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펨테크’(femtech)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을 합친 말로,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기술과 서비스를 말한다. 국제시장정보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는 세계 펨테크 시장 규모가 2020년 225억 달러(약 26조7000억 원)에서 2027년에는 650억 달러(약 77조3000억 원)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초기 펨테크 시장은 월경, 임신, 수유 등 젊은 여성 타깃이었으나, 최근 중년여성 건강이나 갱년기 등을 테마로 한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해외 펨테크 시장 정보 플랫폼 ‘펨테크 애널리틱스’(FemTech Analytics, FTA)에 따르면, 지역별 펨테크 기업 수는 북미(52%)가 1위, 유럽(24%) 2위, 아시아(14%) 3위로 타나났고, 국가별로는 미국이 49.1%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해외에서는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라 월경, 임신, 난임, 갱년기, 피부미용, 건강 등을 중심으로 펨테크 서비스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FTA가 펨테크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Global FemTech Survey, 2021) 결과 펨테크를 이끄는 주요 트렌드 1, 2위로 ‘난임과 임신’(36%), ‘갱년기’(27%)가 뽑혔다. 한때 팸테크 시장의 주류를 차지했던 ‘월경’(19%), ‘성’(17%) 문제 등을 제치고 ‘갱년기’가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수명 연장과 더불어 늘어난 폐경 이후의 삶이 이러한 결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내용을 살펴보면, 갱년기 증상 모니터링을 통한 개인 맞춤형 치료와 상담이 주를 이룬다. 아울러 여성호르몬 감소와 폐경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응하는 개별 정보 제공과 지료를 통한 증상 완화를 지원한다. 또, 안티에이징에 초점을 맞춘 미용 시술 등에 대해 원격 진료와 처방약을 배송해주기도 한다. 해당 앱 등을 통해 증상이나 병력 등을 입력하면 전문가의 상담을 거쳐 처방약을 배송 받을 수 있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수고와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펨테크 서비스인 ‘카리아’는 앱을 통해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해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한 방법 들을 제안한다. 아울러 사용자의 일상생활을 기록, 분석해 전문 영양사의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하거나 인지행동요법 등을 소개해 증상 완화를 돕는다. 또, 안티에이징 분야에 대한 원격 진료와 처방약을 배송하는 ‘뉴알엑스’, 폐경 전후 신체적, 심리적 건강관리 및 주름, 검버섯 등 개인 맞춤형 화장품을 배송해주는 ‘로리’ 등도 주목받는 서비스다. 이밖에 미국의 ‘버추헬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노화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 중이며, 싱가포르의 ‘엘로케어’는 복약 시기를 놓치거나 약물을 과다복용 하지 않도록 돕는 모니터링 기기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 역시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월경주기를 고려한 개인 맞춤형 스킨케어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국내 펨테크 현황은?
아직까지 국내 펨테크 산업은 월경주기 관리나 여성용품 등 월경 케어나 임신, 출산 전후 관리 및 육아 등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즉, 중장년만을 위한 펨테크 서비스는 미국 등과 비교하면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유방암 정보 및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루닛케어’를 비롯해 비대면 진료 및 처방약 배송을 지원하는 ‘닥터나우’, ‘올라케어’, ‘닥터콜’ 등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건강 관련 서비스는 적지 않다. 해외 펨테크 서비스의 초창기 모델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점차 그 수요에 따라 관련 서비스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김도연 연구위원은 25일 발표한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 펨테크’ 보고서를 통해 “최근 디지털 헬스 케어 서비스를 확대하는 국내 보험사들은 여성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솔루션 개발을 통해 서비스 차별화가 요구된다”며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는 건강 상태 분석을 통한 운동과 식단 추천, 멘탈 케어가 일반적인 형태이며, 여성 고유의 건강 특성은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종합적인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여성 호르몬 변화를 고려한 건강관리 지원 역량이 플랫폼 이용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능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다재다능한 종합예술인 홍서범이 오랜만에 본업인 음악으로 돌아왔다. 지난 3월에 그가 발표한 신곡은 ‘월든에 놀러간 니체’라는 다소 프로그래시브한 제목이다. 노래 내용도 제목 그대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연 속 삶을 통해 물질주의를 비판한 명저 ‘월든’을 쓴 월든 호수에 ‘신의 죽음’과 실존의 중요성을 외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찾아간다는 내용의 노래. 누가 봐도 보통 사람이 생각할 발상은 아니다. 그러나 홍서범에게 평범한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신곡을 통해 다시금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그를 만나 독특한 인생관을 들어봤다.
“대중음악은 다양해야 하고 본인 생각이 담겨야죠. 인기만 쫓는 건 창작자로서 할 일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아이돌처럼 대 히트를 할 것도 아니고…. 가요계에 데뷔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예전 록 스피릿으로 돌아가서 음악도 옥슨답게 하자 싶었죠. 가사도 나이 들어서 사랑 타령 하기도, 이별 노래 하기도 그렇고…. 대신 내가 삶에서 느꼈던 거, 내 생각의 중심이 뭔지 정리해서 발표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월든에 놀러간 니체’예요.”
홍서범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과 니체의 철학이 자신의 중심을 잡아줬다고 말한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삶의 본질에 대해 묻고자 출세를 접고 스스로 자연으로 들어갔다. 니체 또한 스위스 질스마리아의 호숫가에서 요양을 하며 저 유명한 영원회귀 사상을 정리했다. 두 사람의 우연한 공통점은 호수에서 자신의 대표적인 사상을 만들어냈다는 것. 홍서범은 그 두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니체가 월든 호수에 갔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그 상상을 오롯이 노래로 만든 것이다.
홍서범을 통해 월든 호수를 만난 니체
노래의 비하인드를 들으니 과연 홍서범다웠다.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한다.
“‘넌 왜 이렇게 안 되는 음악만 하냐’와 ‘이런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는 게 반갑다’였죠. SBS PD 했던 분은 ‘서범아 넌 이제 대중성 있는 것 좀 해라, 실험적인 음악 그만하고’라고 하시고, 저를 아는 분들은 ‘뭐 어차피 네가 할 음악 하는구나’라고 말하더군요.(웃음)”
자신의 음악을 누가 뭐라고 하든 관철한다는 게 그의 완고함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요즘 아이돌은 어떨까? 혹시 그의 기준에 벗어나는 거슬림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예상외로 그는 요즘 아이돌에 대해 무한한 긍정을 표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고 미국 팝 음악이 들어오면서 미8군 출신 가수들을 통해 급격히 발전했거든요. 일본은 처음에는 영미 팝을 따라가다가 자기들 특유의 제이팝을 만들었어요. 물론 일본은 워낙 인구도 많고 다양해서 수준이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혼란기가 있었던 게,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제이팝을 많이 베꼈어요. 일본 음악이 금지였을 때 양심 없는 작곡가들이 많이 표절했죠. 그러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그쪽으론 못 간 거지. 그래서 다시 미국 팝을 추구한 거죠. 그런데 거기에 우리 민족 특유의 음악성, 표현력, 특유의 한이 블랙 뮤직 이상인데, 그게 더해져서 성공했다고 봐요. 이 짧은 시간에 빌보드를 점령할 정도니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우수성은 저도 감탄하고 있어요.”
그는 주변을 봐도 노래와 악기 연주를 너무 잘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감탄했다. 더구나 디지털 문화가 보급되면서 과거보다 쉽게 원하는 걸 접하고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우리 때는 소위 음반을 구해도 ‘빽판’이었고 악보도 없이 귀로 들어서 코드를 땄어요. 그러다 보니 이 팀 저 팀 코드가 다 다르고.(웃음) 지금은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죠.”
가장 싫은 것은 주변에 민폐 끼치는 것
최근 음악 트렌드에 대한 홍서범의 평가를 들으니 자연스레 후배 양성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쳤다.
“게을러서 사업 쪽으론 관심이 없어요. 주변에선 그 정도 노하우 있으면 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사업 재능이 없어요. 유혹은 많았죠. 하지만 그런 거에 혹해서 나도 해볼까 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줄까봐, 스스로 판단해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나도 할 일이 많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수만이 형 대단하고 박진영도 대단해요. 음악도 잘하지만 사업도 잘하니까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다. 지금 시대에 아이돌 같은 후배를 대중가요 시장에 맞게 체계적으로 양성하려면 기본 자산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그렇다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 사업이 잘 안 되면 투자자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 그가 사업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기준과는 너무나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통해 7080 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싶어
그럼에도 홍서범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자유롭게 살길 바라는 그가 그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7080 문화로 전국 투어 하고 해외 투어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막혔죠. 이제 새롭게 해야 할 것 같아요. 7080 문화의 새 콘텐츠로 뮤지컬 같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작가도 있어야 하고 투자자도 있어야 해서 보통 일은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공연할 때 나열식으로 차례대로 노래 부르고 내려오는 건 이제 끝났고, 그때 음악과 그때 사건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그 단계예요.”
7080을 위한 장기 공연 문화이면서 기존과는 다른, 뮤지션도 좋고 관객도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판단은 비슷한 시대를 산 가수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조용필조차 자신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현재 7080 뮤지션들의 공연 문화가 너무 일방적이라 답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맞아요. 제가 시놉시스를 짠 후 작가를 불러서 이런 내용으로 써보라고 한 적 있어요. 그랬더니 ‘형, 이거 하려면 투자 많이 받아야 하고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도 모르는데’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일단 써놔야지!’(웃음)라고 타박했죠. 앞으로 7080이 가야 할 길은 그쪽이에요. 새로운 문화를 자꾸 만들어서 방향을 바꿔야죠.”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의 고충 이해돼
홍서범이 활동했던 7080으로부터 세월이 흐르면서 가요계도 가수들도 바뀌었다. 완제품으로 시장에 나와야 하는 요즘 세대 가수들과 달리 그의 세대 가수들은 데뷔 후에 연습도 겸하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그는 노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가수들과 달랐다.
“저는 노래를 어떻게 해야 잘할까가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의 완성도를 중요시했어요. 솔직히 노래를 만든 후에 녹음할 때가 되어서야 처음 불러본 노래도 있었죠. 노래는 신경 안 썼던 거지. 그래서 초창기에는 노래를 불렀다기보다는 샤우트를 했어요. 감성 표현 같은 게 약했죠.”
음악을 종합적으로 보는 그의 관점은 가창자로서의 가수보다는 프로듀서와 흡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에 대한 비판에도 한편으론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떨 때는 나보다 노래 잘하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지?(웃음) 이런 경우도 생길 테고. 그렇다고 ‘정말 잘하시네요’라고만 말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방송이라 뭔가를 해야 하니까. 어려워요, 남을 평가한다는 건. 해본 사람만 알지. 저는 못 할 거 같아요. 그리고 프로들이 무대에 올라도 스트레스가 큰데 아마추어면 더 심하겠죠. 오래 준비했는데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있으니 평소의 70%만 해도 성공이라고 봐요. 그것도 멘탈 싸움인 거 같아요. 웬만하면 칭찬도 많이 해줘야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
홍서범은 한국식 나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강조하는 자신의 나이는 만 62세다. 환갑을 넘긴 그에게는 잘 노는 게 잘 사는 거라는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유쾌하게 살다 가자, 나에게 주어진 대로 즐길 수 있는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이에요. 물론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민한다고 풀리지도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아니면 내 능력 밖인가’ 판단하는 게 중요해요. 능력 밖인 고민은 접는 거예요. 그런데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럼 해보는 거죠.”
한마디로 그는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이 아니다. 그 덕분인지 유독 피부가 좋아 보였고, 살도 안 찌는 듯했다.
“체질도 그렇지만 가만히 한자리에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운동도 많이 하고. 옛날에는 축구를 많이 했고 지금은 배드민턴을 일주일에 한 번 쳐요. 틈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에 가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살이 찔 수가 없지. 피부도 땀을 많이 흘리니까 좋은 거 같네요. 등산처럼 혼자 하는 게 가장 운동이 많이 돼요. 즐겨 찾는 산은 북한산입니다. 코스도 많고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무한긍정과 힘찬 에너지, 자유로움
홍서범의 성격을 지금까지 들여다봤으면, 그가 소위 관계 정리에 대해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정리한다?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만날 사람은 만나고 안 만날 사람은 안 만나게 되는 거죠.”
그가 참여하고 있는 연예인 모임이 꽤 많다. 공놀이야(축구), 콕놀이야(배드민턴), 산놀이야(등산), 큐놀이야(당구), 휠놀이야(자전거), 술놀이야(음주)까지 총 6개. 그중 공놀이야에만 쉰 명 이상 가입되어 있다. 그런데 활동할 때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안 나오는 사람도 있기 마련. 그래서 관리를 맡고 있는 후배가 안 나오는 회원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홍서범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참여할 상황이 못 되니까 못 하는 거지. 만약 걔네를 내치면 내쳐지는 사람 기분이 어떻겠냐. 놔두면 적당한 때 돌아온다. 언제든지 문을 열어놔야 들어올 게 아니냐. 한번 인연 맺었는데. 그리고 참여 안 한다고 우리한테 해 되는 거 있어?”
그 말을 들은 후배는 할 말이 없었다. 홍서범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는 사례였다.
뭐든지 푹 빠져 사는 남자
홍서범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는 어떤 사람은 평생 갖지 못할 후회 없는 자유에 대한 확신이 이미 있었다.
“니체 형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정말 좋은 말씀이 ‘다시 살고 싶도록 그렇게 살아라’예요. 그럴 정도로 살아야죠. 어제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북한산에 갔어요. 다들 대기업 사장 하다 명퇴했는데 삶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 날이 70대 중반까지면 이제 10년밖에 안 남았어요. 원 없이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시간이 너무 짧더라고요. 그러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노는 게 남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하니 걔네들이 ‘야, 난 매일 놀아’라고 대꾸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야, 그렇게 놀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빈둥빈둥 노는 건 진짜 무료해’라고 답해줬죠. 무료함이 인생 최대의 적이에요.”
그가 심심하고 지루해하는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아마 10년 후에도 그는 니체를 월든 호수로 불러들인 것처럼, 또 다른 독보적이고 독특한 노래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유쾌한 종합예술인 홍서범의 인생이 보여줄 무료하지 않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베테랑 연기자이자 30년 넘는 경력의 라디오 진행자, 예능 MC로 종횡무진하는 탤런트 김성환(72)을 실제로 보면 칠순을 넘긴 나이를 쉬이 믿기 힘들다.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젊음이 분명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과 젊음에 대해 겸손하게 부모님께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얼굴에 뭔가 바르는 걸 싫어해서 로션도 잘 쓰지 않고 운동도 걷기 위주로 한다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타고난 선물이 부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부모님께 받은 ‘선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성공한 방송인이자 가수, 노인의료나눔재단 이사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 김성환에게 지금의 삶을 만든 해법과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탤런트 김성환을 바쁘게 만드는 일에는 노인의료나눔재단이 있다. 처음에는 홍보대사를 하다가 2018년부터 노인의료나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기 때문이다. 노인의료나눔재단은 1년에 30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시니어들의 무릎 수술비를 지원하는 공익 재단이다. 주로 저소득층 시니어, 연고자가 없거나 홀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그 지원 대상이다.
어르신들과의 계속된 접점, 이사장까지 되다
“탤런트를 하면서 교양 프로그램, 노래 등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해서 어르신들과 인연이 많았죠. 저도 고향이 시골이라 농사 등 어르신들의 생활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MBC ‘고향이 좋다’에서 20년 넘게 MC를 하기도 했어요. 하다 보니 어르신들과 접촉이 많았고, 많이 알게 되고, 어르신들이 저를 좋아하시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 위하는 일이 뭘까 관심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한노인회 홍보대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인연 덕분에 노인의료나눔재단 홍보대사도 하게 되었죠.”
그는 요즘도 대한노인회 홍보대사 일을 겸하고 있기에, 보건소나 경로당에 가면 그의 사진이 있는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김성환은 시니어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밀접하게 접하는 연예인일 것이다.
“노인의료나눔재단 홍보대사 일을 하다 보니 열 분의 이사님이 만장일치로 저를 이사장으로 추대해주셨죠. 저보다 먼저 이사장을 맡았던 분들이 다들 쟁쟁하신 분들인데, 영광일 뿐입니다.”
30여 년간의 라디오 DJ 생활
김성환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동시에 스스로도 현재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연기와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53세에 경기대학교에 진학한 일 또한 그렇다.
“10년 동안 다녔어요. 탤런트 김영철과 함께 들어갔죠. 열심히 해서 예술학 박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큰 일이 대학교 다닌 일과 라디오 방송을 30년 동안 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처음 맡은 라디오는 KBS의 ‘세월 60년 노래 60년’이었다. 5년 동안 KBS 라디오에 몸을 담았던 그는 교통방송(현 TBS)이 개국하자 이적하여 작년 11월까지 무려 26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했다. ‘9595쇼’, ‘서울 부르스’, ‘비바 트롯’ 등을 맡았던 그는 TBS 라디오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다. 그는 이러한 장수 방송인의 비결에 대해 단순히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열심히를 넘어 죽기 살기로 해야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게만 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뭐든지 죽기 살기로 해야 해요. 거친 표현이지만 모든 것을 죽기 살기로. 라디오를 30년 이상 한 것도, ‘고향이 좋다’를 20년 넘게 한 것도, 경인방송 ‘성인가요 베스트 30’을 7년 한 것도 그랬어요. 뭐를 하나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열심히,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죽기 살기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열심히 해야지 대충 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이 10을 줄 때 나는 20, 30을 준다는 다짐과 여유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그 사람도 나를 믿고 함께할 수 있거든요.”
그는 방송을 10년 하려면 삼위일체가 아니라 오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잘해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고, 운이 좋아서 프로그램이 사랑을 받아야 하고, 부지런해야 해요. 10년, 20년, 30년이란 세월 동안 방송을 한다는 건 정말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야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김성환은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보고 살았다. 제주도에 가서 쉬면 방송이 펑크 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과거에는 부산조차 못 갔다. 이제는 KTX가 있어 가능해졌지만. 교통방송에서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17년 동안 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모든 걸 다 바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 넘은 그의 노래
인생은 자신의 모든 걸 방송에 바친 김성환에게 또 다른 선물도 주었다. 바로 가수로서의 성공이다. 유튜브에서 김성환의 이름을 치면 그가 가수로 공연한 방송 클립들이 나오는데 그 조회수에 놀라게 된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올린 동영상이 대표곡 ‘묻지마세요’를 포함한 그의 히트곡 메들리인데 1030만 회에 달하니,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한 명이 그의 공연을 봤다는 얘기가 된다.
“1997년에 ‘거시기 인생’이라는 노래를 드라마에서 부르면서 히트를 쳤죠. 어르신들이 좋아하셔서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에서 부르게 됐어요. 물론 본격적인 가수라기보다는 탤런트 중 노래 좀 부른다는 쪽이었는데, 2014년에 발표한 ‘묻지마세요’가 아주 행운이었죠. 이 노래는 원래 진성 씨 노래였는데 팬이 생긴 인기 좋은 노래가 됐어요.”
그가 ‘묻지마세요’ 이후 밀고 있는 노래는 ‘보고픈 친구야’다. ‘묻지마세요’의 작곡가 이충재가 그에게 직접 가사를 써보라고 해서 가사도 자신이 직접 썼다. 나이를 먹으면 친구밖에 없다, 친구 하나를 제대로 사귀면 평생 최고라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노래다.
“제 노래가 아무나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예요. 가수가 한 곡 히트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세 곡이 히트한 걸 보면 가수로서도 성공했다고 봐야겠죠?(웃음)”
‘미운 놈이 되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을 지키다
막힘없이 술술 풀리는 이야기에 김성환이 변죽이 좋은 걸로 유명하다는 게 떠올랐다. 그 스스로도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소질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 때문에 애로사항도 있었다고 한다.
“제가 얼굴과 행동과 말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방송국에서 역할을 줄 수 없었어요. 재미있는 역할을 주려고 하면 얼굴이 잘생겼고, 얼굴이 잘생겨서 주인공을 주려고 하면 사투리가 막 튀어나와서 주인공 같지 않으니까. 군대에 있을 때 사투리를 고치고 공부해서 제대 후에는 다양한 역할을 맡았어요.”
좌절할 수도 있었던 젊은 날 고민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기회로 만든 점이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 그간 방송인이라는 직업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행적을 보면 멘탈 관리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 자랑스럽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누구와도 싸워본 적 없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아버지께서는 ‘미운 놈이 되면 안 된다’라고 자주 말씀해주시곤 했어요. 왜 그런 말씀을 자꾸 하실까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가슴에 와 닿더군요. 저는 성격도 그렇지만 ‘미운 사람이 되지 말자’가 인생 모토예요. 괜히 미운 사람으로 보이겠냐 싶은 거죠. 다른 사람에게 왜 미운 사람으로 보일까요? 말 한마디에 미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천 냥 빚은 못 갚아도 미운 사람이 되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새긴 그의 인생 모토는 ‘말 한마디 때문에 다투지 말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를 흉봐서도 안 되고 헐뜯어서도 안 되고 탓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깨달음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나를 닮으라는 얘기는 안 하지만, 절대 미운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자식과 부모 간에도 하기에 따라 밉거나 존경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기 손으로 탈락시킨 냉정한 아버지
그러고 보니 김성환의 둘째 아들(김도성)은 연기자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입학한 재원인 아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와 연기자가 되겠다고 하자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말려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니까요. 방송은 정말 힘들다고 충고했지만 결국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예술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는 본인이 연기자였기에 연기에서만큼은 냉정한 아버지였다. 그가 심사를 보게 된 KBS 탤런트 공채에 아들이 지원했었다고 한다. 20명을 뽑는데 3만 명이 지원한 치열한 경쟁의 장이었다. 그는 아들의 연기자 심사를 보고 1차에서 탈락시켜버렸다.
“아들이 아버지 맞냐고 묻더군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탤런트를 뽑는지, 어떻게 탤런트가 되는지 네가 알아야 한다면서 심사 과정을 알려줬어요. 정말 힘들거든요. 대사 외우기, 노래, 운동, 특기, 악기 사용, 성실함 등등. 저도 50년 했지만 정말 힘든 게 이 길이에요.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길이죠.”
싫어하는 말은 ‘졸혼’, 그리고 부부관계의 해법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부부로 황혼을 지내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부부관계가 원만한 비결로 서로에 대한 배려를 들었다.
“뭐든지 일방적인 게 없어요. 내가 아무리 잘했어도 상대가 잘했다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잘 안 된 거죠. 반면 ‘저 사람이 열심히 살면서 밖으로 많이 돌고 집안일을 안 도와주는 거 같아도 나에겐 소중한 사람이다’ 싶으면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라는 게 서로 잘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어요. 섭섭할 수 있고, 권태기 때문에 싫어질 수도 있어요. 요즘은 헤어지는 게 다반사 아닙니까.”
그는 너무나 싫어하는 단어가 졸혼이라고도 했다.
“백일섭 형님에게도 이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겠다 해놓고 조금 싫다고 헤어지면 되겠느냐’ 했더니 ‘누가 헤어지냐? 누가 이혼한다냐? 조금 떨어져 있겠다는 거다’ 하시더군요. 남진 형님은 ‘그것도 괜찮다’ 하시는데 나는 끝까지 그건 안 된다고 했어요. 아이가 없거나 주변인이 없으면 그럴 수 있죠. 지금 사는 게 나 혼자만이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남들 눈이 있으면 못 하는 일이 있죠. 하물며 내 자식들이 보고 있는데, 자식들이 괜찮다 해도 부모로선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누구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것은 또한 김성환이 계속 지켜온 사람에 대한 예의, 타인을 위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는 그는 자신만의 길을 올곧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꿋꿋이 걸어갈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현재 서울 위례 신도시에 있는 남성대 쌍둥이 골프 연습장은 골프인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규모도 크고 훌륭했다. 위례 신도시가 조성되기 전 정규 홀과 크고 작은 연습장이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쌍둥이 골프 연습장 두 개가 길 양쪽으로 세워져 있었고, 많은 사람이 자주 찾고 사랑하는 최고의 체육시설이었다. 지금은 아파트 개발로 골프장도 이전했고 연습장은 남한산성 자락 변두리로 옮겨졌다.
골프 초보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조그만 파 쓰리 라운딩 코스 때문이었다. 쌍둥이 연습장 옆으로 거리가 짧은 나인 홀 코스가 있었다. 드라이브로 칠 수 있는 곳은 두 홀 정도였고 나머지는 아이언으로 어프로치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모든 것이 정규 홀 반 정도라서 그 인기가 대단했다. 우선 접근성이 뛰어나고, 비용도 반값이요 시간도 2시간 정도이니 시민들에게는 집 앞에 골프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입장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골프장은 사전 예약을 받지 않았다. 무조건 선착순이었다.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번호표를 부여했다. 새벽 4시부터는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했다. 골프 붐과 함께 서울 시내 초보자들이 몰려왔다. 한 팀에 네 명씩 출발하니 미리 팀을 맞추고 그중 한 사람이 새벽에 나가 번호표를 받아야 했다. 새벽에 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자명종 소리도 놓치지 않아야 했다. 4시까지 가려면 집에서는 더 일찍 출발해야 했다. 그렇게 나가도 아직 깜깜한 새벽인데도 벌써 서너 명이 나와 있었다.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옷을 잔뜩 껴입고 털모자까지 쓰고 나가 표를 받으면 곧바로 친구들에게 휴대전화로 라운딩 시간을 알려줬다.
비록 정규 홀은 아니었지만 라운딩은 늘 즐거웠다. 잔디를 밟으며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스윙을 실전에 활용해본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골프다. 순간적인 동작과 흐트러짐으로 표적을 벗어나기 일쑤였고, 코스 중간중간 조그만 연못과 모래 벙커는 초보자들에겐 공포의 장애물이었다. 어떤 친구는 물만 보면 공을 집어넣었다.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은데 연못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공을 칠 때면 다들 “너 좋아하는 연못이네~”, “붕어가 입 벌리고 있네~” 하고 한마디씩 했다. 그러고 나면 공은 여지없이 물속으로 “퐁당!” 소리를 내며 빠지곤 했다. 라운딩할 때마다 그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 상황을 벗어나는 데 거의 반년은 걸린 것 같다. 골프는 심리전이란 말이 실감났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골프는 유독 멘탈 운동이다. 힘 빼는 데도 몇 년 걸린다. 욕심내고 힘이 들어가는 순간 공은 기세 좋게 달아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배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쳐야 한다고 늘 일러줬다. 프로 골퍼들도 마지막 18홀 버팅 하나로 승부가 갈릴 때 극도의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 평정심을 갖는 사람의 승률이 높은 건 골프가 멘탈 싸움이기 때문이다.
연습한 대로 공이 똑바로 잘 나가 그린에 올라가면 ‘굿 샷!’을 외치는 소리에 우쭐하기도 했다. 너무 우쭐해서 흥분했다가는 다음 홀은 영락없이 오비가 나 망신살이 뻗치기도 한다. 인생사가 그렇듯 오르고 내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교훈임을 깨닫게 했다. 지금은 위례 신도시가 들어서며 아파트 숲으로 변했지만,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다. 그때 들었던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뛰게 한다. “굿 샷!”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삶의 황금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와 황금기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히 쓸 만큼 모아놓고 쟁여놓은’ 돈일까? 그보다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은퇴 멘탈 갑, 즉 새로운 은퇴 마인드다. 과거 경력, 직장, 직책의 아우라를 들어내고, 자기의 진짜 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칠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즘, 은퇴 이후의 시기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인생의 3분의 1을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그래서 우리는 은퇴를 충격이 아닌 감격으로 맞고 싶다. 끌끌 혀를 차며 밸이 배배 꼬인 채 훈수나 푼수를 떠는 뒷방 노인이 아닌 적극 참여하는 현장의 선수로 사는 롤모델 인생 선배를 만나고 싶다.
퇴직 5년 차가 아니라 진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취업 5년 차’라는 박시호(63)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인디언 핑크색 니트 상의에 옅은 브라운색 패딩 점퍼, 흰 바지 그리고 빨간색 운동화에 무스로 바짝 세운 밤톨머리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타난 그는 과거 CEO의 물이 쏙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에게선 인터뷰 약속 장소인 ‘신촌’의 청춘물결에서 한 치도 뒤처지지 않는 것을 넘어 자유인의 바람마저 느껴졌다. 2003년부터 행복과 관련한 앤솔러지를 사진에 담아 매일 아침 이메일로 배달하던 일은 이제 취미와 봉사에서 ‘주업’으로 승격됐다. 그 외 강연과 원고 쓰기, 사진 찍기 등등 요즘엔 여행기획가로서 행복을 오프(0ff)에서 실현하는 일에까지 관심사를 확장하고 있다. 그의 하루 24시간은 풍요롭다.
은퇴 괴담은 현실적으로 ‘밥’ 이야기로 시작하곤 합니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퇴직 가장의 현실을 표현한 단어 중에 ‘삼식이(집에서 삼시세끼를 먹는 가장)’란 호칭이 있는데요. 많은 퇴직 가장들이 “이러려고 지금까지 뼛골 빠지게 일했나”라며 피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감정계좌를 깡통계좌로 만들어놓고 만기일 됐다고 복리로 쳐서 가장 높게 대우해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집밥만 우기지 말고 칼국수집이든 냉면집이든 같이 맛집 순례라도 해보세요. 찜질방 같이 가서 놀자고 해보세요. 절로 삼식님이 될 겁니다(웃음). 가장이 건강해야 집안을 끌고 간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부인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집안이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 혼자 행복하고 즐거우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퇴직 이후 집에서 대우받는 것은 남편 하기 나름이지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부부입니다.”
그는 “체력관리한다며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매일 등산 가던 친구가 있었다”며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운 후 그 친구가 “부인이 건강할 때 산에 같이 갈걸, 왜 나 혼자 갔을까” 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더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복은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데, 평범한 일상에,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하는 그는 여러 일정 중에서 부인과 맛집 순례 후 하는 공원산책이 그날의 하이라이트라고 덧붙였다. 신혼 때처럼 전기가 찌르르 통하지는 않지만 40년 이상 살아온 인생 동지와 함께하는 ‘침묵의 공유’야말로 가장 든든한 의지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현직에 계실 때보다 더 활기차고 멋져 보이십니다. 부부 금실에서 비롯된 에너지 말고 비결이 있습니까.
“현직에 있을 때보다 몸무게를 10kg 정도 뺐어요. 회식이나 약속을 줄이고 운동을 하니 절로 빠지더군요. 제가 BMW족입니다. 버스(Bus)-지하철(Metro)-워킹(Walking),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걷습니다. AMP 동기 부부동반 모임에 갔는데 집사람이 아무 정보 없이도 동기들 중 현직, 퇴직파를 족집게처럼 맞히더군요. 은퇴하면 현직 때의 아우라가 사라져 갈기털 빠진 사자처럼 되기 쉽습니다. 퇴직할수록 용모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퇴직하니 공식적 일 없다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거나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면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산뜻하게,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 해요. 뚝배기보다 장맛이 아니라 겉볼안이 더 맞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이미지 판단이 6초 만에 끝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전엔 아우라가 우러났다면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고나 할까요. 퇴직할수록 의관이 생명이란 게 제 지론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먼저 남이 알아주도록 갖춰 입을 필요가 있습니다.”
은퇴 준비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할까요?
“일관된 인생 계획을 세워서 현직 시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은퇴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즐기기 위해서라도. 은퇴 이후의 공부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쫓기는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뭐든 좋습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뛰어오던 트랙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등산도 높은 산을 오르려면 동네 산부터 오르며 준비하지 않습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은퇴 후 뭘 하면 좋을까 늘 염두에 두고 그 일을 조금씩 준비해둬야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준을 향해 공부하십시오. ‘지금 이 나이에…’ 또는 ‘시간이 없다’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해서 하는 핑계일 뿐입니다. 취미든 기술이든 뭐든 배움은 운명까지도 바꿉니다. 공부를 하고 도전하다 보면 전문가 반열에 오르고, 그것이 새로운 세상의 지평을 열게 해줍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은퇴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대답한 은퇴자가 41%나 되고, 대부분 단조롭고 지겨운 일상과 목적 상실 및 지적 자극의 결여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은퇴에서 재정 설계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시간 설계, 즉 은퇴 후 동기 설계임을 보여주는 통계다.
행복이란 것이 요즘에야 흔한 담론입니다만. 행복편지를 시작한 2003년에는 요즘처럼 유행하는 화두가 아니었을 듯한데요.
“저도 욕심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치도 해보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어보고 싶었지요. 그런데 특별조사부장을 하며 정치인, 재벌 총수들의 영고성쇠한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고충 건물에서 피고인으로 수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 총수를 보며 권력, 금력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또 부도가 나 자살을 한 금융인,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표변하는 인심의 허망함을 한꺼번에 압축해봤어요. 권력도 금력도 아닌 세상에서 진정으로 변치 않고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지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저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그림그리기를 시작했지요. 그러다 점차 재능의 한계를 느껴 사진으로 바꾸게 된 것이고요.”
그는 사진을 공부하면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쳇바퀴 같은 삶을 바쁘게 살던 그가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애써 찾으며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주엔 이 꽃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찍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단다. 또 사진을 찍으면서부터는 ‘집에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처럼’ 퇴근을 기다렸고, 주말 새벽마다 강남고속터미널에 가서 꽃을 사는 행복한 마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단다. 지인들에게 꽃 사진 선물을 하고, 그들이 감사인사를 전해오고, 급기야 행복편지까지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인 700명 정도를 엄선해 보내는 행복편지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작지만 강한’ 행복 공유의 플랫폼이 됐다.
직장 후배들에겐 멘토로 여전히 환영받는 ‘퇴직 상사’라는 말씀 들었습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까? 어떤 분은 퇴직하니 알던 사람들 중 절반은 모른 척하며 떨어져 나간다고 ‘동선하로(冬扇夏爐, 여름 난로와 겨울 부채라는 뜻으로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을 이르는 말)’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시던데요.
“하하. 저는 연락 안 해도, 거절당해도 고까워하지 않습니다. 또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요. 그러니 오히려 환영받네요. 잘해주면 고맙지만, 못 해주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까운 마음이 전혀 안 생깁니다. 상대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찾더라고요. 부하직원들이 초대하면 병권을 맡깁니다. 예컨대 동석할 사람을 상대에게 정하라고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정해 만나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또 그 밥에 그 나물인 예전 사람들만 만나면 재미없는데 후배들이 새로운 사람 소개해주니 저도 좋지요. 폐쇄성을 나부터 없애야 합니다. 자기를 열고 세상에 맞추면 세상살이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또 상대가 누구든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더 내어 배려해주는 것이 존중받는 비결입니다.”
박 이사장께서는 퇴직 후 제일 먼저 할 일로 명함 만들기부터 권하신다면서요.
“은퇴한 사람들이 모임에 나가면 제일 먼저 당황하는 게 명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명함이 없으면 몸을 꼬며 온갖 군말을 갖다 붙여요. ‘제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돼서요’ 등등. 스스로도 초라하고 서로 당황하기 쉬워요. 명함을 만들려고 구차한 자리 부탁하기도 하거든요. 당당한 명함은 당당한 자기정체성과 통합니다. 이제 과거의 후광은 벗어던지고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명함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를 연구하는 사람 ○○○라는 명함이면 어떻습니까. 말로 구구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자기정체성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한 줄짜리 문장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초라해질 필요 없습니다. 명함 주고받는 게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지면 대외활동은 끝나는 겁니다. 그만큼 중요해요. 아날로그 구세대에겐 직책과 직장이 필수이지만 젊은 디지털 세대는 그보다는 업, 좋아하는 일,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사진이면 사진, 서예이면 서예, ‘이것에 대해선 나한테 물어봐. 내가 설명해줄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있다면 더 좋고요.”
박시호 이사장의 명함엔 사진가,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연락처(전화번호와 이메일)가 간결하게 들어가 있다.
퇴직 후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점 중엔 경조비 부담도 빠지지 않더군요. 국민연금 1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들의 가계부에서 경조비 비중이 16%나 됩니다. 의료비보다 높은 비중입니다.
“퇴직 상태에서 대소사가 한꺼번에 밀려들면 아무래도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은퇴한 사람들의 고민이 ‘경조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이지요. 체면과 얽히고설킨 과거의 인연 때문이지요. 저는 기분, 체면보다 기준을 분명히 합니다. 과거의 주고받은 인연보다 1년간의 교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아이들 결혼 때의 방명록도 그 자리에서 없애버렸습니다. 1년 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은 교류가 없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연락이 와도 경조사에 가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부르고, 성의만큼 성의를 표하자. 허례허식은 없애자는 게 제 주의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습니까? 동창회 단체 공지에 올랐다고, 안 하면 욕먹는다고 찜찜해하면서 자주 보지도 않는 사람의 경조사까지 챙겨야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욕을 먹기도 해요.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기준을 지켜나가는 맷집과 용기도 은퇴 멘탈 갑의 마인드 중 하나입니다.”
박시호 이사장은 은퇴지능개발의 핵심 키워드로 배움을 꼽았다. 기술이든 지식이든 뭐든 배우고, 남의 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없도록 하는 것. 그는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며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행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할 계획이라고. 지난 경험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할 때 그는 더 설레면서 반짝였다.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의 설계와 도전도 마찬가지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신세계에 도전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불을 뿜는 두려움의 용을 처단하고…. 박시호 이사장이 말한 ‘배움’은 구태의연함을 처단하고, 마음속에서 불을 뿜는 용을 무찌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인터뷰 내내 함익병(咸翼炳·57)은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성공한 피부과 의사이자 방송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모습보다는 최근 TV조선의 시사 프로그램 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사 닥터(?)로서의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 인터뷰에서 그는 대통령 탄핵까지 가게 된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해 이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의 분노를 여과 없이 쏟아냈다. 바로 19대 대통령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 그렇다, 그는 현실 정치의 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자신을 진보와 보수의 틀을 넘어선 합리주의자라고 강조하는 함익병의 문제적 발언들을 들어보자.
“낙태는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는 게 당연합니다. 임신, 출산, 육아까지 모든 부담을 여성이 져야 하니까요.”
어느 급진적인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의 말일까? 아니다. 과거에 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군대를 마치지 않았던 아들에게 국민의 4대 의무를 모두 마치지 않았으니 내가 지지하는 보수 진영 후보자를 지지하도록 압박했다”, “국민이 행복하고 잘살 수 있으면 무능한 민주정보다 좋은 왕정이 낫다”는 말을 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타칭’ ‘합리적 보수주의자’ 함익병의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모순적인 면들이 많은데 그걸 진보,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언어로 규정하고 재단하려드는 건 잘못된 거라고 봐요. 그래서 그런 용어 자체를 아주 싫어합니다.”
진보, 보수라는 틀 속에 갇히기 싫다
그는 자신이 어떤 면은 진보적이지만 어떤 부분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논란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도 그렇다.
“제가 결혼하고 아내와 함께 처음 한 일이 재산 분할에 관한 약속이었어요. 아내 50%, 나 50%로 이혼할 때 재산 분할로 싸울 일 없도록 미리 합의를 해뒀죠. 그걸 30년 전에 했습니다. 아들 딸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딸도 아들과 똑같이 키웠고, 만약 재산이 남아서 물려준다면 똑같이 물려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여자가 아침밥 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구닥다리이기도 해요. 이런 나는 페미니스트인가요? 아닌가요?”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언어적 규정은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다.”
재벌 중심 경제는 1960년대 경제 프레임,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는 경제관을 얘기하면서 현재의 재벌 중심 경제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기본적으로는 자유경제를 선호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재벌 구조가 과연 공정하냐는 반문이다.
“1961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대일청구권 자금이 들어왔을 때, 그 돈을 n분의 1로 나누자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랬으면 아마 다 같이 가난해졌을 겁니다. 그 돈으로 포항제철을 만들었기에 오늘의 한국의 기간산업들이 일어설 수 있었다고 봐요. 당시 한정된 자본을 소수의 경영자들에게 집중 지원하여 우리 산업의 발판을 만들었고 그 과정 중에 재벌이 생긴 거죠. 그걸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때 이병철 회장에게 지원한 자금을 자신이 받았을 때, 자신이 오늘날의 삼성 그룹과 같은 기업을 만들 역량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은 사업이 보국이었어요. 그래서 재벌 1세대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재벌 3세의 경영 승계가 과연 옳은 일일까요? 지금과 같은 방식의 편법적인 경영 승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배경에는 재벌들의 편법적인 경영 승계를 위한 불법적인 로비가 개입됐을 수도 있어요. 이런 편법과 불법을 바로잡자는 것을 두고 진보라느니 계획경제라느니 얘기하면 안 됩니다. 보수는 수선해서 쓰니까 보수예요. 그때그때 흐름에 맞춰 고쳐 쓰는 게 보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요? 60년대 경제 프레임에 계속 갇혀 있으면서 그걸 지키는 게 보수이고 애국이라고 하죠. 그건 낡은 수구적 생각이에요.”
이치를 따지려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실상 이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기도 했다.
“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합리적 사고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것은 진보, 보수를 정치적으로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걸 팔아서 정치적 이익을 얻는 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려면 이런 사람들이 사라지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최순실 사태는 내란죄로 다스려야 한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얘기가 자연스럽게 최순실 사태로 옮겨갔다. 할 말이 많은 듯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최순실 사태에서 진보, 보수가 어딨습니까? 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맞아요.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저는 ‘아, 이건 내란죄를 물어도 되겠구나’ 했어요. 최순실은 내란죄로 바로 기소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피부과 의사가 법을 논하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근거도 없이 그렇게 말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형법 제87조를 보면 내란죄의 기준이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라고 되어 있어요. 간단해요. 최순실 사태는 국토 참절은 아니죠. 국헌 문란에 해당되죠. 내란죄는 목적범입니다. 그런데 최순실의 경우 국헌 문란의 목적을 확정하지 못해서 내란죄 기소가 불가능하다는데, 국헌 문란의 목적성을 적용할 수 있는 판례가 있어요. 바로 10·26사태입니다. 김재규가 내란목적 살인죄로 처형됐어요. 그냥 살인죄만 적용해도 사형시키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대법원에서 살인죄가 아닌 내란목적 살인죄로 판결했어요. 6명의 대법관은 소수 의견으로 살인죄라고 했지만. 김재규의 살인 행위가 내란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연인 박정희가 아니라 대통령 박정희를 죽였기 때문에 내란적 상황이 발생하여 ‘결과적 내란목적’이 성립된다는 거였습니다.”
함익병이 최순실 사태가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이유는 이번 국정농단이 대통령 개입 없이는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형법 제91조 1호에는 국헌 문란을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되어 있어요. 지금 상황에 딱 맞잖아요. 그리고 다시 제87조로 돌아가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라고 되어 있는데, 폭동에 대해 찾아보면 ‘다수가 폭력적 행위나 ‘협박’을 통해 한 지방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면 폭동’이라고 해요. 최순실은 폭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협박을 했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협박이라 함은 일상적인 협박이 아니라 상대방이 협박이라 받아들이면 협박이 성립되는 광의의 협박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죄 처벌 때도 계엄령 전국 확대를 통한 협박을 내란목적 협박으로 적용해 내란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는 최순실 사태가 터졌을 때 처음부터 내란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들에게 물으니 “검사가 당신처럼 치고 나오면 기소는 가능하고 판사 앞에서 다툴 여지는 충분히 있다”는 의견을 줬다고 한다. 그는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내란죄 처벌 정도의 수위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현실적인 어젠다를 제시하겠다
이제 대통령에 대한 얘기다. 그는 19대 대통령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시원하게 밝혔다.
“이번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지지하는 사람의 당선도 중요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정치인의 시각이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선거 공약에 반영하려는 목적이에요. 물론 직접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면 제가 생각하는 의제들을 알릴 수는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겠죠(웃음)?”
그는 정당들에게서 따로 정치 입문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부담스러운 얘기를 하는데 캠프에 참여하라고 하겠어요(웃음)? 저 같은 사람은 정당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거예요. 제가 정치적 겸손을 싫어하거든요. 물론 정치적 위선은 필요하겠죠. 그런데 위선적이고 싶지도 않아요.”
위선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그는 “키 커~ 잘생겼어~ 똑똑해~”라며 자기 자랑을 거침없이 해댄다. 이런 마초성이라면 귀엽고 매력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선거할 때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으로 투표를 해요. 그건 지도자를 뽑을 때 할 행동은 아니죠. 박근혜 대통령도 불쌍해서 뽑았잖아요? 그 아버지, 그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싶어서 빚진 감정도 있었고.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해요. 정말 잘난 사람이라고 흔쾌히 인정해줄 만한 지도자를 본 적이 없어 저는 항상 현실이 불편했죠.”
그는 “이런 네가지(?) 없는 말을 하니 누가 저를 뽑아줄까요?” 하며 웃었다. 하긴 자리 욕심이 없으니 정치적 의사 표현에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뇌에 종양이 생긴 상태, 당장 수술이 필요
“어렸을 적부터 대통령이 꿈이었어요. 공부는 잘했지만 영재는 아녔어요. 머리보다는 손과 엉덩이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지.”
대통령이 꿈이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 꿈이라는 것이 그 세대의 남자 아이라면 누구나 꿈꾸어봤을, 장군· 과학자· 대통령 같은 그런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선택은 문과가 아닌 이과였다.
“아버지 세대는 정치를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데모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그 시대는 그랬으니까. 장남이라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진학해야 했죠. 그래서 의사가 됐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여유롭고 좋더라고요.”
그러나 그는 이제 정치에 참여하려고 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겪기 전에는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정치에 직접 참여해야겠어요. 내가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이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 믿었는데 정말 해괴망측한 일들이 벌어졌잖아요. 그렇다고 꼭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대통령과 같은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에 들어가 지속적으로 정책을 챙기고 권력의 올바른 행사를 감시하는 건전한 시민의 목소리라도 내야겠어요. 이번과 같은 일이 다음에는 안 벌어질까요? 끊임없이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야만 정치 환경이 달라질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를 인체에 비유하면 뇌에 종양이 생긴 거예요.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 수술 팀에서 일조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지킬 것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는 너무 많은 흠이 생겼다. 그렇다고 보수의 가치를 버릴 수는 없다. 그 지점에서 그는 자신이 할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문제에는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그는 인생에서 지키고자 하는 특별한 철학은 없지만 마땅히 실천해야 할 생활 철학은 많다고 했다.
“우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하루에 한두 시간은 꼭 운동하고 세끼 밥 챙겨 먹고 7~8시간 자요.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지키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어요. 건강을 위해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키면서 뭘 먹으면 건강할까 묻는 그런 모순된 사람들을 많이 보죠.”
그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을 많이 써요. 왜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죠?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많은데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요?”
그는 예전에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올랐던 적이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문제의 인터뷰 건으로 촉발된 논란 때문이었다.
“도덕적이며 능력 있는 사람이 지도자면 왕정이어도 좋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들과 대화하면서 그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뛰어난 군주가 세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역사에 없어요. 지속 가능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조금씩 뒤뚱거려도 민주정이 왕정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수해요”라는 아들의 반론에 공감한 것이다. “군대도 그래요. 군대 안 나온 사람은 공직에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신체 건강한 사람이 ‘나이 초과’나 ‘만성 두드러기’ 등으로 병역을 면제받고 공직에 나서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죠. 정부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것도 웃겨요. 그건 우수하고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재벌들 논리지 개인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없는 논리예요. 직장 수보다 구직 인구가 더 많아서 취업도 안 되는데 인구가 왜 늘어나야 하죠? 젊은이들의 삶이 행복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아기는 말하지 않아도 갖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개인적인 문제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는 합리주의자, 멘탈이 센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로 논란이 있었을 때도 마음고생을 전혀 안 했다고 말했다. 멘탈이 센 걸까?
“멘탈이 센 게 아니라 그런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에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내 인터뷰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그 사람 의견일 뿐이에요. 멘탈이 센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죠. 결국 탄핵까지 갈 이런 상황은 못 견뎌하는 게 정상이에요. 그 정도의 멘탈이 되려면 합리성이 결여돼야 해요.”
합리적 엘리트주의를 지지하고 여성의 성 역할론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그는 보수주의와 통하는 게 있다. 그러나 동성애, 페미니즘, 심지어 마약 문제까지 관용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한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와 갈릴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만 그 때문에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는 함익병은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현실 정치에 반영할 수 있을까? 성역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기질이 만들 작은 도전이 우리 정치 현실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흥미롭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불면증의 시대다. “나는 불만 끄면 잔다”는 행복한 사람은 요즘 찾기 힘들다. 특히 전체 불면증 환자의 68%가 50세 이상이라는 기사로 미뤄봤을 때 독자의 수면시간도 안녕하지는 못할 듯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잠들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을 잠의 신세계로 빠뜨려 줄 아이디어 상품!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기능성 베개, 잠의 질을 바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간(2009~2013) 디스크 진료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목디스크 환자가 약 70만 명에서 90만 명으로 근 30%나 늘었다. 과거의 목디스크는 보통 노화가 시작되는 40~50대에나 오는 퇴행성 질환으로 여겼다. 지금은 과도한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용 혹은 익스트림 스포츠에 의한 부상으로 20~30대에서도 나타나는 흔한 병. 따라서 목 건강, 더 나아가 잘못된 습관이 가져다 준 틀어진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기능성 베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터넷 검색창에 ‘기능성베개’라고만 쳐도 다양한 모양과 가격의 베개가 시선을 끈다. 그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두 제품을 소개한다. 바로 전문물리치료사출신이 개발한 ‘가누다 베개’와 자생한방병원이 개발한 ‘자생추나베개’다.
소지섭 베개로 유명한 가누다 베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균형 있고 편안하게 잘 가누다’라는 의미의 가누다 베개는 배우 소지섭이 광고모델로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베개다. 가누다 베개는 두개천골요법이라는 도수치료법을 응용해 만들었다. 인체의 두개골 구조와 뇌척수액의 흐름을 기초로 바른 수면자세를 도와주는 것. 전문물리치료사가 할 수 있는 도수치료기법(손으로 직접 치료하는 기술)인 후두두개골기저부이완법(목덜미를 풀어주는 기술)과 제4 뇌실압박법(CV4효과: 뒷머리를 지긋이 눌러주는 기술) 등을 응용해 물리적 압력 없이도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해주고 불면증을 완화해 준다고 설명한다. 특히 머리와 뒷목이 이어지는 부분을 부드럽게 받치고 지지해주어 C 자형 목(경추)을 유지해 준다. 자는 동안 치료를 받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했다. 누울 때 어깨 눌림이 덜해 편하며 옆으로 누워도 어깨와 귀가 눌리지 않도록 설계했다. 가누다 베개는 크게 블루라벨 알레그로와 골드라벨 두 종류로 나뉜다. 블루라벨 알레그로는 대, 중, 소, 주니어 사이즈가 있다. 골드라벨은 보조패드가 있어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나 블루라벨 알레그로보다 약간 높다. 고밀도 항균 메모리폼과 소취 항균섬유를 사용했으며 생활방수가 된다.
가격은 블루라벨 알레그로 22만8000원, 골드라벨 15만8000원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이용하면 더 저렴한 가격과 사은품을 받아볼 수 있다.
자생한방병원의 야심작 자생추나베개
척추전문 한방의료기관인 자생한방병원은 오랜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힘들거나 목 통증이 재발하는 환자들을 위해 자는 동안에도 건강한 C 자형 목으로 유지해 주는 자생추나베개를 개발했다. 두상의 압력뿐만 아니라 소재, 통기성, 발수기능을 두루 고려했다. 자생추나베개는 바른 자세로 누웠을 때 뒷목이 들뜨지 않게 전체를 받치는 곡선형으로 설계했다. C 자형 목을 위해 베개 중앙(목과 머리 경계 부위)에 가로로 ㄷ자 모양의 절개라인을 만들어 목 길이에 상관없이 목의 압력을 골고루 분산해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옆으로 누웠을 때 척추가 휘지 않을 어깨 높이인 10~15cm를 고려해 베개 높이 또한 맞췄다. 이 베개는 얼굴을 감싸주는 유선형으로 턱이 틀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감싸주며 어깨 안쪽 끝까지 베개가 닿게 만들어 잠에서 깬 뒤 어깨나 팔 저림을 최소화했다. 높낮이 조절패드로 두상 생김새에 맞춰 베개를 조작할 수도 있다. 베개 뒷부분에는 목의 피로를 실질적으로 풀어주는 지압봉 6개를 부착했다. 자생추나베개는 메모리폼이 아닌 공기 세포 모양의 결정구조처럼 생긴 ‘노그노플렉스2소재’를 사용했다. 작은 공기구멍으로 통기성을 유지하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두상과 자세에 맞게 섬세하게 변형되고 원형으로도 회복이 빠른 신소재다. 자생추나베개는 정품 한 개 22만9000원이고 이 제품 또한 각 쇼핑몰에서 다양한 구성과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다.
심신 안정과 숙면이 필요할 때 ‘멘탈닥터’
멘탈닥터는 집에서 누구든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심리 안정과 개선을 돕는 기구다. 멘탈닥터는 안구운동을 통해 심리불안의 원인이 되는 나쁜 기억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유도하고 과거 상처도 재인식할 수 있게 해 준다. 멘탈닥터를 안경처럼 착용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귀로 들리는 지시를 들으며 눈에 보이는 파란 불빛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인다. 이렇게 이어폰으로 들리는 이야기와 함께 안구운동을 반복하면서 뇌 기억에 갇힌 신경세포의 정보를 모아 부정적인 기억들로 인한 감정을 제거해 마음의 고통을 해소해 숙면할 수 있도록 도움 받는다. 안구운동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명상과 음악을 병행한다. 내레이션에는 호흡과 명상, 이미지 요법, 암시 효과, 근육 요법, 자율신경 훈련법 등 여러 가지 심리기법이 적용돼 불면증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작동 진행 과정과 음원을 이용자 상황에 맞는 콘텐츠를 홈페이지를 통해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상담을 통해 맞춤 콘텐츠도 제공한다. 특히 마음 건강과 부정의 기억을 처리하거나 증상에 따른 콘텐츠, 명상호흡 등 각박한 삶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주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멘탈닥터 아이스캔(패밀리고급형)이 49만5000원이다.
집 안 캠핑족이 늘어난다 ‘따수미난방텐트’
집에서 웬 텐트냐고 하겠지만 생활텐트 전문기업인 아이두젠의 ‘따수미난방텐트’는 집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 맞다. 2014년 출시됐을 때 ‘텐트계의 허니버터칩’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아이두젠 공식 홈페이지의 10종류 텐트가 품절이 될 정도였다. 일명 수면텐트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 들어가서 자면 따뜻하게 온도가 유지돼 잠이 잘 들기 때문이다. 따수미난방텐트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가정에서 쓰는 텐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기 때문에다. 우풍이 심한 집에서는 난방텐트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생활공간일 수 있다. 실내에서 활동을 할 때 가장 제약이 덜 가는 구조로 설계해 현재 ‘디자인특허 출원’에 등록했다. 공기순환이 좋은 실내용 원단을 사용해 내부온도는 강하게 유지하고 수분과 습기는 외부로 배출할 수 있게 했다. 텐트 안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젖은 수건을 걸 수 있는 고리와 구멍도 만들었다. 따수미텐트의 난방효과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입증한 바 있다. 올해 초 KBS에서는 가정집 안방에 보일러를 그냥 가동했을 때와 따수미텐트를 설치했을 때를 비교해 온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험했다. 보일러를 켜고 1시간 후 실내 안방 온도는 21.9℃이었는 데 반해 따수미 난방텐트 내부 온도는 26℃로 4℃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가습효과도 30% 이상 나타나 난방비를 절감하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따수미난방텐트는 사이즈별로 2만원대에서 7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잠들기 참 쉽죠? ‘따스안 온열안대’와 ‘레그셀루션’
마지막으로 초간단 잠드는 방법이다. 바로 ‘온열안대’와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레그셀루션’이다.
평소 느끼지 못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TV나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외선 노출로 인해 눈의 피로 또한 쌓여만 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온열안대다. 시중에 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달래는 다양한 안대들이 다양하게 출시돼 있어 원하는 가격대와 사이즈를 구매하면 된다. 온열안대는 PC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직장인과 장거리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는 여행객이 꼭 가지고 가야 할 필수품이다. 책을 많이 보는 취업준비생과 수험생, 잠을 잘 못 이루거나 숙면이 필요할 때 간편하게 눈에 쓰고 있으면 금세 잠을 청하게 된다. 마나술의 따스안 온열안대의 경우 4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 눈 주위가 촉촉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안구 건조증이 있거나 눈이 자주 뻑뻑한 사람이 사용하면 좋겠다. 별도의 향을 첨가하지는 않았으나 주 재료인 황토향이 아로마향처럼 얼굴 한가득 퍼진다. 기분이 쉽게 풀리면서 편안해지는 장점이 있다.
레그셀루션은 종아리나 발목에 붙이는 파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신 실제 파스보다 청량감이 좋고 촉촉하다. 다량의 수분을 함유한 고밀착 하이드로겔 성분이 다리에 수분을 서서히 공급해 붙이고 있는 동안 상쾌함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장시간 걷거나 서 있을 경우,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다리가 붓거나 뭉치면 잠들기도 쉽지 않다. 피곤한 부위에 붙이고 쉬면 피로가 풀리면서 몸이 노곤해진다. 따로 마사지를 하거나 사우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레그셀루션을 꼭 써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