레인 것처럼 얼마나 자연스럽게 날리느냐가 중요한데 그래서 필요한 기술이 바로 캐스팅이다.
캐스팅은 플라이 피싱의 백미다. 허공을 가르며 부드럽게 S자 형태의 루프를 그리는 모습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주에서 몇 안 되는 한인 플라이 피싱 전문가인 캐시 김(55)씨는 플라이 피싱이야말로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플라이 피싱은 과격한 몸놀림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이킹이 동반되는 만큼 등산을 즐기는 시니어라면 금상첨화다. 또 물속을 걸어 다녀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몸의 밸런스를 길러주며 하체와 허리 근력을 강화시킨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길러주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플라이 피싱은 단순한 레저 스포츠를 넘어선, 자연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것이 캐시 김씨의 설명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한 번 배우면 평생 즐길 수 있다는 점, 인조 미끼인 아티피셜 플라이(artificial fly)를 사용하는 친환경 스포츠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플라이 피싱은 1년 내내 가능하다. 강, 계곡, 호수, 바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지만 바다는 캐스팅 거리가 좀 더 길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골프에 입문하듯 플라이 피싱을 처음 배울 때는 전문 강사에게 받는 것이 좋다. 두세 시간 기본 매듭과 캐스팅만 익히면 바로 출조(出釣)가 가능하다. 입문 한 달이면 캐스팅을 통한 짜릿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필요한 장비로는 낚싯대인 플라이 로드(fly rod)와 손잡이의 감는 틀인 릴(reel), 낚싯줄 라인(line) 등이며, 물속에서 입는 옷과 신발 등도 구입해야 한다. 총비용은 1000달러 안팎. 부담 없는 가격은 아니지만 한 번 장비를 구입하고 나면 더 이상의 장비 구입 없이 평생 즐길 수 있다. 플라이 로드는 잡으려는 어종과 장소(호수, 바닷가, 강, 계곡, 시냇물 등)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로드와 릴, 라인과 훅 등이 서로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대부분 지역의 플라이 피싱 전문 매장에서 1회 기본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와 출조가 포함된 패키지도 선보이고 있다. 1회 레슨은 보통 50~100달러(약 5만~10만원)인데 장비 대여비가 포함된 가격이다. 또 미국에서 낚시를 하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1일 면허는 13달러,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면허는 55달러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플라이 피싱 출조를 오고 싶다면 캐시 김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플라이 피싱 전문 자격증인 FFF(Federation of Fly Fishers Certified Casting Instructor)와 캘리포니아 가이드 자격증(California Guide license)를 소유하고 있다.
◇ 한여름 밤의 야외 콘서트
오렌지카운티 풀러턴에 거주하는 한인 리처드 김(65)과 줄리 김(62) 부부는 여름이면 야외 콘서트를 즐겨 찾는다.
몇 해 전 LA 대표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 음악회에 갔다가 여름밤을 즐기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부부의 특별한 취미생활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멀리 LA까지 가지 않아도, 큰돈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30년 넘게 살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동네 공원의 야외 음악회도 찾아냈다. 인근 시티홀 잔디밭에서 매년 여름 주민들을 위한 ‘섬머 콘서트’가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이제 부부는 자동차 트렁크에 캠핑 의자와 담요를 늘 넣고 다닌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 들고, 또 어떤 날은 시원한 캔맥주를 사들고 간다. 그동안 몰랐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여유다. 김씨는 30년간 운영하던 자동차 정비소를 정리하고 은퇴하면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정식으로 야외 음악회 동호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소란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부담스럽다면, 여름 한철 이보다 더 좋은 여가생활이 있을까? 소박한 바구니 안에 샌드위치와 치즈, 와인 한 병만 가져가면 된다. 단 분위기가 생명인 만큼 와인잔은 잊지 않는다(깨질 걱정은 없다. 미국에서는 유리잔처럼 생긴 야외 와인잔을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피크닉 바구니를 든 남편과 담요 한 장을 품에 안은 아내, 노부부가 손을 잡고 근처 공원으로 가는 모습은 미국에서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부터 9월까지 캘리포니아에서는 낭만 가득한 야외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에서부터 동네의 작은 공원까지, 클래식 공연에서 무명의 밴드까지, 규모도 내용도 출연진도 다양하다.
LA의 대표적인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을 비롯해 ‘샌타바버라 볼(Santa Barbara Bowl)’, 인랜드 ‘레드랜즈 볼(Redlands Bowl)’ 등은 캘리포니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야외 공연장이다. 이들 모두 공연을 감상하면서 음식과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피크닉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공연 전에 미리 찾으면 여유 있는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공연에 따라 티켓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할리우드 볼의 경우 출연진에 따라 1000달러(약 100만원)를 호가하기도 하지만 종종 5달러짜리 티켓이 나오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무료 관람의 기회도 제공된다. 뒤편 언덕이든 잔디밭이든 음악이 들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즐기면 된다. 담요 한 장과 치즈 한쪽, 와인이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밖에 또 다른 캘리포니아 관광명소인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 게티센터(The Getty Center), LA카운티 박물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은 여름철 무료 공연으로 유명하다. 평소 콘서트 일정을 살펴두면 수준 높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샌디에이고 발보아 공원(Balboa Park),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시티홀의 섬머 콘서트, 롱비치 엘도라도 공원 등도 매년 여름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 패들보드
하와이 원주민들이 섬을 건널 때 통나무에 올라서서 노를 젓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패들보드. 공식 명칭은 SUP(Stand up Paddle)다.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여름 레포츠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인 패들보딩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액티브 시니어들 때문이다. 패들보딩이 주는 놀라운 운동 효과와 적당한 스릴이 시니어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포트 비치의 시니어 패들보드 클럽은 보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운동이라고 소개한다. 기본자세가 관절염 예방과 척추교정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보딩을 하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 어깨와 허리 등 전신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관절과 근육이 튼튼해진다.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서는 것이 관건인데 보통 한두 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일어선 후에는 패들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는 스킬만 익히면 된다. 패들링에 익숙해지면 이때부터는 이리저리 물살을 가르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구명조끼를 착용할 수 있어 수영이 익숙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패들보드는 바다뿐만 아니라 강, 호수, 연못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사실 보드가 익숙해지면 타는 방법도 ‘내 맘’이다. 앉거나 무릎을 꿇고도 가능하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패들보드와 요가, 헬스트레이닝을 접목시킨 신종 레포츠도 등장했다. 특히 패들보드 위에서 요가를 하는 ‘SUP 요가’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하는 운동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핫’한 레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패들보드도 진화하고 있다. 하드보드가 아닌 공기주입식 보드를 개발해 부피를 줄여 휴대가 가능해졌고 밑바닥에 LED 조명을 장착한 나이트서프도 등장했다. 밤바다를 훤히 들여다보며 보딩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캘리포니아에서 패들보드는 바닷가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다. 해변마다 패들보드 대여소가 있어 시간당 10달러(약 1만원) 선에서 대여할 수 있고, 패들보드 요가나 헬스트레이닝은 클래스당 30~40달러 (약 3만~4만원) 선에서 즐길 수 있다.
◇ 펫시터
취미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미국의 직업 안내 포털사이트 트레이드 스쿨(Trade School)에서는 애완견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시니어들에게 ‘펫시터’에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동물과의 교감으로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여자와 개의 천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정도로 개 사랑이 유별나고, 관련된 이색 직업도 많다. 뷰티밴(출장미용트럭), 도그위스퍼러(심리치료사), 펫시터(Pet Sitter), 도그 워커(Dog Walker) 등이 있는데 뷰티밴, 도그위스퍼러, 도그워커 등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하지만 펫시터는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 휴가기간 중 반려동물을 돌봐줄 펫시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도 넓다.
미국에서는 로버닷컴(Rover.com)이나 도그베케이(DogVacay) 같은 펫시터 중개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있다. 도그베케이에는 3만 명에 달하는 펫시터가 활동하고 있다고. 실제로 이들 사이트에서는 은퇴 후 무료했던 삶이 펫시터를 시작하면서 즐거워졌다는 시니어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펫시터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소개서와 사진, 기르고 있는 반려동물 사진을 넣어 프로필을 작성한 뒤 운영진에게 보내 승인이 나면 펫시터로 등록된다. 이용자들은 등록된 펫시터들의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최고 시설의 도그 호텔보다 자신의 반려견을 손주처럼 돌봐줄 펫시터를 찾는 반려인이라면, 시니어 펫시터는 선택 1순위가 될 것이다.
펫시팅 가격은 경력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시간당 10~20달러(약 1만~2만원), 1일 맡길 경우는 50~100달러(약 5만~10만원)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