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사회인으로서 발걸음을 내디딘 청춘에게 세상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런 20대를 맞이한 딸을 위해, 50대 엄마는 “세상을 향해 망설임 없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자신만의 인생을 펼쳐나가도 괜찮다”고 조언한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인생 선배인 박미진(51) 작가는 이 세상 딸들의 인생을 축복하고 응원하기 위해 ‘엄마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메이트북스)을 펴냈다.
Q. ‘엄마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펴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전에는 자녀 교육에 관한 도서들을 써왔습니다. 첫 책이 나온 건 아이가 열 살 무렵이었죠. 당시엔 내가 아이를 어떤 생각으로 키웠고, 교육관은 어땠는지 등을 담으려 했어요. 어느덧 그 아이는 자라 20대가 됐고, 엄마 품을 떠나 자신의 삶을 개척할 시기가 왔죠. 이제는 ‘네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걸 제 경험을 통해 들려주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 딸뿐만 아니라 또래의 아이들과 나누면 더 좋을 거 같았어요. 마침 작년에 딸과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덕분에 평소보다 더 밀착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평소의 생각과 더불어 그때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엮게 됐습니다.
Q. 책을 낸 뒤 소감은 어떤지요? 딸은 반응은 어땠나요?
아마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나?’ 하는 생각이 들죠. 한편으론 딸이 이 책을 두고두고 보면서 삶이 힘든 순간에 작은 지혜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고, 또 그럴 수 있으리라는 위안이 됐어요. 평생 엄마가 함께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어느 순간 사라질 수도 있는데, 이렇게나마 아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은 씨앗을 남긴 게 다행스럽기도 했죠. 처음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이 “내 거야”하고는 먼저 집어가더라고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요. 그런데 차마 읽어봤느냐, 어땠느냐고는 못 물어보겠더군요.(웃음) 그래도 애초에 책을 쓴다고 할 때부터 딸이 적극 지지해줬고, 또 책이 나오고도 좋아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은 굉장히 좋습니다.
Q. 집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건 무엇인가요?
딸의 또래, 20대 여성에게 하는 말이잖아요. 제일 우려했고 고민했던 지점은 자칫 이 이야기가 ‘꼰대의 잔소리’로 들리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에 대해선 끊임없이 자기 검열 과정을 거쳤죠. 아무리 좋은 말도 엄마가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요. 제 육아 원칙 중 하나가 ‘잔소리는 하지 않겠다’였어요. 잔소리가 될 이야기는 세 마디 이상 안 넘어갔죠. 아이에게 바라는 행동이 있으면 먼저 제안을 해보고, 그걸 실행하느냐 마느냐는 아이의 선택이라고 여겼어요. 그러다 보니 이 책 역시 잔소리가 될까 봐 그 점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아닌 ‘이런 방식도 있단다’, ‘이런 생각은 어때?’ 정도로만 받아들였으면 해요.
Q. 딸과 72일간의 ‘따로 또 같이 유럽여행’(잠은 같이, 여행은 따로)을 다녀오셨는데요. 당시 여행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요?
엄마 눈에는 아무리 성인이라도 내 딸은 마냥 어려 보이잖아요. 이 아이에게 다가오는 위험과 고난을 내가 다 막아주고 싶은 마음이고요.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가서는 상황이 역전됐어요. 딸이 제 보호자 역할을 했으니까요. 여행 중 프라하에서 항공사의 실수로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타고 선불로 예약했던 이후 일정까지 취소해야 할 지경에 이른 적이 있어요. 여러모로 난감했던 상황인지라 자칫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낼 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딸아이가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딸이 훨씬 컸구나, 성인으로서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나갈 힘이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아이에 대한 신뢰의 폭이 훨씬 커졌고, ‘나 혼자라면 어땠을까?’ 싶었을 정도로 여행 내내 제가 의지를 많이 했어요.
Q. 자신이 20대 때 부모님께 들었던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아무래도 엄마는 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잖아요. 어릴 적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는 젊은 나이에 홀로 3남매를 키우셨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인데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늘 이런 생각을 하셨대요.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답도 있다. 그 답이 뭘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제가 20대 때 자주 해주셨어요. 제가 고민이 있어 보이면 ‘미진아, 문제가 있으면 답도 있어. 잘 찾아보면 꼭 답이 보일 거야.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거나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죠. 덕분에 저는 삶의 난제가 찾아왔을 때도 움츠러들기보다는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둘러보고 생각하고, 그래도 답이 안 찾아지면 ‘내 질문지 잘못된 건 아닌가’ 점검해보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딸에게도 가끔 그런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답니다.
Q. 책 제목과 반대로 ‘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제가 엄청 진지하거든요. 좀 완벽주의적인 경향도 강해요. 근데 저희 아이가 한 번씩 그렇게 말해요. “엄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 좀 해봐. 지나갈 줄도 알아야 해.”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내 몸을 채우던 긴장이 확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면서 굉장히 위로되고 고맙더라고요. 엄마라고 완벽하지는 않잖아요. 엄마도 헷갈릴 수 있고요. 그렇게 제가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 딸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 문제를 바라보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Q. 새해를 맞이하는 딸에게 덕담 한마디 한다면요?
책에서도 내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데요.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 20대를 돌아보면 이게 맞나?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 끊임없이 했어요. 막상 어떤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현실에 발목 잡히는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환경적인 요인이나, 경제적인 문제 등등으로요. 그럴 때마다 저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많이 주춤거렸어요. 우리 딸은 설사 현실이 발목을 잡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망설임 없이 요구하며 살아갔으면 해요. 제가 그리 낙관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동안 살아본 바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믿고 나아가면 그 끝은 원하는 삶에 닿아있더군요. 그러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두려움 없이 가라고, 그리고 그 끝은 분명히 행복할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창과 방패의 구도에서 극적으로 역할이 바뀌는 인생을 우리는 가끔 목격한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주인공으로, FBI를 속 태웠던 범죄자에서 보안 컨설턴트로 변신한 프랭크 애버그네일 2세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만난 박미진(朴美眞·43세) 씨가 풀어놓은 이야기도 극적인 반전을 연상케 했다. 채권추심원에서 빚으로 고통받는 채무자를 돕는 금융복지상담사로 제2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채권추심하는 사람들도 다 보통 사람들이에요. 영화 속 모습처럼 우락부락하고 거친 말을 쏟아내지는 않아요.(웃음)”
박미진 씨는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이뤄지는 채권추심 업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심지어 채권자들도 빚을 받아내는 과정은 무조건 집을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다 그렇진 않아요. 저도 초보 시절엔 출장도 가고, 채무자와 만나려는 시도도 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서류를 통해 안내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죠. 채권추심 과정에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상환 방법을 안내한다든가,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죠. 불법을 저지르지 않도록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고, 이를 교육하는 회사도 많아요.”
하소연과 욕설 비일비재
신용정보회사가 다루는 채권은 금융 업계에서도 ‘악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많다. 당연히 채무자는 빚을 갚을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빚 탕감을 독촉하는 이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그 만남의 과정이 고난할 수밖에 없다.
“싫은 소리도 많이 듣죠. 빚이 한두 푼이 아니라는 하소연은 기본이에요. 왜 일 못하게 전화하느냐는 항의에서부터 욕설도 비일비재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악에 받친 소리는 오래 가슴에 남아요. 이 일도 고충이 있는 감정노동이죠.”
그녀가 신용정보회사에서 근무한 것은 약 12년. 적성과 맞지 않아 중간에 쉰 적도 있다. 일을 하면서도 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다. 2015년 남편이 직장을 순천으로 옮기면서 내친김에 추심과는 이별을 고했고, 남편의 소개로 알게 된 금융복지상담사 교육 과정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두 번째 직업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추심 업무를 볼 때 궁금했던 금융복지 분야의 전문지식을 쌓고 싶은 호기심이 컸다. 그러다 2016년 5월, 전라남도 금융복지상담센터가 개설될 때 창립 멤버로 참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안 갚아도 되는 빚 걱정도 많아
“채권추심 업무를 오래하다 보니 빚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해 도움을 청하는 분 중 상당수는 추심기관의 우편물만 보면 무조건 무서워하는 고령의 취약 계층, 저소득층이에요. 빚쟁이가 무서워 10년 넘게 밤에 전깃불도 못 켜고, 좋아하는 책도 이불 뒤집어쓰고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막연히 이런 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금융복지상담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참여하게 됐어요.”
전국에 개설된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이름 그대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금융과 복지 관련 제도에 대해 상담해주는 일을 한다. 재무건강진단이나 수입·지출관리 상담, 서민금융지원 안내도 하지만 채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개인파산 및 면책, 개인회생 등 해결 방법을 찾아 지원하는 게 주요 업무다.
“간혹 채권추심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발생해도 채무자들은 대부분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요. 기존 빚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신용불량자로 사시는 분도 많고요. 흔히 상상하는 수천, 수억 원의 큰돈이 아닌데도 말이죠. 심지어 소멸시효가 지나 갚지 않아도 되는 채무 때문에 비정상적인 삶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어요.”
무양심으로 몰아선 안 돼
입장 자체는 공수(攻守)가 전환된 상태이지만, 채권추심 과정을 속속들이 아는 만큼 박 씨는 채무자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채권추심원은 채무자의 기초생활수급자 여부 같은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추심을 진행하죠. 이럴 땐 제가 대신 연락해서 추심정지 요청 등의 대처를 합니다. 이외에도 그들의 업무처리 방식을 잘 알아 유리한 점이 있어요. 예상되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추심 담당자의 입장을 알기 때문에 전화로 대신 채권 협상을 하기도 해요. 때로는 상담을 받으러 온 분이 들고 오는 서류에서 옛 동료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하죠.(웃음)”
박 씨는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도덕적 결함과 동일시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원인이 제도나 사회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화살이 개인에게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심한 경우 그 과정에서 삶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저희를 만나 빚이라는 짐을 덜게 되면서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분도 많아요. 압류로 인해 정상적인 금융활동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경제활동을 포기할 만큼 힘들게 살아온 분들이 채무가 해결되면 옷차림이나 삶의 태도가 180도 바뀌면서 새사람이 되기도 해요. 그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죠.”
비슷한 업무이기는 하지만 입장이 반전된 상황.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박 씨는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상담을 하다 보면 우울한 가정사, 무서운 경험담에 동화되기 쉬워요. 드라마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혹한 경우도 있죠. 채무자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평범한 제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에게 제 직업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 좋아요. 지난해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재학 중인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