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더 빛나는 빛축제로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보자!
낭만적인 분위기 속 인생 사진을 남길만한 빛축제 5곳을 소개한다.
청도 프로방스 빛축제
11월 30일까지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빛의 숲, 고흐별빛정원 등을 탐방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
태안 빛축제
12월 31일까지 | 네이처월드
365일 연중무휴인 태안 빛축제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쌓아가자!
눈내림 별내림 불빛축제
12월 31일까지 | 산들소리
서울 근교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주목받는 곳! 트리 앞에서 사진 찍으면 인생샷 완성!
서울랜드 불빛축제 루나파크
12월 31일까지 | 서울랜드
6m 크기의 미러볼과 화려한 빛으로 시작되는
빛축제의 하이라이트! 신나는 빛축제가 펼쳐진다!
제주 허브동산 별빛놀이
12월 31일까지 | 제주 허브동산 파크 내
짙은 허브 향기가 머무는 허브동산에서 즐기는 야간데이트! 다양한 테마공원으로 가족 나들이 가자!
어떤 나이에는 인간이 만든 문명들을 보며 지식을 키우는 시기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인간이 만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그것이 아무리 대작이라 할지라도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대자연 탐험을 시작한 것은…. 힘든 만큼 더 단단해지고, 땀흘린 만큼 충전이 되는 여행이 바로 트레킹 여행이었다. 알프스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1200km의 돌로미티 트레킹! 겨울에는 스키 천국으로, 여름엔 트레킹 천국으로 변신한다. 지구라는 이름의 건축가가 만들어낸 웅장한 조각품에 감탄하는 시간 속으로 떠나보자.
이탈리아가 숨겨놓은 천상의 트레일, 돌로미티 알타비아 넘버원
북부 이탈리아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에 솟아오른 바위 산맥 돌로미티(Dolomite)는 해발 3000m 이상의 봉우리를 18개나 품고 있는 웅장한 산악지대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기묘한 바위 봉우리들과 에메랄드빛 빙하 호수, 울창한 숲과 계곡, 산상화원을 보는 듯 군락을 이룬 야생화가 어우러져 알피니스트들의 요람이자 암벽 등반가들의 성지가 된 돌로미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군과 이탈리아군이 치열한 접전을 펼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돌로미티를 가기 위해 베네치아로 들어가 ‘알타비아 넘버원(AV1)’의 관문도시 격인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짐을 풀었다. 아웃도어 매장과 레스토랑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 마을이 너무 청량하고 예뻐서 굳이 어딜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마을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자주 와 머물렀고, 헤밍웨이도 집필활동을 한 곳이라고 했다. 다음 날 드디어 ‘높은 길’이라는 뜻의 ‘알타비아’ 트레킹을 시작했다. 해발 2000~3000m의 고원을 걷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날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것을 제외하곤 난이도가 아주 높진 않아서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니체가 사랑하고 르코르뷔지에가 극찬한 아름다움
니체는 돌로미티를 두고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떤 이는 다시 내려올 산을 뭐하러 힘들게 오르느냐고 묻지만 인생에서 아무 어려움도 없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의 희열도 없다면 니체가 말한 대로 삭막하고 의미 없는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또한 돌로미티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건축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독보적인 풍광을 지닌 돌로미티는 14좌를 알파인 스타일로 오른, 현존하는 최고의 등반가 라인폴트 매스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그가 고작 다섯 살일 때 이곳 3000m급 암봉을 올랐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트레킹을 하다 보면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목마 태우고 마치 동네 공원 산책하듯 가벼운 차림으로 험준한 산을 오르는 가족들이 있다. 또 주말에 친구들과 그룹을 짜서 걷다 쉬다 하면서 놀이하듯 등반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알프스 트레킹이나 암벽등반은 마치 우리가 매일 동네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로 보였다.
트레커의 로망, 알타비아 넘버원
히말라야, 로키와 함께 세계 3대 명산에 속하는 알프스 산맥, 그중에서도 돌로미티는 트레킹 코스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가장 유명한 3개의 봉우리 “트레치메(Tre Cime)”는 돌로미티를 말할 때 늘 대표 사진으로 등장한다. 가장 높은 치마그란데(Cima Grande) 봉우리의 높이는 무려 3003m에 이른다. 해가 지는 기울기에 따라 갖가지 색으로 변신하는 바위의 장관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유명 사진작가들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체다(Seceda) 봉우리를 비롯한 거대한 암봉들이 압도적 풍광을 선사하는 알타비아 넘버원은 돌로미티에서도 가장 클래식한 트레킹 루트다. 거대한 암봉군 사이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그동안 수없이 유럽을 들락거렸지만 단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유럽 문화의 진수를 맛보게 해줬다. “여행의 백미는 트레킹”이라는 어느 트레커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눈이 녹아 싱그러운 빛깔을 뽐내는 알프스 산자락의 맨살은 가는 곳곳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그늘이 많지 않은 돌산이지만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너른 평지를 걷는 코스라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길을 잃기 쉬운 돌로미티 트레킹은 현지 이탈리아 산악 가이드와 함께 했는데 이들의 스틱 사용법이 우리네와 달라 참으로 신기했다. 그가 등산 스틱을 쓰는 모습은 마치 스키를 타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 산장 사람들이 겨울이면 스키를 교통수단으로 삼아 이 산장에서 저 산장으로 다닌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해가 뜨면 걷기 시작해 다음 산장까지 걷다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깔고 알프스 품에 안겨 도시락을 먹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다음 산장에 도착해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그 막간의 시간에도 산악 가이드는 산장집 어린 아들과 암벽등반을 하러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들에겐 정말이지 산악 스포츠가 밥 먹는 것 같은 일상이구나 싶었다.
산악 가이드는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긴 등산 바지를 입고 걷는 나를 보더니 왜 반바지를 입지 않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풀독이라도 오를까봐 늘 긴 바지를 입었던 나는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도 긴 바지 차림이었던 것이다. 돌로미티는 한국의 산과 다르고 바위산이라 풀독이 오를 일도 없다. 다음 날 반바지를 입었더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유러피언들은 햇살을 즐긴다. 내 긴 바지가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림 같은 알프스 산장, 그리고 이탈리아 음식의 진수
돌로미티 트레킹은 겨울이면 스키어들의 성지인 산장과 산장 사이를 걷는 것이다. 눈이 없는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잘 느끼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을 듯하다. 케이블카도 있어 걷기 싫은 곳에선 이용할 수 있다. 눈뜨면 알프스의 압도적인 풍광들 사이를 걷다가 휴게소에서 최고의 이탈리아 코스요리를 먹고, 해가 지면 해발 2000m가 넘는 드라마틱한 풍경 속에 위치한 최고급 전망을 자랑하는 산장에서 잠을 자고 알프스의 일출을 날마다 맞이하는 일은 호사롭다. 이탈리아 음식이라면 피자와 파스타, 후식이라면 고작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만을 떠올린다면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알았다. 트레킹 여행이니 다이어트가 좀 될 거라는 희망은 무궁무진 미각을 자극하는 이탈리아 코스요리 앞에서 물 건너 가버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많이 먹는다. 보름 동안 매일 맛본 요리의 순서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우선 스프리츠 같은 식전주로 입맛을 예열한다.
② 프리미라는 일종의 전체요리다. 주로 덤플링(완자탕), 굴라시, 라비올리, 야채스프, 마카로니, 파스타 중 선택하는데 양이 메인디시 수준이다.
③ 세콘디 피아티라는 메인 요리를 먹는데 스테이크 종류, 감자 요리, 폴렌타, 스파게티 등이 나왔다.
④ 디저트로 팬케이크, 브라우니, 푸딩, 젤라토(아이스크림)를 먹는다.
⑤ 식후주로 그라파같이 향이 좋은 술이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트레치메 앞 산장에서 먹었던 라비올리의 맛과 트레킹이 끝나던 날 마지막 산장에서 마신 스프리츠의 황홀함을 잊을 수 없다. 환상적인 풍경을 벗 삼아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이탈리아 정찬의 세계를 느껴보는 일, 전통주 그라파 한 잔에 피로를 풀고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빛 아래 대자연과 하나 되는 일, 모두가 잠든 새벽 알프스 정상에서 고요한 일출을 맞이하는 일. 이것이 바로 알타비아 트레킹의 진수다.
[4월은 꽃이다. 속살 드러낸 자태, 눈부셔라]
요염하게 생긴 봉오리들이 생긋생긋 웃는다. 봄 바람의 속삭임에 작은 꽃망울들이 방긋방긋 미소 짓는다. 4월의 꽃은 화려하고 눈부시다. 설렘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이 꽃으로 물들이고 웃음꽃이 만발한다. 시를 닮은 4월, 4월의 꽃은 그리움일 수밖에. 마침내 마음의 뜨락에 꽃씨 뿌리다.
꽃이라는 것은 묘한 마력(魔力)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 말이다. 꽃 한 송이로 사랑의 감정이 싹 트기도 하고,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꽃이다. 꽃이 한 여자를 화가로 만들었다. 꽃그림으로 일상의 우울함을 설렘으로 바꿔버렸다. 그림 작가 원은희가 꽃그림으로 설렘과 행복, 웃음을 전한다. 캔버스 안의 꽃다발로.
한마디 한마디가 조근조근하다. 거기에 생글생글한 미소로 무장한 그녀와 이야기 꽃을 피우면 금세 10대 소녀와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녀가 별빛이 쏟아지고, 파아란 바닷물이 넘실대는 남해의 한 마을에서 야생화를 따 소꿉놀이를 하던 소녀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한다.
커다란 책가방을 들고 다니던 시절, 등굣길에 화단의 꽃을 꺾어 선생님께 선물한 이야기,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오빠들이 8남매를 옹기종기 모아 가곡을 불러준 이야기, 언니들이 사다 준 식물도감으로 꽃을 관찰한 이야기 등 수다의 꽃을 피운 그녀는 영락없는 소녀다.
그래서일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53세 소녀에게서는 긍정의 아우라가 흘러넘친다.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는 것은 그 아우라에 취해서이리라. 그래서 원 작가는 꽃이다. 보는 것 그리고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고 위로가 되는 그런 꽃 말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을 위로해줬던 꽃 그림. 이제는 그런 인생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그녀가 꽃다발을 건넨다. 몇 년 전 자신이 받은 위로의 꽃다발에 사랑과 희망을 담아.
◇ 꽃은 위로였다
2012년 묵호항. 주부 일로 인생의 반을 바친 그녀가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떠난 곳이다. 홀로서기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익숙지 않은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고, 가족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물밀 듯이 쏟아졌다. 또한 신체적 변화에서 오는 우울감을 던지기 위해 묵호항을 찾은 것이다. 묵호항에서 찌든 때를 씻어내고 올라와 그녀가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색연필. 그리고 묵호항에서 본 등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남들 눈으로 보기엔 틀림없는 꽃이지만 그녀는 그것이 틀렸다고 일침을 가하는 듯 ‘등대’라는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 누가 봐도 일반인이 연습장에 장난을 쳐 놓은 듯한 그 끄적임 하나가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그녀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다.
“꽃과 등대. 무엇인가 길잡이가 되고 희망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등대를 꽃으로 표현해 봤는데 저 자신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는 겁니다. 꽃 그림을 그리는 거요? 처음에 그것은 제가 살기 위한 것이었어요. 저를 위한 위로의 꽃다발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마음에 꽃이 피어나더라고요.”
그때 시작한 그림의 세계. 배워보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그림은 독창적이고 감각적이다. 거기에 향긋한 꽃의 마력까지 담겨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의 그림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삶과 꽃에 대한 깊은 고찰 덕분이리라. 그리고 어린 시절 꽃과 함께 했던 순수함이 그림으로 발현돼 위로의 매개체로 승화했다.
“견디기 힘든 것을 견뎌냈더니 그림이라는 선물을 받게 됐어요. 꽃 그림은 저를 위한 시(詩)이자 기도였는데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런 기운을 느낀다고 하니까 신비로운 일이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또 다른 힘이 솟습니다. 꽃을 주는 것은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계속 이 고마움을 드려야겠어요.”
◇ 매일 매일 꽃다발을 주겠어요
“꽃을 준다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잖아요.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감사를 표시하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요. 사랑, 감사, 위로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긍정적인 수식어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꽃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그 꽃 그림 꽃다발을 받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어린 시절 언니들이 사온 식물도감이 닳도록 식물 관찰에 몰두했던 호기심 대마왕 소녀는 이제 매일 자신이 그린 꽃다발을 매일 사람들에게 주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그림을 선물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요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한 법이라는 것을 오감으로 깨닫고 있는 그녀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렸지만 이제는 보는 이의 행복한 표정도 그림을 그리는 이유 중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뿌듯함을 숨길 수가 없단다.
“어느 날은 제 그림을 본 사람들이 길거리의 꽃을 찍어서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이게 어떤 꽃이냐고 하면서요. 그때 참 뿌듯했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을 나로 말미암아 한 번 더 보게 돼 그 생명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니까요. 꽃을 보는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이 그분도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아름답다고 생각했겠어요?”
◇ 자유분방함 속 메시지
원 작가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경험이 없다. 그 덕분인지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어떤 방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또 3년차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에 대한 잔잔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보는 이들은 그 작품의 색감과 감각적 요소를 보고 미소를 머금지만 그 안에 새겨진 메시지를 알아차렸을 땐 진한 감동과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그녀가 그린 ‘재회’라는 작품은 노란 옷을 입은 소녀가 노란 나비에 둘러싸여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다. 눈으로 본 그림에서는 봄냄새 물씬 풍기는 따뜻함이 전해지지만, 사실 원 작가는 여기에 4·16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메시지를 담았다. 비탄함을 넘어 노란 나비와 함께 행복한 곳에서 재회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는 뜻이다.
본인의 추억이 담긴 작품도 있다. ‘엄마의 빨랫줄’이라는 작품에는 남해 소녀시절 어머니가 마당에 널어놓았던 생선들과 빨래, 그리고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표현됐다.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50대 원은희가 아닌 소녀 원은희로서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원은희 그녀의 그림 인생의 미래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 더욱 행복하고, 떨리고, 기대가 되고 설렌다는 수식어를 모두 붙이는 그다.
“그림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제 그림의 특징입니다. 제가 꽃을 보고 느끼는 것.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 세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을 가감 없이 그림에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슬프거나 우울하게 표현하지는 않을 거예요. 세상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거든요.”
그녀는 ‘일단 살아는 있어야 돼’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그림들을 자살예방센터에서 전시했던 것을 공교롭다고 표현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서울 문학의 집에서 ‘매일 매일 꽃다발을 드릴게요’라는 개인 전시회를 열고 서울발레시어터 LIFE 콘서트에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전시회까지 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은 그림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 그녀다.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꽃 그림은 제게 정말 많은 것을 가져다 줬어요. 위로뿐만 아니고 많은 좋은 사람도 얻게 해줬으니까요. 그리고 전시의 기회도요. 그리고 예전의 저처럼 심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