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를 떠나고픈 8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영화 '봉오동 전투'
개봉 8월 7일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대규모 승리를 쟁취한 1920년 봉오동 전투 실화를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하나의 뜻으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독립군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 영화 '김복동'
일정 8월 8일 내레이션 한지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의 여정을 그렸다. 그녀가 자신의 지난 고통을 드러내면서 되찾으려 했던 삶과 희망의 씨앗, 소녀상의 의미 등에 대해 들려준다.
◇ 영월 동강 뗏목축제
일정 8월 8~11일 장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동강둔치 일원
남한강 상류 주민들의 생활수단이자 교통수단으로 숱한 애환을 간직한 뗏목을 테마로 23회째 개최되는 행사다. 천혜의 자연 동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함과 동시에 문화 탐방,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 뮤지컬 '시라노'
일정 8월 10일~10월 13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독설의 대가이자 난폭한 검객, 그러나 사랑하는 이 앞에서만큼은 순수한 낭만을 지닌 한 남자 ‘시라노’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매력 넘치는 주인공의 유려한 화술에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지며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클래식 '정명훈&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일정 8월 18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그가 이끄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협주곡 23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한다. ‘하나 되는 코리아’라는 비전을 관객과 공유하며 ‘비창’으로 분단의 아픔을 위로할 예정이다.
◇연극 '오만과 편견'
일정 8월 27일~10월 20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고전 특유의 매력에 유쾌함을 더했다. 성별과 연령, 직업 등 각기 다른 21명의 캐릭터를 단 두 명의 배우가 소화한다. 역할마다 달라지는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의상, 소품의 변화가 극의 관전 포인트다.
장마철은 이미 지났는데 요즘 폭우가 계속 내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34도가 넘나드는 무더위로 힘들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비가 내려 선선해지니 기분이 상쾌하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을 뚫고 일요일 오후 뮤지컬 한 편을 보러 강남 나들이에 나섰다.
역삼동의 LG아트센터에는 뮤지컬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이날의 공연은 로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시라노’는 남보다 훨씬 크고 못생긴 코가 콤플렉스지만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용맹한 검객이자 모험가로 외모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뮤지컬이나 오페라에 등장하는 ‘시라노’는 실제 모델이 존재한 인물로 작가였다.
그는 유난히 큰 코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지적인 달변가로 그의 코에 놀란 사람들도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필자의 젊은 시절 명동 한복판 가장 번화한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시라노’라는 이름의 작은 미니 백화점이 있었다.
유명한 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의 어머니가 운영했다는 이 백화점의 이름을 ‘시라노’라고 지은 건 외면보다 내면의 그 인품이 뛰어났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라노’라는 인물은 매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뮤지컬의 주인공 ‘시라노’는 시를 사랑하는 검객으로 싸움과 도전을 좋아하는 호쾌한 남성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사랑하는 연인 ‘록산’ 앞에만 서면 콤플렉스인 큰 코 때문에 몸을 숨기기 급급하다.
뮤지컬은 한 여자와 세 남자가 얽히는 서사시이다.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사촌 동생인 아름다운 ‘록산’을 좋아하지만 ‘시라노‘는 그녀에게 다가가기엔 자신의 외모가 너무 흉하다고 생각해 가까이하지 못한다.
부대의 지휘관인 ‘드기슈’가 ‘록산’에게 구애하지만, 어느새 ‘록산’은 ‘시라노’의 친구인 잘생긴 ‘크리스티앙’에게 마음을 사로잡힌다.
‘록산’의 마음을 안 ‘시라노’는 ‘록산’의 행복을 위해 두 사람을 이어주겠다며 지식이 부족한 ‘크리스티앙’ 대신 편지를 써주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본 ‘록산’은 유려한 글에 더욱 빠져들고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안 ‘드기슈’는 질투로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이 있는 부대를 최전방의 전쟁터로 내보낸다.
전쟁터에서도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계속 편지를 쓰는데 사실 그 편지는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으로 ‘록산’을 향한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그의 편지로 ‘록산’의 ‘크리스티앙’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데 필자는 편지를 쓴 사람을 ‘록산’이 알아봐 주기를 가슴 조이며 바라보았다.
결국, 세월이 흐른 후 ‘록산’은 ‘시라노’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가 편지를 쓴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록산’은 눈먼 사랑을 한 자신을 한탄하지만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사랑도 자신만큼 진심이었다고 말해 준다.
참으로 품위와 예의를 지키는 성숙한 멋진 남자라는 생각이다.
못생긴 외모를 연기한 배우가 매우 미남이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안생에 한 번쯤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사랑을 겪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슬픔이라는 뮤지컬 의 말이 가슴에 남아 필자의 지난 날 그런 사랑이 있었을지 되돌아보게도 했다.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뮤지컬이 마음을 울렸다.
필자는 지금도 명동을 좋아한다. 젊었을 때 필자의 메카는 명동이었다. 명동은 대학 시절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는 종로와 광화문이 좋아서 많이 쏘다녔다. 6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클럽 ‘디지 걸’이라는 모임도 있었다. ‘dizzy’는 어지럽다, 아찔하다는 뜻인데 깜찍한 친구들이 ‘우리는 아찔하게 멋진 애들’이라는 의미로 의견을 모아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긴 해도 즐거웠던 시절이다.
광화문에는 학생들에게 유명한 제과점이 있었다. 2층 벽이 낙서와 사인으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었던 제과점이었다. 우리도 그 벽 한쪽에 6명의 이름과 ‘디지 걸’이라는 사인을 해놓았다. 그 6명의 ‘디지 걸’은 다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고 보고 싶다.
나는 음악 듣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때는 규모가 큰 다방들이 많았는데 신청곡을 적어 DJ 박스에 넣으면 그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그럴 때 나지막하고 약간 느끼한 목소리의 DJ가 “어디에서 오신 누구의 신청곡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우리들 이름을 불러주면 그것이 그렇게 즐거웠다.
지금 교보문고 자리에 있던 금란다방도 즐겨 찾았던 곳이다. 종로통의 쎄시봉, 디세네, 르네상스, 종로에서 무교동 쪽에 있던 DJ 이종환의 쉘부르도 자주 갔다. 명동으로 가는 길 골목에 있는 로방도 운치 있었다. 지금도 명동에 들어서면 분위기 있던 ‘목신의 오후’에서의 차 한 잔이 그립다.
명동 예술극장으로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녔다. 그 예술극장이 금융 건물로 바뀌는 바람에 허전하고 아쉬웠는데 다행히 얼마 전 예술극장으로 다시 돌아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명동 제일의 번화가인 명동 사거리 코너에는 잊지 못할 추억의 청자다방이 있었다. 예술극장 건너편에 있던 이 다방은 규모가 엄청 커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넓은 공간에 마련된 좌석들이 보였고 2층으로 통하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역시 넓은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친구들과 주로 이곳에서 만났는데 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청자다방이 생기기 전 이곳은 ‘시라노’라는 미니백화점이었다. 3, 4층의 건물에서 중저가의 물건을 팔던 이 백화점은 당시에도 유명했던 음악가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씨의 어머니가 경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청자다방은 명동 안쪽의 심지다방과 더불어 큰 다방의 대명사였다. 한껏 겉멋이 들어 있던 우리 친구들은 사보이호텔 골목 안쪽에 있는 ‘화이어 버드’라는 곳에서 커피 값보다 두 배는 비싼 ‘슬로우 진’, ‘스쿠르 드라이버’, ‘카카오’ 등 달콤한 음료들을 사 마시고 다녔다. 어지간히 폼생폼사 잘난 척을 하고 다닌 것 같다.
명동 또 다른 골목의 2층에 있던 ‘이사벨라’라는 다방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가팔랐던 ‘엔젤’도 지금은 모두 없어져 그리운 곳이다. 미도파백화점 옆 건물에 있던 ‘포시즌’도 생각난다. 그곳에 가수 정미조씨가 나와 ‘개여울’과 팝송을 라이브로 감미롭게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정미조씨를 보고 예쁘다고 해서 한판 싸움을 벌였던 남자 친구도 생각난다.
음악은 모든 장르를 좋아했다. ‘딥 퍼플’, ‘산타나’, ‘소니 앤 쉐어’ 등의 노래를 즐겼고 ‘스모크 온 더 워터’ 같은 곡은 지금 들어도 신선하다. 이런 팝송이나 샹송, 칸초네 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클래식을 들으러 음악 감상실에서 엄청 많은 시간을 보냈다. 클래식 감상실은 종로의 르네상스가 유명했다. 내가 자주 갔던 곳은 명동 사보이호텔 건너편에 있던 ‘필하모니’라는 클래식 전용 음악 감상실이었다. 다른 다방과 달리 대화를 할 수 없고 조용히 음악 감상만 해야 했다. 음료수를 들고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면 극장처럼 의자가 배열되어 있었고 무대 쪽엔 음악명이 쓰인 보면대가 놓여 있었다.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이곳에 몰려와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있곤 했다. 필자도 조용히 앉아 우유나 콜라를 마시며 잘 알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클래식 음악을 감상했다.
요즘도 한 달에 몇 번씩은 그냥 명동에 나간다. 여전히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거리의 풍경도 바뀌고 추억의 장소도 없어졌지만 명동에 대한 필자의 그리움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