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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즐겨요… 가정의 달 5월 문화소식
- ●Exhibition ◇누구의 숲, 누구의 세계 일정 6월 2일까지 장소 대구미술관 전시는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주제인 환경과 생태계 위기에 대해 살펴본다. 작가 13명의 작품 70여 점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는 누구의 숲이며, 누구의 세계인지 질문한다. 첫 번째 섹션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에서는 미래 환경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정주영 작가의 변화하는 기후·구름·우주, 김옥선 작가의 외래종 나무, 장한나 작가의 새로운 형태의 돌(New Rock 프로젝트) 작품을 소개한다. 두 번째 섹션 주제는 ‘잊혀진 얼굴, 봉합된 세계’로 문명의 발전 이면에 발생한 인간의 욕망과 자연에 관한 태도에 주목했다. 강홍구, 김유정, 백정기, 송상희, 이샛별, 이해민선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 섹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세계에 함께 존재하는’에서는 권혜원, 정혜정, 아니카 이,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을 통해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시선을 엿본다. 박보람 학예연구사는 “도시 문명, 환경, 생태계 문제에 대해 다채로운 관점을 담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반성적 감각을 회복하고 인류세 시대, 그 이후에 관한 공생, 생태적 감각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화첩으로 보는 나의 프로필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영인문학관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서화첩(글씨와 그림을 모아 만든 책)전이다. 문인, 화가, 서예가, 섬유예술가, 패션디자이너 등 60여 명의 정상급 예술가들이 서화첩 한 권에 프로필을 채웠다. 자화상, 좌우명, 애송시, 자전적 글 등 담긴 내용은 다양하다. 소설가 김채원은 언니 김지원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시기에 그린 우는 자화상을 서화첩에 넣었고, 부친을 여읜 서예가 김병기는 ‘아버지가 애송하던 한시를 통해 슬픔을 달랜다’는 발문과 함께 58쪽의 글을 썼다. 한편 작가의 방은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김상옥의 방을 재현했다. 특별 전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재를 재공개한다. 예약을 통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관람 가능하다. ●Book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김희진·앵글북스) 동년배보다 보통 20~30년 젊은 뇌를 가진 사람을 슈퍼에이저(Super-ager)라고 부른다. 그들은 젊은 사람만큼 뛰어난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가졌다. 저명한 치매 전문의 김희진 한양대학교 신경과 교수는 인간의 노화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소모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신체를 어떻게, 얼마나 잘 관리하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가 나이 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습관이 기억력과 뇌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1부는 ‘이해하기’ 파트로 뇌의 구성과 각 부분의 기능을 설명한다. 여러 실험과 사례를 통해 풀어내고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 하기’ 파트인 2부에서는 일상 점검을 비롯해 식단과 운동, 감정과 스트레스 관리, 수면과 약 복용법 등 올바른 생활 습관을 총 7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부록에는 많은 이들이 실제로 효과를 본 다양한 방법과 저자도 실천하고 있는 작은 습관들을 상세히 담았다. 그러나 슈퍼에이저의 습관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뇌에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진 교수는 “실제로 자신에게 맞고 큰 효과를 가져오는 행동 지침들을 선별해 30일 두뇌 관리 루틴을 세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문재인의 독서노트(문재인·평산책방) 문재인 전 대통령이 쓴 102권의 독후감을 ‘취임 이전’, ‘재임 시기’, ‘퇴임 이후’로 나누어 담았다. 일상을 포착한 40여 장의 사진도 함께 수록됐다. ◇밥묵자(꼰대희·21세기북스) 개그맨 김대희의 부캐인 ‘꼰대희’는 50대 후반 꼰대 아저씨를 콘셉트로 한다. 책은 인·의·예·지 네 파트로 나뉘어 있고, 세대 간 화합을 이끈다. ◇하이 애나, 나는 한국 할머니란다!(류관순·미다스북스) 워킹맘으로 살던 저자는 외동딸과 미국인 사위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 덕분에 초보 할머니가 됐다. 손녀와 함께 성장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Stage ◇영웅 일정 5월 29일 ~ 8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김민영 출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 김도형, 서영주, 최민철 등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이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재현하며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은 애국심과 감동을 자아낸다. 2009년 초연 이래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창작 뮤지컬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은 15주년 기념 공연으로 안중근 역에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이 캐스팅됐다. 특히 정성화는 초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출연하며 ‘영웅’과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간다. 제작사 에이콤의 윤홍선 대표는 “관객 여러분 덕분에 어느덧 15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라며 “한층 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봄 일정 5월 8일 ~ 6월 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연출 이기쁨 출연 왕은숙, 문희경, 오성림, 예지원, 황석정, 유보영 등 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을 그린 뮤지컬 ‘다시, 봄’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꿈, 갱년기, 폐경, 은퇴 등에 대해 왁자지껄한 수다를 펼친다. 31회 공연이 더블 캐스트로 운영된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이 주축인 ‘다시 팀’과 내로라하는 여배우들로 구성된 ‘봄 팀’이다. 황석정은 ‘다시 팀’에, 뮤지컬에 첫 도전한 예지원은 ‘봄 팀’에 각각 합류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다시, 봄’을 통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50대 여배우들을 비추고, 객석은 중장년층 관객들이 차지했다. 뮤지컬 관객 저변이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벤자민 버튼 일정 5월 11일 ~ 6월 30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조광화 출연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 등 뮤지컬 제작사 EMK가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단편 소설을 원안으로 한다. 극 중 타이틀 롤인 벤자민 버튼은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이 연기한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인물로 재즈 가수 블루와의 사랑을 쫓는다. 특히 2003년 그룹 동방신기로 데뷔한 심창민은 21년 만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다. 그는 “뮤지컬을 연습하며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4-05-0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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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이어령, 그들은 왜 추앙받았나
- ‘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은 이들이 있다. 여러 사람이 떠오르는 가운데,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대표 인물로 꼽아봤다. 그들은 왜 세상을 떠난 뒤에도 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과 이어령 장관을 가까이에서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김수환 추기경의 소통법 “여기 명동대성당부터 명동역을 넘어 신세계백화점까지 조문 행렬이 이어졌죠. 지금도 장례식 때의 장관을 잊지 못합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이자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 홍보를 담당한 허영엽 신부는 10년도 더 지났지만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후 5일간 명동대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됐다. 사망 당일과 장례 미사 당일을 제외한 3일의 기간 동안 방문한 추모객은 약 40만 명에 이른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았다. 허 신부는 “우리 사회 어른으로서 추기경님의 존재감을 새삼 깨달았다”고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허영엽 신부. 신학대 학생 시절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한 그는 김 추기경과 처음 만났는데, 당시를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학생인데도 편안하게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후 서울대교구 홍보팀에 있으면서 김 추기경과의 만남이 종종 있었지만, 같은 성당에서 함께 지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얘기하는 대표 신부가 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인연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듯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성직자뿐 아니라 사회운동가로 통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끈 사람으로 평가되며, 대표적으로 1987년 6·10 항쟁이 언급된다. 당시 대학생들은 피신을 위해 명동대성당에 들어왔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들을 품어줬다.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려는 경찰에게 김 추기경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다. 공권력을 투입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을 가진 최고위 성직자다.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낮추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려고 했다.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달동네를 찾아다녔고, 일자리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님은 인간적으로 연민이 많고 늘 베푸시는 분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라고 희망을 북돋아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선종 당시 김 추기경의 통장에는 1000만 원 정도의 잔액밖에 없었다. 그 돈마저도 신도들에게 묵주를 선물하라는 말을 남긴 터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왜 어른으로 통했을까. 허영엽 신부는 ‘소통법’이 답이라고 봤다. 허 신부는 “추기경님은 대화할 때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한다. 진심이 느껴진다. 대화의 시간을 그냥 때우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기쁨을 느끼셨다”고 덧붙였다. 김 추기경에게 그동안 받은 편지는 지금도 값진 선물이다. 허 신부는 “크리스마스 때 신부, 수녀 등 많은 사람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주셨는데, 상투적인 얘기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하나하나 기억한 내용이 담겼다”면서 본받고 싶은 인간적인 자세라고 말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은 자기 생각을 강요하거나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님은 무엇이 됐든,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어떻게 생각해?’라고 먼저 물어보고 상대방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줬다. 그 후 좋은 의견이 있으면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으면 바꾸기도 한다. 생각의 유연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분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허영엽 신부는 코로나19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는데, 그중에서도 세대 갈등이 악화된 것을 우려했다. 이는 본지에서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5060세대와 2030세대 간 갈등 요인을 묻는 질문에 ‘소통이나 세대 이해의 부족’(36.0%)이 1위를 차지했다. 나이, 신분을 따지지 않고 소통하려고 했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어른이 필요한 이유다. “평화와 화합을 위해서는 아랫사람도, 윗사람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의 자세 아닐까요? 추기경님께서는 선종을 앞두고 ‘나는 부족한 사람인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큰어른이었던 추기경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집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일 테지요.” ◇이어령 장관의 감수성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영인문학관’. ‘영인’은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그의 아내 강인숙의 이름에서 한 자씩 가져와 붙였다. 이곳에서는 이어령 장관의 문화적 업적과 철학을 되새길 수 있다. 현재도 그를 기억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시간이 갈수록 선생이 더 그리워진다. 60여 년을 늘 옆에 있던 사람이니까. 혼자 있는 걸 좋아했기에 벌을 받는 건가 싶기도 하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강인숙 관장은 동갑내기 남편을 ‘이어령 선생’이라고 불렀다. 남편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그를 존경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강 관장은 “한눈 팔지 않고 원하는 길만 걸어간 선생의 용기를 존경한다”면서 “그와 함께하면서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정직성의 중요성을 알았고, 내 삶에서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령 장관은 가장으로서도 어른스러운 삶을 살았을까. 강 관장은 “선생은 평생 직장 두 곳을 다니면서 글을 쓰는 바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고 책임감이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일을 열심히 했던 이유도 아이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정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분이다”라고 답했다. 문학인부터 문화부 장관까지 직업도 다양했던 이 장관은 생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까지 누가 시켜서 일을 한 적이 없다. 다 좋아서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자의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를 따른다는 그는 “먹고 놀면 안 된다. 놀면서 먹어야 한다. 내가 돈벌이하자고 책 쓰고, 88서울올림픽을 하고, 교수를 했으면 다 실패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령 장관이 즐기면서 일하는 시간이 쌓이는 가운데 그를 따르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의 글과 말, 즉 생각에서 배움을 얻었다. 강인숙 관장은 “이 선생은 팬이 많았다. 남이 할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감동받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면서 “팬은 정신적인 면에서 친지나 제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령 장관이 좋은 영향을 끼치는 어른으로 추앙받은 이유에 대해 강인숙 관장은 “여러 분야를 어우르는 지식, 미래를 투시하는 안목, 독보적인 감수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산 이 장관은 고독했던 것 같다.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저)을 보면, 그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은 ‘다 안다’고 척을 할 뿐이라면서, 모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고, 혼날 것이 두려워서 고분고분 둥글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전한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질문자의 삶을 산 이어령 장관은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어”라고 고백했다. 또한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생활에 불리하지만, 그런 자발적 유폐 속에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 거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이어령 장관은 존경받았으나 사랑받지 못한 삶을 살았을까. 강인숙 관장의 말로 답을 대신한다. “얼마 전에 이 선생의 2주기였어요. 어느 회사의 회장인 제자가 큰 꽃을 집에 보내왔어요. 당시 저밖에 없어서 꽃을 방까지 가져와달라고 부탁했죠. 연세가 많은 기사분이 꽃을 나르다가 선생의 사진을 보더니 짐을 내려놓고 넋을 잃은 채 서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애독자였다’면서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꽃 보내는 사람과 꽃 배달하는 사람 모두 진심으로 선생을 사랑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고 지금도 선생을 스승이라고 말하는 제자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걸 보면, 이 선생은 잘 살다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4-04-2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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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평창동에 ‘이어령길’ 생긴다… 명예도로명 부여
-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이어령길’이 생긴다. 서울 종로구는 평창30길 28 가나아트센터 앞부터 평창30길 끝에 이르는 약 700m 구간에 ‘이어령길’이라는 명예도로명을 붙인다고 20일 밝혔다. 종로구는 “지난 2월 작고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자문밖(자하문 바깥) 지역에서 40여 년간 거주하며 국내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웠다”며 “이 전 장관을 기리기 위해 명예도로명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령길엔 고 이 전 장관과 배우자 강인숙 부부가 운영해온 영인문학관(평창30길 81)이 자리하고 있으며, 23일 오후 4시 이곳에서 명예도로명 부여 기념식이 열린다. 이어령 전 장관은 초대 문화부 장관(1990~1991)을 지냈으며, 60년 넘게 학자·언론인·소설가·비평가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다. 지난 2월 향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종로구는 23일부터 25일까지 자문밖(구기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홍지동) 일대에서 ‘제10회 자문밖 문화축제’를 연다. 종로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과 주민을 잇는 지역문화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 일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예술 자원을 알리려고 마련한 자리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자문밖·예술로·로그인’이다. 원로·중견·신진 작가가 하나 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양질의 문화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23일 오후 5시 가나아트센터 야외 공연장에서 오픈 콘서트가 열리며, 24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부암동 일대에선 자문밖 문화로 걷기 행사도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자문밖문화포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22-09-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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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문화원, 주류 문화 만개 위한 작은 풀뿌리 될 것”
- 2022년 현재 대한민국에는 231개의 지방문화원이 설립·운영되고 있다. 이 지역문화 구심체를 한데 아우르는 조직이 바로 한국문화원연합회다.조직 최정상에 자리한 김태웅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은 토목업체 대표인 동시에 11년째 서울 중랑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인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지만 지역문화를 향한 애정은 남다르다. 지역문화에 대한 변치 않는 철학, 남다른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 문화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 꽃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는 올해 60주년을 맞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선포한 ‘대한민국 문화 플랫폼 한국문화원연합회’라는 슬로건과 ‘제1회 지역문화박람회’ 개최 계획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전에도 여러 사업을 운영하며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지역문화박람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내나라여행박람회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행사이고, 문화도시박람회는 정부 주도 아래 정책 사업을 홍보하는 장이죠. 이와 달리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추진하려는 지역문화박람회는 민간 주도의 ‘문화 종합마켓’이 될 겁니다. 231개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특색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고유의 문화적 특색을 지키는 데 주력한 231개 문화원만이 준비할 수 있는 행사라는 설명이다.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자생적으로 설립한 지방문화원은 정부 주도 단체나 문화 사업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한다고 자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31개의 힘이 모여야 가능한 일들 국내 최초의 지방문화원은 1947년 설립된 강화문화원이다. 이후 자생적으로 설립해 운영했고, 1962년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문화원들이 전국에 들어섰다. 1994년 기존 법령을 폐지하고 대체 법령인 ‘지방문화원진흥법’이 제정됨에 따라 지방문화원이 지역문화의 구심체 역할을 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합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주관하는 ‘2021년 빅데이터 센터 구축사업’ 문화 부문의 지역문화 빅데이터 센터로 선정됐다. 60여 년의 세월 동안 각 문화원에서 수집한 자료들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2017년부터 ‘지방문화 원천 콘텐츠 발굴 지원사업’을 통해 지방문화원 한켠에 방치되고 있는 기록들을 모아, ‘디지털 아카이빙’(아날로그 형태의 자료를 디지털 표준으로 인코딩해 저장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진행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그대로 제공하지 않고, 활용하기 좋도록 기획하고 가공하는 것까지가 연합회의 역할이다.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는 자료는 사실상 없는 자료나 마찬가지예요. 그런 의미에서 각 지방문화원에 쌓여 있던 자료들은 있어도 없는 자료나 다름없었죠. 이번에 문화 부문 빅데이터 센터로 지정되면서 일반인도 원할 때 언제든지 검색할 수 있는 지역N문화 포털을 보충하고, 여행이나 교육 등의 산업 분야에는 가공된 디지털 데이터를 제공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수혜자 벗어나 주체적 노인 되어야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사업’, ‘실버문화페스티벌’ 등 행사를 진행하며 노인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오고 있다. 2005년 어르신 대상으로 예술 활동비를 지원하며 노년 세대의 문화생활을 응원했던 것이 시작점이다. 어르신은 복지제도의 수혜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시기였다. 시간이 흘러 여타 단체에서도 노인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노인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꾸준히 변화했다. 하지만 김태웅 회장에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의 노년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개개인 삶의 사이클은 이미 변화하고 있는데 노인 문화는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 있어요. 여태 열심히 일했으니 인생의 남은 시간은 편안하게 쉬겠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노년기에도 주체적인 태도로 적극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합회에서 시행하는 노인 문화 프로그램들도 같은 취지에서 비롯됐다. 노인이 자신의 삶을 즐기고, 그로 인해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돕는 것. 김 회장은 이를 일자리로도 승화시킬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한 생존이 목적인 수동적 뉘앙스의 ‘일자리’와 노인이 삶의 주체가 되게끔 하는 기회로서의 ‘일거리’로 표현을 구분해 사용하는 점만 봐도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인지하고, 살면서 축적해온 삶의 경험을 쓸모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노인들은 ‘선배 시민’이 된다.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지역사회 내의 갈등을 해결하고, 어려움을 겪는 후배 시민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 요즘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성격의 문화도 물론 필요하다. 김태웅 회장은 유튜브로 즐길 수 있는 건전하고 유익한 노인용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노인들도 유튜브를 즐겨 보기 때문이다. 노인 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성화한다면,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삶의 질과 문화 수준을 향상하는 데에 일조하리라는 그의 기대도 섞여 있다. ‘풀뿌리’ 문화의 힘 김태웅 회장은 ‘마이너리티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일이 문화원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역문화의 마이너리티라는 성격은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생전 문화원과의 특별 대담을 진행할 때 강조했던 부분이다. 문화의 영역이야말로 마이너리티, 소수성이 갖는 힘이 폭발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마이너리티가 갖는 고유의 가치와 의미가 존중될 때 거대한 울림이 되어 퍼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웅 회장은 문화원연합회 60주년을 맞아 작성한 칼럼에서도 이어령 전 장관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만큼 그에게 마이너리티는 지역문화를 꿰뚫는 핵심이자 지방문화원이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이다. “한국문화원연합회, 혹은 지방문화원의 시작 역시 마이너리티 그 자체였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무슨 문화냐’며 핀잔하던 시기에는 문화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리티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문화의 중요성을 누구나 인정하는 시대가 됐죠. 지역문화의 거점으로서 231개 지방문화원이 구축해낸 풀뿌리 문화는 어느덧 ‘메이저리티’가 됐어요. 지방문화원이 앞으로도 문화 분권의 주체로서 마이너리티의 힘을 모으고 꽃피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줄다리기’ 등 잘 보존된 우리의 놀이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지역N문화 포털의 유입이 크게 늘었다. 한국 전통 게임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재미있게 구성해 제공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대한민국 문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를 이미 마친 듯하다.
- 2022-09-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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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근함의 깊이 깃든 인문학 여행지 '청주'
- 소로리 볍씨와 생명문화도시 생명문화도시 청주라고 말한다. 지역마다 일컫는 상징적 수식어가 있듯 이곳은 명칭마다 생명이 함께하는 걸 본다. 청주시 청정자연의 푸르름을 뜻하는 ‘생이’와 미래창조의 빛을 머금고 있는 ‘명이’가 결합된 캐릭터로 생명과 창조의 도시 청주를 상징한다. 이렇듯 청주에서 생명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공원도 생명누리공원이고, 정자는 생명정이다. 생명과학단지는 바이오 산업 전문으로 첨단의료 복합단지다. 가을이면 청원생명축제가 열린다. 생명과 연결된 것 중에 당연히 먹는 것이 빠질 수 없다. 청원 생명쌀은 전국 최초로 15년 연속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인정받은 고품질 쌀이다. 이제 대한항공 기내식 밥으로도 공급되어 전 세계인이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최근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밥은 한국인의 일상과 아주 밀접하다. 인사나 만남의 경우에도 꼭 밥이 등장한다. 밥은 먹었니, 밥 한번 먹자… 이런 밥. 밥 이전 벼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일 거라는 주장 관련 근거가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됐다. 2003년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국제적 검증 끝에 거의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고, 고고학자 콜린 렌프류도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했다고 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충북 옥산의 소로리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 농경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국토 중심지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충북 청주는 생명문화의 고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부근의 오창읍엔 쌀의 일생과 역사를 알려주는 단아한 한옥의 벼전시체험관과 미래지농촌테마공원이 있다. 이곳에 소로리의 유적인 볍씨가 소개되어 눈여겨볼 만하다. 옛날 옛적 벼농사를 지었던 우리 땅에서 출토된 소로리 볍씨 59알로 한반도 고대국가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다니,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알고 먹는다면 밥맛이 다를 터. 올 초에 세상을 떠난 이 시대의 문화 지성이라 일컫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청주를 사랑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생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것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와 함께 청주가 세계적인 생명문화도시라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했다. 더불어 친환경 두꺼비 생태공원과 가로수길, 초정 약수 등의 문화 원형을 분석하며 가치 발굴에 관심을 보였다. 또한 청주의 한 무덤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젓가락이 출토되었는데, 쌀과 젓가락은 생명문화의 원형이라며 지구촌 유일의 생명문화도시 청주에서 젓가락 페스티벌을 열도록 제안도 했다. 청주를 향한 깊은 애정으로 그는 청주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간 김에 오창호수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예전에는 청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했던 오창이었다. 이젠 길이 달라졌고 교통수단도 좋아져서 드라이브 삼아 자동차로 20분 정도 휘익 달리면 된다. 핫한 카페나 맛집은 물론, 자연친화적 생태놀이터와 등산로가 건강한 시간을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하루를 누릴 만한 문화휴식공원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호수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저수지 준설공사로 물을 모두 뺀 상태였지만, 물을 가득 채워 호수에서 뿜어내는 분수가 솟아오르면 가슴 후련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옛날 문전옥답에 물 대주던 방죽이 지금은 멋진 호수가 되어 현대인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휴식처로 변모했다. 세종대왕이 가끔 쉬던 곳에 나도 간다, 초정행궁 또 한 군데 들러볼 곳으로 초정행궁이 있다. 청주나 오창에서 20분 정도 거리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 끝에 늘 초정약수의 눈병 치료가 따라 나오곤 한다. 바로 그곳 초정이다. 과거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행차하여 머물며 한글 창제를 마무리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초해서 조성되었다. 옛 임금의 행궁이나 이전 대통령들의 전용 휴양지(청남대)로 청주를 택했던 걸 보면 사색과 휴식의 환경에 적당한 도시였구나 싶다. 초정 행궁마을은 도심에서 뚝 떨어져 아늑하다. 조선시대 옛 거리를 걷듯 한옥마을을 느릿하게 거닐다가 투호를 던지거나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에 참여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독서당에서 책을 읽다 전통찻집에서 보약처럼 진한 대추차 한잔 마시는 것도 좋은 시간이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물론 초정리에 갔으니 세계 3대 광천수로 탄산과 칼슘,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한 초정약수를 느껴볼 일. 한동안 코로나19의 여파로 중단되었던 초정원탕 행각에서는 야외 족욕체험장이 개방 운영되고 있다. 땅속 깊은 화강암층에서 퐁퐁 솟아나는 광천수로 이색 체험까지 알차게 챙겨보자. 한옥 스테이는 예약 필수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조용한 공감 청주는 그동안 진입로의 가로수길이나 도심을 둘러싼 상당산성과 중심부를 흐르는 무심천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육거리 전통시장은 더 말할 게 없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면서도 빠뜨리면 섭섭할 중앙공원도 청주의 역사 속 중심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청주 중앙공원이 이제는 탑골공원처럼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괜히 중앙공원(中央公園)이 아니다. 전국 각 지역마다 하나씩 있음직한 중앙공원은 그 지역을 대표한다. 이름 그대로 센트럴파크다. 한쪽 코너에는 시민극장이 있었다. 청주 극단인들의 연극도 올리던 곳이었다. 유형문화재인 목조 2층의 누각과 구석구석 유적들은 제각각 옛이야기들을 품었다. 무엇보다 천년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전설을 지닌 채 계절마다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중앙공원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금은 쫄쫄 호떡이 유명하지만 그 이전엔 할머니의 빈대떡이 유명했다. 그 옆으로 50년이 훌쩍 넘은 공원당 우동은 특히 청주를 떠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약속 장소로 정하기 좋은 곳.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공원당에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점포다. 도시가 사람을 품어주는 맛이 있고 따뜻하다. 이젠 어딜 가나 나타나는 거대한 관광 콘텐츠, 덕후들의 핫플이나 힙하다는 맛집 풍경 인증샷은 지겹다. 어느 여행지를 말할 때 ‘노잼’이나 ‘핵잼’ 타령으로 섣부르게 구분 짓는 이들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그 골목을 나와 바로 보이는 용두사지 철당간. 시내 중심에 우뚝 서 있지만 늘 그 자리에 있으니 다들 무심한 듯 지나간다. 고려시대의 귀중한 문화유적이라 여행자들이 찾아와 올려다보곤 한다. 바로 앞으로 청주극장과 현대극장이 기역자로 거의 붙어 있었다. 학생들의 단체 영화 관람이 있는 날은 그 앞이 교복 입은 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은 영플라자 뭐 그런 것들이 새 옷 입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성안길이 된 본정통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핫한 거리다. 입구부터 시네마 거리다. 청주가 의외로 영화관이 많았고 유명 연예인이나 문화예술인을 다수 배출했다는 사실, 또한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촬영된 곳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가깝고 역사와 현재가 고루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가 꽤 있다는 것. ‘제빵왕 김탁구’의 수암골은 이미 성지가 된 지 오래고, ‘태양의 후예’, ‘덕혜옹주’, ‘은교’, ‘베테랑’, ‘국가대표’, ‘프리즌’…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청주를 떠나기 전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갈 때마다 들르지만 이번엔 시간이 늦었다. 그렇지만 미술관 앞마당에 서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릿하다. 오래전 담배공장이었던 곳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근대문화유산 동부창고,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눈앞에서 조금씩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미술관 광장에서 바라보는 코끝 찡한 저녁노을, 운이 좋았다.
- 2022-08-1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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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향 따라 즐기자” 6월 전시ㆍ공연 소식
- ●Exhibition ◇민속이란 삶이다 일정 7월 5일까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의 가치와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는 특별전 ‘민속이란 삶이다’를 7월 5일까지 연다. 전시는 민속과 관련된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 600여 점을 통해 민속이 근현대에 어떻게 학문으로 자리 잡고 영역을 확장해나갔는지 돌아본다. 전시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아키비스트(기록물 관리 전문가)이자 민속학자 송석하(1904~1948)가 정리한 일제강점기 민속 현지조사 원본 사진카드 486장이 공개됐다. 약 90년 전 북청사자놀음과 봉산탈춤 등을 조사하고 카드별로 명칭과 지역, 날짜를 기록했다. 전시실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추억의 물건들도 민속의 이름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1970~80년대 혹은 1980~90년대 삶의 모습이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그 시기의 민속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됐다. 필름카메라,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 286 컴퓨터, 3.5인치 디스켓 등이다. 온라인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민속 물품도 전시되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한국을 모자의 나라로 각인시킨 갓, 미국 아마존에서 대박 신화를 쓴 영주 호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달고나 등을 만날 수 있다. ◇조미수교와 태극기 일정 7월 7일까지 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조미수교와 태극기’ 특별전을 통해 1882년 작성된 최초의 태극기 도안을 공개했다. 최초의 태극기 도안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 슈펠트 문서에서 찾은 것으로, ‘슈펠트 태극기’로 불린다. 원본은 도서관에 있고, 이 교수가 촬영한 사진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1882년과 1899년에 미국 해군부가 발간한 책 ‘해양국가의 깃발’과 그 안에 실린 태극기 도안도 공개됐다. 특히 1882년 최초의 태극기 도안과 그해 나온 ‘해양국가의 깃발’ 속 태극기가 매우 흡사해 화제를 모았다. ●Book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이어령·열림원) 지난 2월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가장 사적인 고백이 담긴 산문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가 새롭게 출간됐다. 2010년 초판 출간 이후 12년 만이다. 개정판에는 개신교 신앙 고백에 관한 인터뷰를 담은 ‘나는 피조물이었다’가 빠졌다. 1~4부 모두 이어령의 산문으로만 채워졌다. ‘나는 피조물이었다’는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에 담겨 출간될 예정이다. 책에는 이어령 문학의 ‘우물물’이 되어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메멘토 모리’의 배경이 되는 여섯 살 소년 이어령의 고향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1부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서 이어령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2부 ‘이마를 짚는 손’, 3부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에서는 이어령의 사색적이고 섬세한 필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4부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이어령의 문학이 어떠한 과정으로 완성돼왔는지 엿볼 수 있다. 이어령은 어머니부터 외갓집, 고향, 그리고 문학론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감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묵은 글들” 속 또렷하게 남아 있는 향수를 전한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공감을 이끈다. ◇생존자들(캐서린 길디너·라이프앤페이지) 임상심리학자인 저자가 25년간 심리치료를 하며 만난 내담자들 가운데 특별한 네 사람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의 비극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저자는 대화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치유받는데, 그 과정이 감동을 준다. ◇민낯들(오찬호·북트리거)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열두 가지 사건을 담은 책이다. 故 변희수 하사, 故 설리(본명 최진리) 등의 문제적 죽음을 응시하고, 코로나19 팬데믹과 n번방 사건, 세월호 참사, 낙태죄 폐지 등을 되짚으며 한국 사회의 민낯을 폭로한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열린책들) 자존심 센 영국인이 독일을 극찬하는 책이다. 저자는 뼈아픈 과거에서 배운 교훈, 품위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 문화를 존중하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책임지려는 리더십 등 전후 75년간 현대 독일의 놀라운 변화를 분석한다. ●Stage ◇웃는 남자 일정 6월 10일 ~ 8월 22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프랭크 와일드혼 출연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 민영기, 양준모, 신영숙, 김소향, 이수빈, 김승대, 최성원 등 뮤지컬 ‘웃는 남자’는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두 번째 창작 뮤지컬로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8년 월드프리미어와 2020년 재연에 이르기까지,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웃는 남자’는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인물인 그윈플렌의 여정을 통해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지울 수 없는 웃는 얼굴을 가진 채 유랑극단에서 광대 노릇을 하는 관능적인 젊은 청년 그윈플렌 역에는 배우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이 출연한다. 박효신은 2018년 이후 4년 만의 귀환이다. 박은태는 뉴 캐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박강현은 2018년 초연, 2020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까지 함께하게 됐다. 또한 우르수스 역에는 민영기와 양준모, 조시아나 역에는 신영숙과 김소향이 각각 캐스팅돼 기대감을 더한다. ◇번지점프를 하다 일정 6월 22일 ~ 8월 21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심설인 출연 이창용, 조성윤, 레오, 최연우, 이정화, 고은영, 정재환, 렌 등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병헌·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2012년 초연돼 2018년까지 세 시즌을 거쳤다. 아름다운 스토리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극은 국어 교사 서인우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간다. 국문과 대학생 인우는 당돌한 미대생 태희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지만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태희를 간직하고 살던 인우 앞에 그녀와 같은 버릇, 같은 행동을 하는 남학생 현빈이 나타나면서 인우는 혼란에 빠진다. ◇마타하리 일정 5월 28일 ~ 8월 1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권은아 출연 옥주현, 솔라, 김성식, 이홍기, 이창섭, 윤소호, 최민철, 김바울 등 뮤지컬 ‘마타하리’가 5년 만에 돌아온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본명 마그레타 G. 젤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6년 초연과 2017년 재연에 참여한 옥주현이 마타하리 역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이와 함께 마마무 솔라가 뮤지컬 무대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다. 또한 마타하리의 유일한 사랑인 아르망 역은 김성식, 이홍기, 이창섭, 윤소호가 연기한다. ※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2-06-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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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인간을 탐구하는 신간!
-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열림원 지난 2월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산문집이 다시 출판됐다. 이어령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메멘토 모리’의 배경이 되는 여섯 살 소년의 고향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생존자들 캐서린 길디너·라이프앤페이지 임상심리학자인 저자가 25년간 만난 내담자들 가운데 특별한 네 사람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의 비극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저자는 대화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치유받는다. 민낯들 오찬호·북트리거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열두 가지 사건을 담은 책이다. 故 변희수 하사, 故 설리(본명 최진리) 등의 죽음과, 코로나19 팬데믹과 n번방 사건, 세월호 참사, 낙태죄 폐지 등을 되짚어본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 존 캠프너·열린책들 영국인인 저자는 뼈아픈 과거에서 배운 교훈, 품위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 문화를 존중하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책임지려는 리더십 등 전후 75년간 현대 독일의 놀라운 변화를 분석한다.
- 2022-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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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국제도서전’, 3년 만의 개막…2만 5000명 방문
-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이 3년 만에 열렸다. 책 애호가들의 기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제28회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이번 도서전은 코로나19 여파로 연기ㆍ축소를 거듭하다가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것이다. 주최 측 추산 첫날 방문객은 2만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주요 인사도 행사장을 찾아 축하를 전했다. 오전 11시 30분에 열린 개막식에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 등 출판계 인사들, 도서전 주빈국인 콜롬비아의 아드리아나 파디야 문화부 차관이 참석했다. 박보균 장관은 축사를 통해 “경제력과 군사력, 문화의 힘과 매력이 일류선진국의 조건과 자격이며, 그 문화의 바탕에 책이 존재하고, 한류 문화(케이 컬처)의 경쟁력에도 책이 있다”라고 책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올해 주빈국은 우리나라와 수교 60주년을 맞은 콜롬비아로, 중남미 국가로서는 첫 도서전 참가다. 박보균 장관은 콜롬비아의 아드리아나 파디야 문화부 차관의 참석에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박 장관은 “콜롬비아 주빈국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백 년의 고독’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작품을 비롯해 콜롬비아의 빼어나고 흥미로운 문학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박보균 장관은 “이 행사를 통해 꿈과 희망을 낚아채고,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행사의 성공을 기원했다. 개막식 이후 박보균 장관은 콜롬비아 주빈국관을 방문해 전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많은 분이 주빈국관을 찾아 콜롬비아를 경험하고 양국 간의 문화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반걸음(跬步, One Small Step)’이다. 이는 세상을 바꾼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용기 있게 나아간 ‘반걸음’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홍보대사는 소설가 김영하·은희경, 퓰리처상을 두 차례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다. 오는 5일까지 열리는 도서전에는 출판사 195개사(국내 177개사, 해외 14개국 18개사), 저자와 강연자 214명(국내 167명, 해외 12개국 47명)이 참여해 주제 전시와 강연 등 총 306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첫날에는 소설가 김영하가 '책은 건축물이다'라는 주제로 종이책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어 그림책 작가 이수지(‘그림으로 그대에게 반 발짝 다가서기’), 소설가 은희경(‘문학으로 사람을 읽다’), 소설가 한강(‘작별하지 않는 만남’), 가수 장기하(‘상관없는 거 아닌가?’) 등이 주제 강연에 나선다. 더불어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 '아노말리'의 작가 에르베 르 텔리에의 강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대표 위르겐 부스, 예테보리 도서전 대표 프리다 에드먼의 대담 등이 열린다. 각종 전시 코너 등도 마련돼 있다.
- 2022-06-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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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어령 전 장관, '현시대 최고 지성인'이 남긴 말들
-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말과 글은 남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암 투병 끝에 지난달 26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인문학 부문의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인’으로 불렸다.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어령 전 장관은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그는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됐다.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1967년부터 30여 년 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퇴임 후에는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저술 활동도 활발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84년 발표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꼽힌다.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부채 등 일본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 ‘축소지향’이라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다. 2006년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디지로그’ 사회가 올 것을 전망한 바 있다. 이밖에도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그가 펴낸 책만 300권이 넘는다. 이어령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난 후 그가 생전 쓴 책들이 각종 도서 차트에서 역주행 인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독자층은 40, 50대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이어령 대담집이다. 인터뷰어는 ‘조선비즈’ 김지수 기자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같이 매주 화요일 스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령 전 장관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2017년 암 선고를 받은 이 전 장관은 치료를 거부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글을 썼다. 그는 ‘죽음’은 ‘생의 한 가운데’ 있다고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머멘토 모리’라는 책을 낸 적도 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죽음을 ‘관찰’하고 싶어 했다. 그는 “인간은 암 앞에서 결국 죽게 된다네. 이길 수 없어. 다만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겠다는 거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나가면 그게 암을 이기는 거 아니겠나”고 말했다. 그러나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하고, ‘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라는 사실을 느껴가는 이 전 장관은 글을 쓰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몸과 반대로 이 전 장관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더욱 밝아지고 아이처럼 순수해졌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야.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라고 어록을 남겼다. 이어령 전 장관은 대화를 통해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른들은 '다 안다'고 하지만, 사실 아는 척을 할 뿐 진실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전 장관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령 전 장관은 어렸을 때부터 솔로몬의 지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항상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다. 혼날 것이 두려워서 고분고분 둥글게 살지 말고,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질문자의 삶을 산 그는 ‘존경은 받았지만 사랑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천재는 고독하다는 말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어령 전 장관은 순수한 어린아이는 ‘영성’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느꼈다는 이 전 장관. 그는 잠 자는 어머니의 코 밑에 손을 대본 적도 있고, 여섯 살 때는 혼자 굴렁쇠를 굴리다 ‘절정의 시간’인 정오에 눈물을 흘렸다고. 훗날 이는 ‘88올림픽’ 당시 굴렁쇠 소년으로 재현 됐다. 정오에 혼자 나와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 넓은 경기장에서는 오직 굴렁쇠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굴렁쇠 소년’의 침묵은 매우 센세이션했고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느끼고 ‘디지로그’,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한 것에 대해 ‘영성’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보다 더 영성을 느낀 사람은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평생을 그리워한 어머니, 딸과 만나게 됐다. 이어령 전 장관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글’과 ‘말’을 남겼다. 다음 달부터 그가 남긴 유작 30여 편이 출판된다. ‘한국인 시리즈’와 함께 '알파고와 함께 춤'(가제), '회색의 교실'(가제) 등이 출간될 전망이다. “스스로 묘비명을 쓰라고 한다면 ‘평생 퍼내도 퍼내도 항상 갈증을 느껴 우물을 판 사람’이라고 말하겠어요. 영원히 두레박의 갈증을 가지고 평생 살아온 사람. 두레박은 늘 비어 있어야 물을 퍼낼 수가 있지요. 이 비어 있는 것이 갈증입니다. 영원한 갈증이지요.” - 2017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인터뷰 중
- 2022-03-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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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26일 별세
-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숙환으로 26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생전에 문학평론가, 언론인, 작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최고 석학 손꼽혔던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이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를 비롯해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과거 고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투병과정에 대해 “병까지도 인간을 이길 수 없게 하는 방법은 친구로 삼는 것이다. 적으로 맞서 싸우면 병을 이길 수 없다”며 투병이나 치병이 아닌 친병(親病)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인터뷰에서 AI와 4차산업을 화두로 삼으며 새로운 지식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표현했었다. 또 그는 본지 시니어 독자를 향해 당부의 이야기를 남겼었다.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대로입니다. 인터넷 시대의 지지자(知之者)는 인간이 아니라 AI입니다. 지지자 위가 호지자(好之者)이고, 또 그 위가 낙지자(樂之者)입니다. 바로 지호락(知好樂)이지요. 연애가 노동이라면 비 맞아가며 연인을 기다리겠어요? 골프가 땅을 파는 노동이라면 18홀을 돌 마음이 들겠습니까? 이 지호락을 추구하면서 임도 보고 뽕도 따는 마음과 자세로 사는 게 중요합니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 2022-02-26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