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안경을 파는 쇼핑몰도 없던 시절부터 안경 디자인을 시작해 25년간 디자이너로서 묵묵히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1세대 안경 디자이너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 디자인 회사 ‘디자인 샤우어’를 운영 중인 김종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인터넷이 낯선 시대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본이 된 세상으로 변했지만, 같이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업계를 떠났다. 그가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그 원동력에 관해 물어봤다.
어릴 때부터 암기나 받아쓰기는 못해도, 그림을 그리는 데 재주가 있어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다녔다. 그림 그리는 걸 얼마나 좋아했던지 다빈치의 해부도를 보고 큰 감명을 받고 직접 따라서 매일같이 그렸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타고난 본능이 이끄는 대로 대학에서도 금속공예 디자인을 전공했다. 우연한 계기로 선택한 첫 직장이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어릴 때부터 안경 디자이너가 꿈은 아니었어요. 다만 조립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안경에 끌렸어요. 당시 렌즈와 테가 조립되는 구조적인 디자인이 제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운 좋게 안경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유명했던 ‘서전안경’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직장인으로서 애환은 누구나 있지만,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과 안정적인 생활은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어떤 결심으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든 걸까?
“첨엔 안경 디자인 리뷰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라고 할까요? 막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라 ‘블로그’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죠. 심지어 안경원 하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들은 이메일조차 못 쓰셨어요. 그때 전 세계의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안경을 수집하면서 리뷰를 꾸준히 올렸어요. 이 디자인이 왜 좋은지, 브랜드 스토리는 어떤지 스스로 공부도 할 겸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기술로 승부
재미로 시작했던 일이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군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해외 브랜드 담당자들이 한국 업체에 그의 사이트를 문의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에게 투자해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디자인만 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잘 몰랐어요. 기회가 오니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 같으면 착실하게 준비했을 텐데, 어린 나이에 그냥 저질러보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경제관념도 없던 때라 다달이 통장에 꽤 많은 금액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계속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업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리가 잘되지 않았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빚만 지고 돈을 벌지는 못한 채 계속 적자를 메우기에 바빴다.
“안경원을 4개나 운영하고, 내근직과 영업직도 있고, 도매까지 손을 댔는데 잘 안 됐어요.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직원이 24명이나 있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직원의 이름을 잘 모를 때도 있었어요. 통장 잔고 0원에서 시작했는데 빚이 13억 원까지 불어나니까 아찔하더군요. 결국 폐업 위기까지 갔고, 밀린 월급을 챙겨주면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냈는데 참 미안했어요.”
빚이 불어나고 직원을 보낼 정도라면 폐업을 신청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터. 그는 어떻게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걸까?
“다시 살아야겠다! 이 마음 하나밖에 없었어요. 거래처 가서 부탁도 많이 하고, 욕도 무진장 많이 먹었어요.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고요. 한 8년을 그렇게 지나왔는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진짜 앞만 보고 달렸어요. 다른 건 죽어도 할 자신 없고, 이걸로 끝장 본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때부터 기술로 승부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빚도 많이 줄었고, 신용불량자 상태도 풀렸어요.”
고심이 만든 고집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나? 그가 만든 안경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하나둘씩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특히 대중에게 얼굴을 자주 비추는 연예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단골손님이 가수 양희은이다.
“저희가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양희은 선생님 스타일리스트가 저희 안경을 보고 선생님께 추천을 드린 거예요. 선생님도 안경을 보시고 맘에 들어 하셔서 그때부터 저희 안경을 자주 찾으세요. 이제까지 30개 이상은 구매하신 것 같아요. 황재근 디자이너나 김영하 작가도 저희 안경을 쓰세요. 대체로 보면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와요. 그렇지 않은 일반인 분도 종종 오시는데, 그분들도 개성이 강한 편이에요.”
그렇다면 단골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수제 안경의 독특한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분들이 많이 찾다 보니 재미있고 차별화된 걸 좋아하세요. 예를 들어 안경알의 좌우 형태가 다른 안경이 있는데 하나는 둥그렇고 다른 하나는 네모예요. 굉장히 특이한 안경인데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시는 분이 꽤 많아요. 테가 탈착되는 방식이라 부러지지 않고 빠져요. 빠지면 다시 끼우면 돼요. 충격을 받아도 잘 부러지지 않는 것이 제가 만드는 수제 안경의 장점 중 하나예요. 오로지 제 손끝에서 나온 하나밖에 없는 안경들이에요.”
수제 안경의 장점은 확실히 특별하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안경인 동시에, 한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다만 대량 생산과 비교해서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오랫동안 수제 안경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다 하는 걸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똑같은 걸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평소에 생각하던 걸 손으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처음엔 공장에 최소 수량을 맡길 자금도 수중에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사실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중요해요. 머릿속 생각을 구체적인 오브제로 실현하는 동시에, 과정 중에 하나둘씩 문제를 발견하면서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요. 그 과정이 더 좋은 안경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봐요.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실험이에요. 제 공방은 연구소나 다름없어요.(웃음)”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지만, 사람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기계와 비교해서 한계와 단점도 존재한다. 이제껏 수제 안경을 만들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물론 있죠.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요. 거칠게 말하면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그 한계치까지 고심해서 만들어내는 고집인 거죠. 기계나 기술이 부족하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제 성격상 그게 잘 안 돼요. 같이 일하는 후배는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묻지만, 저는 이게 좋아요. 매번 똑같은 걸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새롭고 더 좋은 안경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요. 늘 한계를 실험 중인 거죠. 제 고집이란 게 그래요.(웃음)”
한 뼘이라도 나아지는 삶
안경 디자이너로서, 숱하게 수제 안경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히 있을 터.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안경의 기준과 디자이너로서 철학을 물어봤다.
“일단 기능적으로 충실한 것이 기본이죠. 편하지 않고 튼튼하지 않은 안경을 손님에게 드릴 수는 없죠. 덧붙여 수제 안경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에요. 새롭지 않으면 손으로 만들 필요가 없죠. 안경은 오브제에 대한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완벽한 안경은 없다고 생각해요. 광이 잘 나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좋은 안경과 제대로 된 브랜드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시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고, 새로운 시도는 열정에서 출발해요. 저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걸 만들려고 매일 다짐해요.”
끝으로 더 나은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디자이너로서의 계획을 물었다.
“죽을 때까지 조금씩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 삶의 목표예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건 기대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그렇게 조바심을 내면 많이 힘들었어요. 남들에게 보이는 성공보다는 행복하게 재밌게 보내는 하루가 더 소중해요. 어제보다 조금씩 더 성장하고, 일 년 전보다 한 뼘씩이라도 나아지는 것. 그게 디자이너이자 한 인간으로서 목표예요. 그런 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앞으로 사업을 조금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요. 올해는 친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려고요.”
베테랑 안경 디자이너 김종필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은 ‘성장’과 ‘차별화’였다. 그의 차별화는 명함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쓰는 종이 명함이 아니라 비닐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안경닦이 위에 수제 안경 사진과 함께 새겨진 명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을 차별화하는 수단이자 실용성을 더한 명함이었다.
한편 그는 늘 성장하고자 했다. 폐업에 내몰렸을 때 사업가로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영·마케팅·브랜딩 책을 400권 이상 독파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경영인으로서의 판단 기준이나 관점을 많이 익힐 수 있었다고.
이제껏 그는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안경을 만들며 자신만의 사유를 표현했다. 그게 단순히 이상적인 얘기가 아니고, 구체적인 실행과 기본을 충실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더욱 빛나 보였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디자인적으로 차별화에 신경 쓰면서 편안함이라는 안경의 실용성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종필 대표는 디자이너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갖추기 위해서 지난 25년 동안 밤낮없이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가 수제 안경이었다. 흔히 나이테라고 부르는 ‘연륜’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할수록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늘 시도하고 매일 성장하려는 그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큰 연륜을 만들고, 후에 품이 넓은 나무로 성장해서 넉넉한 그늘을 사람들에게 드리우는 안경 디자이너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모든 것이 코로나19로 멈춰진 세상. 그러나 4월 초 예술의전당에서는 반짝이는 보석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감탄이 배어나왔다. 코로나19를 막으려는 개개인의 긴장감 속에서도 전시품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던 이 자리는 바로 보석 디자이너 김정희의 개인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어워드에 유일한 한국인 심사위원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를 위한 브로치를 만들며 국내 최고의 보석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그녀를 만나 작품 세계와 삶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정희 보석 디자이너는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전시기간 내내 자리를 지켰다. 직접 사진 촬영과 편집까지 하며 준비한 전시회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본 그녀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전시를 치른 소감을 묻자 감동받았다고 대답했다.
“악조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와서 관심을 보여주시더군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목적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희망을 얻었어요. 두 개의 나뭇가지가 결국 한몸이 된 ‘연리지’ 작품을 보면서 상처 입은 나뭇가지가 상처 안은 나뭇가지를 밀어내지 않고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감상평을 해주셨어요. 저, 너무 행복했어요.”
그녀는 시간을 품은 듯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연과 사람을 끊임없이 고찰한다. 재료도 일반적인 귀금속에 얽매이지 않고 디자인에 맞춰 자유롭게 선택한다. 18K 핑크골드 가지를 힘차게 뻗게 하니 다이아몬드와 투어멀린 그리고 해수진주로 꽃을 피워 핑크와 블루 사파이어로 물결치듯 열매를 맺게 한다. 여인의 꿈이 진주가 되어 귀걸이로 피어나게 하고, 그리움을 별로 승화해 목걸이를 걸치게 하고, 소나무의 절개를 브로치로 반짝이게 하고, 천년의 사랑은 다이아몬드 오로라를 만나 링이 되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예술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함께 아우르며 영혼까지 투영해야 얻을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를 위해 브로치를 만들다
이번 개인전에 나온 170여 점 중 20여 점은 개인 소장품이다. 보석의 오너들은 김정희의 전시 제안에 기꺼이 함께했다.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스토리를 넣으려 노력해요 보석이 아름다운 건 화려함 속에 개인의 추억과 역사를 담을 수 있어서죠.”
그녀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인 멜라니아 여사도 있다. 2017년 한미정상회담으로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방한을 준비하던 시기에,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그녀에게 연락해 작업 의뢰를 했다. 아직 방한 관련 소식은 언론에 보도되기 전이었기에 그녀는 아무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누구냐고 물었다. 주한미군 쪽에서 온 대답은 ‘말할 수 없다’였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의뢰하신 분이 붉은색(red)을 선호한다는 것이 전부였어요. 받는 분에 대한 정보 없이는 도저히 작업이 안 된다고 하니 며칠이 지난 후 사진을 한 장 보내왔어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찍힌 사진이더군요. ‘그녀는 붉은색을 좋아한다’라고 딱 한마디 적혀 있더군요.”
그녀의 모든 작업은 스토리텔링으로 시작되는 만큼 용도에 맞게 매듭 형태 하나하나와 실크 컬러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노리개 겸 브로치는 나비매듭을 모티프로 디자인에 착수했고 마침내 주얼리로 탄생했다. 여덟 개의 매듭으로 되어 있는 나비매듭은 장수와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또한 나비는 희망을 상징한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정상회담인 만큼 화합과 희망을 중요한 메시지로 담았다. 물론, 색은 붉은색이었다. 작품을 전달한 후 그녀는 멜라니아 여사가 굉장히 만족해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비 모양의 주얼리 장신구와 탈부착이 가능한 나비 브로치를 멜라니아 여사에게 선물로 전하면서 대한민국 주얼리 문화외교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도 마련했다.
세계 디자인 어워드의 유일한 한국 심사위원
김정희는 사실 국내 보석 디자인 분야의 1세대라고 해도 될 인물이다. 그녀가 처음 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보석 디자인과 관련한 학술적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할 때도 보석 감정사는 있었지만 보석 디자이너는 없었다. 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한다 해도 장식 오브제나 목공예 정도나 배우던 시절이었다.
“일은 1993년부터 시작했죠. 방학 때 신세계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주얼리를 접했어요. 혼자 나름대로 보석에 대해 공부한 게 있어서 그걸 적용해봤죠. 당시 일당이 보통 만팔천 원이었는데 저는 삼만팔천 원을 받을 정도로 매출을 높였죠. 그게 인연이 돼서 주얼리 업체에 스카우트돼 졸업하기 전에 취업했어요.”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IMF 외환위기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출 파트를 맡아 1위로 올려놓았다. 대단한 커리어우먼이었다.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보석시장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주얼리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더하고 싶었어요.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같은 학과를 전공한 후 보석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을 위한 보석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9년에 퇴사하면서 보석디자인연구소를 열었고 2001년에 첫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2001년은 아직 30대이던 시절이었다. 생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던 그 시절의 작품들은 추상적으로 자연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는 비로소 자연을 제대로 형상화해 풀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주얼리 디자인의 세계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워낙 값비싼 재료를 취급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작업을 시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는 철학이 있는 차별화된 보석 디자인을 추구해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3대 디자인 어워드 ‘K-DESIGN AWARD’ Winner로 선정된 그녀는 2017년,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어워드 'Italy A'Design Award'에 도전했다. 세계 180개국, 110개의 디자인 카테고리에 6만 5000점이 출품되었다. 이중에서 선택된 1780점의 입상자 작품 중 그녀는 안경·시계·주얼리 카테고리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 당시 175명 전 세계 심사위원 명단에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두 번째도 다시 도전해 은상을 받으며 세계 랭킹 4위에 레전드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게 됐죠. 다음 목표는 심사위원이 되어야겠다고. 제가 그 길을 개척해보겠다고 소신을 가지고 도전했어요.”
그 다짐은 결국 이루어졌다. 그녀는 올해부터 ‘Italy A'Design Award’ 심사위원이 됐다. 한국인으로선 최초이고 현재 단 한 명인 쾌거다.
작품의 영감이 된 ‘어머니’
김정희 디자이너의 인생에서는 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의 삶 전반뿐만 아니라 작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영향력은 곳곳에 숨어 있다.
“어머니는 누굴 따라가기보다는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죠. 제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어요. 어머니가 없었으면 영감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2남 2녀의 장녀인 그녀는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작품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없다.
“제 작품 ‘그리움이 향기로 피어나다’의 나무(미선나무 꽃)들은 어머니의 향기를 품고 있고 함께했던 정서가 담겨 있어요. 어머니는 2018년 2월 5일 의료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제 곁을 떠나시기 전날 목욕을 시켜드렸죠. 그때 어머니 손을 계속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나무’ 연작은 어머니를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로 만든 작품이다. ‘생명의 나무’의 마지막 작품 ‘하늘에 뿌리를 두다’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지만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는 인간사를 형상화했다. ‘나비 되어 날다’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49일 동안 산소를 찾았다. 어머니는 매일 꿈에 나왔다. “네가 계속 우니까 내가 떠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49일째 되는 날 산소에 갔는데 햇살도 따뜻하고 아지랑이도 피어올랐고 꽃도 피었더라고요, 그날 진짜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어느 날은 어머니가 늘 앉아 계시던 정원에 앉아 있는데 노랑나비가 와서 제 옆에 앉더군요. 제가 움직이니까 나비가 정원을 날아다녔어요. 저는 나비를 따라다녔죠. 그러다 나비가 사라졌어요. 그러고 나선 꿈에 안 나오시더라고요. 제 ‘나비’ 작품들은 그때 영감을 받고 만들어졌죠.”
장롱 속 잠자는 주얼리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보석 대물림. 그녀가 그 보석들을 새롭게 리폼해 재창조한 ‘Reborn’ 작품들은 시간을 거스르는 특별한 예술품으로 빛나고 있다.
김정희 디자이너는 ‘Reborn’ 작품 의뢰를 받으면 의뢰자의 삶의 철학, 나이, 생활 패턴, 물려받은 동기, 왜 의뢰를 하게 됐는지 등등 희로애락의 모든 걸 듣고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주얼리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위로와 행복, 감동을 줄 수 있는 생활 속의 예술품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삶의 깊이가 묻어나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작업할 때는 오로지 그 생각만 해요. 영감을 받아야 하니까요.”
장롱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귀한 패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한 사람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주얼리’로 재탄생시키는 일. 혼을 담은 그녀의 손끝으로 빚어낸 주얼리들은 자손들에게 마음의 보물로 간직할 가보로 물려줄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다. 보석 자체의 화려함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창조해내려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보석 디자인은 디자인이 주연이며 보석은 디자인을 빛나게 하는 조연이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이 다른 보석 디자인과 그녀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보석이 시선을 압도하는 디자인보다는 디자인이 더 돋보이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을 만들 때 그 사람을 담아야 한다는 기준을 지키려면, 그 작업시간이 보통 걸리는 일이 아닐 터. 그러나 그녀는 일만 하며 사는 삶이지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작품을 떠나보낼 때는 와인을 한 잔 한다. 허전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가장 작품을 많이 만들었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이었어요.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어머니의 그리움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작품을 만들었죠.”
보석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조형예술 세계
그러나 주변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케치만 해놓고 작품을 못 만든 게 많아요.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봉황이죠.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성대가 열린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그녀가 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생활에 밀착한 조형 예술로서의 보석 디자인이다.
“생활 속 예술로서 감동과 위로, 소통할 수 있는 보석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이미 보석 디자인은 작은 조형예술이에요. 그렇다면 큰 조형예술로도 가능하겠죠. 그래서 완전한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제 삶이 멈추지 않는 한 항상 꿈을 꾸며 도전할 거예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는 삶은 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녀에게 보석은 희망, 지속되는 꿈이다. 그래서 보석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빠져든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석을 통해 만들 더 넓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기대해본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는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명품 옷이든 구제 옷이든,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옷의 진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는 노화에 따른 심리적, 신체적 변화로 자꾸만 움츠리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옷들이 스타일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미적 요소가 결여된 의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더는 걱정하지 말라. 기능과 스타일까지 살린 세계의 패션 브랜드와 아이템을 소개한다.
시니어숍, 집 앞에서 편안한 쇼핑을
온라인 쇼핑몰은 집에서 간편하게 옷을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 않거나 익숙지 않은 시니어에겐 곤욕이다.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날, 당신의 집 앞에 의류 매장이 직접 찾아온다면? 먼 곳에 있는 의류 매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입어보며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상상 속 이야기처럼 생각되겠지만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시니어숍(Senior Shop)’이다.
시니어숍은 1996년, 스웨덴 헬싱보리 오픈을 시작으로 유럽 6개국에서 60개 이상의 이동식 매장 네트워크를 갖추고,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고품질의 편안하고 세련된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방문 신청은 무료이며 방문 당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1000여 가지 옷이 준비되어 있다. 사이즈도 S에서부터 3XL까지 다양하다. 20m 이상의 전시대와 거울,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느 옷가게 못지않다. 요청에 따라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한다. 편안한 쇼핑과 이색 이벤트로 시니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시니어숍은 현재 북유럽 국가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마담토모코, 굽은 허리도 우아하게
일본의 고령 여성복 브랜드 ‘마담토모코(マダムトモコ)’는 등이 굽은 여성 시니어가 편안함과 옷맵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상체가 구부러진 사람이 입어도 등 쪽의 옷감이 당겨져 올라가지 않도록 주름을 넣어 조정한 상의와 하의를 개발한 것이다. 최숙희 교수(한양사이버대학교 시니어비지니스학과)가 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칼럼에 따르면, 이 제조법은 특허를 받은 공법으로 편안함은 물론, 굽은 등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자랑한다. 허리가 맞지 않는 옷 수선 서비스도 제공하는 마담토모코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일본에서만 2만 명 가까이 되는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치코스, 중년 여성의 개성을 살리는 패션
치코스(Chico’s)는 미국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류 및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600개 이상의 매장과 121개의 아울렛 매장을 운영 중이다. 물론 온라인 쇼핑도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의류 가격을 한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치코스의 경영 철학은 여성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감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뒤집어 입을 수도 있고, 더 부드러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옷의 기능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코스의 매력은 개인 스타일리스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에도 있다. 비용은 무료이며 전화상담도 가능하고, 매장을 방문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홈페이지에선 연중무휴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노화의 상징 NO, 패션 아이템 YES!
지팡이는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에게 없어선 안 되는 도구다. 하지만 의료용 기구로 인식되고, 신체적 결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옴후(OMHU)’는 이런 시니어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지팡이를 개발했다. 덴마크어로 ‘아주 조심스럽게’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디테일한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패션 지팡이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제품은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충격에 강하고, 손잡이는 감촉이 부드러운 나무를 사용해 오래 쥐어도 불편함이 없다. 또한 손잡이 부분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해 벽에 세워둬도 넘어지지 않는다. 길이가 3가지 종류로 나눠져 있고 색상도 6가지나 돼 소비자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국의 ‘엘더럭스(Elderluxe)’도 다양한 디자인의 지팡이를 판매하고 있다. 가죽 지팡이,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힌 지팡이, 접이식 여행 지팡이 등 252개의 지팡이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도 시니어를 위한 특별한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바로 주얼리 돋보기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플루비(efluvi)’다. ‘efluvi’라는 회사 이름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고자 스페인어 ‘efluvio(자연의 향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돋보기는 굴절이 심해 오래 사용하면 어지럼증과 두통을 겪지만 이플루비의 돋보기 렌즈는 왜곡이 없는 독일 칼자이스 광학렌즈를 사용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앴다. 또 목걸이형 손잡이형, 문진형 돋보기를 직접 디자인해 휴대성과 심미성을 높였다. 주얼리 돋보기 외에도 브로치, 안경줄 등 시니어를 겨냥한 세련된 패션 아이템도 많다.
엄마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수많은 동년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20대에는 결혼과 출산, 30대와 40대는 지난한 육아, 50대에는 고장 난 몸과 싸웠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나이 앞자리는 6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수많은 58년 개띠처럼 형형색색의 아웃도어를 장례식장, 예식장 빼고 거의 모든 자리에 입고 나간다. 뒷모습만으로는 우리 엄마와 남의 엄마를 구분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과 패션. 그렇다고 엄마의 지금 패션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엄마에게는 이름 석 자만큼이나 옅어져버린 ‘자신’.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다’라는 말을 패션을 전공하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남들에게 말했다. 엄마의 이름 석 자와 엄마라는 육체와 정신을 쏙쏙 빼먹고 자란 나는 할 말이 없다. 지금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엄마에게 무작정, “엄마 그 오렌지색 점퍼는 정말 아니지 않아?”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 엄마와 수많은 남의 엄마에게 패션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자신을 찾는 법에 관한 지도를 내밀어본다. 우선 이 지도의 가이드로 적당한 4명의 인물을 꼽아봤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h98008272@gmail.com
◇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인생 철학이 녹아 있는 옷을 입어라"
“옷을 잘 입은 사람은 옷보다는 그 사람이 기억나요.” 몇 해 전 라는 영화가 개봉될 즈음 실제 주인공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노라노는 1947년 국내에서 출발한 두 번째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학을 간 신여성으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6년 한국에서 제일 먼저 패션쇼를 열었으며, 기성복이란 제도를 프랑스보다 앞서 만들었다. 인터뷰를 했던 그때 이미 노라노는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노라노는 심플한 디자인의 캘빈클라인 시계를 차고, 어깨선에 딱 맞는 벨벳 재킷을 입고 있었다. 단정한 커트 머리에 보라색 아이섀도를 바른 모습에서는 바지런함이 느껴졌다. 잘 입었다, 못 입었다가 아니라 참 노라노답다는 생각이 인터뷰 말미에 들었다. 인생을 일부러 ‘루틴’하게 만들었다는 노라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혹시라도 더 일찍 깨면 5시가 될 때까지 누워 있는다) 45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똑같은 식단의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동네 공원을 45분 걷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9시까지 출근한다. 퇴근은 당연히 6시, 칼 같이 맞춘다. “시계나 다름 없죠. 세상에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생활을 이렇게 루틴하게 만들어놓으면 쓸데 없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죠.” 그녀의 철학은 패션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스무 살부터 일을 했어요. 직장 여성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생활이 단순해야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패션도, 생활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요.” 머리를 짧게 유지하는 것도, ‘시그니처 룩’이라고 불릴 만큼 똑같은 스타일로 옷을 입는 것도 모두 이런 패션철학 때문이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는 말에 노라노만큼 적당한 사례는 없다. 멋지게 입고, 트렌디하게 입는 것이 답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철학이 스타일에 녹아 있으면 그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 사업가 겸 스타일리스트 린다 로딘 차라리 ‘안티’ 안티에이징
“난 60대가 될 때까지 늙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종종 젊은 사람들 위주로만 돌아가는 문화 때문에 힘들기도 해요.” 곧 일흔을 바라보는 린다 로딘은 여전히 주말이면 빈티지 시장을 돌아다니고, 종종 ‘중고장터’를 통해 자신의 옷과 탐나는 남의 옷을 교환해서 입는다. ‘패션은 여자들의 창의력을 강물과 같이 흐를 수 있게 도와주는 돌파구’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그래서 가끔 짧은 스커트에 타이츠를 신고(자신의 다리가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롤업 청바지를 애용한다. 부엉이처럼 큰 컬러 안경과 새빨간 립스틱도 즐긴다. 물론 한때 그녀도 하얗게 센 머리를 염색할까, 주름진 이마에 필러를 맞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필러를 맞고 마주한 제 얼굴은 제가 아니었어요. 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할머니가 보일 뿐.” 그녀는 차라리 ‘안티’ 안티 에이징을 외쳤다. 젊어 보이는 것에 포커싱되는 중년의 패션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의외로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인 줄 알았던 ‘신선함’을 그녀에게 돌려줬다. 유니클로의 생지 데님을 툭툭 걷어 입고, 바삭한 화이트 셔츠에 빨간 플랫 슈즈를 신은 린다 로딘의 패션에서는 나이라는 코드가 읽히지 않는다. 그저, 린다 로딘이라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무언가를 기억하자
자신을 찾는 일에 불특정 다수, 즉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또 다른 정계 인물이 있다. 얼굴보다 구두로 첫 취임기사를 장식한 영국의 총리 테리사 메이. 그녀의 패션은 한마디로 멋지다. 20대 여자들의 트렌디함과 중년 여성의 묵직함, 워킹 우먼의 단호함이 한 벌에 담겨 있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구두를 사고(입술 모양이 그려진 앙증맞은 플랫슈즈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사이하이 부츠를 신는 과감한 여자다. “저는 늘 여성들에게 ‘고정관념에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이 되라’고 말해요. 만일 당신 개성이 옷 또는 신발을 통해 보인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 바람에 테리사 메이의 연관 검색어에는 ‘슈즈 마니아’가 뜬다. 우리 엄마는 보라색을 좋아했고, 벨벳으로 만든 무언가에 항상 반했다. 하지만 언제나 손에 들린 건 물세탁이 가능한 실용적인 옷이었다. 테리사 메이에게는 구두 쇼핑이 취미활동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창고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를 찾는 놀이였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무언가를 떠올리자. 엄마에게 보라색 벨벳 슈즈가 필요한 것처럼.
◇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나’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자
흰머리에 쇼트커트, 수영으로 다져진 다부진 어깨, 조금의 경사도 느껴지지 않는 빳빳한 허리. 당당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이 프랑스 여자는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다. 방탄 가공을 거쳤을 법한 그 단단한 사회의 유리천장을 뚫고 ‘최초’로 IMF 총재 자리에 앉았다. 줄곧 ‘남초’ 직장에서만 생활해온 그녀는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에서 총을 잡기보다는 립스틱을 잡았다. 무채색의 팬츠 슈트로 넥타이맨들과 경쟁하는 대신 핑크색 스커트로 여자다움의 힘을 강조했다. “생각은 그만하고, 행동 좀 하시죠”라는 말을 자주 해 ‘아메리칸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행동파인 그녀 앞에서, “일이 힘들어서, 이게 편하니깐”이라는 말로 유니폼 같은 무채색 패션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 우먼들은 용납이 안 된다. 그녀는 수년간 IMF 총재 역할을 해오며 능력마저도 스타일리시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여전히 스카프 쇼핑을 즐기고 핑크색 트위드 슈트를 입고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60대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그녀의 지금 룩은 뚝심 있게 지켜온 자기 자신 그 자체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남성지 를 거쳐, 와 의 패션 에디터로 10여 년간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로 패션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장소영 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내적으로 갖춘 아름다움이 외적인 꾸밈, 그것보다 앞설 수는 없으며 높이 평가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 초라한 겉모습일 때 대놓고 무시하는 일을 종종 겪고는 한다. 좀 더 예의를 갖춘 옷차림으로 누군가와 마주할 때 그에 맞는 응대가 돌아오는 것이다. 고작 옷 따위에 흔들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살면서 적지 않게 그런 겉모습이 매우 중요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옷차림, 즉 패션은 중년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중요한 인격과 같은 것이다.
20~30대에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일이 나를 가꾸는 즐거운 일이며 모든 관심사였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 40~50대가 되면 변해버린 몸매 때문에 아예 패션에 대한 관심이 시들어버리거나, 옷 입는 방법이 어려워 포기해버린다. 아무거나 입어도 예뻤던 젊은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면 몸매도 망가지고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아 남다른 노력과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어렵기만 한 패션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꽃중년, 노노(No老)족이라 불리며 패션뿐만 아니라 운동, 식생활 관리로 멋있게 중·장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꽃중년으로 닉우스터가 있고 한국에는 65세의 여용기라는 분이 있다. SNS를 통해 옷 잘 입는 대표적인 꽃중년으로 스타가 되어 있는 그분의 스타일링 비법은 “머리색, 안경부터 바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라!”였다. 패션니스타의 비법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이처럼 패션은 간단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다. 아무리 봐도 어렵고 누가 알려줘도 내게 옷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고 사람마다 체형이 다 다르니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요즘은 그 답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에게 적용하기 힘든 코디법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멋지게 자신 있게 입는 것이다.
어디서나 어울릴 수 있는 팔색조
인기 패셔니스타의 SNS를 살펴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자신감’과 ‘건강함’이었다. 놀랄 만큼 멋진 옷차림과 혹은 민망한 컬러와 난해한 코디도 있었지만 무엇을 입든 자신의 옷차림에 대한 자신감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잘 관리되어온 건강한 신체가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채워가야 할 것은 나를 지켜줄 건강한 신체와 자신감임을 기억하고 거기에 도움을 줄 몇 가지 꿀팁을 살짝 공유해보고자 한다.
청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너무 캐주얼하고 가벼워 보여 주말에 잠깐 입는 옷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양한 패션이 공존하고 미스매치(mis-match)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못 입을 이유가 없다. 다만 나이에 어울리는 멋이 중요하다. 멋도 멋이지만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에 맞는 품격인 것이다.
젊어서 청바지를 한 번쯤 입어봤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민망하긴 하겠지만 청바지에 도전하기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청바지라는 아이템을 통해 요즘 흔히 말하는 상남자로 스타일링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자.
남성 임원들이 회사에 출근할 때 입던 정장 그대로를 떠올리면서, 바지만 청바지로 바꿔서 입는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청바지와 비슷한 색과 톤의 재킷이라면 무리 없이 통과. 셔츠는 청바지가 어두운 색이라면 반대로 밝게 입어주면 된다. 또 반대로 셔츠가 청바지와 비슷한 색과 톤이라면 재킷을 청바지와 반대색이나 톤으로 입어주면 된다. 이런 경우 넥타이는 폭이 좁은 것, 캐주얼한 것으로 하고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에는 폴라도 가능하고 스카프로 코디하면 된다. 만약 모임이나 레스토랑에 간다면 나비넥타이로 코디해도 좋을 것 같다.
어렵지 않은 청바지 코디법
밝은 색 청바지에는 브라운, 카멜, 카키 등 어두운 톤의 콤비 재킷으로 캐주얼하게 배색하는 것이 좋으며 셔츠는 무채색 계열로 선택해주는 것이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 짙은 인디고컬러 청바지는 하체를 날씬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고 코디하기에도 편리하다. 색이 너무 밝은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고, 그레이나 블랙진도 코디의 폭을 넓혀주는 아이템이다.
체크나 무늬를 선택할 때는 재킷, 셔츠, 넥타이 중 하나만 입어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늬는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좋다. 종종 체크무늬 재킷, 줄무늬 바지, 페이즐리 넥타이를 입는 사람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되는 흔한 실수다. 무늬는 되도록 하나에만 들어가도록 신경 써서 고르도록 한다. 패션의 법칙은 없지만 금기되는 코디법이다.
마지막으로 신발이다. 내가 더 젊어 보이고 싶다면 운동화를 선택하고 더 품위 있게 보이고 싶다면 구두를 선택하면 된다. 이미 청바지에 정장을 코디한 상태라면 어떤 것도 스타일리시해 보이므로 어느 것이든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운동화는 사이즈가 허락한다면 아들, 손자의 것을 살짝 빌려도 괜찮을 것 같다. 구두는 정장구두를 그대로 신어줘도 괜찮고 더욱 멋져 보이고 싶다면 통가죽의 컬러가 살아나는 구두나 워커도 괜찮다. 이때 양말은 바지보다 짙은 색을 신어주고 더욱 과감한 코디를 하고 싶다면 컬러 양말이나 맨발도 좋다. 이럴 때는 바지 밑단을 몇 번 접어 멋쟁이임을 과시해도 될 것 같다.
키가 작을수록 청바지 통에 신경 써야 한다. 너무 넓은 것은 선택하지 말고 배가 나왔다면 밑위길이가 짧은 골반바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배바지는 밑위가 길어 편하기는 하지만 윗배가 더 나와 보이게 하므로 역시 피하는 것이 좋다. 배가 나온 중년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반골반 청바지를 권한다. 골반과 허리 중간에 위치해 벨트 여밈이 나온 배를 적당히 눌러 커버해주므로 한 치수 큰 것을 선택하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엉덩이가 너무 작은 사람은 주머니가 큰 것을 권하며 엉덩이가 큰 사람은 작은 주머니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봄가을 옷으로 쉽게 사계절 코디 가능
젊어지고 싶은 여성들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20~30대 의류를 주로 구입하는 연령층이 40~50대이며 자신들이 직접 입으려고 구입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단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의 옷을 입는다고 젊어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이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옷을 멋있게 입었을 때 진정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여성들의 영원한 꿈의 아이템은 허리가 딱 맞는 미니 원피스일 것이다. 젊어서 원피스를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 빼서 입어야지” 하며 구매한 원피스가 지금도 옷장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살은 빠지지 않고 아까운 원피스는 계속 몇 해째 묵혀두고 있다. 이런 옷은 과감하게 딸과 손녀에게 줘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요즘 누가 그런 것을 입겠냐고 하겠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리폼도 가능하기 때문에 원단이 좋으면 분명 환영할 것이다.
원피스는 길이에 상관없이 봄가을에 유행하는 카디건이나 재킷으로 코디해주고 겨울에는 코트를 입어주면 사계절 베이직 아이템이 된다. 원피스를 고를 때는 나이를 생각해서 허리가 타이트하지 않은 옷을 선택하는 게 좋다.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불편하면 잘 입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또 몸에 꼭 맞게 입으면 날씬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몸에 붙는 옷은 오히려 몸의 라인이 드러나 좋지 않은 인상을 주며 날씬해 보이지도 않는다. 또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옷보다는 단색 계열의 단순한 디자인을 권한다. 화려한 무늬는 오히려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하며 패턴이나 디자인이 복잡한 옷은 다양하게 코디할 수가 없다. 여름옷을 제외하고 봄가을 옷을 선택하면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다. 추우면 겹쳐 입을 수 입고, 겹쳐 입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코디법이다.
마지막으로 장식이 없는 깔끔한 미니멀리즘의 원피스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장식은 유행에 민감해 유행이 지나면 구닥다리 옷이 된다. 원피스만으로 멋쟁이가 되려면 계절마다 몇 벌씩 사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유행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욕심껏 사다가 파산에 이를지도 모른다. 소재가 좋은 기본 컬러의 원피스를 선택한 후 스카프,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다양하게 코디해 10년 젊게 보이는 코디법을 제안해본다.
첫째, 스카프는 가격대비 효과가 가장 좋은 아이템이며 연출법도 다양해 방법만 잘 익혀둔다면 효과가 200%다. 요즘은 인터넷에 스카프 연출법이 동영상으로 친절하게 잘 나와 있다. 나이가 들어 목에 주름이 생겨 고민인 사람에게도 스카프는 고마운 아이템이다. 여름에 에어컨의 찬 공기도 막아주고 겨울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무난한 소재는 시폰 소재이며 무늬가 화려한 것과 무채색으로 여러 개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둘째, 요즘엔 가방이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 됐다. 스카프와 가방은 하나에만 포인트를 주거나 색과 톤 느낌을 통일하면 된다. 가방을 강조하고 싶을 땐 스카프와 원피스를 같은 색과 톤으로 통일시켜주면 된다.
셋째, 액세서리는 마치 화장 같은 것이다. 귀고리, 목걸이, 팔찌가 기본이지만 요즘에 다양한 브로치, 코사지를 활용한 코디가 유행이다. 낮에는 지나치게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피하는 것이 좋으며 파티를 할 때나 밤이라면 괜찮다. 키가 작은 사람은 벨트를 이용하면 좋다. 허리에서 시선을 한 번 차단해주면 비율을 좋게 해줘 키가 커 보인다.
넷째, 신발만큼은 한껏 젊어도 된다. 자칫 놓치기 쉬운 아이템이 신발이다. 나이 들었다고 할머니 같은 신발을 신는다면 잘된 스타일링을 망칠 수 있다. 하이힐이 불편하다면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 편안한 로퍼를 권한다. 귀여운 리본이나 체인 장식이 있는 젊은 스타일로 포인트를 줘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스타일링 기록이다. 자신이 보는 것과 타인이 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매일매일 자신의 스타일을 셀카로 찍어 기록하고 일주일을 정리해 스스로 만족하는 스타일을 그다음 주에도 시도해보자. 그렇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면 된다. 너무 유행을 좇다 보면 흔한 패션이 되어 개성을 잃기 쉽다. 나이가 들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스타일이 가장 멋스럽다.
>>장소영 호남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이너인 어머니에게 디자인을 배우고 실무를 익혔다. 지금은 그것들을 다시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고객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강의한다. 가끔은 입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의상을 제작한다. 네번의 개인전과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다.